영성을 말하다

[헨리 나우웬] 영성에의 길 - 두려움과 기다림의 영성

김노섭-열린문 2011. 12. 10. 15:54

 


기다림이란 아주 인기 있는 태도는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기다림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문화가 근본적으로 "계속해! 뭔가 하란 말야! 네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줘! 그렇게 앉아서 기다리지만 말고!"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기다림이란, 그들이 있는 곳과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 사이에 있는 메마른 사막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행동함으로써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감정 가운데 하나가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내면의 감정을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한 미래를 두려워한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주 어려운 시간이다. 왜냐하면 두려워하고 있을 때, 우리는 있는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망갈 수 없다면 대신 싸워야 할지 모른다. 우리의 파괴적인 행동 대부분은, 우리에게 어떤 위험 요소가 달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부터 말미암는다.

그러기에 뭔가 행동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선제공격'형으로 접근하게 되는 근본 이유이다. 두려움의 세계 가운데서 사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공격적이고, 적대적이며, 파괴적인 반응을 보이기가 쉽다.

우리가 더 많이 두려워할수록 기다림은 더 힘겨워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다림이 그런 인기 없는 태도가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기에 누가복음 초두에 나오는 인물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샤가라와 엘리사벳은 기다리고 있다. 마리아도 기다리고 있다. 시므온과 안나, 아기 예수를 데리고 갔을 때 성전에 있었던 그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복음의 시작 장면 전체가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기다린 것은 아니다.

선지자들은 그 백성들(최소한 부분적으로는)이 장차 다가올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고...
결국 기다림이란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자세요, 신실하게 남아 있던 이스라엘의 소그룹의 자세였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신실한 백성, 즉 순결한 남은 자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기다릴 수 있었고,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으며,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영성에의 길 ① - Henri J.M. Nouw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