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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늘의 교육목회, 무엇이 문제인가? [고용수 박사: 장신대 총장]

김노섭-열린문 2007. 6. 14. 13:33

“오늘의 교육목회, 무엇이 문제인가?”

                                                                                                        고용수 박사 (장신대 총장)


시작하는 말 : 문제제기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 규정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은 ‘관계성’ 안에 자리하고 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worship), 인간과의 관계(partnership), 자연만물과의 관계(stewardship)의 질서를 의미한다. 죄란 ‘관계의 단절’이요 타락이란 ‘관계의 상실’ 곧 분리 상태를 의미한다. 기독교 복음이 증언하는 구원이란 ‘단절된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따라서 목회(ministry)란 하나님, 인간, 그리고 만물과의 관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종의 ‘관계 형성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한국 교회의 목회 위기는 한마디로 ‘분리현상’으로 요약된다. 즉 신앙과 생활의 분리, 신앙과 신학의 분리, 목회와 교육의 분리,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 현상이 심각하다. 이러한 ‘분리현상’으로 인해 목회 현장은 편협한 신앙(기복신앙)과 왜곡된 영성(위선적 영성, 반지성적 영성, 역사 도피적 영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고, 이로 인해 기독교 복음의 대 사회적 영향력의 축소와 신자 개개인의 ‘신앙과 생활 현장 사이의 불일치’ 현상이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문제는 주일예배자의 수는 많지만 월요일 신자는 적고(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결여), 신앙의 수직적 차원의 강조와 함께 상대적으로 수평적 차원의 관계들을 소홀히 함으로 인한 ‘회중성’의 부재(공동체 의식의 결여), 그리고 개인적 무속적 신앙행태(역사의식의 결여)로 말미암아 이웃과 사회를 향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외면하는 일종의 종파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위험스런 비난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존 콜만(John Colman)은 오늘의 기독교교육위기를 ‘제자직(discipleship)과 시민직(citizenship) 사이의 분리’로 이해했다.

1. 교육 목회를 어렵게 하는 중심 용어들

(1) ‘목사’라는 직명과 리더십의 정체성 문제

   김득렬 박사는 최근의 그의 저서「은총의 교역-목사 : 목자와 교사」(2001, 한국장로교출판사)에서 “직명은 그가 지닌 자신의 정체성의 중요한 내용으로 작용한다.”고 전제하고 에베소서 4:12의 내용 중 개역성경(1964년판)에서 목사(牧師)의 명칭을 지니는 이와 공동번역(1977년도판)에서처럼 목자(牧者)의 명칭을 지니고 목회하는 이와의 사이에 현격한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즉 목자는 목양적 문화에 따라 양무리 앞에 서서 양들을 인도하는 수평적 관계로 향하는 반면, ‘목사’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목회하는 이는 스승 사(師)의 문화에 따라 가르침 받는 이들의 위에 서서 수직적 관계로 권위적인 목회를 하기 쉬울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pp.11-25)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목사’라는 직명에 사용된 스승 ‘사’(師)자에 악센트를 부여하다보니, 그것은 ‘목사와 성도’ 간의 관계를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적인 동양의 전통적 권위체제의 틀 안에서, ‘하나님의 사자’라는 신학적 해석까지 첨가된 권위주의적 위상이 ‘목자와 양’의 관계로 묘사되는 코이노니아를 토대로 한 유기체(그리스도의 몸)적 교회 이해를 체득하는데 저해 요소로 작용하여 왔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요13:13-15) 제자들에게 ‘선생’(師)의 참 뜻을 ‘발을 씻기는 극적인 방법으로’ 본을 보이시면서 목회의 리더십과 관련하여 ‘목자적 교역’(요10:1-15)의 소명을 일깨워 주었다.

(2) 전통적인 ‘목회’ 개념의 문제

  전통적인 목회 패러다임이 교육목회의 기본 틀의 자리매김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즉 교육목회란 종래의 목회구조 속에서 가르침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편협한 사고가 통전적인 교육목회의 운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예컨대 교회학교에서 부서별로 성경을 가르치는 디다케(didache)에 초점을 두고 교실수업개선(교사훈련, 교재개발, 교수방법 및 교실환경 개선 등)에 특별한 교육적 관심을 두는 것을 자랑하면서 그것을 교육목회와 동일시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교육목회의 갱신은 교역(ministry)의 패러다임의 성경적 인식전환으로부터 착수되어야 한다. 그것은 목회자들의 ‘목자적 정체성’ 확립과 팀(team)사역의 제자리를 찾기 전에는 균형 있는 교육목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3) 편협된 ‘신앙’ 이해 문제

  신앙(faith)은 교육목회의 중심 개념이다. 교육목회의 모든 노력은 신앙의 성장과 성숙에 두고 있다. 그런데 신앙이라는 현상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강조하므로 인해 신앙 인격형성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최근의 기독교교육이론에서 신앙의 개념 속에 함축되어 있는 내용이 단일 표면의 평면적이기보다는 몇 가지 측면으로 형성된 입방체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공통점이 있다.

 

 예컨대 토마스 그룸의 경우 ①지적인 신념으로서의 믿음(faith as believing), ②신뢰적인 믿음(faith as trusting), ③행위로서의 믿음(faith as believing)등 세 가지 측면으로 신앙을 정의했고(1980), 리처드 R 오스머는 신앙개념을 ①지적으로 믿는 믿음(faith as belief), ②관계로 된 믿음(faith as relationship), ③헌신하는 믿음(faith as commitment), 그리고 ④신비로움에 대한 믿음(faith as mystery) 등의 4면 입방체 모양으로 설명했다.(1992) 이같이 신앙을 인간의 총체적 응답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신앙의 균형 있는 이해를 위해 신앙이 지닌 요소들과 관련해서 마리아 해리스는 예배(leiturgia), 말씀의 선포(kerygma), 가르침(didache), 교제(koinonia), 섬김(diakonia) 등으로 구분하고 있고, 제임스 파울러는 논리(logic), 도덕적 추론(moral reasoning), 관점채택(perspective taking), 권위의 출처(locus of authority), 사회인식의 테두리(boundary of social awareness), 세계관(world coherence), 상징적 기능(symbolic function)등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엘리스 넬슨은 문화전달 과정의 사회와 이론에 기초해서 신앙 교육을 일종의 ‘형성과정’으로 설명했다. 즉 세계관과 관련되는 지각체계(perceptive system)가 형성되고, 가치체계(value system)에 따른 양심을 형성하고, 그리고 사회집단 속의 인간관계로부터 자아-정체감(self-identification)을 형성한다. 이같이 오늘날 많은 기독교교육 학자들은 신앙교육의 평생에 걸친 성장(성숙)에 관심을 갖고 신앙 교육을 단편적이질 않고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노력이 되도록 도와준다.

 

예컨대, 존 웨스터호프의 신앙 유형(경험적인 신앙, 지속적인 신앙, 탐구적 신앙, 고백적인 신앙 등)이라든가 제임스 파울러의 신앙 발달의 여섯 단계 이론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들에 의하면, 신앙은 전인적인 응답이며 이는 평생에 거쳐 질적 성장을 거듭하는 역동적 현상이기에 명사적 개념(faith)이라기보다는 신앙을 동사적 표현(faithing)의 성격으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한다.교육목회의 중심 개념인 ‘신앙’에 대해 일평생 성장(성숙)에 따른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이해를 갖지 못하고 단편적인 신앙교육을 한다는 것은 교육목회의 기초에서부터 흔들릴 위험성을 지니게 된다.


2. 교육구조의 문제

  교육을 일종의 ‘구조형성의 과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오늘의 교육목회의 정체위기는 현존하는 교회의 교육구조에서 문제를 찾게 된다. 현행 한국교회의 기독교교육의 구조는 목회(성인중심의 교역형태)와 교육(미성년층 중심의 주일교회학교 수업형태)의 이분화 체제 운영으로 인해 교회교육을 주일 교회학교와 동일시해서 기독교교육의 범위(교육구조)를 지나치게 축소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 목회의 분리현상의 치명적 위기는 양쪽 다 공동체성(회중성)을 상실할 위험에 놓이게 한다. 목회구조와 달리 학교식 교실수업 형태로 탈바꿈한 교육체제는 “교회학교”라는 이름의 조직 내지 기구의 운영은 가능하나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공동체(회중성)가 없기 때문이다.  성인을 위한 목회자의 목회적 돌봄은 예배설교와 심방, 그리고 교회행정에 분주한 나머지 신자 개개인의 책임 있는 제자육성을 돕는 교육사역에 전문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2000년 교회역사에서 주일학교가 교회의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불과 200여년 밖에 안 된다. 주일학교 설립 이전에도 교회는 신앙공동체의 존재 양식으로 교육이 있어 왔다. 샤비키(M.Sawicki)에 의하면, 원시교회 당시 기독교교육은 말씀의 선포(Kerygma), 가르침(didache), 치유와 교제(koinonia), 예배와 성례전(leiturgia), 그리고 섬김과 봉사(diakonia)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같이 기독교교육은 본래 신앙 공동체 생활의 전 영역을 통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경우, 1세기전 교회의 주일학교 초기에는 전 교인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로 성인들의 성경공부는 목회구조(교역형태)속으로 자리했고, 주일학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구조(학교체제)로 분리해서 운영해오면서 차츰 교회에 속한 한 부속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웨스터호프의 비판처럼 “학교”라는 세속기관의 교육체제가 교회 내 기독교교육을 감금함으로 인해 주일교회학교는 신앙공동체가 지닌 교육의 힘(역동적이고 형성적인 힘)을 잃어 버렸다.

 

거기에다 교회학교 현실은 현대와 같은 교육경쟁시대에 교육투자에 인색하여 복음을 담아야 할 부대가 새 것이 아닌 낡은 것 그대로 구태의연하게 비전문적으로 운영해 옴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현실적 매력을 잃게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 교회학교는 양과 질에 있어 크게 감퇴현상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학교식의 교육구조 하에 운영되고 있는 오늘의 주일 교회학교의 문제는 (1)훈련받은 전문 교육지도자가 없는 학교식 운영 체제, (2)복음적인 열정과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결여 된 교사의 봉사, (3)다중매체(multimedia)의 새 바람에 끌려가는 신세대에게 상대적으로 매력과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기존 프로그램과 교육기자재, (4)교회학교와 지원체제(교회와 가정 그리고 기독교 학교)간의 협력관계의 단절현상 등이 교회학교의 감소율에 크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사의 자질, 교재(학습자료), 교육환경(시설, 장소, 시간 등), 교육행정 등 전반적인 교육여건이 제대로 뒷받침이 되지 않고 있으면서 계속 학교식 교육체제에 의존해서 유지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이 주일교회학교가 기초한 학교식 수업구조는 오늘의 기독교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분리’(신앙과 생활, 제자직과 시민직의 분리)문제를 극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장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웨스터호프는 학교식 교육구조 안에서 “수업” 이라는 교수형태로 진행될 때 기독교 교육자들의 관심은 교수 - 학습 진행, 교재 등에만 묶어놓게 되어 결과적으로 교회교육의 여러 가능성으로부터 분리되는 결과를 낳게 한다고 비판하면서, 학교식 - 교수형태(schooling -  instructional paradigm)를 모방한 교회학교중심의 교회교육은 종교교수(teaching religion)와 신앙교육(educating in faith)사이의 차이를 동일시 해 왔음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요약컨대, 교회의 학교식 교육구조는 전인적 신앙교육이 어렵고, 더욱이 21세기 기독교교육이 직면할 현대성의 도전(분리문제)에 대응하기에는 부적절한 교육구조라는 점이다.


3. 교육 내용의 문제

  교회교육의 구조에 있어 목회와 교육의 이분화 체제는 교회 구성원들을 위한 교육내용의 지속성, 연계성, 그리고 통합성에 기초한 교육과정 운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속하지 않는 삶의 영역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모든 인종과 문화를 포괄하는 전 세계 역사를 향해서 창조세계의 모든 영역에 책임 있는 청지기가 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이를 요약 정리하면, 내용 범위란 기독교 복음이 관련을 맺는 경험의 모든 차원, 즉 신적, 인간적, 자연적, 역사적 차원이라는 구조를 지닌다. 교회교육의 내용 범위는 “복음의 빛 안에서 인간이 갖는 관계의 전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 범위가 개인(자의식), 개인이 속한 공동체(공동체), 그리고 사회와 세계(역사)를 통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등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의도적 행위(교육)의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할 내용의 영역은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차원의 물음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1) 교회는 어떻게 회중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됨의 의미를 자각케 하고,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계속 영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도록 도울 것인가? 이 질문은 개인의 ‘자의식 개발’의 영역이다.

  2) 교회는 어떻게 회중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됨을 자각케 하고, 공동운명체로서의 공감대 형성과 지탱 그리고 발전함에 있어 개인에게 주어진 은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계속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을 도울 것인가? 이 질문은 신자의 ‘공동체 의식’ 개발 영역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3) 교회는 어떻게 회중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상생활의 현실 속에서 삶을 통한 역사 창조의 사역에 부름 받고 있다는 소명의 자각과 함께 책임적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울 것인가? 이 질문은 신자의 ‘역사의식’과 현실참여의 능력개발과 관련된다.

  위의 질문에 관련된 내용범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경험을 토대로 설정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교육에서 교육과정의 내용범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역화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경험한 신앙 표현의 영역 전체를 구조화한다. 따라서 신앙 경험을 토대로 설정하는 교회교육의 내용 범위 속에는 구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하고 있고, 하나님의 인간의 모든 삶의 경험을 주관하시고 모든 관계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개념이 기초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교회교육의 내용 범위는 교실 안의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이루어지는 수업(instruction)을 통해서 얻어지는 학습경험만이 아니라 교회생활의 전 과정에서 얻어지는 신앙 경험을 토대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생활이란 곧 신앙생활로 이해된다. ‘예배와 예전’의 참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과 참여자간의 새로운 만남(신앙의 정체성)과 대망(연대성)의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 ‘말씀의 선포’와 전도에의 참여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회개와 함께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분별하게 된다. ‘가르침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고 성숙에 이르게 될 것이다. ‘교제와 친교’에의 참여를 통해 공동체를 경험할 것이고, ‘섬김과 봉사활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예배와 예전(leiturgia), 가르침과 훈련(didache), 말씀선포와 전도(Kerygma), 교제와 친교(koinonia), 섬김과 봉사(diakonia) 등 교회생활 속에서 표현되는 다섯 가지 영역을 내용구조로 삼고 교육목회적 관점에서 각 영역별 신앙 경험 활동을 구조화해서 교육과정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총회교육부에서 최근 개발한 「하나님의 나라 : 부르심과 응답」 교육과정 지침서 I, II권은 교육목회의 내용 범위 설정에 크게 도움을 준다 . 그러나 신앙경험의 영역별 교육과정 지침에 따른 프로그램과 자료개발의 지원이 후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교육목회의 실제 운영이 현재 어려움을 주고 있다.


4. 교육의 장(Context) 문제

  21세기 교육목회는 지금까지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오고 있는 교육의 장인 교회학교를 포함해서 가정, 학교, 사회, 멀티미디어와의 보다 긴밀한 유기적 관계 안에서 각기 교육의 장이 지닌 역동적이고 형성적 힘(formative power)을 구조화해서 보다 적극적인 대화의 관계를 유지하는 교육의 장으로 확장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목회 문제는 교육의 장에 있어서 교회와 교회학교, 교회와 가정, 교회와 학교, 그리고 교회학교와 사이버 공간간의 관계의 네트워크 체제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는데서 통합적인 교육체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 평신도 사역의 중심 센터가 되고 있는 가정사역의 활성화를 위해 교회는 성인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가정사역을 위한 전문 부서를 두고 전담 교역자를 두어서 가정과 함께 하는 교육목회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제공해야 한다. 한 가정, 한 가정이 모여 소규모의 작은 교회(cell church)로 세워질 때, 교회의 목회활동들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가정이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교회가 확대된 하나의 큰 가정으로서 신앙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도록 교육목회 차원에서 상호간의 협력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가정이 작은 교회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공동사역자로서의 신적 소명과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는 성인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개교회가 제공할 수 있는 가정과 함께 하는 성인교육 프로그램은 행복한 부부관계, 유능한 부모 역할, 건강한 자녀 양육 등을 지원할 수 있는 워크숍 중심의 교육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2) 21세기 교육목회는 교회와 학교간의 상호협력 체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오늘의 교회가 학생들에게 하나님 중심 세계관 형성을 위해서는 교회학교만의 기독교교육이 불충분함을 인식한다면 21세기 한국교회는 교회와 학교간의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기독교 학교의 모체였다. 고대 이스라엘의 학교교육은 회당에서 출발했고, 중세 대학의 시작도 교회에서 비롯되었다. 오늘의 파리 대학의 모체는 중세 노틀담 사원이다. 미국 학교교육 제도의 전신은 교회 주일학교이다. 근세기 미국의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명문 대학들이 모두 청교도 신앙을 미국 대륙에 심으려고 하던 개신교회들의 의지에 의해 세워졌다.

 

 한국의 기독교 학교의 시작도 마찬가지이다. 초기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학교(mission school)가 그러했고, 해방 이후에도 교회는 설립자와 후원자로서 기독교 학교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기독교학교를 철저히 옹호하고 지원했다. 지난 1969년 문교부의 평준화 정책이 실시된 이후 기독교 학교의 건학이념에 기초한 교육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 당시 교파를 초월해서 교회가 연합해서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와 같이 교회와 기독교 학교간의 상호 협력관계가 다가올 21세기의 역사적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그리고 에큐메니칼 차원에서 학원목회를 위한 상설기구의 설립과 활성화를 위해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3) 정보화 사회의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서 사이버 공간을 들 수 있다. 21세기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쳐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그리고 빠르게 취하여 이용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사이버 세계는 세계를 하나의 그물망으로 엮는 큰 힘을 가진 보이지 않는 장, 가상적인 장을 만든다. 그러므로 교육목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컴퓨터를 중심으로 이미 도래해 있는 멀티미디어를 통한 가상의 공간을 교육의 장으로 분명히 인식하면서,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안목을 가지고, 새롭게 도전해 오는 이 교육의 장을 기독교교육을 위한 건전한 교육의 장이 되도록 만들어 가는 전문성 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5. 교육의 지도자 문제

  지도자의 리더쉽 문제는 오늘의 한국교회 역시 심각한 위기로 진단된다.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권위체계는 올바른 리더쉽에 의해 유지된다. 그러나 오늘 권위자(지도자, 목사, 교사, 부모)들에게 직책과 힘은 있지만 더 이상 진정한 권위가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분위기가 심지어 교회내부에 까지 미쳐서 교회 안의 교회학교 교사는 물론 목회자의 권위까지도 무시되고 있다. 이렇게 권위가 붕괴되는 일차적 책임은 지도자들에게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위를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 위에 군림해서 탐욕과 교만에 이끌리어 자기 마음대로 남용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그 결과 인간관계의 질서가 오염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이제는  오히려 하나님의 권위질서체계까지 파괴하려는 반항의 시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21세기 교육목회의 과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자적 권위 질서를 회복시킬 책임이 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리더쉽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교회를 비롯해서 가정과 직장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질서에 “섬김으로 다스리고 복종함으로 섬기는” 리더쉽의 개발이 요구된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제사장”이라는 성경의 명제(벧전 2:9-10)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 내에 꾸준히 주장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분화된 목회구조는 좀처럼 변화를 보이려하지 않고 있다. 성직자 중심의 리더쉽이 제도화된 에클레시아의 교회 구조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하나님이 대사를 읽어주시고 목사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평신도들은 관중석에서 구경하듯” 지극히 수동적인 자세에 빠지게 함으로써 평신도가 지닌 잠재력(자원)이 오늘의 교육목회 현장에서 거의 동결된 자본으로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은준관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오늘의 한국교회의 위기적 징후와 관련해서 한국의 종교사회학자들이 발표한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교직주의(clericalism), 교권주의, 개교회주의, 역사도피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한국교회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 은폐되고 있음을 비판했다.(「신학적 교회론」pp. 34-39)

  러셀(L.M.Russell)의 지적처럼 교역(ministry)이해 자체에 아직도 문제가 있음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섬김을 삶의 방식으로 하는 그리스도인의 존재양식으로 볼 때 평신도 역시 이미 섬김의 사역 곧 교역에 종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교역은 성직자의 지위와 동일시되어 너무나 자주 목사(pastor)들만의 영역으로 이해되어왔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전체의 일인 섬김과 교역의 본질적인 연결성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평신도의 참여를 외면하는 목회자 중심의 교역기능은 “교회라는 이름의 조직 내지 기구의 운영일 수는 있으나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공동체가 없기 때문이다.”

  로버트 월리(Robert Worley)는 교회교육을 정의하기를 어떤 특정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전체 회중의 표현”으로 규정짓고 있다. 교육신학의 관점에서 정의 할 때,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을 훈련하기 위해 교회의 창시자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계획된 인간 교육의 통로이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력 개발을 위한 기독교교육의 기초는 교회이해의 본질과 기능의 양 측면에서 정리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laos)이라는 교회이해의 본질적인 측면에 볼 때 지도력개발의 중심과제는 무엇보다 먼저 평신도의 참여를 통한 “회중성”(congregation)의 회복이다. 여기 회중성이란 평신도 개개인의 관계형성만이 아니고, 교회의 집단화를 의미하는 내용도 아니다. 교회의 구성원 모두의 참여 속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의 현존을 함께 경험하면서 각자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사와 직임 수행을 통해 함께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공동체성을 의미한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 “무대 위에는 신도들이 연기하고 목사는 대사를 읽어주면서 감독하고 하나님께서 감상하시는” 곧 회중 중심의 참여 공동체로 돌아서야 한다.

  다음으로 교회의 기능(선교)측면에서 볼 때 21세기에는 평신도 교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들을 위한 리더쉽 훈련이 크게 요청되고 있다. 다가올 21세기는 세속주의의 강한 도전을 예견할 때, 세상 속에서 평신도의 위치와 역할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될 것이다. 이에 따른  교육목회의 과제는 만인 제사장론에 근거한 교역의 의미 확대와 이에 따른 불가피한 지도력의 변화(수직적 차원에서 수평적 구조로의 리더쉽의 변화)에 따른 팀(team)사역의 비전을 과감히 수용해서 삶의 현장(가정, 직장, 사회)에서 책임 있는 응답을 할 수 있는 평신도의 지도력을 개발해야 한다.

  교회의 리더십 개발과 지원에 관련해서, 프린스턴 신학교의 오스머(R.R.Osmer)교수는 칼빈의 개혁신학전통의 중심에 자리한 “교수직”(teaching office)의 회복을 오늘의 교육목회의 중심과제로 제안하고 있다(박봉수 역, 「교육목회의 회복」 pp. 165 - 242) 그는 교회의 교수직의 회복을 위해 (1)학문적 탐구와 성직자 양성을 담당하는 신학자들과 신학교들, (2)교단을 대표하는 교육담당 전문기관(예컨대 총회교육부)과 교육지도자들, 그리고 (3)개 교회내 평신도 교육에 참여하는 회중, 등 세 가지 형태의 권위의 중심체들이 함께 참여해서 (1)교회의 규범적 신조들(beliefs)과 실천방향을 결정하고, (2)변화하는 문화적, 역사적 컨텍스트 안에서 교회의 신조들과 실천과정을 재해석하고, (3)교회의 신조들과 실천이 가르쳐질 교육제도와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유지하는 일에 상호협력의 밀접한 네트워크 형성을 제안하고 있다.


맺는말

  미래학자에 의하면 19세기는 ‘자유’를 추구하는 세기였고 20세기가 ‘평등’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공동체’(사랑)를 추구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공동체 형성은 21세기 사회의 중심 주제요, 기독교교육 역시 중심 과제로 떠오른다. 때에 맞추어 총회 교육부는 금년에 교육 공동체로서의 교회 인식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근간으로 한 교육목회를 위한 새 교육과정 「하나님의 나라 : 부르심과 응답」을 개발했다. 예배와 예전, 말씀의 선포와 전도를 통한 “부름 받은 공동체”, 가르침과 훈련, 교제와 친교를 통한 “세움 받는 공동체”, 그리고 섬김과 봉사를 통한 “보냄을 받는 공동체” 구현을 위해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의 교육사역으로 구조화한 새 교육과정이 개교회의 교육의 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 : 부르심과 응답」교육과정의 영역별 지침서(II)에 제시되고 있는 교회력에 다른 주일과 주간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각종 자료들이 개발되어 지속성, 연계성, 통합성을 유지하면서 단계적으로 영역별로 균형 있게 개교회에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ikorea동엽의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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