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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가오는 세기의 청소년 이해와 목회

김노섭-열린문 2007. 6. 14. 12:47
다가오는 世紀의 靑少年 理解와 牧會





김 철 한 목사(오목천교회)




[1] 알 수 없는 靑少年
부모들은 십대의 자녀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말을 한다. "십대의 청소년기는 힘든 시절임에 틀림없어. 십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도 알지" 과연 이런 부모들의 얘기는 맞는 것일까? 사랑을 쏟고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청소년의 세계를 다 아는 것 같아도 사실은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나의 경험을 통해서 십대란 알 수 없는 청소년이라고 먼저 말하고 싶다. 나의 가정의 자녀는 큰 아이가 18살이고 작은아이가 16살이다. 두 녀석이 그런대로 성실하게 학교생활과 교회 생활도 잘 하고 있는 편인데 문제는 아이들의 변화무쌍한 생각을 예측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큰아이는 삶의 방향을 못 잡고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다는 느긋함으로 삶을 달관한 듯 여유롭게 살고 반면 작은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아서 목표를 정하고 생활하는 데 그 목표가 변화하는 데 있다. 요사이에 이르러서는 과학자도 싫고 목회자도 싫고 음악을 전공한 작곡가가 되는 것이 사명이라고 하며 악기를 만지고 오선지에 곡을 써서 음악인이 된 것처럼 열병을 앓고 있는데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삶의 여러 가지 길에 대해 얘기하고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을 암시했더니 부모에게 실망한 듯 밥도 잘 안 먹고 침묵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 대화의 물꼬를 터 보려고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요인들을 알 수 없고 나의 자녀의 내면 속에 꿈틀거리는 삶의 동기를 파악 할 수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다. 청소년기를 보낸 부모들로서 청소년을 바라보지만 우리들이 자라난 세대와 우리자녀들의 세대와는 분명 환경과 시간의 벽이 만들어낸 갭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세대는 안 된다고 부모가 말씀하시면 "알았어요!"하고 대답하는 세대였는데 지금의 십대는 글자그대로 "그것도 못해 주세요?"하는 세대들이다.

우리의 세대와 지금의 세대가 다르다는 점(Generation gab)에서 예측을 할 수 없는 점이 알 수 없는 청소년이라는 이유이다. 부모만이 아니고 가르치는 책임을 지닌 교회와 교사는 좀더 정확히 복잡한 청소년들을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2] 청소년(십대)기의 발달이해
1.구 분
청소년 시기는 청년기를 3시기로 나눌 때 청년 전기와 중기에 해당되는 12세에서 18세까지의 학생들을 뜻한다. G.스텐리 홀이 그의 저서 "청소년"(1904년)을 출판한 이후 가르치는 자들은 이 연령층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대개가 중 고등부 학생연령층으로 학교라는 환경에 둘러 쌓여 있고 이시기의 학생들을 십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대로 이 시기는 자아 확립에 몸부림치고 있는 연령층이다.

2.특 징
청소년기의 특징을 간단히 알아보자
1)청년전기-중등부
(1)신체적 발달- 성적 호기심의 증가
용모에 관심(실망과 좌절)
(2)사회적 발달- 또래 집단의 규칙이 행동의 준거
부모와 자녀간의 의견 불일치가 극심하나 아직 부모의 가치관과 가정의 규범이 옳다고 생각
집단 속에서의 소속감과 일체감을 매우 추구함
(같은 옷차림, 같은 신발, 같은 말씨 등)
(3)정서적 발달-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기분에 의해 좌우된다.
반항이 시작되고 어른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정체감의 추구와 독립하려는 노력에서 불안감과 혼란 감을 경험
(4)종교적 발달-자기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소망을 만족 시켜주는 종교
자기가 불완전함을 깨달으며 구세주가 필요함을 느낀다.
종교적 의심, 옳고 그름의 혼돈을 지닌 채 이상을 추구한다.
친구 따라 움직이는 종교성
(5)지적 발달- 형식적 사고 능력은 점차 증가하나 언제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님
정치 사회 경제적인 문제는 현실감이 없는 추상적인 문제

2)청년 중기(고등부)
(1)신체적 발달-여학생은 완숙 단계, 남학생도 대부분이 완숙
성적 호기심이 최고(특히 남학생)
신체적 능력이 왕성하여 자신감에 사로잡힘)
(2)사회적 발달-동료간의 우정이 더욱 굳어짐
반드시 소속되기를 원한다.
이성에 매력을 느낀다.
어른 대접을 받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3)정서적 발달-안정감을 필요로 하며 스포츠 오락에 빠진다.
감정 조절 능력을 갖는다.
정서의 표현은 강렬하고 극단적이기 쉽다.
인생의 진로가 가장 중요한 문제
(4)종교적 발달-자기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며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신앙
믿는 것과 행동하는 신앙(개인적이면서 감정에 근거하는 행동)
신앙적 의심과 오해, 신학적 질문을 꺼낸다.
종교적 회심이 가능한 시기로 아주 중요한 때이다.
(5)지적 발달- 형식적 사고가 가능하며 지적 수준은 성인의 경지
개인적 가치관과 인생관을 수립(현실과의 거리가 있음)

여기서 특기 할 것은 청소년기의 시절은 폭풍과 같은 변화가 있는 때이며 폭풍과 같은 삶의 변화하는 환경들 속에서 있어야 하는 시기이다. 다음 항에서 청소년들의 삶의 환경을 알아보겠지만 외적 변화의 파도와 내적 변화의 파도를 어떻게 잘 대면하느냐가 아주 중요 한 때이다.
파도를 탈줄 모르면 파도는 무섭지만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파도를 이용하여 더 놀라운 삶의 풍요를 누리게 된다.
따라서 이 나이의 또래의 발달 과제는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성숙하는 것이다. 이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청소년기의 자녀들이 이런 폭풍우 속에 서 있기에 장년의 세대는 학생들의 소리에 귀를 기 울이는 일이 우선의 일이다.

3.새로운 귀로 듣고
로날드 허치크레프트(Ronald,P.Huchcraft)는 메트로폴리탄 Y.F.C총무로서 『십대가 된다는 의미』의 글을 썼는데 오늘의 십대의 행동 속에는 세 가지 울부짖음이 들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달려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하는데 그들의 행동을 눈여겨보면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청소년들의 소리를 듣는 새로운 귀가 필요하다.
첫 번째 개인의 가치에 관한 울부짖음이다.
부모는 십대의 자녀들에게 보다 더 잘하라고 몰아 부친다. 그래서 십대는 자신이 부모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 시켜주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 고등학교 과정은 사랑이 메마르고 매우 비판적이고 냉냉하다.
십대들은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것을 경험하는 반면 긍정적인 경험을 적게 한다. 그래서 십대들은 자신에게 개인적인 가치를 부여 해 달라고 울부짖는다.
둘째로 개인적인 친밀감을 요구하는 울부짖음이 있다.
바쁜 가정 생활로 인해 십대들은 친밀하지 못한 관계를 경험하고 자라난다. 다른 사람과 친밀해지기 어렵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친밀감을 느끼게 해준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게 하는 욕구를 만들어 준다. 이단에 쉽게 빠지고 몇 시간이고 전화에 붙들려 있는 것은 친밀감을 위한 부르짖음이다.
셋째로 개인의 의미를 요구하는 울부짖음이 있다.
십대들이 개인적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위대한 철학적, 아니면 신학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오늘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 울부짖음은 "내가 일어나 활동하는 오늘은 무슨 가치가 있는가?"라는 부르짖음이다.
십대들에게는 부모들이 이른바 아무 것도 없는 산에 오르는 것을 봄으로서 비롯된 좌절이 있다. 부모들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고 좋은 차를 타고 평균 1-2명의 자녀를 갖는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을 쫓아가는 부모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십대들은 이런 것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지 못한다. 그들 스스로 아무 것도 없는 무의미를 발견 할 때 삶의 목표와 의미는 "좋은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획도 없고 삶 속에 있는 불쾌한 감정을 피 해 보려고 어떤 일이든지 하려든다. 자살이라는 방법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십대는 개인의 의미를 요구하며 울부짖는다.
이 소리를 듣는 귀를 가지고 청소년들을 바라보자.


[3] 청소년 바라보기
1.긍정적으로
청소년은 청년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다. 글자 그대로 이중 맨이다. 회색지대 같은 자리에 처하여 있다. 유년기에서 성인기에 이르는 시간이 길어 졌기 때문에 사실은 기성세대가 청소년기라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시기가 기성세대들에게 걱정이 되는 것은 성장의 급격함에서 오는 복합성 때문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그 과정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길게 느껴지고 말 할 수 없는 공포에 싸인 과정이기도 하다. 사춘기에 당도하면 신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벌써 오래 전에 피차 잘 타협을 보았다고 생각하던 부모와 자녀 사이의 문제들이 돌연히 다시 대두된다. 모든 것이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순탄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청소년들의 행동은 장년들과 갈등을 만든다.
청소년을 바로 바라보기 위해 다음의 일이 필요하다.

1)호칭을 똑바로
청소년기의 학생들을 십대라 부르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러나 X세대라고 부르는 것은 청소년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미가 강한 듯하다. X세대란 글자 그대로 세대의 갭, 청소년 들의 행동,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옷 차림, 이상한 헤어스타일에 대한 장년 세대의 반발이 담겨 있는 데서 부쳐지는 청소년 호칭이기에 X세대란 말을 사용하는 것부터가 잘못인 듯하다. 청소년들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X세대란 말 대신에 십대세대 또는 배우는 세대, 더 나 아가 신세대라고 불러야 한다. 물론 신세대란 말은 학문적으로 정의된 용어가 아니라 기성 세대와 구별해서 부르는 말에 불과하다. 신세대란 구세대와는 달리 풍요 속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누릴 수 있었던 이들이다. 헨리 나웬(H,Nawen)은 『상처입은 치유자』 란 책에서 내일의 남녀의 세대를 3가지로 말한다. 내향적 세대, 발작적 세대, 그리고 또 하나가 아버지 없는 세대이다. 아버지 없는 세대란 장년 세계의 지도자가 내리는 명령이나 기대나 불만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음을 뜻하고 그 대신 그들의 동료가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이라고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민감성을 나타냄을 뜻한다. 이런 아버지 없는 세대들에게 장년 스스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여 X세대라고 호칭하여 장년의 권위마저 포기하고 마는 것은 부모의 권리의 포기이다. 부모에게 무관심하고 무심하고, 더 나아가 권위를 인정치 않고 자신의 집단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대라 할지라도 이 세대를 만든 것은 장년의 세대이므로 저들을 부르는 호칭을 배우는 세대라고 해야 될 것이다. 그것은 장년세대가 청소년 세대를 따뜻한 마음으로 본다는, 부모의 세대가 책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암시인 것이다.

2)눈 높이를 맞추며
청소년들과 부모세대와의 차이는 서로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삶의 스타일이 다른 것 때문에 틀렸다고 선언하고 외면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부모의 세대가 컴퓨터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 였다면 청소년 세대는 컴퓨터와 함께 자라난 세대다. 이 한가지 사실만 하더라도 삶의 놀이 공간과 체험이 다르기에 공감 할 수 있는 영역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의 세대는 경제 발전과 함께 자동차를 소유하기 시작했지만 청소년 세대들에게 자동차소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대 소유의 개념이 된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전체 자동차 중 30대 이하가 보유한 승용차가 전체의 55,9%이며 이와 함께 10대가 소유한 승용차가 0,6%로 30대 이하의 젊은 층이 소유한 승용차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5%을 차지하고 있다. 삶의 스타일이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교회에 모자를 쓰고 예배 보는 것, 삐삐소리를 울려대며 예배보는 것 등 등이 거슬리는 문제가 된다 할지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저들의 삶의 눈 높이을 맞추려고 해야 한다.
신세대의 삶의 스타일은 기성세대와 다른 차별성일 뿐 잘못되거나 그 자체가 타락한 것이 아니다. 눈 높이를 맟 추려는 이해가 있어야 말이 통한다. 방안에서 공부하면서 워크맨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것도 공부하는 것인가 생각되지만 그 아이가 듣는 C.C.M테이프를 긍정하면서 눈 높이를 맞추려 하면 말이 통하고 삶의 이야기를 깊게 나 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3)무거운 짐을 어떻게
십대의 세대는 독특한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십대의 세대를 둘러싸고 있는 것 들인데 피할 수 없는 짊어질 짐이다.
그것은 첫째로 매스미디어의 홍수 한복판에 서있는 일이다.
둘째로 도덕적 선택이 어린 나이에 요구되고 있다. 성의 문제는 십대의 나이에 결정 할 수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십대 세대는 성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셋째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 아래 살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으로 인한 몰살의 위험, 규범이 상실된 윤리 부재의 사회, 가정 구조의 변화, 불완전한 가정의 삶의 방식 등이다.
이 문제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십대의 세대들을 지탱하고 인도해야 할 책임이 십대를 양육하는 부모세대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무거운 짐을 능히 질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저들을 향한 애정과 관심은 계속 되야 한다.

2. 청소년의 삶의 환경들
현대는 변화의 시기이다. 앨빈 토플러(A.Toffler)나 하워드 스나이더(H.Snyder)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글자 그대로, 과거 수 백년에 일어났던 변화가 오늘엔 하루마다 급속히 일어나며 그것도 심각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동감 할 것이다. 그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적어도 지금부터 수년 사이에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이후 지금까지의 변화보다도 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농경사회는 3000년이지만 역사 변천에 미친 영향은 300년의 산업 사 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며 산업 사회는 300년이지만 후기 산업사회 혹은 탈 공업 사회의 30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가속화의 세계 안에서 미래의 청소년들이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 구조를 삶의 환경측면에서 살펴보자.

1)가정구조의 변화
한국의 가정은 부자중심의 가족에서 부부중심의 가족으로 변천되었다. 부자중심이란 가문과 혈통을 중시 여기는 가치관을 의미하며 부부중심이란 가문과 혈통에 가치를 두기 보다 부부의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가치를 두는 생활을 의미한다. 이 변천의 와중에서 자녀들에게 나타난 문제는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인한 소외 현상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핵가족 제도로의 변천이다. 대 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변천이 꼭 문제를 양산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소수의 가족 성원으로 인한 대화의 부족, 훈육의 결여, 관계의 단절이 나타나게 된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따른 가정구조의 해체는 규범의 전환을 가져 왔으며 아노미 상태 속에 있다. 책임을 지닌 부모들은 어떠한가? 십대들을 향한 사랑이 식었거나 모성애 본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부모의 역할을 직장으로 인해 빼앗기고 있다는 점이 다. 재택 근무가 가능한 21세기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분적인 것이며 부모들은 계속 가정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을 허용과 방임으로 다루 려 하고 자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보상으로 물질적인 것을 의존하려 한다.
부모들은 사회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들 스스로 십대처럼 행동하려 한다. 피임과 화장술 그리고 의학의 발전으로 십 대의 모습을 유지하려 하고 그것은 곧 이혼과 연애를 두려워하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가정의 해체는 더 가속화 될 것이며 이런 변화는 이 상 청소년뿐만 아니라 차갑고 이기적인 청소년을 양산하게 된다.

2)학교구조의 병폐
교육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세계가 기능인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교교육은 그 목적과 달리 지식과 기능을 지닌 사람 양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람되기 교육보다 기계인간을 만들어내기에 전력을 하는 것이다. 덕성보다는 지식을, 창조력보다는 수학공식을 주입하는데 급급하므로 학교 스스로 죽어가고 있고 학생들 역시 기계 인간이 되든지 스스로 부 적응 학생이 되든지의 갈림길에 선다. 청소년기의 중요한 때를 학교 교실에서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은 건강한 자아를 확립하는 일이 얼마나 먼 이상인가를 잘 보여준다.
학교 교육을 죽었다고 선언하고 새로운 대안 학교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학교 교육체제는 청소년에게 가장 밀접한 성장기의 환경일 수밖에 없다. 입시 경쟁 속에서 자라는 청 소년들은 '이기는 승자만이 사람답다'는 잘못된 가치관에 길들여지기 쉬운 것이다.

3)사회구조의 혼돈
(1)정 치
정치의 격변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빼앗기고 빼앗는 삶을 살았으나 과정보다는 결과만이 중요하다는 한탕주의 사고가 팽배하여 있다. 이는 정치 세대가 보여준 삶의 본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 사회 연구소의 의식 조사서가 중앙일보에 실렸는데(1981년) 연 줄과 배경이 있어야 출세하고(71%), 질서를 지키면 손해를 본다(33.3%)로 되어 있다 이런 탈 규범적 의식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도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2)경 제
황금 만능주의는 가치 혼돈의 주범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돌고 도는 이 세상의 흐름은 상업주의에 감염된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십대야말로 놀라운 구매력을 가진 세대이다. 따라서 십대를 위한 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생겼다.
종종 부모들이 무엇을 사게 만드는 것은 십대들이다. 십대가 있는 가정은 십대가 없는 가정 보다 더 많은 것을 산다. 십대는 가정의 구매력을 좌우한다. 미국은 1970년대에 십대의 구매력을 미화 210억불로 예측을 했는데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운 경제 시대라고는 하지만 십대들이 찾는 팬시점 그리고 아이들이 익숙한 상표가 부쳐진 신발 점, 더 나아가 십대들을 겨냥한 자전거(어른은 자전거를 살 때 아이들 의 자전거를 산다)대리점은 십대가 주요 고객이다. 제과점도 그렇고 의류, CD 및 테 이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사업가들은 십대가 요구하는 것에 특별히 호소하여 십대를 움직인다. 연예인들을 찾는 것도 십대들이고 농구장을 찾는 것도 십대들이다.
십대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사업가는 알고 있으므로 십대를 향한 광 고 전략에 돈을 부어대는 것이다. 결국 돈을 더 벌기 위한 상술이 십대의 주변을 날마 다 맴돌고 있는 셈이며 십대는 더욱 더 물질적이고 자극적이 되어 가는 것이다.

(3)문 화
신세대들은 탈 구조 속에 살기 때문에 기성 세대의 것을 거부하고 기성 세대에 종속되 기를 싫어한다. 탈문화의 공간에 사는 신세대는 기성 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면모를 가지 고 있다. 최근의 십대들은 20대와 차별적으로 대우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 은 자신들을 Y세대라고 칭한다.20대는 이미 구세대로서 자신들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십 대들은 헐렁한 힙합 스타일을 주로 입으며 "편해서 좋다"고 한다. 최근 신세대들은 스스 로를 Z세대라고 하므로 X세대라고 불리던 신세대와 구별지으려 한다. X세대이든 Y세대 이든 더 최근의 십대를 Z세대로 칭하든 이들은 배우는 세대의 청소년들임을 기억해야 한 다. 저들은 비록 탈 구조, 탈문화 공간에 사는 신세대라 할지라도 어른들이 만들어 놓는 매스미디어의 영향아래 있으며 저들의 사고 속에 가장 영향력을 깊게 주는 문화 요 인의 하나가 바로 T.V와 컴퓨터인 것이다. 상술과 영합한 매스컴은 청소년들의 요구와 바램에 편승하게 되고 매스컴의 영향아래 놓여진 청소년들은 더욱 조작된 대중 문화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십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로 언론계에 군림하고 있는데 대다수 의 신문들이 십대를 위한 지면을 만들고 있다. 라디오의 방송 광고나 T.V의 방송광고도 십대를 위한 프로그램과 함께 제작되고 있다. 상업주의적 매스컴의 경향으로 향락주의적 이며 폭력적 측면의 강조가 청소년의 새로운 환경으로 자리잡았으며 광고로 길들어진 청 소년들의 안목은 멋과 눈요기 튀는 모습과 외모에 가치를 둔다. 매스컴의 시각적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방송사에서 가령 청소년 비행을 예방하기 위해 '비행은 반드시 발각된 다'는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제작한 프로그램의도가 역작용을 일으켜 오히려 청소년들에 게 같은 비행 발생을 촉진시키는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상으로 가정 구조나, 학교 구조나, 사회 구조의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으로서의 문제를 살 펴 보았다. 분명한 것은 청소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유형 무형의 환경들이 상당히 부정적인 것을 경험케 하는 한편 긍정적인 경험은 드물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사회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한번의 부정적 비판에 대한 균형을 맞추려면 일곱 번의 긍정적인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정 반대로 오늘날의 십대의 환경은 한번의 긍정적인 말에 비해 일곱 배의 비판을 듣고 있는 환경에 놓여 있으니 가치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상의 삶의 환경들은 분명코 십대가 선택한 것 같으나 십대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역사가 만든, 더 나아가 부모의 세대가 대를 이어 오면서 만들어낸 문화적 삶의 자리에 신세대들을 내 버려 둔 우리들의 자리이다. 배우는 세대를 위한 책임이 아무래도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4] 종합- 청소년(신 세대)의 특징

1.신세대는 개인주의적이다.
Y.M.C.A연맹의 청소년 실태 조사 보고서,『한국의 젊은이 그들은 누구인가?』에 나타 난 청소년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항목별로 분 류 정리 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오늘날의 청소년이 옛날의 청소년과 다른 점
(1)이기적. 자기중심적 ,개인주의적이다.
(2)현실적이고 실질적이다.
(3)개방적이고 자유 분방하다.
(4)경로 사상이 희박하고 예의나 버릇이 없다.
(5)성적으로 조숙하다.
(6)자기주장이 확실하다.
(7)민족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8)순수성이 결여되어 있다.
(9)물질주의적이고 약삭빠르다.
(10)개성이 강하고 발랄하다.
(11)활발하고 명랑하다.
(12)비판력이 강하다.
(13)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다.

2)청소년들이 세상 물들었구나 생각 될 때 그 "세상 물"이란 어떤 것인가?
(1)자기 중심적 사고 방식
(2)계산적 사고 방식,실리적인 태도, 황금만능주의 사고
(3)세상을 쉽게 살려는 무사 안일주의
(4)지나치게 겉만 똑똑하고 영리하고 약삭빠른 것
(5)매스컴 영향으로 어른 흉내 내는 것

3)청소년들이 모여서 주로 하는 대화의 내용은 ?
(1)이성에 관한 것
(2)영화, 잡지, T.V이야기
(3)선생님 흉, 성인들의 비행에 관한 것
(4)용돈에 관한 것
(5)노는 이야기
(6)입시 이야기, 학교 수업 이야기
(7)주변의 사소한 일에 관한 것

이상의 자료에서 청소년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이기주의적인 모습이 진단된다. 이 말의 의미는 타인과의 관계 또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받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존재로서만 자신을 받아드리는 생각이나 행동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전체중의 일원임을 망각하고 공동체 속에서 독자성을 상실해 버린 모습으로 고집이나 자기 본위로 행동하며 결국은 극단적이며 독선적이다. 이것은 파괴를 일으키고 위험한 생명의 약탈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현상은 아동기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탈피하지 못한 채 사회화가 이뤄지려는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동은 기성세대의 영향이 크다는데 문제가 있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을 향하여 지적 한 바를 보면 "지나친 권위주의" "지나친 간섭"을 들고있는 것이다. 장종철 교수는 신세대의 개인주의에 대해 『신세대의 가치관과 기독교적 인간교육의 과제』란 글 속에서 언급하기를 " 자신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감각적 개인주의"라고 말하며, "근세 서유럽에서 강조 되어온 이성에 근거한 개인주의가 아니며 자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주의다"고 말한다.
개인주의적인 신세대는 의논 할 상대가 없고 친구도 경쟁자의 하나이기에 더 나아가 나약한 심성으로 인해 자살을 미화하고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신세대는 모든 결정이 자신의 몫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2.신세대는 권위주의를 배격한다.
전통적 유교적 농경문화는 더 이상 신세대에게 강요 할 가치가 아니다. 격식이나 체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외모나 복장에 나타나는 외형적 특징은 분명히 차별이 있다. 자연스 러움을 좋아하는 신세대는 캐쥬얼한 복장을 좋아하며 무엇이든지 규격 적인 것을 벗어나려고 한다. 신세대에게는 성별 구분이 모호하다. 옷도 유니섹스라고 하여 남녀 공용이 많이 사용되고 귀걸이를 착용하고 말총머리를 하고 다니는 남성, 전통적으로 여성의 직업을 가진 남성들이 늘어난다. 신세대는 흥미 본위의 삶을 추구하는 데 직장에서조차 상사를 의식하지 않는다. 새 시대의 합리적 가치를 원한다.

3.신세대는 소비지향 적인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기성세대는 영양을 위해 식사를 하고 커피는 자판기에서 적당히 뽑아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신세대는 그렇지 않다. 천 원짜리 라면은 군소리 없이 먹어도 커피는 분위기 있는 곳에서 오 천원씩이나 내고 마신다. 유행하는 신발이나 옷을 사기 위해서는 비싼 것을 따지지 않는다. 급속하게 우리 사회에 상륙하여 뿌리를 내린 외국 외식업인 코코스(Cocos)등은 음식 값이 싼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음식점의 주고객은 신세대들이다.
미국의 십대들의 돈은 자신들이 번 것과 용돈으로 채워지는데 십대들은 돈을 어디다가 사용할까? 1달라의 돈을 가지면 23센트는 점심 값 30센트는 운동, 데이트, 군것질, 21센트는 영화나 디스크, 책, 자동차와 휘발유, 취미 활동에 쓰고 9센트는 의복과 멋 부리는 일에 쓴다. 소녀들의 경우에는 26센트가 의복과 치장하는데 쓰여지고 21센트가 학교 점심 값, 17센트가 영화, 책, 취미 활동에 쓴다. 불황이 없는 신세대란 말은 소비성향의 신세대를 단적으로 말 해 준다.

4.신세대는 기계가 편안하고 신체의 한 부분이다.
부모 세대는 기계가 익숙하지 않고 때로는 두렵다. 그러나 신세대는 컴퓨터가 오히려 편안하고 언어의 확장이다. 이를 이용하여 의사 소통을 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 휴대폰, 삐삐를 통해 신세대는 고립에서 벗어나고 있고 사람의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컴퓨터를 통하여 자신들의 언어를 구상하며 새로운 정보를 수집한다. 컴퓨터 세대를 사이버 펑크라고 부른다.
인공 두뇌를 의미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반항아를 의미하는 펑크(punk)의 합성어인 이 말은 신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신세대들은 주변의 눈총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들은 내면적 가치관보다도 외면적 가치관을 더욱 중요시하기 때문에 가치충돌과 문화충돌의 가능성을 항상 배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중요한 일은 교회의 성벽을 높이 쌓아 올리려고만 하지 말고 성벽을 허물고 십대들을 향한 새로운 길 닦기를 시작하여야 할 때이다.

[5] 교회의 길 닦기.

1.인간 이해
세상은 변하고 있다. 옛날의 소중한 가치가 지금에 와서는 가치 없는 것이 되었고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는 성서적 인간 이해는 변 할 수 없다. 인간을 한 때 낙관적으로 본 시대도 있었고 지금도 같은 유혹을 받고 있지만 인간은 죄인이란 본성을 거부 할 수 없다.
라인홀드 니버는 낙관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 책을 썼는데 이는 사회적 복음의 요구나 도덕적 열성을 거부하는 뜻이 아니다. 니버는 인간을 죄인으로 이해하면서 책임적 존재라는 것을 부각 시켰다. 인간의 자유와 한계에 직면하게 될 때 하나님을 의존하려고 하는 것이 신앙이다 반대로 인간의 피조성을 거부하려는 것이 죄이다. 죄는 단지 사악한 행위가 아니라 자기중심이 되려는 왜곡이다.
니버는 죄에는 두 가지 기본 형태가 있다고 한다. 자유와 책임을 거부하여 동물적 본성으로 후퇴하는 죄이다. 또 하나는 인간이 자기의 한계를 거부하고 독립을 주장하려고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오만의 죄다. 능력의 오만, 지성의 오만 ,도덕적 영적인 오만 등의 죄를 탐색한다. 니버의 관찰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분명 죄인이란 사실은 그대로이다. 신세대들의 튀는 모습이 어떠하든지 다가오는 21세기의 청소년들이 어떤 사람들의 특징을 지니고 있든지 한 가지 불변의 사실은 누구나 우리의 노력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신앙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복음을 지닌 교회의 소망과 신세대들을 위한 길을 닦아야할 이유를 발 견 하게 된다.

2.돌 대신 떡을 주는 교육(목회 목적)
떡을 달라고 할 때 돌을 줄 아비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떡을 주지 못하고 돌을 주는 일을 교회가 하고 있다면 비극이다. 많은 것이 변화하여도 죄인으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떡을 신세대들도 필요로 하고 있다. 떡을 주는 교회로서 서 있기 위해 교회는 교회구조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권위주의적 교회구조, 제도적인 교회구조로 굳어진 교회는 변화의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한다. 다원화되고 정보화의 가속화가 일어나는 미래의 와중에서 교회는 카리스마적인 구조, 은사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융통성 있고 동적이며 갇혀 있지 않는 살아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1)교육 방법의 전환
교회의 가르치기는 옛날과 똑 같은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자로서 학생은 배우는 자로서 교사는 주입식 교육 방법으로 가르친다. 주입식은 교사의 권위를 세워 준다.
교사 편에서 집어넣는 교육이기 때문에 학생은 일방적으로 받아드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 나 이젠 권위도 무너지는 세대가 되었고 눈으로 보는 감각적 세대들에게 복음의 떡을 주 어야 하기 때문에 방법의 전환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교회와 미래 신학이란 책 을 쓴 최 인식 교수는 "생각하고 표현하고 가르치는 모든 것이 일반적인 형태에서 다중 적인 형태로 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신학적인 해석학에도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혁을 요 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멀티미디어가 구축 해 놓은 다각적 인 매체 환경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전 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과제가 주어졌다"고 한 다. 따라서 영상 매체를 이용한 시각 교육을 시도해야 하고 삶을 나누는 자로서 교육을 시도해야 한다.

교회교육 방법론으로 소개되고 있는
①지식을 얻게 하는 교육 방법(독서보고, 조사보고, 스터디그룹, 쎄미나, 패널토의등)
②격려를 주는 교육 방법(그림 붙이기, 즉흥극, 경험 나누기, 명상 , 실험 예배등)
③공동적인 견해를 얻으려는 교육 방법
(그룹토의, 촌극 대회, 토크 백, 설교포럼, 브레인스토밍, 버즈그룹등)
④실천을 위한 교육방법(현장 실습, 사례연구, 모의 실습, 모의재판, 현장 탐방등)을
활용해야 한다.

2)청소년들의 전용 방
신세대들은 고독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자신들의 방에 들어가서 고립되어 있으려 한다. 부모들과 떨어져 있고자 하는 나만의 공간을 찾는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에는 온통 방들로 가득 차 있다.
청소년들의 문화는 방 문화이다. 노래방, 비디오방, 만화방, 전화방, 빨래방, 찜질방, 소 주방 ,게임방, 인터넷방, 스트레스 해소방 등, 방 종류도 다양하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들의 세계를 만들 수 있기를 원하는 신세대들의 취향 을 따라 청소년들의 모임 공간을 교회가 제공하여 그들만의 자유로운 만남의 자리가 되도록 준비 해 준다. 방의 장식과 시설까지도 청소년들의 자율적 운영에 맞겨 두면 그들은 신이 날 것이다.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New Life Church"는 교회를 새롭게 건축하면서 청소년 방을 제공하였는데 학생들이 조명 장치를 하고 페인트를 가져다가 그림을 직접 그리고 자신들 만의 전용공간 무대를 설치하였음을 보았다. 밝은 색깔보다 검은 색 어두운 색으로 실내 장식을 했다는 것 외에는 멋진 공간을 연출 한 듯 했다.
청소년을 얻으려면 과감한 투자를 하여야 한다. 사업가들은 십대의 요구하는 것을 살 펴서 광고에 투자하고 구매력을 높인다.
청소년 십대가 요구하는 것은
①남에게 인정받는 것과 적당한 지위 ②존경과 사회적인 호의 ③대접과 원만한 사회 적 상호 작용 ④안정감과 단체에 속하는 일 ⑤경험과 표현 ⑥수고와 성공 ⑦행복과 자 유 등이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일에 투자하라.

3)예배의 틀의 변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교회가 있다면 시카고의 윌로우 크릭 커뮤니 티 교회(빌 하이빌스)와 L.A오렌지카운티의 새들백 밸리 교회(릭 워렌)이다. 두 교회는 구도자 예배라는 새로운 예배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 예배의 특징은 새 신자를 얻으려 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예배이다.
1997년에 이 두 교회를 직접 방문하여 쎄미나를 참석하고 현장에 있었든 경험을 토대로 생 각 해 볼 때 이 예배는 한국 교회의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장년의 예배에도 참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물론 한국 교회에서는 이미 열린 예배라는 말로서 서서히 교회 속 에 형식을 파괴한 예배의 시도가 퍼져 나가고 있는데 이 열린 예배의 문제점과 약점이 없 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도자 예배에서는 '예배의 참석자들이 누구인가?'라는 이해에서 출발 하고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음악 비디오등 첨단 기기들을 예배의 도구로 활용한다.
새들백 교회에는 대형 멀티비젼이 전면 강단 쪽에 5개나 부착되어 있는데 이모든 것이 보 게 하는 예배를 위해서 제공되는 것이다. 이들의 예배 속에는 예전 적인 요소보다는 삶의 축제 적인 환희의 요소가 많으며 현대 음악의 모든 장르가 다 동원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변화 속도감이 가미된 구도자 예배는 전통에 젖어 있는 이들에게 반격을 당 할 요 소들을 담고 있지만 청소년들을 향한 목회에 꼭 참고하여야 할 요소이다. 구도자 예배 속 에는 강단의 철폐, 예배 복의 철폐, 까운의 철폐, 기존의 교회가 중요시 여기는 전통적인 것들이 모두 생략되어 있다. 예배 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의 경험에 맞추는 새로운 예 배의 시도는 멧시지 전달의 좋은 채널이 될 수 있다.
내가 시무 하는 교회에서도 말씀을 증거 하는 시간에 Skit Drama를 통해 예배 자들과 경험을 나누고 드라마의 내용과 연결되는 설교를 준비해서 예배를 새롭게 갱신하는 시도를 가끔 하고 있는데 예배 자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고 말씀을 이해하고 신앙 생활에 큰 유익 이 되었다고 토로한다.
몇 년 전 안산에 있는 동산 장로 교회의 중 고등부가 Skit Drama 예배를 매주 시도하여 많 은 사람들의 관심을 산적이 있었다. 당시 교육 목사였든 김 준수 목사의 시도로 예배의 틀 을 바꾼 과감한 갱신이 큰 효과를 올렸든 적이 있는데 김 목사의 목회지 이동으로 인해 드 라마 예배의 시도가 중단되고 말았지만 이런 틀의 변화를 다가오는 세기에는 좀더 적극적 으로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청소년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들이 시각적인 것임을 잊지 말 고 시각적으로 예배를 시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4)커리 큐럼의 제정(말씀체험 신앙)
사람의 변화는 만남의 사건을 통해서 일어난다. 삼위의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실존의 변화가 일어 날 수 없다. 쉐릴은 「만남의 기독교 교육」에서 실존적 자아가 가능적 자아 로 변화되는 것을 만남의 사건으로 이해한다. 청소년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을 동경하는 옛 사람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 한 것을 사모하는 새 사람을 만들려면 하나님과의 만 남이 주어져야 한다. 찾아 오시는 하나님을 대면하고 응답하는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려 면 말씀체험의 신앙을 강화하고 교회의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마다 청소년의 발달단계와 경험을 잘 분석하여 청소년들에게 던져 줄 수 있는 커리 큐럼을 정 하고 단계별 교재를 준비하여 말씀체험의 신앙을 세워 주어야 한다.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청소년들이 교회에 들어와 구경꾼의 모습 에서 복음을 위해 일하는 일꾼, 즉 그리스도의 군대를 만들기 위해 말씀 체험을 시도하는 교회는 많지 않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사역 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리더가 되게 하는데 궁극적 목적을 두고 말씀 체험 교육을 개발 하여야한다.

[첨부 참고]

5)소그룹 운영
또래 그룹의 모임을 활성화 하기 위해 소그룹을 시작하라. 소그룹의 가치를 부인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그룹을 다양화하여 하나의 틀에 맞추지 말고 자신들의 흥미, 욕 구, 필요, 관심사, 영적 성숙도 등에 맞는 그룹 원이 되어 활동하게 하라.
신앙은 동적이어야 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적이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소 그룹 모임의 자리는 실천하는 신앙의 적절한 기회를 제공 할 수 있다.


6)다양한 영성 훈련의 제공
청소년 시기는 여러 가지 환경 적인 요인들이 영성 훈련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
청소년들은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삶의 진로를 선택 해야하는데 영성 훈련을 강화하는 교 회가 되어 삶의 참된 의미를 위해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영성 훈련은 개인화 되어만 가는 신세대들로 하여금 따뜻한 인간관계를 느끼게 하고 공동체의 경험을 주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소명을 발견하기 위한 특별 훈련의 장이다. 기도원이나 수련원에서 시간을 집중하여 기독교적인 영성을 공급해 준다.

3.청소년 지도자를 세우기
다가오는 세기의 청소년 목회는 보다 더 전문성을 가진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해당 부서에 걸 맞는 전문가를 배치하고 세우는 일이 청소년 목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관건이 된다. 정말 청소년에 대한 경험을 축적한 청소년 지도 전문가를 교회로 초대하라.
많은 일들을 벌려 놓는 것보다도 전문가를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는 교회의 용기가 이제는 정말 필요 할 때다.
찬양을 할 수 있는 지도자, 영상 및 기계를 만지는 일에 익숙한 지도자, 성경공부을 새롭게 인도 할 수 있는 지도자, 상담을 할 수 있는 지도자, 지역사회와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선교 전문가, 등등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관심을 쏟아야 한다.
적절한 훈련의 공급과 양육을 통해 교회의 교사로부터 성장하여 마침내 교사의 교사가 되는 교육 지도자, 즉 전임 사역 자로 세워지도록 해야 한다.


4.교회가 연합하기
청소년들의 문제에 대해 교회가 보다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목회하기 위해서는 지역별로 교회가 연합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컴퓨터망을 통해서 청소년문제에 대해 공동의견을 나누며 청소년들을 위한 연합사업을 한다. 일 예로 청소년 상담실을 교회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복잡한 사회구조로 십대의 성이 빨리 조숙 하는데 비해 결혼은 뒤로 밀려지기 때문에 성적 욕구는 제한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고민은 이성교제와 성과 임신이다. 도시 교회이든 농촌 교회이든 이와 같은 성의 문제를 비롯한 청소년들의 여러 가지 고민들을 들어줄 수 있는 상담 쎈타를 운영하는 일은 연합하는 교회가 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지역 교회가 연합하면 보다 더 효과적인 청소년 프로그램도 만들어 낼 수 있다.

[6] 마치면서
다가오는 세기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통찰력이나 예측의 능력도 없이 청소년 목회를 위한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것부터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죄성은 변하지 않으며 청소년 역시 복음의 떡을 필요로 한다는 불변의 사실이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하여도 목회의 용기를 잃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청소년을 생각하는 목회자는 이제 지혜를 구하여야 한다.『매스미디어 시대의 복음과 문화』(신경혜, 홍경원엮)란 책을 보면 "복음은 언제나 어떤 특정 문화에 둘러 쌓여 있다"고 하며 "문화란 마치 우리가 들이쉬는 공기와 같아서 문화를 배제한 복음 선교란 결코 상상 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앞에서 이해한 청소년들의 삶의 스타일이 곧 그들의 문화이기에 이제 우리들의 고민은 새롭게 시작되어야 하겠다. 문화에 반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문화의 변혁 자로서의 그리스도를 청소년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창조력과 열정을 더욱 요청 받고 있는 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청소년 목회에 대한 비젼을 가지고 달음질치는 부모들이 되자.
출처 : † 세계제일교회 †
글쓴이 : 띠띠빵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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