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진보적 종교교육운동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쓰시오.
1) 1903년 시카고에서 REA 결성. 지도력: George A. Coe, Nicholas Butler, Charles Hall, Francis Peabody, James Russell, John Dewey.
2) 대회의 목적을 보면 "오늘의 젊은이를 위한 종교교육, 도덕교육은 역사, 문학, 과학과 대화하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종교교육과 도덕교육을 위한 기구로서의 주일학교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이념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주일학교 외에도 가정, 주간학교, 그리고 다양한 교육기관들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목적의 첫째이슈는 주일학교와 사회변화에 관한 것이다. 19세기 이후 주일학교가 시민들의 학교가 되었을 때 사회의 세속화에 따른 엄청난 변화에 대처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들에 압력을 받아서 교과과정과 교육방법 등은 더욱 종파주의적으로 되었다.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뒷전이었다. 목적의 둘째 이슈는 주일학교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주일학교는 '영혼 구원을 위한 기관'만을 추구했기 때문에(당시 전도 십자가군 운동에 귀속된 활동) '양육은 무시하였다. 따라서 부쉬넬은 주일학교 운동을 비판하였고, 종교교육에서 양육을 강조하였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종교교육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적절한 종교교육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조직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REA(1903)이다. 따라서 성경 교육외에 역사, 문학, 과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REA의 신학적 구조는 자유주의 신학이었으며 실용주의 교육과정으로 건전한 사회인으로 키우기 원했으며, 인간성장과 사회화를 중심으로 기독교교육을 하였다. 또한 REA가 말하는 교육이란 종교교육을 의미하는 것임을 암시적으로 가정하고 있으며, 교육은 종교를 보완해야 하며 또한 종교도 교육을 보완해야 함을 의미한다. 당시 주일학교 교육이 '양육'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었고 다만 종교교육의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REA의 교육적 힘에 대한 관심이 되었다.
코우는 "기독교교육의 주된 목적이 종교를 전수하는 데에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 있는가?"의 질문에서 지극히 설교적이면서 암기위주로 일관된 교육방법은 당시 훈련받지 못한 주일학교 교사들과 가정의 부모들의 주된 교육도구였으며, 교육의 표준처럼 되어왔다. 또한 주일학교의 전도와 회심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인해서 교육적인 힘은 가정과 주일학교, 사회에서 전도와 도덕교육 사이의 균형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REA는 주일학교가 좀더 높은 이상을 세워야 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REA가 제안하던 종교적 이상은 신앙부흥운동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것으로서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선하며 성장을 위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종교적/도덕적 교육을 위한 양육의 신학적 토대인 자유주의신학(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은 원죄라는 이름 밑에서 온전히 도외시되고 감추어져 왔던 인간의 능력과 탐구의 정신을 재발견하는 것이다)인데, 이는 당시 급작스런 회심의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던 주일학교의 강조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3) Schleiermacher 와 Ritschl을 중심으로 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
가. 진리의 인식에는 과오가 있을 수 있다는 신학적 전제
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일종의 유사점이 있다는 낙관적 입장
다. 인간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
라. 신학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 추구
1) 1903년 시카고에서 REA 결성. 지도력: George A. Coe, Nicholas Butler, Charles Hall, Francis Peabody, James Russell, John Dewey.
2) 대회의 목적을 보면 "오늘의 젊은이를 위한 종교교육, 도덕교육은 역사, 문학, 과학과 대화하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종교교육과 도덕교육을 위한 기구로서의 주일학교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이념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주일학교 외에도 가정, 주간학교, 그리고 다양한 교육기관들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목적의 첫째이슈는 주일학교와 사회변화에 관한 것이다. 19세기 이후 주일학교가 시민들의 학교가 되었을 때 사회의 세속화에 따른 엄청난 변화에 대처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들에 압력을 받아서 교과과정과 교육방법 등은 더욱 종파주의적으로 되었다.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뒷전이었다. 목적의 둘째 이슈는 주일학교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주일학교는 '영혼 구원을 위한 기관'만을 추구했기 때문에(당시 전도 십자가군 운동에 귀속된 활동) '양육은 무시하였다. 따라서 부쉬넬은 주일학교 운동을 비판하였고, 종교교육에서 양육을 강조하였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종교교육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적절한 종교교육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조직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REA(1903)이다. 따라서 성경 교육외에 역사, 문학, 과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REA의 신학적 구조는 자유주의 신학이었으며 실용주의 교육과정으로 건전한 사회인으로 키우기 원했으며, 인간성장과 사회화를 중심으로 기독교교육을 하였다. 또한 REA가 말하는 교육이란 종교교육을 의미하는 것임을 암시적으로 가정하고 있으며, 교육은 종교를 보완해야 하며 또한 종교도 교육을 보완해야 함을 의미한다. 당시 주일학교 교육이 '양육'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었고 다만 종교교육의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REA의 교육적 힘에 대한 관심이 되었다.
코우는 "기독교교육의 주된 목적이 종교를 전수하는 데에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 있는가?"의 질문에서 지극히 설교적이면서 암기위주로 일관된 교육방법은 당시 훈련받지 못한 주일학교 교사들과 가정의 부모들의 주된 교육도구였으며, 교육의 표준처럼 되어왔다. 또한 주일학교의 전도와 회심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인해서 교육적인 힘은 가정과 주일학교, 사회에서 전도와 도덕교육 사이의 균형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REA는 주일학교가 좀더 높은 이상을 세워야 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REA가 제안하던 종교적 이상은 신앙부흥운동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것으로서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선하며 성장을 위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종교적/도덕적 교육을 위한 양육의 신학적 토대인 자유주의신학(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은 원죄라는 이름 밑에서 온전히 도외시되고 감추어져 왔던 인간의 능력과 탐구의 정신을 재발견하는 것이다)인데, 이는 당시 급작스런 회심의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던 주일학교의 강조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3) Schleiermacher 와 Ritschl을 중심으로 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
가. 진리의 인식에는 과오가 있을 수 있다는 신학적 전제
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일종의 유사점이 있다는 낙관적 입장
다. 인간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
라. 신학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 추구
출처 : 교회교육사
글쓴이 : 임영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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