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목회

[스크랩] 실로의 성전처럼 보이는 성전은 무너져야 하리라(렘 26:1-15)

김노섭-열린문 2012. 12. 16. 01:58

1. 말씀 : 렘 26:1-15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3)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4) 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5)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6)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8)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9)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13)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2. 묵상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1절).

요시야 왕은 31년을 다스리며 남유다에 전례없는 영적 부흥을 가져왔다(대하 34장).

유다와 예루살렘에 산재한 산당과 아세라 목상과 우상들을 제거하였다.

바알의 제단들을 헐고 성전을 정결하게 하였다.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중, 율법책을 발견하였는데, 율법책을 읽고 왕 자신은 물론 온 백성을 회개하게 하였다.

그는 재위 18년째 되던해 역대 어떤 왕들도 하지 못했던 유월절 절기를 회복하였다.

그는 유다 역대 왕들 중에 최고의 찬사를 얻게 된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15).

 

요시야 시대는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영적 부흥기였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요시야가 다스린지 13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경고와 책망과 심판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렘 1:2).

어느 시대나 영적 부흥은 영적 타락의 위험을 안고 있다.

영적 부흥기일수록 진정한 영성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영성은 언제나 세상의 종교성과 결합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참된 영성은 하나님과 관계하는 관계적 영성, 나는 없고 하나님만 드러나는 초월의 영성, 하나님의 사귐에서 요구하는 삶으로써 실천적 영성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하나님과 관계 안에 살며, 하나님의 순전한 다스림가운데 하나님만 드러내며(무명성),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을 세상에 행하는 것이 영성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깨트리고 현세적 행복을 가져다주는 바알신을 쫓았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음란한 삶을 살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고,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말씀의 요지는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다.

즉 언약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관계 안에서 살 것을 촉구하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경고와 심판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미혹의 미끼만을 입에 물었다.

거짓 평강, 근거없는 위로, 허황된 축복만을 신념한 것이다.

하나님은 마침내 심판의 칼을 빼어든다.

하나님의 충복, 요시야왕이 애굽왕과 전쟁에서 전사한다(대하 35:22-24).

예레미야는 그를 위해 애가를 지어부른다(대하 34:25).

이어서 요시야의 아들, 여호와하스가 왕이 된다.

그런데 여호와하스가 왕이 된지 석달만에 애굽 왕 느고가 그를 폐위하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꾼다(대하 36:4).

(한국사로 하면, 일본이 고종을 폐위시키고, 영친왕을 세운 격이다)

 

실로 두렵고 불안하고 혼란한 시대가 임했다. 재앙의 때이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배경이다.

선지자와 제사장, 백성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드린다(2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다(2절).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고발하고(4절),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재앙을 면할 것이라고 하신다(3절).

이들은 혼란하고 격동하는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했다.

이는 처음하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파송하여 거듭하여 외치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듣지 않았다(5절).

 

이제 하나님은 그들이 예배드리러 나오는 성전이 실로같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6절).

그리하여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6절).

이 말씀을 듣는 제사장, 선지자, 백성들은 기겁하여 예레미야를 죽이려든다(8절).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8절).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의 핵심은 재앙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대신, “이 성전이 실로같이 되리라”는 경고에 자극을 받아 예레미야를 겁박하고 있다.

왜 이들이 그러하였을까? 잠잠히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 잘 믿는다고 생각하였고, 더구나 하나님의 성전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사탄은 믿는 자를 겨냥한다.

스스로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자를 속인다.

신앙에서 확고한 교조주의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는 자기도 속고 다른 사람도 속인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등진 자이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자이다(눅 18:1-12).

나 역시 한 때, 그들에게 속는 자였고, 또 속이는 자가 되기도 하였다.

오.. 하나님! 하나님만이 영원히 찬송할 분이십니다!(롬 1:25).

 

이 성전이 실로같이 되게 하겠고!

실로는 한 때 하나님이 임재하셨고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던 성전이었다.

광야에서 이동하던 성막은 가나안에 들어와 실로에 안착했다(BC 1406년경)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수 18:1).

그 때로부터 엘리제사장이 죽기까지(BC 1115년경), 실로는 300년 이상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백성들을 만나주시던 성전이었다.

사람들이 매년 실로에 와서 제사를 드렸고, 한나가 기도하여 응답받은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보기에 좋은대로” 믿었던 사사시대의 신앙을 심판하셨다.

가장 무서운 심판, 하나님이 실로의 성전에서 떠나신 것이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시 78:59-61).

 

이후 하나님이 떠난 성전(언약궤)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삼상 4:1-11).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에서 참담히 패하고, 엘리와 두 아들도 죽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궤도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만다.

엘리의 며느리는 산고(産苦)보다 더 큰 고통으로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라고 한다(삼상 4:19-22).

 

이제 요시야 시대의 부흥은 쇠락하고,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신앙의 근거지인 예루살렘은 실로의 운명이 된다.

이 성전은 실로의 성전처럼 황폐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깨닫지 못한 백성들, 여전히 잘믿는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 백성들이 어떻게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이겠는가?

그래서 제사장, 선지자, 고관들, 백성들의 예레미야를 죽이려든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물러서지 않는다.

“너희가 나를 죽이려면 죽이라, 그것은 무죄한 자를 죽이려는 것이요, 그 죄는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그러나 이 말씀은 진실하다, 나는 진실로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다”(14-15절).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성전을 헐라”는 말씀이 올무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마 26:61).

스데반의 운명도 주님을 따라갔다. 그도 보이는 성전을 모독한 죄로 돌로 쳐 죽임당했다(행 6:13).

주님은 하나님의 실재가 없는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하나님의 이름만 남은 종교인들을 심판하신다.

그리고 삼일만에 성전을 지으셨다.

그는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다(고전 3:16).

 

주님이 삼일만에 지어주신 성전은 "영원한 생명"의 성전이다.

오늘도 생명의 실재가 없고, 하나님과 사귐도 없고, 하나님의 실재도 없는 성전은 무너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교회를 비판하면, 공박당한다. 그래도 하나님의 교회인데, 교회를 비판하면 되느냐고 말한다.

그런 말은 오늘 예레미야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제사장, 선지자와 다를 바 없다.

감히 교회를 비판한 죄목으로 돌로 쳐 죽게 되고, 십자가에 달린다.

예레미야 시대, 예수님 시대, 스데반 시대는 오늘도 재현된다.

실로 두렵다! 패역한 종교인들이 두렵다! 아.. 하나님이 두렵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 안에 지어진 성전을 주목하여 보신다.

우리 안의 성전은 하나님을 존재로 만나는 지성소이다.

하나님과 실제적인 교제없이 지성소를 비워두는 것은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며, 실로의 성전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무너지며, 세상 사람들에게 저줏거리가 될 것이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세상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것은 바로 내면의 성전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건물의 성전보다 내면의 성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선결문제이다. 

 

오늘은 주일이다!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성전,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

그들은 오늘 예레미야 통해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일상에서 하나님과 교제없이 살다가, 주일이라고 해서, 건물의 성전에 나오는 이들을 향해 경고하신다.

실로의 성전같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저줏거리가 될 것이다.

 

지성소를 더럽히는 것은 곧 지성소를 비워두는 것이다(고전 3:17).

예배공동체는 교제공동체이다.

매일 삼위 하나님과 교제한 이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하며 떡을 떼는 자리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하나님과 교제 없이, 마음의 성전없이 건물 성전으로 나온다.

이것처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은 없다.

 

자기가 만난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만나러 오고,

자기가 교제하는 말씀없이 말씀들으러 오고,

교회를 은혜받는 곳으로 생각하며 오산이다. 엄밀히 말해서 교회는 은혜주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은혜인 아들을 이미 주셨다.

이제 아들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은혜의 삶이다.

매일 말씀묵상없이 어찌 삼위 하나님과 교제에 참여할 수 있을까!

 

실로의 성전이 무너졌듯,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지듯, 헤롯의 성전이 무너지듯, 오늘의 건물 성전도 무너져야 마땅하다.

나아가 주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했으나 하나님과 교제없이 살아온 내면의 성전도 무너져야 마땅하다.

하나님은 먼저 무너뜨리시고, 공의를 기초로 다시 세우신다.

 

********** 

나의 성전도 마땅히 무너져야 했다. 내면의 성전도, 건물 성전도 무너져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무너졌다.

건물로써 교회의 유지는 삶의 방편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교회 문을 닫았다.

이제 말씀 앞에 서보니, 하나님이 실로의 성전처럼 무너뜨리셨다.

내 존재도, 내 마음의 성전도 무너져내렸다. 나는 심판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심판을 받아들인 나에게 새로운 성전이 지어졌다(시 94:15)

“Judgment will again be founded on righteousness, and all the upright in heart will follow it.”

(심판은 공의의 기초위에 다시 세우는 것이다. 마음이 정직한 자는 그 심판을 받아들인다)

 

하나님이 공의를 기초로 세우신 성전은 하나님과 사귐 안에 거하는 마음의 성전이다.

매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사귐 안에 거하는 것, 마음의 성전에 주의 영광이 가득하다.

초대교회는 보이는 건물은 없었으나, 마음의 성전에 거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그렇게 믿고 살았던 초대 교회의 신앙이 참이다!

 

 

3. 기도

아버지...

나의 성전은 무너져야 했습니다.

보이는 성전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전도 무너져야 했습니다.

실로의 성전처럼, 하나님의 존재가 부재한 성전은 모두 무너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습니다. 가시적인 성전도, 내 존재도 무너졌습니다.

어디에도 도망할 수 없었습니다.

나의 성전이 무너져 자리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아버지...

주님은 내가 받을 심판과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나는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되었습니다.

오.. 주님은 삼일만에 영생의 성전을 지어주셨습니다.

이제 내면의 성전된 지성소에서 하나님과 사귐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복된 은혜입니다.

 

아버지..

오늘은 주일입니다. 성일에 예배드리러 오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 저들에게 마음의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분주함, 고단함으로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조차 없이, 건물 성전만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고, 실로의 성전같이 될 것이라고 하나, 저들은 귀를 막습니다.

오히려 책망과 심판의 진리를 전하는 자를 핍박합니다.

오.. 주여, 패역한 이 땅을 불쌍히 여기소서, 실로의 운명처럼 될까 심히 두렵나이다.

오.. 아버지 긍휼을 베푸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굿뉴스묵상캠프
글쓴이 : 서형섭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