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을 말하다

[스크랩] 故옥한흠목사님께서 2009년말에 인터뷰한 내용

김노섭-열린문 2012. 3. 7. 10:10

 

故옥한흠목사님께서 2009년말에 인터뷰한 것이 Christianity Today 한국판 1월에 실렸었다.

당시에 나는 이글을 접하고 읽고 또 읽고, 그 글에 단순히 공감하고 도전 받은 것 뿐 만 아니라, 내가 목회를 해야 하는 정확한 목적과 방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깨닫는 중요한 말씀이었다. 그리고..1년도 채 안된 2010년 9월2일에 하나님품으로 가심으로, 그것이 영적 거장이 한국교회에 남기신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이 되었다. 당시에 그 글을 스크랩하여 가끔씩 읽어보곤 하는데, 내용이 여기에 싣기에는 길지만 꼭 한번 읽어보았으면 한다.

 

"교회 침체가 아니라 교회 본질이 파괴되는 문제다"-(0)

 

Q: 한국 교회가 지금 서있는 위치가 어디쯤 된다고 생각하는가. 영적 상황을 생태학적 흐름에 빗대면 어릴 때, 젊을 때, 나이 든 때가 있을 텐데, 한국 교회는 어디쯤에 서있다고 생각하는가.

 

- 지금 한국 교회는 신세대 자녀를 앞에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와 비슷한 상황이다. 자녀가 성공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과잉보호도 하고, 과소비도 하고, 지나친 모험도 하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정말 영적 주도권을 잡고, 아니면 도덕적 주도권을 잡고 다음 사회를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잘 크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리고 냉정하게 보면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하는지도 의문이다. 교회도 형식만 남았고, 프로그램만 남았지 사실은 생명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그래서 자녀들은 교회에서 큰 감동을 못 받고 돌아와서는 즉시 사회의 혼탁함에 휩쓸리고, 가치관, 사고방식, 생활방식조차 부지불식간에 그대로 묻어서 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어떻게 할지 모르고, ‘때가 되면 저애들은 저애들대로 살겠지’라고 체념하는 부모의 분위기가 지금 한국 교회의 분위기다.

 

Q: 교육의 부재가 가정이나 교회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데, 어쩌면 자포자기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할 능력이 없으니까. 교회가 바로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며 이런 무기력증에 빠져있지 않나 싶다. 이걸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

 

-교회가 처한 가장 심각한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속주의다. 세상적인 가치를 거의 다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입장에서 수용을 하되, 성경적으로 적당히 포장해서 수용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것을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하나님 말씀이 이러이러하니 따를 수 없다고 선을 분명히 긋는 태도는 발견하기 어렵다. 간혹 설교에서도 차별화가 무너지고 있다. 이런 어려움에 직면했던 유럽 교회의 역사를 우리가 되풀이할 수 있다. 미국 교회가 유럽 교회를 서서히 따라가고 있는데, 미국 교회를 따라서 동양 교회 대표인 한국 교회가 그렇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가 아닌가 싶다.

 

Q: 목회자의 잘못이 크다고 볼 수 있는가.

 

- 100% 목회자의 잘못이고, 목회자를 양성하는 교단, 신학교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나부터도 그렇지만, 성경에서 이혼을 정당하게 여기는 몇 가지 경우가 있는데, 그 외에는 안 된다고 이혼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만약 그것을 설교에서 지적하면 내 주변도 그렇고 걸리는 사람이 상당수일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은 여전히 이혼불가가 원칙이다. 이것만 비교해 보아도, 한국 개신교가 자기 자리를 못 지키고 자기도 모르게 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점점 타협하는, 힘없는 모습으로 새로운 세대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교회 침체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 파괴되는 문제다. 이것을 놓고 고민을 할 능력도 부족해 보이고, 책임을 지고 고민하려는 사람도 적은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Q: 머리카락이 모두 잘린 삼손이 떠오른다.

 

- 복음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이비드 웰스 같은 사람의 경고는 책으로 나와도 잘 안 읽힌다. 들으면 부담스럽고, 따르려니까 능력이 없고, 그래서 읽을 이유가 사라진다. 이런 무기력증에 깊이 빠지면, 교회는 결국 교역자에게 직장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내 가게 장사만 잘되면 된다는 식으로, 소인 의식에 빠져서 내 교회 목회에만 신경 쓰는 현상이 주류를 이룰 수 있다. 한 두 교회에는 은혜가 있어도, 전체 교회에는 영향을 전혀 못 미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Q: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의 교단들이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 과잉공급이 심각한 문제다. 목회자가 넘치기 때문에 출혈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경쟁에서 밀린 패배자는 모든 사고를 부정적으로, 냉소적으로, 비판적으로 갖게 되고, 이런 추세가 계속해서 심해질 수 있다. 그럴수록 교회의 힘이 파괴적인 쪽으로 쌓이면서 누수 현상이 일어난다. 파괴적인 힘은 더 커지고, 건설적인 힘은 더욱 약화되는 것이다. 다시 예를 들면 가톨릭은 그런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함부로 신부가 될 수 없는 체제를 만들어서 신부 수는 늘지 않지만, 교인 수는 점점 늘고 있다. 그들을 영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수요와 공급 차원에서는 우리가 각성해야 할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Q: 그 과잉공급의 중심에 있는, 목회자 되려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 이 신학교 지원해서 안 되면 다른 신학교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배가 가라앉는데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는 것과 같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 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는 풍토에서 준비된 사람이 나올 리 없다. 아까 말했듯 경쟁이 심해지면서 점점 목회 현장은 살벌해지고, 그러다보면 교회 밖 사람들에게 비치는 교회 이미지도 기업이나 구멍가게 같은 이미지로 박힌다.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반면 기존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도 안정된 교회 분위기에서 편하게 신앙생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심해진다. 대형교회로의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진다. 그러면서 점점 교계 내에는 심각한 갈등구조가 생긴다.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구도로 바뀌는 것이다.

 

Q: 그래도 성령의 능력은 살아있지 않은가.

 

-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불쌍히 여겨서 무기력증에 빠진 한국 교회를 어떻게 정신 차리게 하실지 궁금하다. 남북을 통일시켜서 북한의 지하교회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기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탁월한 영적 지도자가 나서서 한국 교회를 새롭게 갱신시키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비상 섭리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는, 사람의 힘으로, 프로그램 가지고는 도무지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소리를 하면 비관론자라며 돌이 날아올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할 만한 자유도 없는, 기막힌 상황이다. 골치 아픈 일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씨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Q: 그래도 지금까지의 설교 면면에 흐르는 것은 비관적 낙관론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는 소망을 평소에 피력했는데.

 

- 낙심은 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침묵하실 때가 많았다. 구약을 봐도 그렇고, 기독교 역사를 봐도 그렇고, 진짜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야 될 것 같은데, 안 일어나시고 침묵하실 때가 많다. 우리가 지금 그런 어려운 시점에 처해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특히 한국 교회가.

 

Q: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런 상황을 그래도 꿰뚫어 보는 영적 통전성을 가진, 깊이를 가진 지도자들이 한국에 그래도 많이 있지 않을까.

 

- 신실한 사람들은 다 숨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짜 인정하는 사람들은 사람 눈에 잘 안 보인다. 하나님이 그들을 좀 더 능력 있게 사용하시는 때가 왔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나 자신부터 시작해서,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Q: 선지서가 대체로 시대에 비관적인데, 또 하나 중요한 메시지는 거짓 선지자들은 대체로 비관적이지 않고 낙관적이라는 데 있다. 지금도 낙관을 부르짖는 사람이 많다.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말하는 것은 자유다. 사람들은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 교회가 잘못된 길로 빠져도, 멈춰 세울 힘이 없다. 비정상적인 낙관주의가 판치는 상황이라 걷잡지 못할 것이다. 그 수가 몇이나 될지 모르지만, 이런 흐름을 타고 기독교 스타도 나올 것이다. 긍정의 복음을 강조하는 사람의 글이 아무런 비판 없이 나오는 것도 문제고, 그 흐름이 한국 교회를 주도하는 쪽에서 비롯되는 것도 안타깝다. 그러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분별력을 잃었다. 이런 시대를 구원하려면, 나부터 지도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정도를 걷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하는데, 그럴 용기가 없다. 나부터 용기가 없다.

 

Q: 언젠가 설교 중에 칼빈의 마지막 유언으로 소개한 내용이 “나는 날마다 화형장에 끌려갈 각오를 하고 살았다”라는 유언이었다.

 

- 그 당시는 종교개혁 때였고, 진짜 교리를 위해서 죽느냐 사느냐 생명을 거는 시대였으니까, 오히려 명쾌했다. 개혁 측에 서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자명한 현실이었으니까, 오히려 당연한 선택이 가능하다. 1930년대 일본이 노골적으로 교회를 탄압하면서 신사 참배를 강요할 때에는 흑백이 분명했기 때문에, 목사들도 색깔이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 교회를 장악한 세속주의의 색깔은 회색이다. 회색지대에 있는 것이 편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벗어나서 흰색으로 가겠다, 선을 넘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큰 각오를 해야 한다. 상당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나부터 그렇게 못했다. 진짜 영웅이 필요한 시대다. 십자가를 지고, 한국 교회에 선지자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참 영웅이 필요한 시대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하나든 둘이든 일으켜서 한국 교회를 바로 좀, 제자리를 잡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 한국 교회가 가진 잠재력이 참 엄청난데, 그 잠재력을 생산적으로 살릴 수 있다면, 아무리 다음 오는 세대가 타락한 세대라고 해도 교회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Q: 돌아보니 가장 크게 남는 회한이 무엇인지.

 

- 회한을 이야기하자면 많다. 말로하기 힘든, 목회자의 양심으로 나만이 아는 회한이 어찌 없겠는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고 했는데, 왜 그 말씀이 필요한지를 요즘 생각한다. 자기만이 아는 가책과 실패와 고통, 이런 것까지도 하나님께서 말끔하게, 은혜롭게 처리해주시기 위해서 심판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완전한지를 도장 찍어주기 위해서 심판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목회자 가운데 완전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처럼 포장이 된 사람은 더 그렇다. 노출이 안 됐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아픔이 있을 수 있다. 차라리 노출이 되고, 돌을 맞고, 그랬으면 그것으로 씻음을 받았다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이런 말 하면 완벽주의자라고 사람들이 또 뭐라고 한다. 그래서 병에 걸린다고. 그리고 사랑의교회가 좀 더 예수님의 제자다운 교회답게, 성도들을 좀 더 제대로 갖추어 놓고 물러나 앉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깨어있으면 한국 교회와 한국사회를 뒤집어 놓고도 모자람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크다. 사랑의교회의 제자훈련을 통해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행복하게 신앙 생활하는 교인들을 보면 나름대로 소명을 다했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어두운 영역을 보면 답답하다. 내가 속한 교단, 그 교단에 순기능 역할을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을 때 무력함을 느낀 적도 있다.

 

Q: 잘 결정했다, 행복했다, 그런 것도 있는지.

 

- 사랑의교회를 개척하기로 했던 것이 가장 행복한 결정이었다.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길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결정이 행복했던 이유는 마음을 완전히 비웠기 때문이다. 마음을 완전히 비울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모른다. 작은 교회가 될지, 큰 교회가 될지, 성공할지, 안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서초동에 자리를 잡은 것도, 준비를 하시던 목사님이 자리를 잡았던 것이었고,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완전히 마음을 비웠다. 오직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일을 해라, 내가 성령을 밀어 줄 테니 그것으로 만족 하라고 말씀하셨다. 자식이나 아내 생각도 채 못하고, 어찌 보면 무모한 결정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게 하나님의 강력한 뜻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목회한 지난 40년은 정말 행복한 기간이었다. 아마 다시 이런 기회가 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50년대부터 한국교회에 불어 닥친 폭발적인 부흥의 끝자락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침체가 시작됐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 중에 하나인 것 같다. 한 시대가 번영하면, 그 다음 세대는 쇠퇴한다. 주기가 있다. 청교도 신자의 검약, 절제, 정직, 근면이 자본주의의 틀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서구 사회가 발전했다. 그런데 다음 세대는 추락하고 있다. 번영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라면서 온갖 좋은 혜택을 누린 세대가 주인이 되고 나자 제일 먼저 피해를 본 게 교회다. 가장 좋은 예가 영국 교회다. 어떻게 보면 영국 교회는 극과 극을 달렸다. 그런 주기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배부르게 먹고 자란 애들이 커서 허리띠 조아 매면서 고생한 세대하고 같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시절에 목회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인지, 어떤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것 모두가 감사하다. 우리같이 부흥기를 경험하면서 목회한 사람들이 제대로 잘해야 다음 세대가 쇠락하지 않는데, 지금 교회 모습을 보면 우리가 잘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잘했으면 아무리 세속화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교회는 자기 정체성을 바로 유지하면서, 사회 변화를 주고 감동을 줄 수 있을 텐데, 너무 허무하게 하루아침에 무너지니까, 뭔가 잘못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Q: 시대를 제대로 읽고 자기반성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교회에 바라는 바가 있는지.

 

- 한국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는 평신도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전문화된 사람들이 평신도 중에 많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목회자의 소리가 너무 크다. 말씀을 가르치는, 똑바로 가르치는 소리가 크다는 것은 아니다. 평신도의 전문성과, 경험, 상식, 사회를 내다보는 통찰력 등을 최대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결집시켜 끌어가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회를 평신도에게 안 준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예배 군중 비슷하게 무력하게 앉아있는데, 이렇게 되면, 교회 장래에 영향을 줄 만한 힘을 못 가진다.

 

Q: 이것을 한국 교회의 비전으로 생각해도 되겠는가.

 

- 비전으로 생각해도 좋다. 내가 평신도를 깨우자고 했던 것은 갱신 받지 못한 사람 갱신시키자는 말만은 아니었다. 평신도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굴해서, 교회 주체로서 평신도가 제자리를 찾도록 하자는 것인데 무척 힘든 일이긴 하다. 나 역시 직접 해보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면, 때를 맞춰서 일하실 것이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를 하나님이 세우실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본격화되고, 출산이 저하되면, 교회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어쩔 도리가 없다. 문 닫는 교회도 생길 것이다. 불과 20년 후의 이야기다. 예를 들어, 사랑의교회에 3만 5000명이 모였는데, 그 가운데서 40%이상이 65세 이상이라고 상상해 보라. 교회 문화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주일학교는 엄청나게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서, 지금 정도만 유지하면 좋겠지만, 기후 변화나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터지면, 한국 경제는 삽시간에 뒤엎어질 수 있다. 그런 위기를 만났을 때 교회 문화가 어떻게 바뀔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교회들은 연합해서, 그 교회 안에 있는 평신도의 전문성을 살려서 한국 교회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전문성을 가진 NGO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하고 격려하는 일도 같이 해야 한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자산이 생산적으로 모일 때 비로소 작은 교회, 큰 교회 나누이지 않고 함께 그 열매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