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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 | 전도학

김노섭-열린문 2007. 11. 28. 00:11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

 

이 현모 교수(침례신학대학교 선교학 부교수)

 

 

들어가는 말

 

    20세기에 들어와서 기독교 선교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변화는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까지를 포함할 정도이므로 자주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선교활동의 면에서도 이전의 선교역사에 견줄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변화와 성장이 있지만 선교신학의 면에서 더욱 괄목할만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복음주의 신학은 자체 신학적 사고 및 논리의 발전에 따라서 변화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복음주의와 다른 신학사조의 대두에 따른 변증적, 방어적 방법으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발전시켜 나가곤 하였다.  그러므로 최근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을 주로 1960년대 이후, 특히 웁살라 총회 이후의 에큐메니칼 그룹의 선교신학에 대한 방어적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곤 하여왔다.  그러나 이러한 에큐메니칼 그룹의 선교신학의 대두 자체가 실제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에 따른 시대적 변화였다고 본다면 최근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성들에 따른 반응으로 살펴볼 수도 있다.  본고는 이러한 면에서 최근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모더니즘 시대의 선교신학

 

   모더니즘의 정의가 무엇인가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협의로는 금세기 초반 내지는 중반부터 태동되어진 문화와 예술 각 분야에서의 모더니즘 운동을 지칭하지만 광의로는 18세기부터 진행되어온 계몽주의(Enlightenment)의 역사적 전개와 유산을 모더니티(Modernity: 근대성)로 볼 때 모더니즘은 계몽주의적 가치를 더욱 극대화시키려는 의식화 운동이라는 보다 폭 넓은 역사적 의미로 해석한다(Harvey 1989, 28, 배국원 1992, 87-88).1)   철저히 이성에 근거한 지식을 신봉하는 계몽주의가 데카르트에 의해서 문을 열게 되자 이 영향은 곧 신학의 영역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  기독교 신학에서도 理性이 왕좌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에 다양한 반응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쉴라이에르마허 라든지, 경건주의, 복음주의적 각성운동 등은 종교를 이성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인간의 감성과 체험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옮겨 놓았다. 이러므로서 "인식의 객관화"를 요구하는 계몽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종교를 보호하려고 시도하였다(Newbigin 1986, 44).  다른 반응으로는 "종교의 私有化"(privatization of religion)가 나타나게도 된다.  대중적(大衆的) 혹은 公的인 영역에는 미미한 존재가 되고 대신 종교를 개인적인 영역에 속한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서 공적인 지위에서 벗어나서 공격을 피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반응으로는 신학 자체를 하나의 과학으로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학을 "神的 과학" (Science of God), 혹은 "과학의 최고봉," "과학중의 과학"이라고 주장하며 신학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즉 이는 신학이 다른 과학만큼이나 객관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믿고 주장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었다(Hiebert 1985a, 5).  네 번째 반응은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기독교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이러한 논쟁의 헤게모니를 장악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공적인 직분과 이론들이 종교적 원리와 개념에 종속되도록 만들려는 시도였다.  마지막 반응은 "세속화"이었다.  세속화된 사회를 포용함으로써 이성의 절대성 주장으로부터 오는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이성의 절대성에 대한 전통 기독교의 굴복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양한 모더니티(Modernity)에 대한 반응은 20세기 초반에 다양한 양태의 현대신학들을 등장시키게 되었고 복음주의적 선교신학은 이에 대한 방어와 변증의 시도를 행하면서 그 자체의 구조를 다듬어 가게 되었다.  1910년 에딘버러 대회 이후의 세계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 I.M.C.)의 모든 논쟁들은 사실 이러한 모더니티의 도전에 대한 선교 신학적 정체성 확립의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1910년의 에딘버러 대회 이후 최초로 열린 1928년 I.M.C. 의 예루살렘 회의는 이전의 전통적인 복음전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던 복음주의 노선에 대하여 모더니즘적인 새로운 선교신학이 승리를 주장한 회의였다.2)  예루살렘 회의는 월터 라우센부쉬에 의해서 유럽에서 도입된 모더니즘적인 현대자유신학에 강하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Johnston 1983, 58-60).  슐라이에르마허의 정의에 따라서 죄란 "타인들의 죄악된 행위와 상태로 말미암아 각 개인 안에서 생산된"것으로 정의되어졌고(Handy 1966, 388)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적인 책임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결속으로 보여졌다.  이성을 주장하는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성서의 영감과 권위의 교리는 심각한 침식을 당하게 되었고 이것이 이전 무디로 상징되어지던 개개인 영혼의 구원을 강조하는 고전적, 성서적 복음전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모더니스트들에 의해서 성서의 무오성이 깨어지자 대신 모호한 "그리스도 중심의 권위"를 주장하기 시작하고 이 주장 하에 연합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대신 타종교에 대한 상대적인 용납이 제시되어지고 마침내는 1932년 윌리엄 호킹의 보고서인 "선교사역에 대한 재사고" (Rethinking Missions: A Layman's Enquiry After One Hundred Years)에 의하여서 결정적인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호킹이 주장하는 타종교와의 동맹은 문화인류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에 의해서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 오던 것이었지만 이것이 선교학자에 의해서 주장되었다는 것이 충격적인 것이었다.  결국 예루살렘 회의는 당시 일어나고 있던 모더니즘의 사조가 선교신학에 유입되면서 영혼 구원의 전통적 개념이 과학주의와 이성주의라는 모더니티에 압도되면서 모더니즘과 혼합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시대적 사조의 승리라고 하겠다.  

   예루살렘 회의의 현대주의적 견해의 승리에 대해서 복음주의자들은 1938년 마드라스 회의에서 대반격을 가하였고 마드라스 회의는 나름대로 복음주의 선교신학과 현대주의 선교신학의 종합을 지향하면서 예루살렘 회의의 종교혼합주의적인 경향을 분명하게 거부하였다.  이 대회는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회와 개인 모두의 성취를 의미하면서 다시 한번 복음 전도를 강조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엄밀하게 말할 때 복음주의적이라기 보다는 칼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의 기초 위에서 현대주의와 복음주의를 종합하려는 시도였다고 보인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심판과 절대적 초월성의 신학에서 출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바르트는 호킹과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타종교를 평가하는데 기독교를 포함하는 모든 종교를 다 심판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는 종교와 믿음을 분리, 대조하는 데 단 기독교만은 하나님의 창조와 선택, 의인화와 성화 때문에 믿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새 종교를 등장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폐지한 것이라고 하였다(Bosch 1985, 196).  여기에서 바르트는 종교혼합주의에 반대하는 선교의 타당성을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칼 바르트의 신학이 기초를 이루었다는 것은 신학적 모던니즘이 이미 당시 선교신학의 기조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3)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와 구분되어지기 시작하였다.  프란시스 쉐퍼는 근본주의를 복음주의의 극우파로 지칭하고 있다.  마드라스 대회는 광의의 복음전도를 주장하면서 사회와 개인 양자의 구원을 주장하였지만 이어 발생하게 되는 세계 제2차대전과 초기 이런 주장을 하던 지도자들의 은퇴와 죽음으로 광의의 복음전도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까지만 해도 "복음전도"라는 말은 아직 그 전통적인 의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어 개최되는 1947년의 휘트비 대회는 C.H. 닷드의 성서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칼 바르트와 윌리엄 템플에 의해 표현된 계시에 대한 견해 위에서 자신들의 선교신학을 세웠다.  이들은 성서 그 자체로는 복음전도에 있어서 불충분하다고 보았는데 이는 성서가 복음전도의 도구로 인식되기는 했지만 오류가 있는 성서로 인정되었고 결국 권위가 있는 사도적 성서로는 인정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말씀은 성서에서 주어진 것과 같이 역사와 사건들과 개인들 안에서도 성육할 수 있다는 것이다(Johnston 1983, 80-81).  결론적으로 휘트비 대회는 1928년의 예루살렘 대회로 돌아간 것이었다.  이미 상당수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I.M.C.에서 탈퇴하였고 현대주의적 신학자들과 신학적 세력이 약한 선교지의 교회들만이 남아있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1952년의 윌링겐 대회는 "실현된 복음전도"를 주장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충분하고 완전한 속죄가 이미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을 똑같이 구원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Johnston 1983, 85-86).  즉 보편구제설이 에큐메니칼의 선교신학의 기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것이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에큐메니칼 그룹의 신학과 더 먼 경계선을 긋도록 만들었다.  1958년의 가나 대회는 보편구제설의 연장선상에서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며 인간의 것이 아님을 주장하였다(Johnston 1983, 86-87).  즉 실현된 복음전도는 그리스도의 현세적 통치에 대한 주장을 강화시켜주게 된 것이다.  1961년 마침내 뉴델리 대회에서 I.M.C.는 W.C.C.와 통합이 되어버린다.  이후 W.C.C.의 선교신학은 1968년 웁살라 총회를 거치면서 복음주의 선교신학과는 건너기 어려운 간격을 만들면서 인간화, 사회의 조화, 해방 등의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이에 대항하여서 복음주의자들은 빌리 그래함을 중심으로 1966년 베를린 대회를 개최하면서 에큐메니칼 그룹의 선교신학에 대항하는 복음주의적 선교신학의 정립을 시도하였다.  이 대회의 개막 연설에서 그래함은 무디의 19세기 선교운동과 존 R. 모트, 그리고 1910년의 에딘버러 대회 등을 언급하며 베를린 대회가 전통적인 복음전도의 이해와 강력한 연속성이 있음을 주장하였다(Johnston 1983, 166-71).  그래함은 복음전도에 대한 정의를 베를린 회의가 해줄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대해 이 대회 에 신학적 기조를 제공한 존 스토트와 도날드 맥가브란은 고전적, 전통적 복음전도의 정의를 제공하였다.  나름대로 베를린 회의는 에큐메니칼 신학의 주장에 대하여서 복음주의의 소리를 분명히 하였다.  첫째로는 성서의 권위를 다시 주장하면서 복음전도는 성서의 권위를 역사적 기초로 한 그리스도의 권위에 의한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보편구원설은 거부되어지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함을 분명히 하였다.  헤롤드 J. 옥켄가는"복음전도의 기본신학"에서 신약의 기독교와 현대의 복음주의 양자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오직 성서만'""오직 믿음만'" 그리고 "신자의 제사장됨"을 지적하였다.  또한 옥켄가는 칼빈주의의 "선택"과 알미니안 주의의 "조건적 선택"을 재검토하고서 이 양자의 성서적 가르침이 복음전도에 있어서 극히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것이 복음전도의 방법론 곧 복음전도적 설교의 결론에서 초청을 하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관련이 되어있기 때문인데 그는 "선행하는 은총(prevenient grace)과 각 개인의 책임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의 선택을 주장하는 것이 실제 복음적 상승효과(synergism)를 일으킨다고 고수하였다(Ockenga 1966, 95-99),.  이들은 2년 후에 열릴 W.C.C. 제4차 총회인 웁살라 회의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랐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1968년 웁살라 대회가 끝난 이후의 선교신학의 위기상황에서는 피터 베이어하우스가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투사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1970년 발표된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7가지 기본 요소를 제시하면서 복음주의적 신학을 주장하였다.  첫째, 선교의 근거는 부활한 주님의 명령 안에서만 찾아져야 한다.  둘째, 선교의 주목적은 인간화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면 구원이 없다.   넷째, 영원한 속죄는 선포, 회심, 그리고 침례를 통하여 받는 것이다.  다섯째, 선교의 뚜렷하고 구체적인 과제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된 사람들로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여섯째, 구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나, 비기독교 종교를 따르는 자들은 믿음, 회심 그리고 침례를 통해서만 그 구원에 임할 수 있다.  일곱째, 교회의 선교는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계속되는 것이다(김명혁 1987, 411-18).  베이어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의해서 W.C.C.의 신학이 이전 괘도로 회귀할 것을 기대하였지만 1973년 W.C.C.는 방콕에서 열린 W.C.C. 제8차 세계선교대회에서 더욱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복음주의적 선교의 시대는 지나갔고 세속적, 사회주의적, 범 세계종교적 선교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선포하면서 구원의 개념을 인간화라든지 중국의 문화혁명이나 아프리카의 해방운동의 관점에서 해석하였다(김명혁 1987, 94-96).  이는 현대주의 사조의 영향에 따라서 성서의 절대 권한이 이들을 조절할 수 없게 됨에 따라서 빚어진 귀결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74년에 로쟌 세계복음화 국제대회를 개최하면서 당면한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도전에 반응하는 복음주의 선교신학을 정립하게 된다.  이 대회에서 존 스트트는 선교, 복음전도, 대화, 구원, 그리고 회심과 같은 용어들의 성서적 주석을 에큐메니칼 그룹의 사용과 구분 지었는데 이곳에서 그는 "선교"를 복음전도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양자를 다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재해석하였다(Stott 1981, 15-41). 그의 이러한 견해는 1966년 베를린 대회 때의 자신의 견해를 수정한 것으로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나아가서 그는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은 동반자 (partner)의 관계이며 그러나 복음전파가 우선순위를 가진다고 해석하였다.  그의 이러한 새로운 정의는 에큐메니칼 그룹의 흐름에 일부 영향을 받은 면도 있겠지만 자신의 요한복음 20:21의 해석에 근거한 것이었다.  로쟌 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신학에 분명한 선을 긋게 되는 데 첫째로는 복음전도의 우선권과 우위성에 대해서 19세기 모더니즘의 영향이 시작되어진 이래로 지속된 논쟁에 분명한 답을 하였다.  그러나 모더니즘에 기초한 수평적 구원으로 인한 역사적 복음주의의 거부 이후에 비복음주의적으로 체계화된 성육신적 신학(incarnational theology)의  압력에 불필요한 양보를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Johnston 1974, 152-55).  둘째로는 구원론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복음주의 신학을 발전시켜서 사회적 정치적 행동도 교회의 사명으로서 부담을 가지게 하였다.  셋째로는 성서의 영감에 대해서 성서는 그것의 진실성에 있어서 무오함을 확인하였다(Johnston 1983, 340-43).  그러나 로쟌 대회가 기본적인 복음전도 신학에서는 건전하였지만 복음주의자들을 복음전도의 중심성에서 이탈하게 하거나 혹은 그 관심을 둔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로쟌에서의 선교의 정의에 대한 논란은 그후에 파타야 회의, 그랜 래피즈 회의등이 이어져 열리면서 토론이 되었지만 로쟌 선언문의 정의가 지지를 얻게되었고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로쟌 II 에서도 다시 지지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로쟌 II 이후에는 로쟌 선언문의 약점에 대한 좀더 많은 비난도 일어나게 되어진다.  

   대략 1989년까지의 복음주의 신학의 전개를 살펴볼 때 이것은 20세기 초반에 대두되어진 모더니티의 특성에 대한 투쟁으로 볼 수 있으며 복음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을 하여왔다고 하겠다.  실제 복음주의자들은 20세기에 들어서서 역사에 유래가 없는 선교의 열매를 보고 있으며 특히 후반부에 들어와서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진보를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주로 모더니티의 영향을 덜 받은 제삼세계지역에 집중되어있고 모더니티의 영향을 받은 유럽과 미국지역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모더니티에 대한 적절한 선교신학의 대응은 아직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시대의 사조는 모더니티를 넘어서서 포스트 모더니티를 주장하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포스트모더니티 시대에서의 선교신학의 전개

 

   작금의 시기를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티(postmodernity)를 의도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화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들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주로 20세기 전반과 중반에 걸쳐 각 분야에서 대두되었던 여러 가지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과 그 극복을 그 내용으로 하는 움직임이고 포스트모더니티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파악되는 개념으로 개별적 분야에서의 논의가 아니라 전반적인 思想史 영역에서 발견되는 패러다임 변화를 지시한다고 하겠다.  즉 포스트모더니티는 철학적 혹은 사회 이론적 개념으로서 근대 철학사와 사상사의 맥락에서 논의되어왔던 이성의 규범성과 합리성에 대한 반성을 그 기초로 하는 논쟁의 움직임을 지칭한다(Giddens 1991, 58, 배국원 1992, 86-91, 도정일 1991, 304-5).  그러므로 신학분야의 새로운 움직임은 포스트모더니티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데이빗 J. 보쉬는 1991년에 쓴 그의 저서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에서 현재의 특징을 한마디로 포스트모던 패러다임의 등장이라고 이름하고 있다(Bosch 1991, 349).  그가 이와 같이 이름한 이유는 최근 들어서 다음과 같은 이전의 모더니티의 특성에 도전하는 성향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모더니티의 가장 핵심인 합리성(合理性)의 개념이 변화,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Bosch 1991, 352).  금세기 초반 이성주의의 대두로 인하여서 종교는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되었고 이 위협 하에서 조만간 종교는 사라질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금세기 말에 다가가면서 발견하는 것은 회교, 힌두교, 불교 등의 세계의 종교들이 다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성장하고 있는데 특히 유물론과 이성론을 근거로 하는 공산치하 지역에서 기독교가 괄목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것이 모더니티의 대두로 인한 종교의 개인화, 사유화 현상에 따른 사회의 압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생기는 반작용 내지는 완충효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대의 종교의 부흥은 이런 설명 이상의 현상이다.  오히려 이것은 합리성이라는 것이 인간 삶의 근거가 되는 기반으로서는 불충분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합리성의 확장의 한 방법은 언어가 절대적 정확을 의미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과학의 법칙을 인간의 언어가 완벽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신학적 진리도 결코 언어로 완벽하게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신학과 과학은 둘 다 탐구의 대상(probe)이지 증명의 대상(prove)은 아니라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티는 과학은 본질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적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4)  두 번째로는 주관-객관 구조(subject-object scheme)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자연을 객관화시키고 물리적 세상을 인간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구조는 불행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우리들의 세계를 폐쇄체계로 만들고 자신들을 기계의 일부분으로 만들은 것이다(Hiebert 1985b, 13).  그 결과 심각한 환경 파괴의 위협을 받게되고 서서히 포스트모더니티에서는 정신과 육체, 주관과 객관 등의 이분법적 사고가 붕괴되고 "공생"(symbiosis)의 개념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또한 이전 현대주의적 신학 사고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세 번째는 발전과정적 사고(progress thinking)의 再考이다.  현대주의 사고에서는 서구국가는 발전되어진 단계의 국가이고 나머지 국가들은 발전단계에 있는 국가라고 보며 식민주의를 합법화시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일명 "유익한 식민통치"(benevolent colonialism)라는 개념이 있었고 이 개념은 금세기 초반 선교 활동의 저변에 깔려있는 신학적 개념이었다.   당연히 선교도 개발국가에서 저개발국가로 방향이 잡혀져야 했고 선교는 서구화라는 개념과 분리시키기 어려웠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과정 혹은 개발의 사고는 오늘날 돌아볼 때 기대되었던 결과와는 다른 회의적 결과들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세상은 점차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문화인류학은 "저개발"이라는 말이 곧 "미개함"을 의미하지 않음을 분명한 소리로 보여주게 되었다.  이는 곧 서구 중심적 신학과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였고 제삼세계 신학의 등장 및 신학적 상황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게 만들었다.  네 번째로는 사실과 해석간의 문제이다.  오늘날 과학적 지식까지도 포함한 모든 지식은 다 그 상황에 따른 해석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음이 인정되어지고 있다.  즉 완벽히 가치 중립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과 가치 사이에 명백한 구분 짖기를 요구하였던 이성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해서 기독교 신앙이 새로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마지막으로는 상호연관성의 증대이다.  이전의 현대주의 사고에서는 타인에 대해서 무관심한 행습을 보였지만 점차 상호연관성(interdependence), 집결성(togetherness), 공생성(symbiosis)등이 회복되어지고 있다(Bosch 1991, 362).  

   이와 같은 특성들은 최근의 선교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큐메니칼 그룹도 이 영향에 따라서 변해가고 있으며 또한 복음주의 선교신학도 이 흐름을 간과할 수 없게 되어졌다.  에큐메니칼에 대해서는 지면의 제한 상 이곳에서 상세히 다루기 어려우므로 포스트모더니티의 현상들에 대한 최근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들만을 살펴보겠다.  먼저 지적할 만한 것은 오순절 계통 신앙의 커다란 부흥현상이다.  금세기 초반에 대두되어진 모더니티의 특성을 가지고 볼 때 오순절 형태의 신앙이 금세기 말에 이토록 성장을 보이리라는 것은 이해되어질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오순절 신앙은 세계선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세력으로 되어있다.  현재 전세계적인 기독교의 성장률은 2.3%인데 오순절 계통의 성장률은 8.1%이다.  또 현재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31%가 오순절 계통의 신앙인이다(Johnston 1994, 35-36).  두 번째는 고전적 선교의 정의로부터 점차 총체적 복음(Whole Gospel)을 주장하는 선교로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변천과정도 이러한 맥락 하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는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성이 분리, 구분의 영역보다는 총체적, 연관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는 시대사조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상황과 해석, 의미와 형식, 문화와 텍스트간의 관계에 대한 강조점이다.  이는 에큐메니칼 그룹이던 복음주의 그룹이던 필연적으로 신학적 상황화 (theological contextualization)가 최근 선교신학의 핵심 과제로 등장하게 만들은 배경이라고 하겠다.  이것도 이전 모더티즘 시대와는 다른 시대적 성향의 반향이라고 보여진다.  네 번째로는 서구중심 기독교의 와해 현상이다.  발달과정적 사고가 붕괴되어지면서 당연한 귀결로 소위 서구신학의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비서구, 개발도상국가들의 새로운 신학적 정체 확립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최근의 선교 운동과 선교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최근의 선교신학의 동향들을 포스트모더니티의 영향이라고 본다.  복음주의 신학이라도 시대적 사조의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결한 일이고 신학은 시대사조의 영향과 도전에 대응하며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시대사조의 유행적 반향이어서는  안되고 성서와 건전한 복음주의적 교회 전통에 부합되는 실속있는 발전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대사조에 따른 신학운동에 대하여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꾸준한 비판적 검토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위에 언급된 몇 가지 대표적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에 대해서 이러한 검토와 비판을 간략하게 나마 시도해보고자 한다.  

 

총체적 복음전도 - 로쟌 II 이후의 동향

 

   1974년 로쟌회의는 고전적 선교의 개념을 벗어나서 선교를 복음전파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양자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후 계속되어지는 파타야 회의나 그랜 레피즈 회의는 이 정의를 거듭 확인하였고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로쟌 II는 1974년의 로쟌선언문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또한 로쟌과 동일한 그룹으로 보기는 좀 어렵더라도 지난 80년대와 90년대에는 하비 콘이라든지 올란도 코스타스, 르네 퍄딜랴 등의 총제적 복음 개념이 강조되어져 왔다.  모두 교회의 선교를 더 넓은 개념으로 제시하면서 이전의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구분지어서 교회의 선교 개념에서 배제하던 흐름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5)   이러한 흐름이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건전한 발전인지 아니면 포스트모더니티의 영향의 반향인지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즉 단순히 시대의 사조가 그렇게 변하니까 우리의 생각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편해지고 용납되기 때문인지 아니면 건전한 신학의 발전인지라는 면의 재고이다.

   이를 위해서는 로쟌운동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비판을 통해서 로쟌의 선교신학의 취약점을 찾아보고 이것이 수용의 범위에 드는지를 재고해 봄으로써 위의 질문에 답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잠잠해 졌던 로쟌 선언문에 대한 비평적 지적들이 로쟌 II 가 끝난 뒤에 조심스럽게 다시 대두되었다(Coleman 1990, 4, Eastman 1990, 9).  주된 지적은 스토트의 견해에 근거한 로쟌의 선교운동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회 참여가 더 강조되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우려들이었다.  어쩌면 로쟌 II의 개최 장소 자체를 제2/3세계의 정치, 경제적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혹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필리핀의 마닐라로 잡았다는 것 자체가 이러한 편향성을 은연중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헤셀그레이브가 1990년 봄의 트리니티 포럼에서 "총체적 선교의 맹점"(Holes in Holistic Mission)이라는 글로서 본격적 반격을 가하였다(Hesselgrave 1990, 1-5).  헤셀그레이브의 비평은 주로 요한 복음 20:21에 대한 존 스토트의 주석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성서해석학의 원리검토, 그리고 "선교"라는 단어의 역사성 문제 등을 제기하는데 성공적이라고 보이지만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상당히 좁고 보수적인 성향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로쟌 선교신학의 가장 핵심은 선교의 정의에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 양자가 동반자(partner)의 관계로 포함되어진다는 것일 것이다.  또 코스타스나 파딜랴의 신학에서는 복음의 정의 자체에 이전 사회적 책임의 영역이라고 간주되어지던 것들을 포함시키는 것이기도 한다.  필자의 견해는 이 주장을 끌어낸 존 스토트의 요한복음 20:21의 주석 자체는 해석상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위임령을 가장 포괄적인 위임의 내용을 보이는 구절로 잡은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교회들에게 주신 위임의 내용을 반드시 다섯 구절의 지상위임령에서만 찾아야 된다는 좁은 견해를 버리고 예수의 생애와 사역 전체를 통해서 살펴볼 때 교회가 받은 위임의 내용은 좁은 의미의 복음전파 만은 아니라고 보아지며 결론적으로는 로쟌의 견해에 동의한다.6)  그러나 지적해야 할 것은 이곳에서 사용되어진 "선교"라는 용어가 너무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져서 혼동을 줄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버트 콜맨은 선교사들의 사역에서 로쟌의 정의로 인한 혼동과 균형이 깨어지는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Coleman 1990, 4).  존 스토트는 이 용어를 상당히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여서 "교회의 본질적 사명, 즉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맡겨진 모든 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선교"라는 말의 의미는 교회가 행하여야 할 모든 일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협의로 교회가 사도적 직분으로서 행하여야 할 임무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본질적 사명으로서의 교회의 선교는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 양자임이 분명하나 협의의 개념으로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아직 광의 개념의 선교를 감당할 지역교회가 없는 지역이나 문화권에 교회를 개척하는 복음전파의 사명 만이라고 구분하여야 한다.  특히 교회에서 위임받아 파송되어지는 선교사의 사명은 광의 개념으로서의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사도적 임무를 띠고 이러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할 교회를 개척하는 복음전파의 일이다.  이는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선교사의 모형이라고 할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서 잘 보여지고 있다 (행 6:4).

   또한 스토트가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을 서로가 긴밀히 소속되어있지만 독립된 동반자로 표현하는 것은 모호한 표현으로서 서로가 긴밀히 소속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 종속적인 면을 전혀 부인할 수 없는데 스토트는 종속관계는 부인하고 있다.  헤셀그레이브는 반대로 사회적 책임은 복음전파의 결과라는 종속관계를 지지하고 동반자 관계를 부인한다.  그러나 이 양자간의 관계는 어느 특정한 하나의 관계로 표현되어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양자는 서로 밀접히 결합이 되어있어서 때로는 "수단"으로, 때로는 "결과"로, 때로는 완전히 독립된 "동반자"로 나타나며 이중 하나만을 지지하고 다른 두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총체적 복음전도는 복음주의 선교신학에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교회의 사도적 임무의 균형을 깨트릴 염려가 있다.  그러나 예수의 사역은 총체적 사역 모델을 보여주고 있고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복음전파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종합하기 위해서는 "선교"라는 용어의 의미를 위의 두 가지로 구분하여서 사용하고 특히 선교지의 선교사들은 자신의 위임 내용이 교회 설립을 위한 복음전파라는 것을 분명히 하여야 하겠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은 사회봉사를 전도의 수단이나 결과로서도 기꺼이 사용하여야 한다.  최근 들어서 로쟌 운동이 서서히 잠잠해 지고 대신 거의 고전적 선교개념을 주장하는 "기독교 21세기 운동"(AD2000 Movement)이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주류를 차지해 가는 동향은 주목해볼 만한 일이다.

 

복음주의 선교신학에서 신학적 상황화의 가능성

 

   상황화 개념의 등장은 현 시대의 시대적 사조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첫째로는 기독교의 탈서구화 현상에 의한 것이었다.  이 근저에는 포스토모더니티에 의한 발달과정 사고의 붕괴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복음적 기독교인의 거의 70%이상이 제2/3세계에 위치하고 있다(Johnston 1994, 35).  둘째로는 문화인류학의 발달과 자기 위치 정립, 그리고 기독교 선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수용하게 됨에 따른 문화인류학적 영향으로서 문화의 상대성 개념의 확산을 지적할 수 있다.  셋째로는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징중의 하나인 사실(fact)과 가치(value)간의 분명치 않은 구분이다.  이는 가치중립이 없이 모든 것이 해석에 따른 편견을 가짐을 지지하는 것으로서 역시 상황화 등장의 기조가 되어졌다.  70년대 초에 상황화의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 복음주의의 반응은 한마디로 경계와 거리감이었다.  비록 로쟌 I에서 뱡 카토에 의해서 이 용어가 복음주의 그룹에서도 일찍이 사용되었지만 에큐메니칼 측에서 처음 사용되어진 이 용어에 대한 거부감은 그후 여러 곳에서 표현이 되어졌다.  그러나 윌로우뱅크 회의에서 상황화의 성서적 정당성이 입증되어지면서 서서히 복음주의 그룹도 이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용어자체의 수용에 이어서 제기된 다른 문제는 복음주의 선교신학에서는 상황화 중 외부적 요소에 대한 상황화인 문화적 상황화 개념은 토착화의 연장선상에서 커다란 논란이 없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는데 상황화 개념을 신학에까지 적용시키는 신학적 상황화 개념에 대해서는 단순하지 않은 반응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신학은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되어가는 개념이지만 교의적(dogmatic) 접근방법을 선호하는 복음주의 노선에서 문화나 상황에 따른 신학의 변화가 실제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냐 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주제이다.  지금까지 대두되어진 대부분의 상황화 신학들은 에큐메니칼 노선에서 발표되어진 것들이고 성공적인 복음주의적 상황신학의 모델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최근 한국인 학자들의 선교신학분야 학위 논문에서 상황화는 가장 인기있는 주제이지만 주로 에큐메니칼 상황화 신학의 비평에 대한 것이고 한국내의 복음주의 신학에서 바람직한 모델적인 상황화 신학의 전례는 아직 없는 듯하다.  신학적 상황화論에 대한 복음주의적 검토가 역시 필요하다.

   성서의 기록이 상황화를 보여주고 있음은 오늘날 다시 재론한 필요가 없다.  성서해석이란 단순한 자귀의 해석이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사회, 경제, 경치, 문화적 상황안에서의 해석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학은 상황화 신학이며 복음주의 신학에서도 상황화論 자체는 정당성을 차지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몇 가지 주의하여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로 신학적 상황화 시도가 context를 강조하다가 text를 희생시키거나 그 우선순위를 감하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상황이 text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text는 여전히 선지자적인 입장에서 문화를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문화에 대한 이해에서 성서의 배경이 되는 히브리 문화를 하나님의 특별한 디자인이 없는 세속문화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성서의 문화는 계시를 담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포함되었다고 인정해야한다.  셋째는 상황화 시도가 상대주의(relativism)나 혼합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넷째로 상황화 신학은 일반적인 신학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지방주의 (provincialism)에 빠지는 지방신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로 상황화 신학은 항상 완성형이 아닌 진행중인 신학으로서 겸손함과 개방형 결론(open end)를 가져야 한다.  신학적 겸손함이라는 것이 한국교회의 풍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이지만 상황화 시도에서는 반드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다섯째, 일반적으로 상황화라고 하면 행동(praxis)과 이론(theory)의 대결처럼 생각하는데 이 구조에 맥스 스택하우스(Max Stackhouse)가 주장하는 것처럼 포에시스(poesis)를 첨부하여서 고려하여야 한다(Stackhouse 1988, 84-85).  포에시스란 "상상적 창의력, 혹은 환기시켜주는 대표적인 이미지" 등의 의미인데 신앙은 단순한 진리(theory)와 행동(praxis)만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경건, 사랑, 경외, 신비 등의 포에시스적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복음주의적 상황화는 행동, 이론, 그리고 포에시스의 삼각관계에서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복음주의적 선교신학은 적극적인 상황화 시도가 필요하다.  교의적 신학(Dogmatic theology)를 지향하는 한국교회의 보수적 성향에서 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상황화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변화되는 세태가운데서 신학은 서서히 현실세계의 관심과 지지를 잃고 떠나서 관념론의 범주에서 학문적 유희를 즐기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는 즉시 교회에서 새로운 세대의 유입과 활력을 죽이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무속신앙과의 혼합주의로 서서히 그 활력을 상실하여 왔는데 90년대에는 적절한 상황화 시도의 부족으로 다시 또 그 활력을 상실하는 과정을 맛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적 상황화 신학 작업은 에큐메니칼과는 다르게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시작이 되어야 하는가?  우선은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적절한 우리의 신학적 과제를 찾아내야 한다.  오늘날 신학적 답변을 요청하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실존 상황에서 찾아내야 한다.  한국과 같은 아시아권의 국가는 커다랗게 두가지 특성을 가지는데 이는 "아시아적 특성"(asianess)과 "제삼세계적 특성"(third-worldness)을 가진다.  아시아적 특성은 주로 아시아가 가지고 있는 장구한 역사와 체계적 조직을 가진 고등종교, 철학, 세계관, 전통 등에서 유래되는 특성들이며 제삼세계적 특성은 일반적 제삼세계의 문제인 빈곤, 부정의, 독재, 폭력, 착취 등이다.  우리는 제삼세계적 특성에서 다른 아시아권 국가와는 달리 어느 정도 이런 요건들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상대 빈곤의 문제, 소외, 부패, 권력남용, 여성의 지위 등에서 아직 제삼세계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하리라고 보는데 하나는 우리의 필요이지만 서구신학이 그 신학적 답변을 충실하게 제시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빈곤이나 소외, 부패, 혹은 통일에 대한 신학적 견해가 하나의 복음주의적 상황 신학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서 침묵을 지킨다기 보다는 여러 곳에서 충분한 신학적 주장을 밝힐 만큼의 계시가 있지만 이런 제삼세계적 관심에 대하여서 서구 복음주의 신학은 침묵을 지킨 것이다.  다른 한 접근은 하나님의 계시를 우리의 전통과 세계관, 역사의 그릇으로 담아보는 시도이다.  물론 60년대에 윤성범 교수를 필두로 다양한 토착화 신학 논쟁이 이미 있었고 그 논쟁의 대부분이 바르트 신학 내지는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의 기조를 가진 학자들에 의해서 진행되면서 복음주의 교회에서 토착신학 논쟁은 곧 자유주의 신학의 표현이라고 단정지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구의 보수신학 자체도 자신들의 세계관과 철학 체계로 계시를 담으려는 시도였다면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도 성서적이며 건전한 이런 시도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한국의 세대와 사람들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복음주의 노선에서도 변치않는 복음과 변화되는 세상의 가교역할을 해야 할 우리의 신학이 적절한 상황화 과정을 밟아가야 하는 것은 과제이다.

 

오순절 선교의 부흥에 대한 복음주의적 관점

 

   선교신학에서 성령론은 오랫동안 무시되어왔다.   성령에 대한 언급이 복음주의 신학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성령의 사역을 선교신학적인 관점에서 중요시 여긴 적은 이전에 거의 없었다.7)  폴 포머빌 (Paul A. Pomerville)은 그 이유를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의 영향을 받은 서구 기독교의 왜곡된 세계관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Pomerville 1985, 5).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오순절 선교운동을 더 이상 선교신학의 영역에서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금세기 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진 오순절 운동의 선교 사역이 오늘날에는 가장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개신교회(evangelical Christian)8)와 아프리카의 급성장하는 교회의 상당수는 이 오순절 운동의 열매이다.   로쟌 II에서는 케리스매틱 계통의 강사를 초빙하는 등 복음주의 계열에서 오순절 신앙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  동시에 모더니티의 合理性의 온상인 미국에서 풀러 신학교를 배경으로 퍼지지 시작한 제삼의 물결 운동도 최근 선교의 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연구과제로 대두되어지고 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배경에도 몇 가지 포스트모더니티의 영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첫째로는 합리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금세기 초반 모더니티가 그 한계를 절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오순절 운동을 객관성이 없는 것으로 공격하던 것이 점차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성대로 주, 객관의 구조가 깨어지자 신학적인 면에서 새로운 자신의 위치를 잡는 것이 가능하여졌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서구중심 기독교가 깨어지면서 비서구 지역에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체험적, 신비적 신앙에 대한 정당화를 좀 더 큰 소리로 발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대사조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 사조의 영향이 우리로 하여금 간과하던 영역에 눈을 뜨게하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역시 필요할 것이다.  이 문제는 복음주의 내에서 여러 가지 편견과 이견들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복음주의 신학은 지금까지 이 성령에 대해서 마땅히 해야할 만큼의 강조를 하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인 듯하며 이 새로운 사조의 도전에 적극 반응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이 오순절 선교의 영향을 선교신학 내에서 신중하게 연구하고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오순절 계통은 그 선교의 영향에 비해서 선교신학이 부재함을 줄곧 지적당해 왔다.  오순절 선교가 현대 선교신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면은 크게 두 가지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는 오늘날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도전중의 하나인 선교신학의 두면 이론과  실천에서 실천과 성령의 사역을 연관시켜서 다른 에큐메니칼 체제와 상응하면서도 독특한 theory-praxis 체계를 구성하여 보는 방안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Pomerville 1985, 112-27).9)  둘째는 하나님의 왕국 개념에서 성령의 위치를 강화하는 방안인데 성부 하나님의 주재권과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 복음의 충족성,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만드시는 교회의 권능 등을 선교의 기본 구조로 제시하는 것이다.  동시에 오순절 신학도 신앙의 체험적 차원의 특성이외에서는 복음주의적 신앙 체계와 차이가 없음을 신학적으로 정립하여야 할 필요도 지적해야 하겠다.  포머빌이 사용하는 "복음주의적 오순절 관점"(evangelical-pentecostal perspective)이라는 개념을 최근 선교신학의 흐름에서는 무게를 주고 재고해야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티와 한국교회 - 나아갈 방향

 

   포스트모더니티의 영향을 몇 가지 지적하였는데 중요한 질문은 이 포스트모더니티는 서구중심의 사조가 아닌가라는 것과 이것이 우리에게 실제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질문이다.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논쟁은 사실 뜬구름을 잡는 것과 같다.  무엇이 포스트모더니티냐라는 질문에 확정적인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동일한 현상에 대해서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이것이 모더니티냐 포스트모더니티냐하는 평가는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티가 현재 서구의 사조에만 영향을 끼치는 서구적 현상이냐 아니면 이미 제2/3세계에도 깊이 침투된 사조냐 라는 것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모더니티나 포스트모더니티의 현상은 모두 서구에서만 저희들끼리 논란이 되었던 것이지 비서구지역에서는 그저 모든 것이 자신의 현 위치대로 줄곧 있었을 뿐이고 현재의 사조는 오히려 탈서구화하면서 비서구 지역의 원 사조들을 재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포스트모더니티의 견해에서 답을 한다면 이런 논쟁에서 모든 견해가 다 맞다.    이미 우리이게 포스트모더니티적 영향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도 틀리지 않았고 우리와 별 상관이 없다는 것도 틀리지 않은 답이다.  우리는 양자의 견해 다에서 한국교회의 대처를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구의 사조에 종속적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서구의 신학의 흐름이 몸에 맞던 맞지 않던 우리의 옷매무시를 결정해주었고 진행 방향을 결정해 주었다.  아직도 이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되어진 포스트모더니티적 사조의 영향에 대한 대응에서 완전히 벗어난 방향설정은 적절하지 못하고 위의 언급된  과제들에 대한 우리의 복음주의적 선교신학의 연구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서구 사회와는 다른 아시아적 특성과 제삼세계적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다른 상황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만의 독특한 선교신학적 주제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독특한 목소리를 키우는 작업도 동시에 가해져야 한다.  이를 종합하면 신학이 시대적 사조의 반영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복음주의 노선에서 우리의 과제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영향에 따른 신학에 전개 발전에 동참하면서 항상 선지자적 비판적 견제와 판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복음주의 교회들의 부담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인용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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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vid Harvey에 의하면 문화와 예술의 각 분야에서 모더니즘이 등장하는 분수령은 대략 1910에서 1920년 사이로 본다.  신학적으로도 이때에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이 발간되어진다.

2. 에딘버러 대회는 낙관론적인 선교주장이 팽배하여서 선교신학적인 결과에서는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에비하여 예루살렘 회의는 그사이에 발생한 세계1차대전과 러시아 혁명등으로 낙관론이 상당히 깨어지면서 에딘버러에 비하여 상당한 선교신학적 결과를 이루어 내었다.

3. 논란이 있지만 칼 바르트의 신학을 모더니티적 신학의 시조라고 지적하는 견해들이 있다.  (배국원 1992, 88)

4. 데이비드 롯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으로 모순성, 비연속성, 임의성, 과잉, 단락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질 수있다.  (김욱동 1991,  232).

5. 지난 1992년 에쿠아도르에서 개최된 CLADE III (Latin American Congress on Evangelism)에서는 총체적 복음의 개념안에 하나님의 말씀, 용서와 화해, 창조, 하나님의 나라, 정의, 권력, 고난받는 자에 대한 위로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6. 이 내용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拙稿 참조.  이현모, "선교의 개념정의에 대한 분석: 존 스토트의 정의와 그 반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복음과 실천』 (1993), pp. 282-304.

7. 헤리 보어나 데이빗 보쉬등이 이런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Harry Boer, Pentecost and Missions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 1961) p. 12 와 David J. Bosch, Witness to the World: The Christian Mission in Theological Perspective (London: Morgan & Scott, 1980), pp.241-42.

8. 라틴아메리카의 evangelical Christian 이란 복음주의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캐톨릭이 아닌 모든 개신교회를 의미한다.

9. 포모빌은 praxi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practice라는 용어를 즐겨한다.  아마도 praxis 라는 개념이 좀더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지칭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하나님 내가 누구죠?
글쓴이 : 隸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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