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선교

사회봉사를 통한 교회성장에 대한 연구-백암중앙교회를 중심으로

김노섭-열린문 2007. 9. 27. 22:08

사회봉사를 통한 교회성장에 대한 연구

               -백암중앙교회를 중심으로-  


조복희

 

사회봉사를 통한 교회성장에 대한 연구

               -백암중앙교회를 중심으로-  

 


             목                 차

 

 


Ⅰ. 서   론 ......................................

   1. 문제제기 ...................................

   2. 연구의  범위와 방법.........................

 


Ⅱ. 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성경적 근거

   1.구약에서의 사회봉사

     1)인간의 죄와 공동체

     2)십계명과 언약법과 사회봉사

     3)메시야 공동체와 사회봉사

   2.신약에서의 사회봉사

     1)예수와 사회봉사

     2)사도들의 이해

     3)초대교회와 사회봉사

Ⅲ.사회봉사와 교회성장의 신학적근거

   1.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본 교회 ................

     1)하나님 나라롸 성전

     2)하나님 나라와 지역교회

       (1)지역교회의 특성

       (2)교회와 성도

       (3)교회의 사명

     3)지역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역사 신학적 이해

       (1)사도시대 이후의 교회관

       (2)로마교회

       (3)개혁파교회

       (4)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4)지역사회와 목회사역

       (1)목회의 어원적 고찰

       (2)목회의 성서적 고찰

       (3)목회자와 현대사회

       (4)세상에 대한 목회적 관심

     5)오늘의 목회현장

   2. 교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역사회..............

     1)지역사회의 이해

        (1)용어의 정의

        (2)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교역권

     2)지역사회의 기능

           (1)생산분배 소비의 기능

           (2)사회화의 기능

           (3)사회통제의 기능

           (4)사회통합의 기능

           (5)상부상조의 기능

     3)지역사회에 대한 교회 역할

        (1)지역사회와 목회자

Ⅳ.지역사회봉사의 역사적 근거

     1.초대교회시대

     2.중세시대

     3.근세시대

     4.현대교회와 사회봉사

     5.한국교회와 사회봉사

Ⅴ.지역사회에 대한 선교전략방안...................

   1.지역사회에서의 선교의 목적...................

     1)지역사회의 선교에 대한 이해

         (1)선교의 개념에 대한 이해

         (2)에큐메니칼 선교와 현대의 복음주의 선교

     2)지역사회에서의 선교의 전략적 모델............

          (1)선교의 원심력과 구심력

          (2)지역사회선교의 중요성

          (3)총체적 선교방식

          (4)PUSH &PULL방식의 균형

          (5)오늘의 목회현장과 전략

     3)이 시대의 지역사회 선교신학

          (1)지역사회의 문제점과 도전하는 교회

          (2)지역사회의 선도자로서의 교회

     4)지역사회에서의 선교실천 전략 

2. 경기도 용인시의 지역사회 이해  ......................

     1)지역사회의 대한 교회의 역활

     2)지역사회에 대한 종합적인 사역방안

          (1)계획적 목회 시도

          (2)지역사회 사역방안

          (3)제자훈련목회

  3.지역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사역방안

      1)장애인 사역

          (1)봉사와 선교

          (2)소외층선교

          (3)장애인선교의 목표

          (4)목회자와 장애인

          (5)교회의 인식

          (6)봉사자의 양성 및 교육

      2)가정복음화를 통한 사회 복음화

           (1)가족의 정의

           (2)가족관의 변화

           (3)가족의 기능

           (4)현대사회의 가족의 문제점

           (5)가정 사역의 필요성

Ⅵ. 결  론........................................

 

 

 

 


Ⅰ. 서 론

 


1. 문제제기

한국의 교회는 복음이 들어온지 1세기가 채 넘기도 전에 전국민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 되는 놀라운 영적

부흥과 함께 서구교계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이 채가시기도 전에 한국교회는 성장이

둔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교계에서는 다각도로 이러한 침체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일

고 있으나 이전과 같은 급작스런 교인의 증가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더욱이 문민정부 이후 우리전통찾

기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전 군사독재 시절에는 미신이라고 치부되었던 무속과 같은 것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전통 기독교회들은 이전과 같은 급속한 성장이 일어나지 않고 있어 교계를 안타갑게 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한국교회가 맞닥뜨려야할 영적 현실이라고 진단하고 있다.1)

그러나 같은 기간 기독교회가 0.2-4% 정도의 미약한 성장을 한 것에 비해 천주교회는 년50%이상의 성장을 하

였다고 보고되고 있다.2) 이는 80년대 이후 꾸준하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온 천주교회의 이미지

가 종교를 선택하려는 순간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있다.3) 하지

만 한국의 기독교회는 전통적으로 개인영혼구원에 치중 해왔기 때문에 대사회 이미지 개선에는 실패했던 것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한국교회는 성장은 추구해왔으나 교회본질의 사명에는 충실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교회

내외의 질타를 간혹 듣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봉사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할 때가 왔다. 봉사는 기독교의 중심적인 가치요 실천의 목표이다. 본

래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신교는 지나온 한국교회

사속에서 살펴 볼 때, 전통적으로 신앙을 강조하고 업보적 구원론을 극복하려는쪽으로 강조되어 왔기 때문에

신앙의 삶의 실천이 약하게 선포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명제와 “행함이 없

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는 명제가 항상 대립되어 이해되어 왔다.

또한 의료사업과 교육사업, 자선사업과 사회봉사 사업등은 복음선포에 비해 선교의 한 방법으로만 이해되어

왔기 때문에 구원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게 이해 되어져 왔다. 이것이 결국 한국교회의 대사회봉사를 약화시

킨 이유가 아닐 까 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은총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것을 잘알고 있지만 실천을 신앙과 분

리한다든지 선교와 봉사를 분리한다든지 실천을 약화시키는 신앙관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복음이 단순히

개인구원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주체가 될 때 교회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성장할 수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사회의 이해를 바탕으로하는 지역사회의 선교방안을 연구 하는 것은 21세기를 맞이하

는 시점에서 시의 적절 하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한국교회의 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있는 순수한 신앙운동의 토대위에 사회봉사라는 성경적 가

르침을 접목하여 신앙과 봉사의 두 균형을 이룰 때 한국교회는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연구의 범위와 방법

초대교회가 로마의 제국질서에서 핍박을 이기고 세계를 정복하는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변혁의

누룩”의 역할을 잘 감당한 탓이라 할 것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형체를 공동체적으로 구현하였던 것이다

. 이들 공동체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즉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을 섬기는 사회봉사

제도를 창출하여 약자를 일으켜 세우고 가나한 자들과 함께 나누는 사회봉사를 실현 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기독교의 봉사와 사랑이 로마제국의 질서를 뒤집어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목적과 목표는 자명

하다. 역사속에 있는 교회는 무엇이며 그 정체성은 어떻게 조명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많은 논의를 거

쳐온 문제이다. 교회는 예클레시아로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다. 유기적 연합체로서 지역에 속해있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이며 그 정체성은 어떻게 조명될 수 있는지를 새삼 알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구체적인 사명을 깨닫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성서적인 이해를 심도있게 다루어

보아야 한다. 또 역사속에서 지역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지역공동체속에 들어가 뿌리내리게 되었

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리라고 여겨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삶과 죽음을 통해 기독교는 희생을 배웠고 이를 근간으로 그의 죽음이 주는 케뤼그

마로 코이노니아를 형성 했고 사회를 향하여서는 디아코니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집사

(Diaknos)들이 임명되었고 그들이 초대교회의 복지를 담당하게 되었다. 즉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돌보는 일,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전투부대가 된 것이다. 먼저 2장에서는 이러한 사회봉사에 대한 신

구약 성경의 근거를 살펴 보면서 이러한 사회봉사가 세상을 선교하는 교회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위치를 가

지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사회봉사를 요청받고 있다. 그러므로 3장에서부터

는 이를 위해 신학적 근거로서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교회와 교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역사회로 나누

어 살펴 보고자 한다.

그리고 4장에서는 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역사신학적 근거를 살펴보기위해 초대교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의 교회와 사회봉사를 다루어 보려고 한다.

그 다음 제5장에서는 교회의 정의와 교회의 사명을 살펴본 그 바탕에 의하여  교회의 사명이 봉사의 사역을

포함하는 것임을 입증한후 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지역사회선교 전략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사역의 프로그램들을 제시해 볼 것이다.

그리고 제6장은 본 연구의 결론이 될 것이다.

 


Ⅱ.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성경적 근거

예수님은 가르침은 분명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전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이요 이웃을 섬기고 이웃과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은 신앙의 삶이다. 신앙과 삶이

분리될 수 없기에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교회와 지역사회의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교회는 무엇이고 지역사회는 무엇인지 이에대한 정의

를 내려보려고 한다.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찾아 보려고 한다.

 


1.구약에서의 사회봉사

모세오경에는 온 세상의 이방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점에서 성경은 처음부터 "

세계적이요, 에큐메니칼이요, 선교적 (Universal, Evangelical and Missionary)"이다. 그러면 이러한 선교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관점 이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깨어진 결과

로 나타난 것이다.4)

1)인간의 죄와 공동체

창세기의 창조기사와 창조의 사건은 이 셰계와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보여준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첫째로 하나님께 대하여 거짓말하게 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곤경으로 밀어 넣는다.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 파괴는 사람과의 관계 파괴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로

인간은 서로간에 불신하며 반목하는 삶을 살아왔다.5) 창세기의 창조역사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말하며, 그것은 유일신 상상에서 출발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만물

이  하나님께로서 나왔으며, 인간은 하나님과 구분되며, 또 자연과도 구분되는 특수한 존재이다. 이러한 하

나님의 자기계시에 따른 창조의 기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할 선교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

이라 할 것이다.6)

즉 타락의 사건dl 선교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타락의 결과는 곧 죄와 고통과 사망이다. 타락으로 "인간에

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타락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다

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죽음이란 생물학적인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7)

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 그 자체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으며, 인간은

죽어야만 할, 즉 땅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창3:19). 인간의 타락(Fall of Man)은 그 원인이 자

신에게 있는 것이지 다른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결국 하나님과 동료 인간과 정당

한 관계를 맺고 살도록 지음을 받았으나 하나님에게 반기를 들므로서 수치감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 앞에 숨

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며, 부인인 하와와 뱀에게 책임전가를 꾀하며, 드디어는 낙원의 평화로운 상태에서 �

겨나게 되었다.8) 결국 인간은 죄는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섬김을 상실하고 공동체를 파괴해버린 결

과를 안겨다 주었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세상엔 평화가 사라진 것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의

불행, 반목과 질시, 불신과 지배는 사회구조적인 원인위에 신학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 세상은

구원의 대상이 된 것이다.

2)십계명과 언약법과 사회봉사

인간의 범죄와 타락 이후 하나님은 이들 인간을 회복시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의지로 계시가 나타난다

.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회복시키는데 있다. 아브라함의 소명은 구약에 나

타난 첫 선교의 명령이다. 창 11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전 세계의 하나님이요, 창 12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아

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자신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며, 그

의 후손들의 행운을 위한것도 아니며,  그의 원수들의 불행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

터 인간역사에 새장을 시작하였다. 아브라함은 세계구속을 위한 도구로서 부르신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진행중인 인류역사의 일환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9) 인류는 아담의 타락이후 죄

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급기야 홍수의 심판을 받게 되고 또 바벨탑의 건축으로 인하여 온 지면에 흩어

지는 하나님의 간섭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선

택된 민족으로 삼으시고 그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인 것이다. 이는 곧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

들을 택하여 세상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은

결국 아브라함을 언약의 관계속으로 부르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 되리라고 약속

하셨다.(창12:2).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아 언약의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땅에 속한 모든 가족들에

게 전하는데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누구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받아 들이면 그도 아브라함의 축복

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 때문에 아브라함에겐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축복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므

로 이스라엘은 온 백성들에게 화해를 가져와야 할 의무가 생겼다. 하나님의 구원은 불완전한 인간을 다시 회

복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회복, 자연과의 관

계 회복까지도 포함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스라엘 자신이 부름받은 것이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일환

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함이 큰 민족이 될 것을 굳게 약속해주신 것이라고 장

일선은 말한다.10)

구원이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살펴보면, 민족 또는 백성(people)이라는 말로 초기엔

“암(סע)” 과 “고이(יוֹג)”가 같은 뜻으로 쓰인 것 같다.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의 축복에도 고이(יוֹג)란

말이 쓰이고 있다.그러므로 초기에는 고이(יוֹג)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적용이 되었으나 후대에는 이방인들

에게만 적용이 된 것이다.11) 그런데 신명기 14장 2절 같은 곳에는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몸바친

거룩한 백성”으로 표현하여 “암”이란 말을 쓰고 있다.12) “고이”가 정치적인 용어로서 땅을 필요로 하

는 개념이라고도 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축복은 토지와도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암”은 원래는 혈연

관계로 맺어진 가까운 가족 내지 친척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부족(tribe)까지도 같은 말

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프리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혈연관계는 물론이려니와 하나님과

맺은 계약 때문에 하나의 종교적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13) 그러므로 백성으로서

의 이스라엘과 국가로서의 이스라엘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체제는 불가피한 곳이

었고 그것은 오래 존속되지 못하였다. 고대 근동의 많은 국가들은 국가의 패망과 함께 민족도 그치고 말았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가가 망한 뒤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음이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갖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타 민족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시말해 이스라엘의 선택과 구원은 이스라엘의 구원

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을 모두 구원하시고자 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 역시 먼저 부름 받아 교회가 되었으나 그 교회는 세상과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 된다.14)

출애굽의 사건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 사업과 세계-여기에서는 사회를 포함하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지

를 더욱 드러내어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선교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구약 신학자 로울리(Rowley)는 모세는 우리가 아는한 최초의 선교사이다고 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선택

은 방황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그리스도 이전의 사람

들이 구원받으면, 또한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봉사와 선교의 수단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해서 구약성경의 주제가

되고 있다. 사렙다 과부에게  베푼 엘리야의 이야기(왕상 17:2-24)나 수리아장군 나아만에게 전도한 계집종

의 이야기(왕하5:25)등을 볼 때에도 이방인사회에서 무명의 평신도가 사랑의 봉사와 수고를 통하여 구원한

구약적 선교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15)

많은 구약 신학자들은 출애굽 사건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러한 해석

을 우리는 유형론적(typology)적인 해석이라고 부른다. 유형론적인 해석은 역사를 근거로해서 이루어지는 것

이다. 역사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적인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것과 비교를 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같은 유형을 차찾아보게 도니다. 출애굽 사건과 부활 사건을 유형론적으로 살

펴볼 때 평면적인 차원의 대조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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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      󰠐�       부활

 


로 볼 수 있고, 수직적인 차원에서는

                    󰠐�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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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       󰠐�        세례

로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에서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기독교인 역시 세례를 통해서 물

에서 구원 받았고,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앤더슨은 수직

적인 차원의 의미변화는 마치 음악이 새로운 조로 앙양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여기에는 예전 유형에 새

로운 의미가 더 첨가되어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16) 그러면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광야로 데리

고 나오신 하나님이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들이시기 전에 데리고 간 곳이 어디인가? 그곳은 근접

할 수 없는 영광으로 뒤덥힌 시내산 이었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뵈었던 바로

그곳인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과 율법을 받았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시내산을 외면한다. 왜냐하면 시내산은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과 예수께서 산 위에서 주신 팔복을 즐겨 대조 시킨다. 그리고 모세의 산상변화(출34:31-35)와 예수의

tks상변화(마17:1-8)도 대조시켜 본다.

구약성서의 무용지설에 대해서는 이미 초대 교회의 마르시온(Marcion)도 내세운 바이지만, 종교개혁이후 개

신교에서도 이같은 구약경원 사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듯 하다. 루터같은 경우에도 구약성서는 하나님

의 율법이고, 신약성서는 복음이라고 규정하였다.17) 율법 대 복음이라는 이같은 이분법적 대조는 개신교 사

고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개신교의 이 같은 성서관은 다분히, 구약성서는 기독교인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책이라고 하는 풍

조를 낳게 된 것이다. 불트만과 같은 신약학자는 구약성서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구약의 여사를 유산(miscarriage)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불트만은 구약성서가 “계약”, “하나님의 왕권”

, “하나님 백성” 개념에 있어서 실패했다고 보며, 이 같은 개념은 신약성서에 와서 비로소 성취되었다고

보는 것이다.18)

따라서 우리는 구약성서, 특히 시내산의 계시를 다시 발견할 필요가 있다. 시내산의 율법과 계명들은 이스라

엘의 신앙이라는 범주안에서만 이해 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이 진노하는 하나님이시며 또 공

의의 하나님이시라고 할지라도, 그분은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체험을 통해 이집트의 종

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다음에 그들에게 법을 주신 구원의 하나님임을 간과한데서 오는 오해인 것이다. 결국

구원을 주시고 또 법을 주신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율법은 그 자체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얻은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속에서 지

켜야할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산상수훈에서도 드러난다. 예수에게 8복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사람은 일반 군중이 아니라 제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구원얻은 백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해서 그의

계명을 즐거이 지켜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서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와 공동체와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율법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원의 세상구원의 도구요 방법으로서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구원 받은 교회의 책임인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이스라엘과의 계약관계에서만 이해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비록 불신실하여 하나님의 답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이 먼저 그 계약을 파지하지는 않고 항상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리하

여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랑의 손을 내밀어 주시게 된

것이다. 폰 라트는 그러므로 기독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구원사건을 기점을 하여 구약의 하나님

의 법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하나님의 법을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갈 3:24).19)

출애굽기 24장 1절에서 11절까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는 기록

이 적혀있다. 여기에는 두가지 다른 전승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한 전승에는(24:1-2, 9

-11)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와 70인 장로가 산위에 올라가 야훼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는 마시고 즐거워

한다. 이같은 계약식사를 통해 계약이 체결된다. 이 계약에는 계약내용, 즉 말씀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

만 백성들의 대표와 계약이 맺어졌다는 점이다. 뉴만은 이 계약을 아래와 같이 재구성 해 본다.

1)야훼가 모세를 중보자로 삼다.(19:9)

2)백성들이 제의 준비를 하다.(19:11-13)

3)신 현현(19:18)

4)모세가 산 위에 오르다.(19:20, 34:1-4)

5)모세에게 특별 현현(33:18-23, 34:5)

6)야훼가 그의 이름을 선포함(34:6-8)

7)야훼가 계약을 허락함(34:10-26)

8)야훼가 모세와 백성들과 계약을 맺음(34:27-28)

9)백성들의 서약(19:7-8)

10)계약의 인준(24:1-2, 9-11)20)

또 다른 하나의 전승(24:3-8)은 이스라엘 큰 회중이 산 밑에서 제사를 통해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 경우에

는 모세가 단을 쌓고 또 12지파를 대신하는 열 두 돌 기둥을 세우며, 계약서를 읽고 백성들이 “야훼께서 말

씀하신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 라고 다짐한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제사 짐승의 피를 뿌리며 “이것은 야회

께서 너희와 맺으시는 피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은 계약의 조문이다.”(출 24:8)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 부분은 무척 오래된 것이며 출애굽기 20장 17절에 바로 이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24장 3절의 “모든

말씀”과 상통한다. 24장 7절의 “계약서”가 십계명을 가르친다고 본다.

이 피의 계약전승은 앞의 계약 식사 전승보다는 더 오래된 것이라고 본다. 여기의 계약은 우선 계명을 포함

하며, 그 다음은 모세가 중보자로 대리하며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연합을 뜻하는 피의 의식으로 인준을 맺게

되는 것이다.

뉴만은 이 의식의 구조를 아래와 같이 재구성해 본다.

1)백성들에게 예고(19:2-6),

2)백성들의 제의준비(19:10-11, 14-15),

3)백성들에게 현현(19:16-17, 19),

4)백성들은 모세를 중보자로 삼음(20:18-21),

5)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선포함(20:1-2),

6)야훼가 그의 법을 허락해줌(20:3-17), 7)백성의 서약(24:3)8)계약 인준(24:4-8).21)

구약성서에는 “계약”이라는 브리이스“(תידב)란 말이 모두 286번 나온다.

구약성서에서 계약을 맺는다는 표현은 “계약을 자르다”(תידב,תדכ)로 나타내고 있다. 히브리어의 berith는

아카디안어의 biritu(쇠고랑)에서 왔다고 본다.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쇠고랑을 함께 함으로 계약 당사자간

에 대한 의무를 설명하는 것이다.

시내산 계약은 멘델홀의 표현을 빌면, 이스라엘과 야훼와의 관계를 정치적인 어휘로 설명하는 것이다. 아훼

하나님은 계약의 증인이 아니라 계약 당사자이다. 이스라엘의 계약단계는 정치적인 종속관계와 같은 것이다.

야훼와 이스라엘은 동등한 것이 아니라 야훼가 주권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계약을 “준” 것이다. 이것

은 신학적으로 이스라엘의 선택과 관련된 것이다.22)

이 계약은 상대방이 설 의무를 다짐하는 상호조약은 아니다. 계약 공식은 “나는 너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출6:7)인 것이다. 두 계약의 당사자들은 동등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제창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주신 것이다. 이같은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의 결과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하나님 야훼 이외에는 딴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야훼만 따르며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같이 자신들을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 맡기는 것은 법이며, 또 하나님의 은혜로써 그

들을 대하신다. 그러기에 시내산 계약에는 이 두가지 면이 다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수가 없다. 우리가 앞에서 본 대로 하나님은 하나님이며, 인간은 인간

인 절대 간격을 메꿀 수 있는 길이란 하나님 자신이 계약을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계약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계약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히로트는 계약을 구약 신

학의 기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23)

조약은 사회 계층, 정치적 단위가 맹세를 통해 피차 구속하는 엄숙한 약속을 말한다. 고대 근동사회에는 이

미 B.C 3천년경 수메르문서 등에도 계약이 명시되어 있으며, B.C. 1500년에서 1200년경 헷(Hittite) 왕국의

조약에도 잘 나타내고 있다. 학자들은 이같은 고대조약의 형태를 분석해 본 결과 두가지 다른 형태의 조약이

있음을 발견해 냈다. 그중 하나는 동위조약(parity-treaty)이고, 다른 것은 종속조약(suzerainty treaty)이

다. 동위조약(同位條約)이란 양방이 같은 직위와 입장일 때 동등한 입장에서 피차간 약조를 하는 것이다. 그

러나 종속조약이란 일방적인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종주국과 봉신국가와의 관계이다. 종주는 봉신에

게 조약을 하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이러한 고대근동의 조약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가운데서 나온 것으로 우리를 계약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 삼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다시 세상 사람들을 계약 관계속으로 이끌어 들이시기 위한 계획인 것이

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결과로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증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3)메시야 공동체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은 묵시문학을 통하여 메시야 사상(혹은 메시아 주권사상)이 발달하게 된다(시

119:25). 시편2장, 시편 118:22-23, 시 67편은 '구약의 주기도문'으로 선교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메시아 사상은 한 마디로 말해 종국에 오실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로서, 사무엘이 보다 구체적

으로 예언한 다윗의 후손(삼상7:12-15)이시다. 그가 오셔서 종말론적으로 세상을 새롭게 통치하실 것이란 사

상이다. 이러한 메시아 대망사상이 시편에 여러곳 나온다.

시 67:2, 시 96:2 은 여호와의 구원과 영광을 열방 중에 선포 하라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에게서도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사상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서도 찬송과 영광

을 받으시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을 통해서이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칭송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친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메시야는 단지 이스라

엘 언약공동체만을 위한 메시야는 아니다. 그 분은 장차 열방을 구원 하시고 새롭게 하실 부이신 것이다. 세

상이 그를 통하여 새롭게 될 것인데, 이 대 그의 백성들이 그 약속에 동참할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세워질

새 언약의 공동체는 세상에 내재하시는 그 분을 따라 세상을 함께 새롭게 할 언약에 동참해야 한다.24)

성서에서는 교회가 세상에 내재하면서 세상을 초월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기독교 내재적(immanent)

종교로서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도록 순결하고 영적이어야 하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

하여 사회 속에서 봉사해야 한다.

모세오경에 나타나는 인간존재는 평등에 기초를 둔 사회적 존재이다. 인종과 국적과 빈, 부, 귀, 천을 막론

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친히 지으신 소중한 존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

음 받았기에 세상안에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 존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의 왕관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하라는 교훈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에굽 땅에서 나그네 였음이라 너는 과부

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

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

아가 되리라”(출 22:21-24) 또한 출애굽기에서(출 23:10-12) 규정한 안식년도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

의 깊은 자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레위기에서 가난한 자, 고아, 과부, 타국민 뿐만아니라 심지

어 “원수를 갚지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라”(레 19:18)는 말씀으로 하

나님의 소중한 피조물들을 섬길 것을 교훈하셨다.

한편 활동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그의 활동에 있어서 구체적인 장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출애굽의 사건

은 애굽의 억압된 사회라는 장이었으며 이 밖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택하여 활동하셨는데 그 종들 역

시 저들이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적 정황 가운데서 부름 받았으며 그 사회적 현상, 사실, 현실 가운데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택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각 시대적 독특한 삶의 자리에서 활동하게 하셨

다. 그들의 활동 범위는 지역사회 속에서 였다.25) 구약성서에 흐르는 교회 (하나님의 백성)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들과 공조하며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바의 인간다운 삶을 같이 나누어야 할 사명이 있다. 여기에는

이웃에 대한 언약백성의 책임도 들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모든 사람은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층 성 및 연령에 상관없

이 내재적인 존엄성을 지닌다. 또한 구약성서가 보여주는 인간존재는 오직 한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지으신

것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온 세계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온

세계의 가난한 자, 고아, 과부, 소외된 자들의 문제를 교회가 다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섬겨나가면 이러한 문제들이 상당부분 해결되리라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으로 보는 것이 메시야 사상의 핵심인 것이다.26)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의 활동은 곧 하나님의 선교 행위였으며 그것은 구원의 활동이었다. 여기에서

구원은 비단 인간의 영적인 차원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간의 전 사회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정의를 요구하는 가난한 자의 목소리와 부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가진자의 목소리가 함께 조

화를 이루는 살롬(Salom) 즉 평화의 나라 건설을 외치고 있다.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 제자도의 추구 내용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가진자가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아니할 때 이것을 책망했으며 가난한 자가 정의를 내세워 불의

한 방법으로 남의 재산을 약탈하지 말라고 하셨다. 결국 인간과 인간이 화목을 이루고 인간과 인간 뿐 아니

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자연과 자연이 평화를 회복하는 주의날을 회복하기위한 그리스도인의 온갖

노력이 제자도의 내용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예수는 가르쳤다. 이것이 메시야 예언의 주요 내용으로 등장하

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어 사자가 소 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널을 것이라

.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사11:6-9)

 


2. 신약시대

구약성서 전역에 나타나는 사회와 이웃에 대한 섬김의 교훈은 신약성서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왔으며 특히 예

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기록된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다.

1)예수와 사회봉사

구약 예언의 성취로 오신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는 말씀처럼 예수께서는 3년 반에 걸쳐 이땅에서 섬

김의 사역을 하셨고 그는 어디로 가시든지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사람들은 가르치셨으며 치료하는 이적을

행하심으로 그의 신성을 나타내셨다.27)  또한 성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저주의 대상, 미움의 대상에서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멸망이 대상이 아

니라 구원의 대상이 되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루어져야 할 구체적인

선교의 장이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신령한 양식과 신령한 음료인 생명의 떡인 말씀과 성령의 생수를 공급하시는 분이시지만 육신의

떡이 필요한 자에게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굶주림을 해결해 주시기도 하셨다.(요 6:1-13, 마 15:32-38) 특

히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종이되어 저들을 섬겼다. 병자, 과부, 고아, 가난한 자들, 여자들을 섬

겼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눅 5:31-32)

또, 예수님의 주된 사역지는 갈릴리 지방이었다. 그곳은 ‘이방인의 땅’으로 불려졌으며 오랫동안 침략자들

의 억압과 가진자들의 착취속에서 가난하고 억눌린, 그리고 소외당한 곳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와 함께 병자들을 고치며 귀신을 내어 쫓고 죄인들과 함께 친교하며 그들과 더불어서 새로운 공동채를

형성하고 그 공동체를 통한 궁극적인 세상의 구원(요10:10)으로 나아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셨다.

2)사도들의 이해

또한 사도들의 모습에서도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소외된 자들에게 섬김의 모범과 교훈이 구

체적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베드로, 요한, 바울을 비롯한 모든 예수 그리스도를 좇았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하였다.28)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동안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결과 였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과 실

천은 지금까지 선생들이 보여 주었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예수의 제자도의 커리큐럼은 메카니즘화

된 오늘날의 것과는 달랐다. 고대 희랍 철학인들이 가졌던 잡단적이거나 장소가 고정되어 제자들이 몰려 왔

던 것과도 달랐다. 그리고 특별히 수사학적인 수단을 사용치도 아니했으며 그저 그것에 가까운 시도는 비유

의 가르침 정도였다. 예수 커리의 주된 모체는 더불어 삶과 끝없는 운동체였다. 예수는 힐렐이나 가마니엘

같은 학당을 이용치 아니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출세를 위한 인본주의 교육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커

리는 규범이 인위적으로 형성된 학원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스승과 제자가 더불어 사는 현장교육이었다. 그

리고 그 현장은 고정되어 있지 아니했고 방랑자처럼 움직이는 운동체적 교육이었다. 그리고 현장에 따라 그

곳의 삶의 요청에 마추어 가르치고 치유하셨다. 그에게는 교과서가 없었고 자신의 말씀과 행동이 제자들의

교과서였다. 흔히 기독교교육학에서 예수에게서 각종 현대적 의미의 교육커리를 꺼집어 내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은 예수운동을 학문화 내지 인위화 시키는 헛수고에 불과하다. 예수의 커리는 규정된것이 없고 몸으로

부딪치며, 느끼며 인간의 삶의 문제를 자신이 직접 관여하고 체험해 내는데서부터 시작되며 또한 이론적이

아니다. 이론이라 해도 실제적 이론(Theory of Praxis)이였다. 우리는 예수 이론을 정통화(Orthodoxy)적 관

점에서 진리를 교리화 시켜 왔지만 예수는 정통적 이론자가 아니라 이론과 실재가 함게 조화를 이루어낸

Orthopraxis 였다.구태여 예수 제자도의 커리를 꺼집어 내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만남과 실천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함축할 수 있다. 예수는 제자들을 만나서 실천하는 삶으로 자신의 모습을 전승시키면서 진리의 길

을 가도록 훈련시켰다. 그 실천방법은 바로 공동체였다. 예수를 떠나서 인간이 아무것도 참되게 이룰 수 없

다는 것을 철저히 교육시켰다. 그것은 포도원 비유에서 이미 극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그리고 만남이 있으면

바로 거기에 진리운동이 수반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을 실천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산상보훈의

결론 부분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자도의 중요한 핵심은 앎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

도록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실천은 이웃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비

가 내려 큰 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쳐도 그 집은 반석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그

러나 지금 내가 한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치면 그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마

태7:24-27)

예수운동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 실현에 있었다. 그것을 제자들에게 몸소 가르치셨다. 그 하나님 나라의 내

용이 제자들이 걸어 가야할 그리고 이루어야 할 제자도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이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있어 지엽적인 성격을 배제하였다. 유산자, 무산자 구별없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무산자들과 하부구조에 속

해 있는 자들에게 더욱 호소력이 있었다. 왜냐하면 눌린자들은 언제나 정의와 공의의 실현을 본능적으로 희

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로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장으로 보았으며 그것은 가난

한자들의 소망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진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제외 되는 것은 아니었다. 구약에서

부유한 계층에 속해 있던 노아,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과 같은 왕통계열의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

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부를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는 책임하에 있었다. 그러나 모세, 사무엘, 아모스,

나단, 이사야, 요엘 같은 선지자는 가난한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시키려 했다.

제자도의 역사의식은 예수의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 기독교가 세상의 통치자로 군림했던 중세나, 기독교 국

가의 역사의식은 분명히 예수가 땅위에 건설하려고 했던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모델은 되지 못했다. 중세는

기독교가 교권과 결탁하여 부패되었고 근대의 신흥기독교 나라는 기독교신앙이 자본과 결탁하여 부패해 버렸

다. 예수는 역사속에서 인간의 욕망인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 정도는 적어도 초월해서 사는 신앙이 아니면 하

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자신은 유대인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 진정으로 못

마땅했던 것이다. 유대인의 역사의식은 극히 에고이스트(Egoist)적이고 배타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종교

의 이름으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도리어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으

면서 지배층은 외세와 야합하여 민증의 어려운 삶을 등한시 한채 지배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말이다. 이때

예수가 바랬던 것은 내면적인고 진실한 변화였다. 그는 잘못된 것을 현상유지(Status quo)하는 것을 원치 아

니했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정치적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인간

자체의 변화에서 출발되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예수에게 있어서 오늘날 우리와 같이 거창하게 내 뱉는 역

사의식, 혁명, 개혁 같은 용어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사실 역사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예 관심조차 없

었다. 그의 교훈과 삶이 바로 이 모든 것을 초월 내지 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29) 그는 의식을 말하기 전

에, 개혁을 논증하기전에 이미 실천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다원적인 탈 현대화 시대에 어떤

역사의식을 예수에게서 찾아낼 수 있을까? 차라리 역사의식을 무시해 버리고 복음적인 삶을 살면 모든 문제

는 예수의 뜻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을 것은 아닐까? 예수가 취한 시대적 상황속에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의식 그것은 희생의식이 전부였다. 바로 그러한 삶에 대한 자세가 그의 공생애

의 과정을 통해 나타났으며 우리 교회가 가져야할 의식이 바로 이러한 예수 의식임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예수가 공생애를 통해 보여 주었던 삶의 의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꼬집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이다. 구태여 세분해서 논한다면 예수의 삶의 의식은

①물질적으로 가난한 자에 대한 의식.

②계급적으로 낮은 자에 대한 의식.

③육적인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 대한 의식.

④소외 당하는 자들에 대한 의식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삶의 의식을 이러한 일들에만 국한시킨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

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일이었다. 곧 모든 사람에게 비뚤어진 삶과 죄악을 없애

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의식이었다.

3)초대교회와 사회봉사

이 생명의 운동은 예수가 요청한 쓴잔을 마실 수 있는 자를 통해서만 기적을 창조해 낼 수 있다. 가질 것 다

가지고,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다 채우고 남은 여력으로 이 운동은 불가능하다. 이 운동은 아이디어가 아

니고 실천의 과제이며 실천의 과제는 바로 희생과 버림의 정신이 없이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작업이다. 물론

그 실천은 이웃에 대한 봉사와 섬김이다. 아무 값도  지불하지 아니하고 예수의 역사를 이루어 내려고 하는

자는 비 기독교적이며 진정한 제자도의 역사의식을 모르는 자들의 무식한 작태일 따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도행전 6장에서는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교회의 생활이 복음전도의 일과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자리

를 차지하여 시행되었음을 보게된다. 사도들은 효과적인 복음전도와 질서있는 봉사를 위해 집사를 세웠다.

온 교회가 구제사업을 하였고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하는 선교의 역사도 이루게 하셨던 것

이다.

이처럼 신약성서에 흐르는 맥을 보면 섬김으로서 사회와 공조해야 하는 교회의 책임은 구약성서와 맥을 같이

하여 이어지되 점점 더 확장되고 구체적으로 실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회는 섬김으로서 사회와 공조하는

교회가 될 때 온전한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김세윤 교수는 바울 서신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공동체에 삶에서만 평화를 이루도록 사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도평화

를 실현해야 한다. 그들은 모든 이웃들에게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함으로써 의를 나타내야 한다. 심지어

이웃들이 그들에게 불의를 자행하고, 핍박을 해도 복수를 말아야 한다. 그들의 불의는 최후의 심판자 하나님

께 맡기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움으로써

의를 행하여야 한다. 그들이 원수의 악을 자신의 악으로 복수함으로서 스스로 악인이 된다면, 이는 악에게

지는 샘이 될 것이다”고 했다.30)

그러므로 교회는 원수의 악에도 선으로 대행하여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그들 편에

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모든 사람들과 -원수까지도 -더불어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롬 12:18-21).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평화의 삶을 도모할 사명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평화의 실현을 위해 적극

힘써야 할 사명도 받았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에 대한 봉사적 책임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사회

봉사는 단지 선을 베풀고 봉사를 행하는 그러한 자선 행위로서 만족하는 그런 평화여서는 안된다. 어디까지

나 그리스도의 뒤를 �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오나성하고 촉진시키려는 열망에서 나와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

다 하겠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화해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그리스도

를 속죄의 제사로 내어주신 뜻에 따라, 세상(일차적으로 인류: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피조물)을 자신에

게 화해시키자고 하는 의지의 실현이었음을 깨닫고 이것에 동참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31) 이 하

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믿음으로 덕 입어 하나님의 평화에 참여하게 된 교회는 온 세상을 자신에게 화해시킴

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화해시키도록 헌신해야 할 책임이 있음이 바울의

서신의 주요 주제 였다고 말한다.32)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세상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도모할 사명을 주셨

다. 교회가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화해 사업의 수단이다. 교회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한면, 인류의 하나님의

화해, 하나님과 인류사이의 평화는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들 사이의 화해와 평화를 의미함은

물론이다. 그렇게 될 때-그것은 종말론적인 vision인데-,하나님의 새 창조가 이루어지는 셈이고, 거기에는

태초의 샬롬이 회복될 것이다(고후 5:17-21). 이렇게 교회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와 하나님의 화해의 말

씀을 선포함으로써 세상의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Ⅲ.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신학적 근거

 


1.지역사회의 봉사의 책임을 진 교회

이 땅에서 교회의 사명을 이해 하려면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이해 해야 한다. 또 하나님 나라를 이해

하려면 이스라엘의 성전개념을 이해 해야 한다.33)

1)성전 개념과 하늘나라

유대교에 있어 ‘우주’라는 추상명사는 없다. 단지 하나님 창조의 두 부분은 하늘과 땅이다. 하늘은 하나님

의 거처이고 땅은 사랍의 거처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땅에 거처를 둔다면 그곳이 성전인 것이다. 그래서 성

전은 하늘과 땅, 즉 우주의 두 부분을 연결하는 기능, 다시 말해 땅에서 하늘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성전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이 보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복사(COPY)이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거처의 모조품이 지상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 표현을 제일 많이 사용하신 것이다.

 들어간다 라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의 장소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대

문(마7:13; 눅13:24)” ‘문(눅13:24)’ ‘열쇠(마16:19 23:139 눅11:52)’ 등의 그림언어들을 쓴 것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집’으로 상징하는 것과 연관하며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흔히 쓴 ‘잔치’

의 그림언어를 생각하여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적어도 일면 하나님의 ‘

집’에서 하나님이 ‘아버지’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백성, 자녀들이 ‘대문’의 ‘문’을 열고 그의 ‘

집’의 ‘방(요14:2)’ 으로 ‘들어가’ 그 ‘잔치’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34)     

 예수께서는 성전을 부수고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주장 했다는 이유로, 그 죄목(막 14:58)과 메시아 곧-다

윗의 아들/하나님의 아들로서 유대인의 왕이라 주장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로마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

가에 처형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성전으로 인식�을 뿐 아니라 그 성전을 구체적

으로 자신이 세울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 보았다. 예수는 실제로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한 것이다. 마

16:13~19에 있는 예수의 교회건설에 대한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35)

 이상에서 살펴본 바 대로라면 성전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인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집은 이제 교회라는 것

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안에서 또는 예수를 통해서 실제화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종말의

하나님 나라와 구원을 역사속으로 들여온 분 이라고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곧 바로 예

수의 성전되심을 완성시키는 것으로서 예수의 죽음이 새 언약을 세우는 제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면 부활은

이러한 예수의 제사가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했지만 제자들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의 구원의 사업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한 것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곳은 다른 곳이 아닌 이 세상이다. 교회가 선교를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과 새로워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이 세

상을 위해서 보냄을 받아 조재한다. 교회의 참 사명은 인류와 세상을 섬기는 일에 있다. 이런 교회는 모이기

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 군림해서 영광을 받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고난받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지금까지 교회가 하나의 지성소 역할을 하고 있

었으나 이제는 교회가 세상에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를 증거하는 대변자가 되어야 하며 비기독교

적 세계를 하나님의 구속활동의 정으로 이해하고 세상을 향해보다 개방적인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사회속에 있는 성처럼 고립시켜서도 않되며, 교회의 적을 하나님께만 두어도 안된다

. 교회의 목적을 하나님께만 둔다면 배타적으로 하나님과의 수직 관계만 있고 수평적 관계가 없게 된다.36)

세상을 위한 교회는 세상을 섬기며 모든 인간들의 복지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복을 공유하기 위해 세상을 향

해 열려진 자세가 필요하고 의사전달이 파괴된 사회에서 화해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물론 교회는 또한 역

사의 흐름을 제어하고 또 유도하면서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구원의 보음을 전파해야 하지만 교회의 행동과

자세 자체가 어떻게 그 복음 전파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할까 하는 실천만을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안녕(Man's Well - being)이라는 말처럼37)교회는 이웃선교에 대한 개념을 올바로 세

워야 할 때이다.

  2) 하나님 나라와 지역교회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E.Bruner), “코이노니아”(M. Luther), 라고 하고 그 뜻으로 살펴볼 때에

는  “선택된 무리”(J. Kalvin), “그리스도의 몸”(중세 로마 교회), 그리고 “선교”(칼 바르트)등을 들

수 있다.38) 이런 개념은 성서에서 �아낸 개념이다. 교회라는 용어의 구약의 의미는 '부른다'는 의미의 '카

알'(kahal)과 '택한다'는 의미의 '에다'('edah)가 있다. 카알은 시내산 기슭에 '율법을 듣기 위해 모인 공동

체' 곧 '의논을 위해  소집된 공동체'를 가리킨 말이나, '에다'에는 '택함을 받아 모인 집단'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신약에서는 '카알'이 '에클레시아'로 '에다'는 '쉬나고그'로 번역 되었는데, 전자는 '예수를 중심으

로 한 신자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를  의미하고, 후자는 '율법을 배우는 장소로서의 회당'인 교회를 의미하

는 말로 고정되게 되었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복음서에 단지 세번만 언급되고,(마16:18, 18:7)있다. 이 말은 예수 자신이 옛 언약

밑에 살던 이스라엘 중에서 불러내어 만든 메시아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자주 사용 했는데, 바울에게 와서야 비로소 교회의 개념이 신학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볼수 있다. 그는 골로

새서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의 몸" 으로 교회를 표현하며, 1장 18절 에서는"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그리스

도를 나타낸다. 즉 불가분의 관계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참다운 교회란

그리스도가 거기에 임재하고 성령이 사역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삼위 일체의

하나님의 소유로써, 어떤 지상국의 권위에 소속되고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고정적 규칙에 구속되어

조직된 정적 단체가 아니라, 언제든지 삼위 일체의 하나님과 생동적 관계를 가질 때 교회가 형성 된다는 것

을 의미한다.

흔히 마태복음 16장 16절이하의 예수의 ‘에클레시아 선언’을 기독교회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즉 교회는

예수께서 세우시겠다고 미래형으로 말하는데서부터 시작되어 오순절의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39)

초대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를 이어받음으로써,자기들만이 참 하나님의 집회요 참 하나님의 공동체

이며 참 종말의 하나님 백성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40)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와 관련된 어휘들을 살펴볼 때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진

리를 가르치며 그의 뜻에 봉사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41)  곧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랑의 공동체”42)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함에 의해서 처음으로 신약에 등장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마16:16)라는 신앙고백에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고 답하므로 신약에 ‘교회’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교회의 설립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므로 이 고백위에 자기

의 교회를 세우기로 약속하므로 교회가 설립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신앙에서만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즉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받아 그를 자기의 구주로 고백하면 그곳에서는 언

제든지 교회가 발생한다.  교회는 말씀의 선포 곧 복음의 선포에서 발생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

들로 증거하고 그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고 부활에 이르렀다고 선포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생겨나고 따라서 거기에 자동적으로 교회가 발생한다.  정작 교회 설립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 사역을 이루

어 성령을 파송하므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세시 그를 믿는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신앙고백

이 이루어지고 성령이 파송되므로 교회가 이루어졌으니 교회는 성령이 오셔야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자이므로 그의 예수 증거에 의해서만이 사람들이 예수 믿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성령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권세와 직임을 위임받았고 그의 증거로만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

와 구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사람들을 그리스

도에게 연합시키기 때문이다.  로마교회의 주장처럼 교황과 연합하므로 교회가 되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

니라 성령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결합시키므로 교회가 교회가 된다.  그러므로 교황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어 그를 믿는 믿음이 있으면 교회가 세워진다.43)

(1)지역교회의 특성

그런데 그렇게 세워지는 교회는  몇가지의 공통성이 있다.

 첫째, 교회는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

 지역교회가 되기 위해 먼저 사람들이 불리워져야 한다.  사람들은 그냥 교회에 오도록 불리워지는 것이 아

니고 그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이것이 신약교회의 특징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

와 구주로 믿도록 선포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고 그 지역에서 성령안에서 한 공동체를 만들 때,

지역교회는 세워지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사람들이 부름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시기

위해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도록 그의 이름으로 부르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해

서는 사람들이 결코 교회를 이룰 수 없다.  이렇게 교회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에 지

역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는데 이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과 죄악에서 불러내신다.  불러내어 자기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교

회로 만드신다.44)

  지역교회에 대한 위의 진술들을 종합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러내어 예수의

피로 구속하여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킨 공동체이다.  교회는 피로 연결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결합된 공동

체이다.  더욱 정확하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사람들을 자기에게 연합시키신다.

 둘째, 지역교회는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영적이다. 이미 지역교회의 정의에서 밝혀졌지

만 지역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교제를 하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름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하므로 교회가 교회된다.  이 연합은 성령께서 하사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서 그리스도와 결합하게 한다. 이 연합은 가장 구체적이고 실재적이어서 모든 구원 은혜가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키프리아누스의 진술이 교회에 타당하다. 이 연합은 물질적인 것

이나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이 연합으로 그리스도와 사람들이 한 몸을 이루고 한 피와 한 살

을 이루게 된다. 이 연합 때문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목된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백성을 자기에게 결합하사 자기의 몸이 되게 하신다.  이 연합은 신비한 연합이어서 사람의 눈에 식

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누가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되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런 면에 있어서 교회에

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불가시적인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한 자들만

이 중생하였고 성령으로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 곧 성령이 교회의 생활 원리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

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립하므로 교회가 성령의 거소 혹은 성전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에게만이 성령이

내주하시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성령은 없고 활동하지 않는다.45)

아브라함 카이퍼는 교회의 구성을 중보자의 설립보다 앞세우고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본다. 창조시부터 하나님

은 교회를 가지실려고 하셨기 때문에 선택교리를 교회 성립의 핵심으로 삼으나 교회 성립의 근본 진리는 그

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이 연합이 사람들을 서로 교제하게 하고 교회로서 존속하고 활동하게 한다. 그리스도

와의 연합이 하나님의 구원의 적용이 핵심이어서 칼빈이 가장 경탄한 요목이다.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번 그리스도에게 연합한 자들이 교회 밖으로 벗어나

가 구원에서 탈락이 불가능하다. 이 진리가 불가항력적 은혜 혹은 은혜의 주권성으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

와 연합한 자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풍성한 구원에 동참하고 성령의 주장하심을 누리며 살게 된다.46) 그러나

로마교회는 교황과 연합하므로 교회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사람과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람과 잘 연합하여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

으면 교회가 될 수 없다. 바로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교회를 하나님의 구원기관이라고 한다.

  셋째 교회는 지상에 있는한 지역사회를 향한 책임과 목적이 있다. 교회는 지상에 존재하는 한 전투하는 교

회이다. 교회는 죄악과 싸우는 공동체이다. 개인의 죄악을 대항하여 각자가 투쟁하지만 죄악과의 연대성을

갖고 쉽게 유기적으로 번지므로 교회가 죄악과 투쟁한다.  또 나아가 교회 밖의 사회의 악에 대해서도 투쟁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교회가 자체 거룩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지상에 존재하는 한은

성화가 완결되지 않으므로 계속해서 악과 투쟁해야 한다.47)

  그러나 천상교회는 승리한 교회이다.  아직 심판이 이루어지지 안했으므로 영광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지

만 지상에서 겪는 투쟁은 없고 안식하는 교회이다.

넷째. 그러므로 교회는 곧 지역교회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우리가 흔히 교회라고 통상적으로 호칭

하는 이 “에클레시아”는 ‘개교회’(Local Church) 곧 지역교회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개

교회란 일정한 지역에 있는 신자들의 모임(육체적 연합체 : Physical unity)을 말한다. 성경은 항상 지상의

교회들을 개교회와 연관하여 언급하였다.

  (2)교회와 성도

  교회에 모이는 성도는 첫째로,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시고 거룩하게 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

서  1장 2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를 교회라고  표현한다. 또

한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에서는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는 것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이러한 사

실에서 우리는 성도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

다.즉 교파나 민족,인종,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곧 성도인 것

이다.

  둘째는 성도는 교제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칼빈(J.Calvin)은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상호 협조와

교제하는 공동체라고 보고,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전부이며 빈부귀천,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이 모두는 그리스

도의 지체로 보았다. 바로, 교제에 해당하는 '하바르'(hab'ar)는 인간과 인간의 연합을 의미하는 단어로 '묶

는다''연결한다'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신관 때문에  구약에서 오직 한번만 이 

말을 사용 했으나,(시94:20) 이와 같은 의미의 신약 용어 '코이노니아'는 38번이나  사용 되었다. 그런데,이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은사를 다른 성도들과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가 있다. 몰트만(J.

Moltmann)은 그의  저서 '희망의 신학'에서 기독교 사회는 인간적 따뜻함과 친근성, 이웃다운 정과 생의 고

향을 제공할 수 있는데, 그것이 의미 깊고 진정한 공동체라고 말한다. 코이노니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성

령이 거하시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이다. 이것은 인간의 인격적인 상호 관계속에서 존재한다

. 그리고 이 공동체는 영적인 삶을 위한 거듭남과 잃었던 인간상을 계속되는 관계를 통하여 회복 하려는 단

체인 것이다.48)

셋째로, 증인으로서의 성도의 모습이다. 영혼의 구원은 교회의 사업이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가 시작한 구속

사업을 영속시켜 가는 모임이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나를 보낸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온 천하에 다니며",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이런 말씀처럼,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제자들의

의무였고,교회의 의무였다. '증인'이라는 말은 예수의 부활 사건의 증인으로서의 증거의 사람의 뜻이다. 예

수의 부활이야말로 예수의 메시야 됨을 나타내는 것의 확실한 증거이다. 신적 인물과의 사제 관계를 통한 그

들의 증거는 죽음을 무릅쓰고 한 증거 행동이었다. 진리를 위한 증거요 생명을 전파하는 증거였다. 이렇게

초대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였다. 우리는 이것이 사도행전 3장 35절을 통해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족속에게

까지 전도의 대상을 확대시켰음을 알 수 있다.

넷째로 그렇다면 그 지역에서 그리스도를 믿어 지역교회를 형성한 그 공동체는 당연히 특별한 지리적, 문화

적, 혈연적, 민족적 연관관계속에서 독특한 자립권과 자치권을 가지는 것이 옳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신학적인 근거위에서 ‘지역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지역교회는 어쩌면 교회의 본질에 가까우며, 신약의 교

회에 가깝고, 더욱이 다가오는 다원화 사회에서는 절실히 필요한 교회의 형태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앞서 살

펴 본 바 대로라면 모든 개교회는 지역교회이며, 또한 독립된 발언권을 가진 교회로서 여러 다양한 형태의

교회연합에 참여하게 되며, 편견이나 차별없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두가 다 하나된 형제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3)교회와 사명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고,그 교회의 사명도 그리스도의 사역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 교회를 교화하는 일,교회를 청결케 하는 일, 교인을 교육하는 일,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일, 세상에서 저지(沮止)와 계몽의 세력으로 활동하는  일, 선한 모든 것을 촉진 하는일 등이 된다. 어떤 한

신학자는, 교회의 사명이 예배와 교육, 선교 그리고 봉사라고 한다.

     a.예배의 사명

  구약 성서의 예배란 말은 '샤하아'(shachah)이고,'굴복 하는 것','자신을 드리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신

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사용 되었으므로 또한, 예배(Worship)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배란  '경외하

다','섬기다'의 뜻으로 신에 대한 사상,감정,행위로 나타내  보이는 인간의 경외와 복종이며 교회의 중심 

운동이 된다.49)

     b.교육의 사명

  교회에게 사도와  선지자,복음 전도자와 목사,그리고  교사를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에베소서 4장 11,12절에서는 말한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을 모두가

지키도록 해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교회에게  주어진 교육의 과제가 된다. 교회는 교회 자체의  회원들에

게 성경 가르침의 차원 높은 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으며, 관심을 지닌 자에게는  교육의 의무를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50)

     c.봉사의 사명

봉사라는 신약의 용어는 '디아코니아'인데,이것은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리스도의 참뜻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인 구원의 공동체로서  온갖 형

태의 봉사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누가 봉사하려면 "그리스도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봉사

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명은 불행한 가운데 있는 인간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요, 하나의 성도의 영적인

훈련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것이다.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회의

사회에 대한 봉사이다. 교회는 오늘날과 같은 봉사의 시기를 맞이해서 세상을  향한 봉사의 위치를 분명히

밝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마땅히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러한 교회는 인

간이 상실한 자아를 회복하고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제공하는데 그 사명이 있다.51)

    d.선교의 사명

  성경은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한다. 때문에, 교회는 온 세계에 복음을 들을 기회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교회는 온 세상이 그리스도에 관해 알고 그의 구원을

영접해 들이도록 기회를 주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은 예수

의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그의 몸된 교회에 위임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인을 통해  확장되어 나

가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그의 나라 건설과 확장의 일꾼이다. 선교는 기쁨으로 순종하고

받이 들이는 사람들을 모아 들이는 일이다.그러므로 교회 선교는 지역마다 하나님 나라와 상응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또한 예수를 믿고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간의 교제를 이루며 믿음 가운데 남을 위해

희생하면서 사는 신앙인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곧 선교이다.52) 이러한 교회의 여러 사명이, 다양한 각

도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끊이지 않고 실행되고 있을때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하늘의 생명을 받을수

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모습이 균형지게 갖추어졌을때 교회의 역할이 그 빛을 보게 됨은 분명한 사실이

다.


 3)지역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역사 신학적 이해

바울의 역설적인 권유인 ‘고난을 즐거워 하라’는 말 가운데는 기독교 영성의 가장 깊은 비밀과 정열이 담

겨 있다. 이는 낡은 세상은 예수의 나타나심을 증오했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듯이 정의로운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대우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당연하게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자기를 따르

는 자에게 결코 안락한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고난’은 이웃의 아픔에 동참함을 새로운 삶의 본질로 수용하는 것이다. 불의로 인한

고난,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의 흔적을 남기므로 생명의 역사를 잉태케 된다. 이런 의미에서 희

생, 섬김, 봉사, 의행등은 십자가로 인해 주어지는 진실된 인간성 회복의 징조들 이다. 또한 사랑, 기쁨, 평

화, 절제 등은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므로 누리게 되는 영원한 부활에의 전조들이되는 것이다.

 본회퍼는 당시 독일복음주의 교회의 치명적인 문제를 ‘싸구려 은혜’와 ‘복종없는 신앙’으로 파악했다.

그는 ‘싸구려 복음’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것은 마치 보부상의 상품처럼 시장에서 팔리우는 은혜, 성례

전, 사죄, 종교, 위안들을 헐값으로 넘기고 있는 은혜, 교회가 질문도 묻지 않고, 한계들도 정하지 않고, 관

대하게 축복을 소나기처럼 주는 교회의 무진장한 보물 창고같은 은혜, 말하자면 계산이 이미 다 되어있기 때

문에, 모든 것은 거저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은혜이다. 그것은 교리, 원리, 개념으로서의 은혜를

의미한다. 그것은 회개를 요구하지 않는 사죄의 설교요, 훈련없는 세례, 신앙고백없는 성만찬, 개인적인 고

백없는 사면이다. 이것이 싸구려 은혜이다”라고했다. 본회퍼는 이 ‘값싼 은혜’에 대항하여 ‘값비싼 은혜

’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제자됨의 값을 치루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마8:11-13). 이는 본회퍼의 신학개념인 “대리직으로서의 삶”에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곧 예수 그리

스도의 세상을 위한 대리적 행동처럼 우리도 세상의 죄와 고난을 대신져 주는 “타인을 위해 고난받는 삶”

을 사는 것이다.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에서도 참된 교회의 모습과 제자의 길을 바로 ‘고난에 참여하는

삶’으로 명확히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타인을 위한 삶은 종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투쟁의 영

역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본회퍼 개인이 경험한 상황 속에서 결심되었던 것으로 그는 1940년대를 전

환점으로 교회내 운동에서 사회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53)

 우리는 앞에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 몇가지를 정리하여 보았다. 곧 역사 속에서 교회

의 참된 실존을 위해서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며, 소외된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리스

도와 그의 백성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받는 삶인 것이다. 정말로 인간이 새로워지고, 세계가 새로워지고, 물

질구조가 새로와지는 세계를 세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원리를 따라 ’하나님의 혁명‘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온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려면 필요한 것이 단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실제적인 확신을 가지고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살면서 그것을 전파하는 것이다, 즉 영적 혁명으로만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

다는 것이다.

 비록 교회가 세계의 중대문제들-기아문제, 인구 팽창, 전쟁, 생태 파괴등을 직접 해결할 수 는 없지만 세계

를 위하여 존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사도시대 이후의 교회관

어거스틴의 교회관은 다음 몇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어거스틴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하고, 교회의 순정성이 신자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안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고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가 교회 안에 영적으

로 임재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며, 신자들은 이 교회 안에서 성화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어거스틴의 이와 같은 생각은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는 비록 배교자나 이단

자의 교회에서 베푼 것이라해도 합법적이며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게끔 했고, 이 문제로 인한 도나투스파의

분열을 합당치 못한 것으로 주장했다.54)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하나의 유형적 가견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을 성부로 받아

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역교회의 중요성과 필연성을 신학적으로 최초로 확립했다는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는 당시의 성례주의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또한 도나투스파의 완전주의적 교회관에도 반대하여,

역사적 교회는 근본적으로 세속적 기관이며 따라서 의인과 악인이 함께 섞여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55)

어거스틴에게 “역사적 교회는 하나님의 도성의 형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성으로 되어가고 있는 하나

님의 도성 자체”라고 할 수 있다.56) 그러므로 현세적 역사적 교회는 항상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의 긴장과

이중 구조 속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 경우 도나투스파의 사회적 이중성이 어거스틴에게는 종말론적 긴장

으로 바꾸어졌다고 하겠다.57)

이와 같은 어거스틴의 성경관은 종교개혁시대 루터나 쯔빙글리, 칼빈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2) 로마교회

로마교회는 교황이 교리와 윤리의 가르침에 있어서 무오한 권세를 활용한다. 그러므로 교황이 있으면 교회가

있고 교회가 있으면 그리스도가 있다. 모든 것을 거꾸로 전개하였다. 교회에 연합하면 구원에 이르고 교황에

충성하면 구원이 확실하고 구원에 이른다. 그런 가르침은 성경에 없는 로마교회의 유전일 뿐이다.58)

로마 카톨릭교회는 지상교회의 권세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들이 거듭났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세례를 베풀

며 심지어 교회에 이름을 등록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구원받았다는 비성경적인 교리를 만들었다. 지역

교회는 성서적으로 볼 때 타당한 것이지만 로마카톨릭 처럼 지역성과 지상성을 너무 강조하면 영적인 교회의

권위가 무시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러한 오류는 곧 교회가 아니라는 결론에 까지 이르게 된다.59)

(3) 개혁파 교회

로마교회는 성례를 구원의 은혜의 필수적인 매개로 보아서 교회가 성례를 집행하므로 마력적으로 구원을 전

달한다고 보았다. 성례는 집행만 하면 자동적으로 은혜가 전달된다. 그러므로 말씀과 무관하게 성례를 집행

한다. 마력적으로 성례를 집행하여 집행 그 자체에서 은혜가 전달된다. 따라서 구원의 전달은 교회의 배분에

달려 있다. 사제가 식사를 하면서 성례를 집행하면 구원 은혜가 전달되어 구원에 이른다.

그러나 성례는 말씀과 분리해서 시행하면 죽은 성례가 되어서 아무런 효과를 낼 수가 없다. 성례는 귀로 듣

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므로 말씀과 함께 집행될 때에만이 성례가 본래의 직임을 다한다. 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나 성례는 그 자체로는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느지를 선포하고서 그 구원의 확인을 위해서 성례가 집행되어야 한다. 

개혁교회는 로마교회와 루터교회와 달리 권징을 교회됨의 지표로 삼는다. 말씀의 선포로 거의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권징을 교회 성립의 필수적인 구성요건으로 보지 않지만 권징이 필요하다. 권징을

하지 못하면 교리와 교회의 거룩을 지킬수가 없다. 권징은 우선 윤리적인 면에서 시작하므로 윤리만을 그 전

대상으로 알기 쉬우나 윤리의 영역에서 권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리도 바로 지킬 수 없다.60) 권징은 교

회가 전투교회로서 지상에서 죄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시행되어야 할 사항이다. 아직 완전해지지 못했기 때

문에 그릇된 가르침과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 행동을 고치는 교회의 자체 정화행위이다. 이러한 권징은 지상

교회가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깨닫게 한다. 이 한계는 곧 지상교회가 가지고 있는 지역에서의 위

치도 자각하게끔 해준다. 즉 교회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나타나져야 하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 이지만 지역사회에서의 순결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교회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수

단 인 것이다.

(4)하나님 나라와 교회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는 예수님의 선포요 사역의 핵심이며 아울러 모든 그리스도인

들의 사명이요 또한 기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가르지신 기도에서 이것을 강조하셨다.

즉 교회의 지상에서의 선교적 사명은 하나님나라 실현이란 말이다. 이럴 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그리고

교회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땅위에 태어나고 부름받아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야하고 또한 이를위해 충성과 헌신을 다해야 할 것이다.61)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신 천국 비유중 “천국은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러 나가는 것과 같은 것” 인

데 모든 교회성장에는 복음의 씨앗 뿌리는 일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기에 합당한

좋은 토양이 되도록 하는 일은 하나님께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는 씨를 뿌리기에 앞서

자신이 속해있는 지역의 특성을 먼저 이해하고 파학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지역교회의 주소와 사명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란 일정한 지역이라는 토양위에 한 그루의 나무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교

회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 신약교회의 그림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젠킨스(D. T. Jenkins)의 말대로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그 속에서부

터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삶의 상황에서 종교적 도덕적 및 지적 배경의 전체로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62)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대권자로 높임을 받는 ‘주’라는 신앙고백과 케뤼그마가

발생한 것이다. 예수 안에 이렇게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이 온 인류를 위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곧 "복음"

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듣고 모여진 사람들, 즉 세상에서 불려나온 사람들이 교회(에클라시아)인 것이다.

이 교회란 말을 주님께서 쓰신 말이다.(마16:16절 이하)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우선적 임무는 복음 전파이다. (막 16:15, 눅 24:45~47, 행

1:8) 하나님의 목적은 택함받은 자들의 단체가 계속 불어나 궁극적으로는 그 數(수)가 다 차게 됨이다. 이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 명령이 열한제자에게만

주어졌지만 그 후에 제자들의 더 큰 무리에게 주어졌고 그리하여 전 교회가 곳곳에 흩어진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하는 이 하나님께로서 온 임무에 다같이 참여하게 되어진 것이다. 福音(복음)은 하나님께로

났으나 회해의 사역과 메시지는 둘다 人間(인간)에게 맡기셨다(고후 5:18~20). 하나님의 대속받은 백성들의

첫째 임무가 예배하는 것이라면 둘째 임무는 증거이다.(벧전 2:9) 어떤 교회도 그리스도의 택함받은 도구로

서 그 위치한 지역에서 그의 이름을 나타내고 그의 메시지를 전파해야 할 이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이 그 사회에서 소금으로 방부제역활을 하여야한다고 하시고

동시에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되어야하며 거룩한 소명 때문에 산 위에 동리를 숨기우지 못하고 도리어 본되

어야함을 말씀 하셨다. (마 5:13~16) 교회는 지상교회와 천상교회로 지상에 있는 교회는 계속적으로 흑암의

권세와 싸워야하기 때문에 전투적인 교회라 불리울 수 있다. (엡 6:10~17) 이와반면 천상교회는 전쟁을 끝

냈으므로 승리한 교회로 불리울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제림하시고 택함받은자의 수가 차고 모든 신자가 재

연합될때에야 교회는 그 목적의 완전한 성취를 누릴 것이다. 바로 그때에야 교회가 온전히 순결할 것인데 이

는 나쁜 것이 좋은 것으로부터 분리되고 거짓된 것이 참된 것으로부터 분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 13:39,

41, 42, 47~50, 24:31) 비로 그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의 영광스런 부활과 변회에 몸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고 (고전 15:20~23, 51~54, 살전 4:6, 시 103:5) 여기에서 이십사 장로와 하늘에 천군

천사들과 함께 세세에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계4:10~11, 5:9, 12, 13)


 3)지역사회의 목회사역

(1)목회의 어원적 고찰

 목회란 성서적인 연원에서 볼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목자 라고 한것과 예수님이 자신을 선

한 목자 라고 자증하신 곳에서 비로소 설명되는 용어이다. 곧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므로 목회

는 목양(牧羊)이다. 시 80:1, 요10:1-8. 특히 요한복음 제10장은 신약에 있는 목자 시편의 대헌장이며 목회

의 연원적 뿌리인 것이다. 먼저 목자는 자신의 양을 알고 그 양의 이름을 부르고 밖으로 인도하며 놓아주고

양들보다 앞서가며 양들을 위해 생명을 버림으로 양에게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그리고 양은 목자

의 음성을알고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목자를 따르고 타인의 음성에는 따르지않고 그 음성도 모르며 그를 피

하며 목자를 알고 따르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63)

 따라서 다윗의 시에서 언급한대로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므로 목양에 있어, 목자의 도움과 돌봄과 인도함

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관계성에서 설명된다. 아담스(J.E. Adams)도 이상의 연원적 기초를 시편 23편에서 9가

지 지침으로 나눈바 있다.64) 곧 목회란 개개의 양에 대한 관심이요, 양에게 쉼을 주는 것이며, 매일의 필요

를 공급함이요,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될 때 회복과 격려, 인내와 인도를 베풀며, 교훈과 교육과 훈계를 할뿐

아니라, 앙들에게 목표와 동기를 부여하며, 양들의 안전과 보호에 힘쓰며, 양들과 개인적인 교제와 다정한

우정속에 함께 살아가 는 것 을 연원적 기초로 지적한 바 있다. 나아가 성서를 보면 하나님 자신이 목자와

같이 자기 백성을 돌보실 뿐 아니라 많은 지도자를 세우실때도 목자 (Shepherrd)라고 하신일과 그 사역을 강

조하신 부분이 많이 있다. (창 49:26,신33:8-11,삼하5:2,왕하20:,사44:28,) 따라서 셩경에서 쓰이고 있는 목

회 (Pastoral)의 의미는 헬라어에서 연원(淵源)된 것으로양떼를 먹이고 돌보아 준다 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

이다.65)

목회란 교역자가 복음의 진리를 신자의 생활에 실제로 적용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며 크게는목양의 관점

(Perspectives)에서 교회가하는모든 역할을 가리키기도 한다.66)

또한 목회란 목자가 양을 치는것 같이 목사가 하나님의 자녀들인 신자들을 진리로 가르치는 것인데67) 곧 한

지교회를 담임한 목사가 수행하는 설교, 성례, 상담, 심방, 교회정치, 교회관리 및 운영, 평신도 지도훈련

및 교욱을 총칭하는 것이다.68) 따라서 목회는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개개인에게 전달하는 것이므로

이 말씀이 여러가지 모양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목회는 교회안에서 이러지는 구체적인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목회를 계속 수행하는 것이다.예수그리스도의 목회는 교회의 목회를 위한 표준이며 목

사의 목회를 위한 표준이며69) 동시에 목회는 인간의 용어로 설명된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볼때 목회의 성서적 연원은 목양이며 이는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위임 받은 일꾼이 그의 양에게 그의 말씀을

먹임으로 양들의 삶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목양은 그리스도의 목회이어야 하고, 양들에게 장

래의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목양을 통하여 교회의 사명을 완성하

는 것이다. 이 때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이 땅에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

 (2) 목회의 성서적 고찰

   가) 구약시대

홍수시대에는 노아가 그러했고, 족장시대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등이 목자의 한 모양으로 등장한다. 또

멜기세덱의 등장은 히브리서에서 증거되는바와 같이 그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목양

적인 지평에서 일찌기 소개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70)

출애굽기시대에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제각기 목양의 일을 하지만 이때부터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레위인들의

제사장 역할 목회가 속죄의 제사적 차원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사제 (The Priest)에게 가서우림과 둠빔 으로 상담하

고 있는 폭 넓은 목회의 역할도 보게 된다. (신33:8-11).  사사시대 특히 사무엘 시대에는 백성들이 조언을

받기 위해 선지자 (TheProphet)또는 선견자 (The seer)를 찾아 갔었고 (삼상9:9) 이때에 제사장들은 백성의

건강상의 문제확인까지 다루고 있었다. 또 이때는 선지학교를 세워 경험많고 권위 있는 선지자가 선지학교생

도를 지도하고 훈련시켰 는데 그 중에 엘리사는 엘리야의 개인교습을 받은 학생이었다. 또 나단이 다윗을,

이사야가 히스기야를 돌본 것은 그 좋은 예이다.그러나 선지자들의 목회의 주된 임무는 백성들의 영혼을 치

료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 또한 포로시대를 전후해서도 선지자들이 예언으로써 전체와 개인의 삶과 신앙을

지도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여기서 특히 겔34장에 나타난 나쁜 목자와 좋은 목자의 비교는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놀라운 귀감이 되고 있다.여기서 보다중요한 은 하나님께서 방황하는 자기 양을 기억하시고 선한 목자

의보내심 을 언약하는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슥13:17)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한온전

한 구원의 목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를 예시하는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나) 예수시대

 신약시대에 나타나는 목회는 그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가 모든 목회의 원형이고 온전한

모델로서 구현된다. 이는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을 선한 목자 곧 참 목자라고 자증하셨기 때

문이다. 이는 오실 메시야였던 그리스도가 메시야됨으로서의 현존일뿐 아니라, 당시의 거짓목자들 곧바리새

인과 사두개인들과 대비되는 호칭이기도 하다.따라서 목회는 목회적 요구를 전혀 모르는 살인자 (요10:10),

삯꾼 (요 10:12-13), 절도요 강도 (요 10:1,8눅 10:21-23), 소경 (요9:39)으로서의 목회가 아니다.그리스도

의 목회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이며, 섬기는자 (Minister)로 이땅에서 왕적인, 제사장적

인 그리고 선지자적인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수행하시는 목회인 것이다. 또한 도시와 마을로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약한것도 고치시는 목회의 3대역할을 수행하셨고이를 목

회의 본 (example)으로 세우시고 많은 목자들에게 그 발자취 (steps )를 따라오도록 하셨다.10)이는 오라 (

요1:39, 마 11:28-30)고 불러 택하시고 (call out), 자기 안에 거하며 믿게 하시고 능력 주신후 (요 10:26,

15:1-16, 마10:, 눅10:,call up),세상으로 파송하여 목양의 사명을 맡기시는 (마28:19-20,막16:16-18, 눅

24:47-49, 요 21:15-17, 행 1:8, call in)세가지 도식 곧Call out, Call up, Call in"의 흐름에서 목회의 기

초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목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목회이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목회이며 결국 예수 그리

스도와 함께 구원을 일으키는 목회여야 한다.

 다) 사도시대

 초대교회 시대에서사도들의 목회가 구현되고 있는 것은 일찌기 목회를 위임했기 때문이며 목회의 본까지 보

여 주셨기 때문이다. 오순절에 탄생한 처음교회가 얼마되지 않아 교인이 증가되고 교회에 문제가발생했을 때

사도들은 성령안에서말씀과 기도 로 목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맡기신 양을 위임 받아 치고 먹이는 (Feeding vs Shepherding) 목회에서 시작하였고, 종

내 예수사랑과 영혼구원 으로서의 목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의 두 서신과 그의 목회적 삶 속에서

나타난 목회상은 보혈목회, 말씀목회, 기도목회등이 그 기조를 이루고 있고 오로지 목회는 그리스도목회의

본을 잘 따라가는 그 자체임을 역시 보게 된다.

 바울은 교회를 조직하고 관리했으며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그리고 자기의 피로 사신 양을 사랑하되 에수사랑

위에다 목회의 기조를 두고 있다. 그는 또한 유모이면서도 엄부처럼 목회했으며 그리스도의 마음 (빌 1:8)으

로 하는 곧 그리스도의 목회를 따르고 있다. 그는 특히 3편의 목회서신을 통하여 디모데와 디도에게 그리스

도의 목회를 전수하고 독려한 바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목회의 성서적 고찰을 3시대로 나누어 살펴 보았다.

 바울은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그는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히고 데살로니가에서는 추방당하고 아

덴에서는 조롱을 받았다. 또 유대인들에게는 모든 간계로 괴로움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고상한 지식으로 일

단 수용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이를 어디서나 언제나 전했고 복음을 수용한 양들을 목양

했다.

 (3) 목회자와 현대사회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양떼를 먹이는 일을 위해서 부목자(Undershepherds) 를 지적하시고 그에게

자신의 권위를 부여 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지역교회의 목회자들은 하나님께서 불러 택하신 후 교회를 위임

받은 목양자요 말씀의 봉사자이다. 그 목사의 지도력은 교회의 공식에서 으뜸을 차지하게 된다.고로 목사는

개체교회 성장의 열쇠가 되고 모든 책임의 수반이 된다.

특히 하나님의 대리자와 사신 (고후 5:20)으로 장로(resbuteeros), 감독(episkipos), 목사(poimainein), 곧

왕, 예언자,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3중직(threefold function)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목회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71)

(4) 세상에 대한 목회적 관심

구약성서에 나오는 가인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성(창4:9-17)을 건축한 이래로 인류는 자신의 생

존의 터전으로서 도시를 건설하게 되었다. 역사상 인류가 건설한 도시들은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

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왔으며 지금도 그 도시화는 진행되는 과정으로서 세계는 도시화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형편이다. 지속적인 도시의 급격한 팽창과 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이 도시로 하여금 현대 사회

의 기본 골격과 구조를 이루어 간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미치는 의미가 실로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대 도시의 상황이 교회의 선교와 사역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은 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 본연의

사역과 메시지의 세속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많은 신학자들과 사회 과학자들은 도시가 주도해 나가는

현대의 제현상을 일컬어 ‘교회의 위기’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의 급변하는 정치적·

경제적·사회·문화적 상황은 교회의 정체성과 기능에 심각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해 왔고 따라서 교회의 역할

은 점점 축소되고 그 위치는 사회생활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고 주장한다.72) 그러므로 목회자는 지역사

회를 목회적 관점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4)오늘의 목회현장

오늘 우리들이 처한 목회현장은 어떻게 변해있는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백암중앙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역시 이러한 전체적인 한국사회의 변천구조안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전체적인 구조변화는 대도시화와 이에따른 부도심의 도시화 현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자가 속해있는 백암중앙교회도 한 때 한적한 시골 전원지역이었으나 인근의 분당이 인구 40

만의 신도시로 변화하면서 덩달아 전원주택 바람이 불고 있는 전원지역이다. 한 때는 급격한 인구 감소로 말

미암아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었던 지역 이었는데 최근 전원을 찾는 사회적 현상과 경제 사정의 곤란으로 귀

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잠시 인구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대도시화 혹은 부도심의 도시화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지역사

회를 이해하려면 도시화에 대한 이해속에서 농어촌 지역을 이해 해야 한다.

도시화는 부정적인 결과를 많이 낳는다. 그것은 나약한 인간의 죄성에서 나온 것임을 우리는 가인의 예를 통

해서 잘 알고 있다. 반면에 매우 긍정적으로 도시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현대의 급격한 도시

의 성장으로 인하여 적은 노력으로도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고무되는 입장

이다. 이런 의미에서 Lay Bakke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도시화시키고 계시다”라고 까지 말하였다. 이런 도

상에서 교회는 도시에 대한 자기의 선교적인 방향을 심사숙고 해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73)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도시 집중화 현상으로 인하여 상대적인 열세에 놓인 교

회의 현실을 이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도시란 무엇인가?’ 먼저 그 정의를 살펴보자. 일반적으

로 도시란 영구적이고 상대적으로 크고 인구가 조밀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량을 위해 제 1차 산업에 종사

하지 않고 다양한 직업의 기회가 있는 지역적 의미를 갖는다. 이외에도 시골 생활과는 달리 이질적 경제활동

, 비전통적이고 기동성 있는 분위기, 빠른 생활 속도, 이질적 인간들의 생활, 복잡성, 빠른 변화, 편리한 익

명성, 생활 비밀 보존, 2차적인 사회적 접촉, 문명적 세련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곳이 바로 도시이다.

두 번째는 살펴볼 필요가 있는 단어가 도시화(urbanization)라는 말이다. 어떤 나라의 도시화를 측정하기 위

해선 전체 인구 중에서 몇 퍼센트가 현재 도시 지역 또는 도시와 인접한 지역에 살고 있느냐를 두고 이야기

하게 된다. 전형적으로 도시화의 과정은 기술적 변화 - 예를 들면 농촌의 기계화로 인해 농촌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따위 - 로 농촌의 인구가 도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또는 외국으로부터

의 인구 이동 때문에 도시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도시의 인구 집중 외에도 도시화란 권력과 힘의 집중화의 과정을 포함한다. 대다수의 국가 기관과

기업들, 다국적 기업들의 본부들이 도시에 위치하게 된다. 이러한 힘의 집중은 도시가 보다 넓은 사회적, 경

제적 사회 체제 안에서 각종 활동들을 연결시키고 통합시키는 주도적 중심점으로 기능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서구 지역의 도시화는 UN의 통계에 의하면 1990년도를 기준으로 73%에 이르고 있으며 도시 인구는 무려 9억

명에 달하고 있다.74) 이런 점에서 서구 교회 지도자들은 도시의 전략적인 중요성을 이른 시기에 인식하고

도시를 선교의 중심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1980년대 이후로 급속히 많아지고 있다. 이론 인해 도시는 사

회 문화의 주류를 형성하여 가고 있고, 농촌지역은 상대적으로 종속현상이 심화되는 실정이다. 도시주의

(urbanism)는 결국 농촌을 주류문화권에서 소외시켜 놓는 일이 생기게된 것이다. 정병관은 도시주의를 아래

와 같이 정의한다.

“도시주의라는 말은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도시에는 독특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이 방

식이 도시를 특징짓는 사회 환경과 독특한 경험의 결과이다.”75)  즉 도시의 내적인 속성을 정의하는데 쓰

이는 단어인 셈이다. 이와 같은 도시의 구도에서 도시의 인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을 때 어떠한 변화가 있었

는지 <표 1>에서 살펴보면 1920년까지만 해도 세계 인구의 14%만이 도시에 살고 있었으나 1, 2차 세계대전을

지난 후로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29%에 육박을 하고 급기야 1990년에는 45%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

세가 지속될 경우 2000년에 가서는 세계 인구의 50%(32억 명)가 도시에 살게 될 전망이다. 이것은 1965년 세

계 인구와 맞먹는 숫자가 된다. 또한 2025년에는 65%의 세계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게 된다. 제 3세계에서는

2025년에는 제 3세계 총인구의 61%에 해당하는 44억의 인구가 도시 주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표 1>1970-2025년 도시 지역에서 사는 인구 비율과 도시 인구76)

    지 역
        도시 지역(%)     
        도시 인구(억 명)
 
 1970
  1990
  2000
  2025
  1970
  1990
   2000
  2025
 
 전세계
    37
    45
    51
    65
    14
    24
    32
   55
 
제3세계
    25
    37
    45
    61
    7
    15
    23
   44
 
선진국
    67
    73
    75
    83
    7
    9
    9
   11
 


또 이때가 되면 대도시들의 숫자가 제 3세계 쪽에서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예로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50년대만 해도 제3세계 국가들에서 500만 명 이상이 되는 대도시가 2개에 불과했으나 2000

년에는 34개로 늘어갈 전망이며 이것은 전세계 대도시의 76%에 해당하는 것이다.

<표 2>1950-2000년에 5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들의 지역별 분포77)

   연 도
           대도시들의 수
        분포   비율
 
  전세계
   선진국
   제3세계
   선진국
   제3세계
 
   1950
     6
     4
     2
     67
     33
 
   1970
     20
     9
     11
     45
     55
 
   1990
     34
     11
     23
     32
     68
 
   2000
     45
     11
     34
     24
     76
 


AD1세기만 해도 세계 인구는 현재 인도 인구의 1/3도 되지 않는 2억5000만 명에 불과했다. 또 1750년 산업

혁명이 도래되었을 당시만 해도 세계 인구는 7억 2,800만 명에 머물러 있었다. 산업 혁명 이후로 산업화된

선진국에 인구가 증가하게 되면서 세계 인구는 24억 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난 40년간 세계 인구는 급기야 2배로 늘어나 50억이라는 숫자에 달하게 되었다.78) 세계 인구의 팽창 가도

에서 한국의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 발표한 「89년 인구 이동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시 지역에 살고 있는 인구의 비율은 80년 57.3%에서 89년 73.1%로 증가했으며 또 서울, 인천, 경기 등 수

도권 인구 비율도 지난 60년이래 20.8%에 달했으며, 오는 2천년에는 46.8% 그리고 2020년에는 급기야 전 인

구의 절반이 넘는 50.2%가 수도권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이제 한국에서 도시가 갖는 중요성은 코앞에 닥

친 현실이라고 판단이 된다. 감신대의 이원규교수는 한국 교회가 60-70년대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구

의 도시 집중화로 도시 교회의 성장을 지적했다. 1982년에 서울이 전체 교인 수의 35.7%(270만)를 차지하고

서울, 부산, 대구, 인천의 4대 도시를 기점으로 도시가 전체 교인 수의 45.2%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

나 있다.79) 

이러한 추세 속에서 이제 도시는 교회의 관심의 대상 정도가 아니라 전략적인 중심지로서 사역되어야 할 필

요성에 노출이 되어 있다. 「교회 성장을 이해함」이란 명저를 통해서 도시 선교 전략의 중요성을 간파한 도널

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그의 책에서 도시 선교에 관련한 8가지 전략80)을 논하고 있으며 도시 선교

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면서 하비 콘(Havie Conn)은 한국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의 도시 선교의 경험을 살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중심으로 도시 선교 연구소를 창설하고 「도시선교(Urban Mission)」라는 전문 연구 잡

지를 발간하고 있는 실정이다.81)

도시화의 과정은 다양한 원인에서 출발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양성하지만 두드러진 특징은 인구의 이동과 함

께 농어촌 지역의 소외인 것이다82). 즉 초창기에 형성된 거대한 도시들이 황폐되어 가고 식민지 시대에 피

식민지 지역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도시 안에서 빈민화되어 가고 그들의 거주지 슬럼화 되어 가면서 이민자들

이 도시에 몰려들어 심각한 도시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제 1세계의 도시 거주민은 보다 안전한 지

역으로 거주지를 삼고 신흥 주거지역으로 교회마저 옮기는 과정에 있다. 한국도 제 1세계의 비도시화 과정에

는 미치지 못하지만 점점 그 정점을 향해 가는 중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백암중앙교회를 통하여 소외 되어진 농촌지역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고 위로하는

사역을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19년전 이곳에서 교회를 개척한 것이다.83) 도시로의 이민자들이 빠져 나간 그

공간을 채워주는 전략적인 측면의 선교적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선행될 때 우리들도 이에

따른 지역사회 선교전략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2.교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역 사회

1)지역사회의 이해

   (1) 용어의 정의

우리는 지역사회를 영어의 community84)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common', 'commune', 'communal'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공동체‘, ’공동소유‘로 해석하고있다. 이 어원은 communis 라는 라틴

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중세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ommunis는 라틴어 com(함께)과 munis(

봉사하는일)의 합성어로 shared by all(모두가 참여한다. 모두가 분담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85)

community라는 용어는 의미의 엄밀성 결여와 다양한 사회형태로서의 기준이 애매하고 문제가 있기 깨문에 의

미를 정의하는데에 한계성에 부딪치게 된다. 이 용어는 다의성을 지니고 있어 이를 한 단어로 충실히 번역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전(영한사전, 민중서관발행)에 번역된 의미로는 (1)정치, 문화, 역사를 같이하는 사

회, 공동사회, 공동체, (2)공중, (3)지역공동사회, 한지역 사람들 전체, (4)동물의 군서, 식물의 군락, (5)

공동, 일치, 유사사상, 이해따위, (6)재산의 공유, (7)단체,...계(이해따위를 같이하는)등이다.

community는 공동사회나 공동체라는 말이 가까운 뜻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community를 지

역사회로 사용하고 있다.

Ross는 지역 사회를 두 종류로 구분 하였다. 하나는 지리적 지역사회로서 어떤 지리적 영역내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지역의 범주가 일정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동일한 관심을 가진 지역사회로서 하나의 관심이나 몇가지의 관심을 같이하는 사람들로 이루어

진다. 정당, 교회 또는 전문적 단체등이 그 예이다. 이 사람들은 정규적으로 서로 만나지는 않지만 어떤 특

정주제에 관한 그들의 관심이 지역사회를 형성한다. Ross의 정의에 따르자면 지역사회는 외형적, 지리적, 영

토적 경계선으로 한정되는 특징을 지니며, 또 다른 하나는 사회문화적 동질성과 동일성, 자조 및 공동행위와

상호관계의 형태로 한정된다.

 사회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역사회의 대표적인 개념은 마키버(Maciver)와 갈핀(Galpin)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마키버는 지역사회를 공동생활권(area of common life)이라고 한다. 그는 지역사회의 기초로서 지역성

과 지역사회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공동성을 사회적 유사성, 공통된 사회적 관념, 공통된 전통,

공통된 관습, 공속감에서 �고 지역사회의식의 구성요소로서 동료의식, 역할의식, 의존의식을 지적하고 있다

.

(2)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교역권

갈핀은 지역사회의 개념을 교역권(trade area)이라고 한다. 그는 지역사회의 범위를 분산된 토지에 거주하는

농가가 교역중심지(읍, 면)의 주민들과 상호작용 하면서 교역관계를 맺고 있는 시장권을 말한다. 즉 시골의

농가가 필요한 물건을 읍(town)이나 촌(village)에서 구매하고 농가가 생산한 물건을 그곳에서 판매하러 가

는 지역적 범위를 전형적인 농촌지역사회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사회학에서는 지역사회의 개념을 생활권으로

보느냐에 따라 큰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86)

지역사회에 대한 우리나라 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권태준, 김광웅은 지역사회는 첫째, 일정한 공간성

을 기반으로 하여, 둘째, 그 속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세째, 상호작용 가운데서 공통된 결속체

를 형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간적 테두리에 같이 모여 사회조직을 이룩하고 단일문화를 공유하면서 그 공

동체에 대한 일체감을 지니는 생활터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지웅, 최상호는 지역사회란 일정한 영역에

서 공동의식과 그 영역에의 소속감을 갖고 활동하는 인간집단이라고 포괄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87)

사회복지에 있어서 지역사회의 개념은 주로 1955년 이후에 �아 볼 수 있다. 사회복지 이론에 있어서 지역사

회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주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어떤 단일성 또는 분리성을 지적하는

물리적, 지리적, 지방적 경계선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문화적 동질성, 합의, 자조 또는 다른 공동행위와

상호작용 관관계성의 형태이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지역사회를 지리적 조건으로 형성된 지역집단(locality

group)으로 간주하려는 것이고, 후자는 지배적인 생활이익(관심)으로 형성된 이익집단(interest group)으로

간주하려는 것이다.

이상의 여러 정의에서 살펴본 바를 종합하여 지역사회의 정의를 내리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지역사회는 “지리적 영역과 공동생활 요인을 동시에 구비한 인간집단을 지역사회” 라고 볼 수 있다.

 


2) 지역사회의 기능

우리는 지역사회의 개념에서 지역사회란 사람들이 단순히 어떤 한 일정한 장소에서 함께 거주한다는 이상으

로 상호관계를 맺고 피차 서로간에 생활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을 알았다.

Warren은 “사람들이 지리적으로 근접된 생활을 하게 되면 그들은 생활을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사회구조

(Social Structure)와 사회적 기능을 발전시킨다. ”고 하였으며 Merton도 “모든 인간사회는 주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지속적인 유형을 갖추게 된다고 하였다.”   지역사회가 수행하는 여러가지 기능이란 자녀

양육, 물자의 생산, 분배, 소비 등을 포함하는 인간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지역 사회가 공통적으로

수행하는 주요기능에 대해서 Gilbert와 Specht는 Jhonson과 Warren의 기술을 다음의 다섯가지 즉 1) 생산 분

배 소비  2)사회화  3)사회통제  4)사회통합  5)상부상조의 기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88)

(1) 생산 분배 소비의 기능

생산, 분배 및 소비의 기능은 그 지역사회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효율

적으로 생산하고 이를 일정한 경로를 통하여 분배하여 주민 각자의 욕구에 따라 소비하도록 하는 기능을 말

한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물자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기능은 주로 기업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

나 정부를 위시한 각종 전문기관, 종교단체, 교육기관들도 이러한 경제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 사회화(Socialization)의 기능

사회가 향유하고 있는 일반적인 지식 사회적 가치 그리고 행동양태를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전달시키는 과정

을 말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회성원들은 다른사회의 성원들과 구별되는 생활양식을 터득하게 되는 것

이다. 사회화의 과정은 개인의 어린시절에 특히 중요하다. 일생을 통해서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다.89)

(3) 사회통제(Social Control)의 기능

사회통제기능은 지역사회가 구성원들에게 그 지역사회의 규범에 순응하게하는 기능을 말한다. 모든 지역사회

는 그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도덕, 규범 및 규칙등을 준수하도록 하는 강제력을 지역사회가 지니고 있다. 이

러한 강제력이 결여된 경우 사회질서가 파괴되어 비행과 범죄가 만연되는 “사회해체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사회가 복잡해 감에 따라서 이러한 사회통제 기능을 담당하는 일차적인 기관인 정부의 경찰

력, 사법권을 통해서 보편적으로 적용 할 수 있는 제도만으로는 통제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

스러운  사회통제를 위해서는 다른 여러조직인 가정, 학교, 교회와 사회기관들이 이러한 기능을 부분적으로

수행하여 그 지역사회의 가치규범이 올바르게 형성되도록 하여야한다.90)

(4)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의 기능

사회통합의 기능은 지역사회가 전체사회를 유지 및 발전시키는데 보완적 역할을 담당함을 의미한다.   특정

제도의 구성원이나 전 사회체제의 구성원들은 상호간에 충성하여야 하며 사회체제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 어느정도 결속력(Solidarity)과 사기(Morale)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앞에서 살펴 본 사회화의 기능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해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수단(Mechanism)이고 사회통제의 기능이 그러한 행동

을 하도록 지배하고 강조하는 수단이라고 한다면 사회통합의 기능은 사람들 스스로 규범을 준수하여 바람직

한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Warren은 사회통합이라는 용어 대신에 사회참여(Social

Participation)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제반활동에 그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가장 대표적인 제도는 종교제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회적 기능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통합에 필요한 사회적 가치와 규범을 만들어 내는 사회조직으로는 가

정, 학교, 사회단체등을 들 수 있다. 사회통합의 기능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규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회와 시대에 특히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91)

(5) 상부상조(Mutual Support)의 기능

사회 구성원들이 이상에서 살펴 본 주요사회제도에 의해서 자기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경우에 필요하게

되는 사회적 기능을 말한다.92)

 


3. 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역활

초대교회는‘흩어지는 교회’ 로서 지역 사회 속에서 봉사와 선교를 위해 존재하였다.93)  그러기에 초대 교

회 성도들의 생활양식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동시에 이웃과의 공동체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1)지역사회와 목회자.

목회(牧會, Pastoral)라는 말은 목사를 의미하는 ‘목(牧)’자와 교회를 의미하는 ‘회(會)’자로 되어 있다

.여기서 ‘회’는 모임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 교회(Ecclesia)라는 뜻인 ‘성도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란 목사(Pastor)가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ㄹ을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선한 방법을 동원하여

가르치며, 기르며,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94)

목회라는 말은 헬라어 ‘포멘(Pomen)’에서 나온 말로서 ‘양떼를 돌본다’는 의미를 가진 낱말이다.  이 말

이 18세기 이후에는 목회라는 말을 쓸때 ‘포이메닉스(Poimenics)'라는 말로 나타나게 되었다.95) 이것은 ‘

목회를 연구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96)

목회라는 용어로 번역되는 독일어 Seelsorge라는 말은 ‘셀( Seel)’과 ‘조르게(Sorge)'가 합성되어 이루어

진 말이다. Sorge는 돌본다, 돌보아 준다, 보살핀다는 의미로서 원래 이 용어는 근심, 걱정, 불안을 돌보아

준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진다.97) 즉 이 말은 영혼을 돌본다는 의미를  가진다. 목회가 영혼을 돌보는 것이

라는 개념은 사실상 종교 개혁때부터 생긴 것이다.98) 그러나 영혼을 돌본다는 의미로서의 목회사역이 전인

(whole being)으로서의 인간이 아닌 인간의 영적 부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을 정치적, 경제적 혹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관심이  아닌 신학적 인간, 성경적 인

간으로서의 이해라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는 말도 아니다. 인간의 전 삶을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로서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99)


3)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역활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김으로서 순종해야 하는 대상이 세상이지만 현실적으로 개체교회 하

나 하나가 온 세상과의 공조의 관계를 유지하기란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교회는 공조해야 하는 대

상을 볼가불 그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사회로 그 범위를 한정 할 수밖에 없다. 즉 개체 교회권내를 자기

교구로 정하고 그 지역사회의 모든 기관, 단체 및 주민 생활의 문제들을 교회의 문제로 삼아 그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100)

특별히 신명기 15:11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가난한 자, 고아, 과부, 의지할데 없는 노인, 인생문제로 방

황하는 자 등 여러 부류의 사람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a)교회는 지역사회에 공헌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성서에서도 교회가 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찾게된다. 창 14장에서 아브라함이 그 근방에 많은 일을 감당하는 것과 요세보 이방나라 애굽에 공헌

하여 경제적 위기에서 구하였다. 신학의 초대교회를 위시하여 교부시대, 중세시대, 종교개혁 시대를 거쳐 현

대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우선적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b)항상 지역사회에 깊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관심과 반응은 연쇄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는 곳에 반응도 없기 때문이다.

(c)교회가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와 교회가 공조함에 있어서 교회는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야 하고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인이시오 구

원사역의 주체이시며 세상은 언제나 객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계 중심적인 존재

가 됨으로써만이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다.”101)

(d)교회는 지역사회와 공조해야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살랑구원의 대상인 지역사회와 연대감속에 존재해야

한다. 굼림의 자세가 아닌 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친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 20:28)하신 것 처럼 세상은

교회의 섬김의 대상이다.

(e)공조의 근거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가 섬김의 사역을 시랭함에 있어 그 근거는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같이 뜨거운 사랑이 수반되어야 한다.

(f)목회자는 교회 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채의 목회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전 지역사회가 그의 교구이다.

(g)효과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역사회의 아픔과 상처를 알아야 하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즉흥적인 섬김은 그 섬김의 결과 역시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무계획 무전략의 섬김으

로는 지역사회를 변화시킬수 없고 그들과 교회가 공조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지역사회 상황과

요구를 파악해야 하고 문제의 우선순위를 결정한 다음 효과적인 활동계획이 수립 되어야 한다.

(h)실행된 전략은 평가되어야 하고 특별히 말씀을 중심으로한 평가가 수행되어야 한다.102)

이상의 모든 원리와 실천은 인간의 노력으로써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고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전개

되므로써 모든 교회의 신도가 구원의 감격안에 기�고 이 구원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위한 열

렬한 기도가 앞서고 또 항상 동반되어야만 한다. 구원받은 자가 구원하며, 감격하는 자가 감동시키며, 은혜

를 아는 자가 은혜를 끼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지속되도록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

고 찬양과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 선교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복음 전달을 통한 세상 구원이라

는 사실을 상기해야 된다.

 

 

 

Ⅳ.지역사회 봉사의 역사적 근거

 


1. 초대교회시대

예수께서 공생애 3년을 걸쳐 가르치신 사도들은 요한복음 20장 21절의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의 제자들이다.

예수의 제자들인 사도들은 영혼의 돌봄과 약한자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초대교회 사역의 현장에서 충실히 나

타내었다. 그것은 그들의 지역공동체 안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지역의 사람들은 그 일어난 사건을 소상히

알고 있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10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

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

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3-47)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목회 현장의 모습인 사도행전 2장의 말씀에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구원받는 사

람이 날마다 더 하였다고 증언하므로 사도들이 ‘영혼의 돌봄’에 충실하였으며 구원받은 그들의 삶의 모습

을 증언함으로 ‘약한자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사도들이 가르쳤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봉사의 현

장은 지역사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초대교회의 봉사의 삶은 ‘과부와’와 ‘고아’를 매일 구제하

는 것으로 시작되고 발달이 되었다.104) 이 두가지의 사역은 교회가 성장되어 가며 모이는 수가 더하여짐에

따라 사역이 구분 되어졌다.

교인의 수가 많아지자 사도들 만으로는 영혼 구원과 봉사의 사역을 감당 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공평한 봉

사의 사역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헬라파 사람들은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였고 초대교회는 교회의 사역을

구분하게 되었던 것이다.105)

이 말씀은 초대교회의 사역이 크게 두 가지인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영혼 구원”을 위한 “말씀의 사역

”(ministry of word)과 “봉사의 삶”을 위한 “구제의 사역”(ministry of tables)이다.106)

초대교회의 일곱집사는 “봉사의 삶”을 위한 “구제의 사역”을 위해 선택되어진 교회의 직분이다. 이것은

“봉사의 삶”이 초대교회 목회 사역의 한 부분 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 역시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궁핍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주일에 헌금을 거두라고 하였다.107)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성령의 은혜를 입은 새사람으로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

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라”고 권하였다.108)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사랑은 “봉사의 삶”을 해

함으로서 완성 되어진다고 강조 하였다.109)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정결하고 더

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

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초대교회에서는 “봉사의 삶”이 단지 하나님에 대한 봉사의 의무 다음으로 수반되

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예배 가운데 하나로 묶어졌다. 이러한 봉사는 먼저 믿는 사람들을 중심으로한 코이노

니아와 그 지역에 잇는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디아코니아의 사역으로 이어졌다. 이

것은 결국 교회가 그 존재의 기반을 두고 있는 지역에서의 역할이 지상교회의 정체성임을 보여주고 있는 성

경적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중세시대

중세시대에도 섬김으로서 사회와 공조하는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기독교가 수세기 동안 많은 박해를

받아 오면서도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노예, 빚진자 등을 섬겼으며 특히 수도회(수도

원)들이 불행한 사람에게 대해 순수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당시에 많은 수도원은 섬기는 사역과 책임에 관

계되었고 특히 초기의 수도원은 일종의 병원과 숙박시설을 겸하고 있어서 많은 병자들이 찾아와서 병을 치료

받고 고아, 과부, 나그네 등 갈곳없는 사람들의 숙소가 되었으며110) 교회보다는 수도원쪽에서 적극적이며,

비교적 순수한 사랑으로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므로 사회와 공조하여 사회의 칭송을 들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 종교개혁시대에 루터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우선적인 문제중의 하나는 걸인사회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교회와 신자들은 이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라"111)고 1520년에 발표한 선언문에서 주장하며 무위도

식하는 걸인들의 온상이 되고 있는 교회의 바람직하지 못한 구제사업의 개혁을 촉구했다.

 


3. 근세시대

교회가 지역사회와의 만남을 시도할 때에는 항사 자기가 무엇을 들고 나가야 하는지, 그 만남의 의도가 무엇

인지를분명히 해야만 한다. 교회가 중심에 지니고 있는 것은 그 만남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만 한

다. 교회가 중심에 지니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살아계신 그리스도로서 교회와 함께 하는 그가 세상사람의

삶을 자기의 권세안에 두고서 사랑으로 다스리고자 하신다. 신앙이란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세상의

현실속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권새를 드러내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 사회적 문제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사회문제는 그 자체로써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태고로부터 있어온 문제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그 문제의 성질이 여러모로 변해가고 있다. 고대에는 그것이 우선 노예의 문제였다. 중세에 와서

는 사회문제가 일면 등장하는 소시민과 일면 다양한 군주 사이의 긴장 갈등관계로 등장하였다.

종교개혁 시대에 와서는 그 긴장관계가 혁명적인 농민전쟁의 반발로 드러나게 되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사�ㄴ제가 산업노동자의 사회적 불안은 정치적으로 볼때에 제 일차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기업주가 주는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피고용인으로서 고용인과 비

인격적-간접적인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직장과 직업은 자기 자신들이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현대의 사회문제는 맑스주의의 사회분석에 의해 두절대적인 “계급”에 분류된 바 있다.

즉 “프로레타리아트”와 “자본가”라는 두 기업이다. 그러나 칼 맑스가 범한 오류는 이 두 계급을 절대적

인 것으로단정해 놓고 시간이 감에 따라 프로레타리아트가 승리하고 자본주의는 종적을 감추게 되리라고 예

견한데 있다.  맑스가 예견치 못한 제3계급인 중감계급이 출현한 것이다. 이 중간 계급은 산업경영상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경영자들이다. 이 경영인은 프로레타리아트도 아니며 자본주의도 아니고 전혀 자본

을 투자하지 않거나 극히적인 자본만을 투자하고 있으면서도 산업체를 경영해갈 책임과 권한을 소유하고 있

는 것이다. 이들 역시 비록 경영의 책임을 맏고 있으나 그들 역시 피고용인 내지는 노동자이다. 이들이 보다

노임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정적인 것은 산업적 노동 과정에 있어 하나의 인격적

인 “소리”를 낼 수 있고 다소간의 경영 결정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상적인 노동자들은 단지 하나

의 비인격적인 번호요 숫자에 지니지 않는 것이다.112)

 


4.현대교회와 사회봉사

현대산업사회 속에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의 숫자로서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서 존재하는

절대 다수의 인간실존의 문제가 우리 교회가 주시해야 할 지역사회 주민의 문제이다. 우리는 여기서 노사문

제를 거론하고 자본주의의 폐단을 파헤쳐 보려는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가 지닌 제반 구조적인 악들은 결국

인간의 타고난 본질적 죄성에 그 근원을 두는 것으로서 우리는 그 근원을 박히고 인간 각자가 회심하여 이웃

을 발견하고 이웃과 더불어 공존공생하며 사랑과 평화의 세계를 이루어 가기에 힘써야 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개혁,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처럼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

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개인 개인이 그리스도의 대속하는 복음에 접하여 회심하고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안에

한 형제자매 임을 깨닫게 되어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 기독교 교회의 선교사명이 있고, 개교회가 지닌 지역

사회에 대한 봉사와 전도의 중요성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자본주의적인 생산정신은 단지 인간의 노동력의

착취라는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무섭고 악한 것은 인간의 사물화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의 있

어 능동적 인격체가 아니고 단지 “노동력”일 뿐이다.113)

사회적 평화는 두 가지 문제가 조화있게 해결될 때 찾아온다. 첫째로 물질적인 것으로서 노동조건, 임금, 휴

가, 사회보장등이다. 그 다른 면은 정신적인 것으로서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인정하

는 것이며, 거대한 기계속의 한 이름모를 숫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것이다. 임금을 갑절로

올려받고, 휴가를 세배로 늘려 받는다 할 지라도 인격적 존중의 읫ㄱ이 결여될 때에는 그 노동자는 언제까지

나 비인격적인 숫자로 머물며 순전한 ‘노동력’으로서 타 노동력에 의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지역사회의 이웃, 인간의 인간도미에 관심을 기울이고 전인적인 상담자요 봉사자로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교회의 사회봉사활동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점진적인 발전이 있어왔다. 그 한예로서 “영국에서는 교회가

1908년 파이어 재단(Paiyer foundation)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금주운동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비행선도를 위

해서 보호감찰사업(The propation Service)을 시작하였고 최근짜지도 집없는 어린이들의 입양이나 시설보호

(The residential care)을 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114)

또한 무디목사도 가난한자를 위한 목회열정을 통해 많은 사회봉사활동을 하였다. 이와같이 시대는 바뀌어도

성서에서 시작되어 사도글과 초대교회에 이어진 섬김으로 사회와 공조하는 교회의 모습은 교부시대와 종교개

혁시대를이어 현대에서 더욱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섬김의 전략도 보다 더 다양하게 발

전해 왔으며 특히 최근에는 인간의 전인적인 구원에 관심을 두고 모든 개인이 사회에서 정신적, 육체적, 인

격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엄한 존재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사역에 힘쓰고 있다.

 


5.한국교회와 사회봉사

지난 1세기 동안 한국교회의 민족의 증흥을 이루는데 많은 일을 감당하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동안 많은 의미있는 일에 동참하면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 왔던 것이다. 1950년도의 민족상잔 증인의 역할

을 감당했고 1960년대에는 빈곤, 질병등 고난의 신학적 의미를정립했으며 1970년대에는 경제부흥과 함께 교

회내의 인적자원과 재정적 자원을 축적했고 1980년대에 이르러 자역사회의 선교를 점차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장로교회가 성장한것에  대하여 여러가지 원인으로서  자립,자치, 자력 전파의 네비우스 선교정책

을 들수 있다. 그러나 보수신학을  자칭하는 장로교 일부교단에서는  지나친 분열로  80년도 초32교단에서

93년도 61개  교단으로 배가 늘어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할수 없는 것으로서 교회성장은 수적성장만이 아

니라  한몸으로서의 지체의식이 중요하며 이것을 남미의 신학자 코스타스(Costas)는 유기적  성장으로 표현

했는데 이 유기적 성장이 없을  때 교회의 사회적 영향을  감소되며 궁극적인 전도의 문을  막을 수 있다.

감리교는 80년 64만에서  93년 136만으로 무려 배이상으로  성장했다. 감리교회는 1976년 10월 전국선교대회

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선교의 기초로 하면서 교세확장을 위한 전도에  박차를 가하고 초대교회

의 신앙을 계승하고 있다.115)

 한국교회의 성장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원규는 한국교회 성장은  교회구조적인

요인 사회  상황적인요인, 문화적인  요인이 모두 작용한 탓이라고 했다. 교회 구조적 요인으로는 첫째 교회

운동으로서 60년대부터  확산되었던 부흥운동, 성령운동, 신유운동, 전도운동 등이 교회성장의 분위기를 조

장했다는 것이다. 둘째 교회의 프로그램으로써 성경연구와 친교를  도모하는 것등이라 한다. 세째 한국교회

의 구조적 성격으로 한국교회의 개교회주의와 넷째 교회성장의 사회 상황적 요인으로는 1960년대 이후의 한

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으로는 한국의 종교문화 그 자체가 교회성장에 매우 적합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민의 종교성은 매우  수용적이고 적극적으로써 즉 지성과 이성적인 측면보다는 

감성과 열성이 더 강해서 이것은  무종교의 권위나 종교인의 타종교로의 개종을 용이하게 하였고  무교적 기

복성과 현실주의를 대중성 확보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의 지도력과 영적권위, 영적각성운동과 신앙적 갱신, 인간적 욕구 충족과 사람 수의 모임, 긍정적

사고와 성취의욕, 복음 위임의 우선성 확보, 목회프로그램의 다양화 등이다."116)

나일선은 한국교회가 성장한  첫번째 요인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 했다. 일본보다 한국에 그리스도인

이 많으며 중국이 공산화된 상황에서 한국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

다고 그는 밝혔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한국 땅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선교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 넘는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에는 훈련된 사역자들이 많은 것을 그는 두번

째  성장요인으로 지목했다. 한국에는 1백개가 넘는 성경학교와 신학교,8천명이 넘는  신학생이 있으며 92년

말 통계로  해와에 2천5백76명의 선교사가 파송될 만큼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에서는 자

녀가 목사나 선교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도 성장의 한 요인이 됐다고 그는 분석했다

.

한국은 특정한 국교가 없는 단일민족이라는 점도 교회성장의  요인으로 꼽았다. 2백25개의 언어와 2만가지의

계급제도를 가진 인도, 2백가지 언어와 54종류의 종족이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7천1백7개의 섬에서 50종족

이 80여가지의 언어를 사용하는 필리핀 등은 복음전파에 많은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언어와

풍습이 하나이기 때문에 단시일에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또 일본의 신토, 대만

의 불교, 중동권의 이슬람교가 국민들의 생활을 지배해 왔으나 한국의 경우에는 샤머니즘과 정령사상이 오히

려 기독교를 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것이 나일선의 주장이다. 인간은 스스로 힘이 없고 더 높은 존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종교적 성향이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내재해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한국교회가 가진 사회와 세상에 대한 관심이었다. 초기 선교

사들과 기독교인들이 성경번역과  문맹퇴치에 앞장선 것도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가져온 한원인이  됐다고

그는 설명한다. 성경번역은 한글을 보급하는데에 일조하였고, 문맹퇴치는 반상의 사회서열을 파괴시키는데에

큰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권익을 신장시키는데에도 큰영향을 미쳤다.117)

특히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1884년에 번역됐고 신약이  1900년에 출판됨으로써 신앙생활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으며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워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한글의  우수성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분석이다.

나일선은 절망과 어둠속에  잠겨있던 1907년에 부흥운동이 일어난  것과 초기 기독교인들의  애국심도 교회

성장의 한  요인으로 간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1907년의 부흥운동은  한국인과 선교사와의 관계개선, 기독

교인들의 도덕수준 향상, 새벽기도회와 같은 새로운 예배모임을  탄생시켰으며 강력한 회개운동을 불러 일으

켰다는 것. 일제치하에서 교인들이 민족의 지도자로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만큼 자기백성에 대한 사랑을 갖

게 된 것이 복음화율 30%라는 기적을  창출해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된

다"는 말처럼 일제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이 받은 핍박, 가정에서 불교나  유교신앙을 가진 부모로부터 핍박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지적이다.118)

반면 같은 기간 백암중앙교회와 같은 농촌교회는 심각한 침체와 쇄퇴로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같은 원

인으로는 이농현상으로 농어촌은 상대적으로 이농현상과 도시교회의 급성장을 가져왔다. 예를들면  어느 도

시교회는 개척 1년 만에  1000명을 돌파 했다고 하는데 이중에 불신자였던자가 신자가 됐다고는  볼 수가 없

다. 대부분 기존신자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또한  원인으로는 농촌교회 성장 전략의 빈곤이다.119)

이로인해 대부분  목회자들은 농촌목회 기피현상으로  농촌교회를 지나가는 정거장 정도로 생각하고 반면 

도시에서는 개척교회 과다경쟁으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상가에 교회가 밀집되어 소위  교회공해를 일으

켰다. 무자격 신학교를 세워 교역자를 대량 생산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도시교회가 밀집되어 교인쟁달

전으로 이어져 목회가 전쟁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까지하며 이런모습이 비추어지면서 개척교회 기피 현상으로

도시에서 개척 성장이 어려워지는  등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국내의 한 연구조사기관이 연구한 것을 보면, 설문조사 결과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전체의 성장경향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120) 66.8%의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을 성장이 큰 양

적성장이라고 평가 한것, 그 이유를 기복신앙(35.3%) 물량주의33.1%) 선교활동 부재(22.3%), 이단 성행

(9.3%) 순으로 꼽았다.

아울러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성장전망에  대해 현시점을 교회성장의 부정적 요소들을 극복할때 지속적인

교회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61.3%) 즉 현시점을 교회성장의 위기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부작용

의 해결을 통한 미래의 교회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또 한국교회의 앞날이 밝다고 긍정

적으로 전망한 목회자는 22% 였으며 더이상 성장의 가능성이 없다고 부정적 평가를 내린 목회자도 15.2%나

됐다. 교회가 성장되지 않은 요인에 대해 이를 이미 스스로 분석해 본 목회자도 91%나 됐다.121)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역사상 그 유래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성장을 하여왔다. 특히 선교 2세기를 맞아

각 교단마다 새로운 선교적 자세와 비전을 모색하고 있으며 2000년대에 한국교회는 아시아 제일은 물론 세계

적 교회로 성장하리라고 추측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근년에 년15%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한국 기독교

인구는 1천만을 육박해  가고 있고, 한국에만 유일하게도 약 138개의 신학교(대학)와 8개의 신학대학원이 있

다. 또한 이러한 양적 성장에 대해 '성장이냐 비대냐?' 하는 논쟁이 일어냐며'한국교회 성장 이대로 좋은

가?' 하는 반문이 일어나고 있다. 위와 같은 성장에 관하여 교회성장을  야기시킨 요인을 신앙체험을 통한

개인의 내적 변화와 정치적, 역사적, 격변으로 인한 사회적 요청사이의 긴장관계에서 일어나 종교현상으로

보기도 하였고, 사회구조적  불안요인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된 사회적 반작용이라고 보기도 하였으

며, 현대의 도시와, 산업화로 생성된  혼란과 불안정이 사람들을 교회로 향하게 하였다고 보기도하였다. 뿐

만 아니라 성령의 은사와 신비적 권능에 근거한 성령운동의 열매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교회 성장을

면밀히 살펴보면 심각한 문제와 병폐를 안고 있음으로 발견한다. 교회성장학은 한국교회에 크게 공헌한 것이

사실이지만 반면에 역반응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122) 교회성장에 있어서 부정적인 요소들이 한국교회에는

두드러진 양상으로 작용해 왔다고 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자기 반성과 개혁 성찰과 함께 성장에 대해

바람직하고 성숙한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이에 한국교회가 이상적 모형으로 삼고 추구해야할  교회성장의

원리를 모색하고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Ⅴ.지역사회에 대한 선교전략 방안

 


성도들의 생존권과 생활권이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재현되는 거점이 지역사회이다. 이러한 지역사회는 산업화

와 도시화로 그 본래의 기능, 즉 앞에서 살펴본 1) 생산 분배 소비  2) 사회화 3) 사회통제  4) 사회통합 

5) 상부상조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마비되거나 파괴되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생존권과 생활권

과 직접 연결되는 병리현상이 지역을 중심으로 누적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있어서의 “지역사회”는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거점”으로서의 기능에 다양한 문제점들이 내재 되어있다고 판단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고 보호되는 “지역사회”로 재편성하고 재창조해 갈 필

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123)  교회의 밭이요 삶의 바탕이 되는 지역사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때에 병리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사회의 기능을 치료하여 지역사회의 일치와 공동의 삶을 지향하도록

하는 일을 교회는 할 수 있다. 부름받은 백성들을 지역사회속에 존재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1.지역사회에서의 선교의 목적

1)지역사회 선교에 대한 이해

선교는 이제 교회의 보편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독일의 신학자 바그너

(F. Wagner)는 기독교선교는 과거나 현재나 항상 문제가 되어왔다고 지적한다. 한국교회역시 이에 대해 예외

는 아니었다.124) 독일의 신학자 프라이타그(W. Freytag)도 과거에는 선교가 문제를 가졌으나 지금은 “선교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125) 역사상에 있어왔던 많은 선교의 배경에는 정치, 경제, 군사적인 문

제들이 뒤따랐다. 우리가 지역사회에서이 봉사를 통한 선교를 논의 하기에 앞서 먼저 선교의 개념을 정립해

야할 필요를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1)선교의 개념에 대한 견해

선교라는 말의 영어「Mission」이다. 이말은 라틴어 「Mitto」에서 왔는데 이는 헬라어 「ἀποστἐλλω

」와「πἐμπω」에 해당한다.126) 이는 메시지를 전달하러가는 것을 말한다. 즉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여행하면서 그를 보낸자의 권위를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하러 가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적인 의미로 씌여지면

신앙을 다른 공동체에 보내는 일을 말하는 것이 된다.127)

Missionary는 13세기 카톨릭 수도원에서 처음사용되었다. 그 의미는 세상에서 사도의 생활과 사역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자를 지칭하였다. 그러나 16세기와 17세기에 이르러  카톨릭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을 「선교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용어는 개신교 선

교와 선교사에게도 그대로 사용되어 지금까지 이른 것이다. 개신교에서 이 선교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사람이 독일의 선교학자 바르넥(Warneck)이다. 그는 선교를 「비 기독교 세계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하여 복

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했다.128) 현대에 이르러 선교의 개념에 대한 성경적 개념 형성에 많은 시도가 있

었는데, 1952년 독일의 윌링겐에서 모인 선교대회에서 이의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 되었다. 교회의 선교적 임

무란 주제에 대해 선교에 대한 교리는 교회일치,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인 세계질서와 밀접한 연관

이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선교수행에 있어서 교회 연합을 강조하고 선교의 주역은 서구의 교회와 함께 비서

구의 신생교회들도 함께 담당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129)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교즉

「Missio Dei」에 대한 관점을 정리하게 된다.130)

「Missio Dei」에 대한 개념이 보다 구체적으로 정립된 선교대회는 1968년 웁살에서 열린 W.C.C의 4차 대회

이다. 이때 증거 보다는 봉사를 공존 보다는 대화를 해야한다는 적극성을 보임으로서 사회주의의 대화를 시

작하게 되어 사회정치적인 선교의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131)

그러다가 1975년 나이로비선교대회와 1983년 뱅쿠버 선교대회를 기점으로 사회선교의 관점에서 교회중심 그

리고 말씀중심의 선교운동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132)

프랑크 프루트 선언문에서는 선교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세계에 전하되 모든 사람이 그를 믿어 구원

을 얻을 때 까지 선포하는 일”이다고 했다.133) 여기에는 교회내외에서 행해지는 설교, 성례, 봉사등의 모

든 활동이 그리스도교의 선교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복음주의 선교개념에도 두 가지의 조류가 있다. 첫째는 복음을 듣는 자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전달을

위주로 하는 선포의 선교이고 둘째는 사람의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듣는 사람을 확보한 다음 그들이 예

수를 믿도록 까지 하는 설득의 선교이다. 134) 후자 선교론의 대표자가 미국의 맥가브란 교수이다. 현재의

어떤 기독교인의 집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30억(이제 잠시 후면 40억에 이름)의 인구

전부는 반드시 현대적 기독교 선교의 특수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135)

이러한 선교관에 근거하여 교회성장학을 발전시킨 맥가브란의 선교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선교란 예수그리스도에게 아무런 충성을 바치지 않는 상태에 있는사람들에게 복음을 문화권을 초월해 전하

는 것이며 그들을 고무하여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와 주로서 받아들이게 하며 주 예수그리스도의 소유인 교

회의 책임적인 구성원들이 되게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전도와 정의를 실천에 함께 사역하며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것처럼 이 땅에서도 그 뜻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136)

 


  (2) 에큐메니칼 선교와 현대의 복음주의선교

20C 기독교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운동중의 하나는 에큐메니칼 운동일 것이다. 「위대한 세기」인 19C에 서구

교회는 전세계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서구교회는 분열로 말미암아  선교지에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선교에 큰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연합 운동이 일어났다.137) 교파간의 대화가 기적적으로 그 문이 열려

지기 시작한 것은 20C 초부터 강하게 일기 시작한 에큐메니칼 교회운동 때문인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 이점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그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공헌이 인정되는 것이다.138) 이 에큐메니칼

운동은 1948년 암스텔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의회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를 탄생시켰다.

W.C.C는 매 7년마다 각국의 회원들이 모여 총회를 가지는데 이때 스탭들이 해온일을 보고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방향을 제시한다. 1954년에 에반스톤에서 2차 총회를 가졌고 3차 총회는 1961년 뉴델리에서,

4차총회는 1968년 웁살라에서, 5차총회는 1975년 나비로비에서, 6차총회는 뱅쿠버에서 가졌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하나지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인종적, 사회적 모든 장벽이 제거된 통일된 세계이다.139)

여기서 W.C.C의 선교개념을 알기 위해서 세계 선교대회의 선교개념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크게 유익할

것이다. 왜냐면 1910년 세계적 최초 선교대회인 에딘버라대회부터 1980년 멜브른 대회까지 국제선교협의회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는 시대를 잘 반영하여 동시에 그 시대의 유명한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있기 때문이다.140)

먼저 에딘버러에 나타난 선교개념은 19C 전통적 선교개념과 큰 차이 없이 3차 원리에 의한 교회설립과 개인

영혼 구원에 중점을 두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교세계에 복음을 어떻게 전하느냐 하는 전략에 중점을 두었

다.141) 그러나 1952년의 Willingen 선언 이후부터 「선교」란 말 자체가 전통적인 선교개념인 영혼구원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으로 변하게 되었다. Missio Dei개념에 의하면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

님이 세상에서 일하셨고 또 지금도 일하시는 사역에 대해 교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142) 이 선교라 규

정하였다. Willingen 선교의 개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교란 주님의 말씀 대한 복종만이 아니며, 또 회중의 모임이 대      한 헌신만이 아니라 선교란 모든 구

속받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겠다는 뚜렸한 목적을 가지고 이들의 파송인 하나님의 선교에 참

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참여하는 선교운동은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 그 근원이 있다.”143)

Willingen 이후 Missio Dei를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킨 독일의 George F. Vicedom은 선교란 이상 「교회의 선

교도 될 수 없고 심지어 우리의 선교도 될 수 없고144) 오직 그의 선교」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주의 선교론은 「하나님-교회-세계」의 도식위에 서 있는데 새로운 선교론은 『하나님-세

계-교회』로 바뀌게 되었음을 보게된다. 교회는 더 이상 선교의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의 결과로 나타

난 것이다. 교회는 세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어야 한다.145)

그러나 급진적인 이 선교개념으로 말미암아 순수한 복음전도로서의 선교운동이 많이 위축되었던 것도 사실이

다. 또 호켄다이크의 ‘Comprehensive approach' 전도의 개념에 의하여 1968년 W.C.C 제 4차 총회인 웁살라

에서 선교의 목표가 Humanization으로 규정되었다.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적 사역이라고 생각해 왔다. 선교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그

의 교회을 통하여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였다. 오늘날의 중요한 문제는 진실한 인간의 문제 이상

의 것이다. 따라서 선교하는 교회의 주요관심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인간성을 지향하는 것이 선교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146)”

선교의 목표는 「이방인의 회심」이나 「교회수립」또는 「교회확장」에 있지 않고 기독교 세계나 특정교파

교회의 안과 밖이라는 경계선 저 너머에는 세계의 인간성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웁살라 대회에서

는 「새 인간성 창조」가 선교의 목표이다. 영국의 John Tayior는 이러한 인간화로서의 선교개념은 산업화,

도시화, 도덕의 타락등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하다고 극구 칭찬했다.

1972년 방콕에서 열린 선교대회 주제는 「Salvation Today」였는데 방콕의 선언서 「교회에 있어서 교회갱신

」의 제 3분과는 「해방」을 첨가하여 선교의 목적을 정의했다. 이때부터 W.C.C의 좌경화는 급속도로 진행되

었다. 1970년대는 해방신학이 신학계와 선교계를 지배하였던 때이기도 하다.1975년 케냐의 나이로비 W.C.C대

회 주제는 “자유케 하시고 하나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결국 해방신학이 세계교회들을 사로잡았

다고 할 수 있다. 5년후 호주의 멜보른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란 주제로 정치

적 탄압과 억압문제를 교회의 선교 목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었다.147) 선교가 정치, 경제, 문화의 문제로

나아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에큐메니칼적 선교관은 옳은 것인가?

결국 에큐메니칼 선교의 주제는 인간화와 자유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지상적 임함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인데

이러한 이론의 배경에는 역사적 발전론 즉 헤겔과 마르크스적인 발전론의 전제위에 세상이 점차적으로 희망

적으로 변활 것이란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결국 W.C.C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문화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

는 것이 드러난다. 이러한 좌경화의 반대에 서있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는데, 이들은 선교의 대위임을 새롭

게 해석함으로서 반전을 시도했다.

첫째, 복음주의는 마태복음 28장의 대위임을 복음전도의 지역적 확대로 생각하고 그것을 선교의 과제로 삼아

야 한다고 본 것이다.148)     둘째, 하나님의 개념이 세속화 역사화 되었음으로 구원의 역사를 비신성화한

결과 세속의 역사를 신성화하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셋째, 선교론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교회론이 성경에서 벗어나므로 결국 선교에도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다. 

넷째, 진리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인정하면서 복

음전도의 절대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상에서 대략적으로나마 선교의 개념을 살펴 보았는데 우리가 어떤 선교의 개념을 가지고 사회봉사를 통한

복음선교를 할 것이냐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사회봉사를 통한 복음선교는 분명히 복음주의적 선교관을 가

지고 해야 한다. 성경적인 원리를 볼 때 우리는 정치,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의 선교를 생각하기보다 순수한

복음전도 즉 사도행전 26장 18절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가서 그 눈을 뜨게하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어둠의 권세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하고 죄사함과 주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하

는 것”이 되어야 한다.

 


2)지역사회에서의 선교의 전략적 모델

   (1)선교의 원심력과 구심력

 그 동안 한국 교회에 익숙한 선교 방식은 타문화권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원심력 선교 방식이었다. 이 선교

모델은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선교 방식이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최초의 선교사로 부르시고 땅

의 모든 족속으로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해주시며 이방 땅으로 파송하셨던 그 모델이며(창12:3), 신

약에서는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셔서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구원을 전하기 위한 택한 그릇(행9:15)으

로 사용하시어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통해 선교여행을 하게 하신 그 모델이었다. 물론 선교사적 측면에서 하

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선교하지 않을 때 강제로 민족을 흩으시는 디아스포라 방식을 통해서라도 선교하

는 모델도 넓은 의미에서는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벵트 성클러(Bengt Sunkler) 는 구약성경에서 주요한 선

교 전략은 이스라엘이 빛을 비추어서 이방을 이스라엘에게로 끌어 들이는 것이었지만 신약성경에 와서는 외

부를 향해 나아가는 외향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화란의 신학자 요하네스 블라우(Johannes

Blauw)는 위의 사상을 이어서 구약의 힘을 구심력(Centripetal) 신약의 힘을 원심력(Centrifigal)이라고 불

렀다. 그러나 랄프 원터는 (Ralph D. Winter)는 위의 두 가지 선교의 동력이 구약과 신약뿐 아니라 모든 시

대에 항상 작용해 왔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거룩한 백성이 하나

님 나라의 중심으로 서있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서  선교의 비전이 일차적으로 구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도 하다.149) 바빙크((J.H. Bavinck)는 신약의 서신서에 나타난 선교의 개념에서 구심력적 요소를 구약의 예

언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바로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이방인들이 이 빛을 향하며

빛에 주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150)

(2) 지역사회 선교의 중요성

지역사회 선교에 있어서 도시 선교의 문제를 거론해야 될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도시 변두리에 기거하며 새

로운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의 상황화에 따른 접근은 이 도시 지역의 변두리에 자리한 산

업 공단이나 새로운 주거지에서 출발되어 질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사회참여 중심의 급진적인 복음운동이었던 도시 산업 선교에서는 복음을 단순하게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생의 내면적인 모든 문제와 환경 그리고 외적 사회적

환경속에서  하나님의 의롭게 하심을 삶 전체로 부딪히고 참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의

복음이 신의 주권성, 계시, 세계와 삶, 죄와 용서, 인간과 교회, 성서등 이 모든 것이 허공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이 놓여진 상황속에서 인간과 부딪칠 적에 비로소 복음이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이 복음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 구조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경험되고 해석되고

또 사건화되는 살아 있는 과정에까지 연장되어져 가는 것이다.151)  여기서 외적인 상황을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 곧 “장(field)"이라고 표현하는데 커트레뵌( Kurt Lewin)은 이를 생의 공간(Life Space)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개인(self)과 인간 (people)과 환경(environment)이 서로 얽혀 있는 삶의 공간이며 숨쉬는 관계

를 맺는 한계 상황인 것이라고 하고 있다.152)”

이런 영향은 해방신학의 유입과 함께 개인의 내적인 구원과 변화보다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항하

는 사회 정치 투쟁의 방향으로 변하는 기반을 형성하게 되었다. 도시 산업 선교는 급격한 산업화 또는 사회

적 변화로 인하여 신학적인 근거에서보다는 역사의 요청에 의해 자발적으로 선교에 임해 왔다.  도시 산업

선교는 도시 산업화 과정에 있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던 전통적 선교 방법과는 다른 내용과 방법이 모색되

어 졌으며 선교의 현장도 교회 안이 아닌 교회밖에 민중들의 삶의 현장 (field)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도시 산업선교가 한국교회에 미친 먼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긍정적으로는 첫째는 선

교의 장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교회 선교활동은 196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선교

대상이 소위 공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산업 근로자들에게 강조를 두게 됨으로서

선교 대상이 단순히 개인 또는 사람이란 데서 사회제도 혹은 조직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주었다

153)

둘째는 선교내용의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복음 선교 내용은 구원에 있다 하겠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역사는 바로 인간과 하나님, 그리고 인간이 사는 사회에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요 이를 구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구원이란 구약시대에는 부정과 압제자로부터 해방이며 신약시대에는 세상의 악마적 권세로부

터 자유함을 표현하고 있다. 산업선교 실무자들은 선교내용은 개인 구원뿐 아니라 사회 구원에 강조를 두고

있다.154) 그러므로 도시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나는 구체적 사건과 문제 속에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

하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선교 활동은 한국이 급격히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산업 사

회의 문제와 도시 사회의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 속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그 선교 내용으로 삼고

있다는 면에서 생각할 때 종래의 교회 중심적인 선교 활동에서 갖던 인간의 문제를 인간이 살고 있고 일하고

있는 삶의 현장의 문제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보고 인간화를 선교 내용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 사적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의미를 찾아 볼 수 있겠다.155)

셋째는 선교 방법의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한국 교회는 1960년대에 이르러야 급격한 산업 도시화 현상에 따

라 산업 사회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 사회를 향한 목회적 형태에 대하여는 어떤 뚜렷한 방법이나

형태가 없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당황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를 지나면서부터 선교 실무자들 그들 스

스로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만나고 연구하는 가운데 경험을 근거로 하여 방법과

일정한 목회 형태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바로 한국교회가 도시 산업화 과정에서 얻은 선교방법이요 목회

형태로서 종래의 개교회 혹은 교단적인 차원에서 하여 오던 방법이나 목회 형태와는 판이한 것이었다.156) 

   (2) 총체적 선교 방식

세계복음 주의 협의회(W.E.F)는 총체적 선교개념을 ‘로잔Ⅱ’대회의 ‘마닐라 선언문’에서 ’대도시 선교

(Urban Mission)'이라는 항목을 통해 실천적으로 제시했다. ‘마닐라 선언문’은 바로 이러한 대도시 사회야

말로 총체적 선교개념에 따른 총체적 선교 전략이 요구되는 선교현장임을 천명한다.“1900년도에는 세계인구

의 9%만이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에는 50%이상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이다. 세계 각처에서 사람들

이 도시로 이주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이주“라고 불린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 선교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한편 도시에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 민족이 우리의

문턱에까지 와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복음으로 민족의 장벽을 분쇄하는 우주적 교회들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른 한편 많은 도시 주민들은 가난한 이주민들로서 복음을 잘 받아들인다. 아울러 우리

백암중앙교회와 같이 농어촌교회는 또 소외된 농촌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역도 효과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와 같은 도시 빈민이나 농어촌 지역 공동체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들을 섬기며 변화시키는 역활들

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157) 

1974년 6월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세계복음화에 관한 국제 대회’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란 이슈를

공개적으로 논의하여 대회에서 채택한 ‘로잔언약’에 포함시켰는데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인

간 사회 어디에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모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권

면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왕왕 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하여 참회한다.

전도와 사회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가지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구원의 메세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책임

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158) 한마

디로 ‘로잔 언약’은 기존의 전통적 선교 개념인 ‘교회의 선교’를 총체적 선교‘란 개념으로 한층 더 발

전, 강화시킨 것이었다.

 1989년 7월에 필리핀의 마닐라에 “로잔Ⅱ”대회로 모인 복음주의자들은 ‘마닐라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함으로 개인적, 구조적인 모든 불의와

억압을 고발하면서 예언자적 증거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을 고백한다. 참된 선교는 성육신적이라야 한다. 참

된 선교를 위해서는 겸허하게 그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불의한 세력에 항거하며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그들의 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희생 없이는 선교가 바로 이루어질 수 없다.”159)

로잔언약은 전도와 사회참여는 둘 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다같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 교리, 우리 이웃을 향한 우리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총괄적으로 수행

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했다.160) 바른 사회 참여는 먼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로잔Ⅰ“과 ’로잔Ⅱ‘사이에 제3세계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의 총

체적 선교개념은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의 기초를 놓았고 이에 맞는  선교 전략을 수립하는데 기틀이 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교회의 사회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은 하나님의 뜻이라 할 것이다.

니켈리는 Bavinck의 주장에 근거하여 사람의 존 존재, 즉 그의 영혼과 몸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

고 있다. 바빙크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의 몸까지도 하나님의 형상에 속한다. 계시를 알지 못

하거나 거부하는 철학은 언제나 경험론이나 합리론 유물론이나 유심론의 극단속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성경

은 이 둘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사람은 영혼을 가진다. 그러나 그 영혼은 심적으로 조직된 것이다. 이런 본

성에 의해서 영혼은 필히 몸안에 서게 되는 것이다. 육체적이고 영적인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161)  Calvin

또한 영육 양자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우선순위의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하

나님의 형상의 제 일차적 좌소는 정신과 심정 가운데 있고 영혼과 그것의 여러 능력 가운데 있지만 인간의

어느 부분도 심지어 육체조차도 영광의 빛을 받지 못하는 곳은 없다”162)라고 하였다.

인간을 ‘전인’으로서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각 구성요소들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상호 연결되어 각 요소

중 그 어떤 것도 무시되어 지지 않고 다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고난’, ‘질병’의 경우나 실직, 노숙등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인간을 ‘전인’으로 보게 될 경우

이 문제는 다분히 구체성을 띄게 되어야 한다. 단지 회심을 위한 접촉점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넓은 의

미에서 인권 보호 활동 자체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인 것이다. 역사 안에

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활동이 선교라는 측면을 강조하여 본다면163) 넓은 의미에서 인권보호 활동은 

구속사속에서  일반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포함한다고 볼 수 도 있다.164)  

   (4) PUSH & PULL 방식의 균형

기존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선교에의 참여 방식은 훈련받고 파송받는 선교사를 기도와 재정적인 후원을 통해

돕는 소극적인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래도 한국의 기독교 역사 100년만에 많은 문제점도 있어 왔지만 이제

는 선교사들을 각 국으로 파송하는 국가로 되었다.165)

특히 한국교회가 지닌 선교에 관한 인식의 폭을 보다 넓힐 뿐만 아니라 참여 방식에 새로운 도전을 구체적으

로 안겨 주리라고 기대해 본다. PUSH-PULL 선교전략은 총체적인 선교관의  균형을 요구한다. 예수께서 공생

애 3년을 걸쳐 가르치신 사도들은 요한복음 20장 21절의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의 제자들이다.

예수의 제자들인 사도들은 영혼의 돌봄과 약한자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초대교회 사역의 현장에서 충실히 나

타내었다. 그것은 그들의 지역공동체 안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지역의 사람들은 그 일어난 사건을 소상히

알고 있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

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

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3-47)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목회 현장의 모습인 사도행전 2장의 말씀에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구원받는 사

람이 날마다 더 하였다고 증언하므로 사도들이 ‘영혼의 돌봄’에 충실하였으며 구원받은 그들의 삶의 모습

을 증언함으로 ‘약한자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사도들이 가르쳤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봉사의 현

장은 지역사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의 사역이 크게 두 가지인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영혼 구원”을 위한 “말씀의 사역

”(ministry of word)과 “봉사의 삶”을 위한 “구제의 사역”(ministry of tables)이다.166)

초대교회의 일곱집사는 “봉사의 삶”을 위한 “구제의 사역”을 위해 선택되어진 교회의 직분이다. 이것은

“봉사의 삶”이 초대교회 목회 사역의 한 부분 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5)오늘의 목회 현장과 전략

오늘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목회 현실에 대한 관심은 “목회 직무가 극도로 땅에 실추되고 멍든 이 시대에

있어서 병든 목회 직무”167)라는  염려스러운 표현으로 집약되고 있다.

조지 웨버는 미국 사회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미국 교회들의 병명을 고발한 일이 있다.

첫째로, 미국 교회는 자선 사업 단체로 전락했으며, 둘째로, 미국 교회는 조직의 비대와 수의 확장의 노예가

되었으며, 세째로, 미국 교회는 성공적인 회사처럼 기업화되어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웨버는 말을 이어간다

. 목사는 교회라는 기업의 이사장이 되었으며, 교인들은 기업으로서의 교회에 출석, 참여, 헌금을 요청받은

소비자들이라고 고발한다.168)

한국의 목회 현장만 하더라도 “교회가 아닌 교회가 난무하고 목회가 아닌 목회가 판을 치는 목회”169)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무엇보다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양적 확산을 위해

숫자의 마력에 붙잡힌 자신의 고정된 존재 양식으로부터 해방을 받는 일이라 하겠다. 수의 마력에 붙잡혀 있

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요구를 세심하게 듣지 못한다면 명령자가 되고 말 것이다.170) 수천 명

의 회원을 거느리고 현대적 예배당을 짓는 것이 성공적인 목회의 표준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의 목회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목회가 과연 이러한 것이겠는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메마른 무화가 나무가 저

주를 받은 것은(마21:19) 성장을 멈추고 나무가 지닌 고유의 사명인 열매 맺는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미래의 사명은 바로 양적인 성장을 내적인 자각과 성숙으로 변형 발전시키는 것이다.171) 곧 세상

에서 교회가 교회로서 제 구실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 교회를 교회답게 먹이고 인도해 줄 목회 지도자를 그

어느때 보다도 더욱 요청하게  된것이 현실이다.172)

 우리는 역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한국사회 내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 현실은 오히려 더욱 병들어  가고있어 ‘열매맺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재고가

요청되고 있다.더우기 성서 자체가 ‘하나님과 무관한 하나님 종교’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고,예언자

들은 표면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야훼께로 전향할 것을 거듭 말하고 있어  우리의 ‘신앙 자체 ’

에 대한 심각한 검토를 위해 일단 멈춤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두 번 회심해야 한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향해서,그리고 그와 함께 세상을 향애서 회심해야 한

다. 이는 그리스도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가 일차적으로 세상에서 곤궁한 사람을 돕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

문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B.C 8C나 A.D 1C의 방식으로 자비를 실천할 수는 없다. 곧 고아를 돌보

아 주는 것보다 현대같이 복잡하고 구조적인 사회 속에서는 보다 고아가 발생하지 않토록 제도적 장치를 행

하는 것이 이웃사랑의 방법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효율적으로 행하기 위해 맑시즘의 도

구적이해는 기독교인들에게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성서에는 추상적인 원리가 없다. 사랑, 정의 혹은 자유는 일반적인 가치 혹은 이상적인 규범으로 결코 칭찬

되거나 요구되지 않고 항상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실현된다. 곧 가난한 자, 고아, 과부와 외국인에 대한

정의이다. 그것은 특별한 이웃, 혹은 특수한 원수에 대한 사랑이고 특별한 노예상태로부터의 자유, 곧 정치

적, 경제적인 자유이며 혹은 율법의 저주로부터 혹은 죽음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

는 사랑은 현실과 통떨어진 영혼의 종교적 감정이나 고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매맞고, 피흘리고, 아우성 치면서까지 우리들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구원 하시려는 전투적인 사

랑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요한복음3:16에서 이러한 속죄의 죽음을 통해 사랑을 배워 요한일서 3:16절의 실

천이 있어야 한다.

3)이 시대의 지역사회 선교신학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자로 이땅에 보내셨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이 화목자의 임무를 맡

기시었다. 우리들의 생활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와

더블어 살아가는 지역사회내의 많은 사람들, 하나님과 불화되어진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은 화목자의 임무를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173)

교회가 이런 교제의 차원, 즉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와 이웃과의 공동체적 관계를 이룩하려할 때에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로 자라며 이 세상을 구원하는 선교 기지가 되며 세상을 그리스도와 화해시키는 중보자의 역할

을 잘 감당하게 된다.174)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는 서로 상반된 개념이 아니다. 두 개념이 서로 분리되어서 취급되면 두 개념

다 불완전하게 된다. 두 개념은 서로 연결되어서 말해져야만 하고 그때 비로서 바른 의미를 나타내게 된

다.175)  곧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는 한 교회의 두 면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모여서 하는 일에는 열성적이었으나 흩어져서 하는 일에는 미흡하였다. 예배와 교회안에서의 친교와 교세 화

장에 전념 하였을뿐 이웃과의 교제에는 소홀하였다. 기독교의 초창기나 한국 선교 초기를 보면 복음이 소외

자들에게 접촉되어졌고 그 결과 오늘의 열매를 거두었다고 할 때에 오늘의 소외 계층에 뿌려진 씨앗의 열매

는 미래의 교회에 거두어질 열매들이다.176)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

임의식을 더욱 가져야 할 때이다. 선교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면 교회와 세상은 역시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게된다. 선교는 사명으로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선교(mission)란 말의 원 뜻은 ‘세상안에서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의 선교의지를 구현하는 사도로

보냄을 받음’을 의미한다.177)

선교라는 말이 교회의 용어로 처음 쓰이기 시작한 16,7세기에 있어서는 선교의 의미가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사는 일정한 지역에 국한해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원정하는 것을 의미하였다.178) 이와

같은 선교의 개념은 서구의 기독교 생활과 문화를 이방나라에 옮겨심는 모습으로 나타나 선교는 서구에로 피

선교지의 예속화, 식민지화 되어지는 폐단을 가지고 왔다.179)

이와같은 선교의 개념은 영혼 구원만을 전통적으로 전도라 생각하던 복음주의 선교신학에 새로운 시각을 갖

게하여 주었다. 그결과 선교를 타문화권 전도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도와 사회봉사를 선교의 개념으로 보는

자들이 복음주의 내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180)

케인(Herbert Kane)은 “복음주의는 선교를 전도와 동일시하여 영혼 구원을 잘 하지만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

데는 느린 반면, 자유주의 자들은 사회봉사에서는 잘하지만 영혼 구원에는 관심이 없다.”181)고 전자의 문

제점을 지적하였다. 전통적으로 세상과 사회문제에 대해 소홀히 대해왔던 복음주의 신학은 선교를 전도와 사

회 봉사로 생각하게 되었다.182) 한 사람에 대한 영혼 구원의 관심과 더불어 한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에 대

한 관심을 동시에 가질때 선교하는 교회가 된다. 모여서 선교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교의 전 역

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일 속에 동참하는 흩어지는 백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183)

흩어지는 교회, 흩어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디로 흩어져야 하는가? 교회를 제도적으로 상정하든지 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규정하든지간에 교회의 현주소는 지역사회이다.184) 그러므로 교회는 가  지역사회 속으

로 들어가 그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1)지역사회의 문제점에 도전하는 교회

지역사회의 문제와 관련지어 볼 때 선교의 목적은 무었인가? 이 문제는 지역사회의 환경에 따라서 각각 다르

게 나타나겠지만 큰 목적은 복음전도의 목적이요. 그 다음은 지역공동체를 하나님의 창조명령(창1:28)에 의

해 교회가 능동적으로 지역사회를 새롭게 하는 것일 것이다.

(2) 지역사회의 선도자로서의 교회

도시화 현상 때문에 농어촌 지역은 그 지역대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도시의 인구밀집현상이 심각해지

면 당연히 농어촌지역은 인구가 감소하며 결혼적령기의 남성들이 짝을 찾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실상 한국사회는 지난 25년간 개발 (Development)과 현대화 (Moderiniation)라는 명목으로 급격한 경제성

장과 정치변동에 따라서 모든 사회제도적 변혁이 나타났다.이 결과로 극도의 이기주의, 과열된 경쟁주의, 편

법주의, 불신풍조 등의 가치관의 혼잡과 그에 따른 행동구범의 무질서가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

다.이런 무질서의 행동규범으로부터 파생된 사회 병리 즉 개인적 병리는 심신장애, 중독, 자살, 도박, 범죄,

청소년 비행185)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대하여 프란시스 쉐이퍼(Francis A. Schaeffer)는 그의 저서

Death in the City 에서현대를 사랑과 미와 의미의 결핍으로 굶주림의 시대 라고  표현했다. 그 이유는 하비

콕스 (H. Cox)가 말했듯이 구중속의 고독을 느끼면서도 익명성 (Anonymity)이란 도시의 특징 때문에개인의

사회병리적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적 병리현상은 개인 병리와 더불어 지역병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에 속한 병리적 현상으

로는 가정 파괴, 가정 결손, 사별, 이혼, 가출, 그리고 생활기능의 장애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

다.186)

이러한 문제외에도 가족형태,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노인문제나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녹지의

부족은 주민의 정신적 생활에 압박감을 더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킨다.특히 도시 하층에는 임시직,일당직, 가

내노동, 육체노동의 상대적 과잉인구의경제적 형태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풍부한 노동력의 저수지를 형성하

고 있다.이러한 상태에서 실업상태의 장기화로 이들은 의.식.주의 결여만이 아니고 건강이나 체력의 손상을

입어 마침내 생리적 상태에만 그치지 않고 정신적 퇴폐로 이어져 피구율적 빈민의 샅내로 침전되어 간다.

또 지역적 병리현상이 나타나는데  높은 교육배경과 지식, 기술, 자본을 가진 사람이 도시에 정착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농하여 도시로 이주해 오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모든면에서 도시에 대하여 즉각 적

응할 만한 수준이 차원을 갖추지 못한 채로 온다. 그렇다고 이들이 새로운 도시 환경에 급속해 수용되는 것

도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 이들은 촌락생활을 닮은 이웃관계를 형성한다.

 때로는 주거의 문제로 도시 변두리에 자리를 잡는데 종종 도시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실시되는 사업은 이러한

사회, 문화적 파괴로 인한 심각한 지역적 병리현상을 초래한다.그래서 철거문제, 보상문제에 대한 이해관계

의충돌은 법적문제와 인권의문제까지 관련되어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초래된다.187) 그렇게 도시에 정착하지

못한 사람들이 소위 귀농하게 되는데 농어촌은 이들에 대한 대책이 전혀 세워지지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적 병리문제는 사회의 삼위일체라고 부르는 문화구조, 사회구조, 인격구조 (또는 대인관계 구조)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이 요청된다.188)

 특히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전통적 가치구조로서는 유교의 실천윤리의 특성을 바낯으로 가족주의 중심의

사회가 형성되어 풍부한 정서속에서 삶의 멋을 찾는 가족의 삶의 균형이 깨어질때 병리와 더불어 지역적 병

리현상이 초래된다 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4)지역사회에서의 선교 실천전략

 도시화 현상 속에서 날로 심화되어가는 현상은 도시의세속화이다. 아울러 농촌의 피폐화이다. 도시가 번영

과 거대화를 향해 질주하는4것과 반비례로 농촌은 점점 황폐화되어 가는 것이다. 오래전 인간이 농업을 생계

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최초의 사회적 격변기를 경험했고 수세기전 영국에서 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으로부터

제 2의 격변의 물결이 있었다.따라서 교회는 새로운 형태의 교역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제

2의 물결이 핵가족의 등장 남여 역활의 변화, 도시화, 관료적인 사회구조, 대량 교육형태, 지중화, 분업화,

평균화, 동시성등의 특성을 가진 사회로 와서는 완전히 이사회에 새로운 구조를 등장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

는 급속한 산업화로 나타난 고도의Hi-Tech 혁명 (첨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계속되는 제2, 제3의

물결속에 종래의 가치관이 서서히 붕괴되고 윤리도 무너지고 가족 구조도 변화되면서 실좆적 붕괴 현상이 일

어나고 있고 기존 체제가 무너지고 있으므로 Caring Community 부재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것이다.

  

2. 경기도 용인시의 지역사회 이해

 1) 지역사회에 대한 조사

본 연구자가 시무 담임하고 있는 백암중앙교회가 소재하고 있는 지역은 경기도 용인시이다. 경기도 용인시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부터 40KM이내에 있는 지역으로서 인근 성남시가 지난 92년 신도시 베드 타운으로 개

발되면서 인구가 급작스럽게 40만으로 늘어나게 된 곳과 불과 30KM쯤 떨어져 있어 향후 계속적인 발전이 기

대되는 곳이다.

용인시 백암면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용인시의 행정구역이다.

읍 면 동
 면    적
 구 성 비
 법 정 리
 행 정 리
    반  
 자연부락
 
   계
  591.14
   100%
    107
    504
   1,461
    363
 
기 흥 읍
   46.89
    7.9
    11
    62
    302
    26
 
수 지 읍
   42.01
    7.1
    7
    58
    218
    21
 
포 곡 면
   41.52
    7.1
    9
    35
    122
    22
 
모 현 면
   51.38
    8.5
    8
    32
    62
    29
 
구 성 면
   35.23
    5.9
    7
    32
    67
    28
 
남 사 면
   57.45
    9.9
    11
    34
    72
    34
 
이 동 면
   75.56
   12.8
    9
    37
    84
    32
 
원 삼 면
   60.33
   10.2
    12
    41
    74
    40
 
백 암 면
   65.70
   11.1
    13
    58
    85
    57
 
양 지 면
   57.42
    9.7
    10
    38
    66
    26
 
중 앙 동
    7.38
    1.4
    2
    22
    104
    12
 
역 삼 동
   12.50
    2.1
    2
    20
    78
    12
 
유 림 동
   13.64
    2.3
    2
    15
    55
    10
 
동 부 동
   23.53
    4.0
    4
    20
    72
    14
 


(표2-1) 용인시 행정구역189)

 


행정 기관
          인   구   수
  세 대 수
 세대당 

     인구
 
    계
     남
     여
 
 합   계
   311,263
   158,778
   152,485
   102,976
    3.02
 
 기 흥 읍
    57,106
    29,252
    27,854
    19,669
    2.90
 
 수 지 읍
    74,498
    37,741
    36,757
    24,200
    3.08
 
 포 곡 면
    22,196
    11,335
    10,861
     7,287
    3.05
 
 모 현 면
    17,008
     8,761
     8,247
     5,670
    3.00
 
 구 성 면
    22,212
    11,618
    10,594
     7,666
    2.90
 
 남 사 면
     7,552
     3,869
     3,683
     2,515
    3.00
 
 이 동 면
    13,326
     6,760
     6,566
     4,420
    3.01
 
 원 삼 면
     7,504
     3,862
     3,642
     2,488
    3.02
 
 백 암 면
    10,486
     5,265
     5,218
     3,364
    3.12
 
 양 지 면
    12,268
     6,274
     5,994
     3,951
    3.11
 
 중 앙 동
    21,186
    10,518
    10,518
     7,042
    3.01
 
 역 삼 동
    17,042
     8.662
     8,380
     5,435
    3.14
 
 유 림 동
    17,976
     9,185
     8,791
     5,746
    3.13
 
 동 부 동
    10,906
     5,526
     5,380
     3,523
    3.10
 


(표2-2) 용인시 인구 및 세대 현황190)

위의 표는 용인시에 속해 있는 각 동리의 세대 현황인데 총 14개 동에중에서 11.1%의 인구 구성비를 가지고

있다. 백암면 안에는 57개의 자연 부락이 있는데, 여기에 기독교회는 모두 18개가 있다. 인구는 남자 5, 265

명에 남자 5, 218명으로 도합 10, 483명이다. 세대수는 3,364세대에 세대당 평균 인구는 3.12명이다. 다음은

교회연혁이다.  

교회 연혁

1980.3.3 백암중앙교회 창립예배를 드리다. 백암리 402번지(조복호;전도사 개척)

1981.3.3 어린이 선교원 설립 허가받아 개원하다.

1983.6.1 대지 50평 임대

1983.6.7 성전 건축 기공 예배

1983.7.29 성전 건축 착공

1984.7.20 1차 공사 완공

1984.9.10 건축 준공 검사 필하다.

1985.11.29 대지 50평 임대한 것을 매입하다(백암리 407-9)

1987.8.11 제 2차 본당 공사 착공

1987.10.23 본당 성전 건축 완공하다.

1987.10.25 입당 예배 드리다.

1987.11.11 이화대 목사 협동 목사로 부임하다.

1988.1.5 대지 10평 매입하다.

1988.3.1 창립 8주년 기념하여 성전 봉헌 예배와 최규환, 원용재 안수 집사로 박정숙, 박인숙 권사 취임하다

.

1988.4.5 김정채 협동 장로와 고복순 협동권사시무장로와 시무권사로 취임

1988.7. 이화대 협동 목사 사임하다.

1988.8. 교회 차량 구입하다.(베스타 12인승)

1989.6.29 용인 군청에서 교회등록번호 부여받다.

1991.12 박창식교육 전도사로 부임하다.

1991.4.27 조복희 목사 위임목사로, 원용재 집사를 장로 장립하고 하재순 권사 취임하다.

1993.11. 유종해 목사 음악목사로 부임하다.

1994.6.15 공원묘지 매입하다.

1994.7. 본당 계단 샷시 공사하다.

1994.8 교회3층 사택증축하다.

19994.10.2 증측완공 감사예배 드리다.

1995.3. 유종해 음악목사 사임

199534. 박창식 교육 전도사에서 전임 전도사로 시무케함

1996.10.9 백암리 485-1 교육관대지 360㎥매입

1997.1. 권한공 교육전도사로 부임하다.

1997.4.27 복지관 건축기공 예배

1997.11.9 안수집사 임직 및 복지관준공감사예배(조규재, 김만수, 정동식)

1997.12. 권한공전도사 사임

1998.1.6 중앙사회 복지관 건축 등기필

그리고 1999년 1월을 기준으로 노인대학을 개설하기 위한 관계기관의 모든 허가와 도움을 필하였다.

교회가 어느 지역에 있든 문제점은 다 있다. 지상에 있는  교회는 이상과 같은 몇가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

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역사회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지역사회자체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지역사회안

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도시의 구원을 위

한 새로운 선교전략을 수립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를 선교하기에 앞서 조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 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역활

교회는 하나님과 그 나라의 구현을 지향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191)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후에도 그가

지으신 세계와 그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타락한 후에도 그의 대상인 인간을 피조물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반역적인 지배욕을 보

존하려고 했던 죄된 인간을 쉽게 파멸 시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피조물과 관련하여 그 자신에 대한 신뢰를 계

속 유지하시며, 인간이 타락한 이후 관용과 인내로서 심판과 은총을 통해 인간을 다시 얻고자 하시고, 인간

에게 그 나라의 분깃을 주시려고 하신다.

온 인류가 악마의 세력을 극복하고 인간을 다시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그러므로 또한 모든 피조물을 탄식과 신음으로부터 구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뜻이요, 계획이시다.192)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아들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몸소 실천하셨던 일에서 분명해 진다.

누가복음 2장 14절, 4장 18절과 19절에서 ‘하나님께 영광’,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이

두 가지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목적이요, 그 분을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진 구원의 현실인

것을 분명히 해준다. 예수로 인하여 구원을 누리는 구원의 공동체가 ‘모이는 교회’이다.193)  곧 교회는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처럼, 예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고 사명을 지니고 세계속에

서있는 구원 공동체이다.194)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 파견 되었음을 자각해야 한다.195) 이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께서 하셨던 것처럼 세계속에 복음을 증언하며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합당한 복음을 증언하

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196) 세상과 구별되는 구원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에서 세상에게 자신의 과

업을 수행해야 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구원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사람들을 부르기 위하여 세상에 파견되어 있다.197)

한국역사에서 기독교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한국역사의 개화기에 기독까 개화운동의 정신적 에너

지를 제공하였고 또한 개화의 프로그램만 주었을 뿐 아니라 교회와 그 미션하교, 교회신문, 병원, 출판등의

많은 일을 감당했었다. 나아가 여성 해방과 여권 신장운동을 통해 역사의 획을 긋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위에서 가나난자. 병든자,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시작된다. 가난한자, 병든

자들이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주체들이다. 구원은 곧 치유이며 하나의 사건으로서 구원과 그

결과로서의 구원(Salvation)그리고 구체적 행위로서의 치유(Healing)와 그 결과로서의 건강은 따로 떼어 놓

을 수 없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에 대해 재정적인 도움과 함께 인적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돕는 방법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한다. 교회가 지역사회 봉사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전제 한다면 그 역할은 지역사회 주민들로 하여

금 연대의식을 갖게하고 지역사회 운동 및 공동의식을 향상시켜야만 한다. 그 방법으로는 개별 사회사업, 집

단 사회사업, 사회환경조사, 사회 행동들의 전문적 방법과 기술을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실시 할 수 있

다.198) 이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회활동의 센터로서의 역할, 지역사회 조사의 역할, 서비스 센타

로서의 역할, 사회교육 센타로서의 역할, 공동이용시설의 역할, 오락 센타로서의 역할, 직업안정 센타로서의

역할, 주민단합의 역할 등이다.    

가)지역공동체의 주체확립

지역에서 행하는 모든일에 교회는 주체적이 되어야 하고, 민주적이고 보다 참여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서는 지역사회의 동질성(Identity)발견과 개발을 위해 적극 참여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여가회 역사부

터 시작하여 지역사회의 문제점들을 지역주민들과 더불어함께 발굴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토록 하는 것이다.

또한 지역공동체의 주체는 민주적 조직으로 나타나개 되므로 지역 주민들의 조직 생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

나)지역공동체의 복지 참여

교회가 지금까지 해오던 “자선적 복지사업”을 지양하고 지역 공동체 전체의 복지(Well - being)를 생각해

야 한다. 그래서 민중들의 권익사업, 생활상담 사업, 탁아사업 등을 전개하는 것이다.

다)지역공동체의 문화창조

이를 위하여 스스로 기독교적 종교문화의 폐쇠성을 지양하고 과감하게 지역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참여해야 한

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구상해 본다면199) 교육활동으로 야간학교 개설, 노인학교 운영, 성인들

을 위한 교육강좌시설, 부녀자 교육, 여가선용을 위한 교육, 청소년을 위한 독서실 운영, 상담실을 통한 문

제해결방안 모색, 생명의 전화 개설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봉사활동으로 노인대학이나 영세민을 위한 무료결혼식, 사회단체를 위한 회합장소로서의 건물대여,

맞벌이 부부를 위한 탁아시설운영, 빈민층을 위한 직업상담소, 중고 가구 의류 수집과 분배, 지역사회 지도

자 초청 간담회, 지역사회 일꾼들을 위한 위로회, 일일 의료 진료소, 주민 경로잔치, 체육대회 등을 들 수

있다.

나아가 교회 밖에서의 교육활동으로서 가족계획 계몽지도, 보건위생 계몽지도, 의식주 생활 계몽지도, 미신

타파 계몽지도, 영농업 개선지도, 자연보호운동전개, 교양강좌 및 어린이 정서교육 지도, 문화영화상영, 건

전한 레크래이션 보급, 쓰레기 분리수거 운동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봉사 활동으로는 의료봉사, 노동 봉사, 복지시설 건립, 불우이웃방문, 복지사업에 인적자원 제

공, 소년소녀 가장과 결연맺기 운동, 일선장병 위문 활동 이루 헤아릴 수 엇이 많은 봉사의 여건들이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것 외에도 교회가 지역사회에 대한 직접적 봉사,혹은 간접적 봉사를 수행할 수 있는 구체적

인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이러한 지역사회 선교를 위한 제반 봉사를 실행함에 있어 교회 내에서 갈등이 발

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ㅓ나 폭넓게 지역사회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건전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이해

한다면 이러한 봉사활동은 분명히 지역사회 선교의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므로 교인 모두는 이러한 활동에

적극 가담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버렸으나 하나님은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하

나님께로 되돌아 와야 할, 그런 세상이다.200)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을 위해 있는 것이며 교회가 모든 사람

에게 봉사하려 할 때에만 “복음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고린도전서9:19-23).201) 교회는 예수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아 “복음을 증언하고 복음에 동참”하기 위하여서 예배, 교제, 교육, 전도, 봉사의 일

들을 해야한다.202)  예배와 교제와 교육이 교회 안에서의 할 일이라면 전도와 봉사는 교회 밖을 향해서 할

일이다.  이는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서 섬김을 말한다.203)

그러나 교회 안에서의 일과 교회 밖에서의 일은 구별되어 질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다. 교회 안에서 의로워

진 회중은 반드시 세상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종의 모습, 섬김의 백성일때 교회는 살아있는 사건이 되

기 때문이다.204) 물론 단순히 봉사만을 부당하게 강조한다면 그것은 박애적인 사건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205)  그러나 반대로 “말씀의 사역”만을 강조하고 “봉사의 사역”을 잃어버린다면 역시 사도성을 잃어버

리는 교회가 될 것이다. “봉사의 사역”은 초대교회가 지니고 있던 사역의 하나이며 더 나아가 “봉사의 사

역은”은 “말씀에의 봉사”로서206) “말씀의 사역”을 완성시키는 일이라 본다.

교회는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없이 달리 사도들의 증언인 성서의 증언에 충실할 수가 없다.207)  교회가 있다

는 것과 교회가 파견되어 있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사도들을 따라 세상에 파견되어 있는

자기 존재를 인식.실천함으로써만 교회가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적 계승은 근본적으로 사도적 신앙과

고백의 계승만이 아니라 사도적 봉사의 계승이 있어야 사도적 계승이 이루어진다고 하겠다.208)

교회는 “봉사의 사역”이 “말씀의 사역”과 함께 하여 예수께서 행하셨던 “전인적 목회”이며 예수께로부

터 보냄을 받은 사도들과초대교회에서 행하였던 목회 사역이요, 또한 오늘의 교회에서 이어받아야 할 사도적

계승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2) 지역사회 설문조사

본 연구자는 백암중앙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지역주민들의 의식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보다 효과적인 지역사회의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목회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설문을 통한 지역사회 조사 계획

을 세우고 설문지를 만들어 배부하고 이를 수거 분석하기로 하였다. 두차례의 자원봉사자 모임을 통하여 설

문지의 질문을 확정하였는데.질문은 다음의 다섯 카데고리로 나누었다.

  onE-지역사회의 일반적인 상황(1-10번질문)

  TWO-지역사회에 대한 일반인의 의식(11-20번 질문)

  THREE-지역민들의 가정의식(21-30번 질문)

  FOUR-지역사회의 가정교육(31-40번 질문)

  FIVE-지역사회의 종교의식(41-50번 질문)

 


2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배부 조사에 들어갔다. 교회내의 여전도회원들이 자원봉사자들의 인솔하에 각

지역에 흩어져 조사했다.

총 300매의 설문지가 뿌려져 그중에 약 200매의 설문지들이 정리되고 항목별로 분류 평가되어 분석되어졌는

데 그 내용은 다음장에서 정리했다.

(1) 설문을 통한 지역사회의 분석

총300여매의 설문지가 뿌려졌다. 그리고 200매를 포집하여 정리하여 분류하고 그것을 백분율(%)로 정리하였

다. 앞서 용인시의 백서를 검토한 결과 나녀의 비율은 남자 51%(5,265명), 여자 49%(5,218명)였는데 실제 응

답에서도 그 수치는 비교적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지역의 주민들은 주로 40대가 3/1(37%)이 넘었다. 주거환경은 아파트나 연립 세대가 21%, 단독주택 세대가

65%였고, 전세 세입자는 12%, 월세입자는 1%였다. 월수입은 100만원에서 150만원이 가장 많았고(38%), 그다

음 150만원에서 200만원대가 39%였다. 학력은 고졸이 35%, 전문대와 대학졸업이 13%와 11%였다.

가족수를 묻는 질문에 3명이라고 답한 가정이 33%, 4명이 44%였다. 핵가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 기혼자가 87% 미혼자는 8%였는데 이혼과 별거도 3%나 되어 가정의 붕괴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

여준다.

Part Two 지역에 대한 인식 분석.

 문11.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의 주거환경은?

         좋다           71%

         별로다         13%

         보통           16%

 문12 경기도 용인 백암면에 이사 오신지는?

         1-2년         10%

         3-4년         44%

         5-6년          14%

         7년이상       32%

 문13 경기도 용인시 백암지역은 발전했습니까?

         예             56%

         아니오         11%

         점차로         23%

 문14 앞으로 경기도 용인시 백암지역이 발전한다고 보십니까?

         예             44%

         아니오         26%

         점차로         30%   

 문15 경기도 용인시 백암지역의 주산업은 무엇입니까?

         농  업         49%

         수산업          1%

         공  업         23%

         상  업         15%

         기  타          12%

 문16 경기도 용인시의 행정관청의 서비스는?

         좋다           44%

         부족하다      31%

         미흡하다       9%

         불편하다      16%

 문17 이 지역에 계속 사실 겁니까?

         예             48%

         아니오         26%

         1-2년후 이사 14%

         4년이상       12%

 문18 지역사회활동에 참여하십니까?

         예             48%

         아니오         26%

 문19 이지역의 전통을 아십니까?

         주거           46%

         교통           19%

         산업           26%

         교육,문화     12%

         기타           1%

아직은 전원지역인 이곳에 대해 많은 불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3분의 2에 가까운 사람들이 주거환경이 좋다

고 대답했다. 이 지역에서 5년이상, 7년이상 된사람이 역시 전체의 3분의 2에 가까웠다.

 


Part Three 가정에 대한 의식분석

 문21 가정에 문제점이 있습니까?

         예             18%

         아니오         43%

         조금           8%

         기타           31%

 문22 있다면 어떤문제 일까요?

         부부문제      12%

         주거문제      22%

         경제문제      32%

         자녀           21%

         기타           15%

 문23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문제는?

         애정           12%

         남편           18%

         아내           9%

         자녀           35%

         범죄           23%

         주거           12%

 문24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가정문제는

         순결           3%

         부부애정      40%

         노인           19%

         자녀           17%

         경제           21%

 문25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세워지고 있습니까?

         예             46%

         아니오        7%

         조금           22%

         기타           25%

 문26 자녀들의 고민을 알고 계십니까?

         예             42%

         아니오         38%

         조금           15%

         기타           5%

 문27 자녀들의 고민을 알고 계십니까?

         예             43%

         아니오         38%

         조금           12%

         기타           7%

 문28 노인을 모시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예             23%

         아니오         7%

         조금           57%

         기타           13%

 문29 가족간의 행사는 잘지켜지고 있습니까?

         예             16%

         아니오         54%

         조금           12%

         기타           18%

 문30 가족의 기념일을 아십니까?

         예             25%

         아니오         22%

         조금           35%

         기타           18%

가정에 문제점에 있다고 답한 사람과 조금이라고 답한 사람을 합하면 전체가정의 3/1정도는 가정에 어떤 모

양으로든 문제가 있는듯하다. 주거, 자녀, 경제, 문제 순으로 가정문제가 있다고 대답했다. 오늘날 우리사회

의 문제는 범죄문제와 자녀문제가 역시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녀들의 고민을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약 절반정도이다. 절반정도의 사람들만이 자녀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다고 보여진다. 노인을 모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3분의일이 못미치는 사람만이 찬성했다. 조금이라고 답한

사람도 많았지만 전통적인 효의 사상이 많이 퇴색한 것을 느낄 수 있다. .

이는 전통적인 가족윤리가 점점붕괴되면서 가족관에 대한 아노미 현상이 조금씩 생기고 있고, 그것이 우리지

역에까지 확산되는 중임을 깨닫게 한다.

 


Part Four - 자녀문제와 교육에 대한 의식 분석

 문31 청소년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애정문제      28%

         용돈           11%

         학업           33%

         진로           27%

         기타           1%

 문32 자녀들을 어느정도 교육시킬 생각입니까?

         고졸           11%

         전문대졸      21%

         대졸           62%

         대학원졸      6%

 문33 자녀들이 고민을 부모에게 털어놓는 편입니까?

         예             25%

         아니오         42%

         조금           15%

         기타           8%

 문34 가정에서 자녀에게 체벌하십니까?

         예             42%

         아니오         10%

         조금           42%

         기타           6%

 문35 자녀에게 시간을 투자하십니까?

         예             19%

         아니오                38%

         조금           25%

         기타           18%

 문36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건전한 이성교제  15%

         경제적 독립      39%

         올바른 진로      21%

         기타              5%

 문37 길거리에서 비행청소년을 본다면

         충고한다     24%

         모른체한다   39%

         신고한다      16%

         기타           11%

 문38 과외를 시키고 있습니까?

         예                        33%

         하다가 경제적 사정으로    25%

         조금                       31%

         기타                       11%

 문39 교육제도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예             53%

         아니오         13%

         조금           28%

         기타           6%

 문40 자녀의 종교에 관심이 있습니까?

         예             29%

         아니오         18%

         조금           36%

         기타           17%

청소년의 문제는 학업과 이성교제 그리고 진로라고 보는 견해가 많았고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전문대이상 진학시키겠다고 대답했다.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올바른 자녀교육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Part Five - 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의식 분석

 문41 가정과 지역사회를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예             52%

         아니오         16%

         조금           30%

         기타           2%

 문42 종교 본래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선행, 도덕    33%

         인간구원      41%

         사회정화      15%

         기타           11%

 문43 이 지역의 종교는 종교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다고 보십니까?

         예             18%

         아니오        19%

         조금           42%

         기타           10%

 문44 현재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기독교         24%

         불교           22%

         천주교         11%

         유교           6%

         기타           37%

 문45 종교를 가지신 이유가 있다면?

         올바른 삶       19%

         마음의 안정     23%

         구원(천국)       15%

         경제적문제의 해결 22%

         기타               21%

 문46 종교를 가지게 되었던 때는?

         어린시절      22%

         사춘기때      26%

         청년때         19%

         어른이 되어   9%

 문47 기독교회가 가정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면?

         좋은일이다   41%

         별로           8%

         조금           29%

         기타           22%

 문48 향후 종교를 가지신다면 어떤 종교를?

         기독교         16%

         불교           12%

         천주교         4%

         유교           2%

         기타           6%

 문49 교회가 가장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사회문제      18%

         교육문제      14%

         가정문제      14%

         노인문제      17%

         기타           37%

가정과 지역사회를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고 보는냐는 질문에 절반이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현대인들은 물

질문명을 풍부하게 누리지만 그러나 종교의 위치와 역할은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어 고무적이다.

종교본래의 목적은 인간구원과 선행과 도덕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았다. 또 이지역의 종교는 종교본래의 목적

에 충실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60%이상이 예’라고 답했다.

현재 가진 종교는 불교, 기독교 순으로 많았다. 전통종교인 불교인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전원지역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가지게 된 동기는 올바른 삶, 마음의 안정순으로 나타났다.

 


2) 지역사회에 대한 종합적인 사역방안

   (1)계획적 목회시도

     가) 조사계획의 중요성

 한국교회의 취약점이 많지만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진단 없이 목회계획이 수립된다는 점이다.

 의사는 진단없이 처방하지 안고 장군은 정보없이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그러나 목회자는 진단없이 목회계획

과 목표를 세운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해야한다는 것은 말씀했으나어떻게 그것을 수행하느냐는 것은

말씀하지  안했으므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209)

 그리스도께서 목적을 선언했지만 조직과 계획을 마련하는 일은 우리의 일로 남겨 두었다.210) 목사의 역할

중에서 왕같은 직능은 교회조직 구조와 과정에 대한 교역이다. 목사는 예언적 혹은 사제적 목회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만큼 이 왕같은 목회도 포기해서는 안된다.진실로 교인들의 수많은 개인적 목표, 요구, 그리고

관심들을 조직된 프로그램과 집단활동을 통해서만이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목사가 사람들을 목회할 수 있는

한 방도는 교회의 조직적 국면들에 대하여 유효하게 목회하게 될 것이다.

  교회 교인들의 삶의 형태, 신앙적 경향, 실태, 선호경향등을 조사하고 아울러 지역사회주민들의 의식성향

과 이들의 필요를 발견하고 이를 적절해 활용해야할 것은 당연한 일아 라 할 것이다.

 둘째, 생각( Thingking)은 있어도 연구 (Study)가 없다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타교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은 좋으나 이것을 재해석해서 자기 교회에 맞도록 작품을 만들어야 할 것

이다.

 셋째, 학습 (Learning)은 있어도 훈련이 없다.

 가르치고 배우는 자는 많이 있어도 이를 실천하며모범을 보여주는 자는 적다.그것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진단이 없거나, 연구가 없거나 훈련이 없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언제, 누가할 것인가를 잘 모

르기 때문이다.

 나) 목회계획 실시

 계획 목회는교회전체를 동원해서 교회의 본질과 선교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의 사랑을 선포해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완수 하는데 있어서 주어진 모든 물적,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

록 조직적이고 ;포괄적인 조사방법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 을 말한다.211)

 계획 목회에는 몇가지 의 원리가 있다

 첫째, 교회로 하여금 그 본연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이다.현상유지가 목회가 아니고 교회가 그 목적을 성취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둘째, 교회로 하여금 그 목적을 달성하는 일에 전체 교인을 참여시킨다는 점이다.지난날의 목회는 교역자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해 왔다.그러나 이 새로운 목회개념은 전체 교인들과 함께하는 목회 이다

.

 셋째, 목회활동의 모든 면을 포괄적으로 조정해서 교회가 그 맡은바 선교적 사명을 다하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넷째, 회중의 필요를 분명히 파악하기 위한 조사목회라는 점이다.

 다섯째,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교역자의 중요한 역할은 수립한 계획을 조직된 사람들이 실천에 옮기도록 추진하는 일이다.목사는 항상 어

디에서 무슨 일이 되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 진행 상황을 교인들에게 알려 주는 일도 중요한 점이다. 이러한 정확한 보고는 교인들에게 새로운 관

심을 불러 일으커며 결과적 으로 계획실천에 도움이 된다.

 여섯째, 평가하는 일이다.

 목회개발의 마지막 절차는 평가하는 일이다. 평가기준은 어디까지나 그 사업이 교회의 목적과 선교적 사명

의 완수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느냐 하는데 두어야 한다.


(2) 지역사회 사역방안

   가)전도전략

 하나님의 사역은 아버지의일을 하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신 예수께서 죽으시고 죽으심으로 그 사역이 끝난 것

이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어 성령안에서 예수깨서 계속 해서 사역하시는 선교적 사역이

다.예수께서 셩령안에서 사역하신다는 말은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탄생한 공동체인 교회안에서 사역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역을 이 세상에서계 속 되도록 규정된 교회의 사역이며 이 사역은 구체적으로 전

도로 나타난다.

 나) 누구에게 전도할 것인가

 전도에 있어 전도의 대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전도전략의 첫단계이다.목표가 설정되지 아니하면 그 방

법도 차선이기에 전도의 대상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212)

곧 본 지역의 여건으로 보아 많은 아파트 를 직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목회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그룹인 불신자에 대한 전도는 다음과 같은 목회신학안에서 그들이 이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

를 만나기까지 노력해야 할 것이다.이는 이시대의 도시목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도

시의 불신자들 에게하나님의 구원을 일으킬 것인가? 또는 주께서 나를 그들에게 보내심은 무엇을 원하심 인

가? 할때에 그 무엇보다 그들에게 집중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이다.

 복음은 하나님과 화목되는 관계회복 (요1:12)이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는 양으로 도시의

구령사업에 전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나아가 구원의 실재는 하나님의 실재 (God's reality)이기에 그리스

도의 이름 곧 그리스도의 현존이 도시인들에게 체험적으로 역사되어야 할 것이다.(행3:6)

 다) 누가 전도할 것인가?

 전교인들 빠짐 없이 전도자가 되게 한다.전도 훈련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훈련을 받게 하고 특별히 선발한

전도요원은 보다 더 강도있게 전문적인 훈련을 시켜 매주 정기 정도일에 파송하여 전도하게 한다.

 라) 어떻게 전도할것인가

   a.개인전도

 전도의 기본은 개인전도이다. 이는 한개인이 불신자를 상대하여 1:1로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목회자는 개인 전도자를 훈련시키는 팀의 코치이기에 그도 먼저 구령에 불타는 개인 전도자가 되어야

하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213) 그 방법은 예수님의 경우요 3:15 와 제자들과 흩어진 사람들의 방법처럼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한다.

 b. 방문전도

 이는 개인이나 단체로도 모두 가능한 것이다.교회가 어떤날을 정하고 교구의 어떤지역을 집중적으로 방문하

여 전도하는 것이다. 이때 주님이 하신 것처럼 2인씩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눅 10:1) 이렇게 전도할 때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은 유익을 보게 된다.

 c. 집중전도

 잘 훈련된 평신도 지도자들을 가정으로 파송하여 전도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대체로 부부단위로 훈련을 받

게 한후 , 매주 정기 전도일 오후 6시경에 모여 식사하고 기도한 후 전도하고 다시모여 보고케 한후 돌아가

는 방법이다.

   (2) 제자훈련목회

 교회의 두번째 사명은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 (Edification) 이다. 이는 교인들이 은혜와 지식에서 잘 자라

가도록부단히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이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도

록 돕는 것이다. 벧후 3:18따라서 교회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주된 교욱 program을 수행해야한다.

 가) 제자훈련

 이는 교육목회중 으뜸을 차지한다.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역을 인도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진자들을 찾아

예수님의 제자되기에 합당한 인격과 삶을 다듬어 주는 약 18개월간의 훈련과정을 제자훈련 또는 순장교육이

라고 한다.이는 전교인들 대상으로 선발하며 담임목사는 이 프로그램애 전력을 누구한다. 이 훈련은 또한 소

그룹의 방법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는 이 훈련의 요체가 된다.(마 18:19-20) 특히 신앙 경험을 나누는 소그룹

운동이 바람직하다.교인들의 주거지역은 전도시에 흩어져 있다. 흩어져 있는 장소에서 교회의 작은 분자로서

모일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좋다. 속회나 구역예배는 소그룹 모임이다. 소그룹 운동을 통해서떨어져 나가

는 교인을 방지하고 교회에 대한 소속의식을 느끼게 하며 교회활동에 구체적으로 참여케하는 것이된다. 소그

룹은 흩어져 있는 교회의 분신으로서 교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암당할 수 있다.예배와 봉사, 선

교와 교육을 실제적으로 실험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이같은 소그룹 운동은일주일에 한번씩 모이는 가장 강

력한 교회 핵심 조직체요, 성서 교육의 학교요, 최일선에 나와 있는 교회의 선교 진지이고, 이웃의 문제를

함께 기도하는 모임이다. 인간과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포옹하는 만남의 장인 소그룹 모임은 세 상의 정보

를 교회에다 제공하는 일과 교회에 대한 정보를 세상에 전해주는 정보 매체로서도 사명을 다해야 한다.

   나) 성경공부 Pogram들

 지역사회를 복음화하는 선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계획중의 하나로서 각종 성경공부반이 있다.이는 결국 평신

도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것인데 다음의몇가지 프로그램이 있다.

 새신자교육반:초급입문난, 중급교리반, 고급알곡반

 목요성서연구반:매주일 실시하되 남전도회 회원을 중심으로 실시한다.

 


3.지역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봉사 사역방안

  1)다양한 봉사 사역

  다양한 신학 조류의  도입과,인권 운동,대형 전도회의 개최와 교회의 급격한 성장, 높아지는 해외 선교에

의 관심과 특수 선교 활동의 활발은 최근 한국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군선교, 학원 선교, 산업 선교,소

외층 선교 등 특수선교의 여러 형태는, 날로 다양해지고 전문화 되어가는 현대속의 교회로써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현대  교회에 주어진 하나의 선교 과제의 실현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에 대한 선교도 마땅히

빠져서는 안되는 선교과제이다.

  (1)봉사와 선교

교회는 사회 속에서 교회와 사회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독교는 복음 전파와 동

시에 사회 봉사 활동의 양면성을 소유한다. 봉사는 선교의 확산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본 휘퍼(Bonheeffer)는 봉사와 선교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있다. 마태복음 4장  23절에서는 예수도 회당

에서 가르치며,복음을 전파하며, 병자와 근심하는 자들을 고쳐 주었다. 즉 우리의 선교는 개인의 영혼만을

목표로 하거나 사회의 구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불행한 가운데 있는 인간

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섬기는역할을 감당

해야 한다. 참다운 선교 활동은 단순한 교리의식 만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할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인간 사회의 복지화에 참여 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

의 복지화와 선교는 병행하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것이다.

    (2)소외층 선교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자를 자유케"하는  것이라

선포했다. 또한 마태복음  25장 40절은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네게 한 것"이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소외된 계층과 동일시 하면서까지 예수의  사역을 중요시한 말이다.사실  예수는 환경적으로  소외되

었던 세리와,수가성 여인,수많은 병자들,창녀들을 찾으시면서 봉사를 하셨다.  누가복음 14장 20절에는 가난

한자들,  병신들,소경들,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고  말한다. 비록 이것은 마음이 소외되고 죄인인 사람을 부

르는 것이나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환경에 의해 병자되고 가난해진 이들은 더욱 초대 받기에 적절한 대상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그러므로,신체 장애에 의해  사회에서 소외된 장애자들을 따뜻함으로  맞는 교회의 태도

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현대에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3)장애인 선교의 목표

  앞에서 우리는 장애인 선교를 교회와 성도의 존재적인 차원에서 살펴  보았다. 그러면 우리가 소외층 즉

장애인   선교를 하는 것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해야 하는가. 우리는 흔히 소외층 선교라하면 가난한자,장애

자,병든자,과부,고아등을  위해서 구제하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물론 소외층 선교가 구제와 봉사를 포함하

기는  하지만 그곳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며 교회의 본질인 선교적 차원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사도행전 6장을 통해서, 초대교회는 교회의 첫째 사명이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이요,구제와 봉사는 부수적

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것은  선교의 대상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어야하는 것은 물

론,그것이 목표요 끝이 아닌  이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우선적 목적이 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예수

의  소외층에 대한 관심은 본질적이고 최우선적이였다.그러나,그것이 병고침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늘

날의 교회도 구제와 봉사로서 만이 아닌 교회 최우선의 선교  행위로서 장애자를 대하고,절대적인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이것을 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체장애로 인한 소외자들을 대하는 목회자의 목회적 관심도 목회 활동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이 되어

야  한다. 목회 활동에 있어서 지역 사회에서의  소외자 계층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  

  마태복음 11장 5절의 예수가 자신의 사역을 직접 묘사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

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모습은 교회가 예수의 뜻

을 펴 나감에 있어서  교회의 실질에 해당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에 대해서 목회자가 그리고,교회의 신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곧 장애인이 그 교

회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는가 없는 가의 문제가  된다. 또한 이것은 교회의  활동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

가는지를 지정하는 중요한  관건 인 것이다.교회가 가져야 하는 인식과 활동에 대해서 알아본다.

   4)목회자와 장애인

  목회는 '영혼을 돌보는 일' 이라고 정의된다. 인간 영혼의 보살핌이 곧 목회이고, 이 일에 헌신하는  사람

이 곧 목회자이다. 목사(Pastor)란 말은 헬라어  '포이멘'이라는 단어에서  왔는데,그것은 '보호한다'라는

뜻이며 근본적으로는 '목자'(Shepherd)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에서는 목자의 의미를 두가지로  볼수

있는데, 양을 돌보는 자의 의미와, 백성을 돌보는자의 의미이다. 구약 시대에는 백성을 다스리는 모든 왕을

목자로 생각 하였고, 미래에 나타날 기름 부은 왕, 곧 그리스도는 특별한 목자로 알려졌다. 신약에서의 목자

의 상은  예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불렀고,베드로전서 5장 4절에서는

'목자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예수의 목자의 과업은 첫째 양들을 아끼며 그들에 대해 성실하고 끊

임없는 관심을 갖는 것이였다,둘째로 목자는 앞장을 서서 양들을 인도하며,셋째는 양들을 위해 죽기까지 희

생해야 한다. 넷째로 목자는 울타리 밖에 있는 양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다섯째로 목자는 자기의 정

신적 자세에 대해 성실하고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목자가 양들을  돌본다는 것은 양떼의 필요한 것

을 알아 채워주는 섬김이 일이다. 초대 교회의 목자상은 예수님을 따르며 그를 증거하고 그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섬기는 일이였다. '목회'라는 말에서  파생된 또 다른 단어는 '디아코노스'(diakonos)-봉사자,집사,

레이투로고스'(leitourgos)-일꾼,봉사자,후페르테스'(huperetes)-일꾼, 보조자 등이 있는데 모두가 목자로서

목회자 교역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에서,우리는 역시 목회자가 세상을 섬기는 역할을 한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5)교회의 인식

  일부 교회에는 간혹 지체 장애인들이 출석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그들

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장애인,감히 교회에 참석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장애인에 대해 얼마의 배려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라는 단어의 의미속엔 한 두 신자가

모여서, 감사한 생활을 하며, 나아가 가르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몸으로서 교회를 세워 나간다는 뜻이 함

축되어  있음을 살펴 보았다.

    (6)노숙자와 실직자 대책 

노숙자나 실직자들에 대해서도 교회가 관심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접근해야겠지만 장애인들의 경우는 재기할

려고 해도 신체적인 결함으로 인해 쉽지않음으로 IMF와 상관 없이 도와주어야한다. 그러므로 본 백암중앙교

회는 실직자 봉사부를 두어서 향후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사역을 벌여 나갈 계획이다.

  교회는 교인들에 의해서  헌납된 헌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교인은 헌금뿐  아니라, 자신의 전문 지식을

통해 봉사와 행정,가르치는 일,그밖의 여러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다. 봉사는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의

실체이며 사회적 표현이고, 피할수 없는 교회 책임이다.

둘째로 봉사의 동기를 뒷받침할 능력을 교회는 키워야 한다.조직적인 훈련이  이론과 기술 면에서 이루어 져

야 하는데 이것은 목회자, 또 교회안의 혹은 밖의  전문인을 통해서 실시 할  수 있다.

셋째로는 봉사의 기회(Opportunity)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기회가 있을 때 동기는 강해지고 봉사할 기회는

넓어진다. 우선 교회의 교인들은 지역 사회의 장애자 실태를 정확히 알고 전문적 봉사요원들과 유기적 관계

를 맺으면서 봉사의 종류와 시기 및 봉사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일시적이 아닌 계속적인 관계와 조직적이

고도 체계적인 봉사 활동이 유지 되어야 한다. 전문가나, 목회자의 지도를 받으며 신앙적  차원에서 교회 자

체가 봉사의 주체가 되어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가정회복운동을 통한 지역사회복음화

 인류가 처음 생기면서 동시에 생겨난 최소단위의 공동체가 가정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끊임없이

가정을 이루고 가정으로 인해 더 큰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가정과 사회는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

이다. 가정은 곧 그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즉, 가정이 어떠냐에 따라서 그 사회가 결정되는 것이다.

(1) 가족의 정의

현대 서구 사회에서 `가족`은 남편과 부인, 그리고 그 자녀로 구성된 단위를 의미한다. 이 단위는 결혼 및

생물학적 부모 됨에 기초한 집단으로, 주거를 같이 하는 집단으로, 그리고 정의적 유대, 보호와 지원의 의무

, 공통의 정체감으로 통합된 것으로 널리 해석된다. 가족에 대한 이와 같이 당연시되는 개념화는 성관계와

부모 관계가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전통적 신념을 반영한다. 이것이 또한 가족에 대한 초기의 일

부 사회 과학적 정의에도 영향을 주었다.214)

그렇지만 이와 같은 식으로 가족을 한정하는데는 문제가 있다. 볼은 가족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가구`와

`가족`이라는 두 개의 논리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범주를 혼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215)

그렇다면 우리는 가족을 어떻게 정의 할 수 있는가? 최근의 한 저서는 다음과 같이 묻고 있다.216) 가족의

정의를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집단으로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양자 가족, 수양 가

족, 동거 등과 같은 집단들을 포함하도록 확장할 것인가? 결혼에 대한 정의를 법적 의식에 의해 공식화 된

결합으로 국한시킬 것인가, 아니면 합의에 의한 성적 결합을 포함하도록 확장할 것인가? 만약 확장한다면 어

떤 시점에서 `정교`가 `결혼`이 되는가? 우리는 재혼, 동성 짝, 집단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와 유

사하게 우리는 친자 관계를 정의함에 있어 생물학적 친자관계에 한정하는가, 아니면 양자가족의 경우와 같은

사회적 친자관계를 포함하도록 확장할 것인가? 왕가나 이스라엘 키부츠에서와 같이 자녀 양육을 고용된 사람

들에게 위임하는 가족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리고 거택아동 보호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가족`

의 정의 문제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이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가족`이라는 낡은 개념은

`가족들`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치되고 있다.

(2) 가족관의 변화

가족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역사적 시기에 따라 상당히 다른 요인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시기에는 거대한 종교적 변동이 가족유형에 변화를 주었고, 다른 시기에는 전쟁, 기근, 혁명

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 다른 시기에는 재산 관계의 근본적 변동이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

에서 가족변화에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일 요인을 든

다면 그것은 산업화이다. 대표적인 학자로서 우리는 구드를 들 수 있다. 그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가족 구조가 약화되어 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산업화는 물리적인 이동을 요구하고, 따라

서 친족과의 접촉을 감소시킨다. 둘째, 산업화는 형제 및 친족들간에 사회 이동의 차이를 가져와 친족간의

접촉을 쉽지 않게 하고, 유쾌하지 않게 한다. 셋째, 산업화는 출신보다는 성취가 더 중요하게 간주되는 가치

구조를 창출하였다. 다섯째, 전문화는 경제 체계 내에서 친족이 특정개인의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가능

성을 감소시켰다. 이러한 구드의 설명은 결국 사업화는 지리적, 사회적 이동을 가져오고, 친족에 대한 개인

의 의존을 줄어들게 하며, 자녀에 대한 부모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217)

 또한 오그번은 가족 변화의 요인으로 이데올로기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요인들을 지적하였다. 오그번 외에

가족 변화의 요인으로 이데올로기를 주장한 사람은 구드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세계 역사상 처음으

로 부부 가족으로의 이행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서구 가족의 평등주의 이데올로

기는 그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하여 개발 도상국가에 전파되었는데, 이러한 새로운 가족 이데올로기가 산업화

과정에 있는 사회의 가족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최근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여성해방론도 가정과 사회

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 변화를 주장하면서 가족 변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218)         

  (3) 가족의 기능

 가)애정도모의 기능

남녀의 결혼은 애정을 위한 것이며 자녀는 부부간의 애정의 표현이다. 자녀는 사랑을 받고 양육되며, 가족이

함께 사는 것도 서로간의 영속적인 애정 때문이고 행복은 애정에 비례한다.

   나)안정감 부여 및 수용의 기능

 인간은 가족 안에서만이 마음놓고 실수를 저지를 수 있으며 안정감을 보장받는다. 경쟁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충적 관계를 누릴 수 있는 장소가 가정이다.

    다)만족감․목적의식 부여의 기능

 미숙한 사람은 직업에 불만이 많은 것이며, 유망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나름대로 걱정하고 갈등한다. 이렇

게 각박한 산업사회에 결핍되기 쉬운 기본적 만족감과 보람을 가족은 개인에게 부여한다. 부부는 서로를 위

해, 그리고 함께 책임지고 있는 자신의 자녀를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라)지속적 동료감 부여의 기능

 영속에 대한 욕구가 현대인들은 강하다. 그러나 직업이 달라지고, 학교를 옮기고, 이사하는 등의 이유로 현

대인에게는 가족집단만이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기대된다. 가족원은 일상생활의 실망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공감해주는 동료이므로, 가족밖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서로를 격려해 준다.

     마)사회적 지위부여 및 사회화의 기능

 출생 시 자녀는 자동적으로 그의 부모가 지닌 가족의 지위 즉 사회계층에 속하게 된다. 또한 가족은 다음

세대로 문화유산을 전수시켜 주는 매개체의 기능을 한다. 가족은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사회의 다른 여러 기

구들의 존재의의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의 사회화를 도모해주는 역할 모델이 되어 자녀의 가치

와 목표, 태도에 영향을 준다.

    바)통제력 및 정의감 확립의 기능

 개인은 가족 안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규칙, 권리, 의무, 책임감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가족원들은 다

른 곳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서로가 자유로이 비판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칭찬하기도 하고 비난하

기도 한다. 이렇게 자녀가 초기에 경험한 칭찬과 벌은 그의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되어 그의 도덕, 정의, 가

치에 대한 개념을 형성시켜 준다.219)

  (4)현대사회의 가족의 문제점

 현대의 가족은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혼은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일년동안 이혼에 대한 소설이나 연극, TV 드라마가 급증하고 주부들이 보는 아침 프

로에서도 이혼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또한 이혼을 실제적으로 돕고 이해하게 하는 연

구서나 번역서가 나오기도 하고 이혼 여성의 실제 경험을 담은 사례집이나 오랜 상담의 경험을 살린 글 등

다양한 형태의 서적들이 나왔다. 이혼이 마치 잘 팔리는 상품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오래도록

이혼에 대해 침묵해 왔던 지난날과 대조적이다.

 지금껏 막혀왔던 이혼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 또한 다양하다. 그것이 마치

망국의 병인 것처럼 이마에 내천자를 긋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남자들에서부터 이혼쯤이야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듯 가벼운 일이라며 턱을 까닥이는 젊은 여성에 이르기까지.

 이혼에 대해 말이 많아진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혼이 더 이상 무시 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혼에 대한 억압적이고 부정적 통념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강하게 통제해 왔음

에도 이혼은 꾸준히 늘어 왔다. 80년 이후 이혼은 급증하여 98년 현재 결혼한 일곱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하

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이혼 관련 출판물들은 기존의 이혼에 대한 연구와는 대조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혼을 마치 질병이나 범죄와 같은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터부시해 온 기존의 과점에 반기를 든다. 이혼은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특히 이혼한 여성들의 경험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

기도 한다. 그들이 이혼을 어떻게 했으며 그 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등을 보여 주기도 하고, 이혼 시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일종의 안내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결국 이혼으로 하여금 사회의 분열까지도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의 문제점은 바로 사회로 연관 돼서

그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5)가정사역의 필요성

 지금까지 알아 본 바와 같이 가정은 그 사회의 가장 기초이며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해결책인 것이다. 가정

이 변하면서 사회 구성원 각각의 사고마저도 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은 한 사회, 한 국가를 결정짓

는 천 단추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 결혼식

이 사역은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결혼할 때까지 올바른 관계를 유지시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관

계를 가지도록 성경적인 통찰력을 배양하고 서로의 관계가 원만히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상호책임성을

가르친다.

       a) 전략

이 사역의 목적은 한 쌍의 남녀가 약혼, 결혼식 그리고 결혼의 초기 단계를 지날 때 신앙적 관점으로 건강한

가정을 세울 수 있도록 개인적인 지도와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쌍의 남녀가 일단 결혼을 하게 되는 경

우, 우리는 그 부부가 특별히 신혼부부를 위해서 만들어진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결혼의 튼튼한 기

반을 쌓도록 돕는다. 이 그룹들은 신혼부부가 결혼 첫 일년동안 정서적, 영적 그리고 관계적인 훈련을 개발

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가르침과 관계 형성을 주기 위해서 매진한다. 이것이 지역사회를 파고드는 가장 효

과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b) 프로그램

결혼준비 사역은 다차원적인 사역이다. 첫째, 일단계: 결혼준비를 위한 설문작성(Marriage Preparation

Packet) 결혼준비를 위해서 인터뷰를 원하는 사람에게 결혼안내와 설문지가 주어지고  이들을 위해서 온전하

게 기입된 설문지가 교회에 제출되면 인터뷰의 약속시간이 정해진다. 둘째, 이단계:결혼준비를 위한 인터뷰

(Premarital Interview)      인터뷰는 성숙한 신앙을 가진 기혼부부와 하게된다. 처음의 인터뷰를 통해 커

플이 문제가 없다고 여겨질때는 결혼 날짜를 정한다. 그러나 문제를 가진 커플에게는 한번 더 인터뷰가 있으

며, 과제물을 부여한다. 그 과제   물을 그 커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계속적인 양육미팅이 있는지, 아

니면 교회가 그들의 결혼에 참여하기를 거절하는 통고를 하게된다. 셋째, 삼단계:예비부부 세미나

(Premarital Seminars)인데, 과제물을 읽고 Tayolr Johnson의 기질 분석이 모든 커플들에게 시행되며 예비부

부 세미나와 예비부부를 위한 예산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 넷째, 사단계:개인양육(Personal Follow Up)이

다.전과정동안 예비부부는 처음에 인터뷰했던 부부와 지속적인 접촉을 하게 한다. 이것은 친교관계를 가질

수 있는 기회와 제자도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섯째, 오단계:피정의 시간(Post Marriage Retreat)이다.  주말

에 결혼한 커플을 위한 피정의 시간이 제공된다. 이것은 그    동안의 관계의 질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기회

를 제공한다. 서로의 의사소 통 방식을 재점검하고 서로에 대한 헌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여섯째, 육단계

:소그룹(Small Group)이다 이는 관계, 상호책임성, 가르침을 주도록 디자인된 소그룹 사역은 결혼한지 6개월

에서부터 24개월 이하의 모든 부부들에게 개방된다. 결혼준비팀 사역의 전체를 책임지는 것은 유급직원이다.

그는 자원봉사자의 훈련, 커리큘럼 개발, 인터뷰 사역, 예비부부 세미나, 결혼일정, 소그릅 사역, 목사들의

주례등을 주요한 자원봉사자로는 예비부부와 결혼전의 인터뷰를 담당하는 기혼커플이 있다. 이들은 윌로우

크릭에서 결혼을 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과 인터뷰를 한다. 그들은 그들이 인터뷰한 커플들을 상담하고,

지도하며 교우관계를 갖는다. 결혼식의 일정, 결혼식 장소, 피로연의 일정과 등록비 등을 책임지는 세미나

행정관리자가 있다. 그리고 결혼일정에 필요한 모든 것과 결혼 리허설을 도와주는 결혼 상담자와 결혼 이후

젊은 부부들이 참석하는 소그룹 리더들이 있다.

예비부부와의 인터뷰를 기혼부부가 한다. 이들은 예비부부에게 상담, 지도, 교우관계를 제공한다. 때때로 예

비부부가 잘못된 길로 들거나 행동할 때 견책하는 역할도 해야한다. 그들은 결혼에 대한 윌로우 크릭 교회의

원리에 따라 예비부부의 질문에 대답하고, 그들을 지도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들의 역할은 부부들이 결

혼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평가하도록 돕는 것이다.

  c) 번번히 제기되는 질문들(Frequently Asked Questions)

① 결혼 준비사역이 비교회인들을 교회로 들어오게 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사역은 아마도 구

도자들의 존재에 의해서 가장 깊은 영향을 받은 영역일 것이다. 종종 어떤 커플들이 한 두 달 이 교회에 나

와서 그들이 보고 들었던 것을  좋아하여 교회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정하는 일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윌

로우 크릭을 그들의 모교회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만일 그들이 약혼을 하고 결혼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결혼을 위해 우리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윌로우 크릭에서 결혼할  것을 결사적으로 바란다. 그들은 우리와의 만남을 통해서 처음으로 복음

을 접하는 놀라운 기회를 갖기도 한다. 종종 그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얼굴을 대면하고 앉아서 일대 일로 복

음을 듣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할 때가 많다.

② 결혼을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들의 신앙고백에 잘못된 동기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는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매우 중요하게 고려한다. 회심의 동기를 분별하기 위해서 때로 우리는

결혼 날짜를 육개월에서 일년 정도 미는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기독교가 그들의 약혼과 궁극적으로는 그들

의 결혼에 끼칠 영향을 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한다.

③ 인터뷰 과정에서 만일 한명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다른 한명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가? 그들과 관계

를 형성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만일 그들과 인터뷰를 가진 사람이 친교관계를 형성하고 신의를 가진다면, 대

개 결혼 날짜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갱생의 증거는 성경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종종 먼저 그리스도인

이 된 사람이 기다리며 약혼자에게 영적인 상태와 씨름할 시간을 준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이 불평등하게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④ 양쪽 모두 불신자일 때 결혼을 집행하는가? 이것은 대답하기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교회

인들을 끌기 위해서 어떤 사역의 스타일을 개발할 것인가를 결정하려는 모든 교회와 관계되는 문제이다. 두

사람 모두 불신자인 결혼을 집행하는 것이 어떤 성경적인 원리들을 범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성격의

모든 상황은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다루어진다. 종종 결혼을 원하는 커플이 면접자와 처음 만날 때, 결

혼을 바라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영적인 것들에 관한 태도에서 의미있는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종종 예

비신부가 영적인 진리에 마음을 여는 반면, 예비신랑은 그녀의 마음을 맞추어주기 위해서 따라온다. 두 사람

의 태도를 분별하는 것과 결혼의 적기를 결정하는 것이 결혼 집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나) 결혼갱신 예식220)

     a)목적

이 사역은 결혼생활의 붕괴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할  결심을 갖도록 성경적인 통찰력과 관계적

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깨어진 관계를 해결하든지, 관계의 상실에서 회복하든지간에, 이들의

치료를 위해서 필요한 모든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내는 일에 최우선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교회라는 환경속에서 가장 잘 수행되어진다. 여덟번째, 결혼의 실패로 인한 고통과 깨어짐을

하나님을 공경하는 가운데 견디는 것은 믿는 자에게 동일한 고통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필요한 인

격을 만들어준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어려운 시련속에서도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롬8:28). 시련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자들에게 개발된 인격은 하나님을 높이고, 신자들을 세우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확장하는 일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다.

첫째, 정기적임 모임(Regular Meetings): 결혼의 붕괴로 인한 감정적인 고통과  상처로 인해, 도움을 기꺼이

찾는 사람이 가장 절실한 필요로하는 것은 불안감 없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분

위기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인 접촉을 갖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부터 그들에게 필요한 지혜가 주어지지만, 그들에게 이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들이 하나님의 양식

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간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리고 그를 통한 구원의 예비후

보로서 자신들이 커다란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알게된다. 둘째, 규칙적으로 성경을 배움(Regular Expository

Teaching): 결혼의 붕괴라는 사건을 겪게되면 대부분의 저항적인 사람조차도 삶의 변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변화가 마음의 갱신을 통하여 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개

인의 감정적, 관계적인 건강에 관련된 주제들이 그룹내에서 성경에 기초한 가르침과 간증과 토론들을 통해서

창조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셋째, 정기적인 관계를 통한(Regular Relational Support):결혼에 대한 가장

미묘하고도 공통적인 잘못된 개념 중의 하나는 결혼이 개인의 관계적인 모든 필요를 채운다는 것이다. 이런

기대 때문에 사람들은 결혼생활에 과부하를 줌으로서 결국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처럼

지나치게 의존했던 관계의 상실로 인하여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균형잡힌 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경험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서 이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이

것은 평신도 리더에 의해서 인도되는 10명 이하의 소그룹에서 효과적으로 일어난다. 이들 그룹은 멤버들에게

비슷한 결혼 상태에 있고, 가정의 붕괴나 회복 등에서 동일한 경험을 가진 개인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제공한

다. 여기서는 가르침으로부터의 통찰력을 나누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대안을 묻고, 기도를 요청하고 받

아들이는 모든 것을 용의하게 한다. 넷째, 정기적인 社交(Regular Social Fellowship): 결혼의 붕괴는 당사

자를 어색한 사회적인 상황속으로 던져 놓는다. 때에 따라서, 이들은 기혼자도, 독신자도 아닌 사람으로 여

겨진다. 그들의 이런 과정이 길고 불확실하면, 그들은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몹시 갈망하게 된다. 만일 그들

의 사회적인 필요들이 합법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불법적으로 그것들을 채우려는 시도를 하려는 욕구가

그들을 압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특별히 안전하고 건강한 상호작용을 제공하도록 의도된 사교적인 행

락들을 그룹을 통하여 이런 출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b) 프로그램

첫째, 결혼과 이혼에 관한 �샵(Marriage and Divorce Workship):이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한번씩 8주간의 �

샵에서 다루어진다. :결혼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이혼, 자아존중, 용서와 사랑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6-8

번째 �샵에서는 결혼생활을 회복하는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필요, 기대를 이해하고, 새롭게 하며,

화해하는 것에 관해서 배우게 된다.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든지 실제 이혼한 상태에 있든지 간데 자신이 겪은

상처로부터 치유함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독신, 관계의 상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 성경

이 가르치는 별도의 수업을 받는다. 둘째, 후원그룹(Support Groups):�샵 후에 한달에 두 번 후원그룹에 의

한 모임을 가진다. 후원그룹들은 결혼생활을 복원하는 과정에 있거나, 이혼으로부터 회복의 과정에 있는 모

든 사람들을 위한 지속적인 지도와 훈련을 제공한다. 여기에서는 개인적인 고통으로부터 회복과 인간관계에

서의 건강함을 얻는데 적절한 주제들이 가르쳐지고 토의 된다. 셋째, 교제를 위한 모임(Fellowship events):

결혼생활의 붕괴나 상실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달에 한번 사교모임이 계획되고 추진되며 실행된다.

이러한 행사들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격의 없는 만남을 가지도록 기회된다. 롤러스

케이팅, 성탄만찬, 음악회, 스포츠관람, 연극공연과 같은 활동들은 결혼생활의 붕괴나 상실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필요들을 채워주는 감정적으로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다. 네번째, 리더쉽을 위

한팀(Leadership teams):참석자들이 개인적인 상처를 치료받고 인간관계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영적인 성숙

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고통을 겪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후보자가 된다. 이런 예비리더들은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성장시키는 것을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은

리더쉽을 위한 팀으로 조직된다. 각팀은 감독자를 가지며, 매달교육, 격려, 상담 그리고 기도를 위한 모임을

가진다. 이와함께 리더쉽 팀의 연속성을 촉진하기 위해서 3개월에 한번씩 리더쉽 교육이나 교제의 시간을 가

진다.

3) 가정학교 어린이 사역(Home school)

가정학교는 1970년대에 미국 서부지역 오리곤(Origon)에서 시작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좋은 본 보다는 나

쁜 본을 더 많이 본 받은 것에 고민하다가 부모들이 자녀들을 가정에서 가르치고 지도하게 되었다.221) 특별

히 불안한 사회에서 불충분한 학교생활은 어린 자녀들의 인격성장과 지식발달에 문제가 된 것을 통감하고 자

녀를 학교에만 맞길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가정에서 가르치고 지도하려는 것이였다. 몇가정이 한팀이 되어서

전문지식과 예술을 교육하게 되었다. 이것을 발전하여 기독교 가정학교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주

일날에 주일학교에서의 신앙교육은 너무 부족하여 적당한 시간에 모여 집중교육하기로 했다.

① 구    성:서로 마음을 같이하는 가정 4-5가정의 한팀이 된다.

② 모    임:주1-2회 야간

③ 교    사:부모들 중에 전공한 사람

④ 학    급:유치반, 국민학교반, 중학교반, 고등학교반

⑤ 특수교사:부모들이 지도할 수 없는 초청한 교사

⑥ 시 간 표:                                          (초등학교반)

시간
 과목
 교사
 보충교제
 다음준비
 
10분
 기도회
 
 
 
 
10분
 대화
 
 
 
 
40분
 학과지도(I)
 
 
 
 
10분
 휴식
 
 
 
 
40분
 학과지도(Ⅱ)
 
 
 
 
10분
 정   리
 
 
 
 


이것은 자녀들의 모임이지만 사실은 가정들과의 좋은 친교의 장이 되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지역사

회 공동체 사업에 참여하는 기회 제공에 가장 적합한 모임이 된다.

불신 가정부터 실시하여 차츰 이해도가 높아가면 기독교 가정학교로 까지 이어지며 가정 복음화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a) 지역사회 공동체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자원봉사대(가정)를 조직한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세계에 흩어져 디아스포라(Diaspora)가 되었을 때 그들은 가는 곳마다 가족단위로

모여 회당을 짓고 주기적으로 모여 종교의식과 교육을 함으로 공동체 의식을 가졌다. 이때 자연스럽게 형성

된 것이 바로 마을 공동체를 위한 자원봉사대(가정)이었다.222)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가나의 혼인잔치에 친히 오셔서 봉사하셨다(요2:1) 주님은 “네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것이니라”(마25:40)하셨다. 그러므로 서로 봉사의 멍에를 매는 것은 합당

하다.

지역사회에는 교회가 돌보아 줄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고민하고, 상처입은 사람이 많다.

이들을 위하여 자원봉사대(가정)가 주님의 봉사사역을 대행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교회가 실시하고 있지 못하지만 앞으로 연계할 사항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고 구원

에 이르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자원봉사대(가정)의 실제는 다음과 같다.

① 정원: 6가정에서 10가정

가정학교를 수료할 때 바로 자원봉사대(가정)를 발족하는 것이 좋다.

② 조직: 대장 1인, 총무1인

③ 모임: 정규모임은 매월1일로 하고 비정규모임은 수시로 대장이 소집한다.

④ 운영:자체운영을 원칙으로 하되 타봉사대와 연계활동을 할 수도 있다.

⑤ 내용:학교앞 교통정리 봉사, 자연보호, 불우이웃돕기, 재해대책, 적십자, 기        타 국제봉사 기구와

연계할 수 있다.

⑥ 기타:운영의 정상화를 위하여 내규를 정하여 운영한다.

4) 지역사회에서의 노인사역

(1)백암중앙교회의 노인대학 사역

사실 지금까지 개교회내에서 별도의 노인프로그램이 없었다. 한국적 전통인 회갑이나 고희에 맞추어 예배를

드리거나 축하잔치를 교회차원에서 진행한 경우는 간혹 있어도 체계적인 노인사역은 전무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백암중앙교회는 1999년부터 노인대학을 상설 운영키로 하였다.

가. 목적

교회의 지역사회 봉사 일환으로 경로대학을 설립하여 백암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함으로써 참가자들이

노년기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에 경로의식을 고취시킨다. 이를 통하여 교회

의 지역사회 봉사활동이 지역복음화에 횃불이 되도록 한다.223)

나. 조직구성

경로대학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조복희 목사를 학장으로 하고, 학장의 업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문위원회, 운여위원회, 및 학생회로 전체 운영조직을 구성한다.224)

지역사회 운영위원회 : 원용재외 지역사회 자원인사 7-10명

경로대학학장 :  조복희

운영위원회 : 교회 각 기관 대표 2인이내, 여전도회, 남전도회, 청년회, 학생회, 기타. 위원장 : 김만수

운영간사 : 노인대학 운영관련 1인, 교과과정 기획관련 1인: 김남희

학생회 : 회장 1인, 부회장 1인, 총무 1인.

다. 기본 교육과정

경로대학의 기본 교육과정은 주 1회 활동을 기본으로 강의하되, 토의 학습, 놀이, 산업 시찰, 효도관광 및

지역사회 봉사활동으로 구성한다.225)

라. 기본 학습 유형

경로대학의 기본 학습 유형은 주요활동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 월별로 균형을 유지하도록 세부계획

을 작성한다.

개학식, 복지관 중심활동, 봉사활동, 산업문화 시찰, 기타등으로 구성한다.226)

마. 주요학습 내용

a. 강의 주제의 예

노년기의 건강관리, 손자들의 살아갈 미래세계, 대화방법, 한국인의 사회예절, 사회변화, 한국사, 문학의 세

계, 새로운 세대의 특징, 한국의 미, 세계속의 세대의 특징, 삶과 죽음.

b. 특별활동의 예

유아들의 예절교육, 산업시찰, 나의 자서전 만들기. 내가 바라는 백암지역의 모습 그리기, 노래와 춤 배우기

, 시 외우기, 속담과 고사성어 익히기, 서예지도.

c. 특별행사

지역사회 봉사, 산업시찰, 지역사회내의 사업장 시찰, 문화시설 관람, 가족초청 발표회, 효도관광, 즐거운

식사 행사.227)

한국교회선교 초기는 우리나라는 전통적 유교사회요 가부장적 권위가 확고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

난 지금 한국사회는 상황이 정반대가 되었다. 앞서 설문조사에서도 살펴 보았지만 노인을 모시고 살아야 된

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이 4/1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 교회는 뭔가 해이해져가는 효사상을 교회차원에서

성경적으로 새롭게 고취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행하는 백암경로 대학이 정착되고 열매

가 맺히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 것이다. 또 가정적 형편이 여의치 못하거나 전후사정이 여이치 못한 교회내외

의 어른들을 매월 준비해서 각기관이 협조를 얻어 회갑연 예배나 고희연 예배를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예

배후에는 기관에서 준비한 잔치를 가지든지 아니면 효도관광을 준비해서 보내드리든지 하면 될 것이라고 생

각되어진다. 한국사회도 선진국화 되면서 점점 노령인구가 많아지는 추세에 있다. 동시에 교회내에 노년세대

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목회 프로그램 개발차원에서 우리는 보다 더 연구된 프로그램으로 이들을 구

원하고 복음화시킬 수 있도록 점점 전력해야겠다.

Ⅵ. 결      론

본 연구자는 6장에 걸쳐서 백암중앙교회를 중심으로 사회봉사를 통한 교회성장방안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지

역사회에서 지역교회로 세워진 교회는 필연적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 책

임은 목회적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목회는 교회 본래의 사명이다.228) 하나님은 오늘도 인간의 역사와 개인

의 구체적인 삶의 터전인 국가나 지역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고 지역사회내에 존재해 있는 교회

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시키기 위하여

교회 본연의 사명에 충실해야 될 절대적 필요에 직면해 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을 잘 계승하였으며 한국에서도 초창기 교회사역의 많은 부분에서 이 사역

들이 계승되었음을 �아 볼 수가 있다. 한국의 교회는 복음이 들어온지 1세기가 채 넘기도 전에 전국민의 4

분의 1이 기독교인이 되는 놀라운 영적 부흥과 함께 서구교계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이러한 기

쁨이 채가시기도 전에 한국교회는 성장이 둔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교계에서는 다각도로

이러한 침체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일고 있으나 이전과 같은 급작스런 교인의 증가는 어려운 것이 사실

이다.

최근들어 무속과 같은  것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전통 기독교회들은 이전과 같은 급속한 성

장이 일어나지 않고 있어 관계자들을 안타갑게 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한국교회가 맞닥뜨려야할 영적 현실

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회는 전통적으로 개인영혼구원에 치중 해왔기 때문에 대사회 이미지 개선에는 실패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한국교회는 성장은 추구해왔으나 교회본질의 사명에는 충실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는 교회내외

의 질타를 간혹 듣게 되는 것이다. 목회사역의 본질에서도 거리가 먼 성공지향적인 목회사역에 열중하고 있

다는 소리를 이제는 우리가 듣지 않아야 한다. 성경적으로 볼 때 교회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박고 있으므로

당연히 지역사회내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복음이 단순히 개인구원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세

상을 변혁시키는 주체가 될 때 교회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성장할 수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사회의 이해

를 바탕으로하는 지역사회의 선교방안을 연구 하는 것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 에서 시의 적절 하다 할 것

이다.

 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구체적인 사명을 깨달을 수 있기 위해서 간략하게 교회의 지역적 특성을 살펴 보았

다. 2장에서는 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사회봉사의 타당성을 찾기위해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이를 위해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교회와 교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역사회로 나누어 살펴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계속해서 교회의 정의와 교회의 사명을 살펴보았으며 그 바탕에 의하여 

교회의 사명이 봉사의 사역을 포함하는 것임을 입증한 것이다.

4장에서는 지역사회 봉사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통하여 교회의 사회봉사가 궁극적으로 교회 성장과 복음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점을 고찰해 보았다.

5장에서는 그런 연후에 지역사회에대한 교회의 지역사회선교 방안등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지역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사역의 프로그램들을 제시했던 것이다.

천만의 그리스도인을 자랑하면서도 교회가 사회의 모본이 되지 못하고 사회에서 지도력을 잃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제 교회는 교회 본연의 사명에 다시금 충실해야 된다고 본다. 최근

에 들어 교회의 사회적 봉사를 좀더 구체화하며 지속적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모습이 교회에서 싹트기 시작하

고 있다. 과거에도 교회의 “건물”을 개방하여 사회속에서 교회의 사명을 따르고자 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

러나 이러한 상징적인 활동을 뛰어넘어 이제는 전교회가 보다 능동적으로 지역사회를 리더하고 이끌고 나갈

복음적인 전략을 세워야한다. 그래서 한걸음 더 나아가 건물을 선교하고 교육하는 장소로 개방할 뿐 아니라,

교회가 직접 투자하고 사회봉사를 좀더 조직적이며 구체화 하고자 하는 운동이 조용히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 이처럼 교회의 사회봉사는 앞으로 더욱 사회가 교회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부분이 될 것이며 그 이전에 교

회가 먼저 행하여야 될 교회의 사명이며 목회의 사명이다.

본 연구자는 이 일을 위하여 교회가 지닌 사회봉사적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사회내에서의 교회의 “말씀의 사

역”과 “봉사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 교회내의 평신도자원들을 훈련시켜 전문적 지식인을 교회내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하므로서 보다 전문

적인 방법으로 사회봉사를 시행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앞으로 교회내에서 교육이나 음악과 같은 특정

한 부분에서 전문적인 사역자를 시무하도록 하는것과 같이 사회복지사를 전문적인 교회사역자로 활용하여 함

께 동역할 시대를 하루빨리 앞당겨야 한다.

 

 

 

 

 

 

 

 

 

 

 

부록(Appendex)

 


Ⅰ.참고도서

1)한서 및 번역서

김명혁. 선교의 성서적 기초. 성광 문화사, 1990.

에드워드 더니슨(Thurneysen.Eduard).목회학원론(A Theology Church and Ministry)  박근원역. 성서교재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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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득용   현대 목회학 신강   서울: 총신대학 출판부1,1986

  김대한   도시행정론  서울: 범문사, 1976

  김병원   목회학  서울: 개혁교회 신행협회, 1985

  김선건   새 사회학 통론  서울 형설 출판사1,1986

  노융희   신도시 개발론  서울: 박영사, 1973

  박양우   과천 신도시의 의의와 1980년대 도시정책개발을 위한 소고 , 도시문제  1981년 10월호

  박근원외 61인  예배와 강단   서울: 양서각, 1980

  백동섭   새목회학   서울: 성광 문화사, 1985

  부광석  학생과 사회정의  서울: 대학 기독교서회:1973

이규한   지역사회의 개발과 이해  서울 이화여대 출판부, 1977

이건영  도시질서 운동의 정착화   새마을 연구 논문집  경기도:신성인쇄사, 1980

이주영   현대목회학  서울: 성광문화사, 1985

이종익   도시론   서울 법문사, 1984

오갑환   사회 구조와 변동   서울 박영사, 1974

전호진   교회 성장론   서울: 정음 출판사: 1938

정재식   현대 문화와 종교의 번동   종교와 사회 번동  서울1:연세대 출판부, 1982

조선일보  1986년 3월 4일자

한원택   도시 행정론  서울: 법문사, 1976

한국 기독교 사회 문제 연구소  한국교회 10주년 종합 조사 연구서

한상복, 이문웅, 김광억   문화인류학  서울: 한국 방송통신대학, 1985

최호준   도시 빈민의 현황과 그 문제   민중과 함께하는 한국교회  서울; 대한 예수교 장로교 총회 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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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회,1975.

3.영서

 


도날드 K,맥킴외 공저  칼빈의 신학서론  한국 칼빈학회 편역 서울: 기독교문사, 1981

머리히 디이퍼  도시교회 목회론  박근원역  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1985

바클레이  로마서 주석  정혁조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1

빅터 발트리지   비평학적 접근으로 본 사회: 갈등과 변화

이효재, 장하신 역  서울: 경문사, 1980

안흔티.보이슨 내면세계의 탐구: 정신이상과 종교 체험에 관한연구  (New York: Willett, Clark Co., 1937

엘빈 린그렌  교역 관리론  박은규 옮김   서울: 대한 기독교출판사

에드워드 투루나이젠  목회학 원론  박근원역  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79

제랄드브리스  개발도상국의 도시화  한항택 역  서울: 법문사,1976

제임스 아이 윌슨  전도전략 원리  이용원 역  서울:생명의말씀사, 1977

제임스 케네디  현대전도  이동원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1973

허버트 케인,  기독교 세계 선교사  박광철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81

히비콕스,  현대사회로 돌아온 종교  이종윤 역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86

프랭클린 M.  지글러  목회학 원론  이정희 역  서울 :요단출판사, 1983

프랑시스 웬델  칼빈의 신학 서론 한국 칼빈학회 편역

서울: 기독교문사, 1981

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 이홍근역,서울:분도출판사,1978.

 2) 논문

홍은혜. ”교회성장과 사회봉사와의 관계“ 서울: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1989.

송삼의. “지역사회개발과 교회의 선교적 사명” 서울: 한신대학

신학대학원,1986.

최무열. “지역사회사업을 위한 지역교회 연합활동”  서울:숭실

        대학교 대학원: 1988.

서정호. “한국교회자원의 사회복지활용에 관한 연구”  서울:중

         앙대학교사회개발대학원,1983.

박원기. “교회와 지역사회 관계성에 관한 연구” 부천:서울신학

         대학신학대학원,1986.

옥승영. “지역사회와 교회개척에 관한 연구”  부천:서울신학대

         학신학대학원,1988.

김동성. “현대교회 목회갱신의 방안” 부천:서울신학대학신학대

         학원,1987.

고현철. “목회신학의 모형비교”  서울:감리교신학대학신학대학

          원.1988.

홍정찬 “현대교회의 바람직한 목회”  부산:고신신학대학신학대

         학원,1990.

3)영서

     B.F. Hosetitz,"Generative and parasitic cities", Econi-mic Development ulture change, 3

(April,1955)

     D. Popone, Democracy and Community(London: Oxford Univ.Press, 1976)

     Enoch Pond, Loctures on Pastoral Theology (Boston: Praper & Hiliday, 1847)

     J. Sirijamarki, URBAN Social Structure (New York: Free Press, 1972)

     K. Latourtte, A History of the Expansion of Christ        Vol. 6 (Grand Kapids)

     K. Davis, "The Vrbanization of the Human Population", in Dennis Flargam et al. eds cities (New

York: Alfred           A Knopf, 1965)

     Osborn Feder J. Whittiet.  The New Town: The Answer to Metropolis (London:Leonard Mill, 1963)

     Park E. Robert.  The city as a Social Laboratory (New York Mcgraw Hill, 1970)

     Robert Redifield and Milton Singer,"The cultural Role of

         cities", Economic Development and cultural change, 3(Octobers, 1954)

 


4) 학술 잡지

김용복."소외된 삶,파괴된 창조신앙". 목회와 신학,1990.12. 64-67.

김진홍."가난한 사람을 위한 목회적 관심". 43- 58.

로버트 레(Rea,Robert)."장애자들이 사역에 참여 하도록 돕자".1990.8.262-264.

배민아."교회의 장애 아동에 대한 시각". 기독교 교육,1989.5. 32-37.

양동춘."장애자의 기독교적 양육에 대한 기본적 제언".1987.5. 29-41.

이성재."장애자는 장외자인가".기독교 사상,1988.10. 169-175.

이성훈."소외층 선교에 대한 제언".목회와 신학,1990.12. 43-58.

 


5) 사전류

대한기독교서회. 그리스도 대사전. 대한 기독교 서회. 1972.

김정근외. 동아원색대백과 사전.  동아출판사. 1982. S.v.장애자 복지.

조근치외. 법전. 현암사. 1983. S.v.특수교육진흥법,신체장애자복지법.

 


6) 신문류

허문명. "장애인 30여명 자립의지 구슬땀". 동아일보. 1992년 4월 20일.  . "장애인에게 희망을 주자". 동아

일보. 1992년 4월 20일.

 

 

 

부록: 2

2.설문지

안녕하십니까? 저는 백암중앙교회를 시무하고 있는 담임목사입니다. 저는 지역사회에서의 교회 역할을 새롭

게 정립하고자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기를 원합니다. 아래의 설문을 잘 읽어 보시고 0표를 해주십시오. 본자

료는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질 것이며 연구이외의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무기명이므로 이름을 적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1.당신의 성별은

남자(        )

여자(        )

2.당신의 나이는

10대(        )

20대(        )

30대(        )

40대(        )

50대이상(        )

3.주거환경은

아파트(        )

주택(        )

전세(        )

월세(        )

4.당신의 월수입은

50-100만원(        )

100-150만원(        )

150-200만원(        )

200만원 이상(        )

5.당신의 학력은

중졸(        )

고졸(        )

전문대졸(        )

대졸(        )

기타(        )

6.당신의 현재 가족수는

2명(        )

3명(        )

4명(        )

5명(        )

6명이상(        )

7.당신은 결혼 하셨습니까

예(        )

아니오(        )

기타(        )

8.용인 지역에 친인척이 있습니까?

예(        )

아니오(        )

기타(        )

9.현재 실직 중이십니까?

에(        )

아니오(        )

기타(        )

10.종교가 있으십니까?

예(        )

아니오(        )

기타(        )

 문11.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의 주거환경은?

         좋다(        )

         별로다 (        )

         보통(        )

 문12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지역에 이사 오신지는?

         1-2년(        )

         3-4년  (        )

         5-6년 (        )

         7년이상(        )

 문13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지역은 발전했습니까?

         예(        )

         아니오 (        )

         점차로 (        )

 문14 앞으로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지역이 발전한다고 보십니까?

         예(        )

         아니오 (        )

         점차로 (        )

 문15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지역의 주산업은 무엇입니까?

         농  업(        )

         수산업 (        )

         공  업 (        )

         상  업 (        )

         기  타 (        )

 문16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의 행정관청의 서비스는?

         좋다   (        )

         부족하다(        )

         미흡하다(        )    

         불편하다(        )    

 문17 이 지역에 계속 사실 겁니까?

         예(        )

         아니오(        )

         1-2년후 이사  (        )

         4년이상(        )

 문18 지역사회활동에 참여하십니까?

         예(        )

         아니오 (        )

 문19 이지역의 전통을 아십니까?

         주거(        )

         교통(        )

         산업   (        )

         교육,문화(        )

         기타   (        )

 문21 가정에 문제점이 있습니까?

         예(        )

         아니오 (        )

         조금(        )

         기타(        )

 문22 있다면 어떤문제 일까요?

         부부문제(        )

         주거문제(        )

         경제문제(        )

         자녀(        )

         기타   (        )

 문23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문제는?

         애정(        )

         남편(        )

         아내(        )

         자녀(        )

         범죄(        )

         주거(        )

 문24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가정문제는

         순결(        )

         부부애정(        )

         노인   (        )

         자녀   (        )

         경제   (        )

 문25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세워지고 있습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26 자녀들의 고민을 알고 계십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27 자녀들의 고민을 알고 계십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28 노인을 모시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29 가족간의 행사는 잘지켜지고 있습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30 가족의 기념일을 아십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31 청소년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애정문제(        )

         용돈   (        )

         학업   (        )

         진로   (        )

         기타   (        )

 문32 자녀들을 어느정도 교육시킬 생각입니까?

         고졸   (        )

         전문대졸(        )

         대졸   (        )

         대학원졸(        )

 문33 자녀들이 고민을 부모에게 털어놓는 편입니까?

         예(        )

         아니오(        )

         조금   (        )

         기타   (        )

 문34 가정에서 자녀에게 체벌하십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35 자녀에게 시간을 투자하십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36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건전한 이성교제(        )

         경제적 독립 (        )

         올바른 진로 (        )

         기타   (        )

 문37 길거리에서 비행청소년을 본다면

         충고한다 (        )

         모른체한다(        )

         신고한다(        )

         기타   (        )

 문38 과외를 시키고 있습니까?

         예(        )

         하다가 경제적 사정으로(        )

         조금(        )

         기타(        )

 문39 교육제도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예(        )

         아니오(        )

                조금(        )          

             기타(        )

 문40 자녀의 종교에 관심이 있습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41 가정과 지역사회를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예     (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42 종교 본래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선행, 도덕(        )

         인간구원(        )

         사회정화(        )

         기타   (        )

 문43 이 지역의 종교는 종교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다고 보십니까?

         예(        )

         아니오 (        )

         조금   (        )

         기타   (        )

 문44 현재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기독교 (        )

         불교   (        )

         천주교 (        )

         유교   (        )

         기타   (        )

 문45 종교를 가지신 이유가 있다면?

         올바른 삶(        )

         마음의 안정     (        )

         구원(천국)(        )

         경제적문제의 해결 (        )

         기타(        )

 문46 종교를 가지게 되었던 때는?

         어린시절(        )

         사춘기때(        )

         청년때 (        )

         어른이 되어(        )

 문47 기독교회가 가정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면?

         좋은일이다(        )

         별로(        )

         조금   (        )

         기타(        )

 문48 향후 종교를 가지신다면 어떤 종교를?

         기독교 (        )

         불교   (        )

         천주교(        )

         유교   (        )

         기타   (        )

 문49 교회가 가장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사회문제(        )

         교육문제(        )

         가정문제(        )

         노인문제(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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