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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부의 분노 해결비결"

김노섭-열린문 2007. 6. 14. 18:12
1. 부부생활 갈등 속에서 오는 분노
  
1) 분노는 기본적인 생존 수단
   갈등과 사랑싸움을 이용해서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싶어하는 우리를 무엇이 방해하는가? 원만한 대화를 통해 부부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우리를 무엇이 방해하는가? 우리는 모두 그 해답을 잘 알고 있다.
의견 충돌이 격앙될 때 일어나는 분노가 그것이다. 만약 우리가 분노를 다룰 수 있고 대화를 통해 분노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부부 사이의 문제는 물론 다른 대인관계 문제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분노는 바로 친밀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감정이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에서는 분노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아마도 결혼 생활에서보다도 분노와 그 치료 배후에 있는 원리들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한 인간 관계는 없을 것이다. 결혼 생활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가장 친밀하면서도 필시 가장 복잡한 관계이기도 하다. 결혼 생활에서의 화나는 일들과 상처받은 감정들, 오해들, 무례함, 노골적인 이기심 등이 자주 일어난다. 의견의 불일치가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고, 또 인간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 관계에서 그러한 문제들이 생기는 것은 놀랄 일이 못된다.
분노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화를 내는가? 성경은 분노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가? 분노를 다루는 불건전한 방법은 어떤 것인가? 한국인 특유의 분노 처리법은 어떤 것인가? 화가 났을 때 분노의 감정을 건설적으로 푸는 성경 심리적인 방안들은 어떤 것인가?
분노는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喜怒哀樂)가운데 하나인 '노'(怒)에서 연유된 감정이다. 분노는 사랑, 흥분, 슬픔, 두려움, 불안, 평안과 같은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주어진 대표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옳다거나 그릇 되다고 할 수 없는 기본적인 감정이다. 두려움과 분노는 우리의 기본적인 생존 수단이다.
'강한 불쾌감'으로 표현되는 분노는 그 강도에 따라 가볍게는 짜증나고 약이 오른 상태부터 원한, 분노, 분개, 격분, 진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분노를 느끼면 얼굴이 빨개지고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세지며 핏대가 오른다. 분노는 적개심과 함께 행복의 파괴자, 많은 중병의 주요원인, 일본의 두 배인 사십대 남성 사망률, 우울증, 비능률, 교통사고, 산업체에서의 작업 시간 손실과 재정적 손실, 결혼 생활의 갈등, 강간, 살인, 아내 구타, 부인의 불감증, 어린아이의 반항, 대학생들의 데모 등의 원인이 되어 왔다. 이러한 분노는 개인적 분노와 집단적 분노, 죄악된 분노와 의로운 분노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서로 대화하기를 원한다. 부부 중에 한 사람이 화가 났거나 모두 화가 났을 때는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화를 내는 것은 대화를 파괴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 따라서 사랑의 감정은 두 사람을 더 가깝고 친밀하게 만들어 주지만, 분노의 감정은 사랑하는 두 사람을 멀어지고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2) 분노의 원인
   결혼 생활에서 분노가 일어나서 곪게 될 만한 복합적인 원인들과 상황들을 생각해 보라, 결혼한 사람들은 자기 배우자와 점점 익숙해지면서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부부관계가 아주 강도 높은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자기 배우자에게 높은 기대를 걸다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이내 실망을 하고 만다.
특히 아이들을 키울 때 심신이 지칠 수가 있다. 어머니의 분노는 가정에 아이들이 있느냐 없느냐, 그들의 나이가 몇이냐, 남편이 얼마나 도와주느냐, 친구들과 얼마나 접촉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집안 식구들이 주부에게 요구하는 일들은 부담스러운 것들이며 그것을 이해해 주는 남자들이 별로 없다. 여자들은 스트레스와 외로움과 분노가 끓어오르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또한 과로와 수면 부족에서 오는 증상들, 생리전 증상, 지나친 다이어트 식단 등으로 고생을 하고 있고 또한 직장과 가정에 대한 책임을 균형 있게 감당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부담이 크므로 높은 수준의 적개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젊은 부부들도 역시 결혼 생활에서 심각한 재정 압박을 당하고, 한계점들에 도달하면 의견 층돌이 거의 불가피해 진다. 많은 남편들이 고지서를 받고 나면 화가 나게 된다. 왜냐하면 돈이 남아날 날이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신혼 부부는 자기 분노를 둘 만한 이유들이 많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기대가 높고 그들의 결혼 생활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인일 경우에는 보통 이타적인 사랑을 보이고 분노의 죄를 피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관하여 부가적인 기대들을 갖는다. 결혼 전에 그들은 아마도 제한된 기회와 환경에서 서로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짜증스럽고 실망스러운 일들이 서로 앞에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분노를 묻어 두고 지내는 일은 오래갈 수가 없다. 신혼 여행을 마치기도 전에, 혹은 정녕 몇 달 못 가서 심각하게 울화통을 터뜨릴 수가 있다. 결혼전 데이트 시절에 둘이서 의견의 불일치를 잘 조절한 경험이 없다면 결혼 생활에 들어와서 그처럼 화가 나고 분개심이 일어나는 데 대하여 충격과 실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크 코스그로브(Mark P. Cosgrove)는 결혼한 부부는 분노의 원인과 치료의 두 층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는 표면층으로서 그 사람의 성격적 특성과 배워서 익숙해진 의사 소통의 방식에 관련되어 있다. 부부들은 분명히 마음이 열리고 정직하고, 건설적인 의사 소통의 분위기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분노 감정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중에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나 친구들에게서 결혼 생활에 필요한 의사 소통의 기술을 배운 사랑은 극히 드물다. 결혼 자체 말고는 결혼 생활을 준비시켜 주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결혼 초기에 부부는 화나게 만드는 일들을 잘 다루고 서로간에 의사 소통을 원활히 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논쟁과 분개가 세상 끝이 아니고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여 해결하고 서로 사랑하는 일을 계속 추진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둘째, 분노 문제에는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층은 분노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모두 아담 안에서 함께 타락하여 자기 중심적인 본성을 갖게 된 인간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그 현실을 대한다. 타락의 결과 우리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기적인 태도가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지배한다면 의사 소통의 방식과 말하기, 듣기, 자신감 있는 말, 비방어적인 자기 방어(nondefensive selfdefense)가 별로 도움이 될 수가 없다. 인간의 분노 문제를 단순히 이해 부족이나 의사 불통으로 본다면 분노를 다루는 절차나 방법론을 담은 요리책을 편집하는 것으로 그치게 될 것이다.
여하튼 여러 원인들에 의하여 분노하게 된다. 그 원인 알아보도록 하자.
첫째, 불의와 모욕감을 느꼈을 때 분노한다.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처를 받았을 때 화를 낸다. 잠언 15장 1절은 "과격한 노를 격동하게 한다"고 가르친다. 남이 나에 대해 험담이나 부당한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나 무시당할 때 우리는 자존감이 위협받기 때문에 화를 낸다.
또한 우리는 거절당하거나 제지당하거나 창피를 당하거나 부당하게 비난받거나 또는 자존감이 위협을 받을 때 분노를 느낀다. 그것은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댔을 때 느끼는 신체적 고통과 같은 것이다. 아내나 남편이 상대방에게서 상처되는 말이나 부당한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안정감이 위협받았을 때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둘째, 분노는 어느 정도까지 학습된 반응이다.
우리는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화를 내는 방법을 모르는 사이에 습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 22:24는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올무에 빠질까 두렵다"고 가르치고 있다. 분노는 전염병과 같아서 전염된다. 늘 불평만 하고 짜증이 나 있는 남편은 아내로 하여금 분노와 적개심을 느끼게 한다.
셋째, 우리의 소원이나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분노한다.
즉 실망할 때 화가 난다는 말이다.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할 때, 집회를 참석하러 가는 데 차선이 막혀 있을 때, 물가가 오를 때를 비롯하여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부부는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외향성의 남편은 내향성의 아내에게 비밀스럽다. 느리다. 꿍꿍이속이 있다. 지루하다. 계산한다. 접근이 힘들다고 성화를 부리기 마련이다. 반대로 내향성의 아내는 외향적인 남편에게 너무 억지를 부린다. 떠들기만 한다. 믿을 수 없다. 사생활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고 하며 불만을 품게 마련이다.
우리는 보통 분노를 부정적이고 불쾌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노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우리는 어린이나 여자들이 존엄성이 짓밟히고 무시당할 때 의분을 느낀다. 군인들이 양민들을 학살하는 것이나 경찰이 무죄한 학생을 고문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격분하기 마련이다. 우리 국민의 거의 모든 계층이 함께 느꼈던 집단적인 분노가 6. 29선언을 가능케 했으며, 민주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표현한 감정은 사랑(compassion)과 슬픔과 분노이다.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았을 때 주인께서 분히 여기셔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타이르셨다(막10:14). 또한 주님은 사람들이 완악한 것을 보고 기도하는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 환전상과 종교 지도자들을 보고 분개하셨다(막11:15-18).
하나님께서 불의를 보고 진노하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가난한 사람을 더 못살게 하는 정책이나 전세 값을 무고히 올리는 집주인, 고귀한 인격체인 사람을 팔아 넘기는 인신매매 자들에게 의로운 분노를 느낄 줄 알아야 한다.
 
3) 분노의 반응 방법론
   사람들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 특히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분노는 어떻게 표출되는가? 사람들의 분노 반응에 대하여 심리학자들은 다음 네 가지 가운데 하나로 반응한다고 말한다.
첫째, 분노를 의식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이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아니면 기대가 좌절되어 화가 났을 때, 그것을 인정하되 불쾌한 감정이 무절제한 행동이나 말로 발전하는 것을 막고 분노를 절제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잠언의 기자는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한다고 하였다. 잠언 14:29에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야고보는 우리의 말하기 좋아하고 화를 잘 내는 성향을 지적하여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권면했다. 월리엄 메닝거(William Menninger)박사는 "화가 났을 때는 말하지 말고, 일단 진정된 다음에 말하라"고 했다.
둘째, 파괴적 반응으로 분출시킨다.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으로 꽉 차 있는 남편은 조그만 의견 충돌에도 폭언이나 욕설을 퍼붓든지, 가구를 부수든지, 부인을 구타하든지 한다. 이는 지극히 미숙한 반응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사도 바울이 말했을 때 이와 같이 파괴적이고 폭발적인 행동을 죄라고 규정하였다.
공격적, 폭발적 분노는 상대방을 이기고 보자는 이기적 접근 방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다. 잠언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했다. 따라서 남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것이 죄이다.
셋째, 분노를 피동적으로 억압하는 방법이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보복 당할까 두려워서 무의식 속에 분노를 파묻는 반응이다. 남편의 사랑을 상실하는 것이 두려워 우리 나라의 많은 아내들은 화가 났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감정을 억누른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화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나라에서도 '화병 전문 크리닉'이 생길 정도이다.
그런가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화를 내서는 안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화가 났을 때도 그것을 무시하고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분노는 이와 같이 억누르다 보면 억압된 감정이 정신 신체 질환으로 나타난다.
정신과 의사들은 마음이 침묵하면 몸이 부르짖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존 파웰(Jokn Powell)은 "내가 나의 감정을 억누를 때는 나의 위장이 점수를 매긴다"고 하였다. 억압된 분노는 위산과다를 촉발해 소화가 안되게 하거나 위궤양으로 나타난다. 억압된 분노와 스트레스가 편두통. 알레르기(두드러기). 근육통. 심장병, 당뇨병. 암 등의 원인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때로 억압된 분노를 거룩한 인격으로 혼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융통성 없는 엄격함과 냉랭한 인격으로 나타난다. 또한 억압된 분노는 피동적 공격으로 나타난다. 만성적으로 늑장을 부린다던가, 남이 말할 때 일부러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던가, 협조하는 체하면서 어설프게 일을 처리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넷째, 무시하는 방법이다.
분노를 무시하고 살면 결국 내면화된 분노가 상처 주는 농담이나 냉소적인 발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상대가 따지고 나오면 "농담이었을 뿐이야. 아니 농담도 한번 못해" "당신은 너무 예민해서 말이야" "그래. 당신 잘났어!"하며 되받는다.
직접 분노를 표현하면 보복 당할 것이 두려워 원한 감정을 억압하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저녁상 차려 드리는 것을 '깜박' 잊어 먹는 것으로 반응한다. 남편에게 화난 아내는 '실수' 의 이름으로 밥을 태워서 차려 줄 수도 있다. 잠자리에서 등을 돌려 대는 행위나 불감증도 남편에 대한 간접적 보복일 수 있다.
분노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으면 원한 감정, 복수심, 즉 한(恨)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들은 얼어붙은 억울한 감정을 풀 길이 없어 화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기도 했다.
심리학자 로저 바레트(Roger Barrett)의 말을 한번 인용해 본다.
"원한은 표현되지 않은 분노의 축적이다. 원한은 인간관계와 개인적인 안녕에 있어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다. 일부 우울증 환자들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늘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당신이 나에게 주의와 정성을 기울여 주지 않는다면, 난 더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포자기해 어떤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협박이다."
에베소서 4:26에서 바울은 분노도 우리 생활의 일부분인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기록하였지, "분을 내서 죄를 짓지 말라"고 기록하였다. 우리는 은연중에 "분노를 표현하지 말라, 모든 분노는 죄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말라"고 자신에게 타이른다.
화가 났을 때 분노의 존재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분노에 대한 가장 건전한 반응이다. 노를 무시하고 억누르면 문제는 더 악화되고 곪아터질 뿐이다. 화를 내는 것이 언제나 죄는 아니지만 분을 억누르고 사는 것은 언제나 죄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분노를 억누르는 것은 우리 인격에 피해를 끼치는 가장 나쁜 반응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 특히 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도들이 많이 사용하는 반응이다.
 
4) 전통적인 분노 해결 방법
   우리 한국 사람들은 "푼다"라는 말을 잘 쓴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그것을 "푼다"고 말한다. 골치 아픈 일을 풀고, 산수 문제를 풀고, 수수께끼를 푼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은 스트레스도 "푼다"고 말한다. 억울한 것도 풀고, 분한 것도 풀고, 막혀 있는 것, 그릇된 것도 풀어 버리려 한다. 즉 '풀이' 를 그만큼 중시한 민족이다. 그 가운데서도 한을 푸는 것에서 모든 한국인의 철학과 생활과 문화의 양식이 생겨났다.
민간 신앙인 민속 신앙을 보면 '살풀이' 라는 것이 있다. 한국 샤머니즘의 특징은 죽은 영혼의 원한을 풀어 주는 데 있다. 푸닥거리는 풀어 주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우리의 민속 종교가 이러했을진대 다른 것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노래 부르는 것, 시를 짓는 것, 춤추는 것, 모든 것을 시름을 풀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심심한 것까지도 다시 풀어 버린다. 그래서 노는 것을 심심풀이라 한다.
한국인은 스트레스를 푸는 데 단연 선진국의 첨단을 걷고 있다. 오징어 한 마리에 소주 한잔 먹고서도 긴장을 풀 줄 안다. 그뿐 아니다. 공중의 장소에서도 큰 소리로 떠든다든가, 둘만 모여도 남들을 헐뜯거나 푸짐한 욕지거리로 원한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풀고는 마음의 매듭이 풀려 후련하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들은 무례하고 권위주의적인 남편과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서 오는 한을 빨래터 대화나 눈물로 풀었다. 새벽기도에 몰려드는 여성도의 통성기도 눈물 속에서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원한 감정을 풀고 있는 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5) 건설적인 분노 해결 방법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사랑 가운데 직접 진실을 말함으로 분노의 감정을 풀어 버리는 성경적인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바울은 에베소서 4:29에서 "억압된 감정, 더러운 말 등 욕지거리를 도무지 너희 입밖에 내지도 말고,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아우성과 욕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억울한 감정을 느낄 때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겠는가?
성경은 대인관계의 기본 원리를 에베소서 4:15과 26에서 제시하고 있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여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도록 하라 우리는 서로 지체가 되었으니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에게 참말을 하라".
사랑 가운데 진실을 직접 말해 줌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분노를 푸는 대화를 직접적 대화, 표현적 대화, 면박하는 대화, 협조적 대화라 한다. 화가 나는 것을 인정하고 솔직히 털어놓음으로써 분노에 반응하는 건강한 방법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에베소서 4:26에서는 "분을 내더라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라"고 하고 있다. 성경은 분노를 무조건 나쁜 감정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하라. 그러나 노여움이 속히 격해지는 것을 조심하라. 그것이 사랑에 의해 절제되지 않는다면 원한, 미움, 복수심, 악의, 폭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2. 부부생활에서 오는 분노에 대한 상담 방법
 
다음의 상담의 단계는 분노하거나 독심을 품은 사람들이 성내기를 더디 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상담자가 밝아야 할 단계의 과정들이다. 이 일곱 단계들은 성미나 뿌리깊은 독심, 공격적인 아동의 행동 혹은 가정 폭행 등 무슨 문제가 되었든지 수많은 분노 관리 상담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1) 분노를 인정하라
   이 반성적인 분노 감정의 자제에 있어서 내담자들이 밟아야 할 첫 단계는 자기가 화났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노 감정이 자연스런 것이며 인간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내담자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하며 이러한 약점들이 자기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내담자가 이러한 가치 감각을 갖고 있지 못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던 분노의 열이 달아오를 때 자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잘못했을 때 종종 화를 내게 된다. 왜냐하면 고함지르는 목소리 뒤로 자신의 무안함을 변호하려 하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분노한 사람이 자기가 받은 상처지 대해서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분노를 잘 다루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것은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현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내담자들은 자기의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함으로써 자기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한 이유들을 좀더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해 야 한다.
두 사람 사이나 혹은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서 분노를 해결하고자 할 때는 그 분노한 사람이 남들 앞에서 자기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자유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항상 부인한다면 우리의 분노를 적절히 표현하는 법을 배울 수가 없다. 이것은 물어 보기 곤란한 일이다. 상담자들은 사람들에게 분노의 죄를 심하게 지적함으로써 그들이 자기가 실제로 느끼고 있는 감정을 부인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불합리하고 분노한 생각들을 자유스럽게 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2) 생각들을 자제하라.
   분노의 문제들은 자기 동정이나 낙심, 시기 혹은 그 밖의 부정적인 생각의 씨앗으로부터 시작된다. 각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돌아가느냐가 행동과 감정을 자제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그러므로 분노하기 직전이나 분노하고 있는 동안에 어떤 생각이 진행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감정을 오래 지속되기하고 힘을 제공하며 분명치 않은 감정들에 해석을 가한다.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이 분노를 향한 첫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분노가 일어나기 직전에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진행되는 생각들은 그 스트레스 상황이 분노를 어느 정도로 일으키느냐에 영향을 준다. 즉 아내에게 들려줄 기쁜 소식이 있는 사람은 퇴근 시간에 차가 막혀도 짜증을 내지 않을 수 있다. 자신감과 안정감이 있는 아내는 남편이 저녁 메뉴에 대해서 불평을 해도 불필요하게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고 방식을 바꾸는 것이 공격성을 치료하는 실제적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연구 결과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 노인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분노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생각은 끊임없이 가치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비교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각들을 바꿈으로써 분노를 중도에 막을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 생각들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오직 우리의 내담자들이 자신의 분노를 진정으로 자제하고자 할 경우에만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서적으로 각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정서적 각성은 그들의 합리적인 생각을 무디게 하는 경향이 있다. 상담자들은 내담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들을 분석하고, 위협이나 공격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과 같은 불합리한 생각을 할때는 그 사실을 인정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상담 센터애서 내담자들의 생각을 개조하는 연습도 할 필요가 있다.
 
3) 분노의 원인을 분별하라,
   성내기를 더디하는 절차에 있어서 그 다음 단계는 내담자들이 자기 분노 감정의 원인을 분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내담자들에게 지금 화가 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 보라. 그들이 설명하는 사람들이나 상황 자체는 그 들을 화나게 하는 원인이 아닌 때가 아주 흔하다.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아내에게 화를 내는 남편은 자기가 실제로 화를 내는 대상은 아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자기 감정을 자제하고 실제로 분노를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염려와 같은 분노의 구체적인 원인을 찾아내야만 한다. 분노의 구체적인 원인을 알아내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자기 분석과 정직한 태도를 요구하는 일이다. 남들이나 사건들이 항상 분노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두려움이나 자신의 한계점도 될 수 있고, 불합리한 신념이나 기대도 될 수가 있다. 그러한 자기 분석이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에 완전히 이루어질 수는 없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지식은 시간이 지나야 쌓이게 되고 그러한 지식이 확보되면서 내담자가 자기 자신의 분노에서 자기가 하는 역할을 분별하는 일을 좀더 쉽게 만든다. 그 사람의 필요와 두려움은 하룻밤 사이에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이 느끼는 한계점들과 해결되지 않은 필요들을 파악하는 지식은 실제로 잘못된 것을 분별하여 해결하는 데에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자기의 필요와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요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분노한 사람들이 건강과 안전, 자존감, 공동 생활 등을 위해 필요한 순수하고 정당한 요건들로부터 공상적인 요구들을 가려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분노의 원인을 분별하려면 직장의 동료나 가족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과 하찮은 일로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분노의 원인중에 흔한 것 하나는 성내기를 잘하는 사납고 가까이 사귀는 것이다. 내담자들에게 가능하다면 항상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을 피하도록 충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4) 불합리한 신념에 도전하라.
   분내기를 더디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신념과 기대들에 대해서 정신적으로 도전하고 정당한 것들을 인정하는 뜻이다. 우리 모두는 여러 가지 개념과 사람들고 상황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을 도와주는 신념체계 혹은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우리가 만일 자주 성내게 된다면 우리 자신의 신념 체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불합리한 기대나 신념들은 정신적인 오류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편리나 목적을 위하여 일들이 달라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주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요인들이 된다.
분노가 일어날 때 불합리한 신념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도전한다면 대담자들이 삶과 자신과 남들에 대하여 습관적으로 생각해 오던 태도에 변화를 보이는 것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신념들이 현실에 맞추어질 때 분노의 문제는 줄어든다.
 
5) 모든 일을 다 간섭하지 말라.
   성내기를 더디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남들과 관계를 맺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문제들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고 방식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삶이 불공평할 수도 있으며, 사고들이 일어날 수도 있고, 나이 들어 죽는 것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분노한 사람들도 역시 남들을 좀더 잘 받아들이고, 남들도 문제들과 궂은날들이 있고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나 삶이란 다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생명의 위협들을 그대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가만히 누워서 아무런 변화도 시도하지 말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늘은 일이 잘되리라고 생각하거나 사람들이 회개하고 남들을 좀더 잘 대해 주리라는 희망을 갖는 긍정 적인 태도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 잘못되는 것을 볼 때 충격을 받고 분노하는 일이 없도록 허야 한다. 내담자들에게 살아가는 동안에 문제들을 만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며 인생이란 그런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것이라는 태도를 심어 주어야 한다. 정상적인 일과들과 짜증스런 일들을 놓고 웃는 법을 배우는 것이 분노를 완화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가 제시된 바 있다.
분노를 잘하는 사람들은 남들의 좋은 면에 집중을 하고 그들의 장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다 완전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결코 만나 본 적이 없다"고 한 월 로저스(Will Rogers)의 유명한 말을 "나는 장점이 없는 사람을 결코 만나 본 적이 없다."는 말로 바꾸어 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관계에서도 언제든지 불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대인 관계의 마찰에서 좌절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사소한 상처와 실망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일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관계는 그처럼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우리는 모두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6) 대인 관계의 목적을 생각하라.
   다른 사람이 분노를 일으켰을 때 내담자는 이웃을 사랑하고 섬겨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있어서 대인 관계의 목적을 생각해 보도록 해야 한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든지 지나가는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지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든지 간에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다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 주고 우리의 대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분노를 지연하는 것은 또한 용서하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누군가를 용서하는 태도를 동시에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용서하는 마음 자세는 단순히 사람들이 사과할 런 용서해 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들의 한계점들과 실수들을 용납하는 것까지도 의미한다. 무슨 죄를 짓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지 간에 남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다 연약하고 죄악된 존재들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사악한 적들을 용서하신 것은 원수를 다루는 최선의 방법을 택하도록 한 하나님의 자유케 하시는 은혜였다. 남을 용서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고통이나 상처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시는 관점을 포함하여 그 처한 상황 전체를 고려할 수가 있다. 내담자들은 심한 대우를 받고 상한 감정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노를 절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인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좀더 나은 생각과 좀더 용서하는 태도로 바꿀 수가 있다.
 
7) 마음의 평화를 발전시키라.
   분노를 지연시키고 분노 반응의 변화를 위하여 시간을 가지면 절제와 인내와 평화에 대한 느낌이 강화된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분노가 당장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상담실에서만 아니라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힘써 노럭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이다. 분노한 사람들은 노하기를 더디 하도록 상담자들이 자주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삶과 남들과 대인 관계의 목적에 대해서 올바른 견해를 갖고 행동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을 용납하도록 상담자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분노에 대해서 책임질 것을 명심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성난 사람들이 인내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 여기서 인내는 조용히 견디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내는 격한 감정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성경은 성숙한 사람은 오래 참고 인내하며 평온한 사람으로 특징짓고 있다. 온유와 겸손과 사랑의 사람은 해결되지 않은 분노에서 나오는 고집을 부리거나 불친절하거나 다툼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으로 특징 지워진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법을 배우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때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요구되는 사랑의 대면을 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타락한 세상에서 필요한 의분을 제대로 표현 할 수 있게 된다. 성내기를 더디 하는 법을 배우면 시간 여유를 갖고 우리의 문제들을 풀거나 분노를 적절히 표현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분노를 지연시키면 우리 자신의 분노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며 미움을 딛고 일어나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해준다. 분노 지연의 기초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분노를 언제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결정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분노를 지연시키는 것만으로는 분노 문제를 층분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한 인간 관계 문제는 적절한 분노의 표현과 그에 뒤따른 문제 해결을 필요로 한다.

출처 : 설교전문학교
글쓴이 : 가나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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