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가정

현대 한국 가정 형태 변화외 따른 문제

김노섭-열린문 2007. 6. 14. 11:22
 
오늘날 한국 가정의 문제

I. 오늘날 한국 가정 형태의 변화 현상
 

한국 사회의 급속한 경제적 발전은 결과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어느 정도 해결해 주었지만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지나치게 빠른 전통 사회 구조의 붕괴는 가치관 혼란의 현상을 야기하였다. 이러한 한국의 사회적 현상은 가정의 의미와 구조에도 심각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정상적인 가정”의 개념에 대한 혼란이 오고 있다.
종래 가정은 최소한 합법적인 관계를 맺은 부모 그리고 그들의 생물학적 자손의 인적 구성을 갖추고, 공동 생활을 보장하는 물적 기반인 집, 일정한 소득과, 구성원 간의 관계를 맺어주는 조건인 가족 간의 역할 분담 및 수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성원 간의 연대감 및 사랑이 보장되는 공동체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후기 산업 사회의 최대의 특징인 다양성과 상대주의 그리고 해체는 가정에 대한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세대의 구성을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추세를 볼 수 있다.

 

앞의 자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2세대 가구가 여전히 가장 큰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세대 가구와 3세대 가구는 조금씩 줄고 있는 가운데 1세대 가구와 1인 가구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이 자료에서는 비혈연 가구를 별도로 구분하였기 때문에 혈연적 가족으로 구성된 가정이 곧 가구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현대 한국 사회가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를 버리고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후기 산업 사회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통계에 잘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세분해 보면 이른바 정상적인 가정 외에 무자녀 가정, 편부모 가정, 재혼 가정, 입양 가정, 독신자 가정, 독거 노인 가정, 동성애자 가정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가정의 형태가 다양한 상황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만을 기준으로 가정 문제 해결에 접근한다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가정 형태에 대한 분석과 그 문제점에 대한 대처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II. 오늘날 한국 가정의 문제점

1. 사랑의 관점에서 본 가정의 문제

1) 가정 폭력

현재 한국 사회의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가정 폭력이다. 서구 민주주의적 사고 방식의 유입 이후 한국 사회 전체에 널리 퍼지게 된 평등에 대한 욕구가 가정 내의 가족 구성원 간의 역학 관계의 변화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전통과 이러한 평등 의식이 대립하는 가운데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할 경우 종종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가정 폭력에는 배우자 학대, 노인 학대 그리고 아동 학대 등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이 배우자 학대이다. 배우자 학대는 배우자에 대한 폭행, 감금, 기물 파괴와 같은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배우자를 유기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나 명예를 훼손하는 일도 포함된다.
생물학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타고난 (주로 남편인) 배우자가 자신의 배우자에게 물리적인 위협과 상처를 남기는 일이 종종 있어 왔다. 그런데 최근에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경제적 독립이 활발해지면서 종래의 가정 안에서의 남편의 역할과 권위가 빠르게 바뀌고 있으나 이에 대해 적절히 대응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에 폭력이 나타나게 된다.
구체적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원인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설문 : 구타는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가? (%, 중복 답변)
문항
면접 설문(피해여성)
인터넷 상담(자녀)
    자녀와의 문제가 있을때

10

1.72
    생활비 요구할 때
9.23
1.51
    남편의 외도 따질 때
13.85
6.06
    남편이 술을 마셨을 때
37.69
39.39
    아내가 말대꾸할 때
29.23
1.51
    남편의 기분에 따라 이유 없이
40.77
53.03
    기타
2.31
20.30

(자료 출처: 서울 여성의 전화, 2001년)

위의 자료는 2000년 상반기 상담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인데 “남편의 기분에 따라 이유 없이”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곧 부부간의 대화와 이해 부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은 상당수의 아내는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모르면서 매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음주가 끼치는 영향도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피해 당사자의 시각과 자녀의 시각의 차이이다. 이 또한 가정 내의 대화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가정 폭력의 문제에 접근할 때 대화 부족과 음주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정폭력방지법이 1998년 7월부터 시행된 후,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1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지난 5년 동안 가정 폭력이 발생할 경우 여자가 이에 대응하는 방법이 어떻게 변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통계가 있다.

가정 폭력에 대한 대응 추이 (%, 2001년은 상반기만)
문항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무조건 빈다 13 10 9
9
10
그냥 당한다 22 21 18 18 20
도망간다 26 21 22 22 23
대항한다 20 28 21 24 26
이웃 도움 청한다 12 11 13
10
8
경찰에 신고한다 7 9 12 14 12
기 타 1 0 5 3 2
합 계 100 100 100 100 100

(자료 출처: 서울 여성의 전화, 2001년)

1998년 가정폭력방지법이 발효된 이후 변화 추세는 배우자의 변화된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곧 법 제정 이전인 1997년에는 도망가는 경우가 가장 많았으나 2000년부터는 대항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태도로 나타났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는 추세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에 이 수치가 약간 줄었으나 전체 연도의 수치를 계산하면 추세에 커다란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부부간의 문제를 가정 내부의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방치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자녀와 부모의 관계 단절 / 청소년 비행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문화가 시대 정신으로 나타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녀와 청소년의 역할은 소비의 한 주체가 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어릴 때에는 핵가족화된 가정에서, 또 자녀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부모의 지나친 관심으로 그들의 투영체 역할을 함으로써, 청소년기에는 주변의 밀려드는 유행 정보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과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산업 자본가들의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오늘날의 자녀와 청소년들은 경제적으로는 부모에게 철저히 종속되면서 정신적으로는 철저히 독립해 보려는 이중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정 안에서 가족의 대화,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부족하게 되고, 그만큼 가정의 역할이 축소됨으로써 청소년기에는 자녀들이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문제를 풀려 하고, 여기서 청소년의 가출이 발생하고 사회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 가정의 경우에, 특히 미취학 자녀는 어릴 때부터 위탁 기관이나 조부모들이 부모를 대신하여 양육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취업 상태별 취학전 자녀 양육 실태 - 1995/1998년 기준(%)
  부모 가족친척 파출부 유치원,학원 교회유치원 놀이방 어린이집 기타
1995년 취업 27.5 24.0 2.4 27.5 9.7 3.7 4.5 0.7 100
1995년 취업 69.9 3.4 0.1 20.0 4.9 0.8 0.8 0.2 100
1998년 취업 24.0 22.1 2.5 19.4 5.5 22.8 2.8 1.1 100
1998년 취업 54.1 6.7 0.0 20.5 6.7 9.9 1.6 0.6 100

(자료 출처: 통계청)

맞벌이 부부인 경우나 아내가 전업 주부인 경우나 상관없이 자녀를 부모가 직접 양육하기보다는 타인의 손에 맞기는 경향이 더 늘고 있다. 물론 아내가 전업 주부인 경우에는 맞벌이의 경우보다 자녀를 직접 돌보는 경우가 두 배 이상이다. 그리고 1998년의 경우 맞벌이 부부가 놀이방을 이용하는 경우가 1995년에 비해 7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와 동시에 전업 주부라 하더라도 육아를 전담하는 비율이 15.8%나 줄어 여성의 사회 활동을 통한 자아 실현의 추세가 크게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의 경우에, 문제가 있을 때 부모보다는 또래들과 의견 교환을 하고 거기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추세가 여전하다.

청소년 고민 상담 대상 변화 양상
  부모 형제자매 친구 선후배 선생님 상담소 스스로 기타 고민 없음
1994년 14.3 5.8 53.0 2.0 0.3 22.8 0.0 1.8
1998년 12.0 7.3 60.5 0.7 0.3 16.8 0.8 1.5

(자료 출처: 통계청)

부모나 선생님과 대화를 적게 하는 자녀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또래들과의 대화에 더욱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도 부모와의 대화와 함께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는 오늘날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고 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자녀와 부모 사이의 대화가 줄어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시간이 없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공부에 휘둘려야 한다. 조기 교육 열풍에 우리말을 하기도 전에 외국어를 배우고, 걸음마를 떼면서는 학원을 다녀야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유명 학원 5-6개는 다니면서 선행 학습을 해야 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낮뿐만 아니라 밤을 낮처럼 살아야 한다.
둘째, 부모와 자녀 간 정보 습득의 차이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의 발달로 아이들은 부모의 통제권 밖에 머물게 되었다. 곧 자녀들은 그러한 최신 문명에서 일차 최신 정보들을 얻는 데 비해 부모들은 전통적인 대중매체를 통해 일단 걸러진 2차 정보를 얻어 가정 안의 정보 격차(digital divide)가 발생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2002년 말 현재 20대 이하는 90%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비해 40대는 39%, 50대 이상은 10%에 머물러 정보 격차에 따른 대화의 단절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곧 부모가 갖는 지식과 정보에는 한계가 있게 되고, 자녀들은 더 이상 부모를 모든 분야의 능력자로 보지 않게 되면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청소년 문제다. 가정의 기능이 현대에 와서 심각한 위기 국면을 맞으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는 197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른 전반적인 가치관의 전환에서 찾기도 하고, 입시 위주의 주입식 학교 교육에 책임을 돌리기도 하고,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상실된 데에 책임을 돌리기도 하는데, 어느 하나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수많은 원인들의 상호 작용에서 오는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상실된 것이 중대한 요인이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정이야말로 인간의 성장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청소년 비행의 책임을 가정(38.1%), 본인(34.3%), 사회(14.6%), 학교(7.9%), 정부(3.2%) 등의 순으로 꼽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또 청소년 비행의 원인으로 부모의 무관심과 가정 교육의 불충분을 1위로(75.9%), 문제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로 가정 불화를 1위로(64.5%) 들고 있는 데서도 잘 입증된다.

이러한 청소년 문제의 발생에서 그 극단적인 현상으로 청소년 가출 문제를 들 수 있다. 가출 청소년들은 대부분 안정되지 못한 가정 환경과 경제적 불만족을 가출 동기로 말하고 있다. 나아가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입시를 중요시하게 되면서 입시의 중압감을 못 견뎌하다가 가출하는 경우도 있으며. 학교 선생님의 체벌, 친구 따라하기 등이 가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가출 청소년들이 가출과 동시에 성인 중심의 유해 환경에 쉽게 노출되고,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있을 곳을 찾아 유흥업소의 매춘부나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이다. 주변의 관심만이 그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 아니다. 가정 불화로 가출한 청소년은 언젠가 다시 가출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좀 더 깊은 해결 방안을 탐색해야 할 것이다.

3) 이혼

한국도 후기 산업 사회로 빠르게 접어들면서 경제 제도뿐 아니라 사회적 유형도 서구화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원래 서구에서 나타났던 사회 병리 현상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 특히 가부장 제도와의 갈등에서 벌어지는 문제까지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가정과 관련되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이혼 문제이다.

2001년에 한국에서는 32만 쌍이 결혼하고 13만 5천 쌍이 이혼을 하였다. 1일 평균 877 쌍이 결혼하고 370쌍이 이혼한 것이다. 이는 혼인 건수는 지난 1980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데 비해 이혼 건수는 꾸준히 증가한 결과이다.

혼인 및 이혼 추세 (건, 천명당)
  1970년 1980년 1990년 1995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혼인 건수 295,100 403,000 399,300 398,500 275,600 362,700 334,000 320,100
이혼 건수   11,600   23,700   45,700   68,300 116,700 118,000 120,000 135,000
조혼인율 9.2 10.6 9.3 8.7 8.0 7.7 7.0 6.7
조이혼율 0.4 0.6 1.1 1.5 2.5 2.5 2.5 2.8

(자료 출처: 통계청)

1970년에는 이혼율이 인구 천명에 0.4건 정도였던 것이 2001년에 들어서는 천명에 2.8건으로 7배 정도 늘어났다. 이는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이며, 일본, 대만 등 중 아시아 국가 중 최고이다. 또 인구는 늘어나는 데 반하여 혼인 건수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아내의 경제적 독립과 자의식의 확대로 볼 수 있다. 1990년만 해도 이혼 사유 중 경제 문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했으나 2001년에 들어서는 11.6%를 차지할 만큼 크게 증가하였다. 반면에 부부 불화는 1990년에 84.9%에서 2001년에 74%로 무려 10.9% 포인트나 줄어들었다. 곧 아내의 경제적 독립이 강화되면서 종래의 일반적 현상이었던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하는 현상이 급격히 줄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물질적 풍요의 가치가 증가하면서 그러한 가치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남편과의 혼인 관계를 과감히 청산할 수 있을 만큼 아내의 의식도 변하였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이혼 소송을 청구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48.2%로 배우자의 부정이었다. 그 다음이 배우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24.7%를 차지하였다(사법연감, 2002년 판). 그러나 전체적인 추세로 볼 때 대부분이 남편인 배우자의 부정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대신 배우자에 대한 정당한 대우, 곧 인격적 대우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아내의 점증하는 경제적 독립과 평등 의식이 가정의 변화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혼과 더불어 나타나는 중요한 변화는 재혼의 증가이다. 전통적으로 재혼을 금기시해 왔으나 전체 결혼 건수에서 초혼율은 줄어들고 재혼율은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초혼 및 재혼의 변화 추이 (%, 2001년은 상반기만)
  1990년 1995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남자 초혼 91.6 89.3 88.3 86.9 86.7 85
여자 초혼 92.9 89.3 87.4 85.8 85.2 83.2
남자 재혼 8.4 10 11.6 12.8 13.1 14.7
여자 재혼 7.1 10 12.5 14.5 14.5 16.4

(자료 출처: 통계청)

이 표를 보면 남성이나 여성이나 초혼율보다 재혼율이 늘고 있다 그러나 특히 여성의 재혼율이 1990년의 7.1%에 비해 2001년에는 16.4%로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은 사회 전체적인 변화 추세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때에는 이기주의와 경제 제일주의의 결과로 보이지만, 개인의 행복 추구권이 인권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재혼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구체화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 생명의 관점에서 본 가정의 문제

1) 저출산과 고령화

우리나라의 총인구수는 1992년 43,747,962명에서 2001년에는 47,342,828명으로 10년 동안 3,594,866명이 증가하였다. 인구 증가율은 1992년 1.02%, 2001년 0.63%이고, 2022년에는 마침내 증가율이 영(zero)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구 증가율이 감소하는 이유는 혼인 감소와 출산율의 감소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의료 기술의 발달로 1997년의 평균 수명은 1971년의 62.3세에 비해 12년이 연장된 74.4세로, 2000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총 인구의 7%를 상회하여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고, 2022년에는 14%를 넘어 본격적인 고령 사회가 되리라고 예상된다.

주요국의 출산율 추이 비교 (%, 2001년은 상반기만)
  한국 일본 캐나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1970년 4.5 2.1 2.3 2.5 2.5 2.0   1.9
1975년 3.4 1.9 1.8 1.8 2.0 1.5 2.1 1.8
1980년 2.7 1.8 1.7 1.8 2.0 1.5 1.6 1.7
1985년 1.7 1.8 1.7 1.8 1.8 1.3 1.4 1.7
1990년 1.6 1.5 1.8 2.1 1.8 1.5 1.4 2.1
1995년 1.6 1.4 1.6 2.0 1.7 1.3 1.2 1.7
1998년 1.5 1.4   2.0(1997) 1.7(1996) 1.3(1996)   1.6(1996)

(자료 출처: 통계청)

한국의 출산율(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평균 자녀 수)은 1970년 4.5명에서 2001년 1.3명으로 현저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감소 속도가 선진국에 비해 무척 빠름을 알 수 있다. 더욱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스웨덴보다도 출산율이 더 낮다. 또 우리나라의 조출생률(인구 천 명당 출생아 수)도 1970년 31.2명에서 1995년 15.8명, 1998년에는 13.8명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남녀 모두 초혼 연령이 높아지고 있고, 자녀를 갖지 않으려 하고, 젊은 여성층 특히 주결혼 연령층인 20대의 미혼율이 증가하는 데서 오는 결과이다.
또한 출생 성비의 불균형이 많이 해소되었다고 하나 아직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자 100명당 남자수
연도 1985 1990 1995 2000 2001
출생 성비 109.4 116.5 113.2 110.2 109

(자료 출처: 통계청)

한편 출산율은 감소하고 인구 증가율도 둔화되는데 노령 인구는 점차 늘고 있다. 196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인구의 2.9%인 726,000명에 불과했으나. 1998년에는 6.6%(3,050,000명)로 늘었으며 2000년에는 7.1%(3,371,000명)을 넘어섰고, 2022년에는 14.3%에 이르게 되어 아주 짧은 기간에 고령 사회(Aging Society)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인구 고령화 국제 비교
  도달 연도 증가 소요 연수
  7% 14% 20% 7% → 14% 14% → 20%
한국 2000 2022 2032 22 10
일본 1970 1994 2006 24 12
프랑스 1864 1979 2020 115 41
독일 1932 1972 2012 40 40
영국 1929 1976 2021 47 45
이탈리아 1927 1988 2007 61 19
미국 1942 2013 2028 71 15
스웨덴 1887 1972 2012 85 40

(자료 출처: 통계청)

특히 노인 인구 비율이 7%에서 14%로 되는 기간이 프랑스가 115년, 미국이 71년, 일본이 24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2년이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65세 이상의 노인 단독 가구 증가율로 높아지고 있다. 1985년에는 혼자 사는 노인이 100명당 6.6명이었으나, 1990년에는 8.9명, 1995년에는 13.2명으로 늘고 있다.

이처럼 저출산율과 이에 따른 고령화 사회의 시작은 가정 사목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선 본당의 경우 노인 인구의 구성비가 전체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경우가 있다.

2) 낙태

한국은 이른바 낙태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한 해 낙태 건수는 약 150만 건으로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집계되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한다면 한국이 세계에서 낙태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도 1950년 이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유교적 문화의 영향으로 낙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었다. 1960년대 경제 계획을 통한 국부의 증대 노력의 일환으로 가족 계획 사업이 제도적으로 시행되면서 낙태는 피임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하였다.
낙태를 부추기는 원인으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마저 물질화, 도구화해 버리는 현대 사회의 전도된 가치관, 낙태 행위에 대한 무지함, 남아 선호 사상, 모자보건법, 의료 정책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강간, 태아의 기형, 산모의 건강 위협 등의 경우 이외에 낙태를 할 경우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사실상 이 법이 엄밀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며,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생명 존중을 기본 정신으로 하고 있는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낙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의식이 매우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가톨릭 신자가 낙태에 대한 반대를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종교별 낙태에 대한 견해 (%)
  상황에 따라 가능, 해도 무방 해서는 안 됨
비종교인 55.7 44.3
불교신자 53 47
개신교신자 36 64
천주교신자 27.9 72.1

(자료 출처: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2000년)

그러나 구체적인 경우를 들어 질문할 경우 천주교 성인 신자들의 답은 전혀 달라진다. 다음의 자료에 그에 대한 세부적인 응답 분포가 나와 있다.

낙태에 관한 가톨릭 성인 신자의 의식(%)
  낙태 가능 낙태불가 모르겠다
미혼모의 임신 31.9 41.8 26.4
장애아 출산 가능성 55.3 17.3 27.4
원치 않는 임신 67.8 13.6 18.6
산모 건강 위협 88.4 4 7.6

(자료 출처: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설문조사, 2000년)

여기에 나타난 것처럼 막연히 낙태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막상 구체적인 상황에 당면하게 되면 낙태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해지는 것이다. 특히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 낙태를 인정하는 비율이 67.8%나 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고 작위적인 해석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의 조사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 중에서 낙태를 경험한 사람이 44.0%나 되어 천주교 신자 10명 중 4명이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수치는 1991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나온 수치인 39.4%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지난 10여 년간 천주교 신자의 낙태에 대한 실질적 의식의 변화가 거의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는 앞에 나온 종교별 낙태에 대한 의식 조사 자료에서 천주교 신자가 낙태에 반대하는 비율이 72%로 가장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문제에 접하게 되면 낙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됨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더욱이 낙태를 경험한 천주교 신자 중에서 신자가 되기 전에 낙태를 한 경우의 42.8%에 비해, 신자가 된 이후에 낙태를 한 경우가 조금 줄어들기는 하나 38.7%로 거의 변화를 찾기 어려운 것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구체적으로 낙태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1996년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여성이 낙태한 가장 큰 이유는 한마디로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이 혼전 관계에서 임신한 경우, 터울 조절을 위하여, 경제적 사정 때문에, 산모의 건강 때문에 등으로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 여성의 낙태 이유(%)
자녀 불원 혼전 임신 터울 조절 경제 문제 산모 건강 기타
54.2 16.3 9.1 5.9 4.6 9.9

(자료 출처: 대한가족협회, 1996년)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낙태 이유로 든 이유 중 산모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4.6%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위에서 나온 설문조사에서는 낙태를 허용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로 산모의 건강이 가장 큰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낙태를 자의적 판단에 의해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의 경우에도 사정은 커다란 차이가 없다.

천주교 신자 중 낙태 경험자의 낙태 이유(%)
자녀 불원 원치 않은 임신 경제 문제 기형아 우려 기타
43.1 26.8 13.5 11.8 4.2 0.6

(자료 출처: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2000년)

천주교 신자의 경우도 단순히 자녀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낙태를 하는 경우가 43.1%나 차지하고 있다. 산모의 건강과 직결되는 병이 이유인 경우는 4.2%에 불과하다. 이는 위에서 나온 막연히 낙태를 반대하는 일반적 의식과, 구체적으로 산모의 건강 때문에 찬성하는 의견에 비해 볼 때 매우 모순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낙태에 대한 인식과 현실적인 대응에서 이러한 커다란 괴리를 보이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 원인으로 전도된 가치관을 말할 수 있다. 다원화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치 질서는 무너지고 인간 역시 물질화되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다분히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또 낙태에 대한 무지, 남아 선호 사상, 모자보건법, 의료 정책 등도 낙태를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가치관의 전도는 개인적으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자들도 이러한 가치관에 물들어 신앙 생활과 가정 생활에서 가치 기준을 다르게 갖는 것이다. 곧 신앙 생활은 주일 미사 참여와 단체 활동으로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른 가치 기준에 따라 행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의료인의 사고 방식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생명을 존중하는 의료인으로서 임산부에게 출산을 권유하고 낙태의 해악을 알려 주어야 함에도 실제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첫 낙태 당시 혼인 여부별 시술자 행동 조사(1991, 한국 정책연구원 제4회 워크숍)에 따르면, 질문 없이 시술하거나(기혼 46.7%, 미혼 60%), 질문 후 그냥 시술하는 것(기혼 46.7%, 미혼 26.7%)이 대부분이고, 출산 권유 후 시술(기혼 6.6%, 미혼 13.3%)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수입과도 관련되는 것인데, 10~20분의 낙태 시술로 보통 6만원에서 1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데, 의료 보험 환자의 경우 분만시 사흘 입원에 보통 12만원에서 15만원 정도의 수입이다. 사실 산부인과 병원의 70% 이상이 낙태에 의한 수입으로 운영되고 있다.

3) 입양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유다인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혈통을 매우 중요시하는 민족 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의식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족보와 호주제이다. 반드시 생물학적으로 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후손에 의해 이어지는 계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결과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가 형성되었고 그런 가운데 서얼의 차별과 양반과 상민의 차별 의식이 한국인의 집단 의식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혈통주의는 경제적으로 농업 사회의 산물이다. 정착 생활을 하면서 고도의 노동 집약적 산업인 농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협동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이 협동을 최대한 조화롭게 이루기 위해서 이를 관리하는 가장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을 위해 필요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연대감은 혈연으로 맺어질 때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혈연 관계는 유교적 효 사상으로 이데올로기화 되었다.
이러한 혈연 중심의 사고는 가족 간의 결속력과 헌신성을 높이지만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는 배타적이었다.
이러한 농업 중심적 유교주의의 사회 체제가 동양에서는 적어도 3,000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근대화가 급격히 이루어진 20세기에도 가부장제적인 혈통주의는 사회의 근본적 가치 체계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다가 서구 사회에서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여성 해방 운동의 영향이 한국에도 유입되면서 가부장제와 혈통주의는 논란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가족이기주의적 정신은 신자들에게도 여전히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천주교 신자 중 낙태 경험자의 낙태 이유(%)
  전적 동의 약간 동의 판단 곤란 약간 반대 전적 반대
60세 이상 65 19 12 2 3
50대 61 21 12 3 2
40대 54 25 14 4 4
30대 55 24 14 4 3
20대 34 42 16 7 2
중고생 29 37 25 6 3

(자료 출처: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2000년)

이 자료의 구체적인 질문은 “우리 가족의 행복과 안녕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는가?”였다. 이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답은 전 연령층을 통해 7-9%에 불과했고 65.8%에서 83.4%에 이르기까지 찬성하고 있다.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가족 이기주의는 앞으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혈연 중심의 좁은 사고에서 탈피하여 가족 사랑의 범주를 가족 밖으로 넓히는 노력이 특히 필요한 때다. 그러한 노력은 입양이라는 구체적 행위로 가시화될 수 있다.
혈통주의에 기초한 가정의 모습은 지금까지는 “정상적인 가정”으로 대변되는 합법적 부부와 그들의 생물학적 자녀로 이루어진 형태를 갖춘 것이었다. 이러한 혈연 중심의 가족 이기주의적인 의식을 뛰어넘는 것이 입양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물학적으로 타인의 자녀를 자신의 자식으로 입양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매년 “버려지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외국으로 수출되는 소위 말해서 세계적인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한국이 가지게 되는 근본적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는 매년 1만여 명 정도의 새로운 부모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 절반 이하만이 새로운 부모를 만나고 그중에서도 절반 이상은 외국으로 입양되고 있으며, 이렇게 입양되는 아이들 중 90%가 미혼모가 낳고 버린 경우에 해당된다. 입양에 관한 통계 자료는 다음과 같다

국내외 입양 현황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국내 입양 1,412 1,426 1,726 1,686 1,770
국외 입양 2,057 2,443 2,409 2,360 2,436
3,469 3,869 4,135 4,046 4,206

(자료출처: 보건복지부)

사실 2001년의 국내 입양의 비율이 42%에 육박하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1970년대의 국내 입양 비율인 25%, 1980년대의 29%, 1990년대의 37.5%에 비하면 많이 호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해외 입양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해방 이후 1990년대까지 입양된 장애아 중 99.5%(32,646명)가 외국으로 입양된 현실은 한국 사회의 생명과 인권 존중의 현주소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최근의 장애아 입양 현황에 관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아동 상태별 입양 현황
  국내 정상아 국내 장애아 국외 정상아 국외 장애아
1997년 1,400 12 1,273 784
1998년 1,420 6 1,526 917
1999년 1,712 14 1,584 825
2000년 1,668 18 1,726 634

(자료 출처: 보건복지부, 2001년)

한편 전국에 있는 입양 기관은 모두 27개소이고, 그중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기관은 고작 2개소이며, 미혼모 시설은 정부 등록 시설 8개소 중에서 3개소를 천주교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 사회복지위원회에 등록된 여성 복지 기관 31개소 중에서 미혼모 관련 시설은 12개소이다.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교의 근본 정신인 사랑의 실천이다. 그러나 입양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이를 자신의 기호에 따라 “선택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곧 혈액형, 성별, 외모를 자기에 맞추어 입양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양을 하였다는 것을 주변에 숨기는 비밀 입양이 아직도 주를 이루고 있다. 입양이라는 행위 자체는 분명 긍정적인 것이지만 입양의 의도가 아이의 행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앞세운 것이라면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III. 한국 천주교회 가정 사목의 현실

1970년 한국 주교회의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모자보건법을 염려하여 6월 30일 임시 총회를 개최하여 전국적 기구를 구성하기로 하고, 1975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직속으로 전국 ‘가정사목부’를 설립하였다. 가정사목부는 1980년에 ‘가정사목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가정의 성화와 생명 수호를 위한 연구, 교육, 홍보, 운동의 주관’을 목적으로 정하였다.
한편 가톨릭 병원협회에서는 주교회의의 ‘인공 유산과 피임에 관한 연구’ 권고에 따라 1972년 11월 연구위원회 설치를 합의하고 1973년 2월 한국 가톨릭 병원협회 내에 ‘행복한 가정 연구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1975년에는 가톨릭여성연합회가 자연 가족 계획 지도자 훈련을 시작하였다.
가정사목위원회는 그동안 책자 발간과 홍보, 지도자 양성, 세미나 개최, 성명 발표, 전국 가정 대회 개최 등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주교회의의 이름으로 제출한 ‘모자보건법 개정에 관한 청원’은 본회의에 부의조차 되지 못하였고(2002년 11월 15일 국회 공문 9710100- 220-7338), 현재 전국 15개 교구 중 가정 사목 전담 신부가 있는 곳은 4개 교구에 불과한 형편이며, 대부분 다른 업무와 겸임으로 가정 사목 담당 신부가 있다. 일부 교구에서는 담당 신부 아래 가정 사목 전담 평신도를 두고 있기도 하다.
아래에서는 수원교구(1997)와 대전교구(1998) 그리고 서울대교구(1999)의 설문조사 결과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가정공동체」(1981)의 정신에 입각하여 우리의 현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가정 사목의 대상이자 주체인 현실은 어떠한가?

교황 권고 「가정공동체」는 가정이 가정 사목의 대상이며 동시에 주체라는 사실을 강조하지만(72항), 이 점에 관한 우리 의식은 매우 희박하다.
가정의 첫째 임무는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계속적 노력을 쏟으면서 일치의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고, 그 임무의 내적 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이는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다(가정공동체 18항). 특히 가정은 생명에 대한 봉사, 창조주의 첫 축복을 역사 안에서 실현하는 것, 곧 출산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상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달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가정공동체 28항). 그러나 이처럼 막중한 임무를 지닌 가정의 현실은 어떠한가?
교회가 가족 단위 신심 행위로 크게 강조하여 온 가정 기도의 경우, 1개월에 1번 이상 가정 기도를 하고 있는 가정은 2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수원교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매일 함께 기도하는 가정은 17.6%이고, 1주일에 한두 번이 24.0%, 1년에 한두 번이 27.3%, 하지 않는다가 31.2%로 나타났다. 1998년 대전교구에서 실시한 설문에서는 응답자 1,554명 중 매일(9,2%) 가끔(61.9%), 그리고 전혀 해본 적이 없다(28.9)로 나타났다(천주교 대전교구, 「신자 생활 실태조사」제3차 조사: 신자생활, 1998.). 1999년에 서울대교구가 실시한 설문에서 1주일에 한번 이상(11%), 1개월에 한 번 이상(5.7%), 3개월에 한두 번(7.3%), 일년에 한두 번이 21.4%, 전혀 하지 않는 신자가 54.8%였다(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서울대교구 신자들의 가정 및 가정사목 실태 파악을 위한 분석결과 보고서”, 2000: 이하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보고서’로 약칭).
가정 기도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 함께 모일 시간이 없어서이며, 중·고등학생은 성인 신자에 견주어 가정 기도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참여도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가정이 교회 생활과 사명에 실제로 참여하는 정도는, 기도에 충실하고 열중하는 정도, 기도로써 주 그리스도이신 열매 많은 포도나무와 일치하는 정도에 정비례하는 것이다(가정공동체 62항).
또 서울대교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와 가정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간의 무관심과 대화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약 절반 정도만 거의 매일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처럼 가족간 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인은 가족이 함께 모일 시간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충격적인 사실은 약 절반 가까이는 기혼 신자들이 적어도 한 번 이혼을 생각한 적이 있으며, 여성이 그 정도가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원인은 성격 차이이며, 대부분 자식 때문에 이혼하지 않았고 교회의 가르침 때문인 경우는 1/1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보고서, 108-109면).
또한 서울대교구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신자 대부분이 가정 내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 부모와 자식간 성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빈도는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자식과 성관련 대화를 나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권장하는 배란법을 사용하는 신자는 10명당 1명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낙태에 있어서 입교한 후에도 여전히 10명의 신자 가운데 4명꼴로 낙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보고서, 110면).
가톨릭 신자와 세례 받지 않은 비신자의 혼인 비율이 매우 높다. 원칙적으로 타종교인 및 비신자와는 혼인이 금지되어 있어, 관면 혼인은 통상적인 것이 아니라 예외적인데 오히려 통상적인 것처럼 되어 2002년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관면혼(16,549명)이 성사혼(10,245명)보다 훨씬 많아 전체 가톨릭 혼인의 61.8%에 이르고 있다(27면 표). 더 나아가 사회혼만 하는 가톨릭 신자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10여 년 전의 자료에 따르면 예식장에서 사회혼만 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연간 32%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최철, “사회혼만 하는 가톨릭 신자”, 「사목」 181호(1994.2.), 49-61면 참조).

 

2. 교회는 가정 사목의 보조적 역할에 충실하였는가?

가정을 보조하기 위한 교회의 사목적 개입은 긴급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강화하고 개발하는 데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미래의 복음화는 대체로 가정 교회에 달려있다는 확신 아래, 가정은 최우선 순위의 문제로 다루어야 합니다”(가정공동체 65항).

1) 사목자들의 관심

교구 내에서 가정 사목에 대한 책임을 주로 지는 이는 주교이다. “주교는 아버지이며 목자로서 이 최우선적 사목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가정 문제를 포함해서 신앙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구체적이고 의무적인 규범을 정하는 것은 주교 교도권에 속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가정공동체 73항).
그동안 한국 교회는 가정과 관련된 주교회의 사목교서를 통하여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왔고, 각 교구도 교구장의 사목교서1)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가정 복음화를 추진하여 왔다.2)
그러나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에서 1997년에 실시한 교구장의 사목교서에 대한 신자들의 인지도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다.”(18.7%), “들어 봤으나 잘 모른다.”(73.3%), “잘 알고 있다.”(8.1%)로 나타나 전체적으로 보아 평신도들이 교구장의 연두 사목교서에 대한 인지도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 실천에 있어서 매우 저조한 비율을 보였다(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 ‘한국 천주교 교구장 연두 사목교서’에 관한 설문조사, 1997. 3. 16.).
서울대교구 설문조사에 따르면 본당에서 일선 사목자들의 교회 가르침에 대한 충실도가 걱정할 만한 수준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 사목에서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사목자나 사목 협력자들이 가정 사목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들 각자의 인식상 문제이기도 하지만 신학교 교육 과정에서 가정 사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아래 표에서 나타나듯이 몇몇 신학교 이외에는 성, 생명, 가정에 관한 교과 과정이 부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이 점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2000년 7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한국 사제 양성 지침」에서 권고하고 있는 교과 과정에서도 가정 사목을 위한 여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사목 협력자인 수도자들의 관심
“남녀 수도자와 축성된 사람들이 가정 사목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기여의 일차적, 근본적, 본래적 표현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봉헌에서 나타납니다. …… 본인은 축성 생활을 하는 여러 회의 장상들이, 각자의 적절하고 고유한 특은을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가정 사목을 최우선적 임무의 하나로 현대 세계의 상황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된 임무로 간주하기를 간절히 촉구하는 바입니다”(가정공동체 74항).
서울대교구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도자들도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충실도가 걱정할 만한 수준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보고서, 111면). 이는 수도자 양성 과정에서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40개 수도 단체의 양성 과정과 가정사목을 위한 사도직 활동에 대한 질의서(2001년 10월 22일자)에서 12개 수도 단체가 응답하였고, 31면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몇몇 수도 단체 이외에는 가정과 관련한 내용들이 충분히 다루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3. 가정을 위한 교회의 평신도 교육은 충분한가?

1) 예비신자 교리서

예비신자 교리교육은 신자 입문 교육으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중요한 교육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어느 정도나 충실히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한 서울대교구의 설문조사에서 직접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응답자(전체의 63.5%)의 약 80%가 그리스도인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예비신자 교리교사들에게 그리스도인 가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교육하는 것에 대해 강조하는 정도는 67.6%로 직접 예비신자를 교육할 때 강조하는 것보다 약간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보고서, 85면).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예비신자를 위한 교리서에는 비교적 가정에 대한 가르침이 폭넓게 수록되어 있으나, 일부 교리서에는 다소 미진한 점들이 보인다.


2) 주일학교 교재
서울대교구 설문조사에 의하면 주일학교 교육 안에서 가정 사목적 배려와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9%가 주일학교에서 바람직한 신자 가정 생활에 대하여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보고서, 86면). 서울대교구와 대구대교구의 주일학교 교재를 볼 때, 아래 표에서처럼 대체로 초등부(대구)와 중등부(대구, 서울)의 교재에는 가정을 주제로 한 내용의 공백이 두드러진다. 또한 교육학적 측면에서 성교육의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감안하여 볼 때, 자연적인 가족계획법(NFP)에 대한 조기 교육도 연구 검토되어야 하리라 본다. 신자 학생들이 자연적인 방법을 접하기 전에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인공 피임법을 먼저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래 표에서처럼 신자 증가 비율에 반하여 초·중·고등부는 1985년을 기점으로 전체 신자 대 비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도 검토되어야 한다.3)

 

3) 가나 혼인 강좌
사랑이 무엇인지, 혼인이란 무엇인지, 70년을 같이 살 동반자의 자질은 무엇이며, 혼인을 위하여 어떤 준비를 하여야 하는지, 부부간에는 어떤 대화 기술이 필요한지, 부부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올바른 부부 관계의 모습은 어떤 것이며, 올바른 부모·자녀 관계를 이루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각 교구마다 가나 혼인 강좌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으나, 혼인을 앞둔 미혼 남녀를 위한 하루 4-6시간의 교육은 매우 피상적이고, 그 방법이 젊은이들의 호감을 사기에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제 성소, 수도 성소를 위하여 3-8년의 교육과 수련 과정을 이수하여야 하는 것에 비하면 혼인을 앞둔 미혼 남녀를 위한 가나 강좌는 매우 미미한 교육에 지나지 않는다.

4. 가정 관련 단체들의 협력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문헌 「가정공동체」는 가정 관련 단체들 간의 협력을 강조하였다. “여러 가지 양식으로 다양한 이유를 위해 여러 차원에서, 가정 사목에 전념하는 각종의 교회 공동체, 단체, 운동 등을 그들의 특성과 목적과 효율성과 방법을 고려하면서, 인정하고 이용해야 합니다”(가정공동체 72항). “의사, 변호사, 심리학자, 사회사업가, 상담가와 같은 평신도 전문가들은 개별적으로나 또는 각종 협의체와 활동 단체의 회원으로서 계몽, 조언, 지향성의 제시, 후원 등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가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가정공동체 75항).
가정사목위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톨릭병원협회와 가톨릭여성연합회가 ‘행복한 가정 운동’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직접 간접으로 몇몇 수도회와 매리지 엔카운터(Marriage Encounter: M.E.) 등의 단체가 가정 사목의 중요한 역할 일부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 이르러 36면의 표와 같이 생명 수호 단체들이 설립되었고, 각종 행사와 생명 수호 운동이 전개될 때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부 단체는 없어졌거나 활동이 거의 없으며, 단체들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가 미흡한 상태이다.

 

Ⅳ. 오늘날 한국 가정 문제에 대한 사목적 제언

“인류 미래는 가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가정의 가치와 요구 조건을 구제하고 육성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긴요하며 긴급합니다”(가정공동체 86항).

1. 의식 전환 교육

1) 교육 내용

① 가정 사도직
대부분의 사목자나 신자들은 가정 사목의 대상이 가정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가정 사목의 주체가 가정이라는 의식은 매우 부족하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정은 작은 교회임을 강조하였고(교회헌장 11항; 평신도교령 11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가정은 가정사목의 대상이며 동시에 주체라는 사실을 강조하셨다(가정공동체 72항 참조). 따라서 가정이 자기 가정과 이웃 가정을 복음화하는 주체라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고 가정 사도직에 대한 재인식이 요청된다.
‘가정 사도직’이란 표현이 처음 나타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평신도 교령 11항에서이다. 가정은 인간 사회의 핵심 세포일 뿐 아니라 교회의 핵심 세포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정을 ‘부모가 말과 모범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첫 스승이 되어야’ 하는 ‘가정 교회’라 부르고 있고, ‘가정 사도직’은 교회를 위해서나 시민 사회를 위해서나 특수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중요성은 여러 차례 교회 문헌을 통하여 강조되었다(사목헌장 48-49항, 평신도교령 11. 40항, 가정공동체 49. 71. 86항 참조).
가정 사도직이란 가정을 위한 가정의 사도직이며, 1981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가정공동체」에서 가정 사도직 활동들을 열거하고 있다.

“가정 사도직은 우선 당사자의 가정 내에서 실천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법규에 완전히 부합하게 사는 생활의 증거를 보여주는 것,
자녀의 그리스도적 교육, 자녀의 신앙 성숙을 돕는 일,
정결 교육, 생활의 준비 교육, 그들에게 자주 위협을 주는 이념과 도덕적 위험에서 자녀를 철저히 보호하는 것,
그들을 교회 공동체와 시민 공동체에 점차로 참여시키는 일,
성소를 결정하는 데에 조언하며 돕는 것,
가족들의 인간 성숙과 그리스도적 성장을 위하여 서로 돕는 일 등은가정 사목을 실천하는 방법들이다.”(가정공동체 71항)

이토록 가정 사도직 수행은 ‘가정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동참하는 것이어야 한다. 곧 그리스도인 가정은 가정 사도직을 통하여 하느님과 대화하는 공동체, 믿고 복음을 선포하는 공동체, 인간에게 봉사하는 공동체임을 균형 있게 증거해야 한다. 사목자는 가정 교리교육에 관한 부모들의 임무를 촉구하고 장려하여야 하며(교회법 제776조 참조), 가정 교리교육에는 전통적인 태교의 중요성을 재인식함은 물론 효의 정신과 전통 가훈의 계승 발전, 그리고 조기 순결 교육과 인성 교육이 포함되어야 한다.

② 생명의 성역인 가정
“생명의 성역”(백주년 39항)인 가정의 기본 임무는 생명에 봉사하는 것, 창조주의 첫 축복을 역사 안에서 실현하는 것, 곧 출산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상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가정공동체 28항). 교회 공동체도 생명이 하느님의 귀한 선물이라는 인식하에 출산을 장려하고, 배란법을 실천하도록 필요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본당 차원에서 어린이집 운영과 다산 가정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도 모색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주교회의가 추진 중에 있는 ‘생명31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이 될 것이다.

③ 기도하는 가정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 기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공의회가 그토록 열망하던 안정된 교회의 쇄신을 실현하는 데 아주 적절한 도구가 됩니다. ‘가정 교회’는 가정 기도를 통하여 효과적인 실체가 되며 세계의 변형을 성취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자기 자녀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주입시키고 신앙의 표양으로 그들을 지켜 주려는 부모들의 온갖 노력들은 20세기에 아주 적합한 사도직이라 하겠습니다.”4) 이를 위해 ‘주 1회 TV 안 보고 먼저 기도하기’, ‘일찍 집에 들어가기’ 등의 운동도 필요하다.

2) 교육 방법

① 주일학교 교육
서울대교구 설문조사에 의하면 주일학교 교육 안에서 가정 사목에 대한 배려와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9%가 주일학교에서 바람직한 신자 가정 생활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보고서, 86면). 가정 교육 부재 현상을 감안할 때 본당의 주일학교 교육은 이론적이기보다 기본적인 신앙 생활과 인성 교육이 조화를 이루도록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교육학적 측면에서 성교육의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감안하여 볼 때, 자연법적 가족 계획에 대한 조기 교육도 연구 검토되어야 하리라 본다. 그동안은 행복한 가정 운동이나 교구 가정사목부가 주관하여 순결 교육을 교구내 일부 본당만 선택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앞으로는 교육국이 주관하여 모든 본당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신자 학생들이 자연적인 방법을 접하기 전에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인공 피임을 먼저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주일학교 교육에서도 가족, 친구들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교육 과정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② 혼인 전후 교육
사목자는 유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혼인전의 시기로 3단계에 걸쳐 그 혼인 준비가 이루어지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혼인도 하나의 성소이니 만큼 그에 합당하는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혼인의 의미, 부부의 역할(육아 등 가사 분담 포함), 부부간의 대화 기술, 부부 문제의 해결 방법, 부모와 자녀의 관계 등에 관한 적절한 교육은 혼인 뒤의 심각한 문제들, 곧 가정 폭력, 이혼, 낙태를 미연에 예방하는 효율적인 방안이다(혼인 전후 교육이 오늘날의 심각한 가정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한국사목연구소와 가톨릭신문사가 2003년 7월 5일 “가정의 미래, 교회의 미래”라는 주제로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의 결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나 혼인 강좌 등의 교육 프로그램이 더욱 내실화하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여야 한다.

③ 가정교리서와 가정사목지침서의 발간
교육의 첫 의무를 지닌 사람은 부모이다. “양친은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자녀를 교육해야 하는 중대한 의무를 집니다. 그러므로 양친은 자녀의 첫째이며 주된 교육자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교육의 이 의무는 이렇듯이 중대한 것이므로 그것이 결핍될 때 그것을 보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입니다”(가정공동체 36항).
그리스도인 부모가 교육 임무를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기 위해서 1980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주교들은 적절한 가정교리서, 곧 분명하고 간결하며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가정교리서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표시하였다. 따라서 가정교리서의 발간이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한다(가정공동체 39. 52항 참조).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권고 「가정공동체」에서 각국 주교회의는 ‘가정사목지침서’를 출판하기를 희망하였다. 그 지침서에는 혼인의 “‘준비 과정’의 내용, 기간, 방법을 규정해야 하고, 혼인에 관한 다양한 측면 - 교리적, 교육학적, 법률적, 의학적 측면의 균형을 유지하며, 혼인을 준비하는 이들이 지적 훈련만을 받지 않고 교회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원의를 갖도록 그 내용을 구성해야 합니다”(가정공동체 66항)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는 이미 「혼인 교리교육에 관한 주교회의 지침」(1977. 1. 25.)을 발간하였고, 그 개정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2. 가정 중심 사목으로 방향 전환

1) 가정을 돕는 본당 시설과 조직

가정 안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무엇보다 가족들 사이의 이해와 대화 부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서 어떻게 가정 공동체의 올바른 모습을 지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사목적 방안 연구와 더불어, 가족 사이의 관계 치유 프로그램들인 매리지 엔카운터와 ‘선택’ 등이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족 피정, 가족 단위의 외부 행사, 가족 미사 등의 확대와 활성화가 필요하다. 또한 본당 내에 가정 사목부를 신설하거나 적극 활성화하여야 한다.
육아 문제가 맞벌이 부부에게 특히 부담이 되는 점을 감안하여 각 본당은 되도록 육아 시설 또는 어린이집을 적극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맞벌이 부부 시대에는 육아 책임을 가정에 전적으로 부과하지 않고 사회와 교회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2) 가정 중심의 단체 활동과 소공동체 운동

올바른 신앙 생활과 건전한 가정을 위해 신자들의 사도직 활동에 대한 무관심도 경계하여야 하겠지만 지나친 여러 단체 활동도 장애가 되므로 치우치지 않는 절제와 참여가 요청된다.
소공동체 운동은 주로 여교우들의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바람직한 소공동체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 이는 기존의 혈연 중심적 가족의 범주를 넘어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이 고양되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와도 부합한다. 현실적으로 가족들이 매달 모이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분기별 혹은 일년에 한 번이라도 여러 가족들이 모이는 소공동체 모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성모의 밤이 본당 공동체의 행사로 자리매김이 되었다면, 예수 성심의 밤이 소공동체의 행사로 자리 매김이 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때에 몇몇 가족들이 함께 기도 시간을 갖고 체험 사례 발표, 성가, 음식 나눔 등을 통하여 친교를 이루고 이웃에 봉사하는 공동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면 좋을 것이다.

3) 주 5일 근무제와 가정 주일

장차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나타나게 될 가장 큰 변화는 가족, 가정 중심의 활동 증가이다. “많은 분석들은 매주 이어지는 이틀의 연휴로 가족 구성원 간의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의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부부와 함께 하는 쇼핑이라든가 가족 단위의 여가 생활이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주 5일 근무제가 일찍 정착된 유럽 지역의 주말 문화는 대략 두 가지로 대별되는데, 토요일의 취미 생활과 일요일의 종교 생활이 그것이다”(김시홍, “주 5일 근무제 도입에 따른 사회적 변화”, 한국사목연구소·가톨릭신문사 공동 심포지엄: 주 5일 근무제와 한국 교회, 2002. 7. 20.) 이러한 예측은 가정 사목 프로그램이 보강되어야 하는 이유와 기존 사목이 가족과 가정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가족이 함께하는 미사의 횟수를 늘리고 가족 모두가 성당에서 주일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체제로 공간과 프로그램상의 연구가 요청된다. 또한 주 5일 근무에 따른 주일 나들이 신자들의 증가를 염두에 두고 관광지 사목, 주중 주일학교 운영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 달에 한 번은 별도의 주일학교 교육 없이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가정 주일을 지내는 사목적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 때에 가정과 관련한 적절한 강론을 준비하고, 가정 사도직 실현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때에 이미 적지 않게 편부모 가정, 독신 가구, 독거 노인 가구 등의 소외 계층이 있다는 것을 사목자들은 고려하여야 하리라 본다.

4) 가정사목연구소와 상담실 운영

가정 사목을 위하여 전국 단위의 가정사목연구소 설립이 요청되며, 각 교구에 가정 사목 전담 기구와 함께 상담실 운영을 활성화하여야 한다.
특히 가정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사회 요소(예를 들면, 동거 등을 부추기는 텔레비전 드라마), 바람직하지 못한 성 문화, 곧 성의 상품화, 성과 출산의 분리 등의 경향을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5) 특수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일반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뿐 아니라 특수 가정, 곧 편부모 가정과 조손 가정(조부모와 손자녀), 도박 중독자와 알코올 중독자 가정, 장애인 가정, 이주 노동자 가정, 탈북자 가정, 외국인 배우자 가정 등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절실히 요청된다. 이러한 특수 가정 사목은 본당 공동체에서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가 하면, 사회복지사·상담가·법률가 등의 전문가가 담당하여야 할 몫이 있으므로, 특수 가정이 그러한 전문가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정보와 기회를 제공하고, 또 가정 상담소나 사회 복지 시설 등에 대하여 교구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낙태를 경험한 사람들이나 혼인 무효를 주장하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특히 “그러한 사람들에게 교회가 그들을 사랑하며 결코 멀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황을 함께 고통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고, “이혼한 뒤 재혼한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간직하고 있기에 변함없이 교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가정평의회 정기총회 연설, 1997년 1월 24일, 2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7년 2월 5일,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