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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송태근 "'교회의 제자' 아닌 '예수의 제자' 길러내야"

김노섭-열린문 2017. 5. 27. 21:06

송태근 "'교회의 제자' 아닌 '예수의 제자' 길러내야"
종교개혁 500주년 기획인터뷰Ⅱ: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 ②

입력 May 27, 2017 08:27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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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김진한 기자)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획 인터뷰 첫 번째 파트에서 교회에 축적된 비본질적인 것들을 걷어내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자 오늘날 우리가 교회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과제라고 진단했다.

본지에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계와 학계 명사들을 모시고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기획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종교개혁의 정신에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을 거울처럼 대면해보면 어떤 교회상이 도출될까? 그리고 그 교회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과 과제는 무엇일까. 가능하다면 도전에 응전하고 과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으려 시도했다.

두번째 인터뷰는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와 진행했다. 송 목사는 교회에 축척된 비본질적인 것들을 걷어내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자 오늘날 우리가 교회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과제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개인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닌 '교회의 제자들'을 양산하면서 집단의 힘은 강해졌지만 개인의 힘은 오히려 약화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뷰는 <1부: 종교개혁 정신 앞에서의 교회>와 <2부: 신 앞에 선 신자의 신앙> 두 부분으로 나누어 게재된다.

<2부: 신 앞에 선 신자의 신앙>

기자: 사무엘서에서 사울 왕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경고를 받은 후부터 오히려 종교적 형식에 집착하는 행동을 보였다고 목사님께서 강해하신 적이 있지요. 비단 사울의 이야기만은 아닐텐데요. 겉으로 보이는 신앙의 형식만을 강화하려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해가 바로 독선, 교만, 열광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삶의 구석구석에서 전인적으로 세워져야 할텐데, 우리가 혹시 신앙의 일이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더욱 쉽게 걸려들 수 있는 실수들이 있지 않을까요.

송태근: 종교라는 것이 자기 의를 과장하면서 종교열광주의에 빠지기가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 그리스도와 나와의 개인적 관계에요. 한국교회 교인들은 집단적으로 있을 때는 잘하는데 개인적으로 있을 대는 우왕좌왕 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교회 조직에서는 집단 중 하나의 멤버로 의식되어져있고 훈련되어져 있지만, 그가 당장 사회에 나가서 현실에 부딪혔을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방황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교회들이 교인들을 아까 말씀드린 '교회의 제자'가 되도록 독려하는데 저는 오히려 신앙의 개인화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유의할 것은 신앙의 개인화는 개인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현장의 목회자로서 교인들이 집단의 소속일 때는 굉장히 과열해가면서까지 하는데 혼자 떨어져나왔을 때는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하는 원인이 뭘까 고민했는데, 혼자 기도하고 혼자 성경을 묵상하는 역량이 아직 부족해서 그런게 아닐까 진단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요즘 개인의 신앙 성숙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삼일기독교세계관아카데미>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집단화에는 강하지만 개인화에는 약한 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우리 개개인들이 완전한 단계까지 가는 것은 요원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동기부여를 꾸준히 계속 하면서 정진해가는겁니다.

기자: 교회에만 잘 길들여진 신자는, '질문'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질문'이 없는 신자가 되어버린 탓도 있다고 말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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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김진한 기자)
▲송태근 목사는 신자들이 빠지는 교만, 독선, 착각 등에 대해 "종교라는 것이 자기 의를 과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송태근: 목회자들 설교를 분석해보면 성경 텍스트 해석에는 20% 정도만을 쓰고 60% 정도의 시간을 적용에 할애합니다. 적용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주관적인 경험일 수 밖에 없기에 사려가 필요합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설교자가 제시한 적용이 원리화되면 위험해집니다. 저는 텍스트 강해위주의 설교를 하기에 설교자로서는 좀 불친절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용해 줄 시간에 텍스트의 밑바닥까지 의미를 건드려주는 작업들인건데요. 결과적으로 좀 느릴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오래동안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리라 믿어요.

기자: 물음표를 주는 거지요?

송태근: 그렇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 능력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에 구태여 제가 적용거리를 만들 때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음을 염두해둡니다. 예를들어 저는 저나 제 주위 사람의 경험에 의거해 적용해 나누었는데, 전혀 다른 상황에 있던 사람이 그것을 그대로 적용했을 때 부작용이 생길수도 있어요. "목사님 말대로 했더니 잘 안되었어요"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거죠. 그러나 텍스트에는 그것을 뛰어넘고 또 아우르는 힘이 있다고 봅니다.

기자: 세상의 사람들이 다양한 도구들로 자신의 삶을 잘 해석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인문학, 음악, 미술, 물리학 등 (원천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선물들이지만)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삶을 다채롭고 아름답게 해석하는 것을 보며 도전을 받기도 합니다. 작년 대중음악계는 물론 물론 기독교계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래퍼 비와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교제하는 한 목사님께서 힙합 음악 장르는 악한 것이라며 반대했는데 비와이는 랩은 신이 만드신 것이라며 소신을 밀고나갔었다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날 것 그대로의 신앙 고백'은 온 국민이 다 듣고 즐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유하신 분이시고 교회가 만들어놓은 울타리에 갇히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신자들이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송태근: 저도 비와이 센세이션은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또 아주 좋게 봤습니다. 자기 직업 세계를 통해 소신대로 주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는 당당한 태도가 멋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매력이 없어진 부분이 좀 있긴합니다. 기존의 짜여진 정형화된 틀에 굳어져버린 것이죠. 예를들어 교회 오빠 이미지, 교회 누나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소극적인 틀에만 있을 것이 아니예요. 세상을 흉내내고 쫒아가자는게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그 자체의 모습만으로도 비와이 존재처럼 매력이 있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잘 드러내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또 실망할 것도 없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 젊은이들 중에 멋진 청년들도 참 많습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만 봐도 멋지고 잘사는 청년들이 참 많아요. 돈이 많은 것과 잘 산다는 것은 다른 것이잖아요. 신앙의 결기를 가지고 주님께 모든 시선을 맞춰 걸어가는 청년들을 보면 기쁩니다.

기자: 삼일교회에 청장년들이 특히 많지요. 이 세대들의 특징과 장점, 단점을 꼽으신다면요.

송태근: 청년들의 장점은 신앙이 굉장히 담백하다는 것이예요. 좌면우고(左眄右顧) 하지 않고 가야하는 길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단점은 아무래도 인생의 경험과 폭이 적어서 시각이 좁다는 것이 단점이죠. 그러나 이것은 단점이라기보다는 그간의 경험치가 작으니 과정중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겠습니다. 그리고 특징이 있다면, 헌신하는 친구들 중에는 굉장히 어린 나이에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겁니다. 저도 19살에 소명을 받았었는데요. 이 나이의 때의 신앙이 소중한 것은 이 어린 시절 하나님 앞에 바쳤던 순정과 헌신이 평생을 가는 힘이 되거든요. 방향이 되고. 그래서 저는 다시 목회를 시작한다고 해도 인생의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기간을 가고 있는 청년들과 함께 목회의 길을 갈 것 같습니다. 인생의 미래나 방향성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인데, 기성세대들이 많이 돌봐주고 헌신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럼에도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이 시대는 참 안타까운 면모입니다. 성서는 구약도 신약도 사람들을 자유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교회에 왜 잘 오지 않을까요. 자유의 과잉 시대라 해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걸까요. 아니면 교회도 역시 어딘가에 메여있어 해방되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주지 못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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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김진한 기자)
▲신앙인들은 자유를 갈구하며 종교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신앙생활을 통해 다양한 모양의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안식을 하고자 함인데 송태근 목사는 신자들이 찾는 이러한 자유를 "구속의 자유"라고 정의했다. 둥근 사각형과 같은 이 대답은 신자들의 진정한 자유를 향한 길의 일종의 표지판 같아 보였다.

송태근: 해방은 철저히 구속될 때 그 의미를 알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진리의 문제는 이데아의 개념이 아니고 예수가 곧 진리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예수께 전적으로 구속됨을 경험하면 그는 세상적 욕망과 탐욕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시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시는 목자가 내 모든 것을 채워주고 충족시켜줘서 부족함이 없었다라는게 아니고, 그분이 내 목자니까 그것만으로도 참 좋고 됐고 부족함이 없더라라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예수 만으로 충분하고 배부르고, 그런 것이 진정한 해방이라고 저는 봅니다.

기자: 성령의 역사로 예수가 한번에 전 삶에 들어오는 분들도 있겠지만, 많은 일반적 사람들은 일생이라는 시간동안 어쩌면 천천히 때로는 방황하기도 하면서 예수를 만납니다. 더군다나 이 불확실한 시대에, 그래서 공시생만 26만명이라는 이 시대에, 오직 예수만 붙잡으라는 메시지가 현실과 동떨어져 들리기도 합니다.

송태근: 그렇습니다, 이것은 강요해야 할 신앙의 성격이 아니예요. 하나님께서 찾아와주시고 만나주셔야 할 문제이기도 하고요. 청년들의 삶이 팍팍하고 고달프죠. 그런데 또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을 놓지 않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미 힘겹고 어려운 삶을 각오하고 또 염두에 둔 삶일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어요.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인생길이 다 꽃길이 되고 비단길이 깔리고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것을 성경에서 약속한 적도 없고요. 우리가 이것을 이론적으로 안다해도 현실적으로 충분히 납득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죠. 천천히 시간이 걸립니다.

기자: 그렇게 느리고 미약할지라도 천천히 예수를 닮아가는 거겠죠.

송태근: 어쩌면 신앙과 인생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대해 진저리가 나는 영역도 우리에게 경험시키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며 '탄식'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 탄식이라는 것이 이 땅이 지긋지긋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주님이 예비하시고 도래할 나라를 정말 많이 사모하며 기다리는 차원입니다. 이 땅의 허무함의 한 가운데서 사모하는 자를 기다리는 그 마음처럼 오실 주를 기다리는 그 마음이, 현실을 살아가며 신앙을 하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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