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샤브 [Moshav] 이스라엘의 농업 공동체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집단농업 형식의 농헙공동체로는 키부츠와 모샤브가 있다. 공동생산·공동분배의 사회주의 이념을 배경으로 결성된 키부츠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경제적 비효율성과 구성원의 욕구불만을 초래했는데, 모샤브는 키부츠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경제적 모순을 보완하기 위해 형성된 집단농장이다.
따라서 모샤브는 개인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키부츠의 자급자족적인 시스템 대신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공동으로 펼치는 일종의 협동조합 성격을 띤다. 모샤브가 형성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이다. 그러다 1930년대에 들어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모샤브가 등장했다.
모샤브는 일단 회원을 구성하고 영농계획을 세운 후, 이스라엘 국토관리청에서 토지를 임대받아 토지를 농지로 바꾸는 개간 작업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집단협동생산 체제를 유지한다.
수확물은 수출과 내수를 통해 개별 구성원의 이익창출로 연결된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북쪽의 갈릴리 지방에서 남쪽의 아라바 지역까지 약 350여 개의 모샤브 단체가 결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이스라엘 농업의 주축을 이룬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 중 약 10%의 농민이 키부츠나 모샤브를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다. 주로 농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점차 산업 구조를 바꾸어 나가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인적 자원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의 값싼 노동력을 고용, 최근에는 제3 세계의 노동자가 많이 종사하고 있다
키브츠와 모샤브
●키브츠(Kibbutz)
2000년 가까이 세계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시온주의운동을 부르짖으면서 시온의 땅에 유대인 국가를 건립하고자,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거주하기가 극히 어려운 황무지 땅의 여건과 주위에 둘러싼 아랍회교도들의 파괴와 테러의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 집단 생활체제인 키브츠를 창설하였다. 키브츠는 히브리어로 “집단”이란 뜻을 가진 크븟짜(Kevutzah)에서 유래된 말이다. 키브츠는 사회, 경제 공동체로서 운영과 이에 필요한 모든 결정은 자체모임인 전체회의를 통해서 결정된다. 키브츠 내의 사유재산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모든 재산과 생산수단은 공동의 소유이다. 키브츠 회원들은 생산 시설에서부터 식당이나 세탁소 등 키브츠 내의 일손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일을 한다. 키브츠 구성원들간의 노동을 통해 얻은 이익금은 공동운영비로 쓰이며 키부츠 자체의 발전을 위하여 재투자된다. 그 대신 공동체 내에서 필요한 모든 것이 회원들에게 제공된다. 어린이들은 또래 집단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먹고 공부한다. 키브츠의 크기는 약 30여 가족의 100여명 정도의 규모에서부터 800여 세대의 2,5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인 곳도 있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의 3%정도가 약 270개의 키브츠에서 살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농업의 모체가 되었던 키브츠는 오늘날 점차 산업과 관광업계로 전환되고 있다. 오늘날 그들 수입의 많은 부분이 농업보다는 식료품 가공공장, 인쇄공장, 방적공장, 다이아몬드공장, 가공공장 등을 비롯해 관광호텔, 식당분야에서 충당되고 있다. 키브츠의 모체는 1909년 갈릴리해변 데가니아(Degania)에 세워졌고, 1921년 이스르엘 계곡에 첫 키브츠가 창설되었다. 초창기 키브츠는 이민자들의 정착과 주변국으로부터의 방어 및 농업 경제 개발에 중심기능을 담당했으며 후에 이스라엘의 건국과 국가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초대수상 벤구리온,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모세 다얀장군 등 초창기 이스라엘 국가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키브츠 출신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 후 키브츠의 역할이 정부로 이양되었고 1970년대를 전후로 초창기 강력했던 정치적 영향력이 많이 감소되었다. 오늘날 키브츠 운동이 초창기로부터 많이 변했는데 그중 하나가 일정기간 자원해서 키브츠에 들어가는 것이다. 최소한 한달 이상 있으면서 1일 6-8시간에 주 6일간 노동을 한다. 자원자들은 키브츠인들과 분리해서 한방에 2-4명이 지내면서 농장에 나가거나 식당 등 서비스분야에서 일을 한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것은 무료로 제공되며 한달에 약 50불 정도를 용돈으로 준다. 키브츠 생활은 진짜 이스라엘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절기와 축제 등 전통적인 생활상이 아직도 잘 남아있다.
●모샤브(Moshav)
첫 모샤브는 1921년 키브츠 운동과 함께 농업정착에 실패한 초기 정착민들에 의해 이스라엘 계곡에 창설되었다. 모샤브는 약 60가정이 한단위로 이루어진 집단 농촌마을로서 키브츠와 비슷하다. 모샤브가 키브츠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여 자신의 집과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 가족을 단위로 모샤브의 협동체를 구성하며 공동시장체제를 통해 생산품을 공급하고 모샤브 내에 교육, 의료, 문화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키브츠 만큼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모샤브 운동은 다음의 원리에 기초를 둔다. 모샤브의 땅은 국가 소유이다. 기본적인 노동력은 가족을 단위로 하되, 모샤브 회원은공동체 내의 상호협조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농장의 생산물은 모샤브의 중앙조직을 통해 시장에 공급하고 모샤브는 현대 농업생산을 위해서 기구와 기계를 제공한다. 땅과 물은 회원들에게 고루 나누어진다. 키브츠와 같이 초창기 이주민들이 모샤브를 통해 정착했고 농업발전과 국가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오늘날 60여 가족을 단위로 대략 450여개가 있으며 인구의 5%가 이 모샤브에서 살고 있다. 이 중 약 20여개의 모샤브는 키브츠와 유사한 집단 농장 성격의 것이나 이익금이 공동기금으로 적립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 나누어 지급된다.
http://blog.daum.net/leemsc/15672887
=-http://hantoma.hani.co.kr/board/view.html?board_id=ht_politics:001003&uid=120497모샤브(Moshav)
이스라엘의 농업 공동체.
가장 대표적인 집단농업 형식의 농업공동체로는 키부츠와 모샤브가 있다. 공동생산·공동분배의 사회주의 이념을 배경으로 결성된 키부츠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경제적 비효율성과 구성원의 욕구불만을 초래했는데, 모샤브는 키부츠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경제적 모순을 보완하기 위해 형성된 집단농장이다.
따라서 모샤브는 개인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키부츠의 자급자족적인 시스템 대신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공동으로 펼치는 일종의 협동조합 성격을 띤다. 모샤브가 형성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이다. 그러다 1930년대에 들어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모샤브가 등장했다.
모샤브는 일단 회원을 구성하고 영농계획을 세운 후, 이스라엘 국토관리청에서 토지를 임대받아 토지를 농지로 바꾸는 개간 작업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집단협동생산 체제를 유지한다.
수확물은 수출과 내수를 통해 개별 구성원의 이익창출로 연결된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북쪽의 갈릴리 지방에서 남쪽의 아라바 지역까지 약 350여 개의 모샤브 단체가 결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이스라엘농업의 주축을 이룬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 중 약 10%의 농민이 키부츠나 모샤브를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다. 주로 농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점차 산업 구조를 바꾸어 나가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의 값싼 노동력을 고용, 최근에는 제3세계의 노동자가 많이 종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집단농업 형식의 농업공동체로는 키부츠와 모샤브가 있다. 공동생산·공동분배의 사회주의 이념을 배경으로 결성된 키부츠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경제적 비효율성과 구성원의 욕구불만을 초래했는데, 모샤브는 키부츠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경제적 모순을 보완하기 위해 형성된 집단농장이다.
따라서 모샤브는 개인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키부츠의 자급자족적인 시스템 대신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공동으로 펼치는 일종의 협동조합 성격을 띤다. 모샤브가 형성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이다. 그러다 1930년대에 들어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모샤브가 등장했다.
모샤브는 일단 회원을 구성하고 영농계획을 세운 후, 이스라엘 국토관리청에서 토지를 임대받아 토지를 농지로 바꾸는 개간 작업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집단협동생산 체제를 유지한다.
수확물은 수출과 내수를 통해 개별 구성원의 이익창출로 연결된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북쪽의 갈릴리 지방에서 남쪽의 아라바 지역까지 약 350여 개의 모샤브 단체가 결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이스라엘농업의 주축을 이룬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 중 약 10%의 농민이 키부츠나 모샤브를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다. 주로 농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점차 산업 구조를 바꾸어 나가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의 값싼 노동력을 고용, 최근에는 제3세계의 노동자가 많이 종사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이외, 키부츠 거주민들의 생활 등//
- 키부츠의 기본 이념으로는 생산과 소비 공동의 원칙, 상호 책임과 협조, 자체 노동의 원칙, 민주적 자치원칙 이 네 원칙이 있습니다.
농업에서 공업까지
키부츠는 농업으로 시작한 공동체이지만 농업만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점차 공업에 비중을 두게 된다. 보통 농업에서 30-40%, 공업이나 다른 사업을 통해서 60-70%의 수입을 올린다.
키부츠는 각기 특성에 맞는 공업을 개발하여 소득을 올린다. 식품이나 유제품을 가공하는 공장, 직물 , 가죽, 장난감, 전기제품 , 가구 등을 생산하는 공장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또한 키부츠는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나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기도 하는데 전국 곳곳에서 키부츠 게스트 하우스(Kibbutz Guest House), 호텔, 식당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키부츠의 장점 중 하나는 키부츠 울타리 안에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산다는 것이다. 키부츠에서는 핵가족화되어 있는 서양사회와는 달리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삼대가 모여 산다. 키부츠 안에서 외롭고 쓸쓸한 노년이란 있을 수 없다.
키부츠는 어린아이들을 키우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키부츠의 아이는 한 가족의 아이일 뿐만 아니라 키부츠 전체의 아이이기도 하다. 키부츠 아이의 양육은 부모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전 키부츠의 공동책임이라고 여긴다. 신선한 공기와 푸른 잔디밭,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와 작은 동물원까지 키부츠는 도시타 줄 수 없는 자연환경을 어린이에게 제공한다.
키부츠에서 회원은 공식적으로 하루에 8시간씩 일한다. 하루의 일과는 일의 성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오전 5시에서 6시에 시작한다. 낮은 뜨겁기 때문에 일과를 일찍 시작하고 오후 2∼3시경이면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여성들도 노동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돌보아 주고 식사는 식당에서, 빨래는 세탁소에서 해주므로 주부들은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어 남자들과 똑같이 일을 한다. 그러나 갓난아이가 있는 엄마는 일을 한두 시간씩 적게 한다. 키부츠에서 여성은 유아원이나 식당과 같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라 여겨져왔던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녀가 공평하게 일한다는 원칙이 늘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
노인들도 건강이 허락되면 손쉬운 일을 찾아서 한다. 키부츠의 원칙중 하나는 회원들의 노동으로 공동체를 운영해 가는 것이다. 키부츠의 원칙에 따르면 노동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지 않으므로 임금을 주는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다.
키부츠에서는 우아한 옷차림을 한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실용적인 노동복이 그들의 일상복이다. 반바지에 샌달을 신은 키부츠멤버의 차림새는 도시인보다 소박하다. 그렇지만 안식일 저녁식사 때에는 한껏 멋을 부리고 식당에 나타난다.
키부츠에서의 시설, 생활복지
키부츠는 한 울타리 안에 모든 것을 갖춘 작은 마을이다. 어느 키부츠에나 식당, 세탁소, 극장, 수영장, 상점 , 농장, 양계장, 유치원, 이발소, 병원, 초등학교가 있어서 키부츠 밖으로 나갈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키부츠는 그 구성원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전적으로 책임진다. 면도날에서부터 주택에 이르기까지, 의료의 완전부담에서부터 신혼 여행비용까지, 교육비에서부터 키부츠에 거주하지 않는 부양 가족에 대한 재정 지원에 이르기까지, 정원에 심은 식물에서부터 해외 여행비용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키부츠가 책임진다.
1.식사
키부츠에서 매일의 삼식은 중앙 식당에서 전원이 함께 한다. 요리사는 통상적으로 특별히 훈련을 받은 사람들로서 전문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설거지라든가 혹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 부엌일, 식사 운반 같은 일들은 교대로 일정기간에 걸쳐 맡는다. 중앙식당에서는 저녁 이후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문화행사와 매주의 전체 회의가 개최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키부츠 구성원들이 가족끼리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여 점심 식사와 샤밧(안식일) 저녁 식사때만 전체 구성원들이 함께 식사하는 경향이 있다.
2.세탁
모든 의복은 재봉과 세탁을 겸하고 있는 부서에서 담당한다. 세탁물은 각자의 명패가 붙어있는 칸막이 속에 넣어두면, 주2회정도 세탁하여 다리미질을 하고 떨어진 곳은 기워서 돌아온다.
3.의료
키부츠의 주민은 전원이 『히스타드루트』(Histadrut-이스라엘 노동 총연맹)의 종합적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 이 보험은 의료 및 입원 비용을 전부 부담한다.
4.주택
키부츠 주민들은 초기에는 천막이나 기타 임시 가옥에 살았으나 점차적으로 목조가옥으로 대치되었다. 이는 다시 콘크리트ㆍ블럭주택으로 발전하였다. 10대들은 그들의 독립 숙소에서 따로 생활한다. 일반적으로 한 가족당 3개 혹은 4개의 방이 있는 주택이 배당된다.
5.교육
어린아이들은 생후 3개월후부터 어린이의 집에서 숙식을 하게된다. 육아부들이 아이들을 돌보며, 어머니들은 일과중 아이들에게 들를 수 있다. 아이들은 일과후에는 부모에게로 가서 지내나 잠은 어린이의 집에서 자야한다.아이들은 하나의 조직된 공동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같이 생활하며, 같이 식사를 하고 또한 같이 학습한다. 그들은 교사 및 그룹지도원의 지도하에서 그들의 일을 처리해나가며, 다수의 키부츠에서는 학교에서 부설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키부츠의 자녀들을 위해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지방별로 설치되어 있다. 키부츠의 중고등학교는 농업과 노동을 학과의 일부로써 중점을 두고 있는 점에서 도시의 학교와 다르다. 키부츠의 자녀들은 전원이 시험없이 고등학교까지 진학한다.
6.노인복지
키부츠 회원이 나이가 들어 60∼70세가 되는 경우 그들에게 알맞는 일감으로 전화받는 일, 우표부치는 일 등 아주 쉬운 일로 하루에 서너시간씩 일을 하도록 배정해주어 심심풀이할 것을 마련해주고 있다. 노약한 부모님이 노동능력이 없고, 키부츠 회원이 아닐지라도 키부츠에서 봉양하게 되며 모든 사회복지 시설은 세계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7.문화
키부츠 안에는 수영장, 극장, 디스코장 등의 문화시설이 구비되어 있어 키부츠의 구성원들은 일과후 가족들과 여가를 즐긴다. 또한 매주 샤밧(안식일)저녁과 토요일저녁에는 다양한 파티와 행사들이 행해진다.
공평한 분배의 원칙
키부츠의 원칙 중 하나는 필요에 따른 분배이다. 주택은 회원이 키부츠에서 봉사한 기간, 가족의 수에 따라 정해진다. 채로 집을 크고 좋은 집은 원로 회원들에게 주어지고 자녀가 있는 젊은 회원들은 그보다 작은 집에 살곤 한다. 어린이들은 낮 시간 동안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오후에 가정으로 돌아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와 함께 살지 않고 그들만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 같은 키부츠 울타리 안에 있어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는 것이다.
의복이나 가구와 같은 물품은 키부츠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분배되지만, 설탕, 비누와 같은 생필품은 필요에 따라 무료로 공급된다. 그러나 필요에 따른 공정한 분배의 원칙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회원이 늘어감에 따라 이제는 무료 공급이 줄어들고 회원들이 자신의 비용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키부츠에서 노동은 가치 있는 일이나 노동이 돈으로 환원되거나 평가되지는 않는다. 이 말은 회원들이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회원들은 노동에 참가하기는 하지만 고용인이 아닌 소유주이다. 그들의 소득은 키부츠로 들어가고 매년 키부츠 총회에서 정하는 대로 개인 예산액을 할당받는다. 땅 위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이상주의자들은 빈부의 차이가 없는 공동체 생활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보았다. 그래서 키부츠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함께 일하고 함께 소득을 나눈다.
경우에 따라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회원은 키부츠 밖에서 직장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그는 외부에서 번 소득을 모두 키부츠에 입금하고 자신은 키부츠가 분배하는 것에 따라 재분배 받는다. 회계 전문가나 의사 등 키부츠에서 필요한 인력을 자체적으로 지원할 수 없을 때는 외부에서 전문인을 고용하기도 한다.
키부츠 내에서는 돈을 사용하지 않는다. 회원들이 일하는 대가로 공동시설을 이용한다. 즉 식당, 세탁소, 어린이집에 대한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 월급도 돈으로 받지 않고 컴퓨터에 크레디트로 기록되며 일체의 생활비를 낼 필요가 없다. 키부츠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므로 키부츠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다.
키부츠에서의 여가 활동
키부츠의 문화생활은 유대인들의 절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키부츠의 생활도 6일간 일하고 안식일인 토요일은 쉬는, 매우 규칙적인 일주일 단위의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주중에는 일과시간이 끝나면 가족끼리 시간을 보낸다.
키부츠
‘키부츠’란 ‘집단, 모임 혹은 그룹’을 뜻하는 히브리어로 지금은 집단 공동체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으며 모든 회원들과 가족들의 책임을 공동으로 지고 있는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이스라엘에는 이러한 키부츠가 270개 있으며 약 13만명이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습니다. 키부츠는 그 성격상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종교적 키부츠, 정치적 키부츠, 사회적 키부츠입니다. 그 중 종교적 키부츠와 정치적 키부츠는 소수이며 대부분이 사회적 키부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키부츠는 1909년, ‘드가니야’(갈릴리 호수 남단에 위치)에서 초기 개척자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팔레스틴회사의 고용인으로 농장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또 하나의 키부츠는 갈릴리 호수 남서 편에 위치한 ‘긴네렛 키부츠’인데 역시 같은 해인 1909년 설립되어 1913년부터 독자적인 키부츠로 발전하였습니다. 1918년까지 29개의 키부츠가 설립되었는데 이러한 초기의 키부츠들은 주로 시온주의 기구인 ‘유대 국가 기금단체’의 지지를 받아 성장을 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3차 이주시 몰려온 사람들에 의하여 키부츠는 더욱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 아랍인들의 위협과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등의 위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키부츠와 같은 집단 체제를 구성하였으며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인 1948년에는 79개의 키부츠가 있었는데 이것은 그 당시 전체 유대인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키부츠 행정의 기초는 회원들의 총회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 요원을 선택하며 전반적인 일에 관해 의논을 합니다. 키부츠의 회원이 되기를 원하는 자는 대개 1년간의 견습생할을 거친 후 총회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키부츠를 떠나기를 원하는 자는 총회의 결정에 따라 키부츠에 있었던 기간을 계산하여 일정한 금액을 받을 수 있으나 대개는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섣불리 떠날 수 없다고 합니다.
키부츠에서 하는 일은 물론 키부츠의 크기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대개는 농업과 축산업, 공업, 서비스업 등의 순서로 발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제력의 팽창과 기술의 복잡화가 이루어지면서 자체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위해서 타지방의 기술자들을 고용하기도 하며 키부츠들 간에 연합체를 구성하여 상호간에 기술과 경제력을 교환하며 정부 기관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키부츠는 회원들에게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주택, 의료, 교육, 결혼비용등)을 제공해 줍니다. 공동으로 관리하는 식당과 세탁소 매점 등이 있으며 의복, 가구 문화 활동, 취미, 휴가등에 있어서 개인적인 특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그들만의 공간(교육실, 식당, 놀이터 침실 등)에서 부모들과 분리되어 따로 생활을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물론 부모들은 일이 끝난 후 자녀들이 생활하는 곳에 가서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죠. 그러나 요즘은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거의 모든 키부츠가 탁아소에서 유치원, 국민학교까지 자체 운영을 하고 있으며 (혹은 몇 개의 키부츠가 함께 공동 운영 하기도 함) 모든 교사들을 자체적으로 양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까지의 학비는 무료이며 대학에 가서 공부하기를 원하는 자는 총회에서 결정하여 모든 학비를 키부츠 측에서 부담합니다. 그러나 대개는 키부츠에서 필요한 각종 기술직 전문 요원으로 양성하는데 대학에서 공부를 한 후에는 일정 기간 키부츠에서 의무적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키부츠의 교육은 농업 등의 일을 강조하는 면에서 일반 교육과 차이가 있으며 대개는 형식적이기보다는 자율적이며 교사와 학생간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키부츠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첫째, 키부츠 회원들의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와 일의 성실성에 관계없이 모두가 일률적으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며 둘째, 새로 태어나는 2-3세대들이 초기 개척자들과 같이 공동체를 사랑하고 키부츠를 통해 나라를 살리고야 말겠다는 ‘의지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많은 키부츠들이 재정난을 겪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키부츠를 떠나 도시 생활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까지는 대부분의 키부츠 회원들이 그들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며 키부츠의 회원 수가 매년 3.4%씩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며 키부츠의 총생산이 국민 총생산의 12%를 차지하며 국회의원 중 20명 이상이 키부츠 회원들이라는 사실들은 키부츠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하는 요인들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많은 키부츠들이 정식회원이 아닌 자원 봉사자들을 두는 제도를 갖고 있는데 이 자원 봉사자들은 주로 외국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자원봉사자이기 때문에 월급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먹여주고 재워주기는 합니다만… 하루 6-8시간씩 주로 농장일을 힘들게 하면서 키부츠 생활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세계 각 국의 친구를 사귐, 히브리어를 배움, 이스라엘 문화를 배우고 유대인들과 친분관계를 가짐, 영어를 배움(비영어권에서 온 이들) 등등. 이스라엘의 키부츠를 찾은 한국 젊은이들도 꽤 많았습니다. 지금은 뜸하지만 한창 전성기 때는 약 3,000명 가량 되기도 했으니까요. 키부츠에 대해 질문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저는 ‘군대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세탁소나 주방 등 실내에서 일을 하는 여자들의 경우는 좀 낫다고 하지만 남자들은 대개 농장에서 일을 하는데 바나나, 대추야자, 오렌지 등을 따서 운반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부푼 꿈만을 품고 외국 생활을 즐기려 키부츠에 들어가는 젊은이들은 1주일도 못되어 포기하고 말더군요. 처음엔 한국 자원봉사자들이 키부츠에서 꽤 인기였는데 지금은 그렇질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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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샤브
모샤브란 ‘주택, 주거지’ 등을 뜻하는 히브리어로 현재는 집단 혹은 개인 농장의 연합체를 형성하고 있는 마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샤브는 키부츠와 같은 집단농장의 개념을 포함할 뿐 아니라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운영 체계까지도 포함을 하는 일종의 혼합 체계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키부츠가 ‘운명 공동체’로 모든 재산을 공동 관리하는데 반해 모샤브는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며 자율적인 삶은 누리되 단지 고가의 기술 장비나 농장 운영 등을 함에 있어 서로 협력하여 일을 처리하는 ‘노동조합체’라고 할 수 있죠. 지금 현재 이러한 모샤브는 이스라엘 전역에 약 410개가 있으며 약 16만명이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두 모샤브는 1921년 설립되었는데 이스르엘 계곡의 북부에 있는 ‘나할랄’과 동부에 있는 ‘크파르 예헤즈켈’ 모샤브입니다. 초기 모샤브 회원들은 대부분 키부츠 회원들 이었습니다. 그 후 계속하여 그 수가 증가하다가 아랍인들의 반란이 있었던 1930년대 말엽에 모샤브는 이스라엘 전 지역에 확산되게 되었습니다. 모슬렘 국가에서 온 유대인들과 ‘대학살’을 피하여 이스라엘로 도망 온 유대인들은 키부츠보다는 모샤브를 선호하였는데 이들에 의하여 모샤브는 계속 건립되었으며 이스라엘이 독립하던 1948년에는 전 지역에 58개의 모샤브가 있었으나 1950년을 전후로 하여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약250개의 새로운 모샤브가 건립되었습니다. 모샤브는 경제, 사회, 교육, 문화적인 활동을 관리하기 위하여 특별한 연합 단체를 구성하고 있는데 매해1회 총회가 열리고 임원 선출을 합니다. 모샤브의 중요한 운영은 연합 단체의 관리 위원회가 결정합니다.
각 모샤브는 신용 대부, 종자 및 장비 구입, 시장조사 등을 통한 판매 등을 통해 소속 회원들을 돕습니다. 이러한 협조 체제는 교육, 의료, 문화 활동 등을 포함하여 이웃 모샤브와 함께 이루어지기도 하죠. 모샤브가 갖고 있는 독특한 운영 체계와 각 모샤브들 간의 협조 체제는 복잡하면서도 훌륭한 것이어서 세계 각국에서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많은 학자들과 학생들이 모샤브의 운영 체계를 연구하여 그들의 농업 조직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모샤브 중에는 ‘집단 모샤브’라는 뜻을 가진 ‘모샤브 쉬루피’ 라고 하는 특별한 조직체가 있는데 키부츠와 모샤브의 혼합 형태로 운영하는 곳입니다. 키부츠에서의 공동 관리 체계와 모샤브의 개인 농장 형태를 지향하는 체계, 다시 말하면 키부츠와 모샤브의 장점만을 도입하여 새로운 체계로 운영하는 특별한 집단입니다. 즉 생산과 소비를 분리하여 키부츠 적인 생산 체계를 도입하여 공동으로 생산하며 모샤브적인 소비 체계를 도입하여 가족의 특성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의 땅과 농경지는 키부츠와 마찬가지로 공동으로 소유하고 반면에 자녀 교육, 식사, 가정경제등은 모샤브와 같이 개별적으로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통계 국에서는 모샤브 쉬루피를 모샤브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그 수는 46개이며 회원은 12,800명에 이릅니다.
키부츠와 마찬가지로 자원봉사자들을 두는 모샤브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한 때는 한국의 농업협동조합 등의 단체에서 이스라엘의 집단농장 체제를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견학을 많이 왔었고 한국에서 여러 차례 이스라엘의 집단농장 체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아직까지 제대로 성공한 사례는 없는 것 같습니다. 기후와 역사, 정치적 상황, 국민성 등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한국적 키부츠와 모샤브를 만들어 운영해 본다면, - 예를들어 두레마을과 같은 – 한국 농촌을 살릴 수도 있을 법 한데 말이죠.
●모샤브(Moshav)
이스라엘의 협동농장, 협동부락. 1921년 이래 유태인들의 생산 공유협동체. 농업협동조합과 유사점이 많다. 키브츠보다 10년 먼저 설립되었다. 가족 단위의 농장을 갖고 자기 농장에서 일하며, 4가지 원칙 밑에 상호 협동하는 협동 체제다.
이스라엘의 농업 공동체의 하나.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집단농업의 형식으로 키부츠와 모샤브가 있다. 사회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공동생산ㆍ공동분배의 이념으로 결성된 키부츠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체제하에서는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경제적 비효율성과 구성원의 욕구불만이 있게 마련이다. 최근에는 자금난을 겪는 키부츠가 늘면서 구성원이 져야 할 부채 부담까지 생기고 있을 정도이다.
반면 모샤브는 키부츠와 비슷하지만 좀더 자유롭다. 키부츠의 가장 단점이었던 경제적 모순을 보완하기 위해 형성된 단체이기 때문이다. 키부츠의 자급자족적인 시스템 대신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공동으로 펼치는 일종의 협동조합과 같은 성격이다. 물론 모샤브의 결성 목표는 개인 이윤의 극대화에 있다. 모샤브가 형성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이다. 그러다가 1930년대에 들어 지금의 것과 비슷한 형태의 모샤브가 등장하였다. 모샤브는 일단 회원을 구성하고 영농계획을 세운 후 이스라엘 국토관리청에서 토지를 임대받아 시작한다. 토지를 농지로 바꾸는 개간 작업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자 노력한다. 수확물은 수출과 내수를 통해 개별 구성원의 이익창출로 연결된다. 관리 운영적인 측면에서도 키부츠에 앞서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키부츠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보다도 풍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북쪽의 갈릴리 지방에서 남쪽의 아라바 지역까지 약 350여 개의 모샤브 단체가 결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이스라엘 농업의 가장 주축이 된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 중 약 10%는 시골에 살고 있는데 이들은 대개 키부츠나 모샤브를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다. 주로 농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점차 산업의 구조를 바꾸어 나가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원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의 값싼 노동력을 고용한다. 근래 제3세계의 노동자가 많이 종사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이후 참가하는 젊은이들이 더러 생겨나고 있다.
【특징】
1. 토지의 국가 소유 : 토지의 개척, 농사는 가족 단위 협동조합에서 책임진다.
2. 각자 운동 : 토지 개척자와 이용자는 상호 협동하며 조합의 주권은 각 가정이 균등하게 소유함.
3. 상호 부조: 개인적 어려움이 있을 때는 회원 상호 힘을 합해 도와준다.
4. 물건의 구입, 판매는 협동조합에서 관장한다.
http://blog.naver.com/chungpha/40058664786
11. 키브츠와 모샤브(Kibutz and Moshav)
이스라엘의 키브츠와 모샤브는 이스라엘 건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안보적으로 개척적인 큰 역할을 하였다.
1917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어 키브츠(Kibutz)를 형성하게 된 것은 (1) 국제 환경의 역사적 배경의 발포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2) 범 세계적 민족주의 운동, (3)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에 기인하였다.
발포어선언이 있은후, 유대국가를 세우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팔레스타인땅으로 이주의 열을 더해 갔다.
또한 범 세계적으로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은 유대인 젊은이들에게 조국건설에 대한 열망을 가일층 뜨겁게 해 주었다.
당시 1917년 3월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에 의하여 과학적 사회주의가 표방되었고 이상적(공상적) 사회주의는 소외당하였다.
유대인들의 많은 이주자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올 때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은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에 실망한 이상적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새로운 유대사회건설에 중추가 되어 키브츠(Kibutz)라는 새로운 형태의 집단적 공동생활에 기반을 둔 촌락을 만들었다. 또한 조직적인 유대사회 건설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유대인 노동조합(Histadrut)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키브츠란 “그룹”(Group)이란 뜻이다. 그 뜻은 그붓자(Kevutzah)에 어원을 둔 말로 복수는 기브찜(Kibbutzim)이다.
키브츠는 성경의 레위기 25장 23장에 “토지는 영영히 팔지말 것은 토지는 다 내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말씀하신 하나님의 땅에 바탕을 두고 출발했다. 그리하여 키브츠 정신은 “경제잘살기운동”일뿐 아니라 “땅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은 개인소유의 토지는 허용되지 않으며 이스라엘 국토의 전부는 국가의 소유로 하고 있다.
키브츠의 근본 정신은 1022년에 사망한 골든(A,D, Golton)의 저서 “노동과 토지”에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그 핵심은 (1) 하나님 사랑 (2) 이웃 사랑, (3) 토지 사랑의 삼애주의(三愛主義)로 철저한 애국애족을 바탕으로한 집단농장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키브츠는 평등주의와 공동사회의 원칙을 기초로 하여 집단생활 형태로서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고 모든 구성원들이 균등하게 같은 조건에서 일하고 식당에서 공동식사를 하며 아이들은 보모가 키우게 되고 모든 교육, 의료, 후생 등 일체를 키브츠 자체에서 해결하고 있다.
키브츠의 제도는 사회주의적 형태로 보이지만 민주주의 형태를 띤 의결기관에 의한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로 각종 위원회를 조직하여 재정, 생산, 교육, 문화 등에 관한 사항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1909년에 첫 키브츠의 건설은 갈릴리 호수하구에 위치한 드가니야(Deganyah)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점차로 숫자가 증가하여 1936년에 48개, 1947년에 145개, 1956년에 227개, 1976년에 245개, 1990년대 초에 약 270개였던 것이 1996년부터 250개로 점차 감소 추세에 있다. 키브츠인구는 약7만명으로 이스라엘 인구의 2%도 못미친다.
그간 키브츠는 정치, 경제, 안보 등 국가발전에 다양하게 기여해 왔으나 기브츠의 기본적인 가치관도 다소 변화를 보이고 있다.
모샤브(Moshav)는 집단생활의 형태이나 키브츠와는 달리 개인 사유재산이 인정되며 개인 소유주택에서 자유롭게 생활한다. 단, 토지의 개인소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경제활동은 개인적인 재량에 따르고 있으나 공동으로 주요 장비 및 물품을 구입하여 사용하며 기술지원 등의 협력을 유지하는 집단협력체이다.
모샤브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이주할 때 가지고 온 개인재산으로 형성되었으며. 1920년 이스르엘 계곡의 “나할랄”(Nahalal) 모샤브가 처음 시작이었다. 1990년대 초에 400개의 모샤브가 되었다.
모샤브 쉬투휘(Moshav-Shityfi)는 키브츠와 모샤브의 조화된 형태로서 기브츠의 협동농사 방법과 모샤브의 가정생활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집단형태이다. 1937년 “모레뎃”(Moledet) 모샤브 쉬투휘가 이스르엘 계곡에 세워진후 현재는 30여개가 있다.
<출처 저서: 성지순례의 실제, PP50-51 "저자:김흔중 목사“ >
[출처] 이스라엘 성지의 실제 강좌 (시리스-9) (주 1회 보내드립니다)|작성자 chung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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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농업 공동체.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집단농업 형식의 농업공동체로는 키부츠와 모샤브가 있다. 공동생산·공동분배의 사회주의 이념을 배경으로 결성된 키부츠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경제적 비효율성과 구성원의 욕구불만을 초래했는데, 모샤브는 키부츠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경제적 모순을 보완하기 위해 형성된 집단농장이다.
따라서 모샤브는 개인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키부츠의 자급자족적인 시스템 대신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공동으로 펼치는 일종의 협동조합 성격을 띤다. 모샤브가 형성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이다. 그러다 1930년대에 들어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모샤브가 등장했다.
모샤브는 일단 회원을 구성하고 영농계획을 세운 후, 이스라엘 국토관리청에서 토지를 임대받아 토지를 농지로 바꾸는 개간 작업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집단협동생산 체제를 유지한다.
수확물은 수출과 내수를 통해 개별 구성원의 이익창출로 연결된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북쪽의 갈릴리 지방에서 남쪽의 아라바 지역까지 약 350여 개의 모샤브 단체가 결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이스라엘 농업의 주축을 이룬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 중 약 10%의 농민이 키부츠나 모샤브를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다. 주로 농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점차 산업 구조를 바꾸어 나가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의 값싼 노동력을 고용, 최근에는 제3세계의 노동자가 많이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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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부츠가 집단농촌이라면 모샤브는 협동 농촌이라고 부를 수 있다.
모샤브는 소규모 농토 경작자들의 협동적인 조직사회로서 사유 농장을 경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모샤브에서는 가족단위로 집과 땅을 소유하면서 농기구와 같은 장비를 공동으로 구매하고 생산물을 저장한다든지 판매를 할때에도 공동으로 하는 사회조직이다.
1차 세계대전직후 키부츠의 집단성에 탈피하고자 생긴것으로써 그 효시는1921년 이스르엘 평원에서 생긴 모샤브나할랄이다. 창설회원들은 주로 데가니아, 긴네렛등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이 모샤브운동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정착촌의 방위 전략촌으로서의역할도 함께 강조됨으로써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지금은 사회전체가 다양화되어 가며 또한 젊은층들이 고달픈 키부츠 생활을 기피하려는 경향 때문에 키부츠 인구는 줄어 들자어서 오히려 모샤브 인구가 더 많다.
1984년의 통계에 의하면 전국저그로 모샤브가 405개로서 약 15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키부츠는 264개에 약12만명, 그리고 모샤브와 키부츠의중간 형태를 취하는 모샤브 쉬투피라는 것이 29개 약 6천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모샤브 쉬투피에서는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작업을 하면서 단지 가족단위의 생활과 가사처리를 인정하는 사회조직이다.
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0699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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