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호스피스

[스크랩] 안타까운 죽음

김노섭-열린문 2016. 1. 26. 17:45

▣ 안타까운 죽음


B부인은 43세의 유방암 환자였다. 왼쪽 유방 절제수술을 하였으며 항암 치료로 효과를 보아 4년 정도 잘 지내다가 재발된 경우였다. 병황(病況)은 아직 치료 가능성이 남아 있는, 그래서 호스피스에 의뢰하기에는 조금 이르다고 보여지는 상태였다. 그러나 환자가 두 번이나 불안이 아주 심할 때 나타나는 발한(發汗), 호흡곤란, 심계항진(心悸亢進:심장의 고동이 빨라지고 세어지는 현상-注) 등의 증 상을 보여 응급실로 실려왔던 경험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한 경우였다. 

외형상으로 B부인은 발병한지 5년째이므로 자신의 죽음에 대비를 잘 해놓고 있는 듯이 보였다. 집안 정리도 세 번이나 하였다고 하였 으며 응급실에 실려 올 때마다 녹음기에 유언도 녹음을 하였다. 심지어는 자신의 사후에 남편이 혼자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친구의 동생 중 한 명을 선택하여 자신이 죽고 나면 남편과 결혼해 주도록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남편에게도 확답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그 여성도 처녀이지만 B부인이 간절하게 요청을 하므로 심사숙고한 후에 그러기로 응낙을 하였다고 하였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B부인의 남편은 나이에 비해 승진을 빨리 하였으며 B부인 역시 남편을 잘 내조하여서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으며 사랑하는 두 아들과 남편과 함께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을 때에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것이었다. 사실 유방암은 5년 이상 생존 가능성이 높은 암으로 조기에 발견하기만 하면 근치율(根治率)도 높다. 그러나 재발하게 되자 B부인의 마음에 「이제는 죽 었구나」는 생각이 들었으며 나름대로는 죽음을 준비한 것인데 막상 남편의 미래 재혼(再婚)상대까지 정해놓고 나자 마음이 불편해지 지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이 일구어 놓은 이 모든 것을, 이것을 위해 전혀 힘쓰거나 애쓰지 않은 제3의 여성이 와서 자기 대신 누리고 살 것을 생각하니 그만 숨이 가빠지고 곧 죽을 것같이 느껴진 것이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은 끝나는데 사랑하는 가족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길 것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 만으로도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신생리장애(精神生理障碍:심리적 불안이 원인이 되어 실제로 생리적인 문제가 발생하 는 일종의 정신질환-註)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환자 자신에게는 위협이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으며 주변 사람에게도 힘든 일이었 다.


호스피스에 가입한 후 몇 번의 정서적 상담을 통해 결혼 약속을 되물리고서 증상이 호전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 이라는 기본적인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는데 어느 날 밤에 다시 발작과 호흡곤란을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안돼 , 안돼』라고 외치다가 그만 운명하고 말았다.


▣ 인간은 영물(靈物)이다.


많은 이들이 내세와 같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증명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호스피스에서 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필자가 체험한 바에 따르면「인간은 영물(靈物)」이라는 것이다. 장갑을 낀 채 오랫동안 손을 움직이다 보면 손이 아닌 장갑이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장갑을 벗으려 할 때 비로소 손이 움직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건강할 때는 움직이는 몸이,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라고 착각하였을지라도 막상 임종과정(臨終過程)이 시작되어 영(靈 )이 몸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시점이 오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보이게 되고 자신을 움직였던 것이 장갑이 아니라 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손이 빠져나간 장갑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듯이 영혼이 빠져나간 몸도 움직일 수 없으며 우리는 그 몸을 시체라고 부르고 수의(壽衣)를 입혀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은 신비로운데 2∼3일간의 임종과정을 통해 몸이 서서히 기능을 정지하면서 체인스톡 호흡을 하다가 때가 되면 코로 긴 한숨을 쉬듯이 빠져나가 버린다.

 

코로 들어간 생기(生氣)가 코로 나가는 모습을 목도하노라면 실존하는 영(靈)을 확인하는 느낌이다.

임종과정에는 신체적인 측면과 정서적, 영적(靈的) 측면이 있다. 신체적으로는 손발이 차가워지고 점차 잠자는 시간이 길어지며 의사소통하기가 어렵고 반응하지 못하게 된다.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혼돈이 생기게 되고 불안정해지며 근육이 무력해짐으로 인해 실금(失禁)이나 실변(失便) 현상이 나타난다. 수분섭취가 적어지고 정상적인 분비물을 기침으로 내보내는 능력이 적어지면서 가슴에서 돌 구르는 듯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

 

수분과 음식의 섭취량 및 소변량이 줄고 호흡하는 양상이 변화된다. 정서적, 영적으로는 대인(對人)관계가 감소되고 위축되며 아직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또한 이미 죽은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이는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는 것이고 전환되려고 준비되어지는 중이다. 이때 환자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데「당신이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떠나도 좋다」고 허용해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장차, 언젠가는 당신의 영혼이 당신의 육체를 벗어 버리고 당신의 육체 밖에서 누워있는 당신의 죽은 몸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육체 속에 있을 때 보다 훨씬 분명하고 또렷하고 생생한 의식을 갖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은 몸을 붙잡고 울부짖는 가족들의 모습과, 당신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응급처치 하는 모습도 볼 것 입니다. 당신은 천정정도 높이에서 이러한 광경을 너무도 분명하고 또렷하게 내려다보게 될 것입니다. 문을 열지 않고 벽을 통과하는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될 것이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긴 터널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 터널 끝에서 인간의 언어로는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의 존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세상에 사는 동안 남을 진정 사랑한 일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며, 그 순간 자신의 일생이 비디오 화면처럼 순식간에 그리고 너무도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Yes, there is life after death!......

 

▣ 상대방의 죽음을 도와주고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


인간이 보이는 세계만을 확신하고 이 세상에서의 삶만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이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B씨처럼 이미 돌아가신 친지를 보게 됨으로 인해 희미하게나마 저 세상을 감지하고, 싫지만「포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A부인이나 B부인처럼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다가 제대로「안녕」을 못하고 떠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편 내세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먼저 가서 미안하다.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모습을 보았 다. 비록 얼마간의 이별로 인해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그들에게는 있어 보였다.

죽음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인 죽음을,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실재(實在)하는 영(靈)의 세계를 미리 보고 준비하며 사는 것이 새 천년을 사는 지혜가 아닐까? 
길을 걸어가면서 발 밑만 내려다 보면 머리가 부딪치기 쉽고 하늘만 바라보면 돌부리에 채이기 쉽다. 두 눈을 가지고 양쪽 세계를 다 보면서, 마음을 넓히고, 너의 죽음을 도와주며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