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예수사랑마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긴 삶은 축복의 통로다 | 글쓴이 아침이슬 (lovehy63) |
자궁암(子宮癌) 말기였던 A부인은 집 안에 연못과 정자가 있는 크고 호화스러운 집에서 사는 부잣집 마나님이었다. 특실에 입원해 있 다가 퇴원하면서 가정 호스피스에 가입하였다. A부인 역시 내세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분으로 이 땅에서의 삶이 전 부라고 믿고 살아 온 분이었다. 그래서 의사가 더 이상 병을 고치기 어렵다고 하자 삶을 연장하기 위해 좋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해보고자 하였다.
호스피스의 목적은「인간(人間)이 자연스러운 자기 수명(壽命)을 다할 수 있도록, 또 그때까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전인적(全人的) 으로 돕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을 억지로 하기보다 신체적, 정서적(情緖的), 영적(靈的), 사회적(社會的)으로 환자와 가족에게 가장 편안하고 도움이 되는, 그러면서도 환자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상자의 신념체계(信念體系 )에 따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을 보아 왔다. |
A부인은 호스피스에 가입하기는 하였지만 한편으로 두 달만 치료하면 낫게 된다는 속칭「도사」의 말을 믿고 온 몸에 밀가루 칠을 하고 지름 2∼3cm 정도의 쑥뜸을 등과 팔, 다리 등에 여러 군데 뜨는 일을 매일 하였다.
호스피스에서 방문하였을 때 도사가 치료(?)중인 경우도 있었는데 끝난 후 들어가 보면 A부인은 기진한 상태로 엎드려 있고 몸의 여 기저기에 있는 쑥뜸 자리는 분화구처럼 움푹 패인 채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하다가는 패혈증(敗血症)에라도 걸릴 것 같아 보였다. 그런 일이 한 달쯤 계속된 후 보다 못하여『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A부인이 고개를 옆으로 젓는 것이었다.『그럼 왜 그렇게 매일 하고 있느냐』고 묻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 낫게 해주겠다고 장담을 하니 믿어보는 것인데 이젠 힘이 들어서 이것도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죽고 싶지 않다, 죽는 것이 무섭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눈을 감는가, 빛이 없는 깜깜한 세상에 어떻 게 가겠나』고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쑥뜸 자리에 염증과 통증이 생겨서 호스피스에서 치료를 해 주었는데 그런 다음부터 A부인은 그 도사를 오지 못하게 하고 대신 S교회의 담임 성직자를 청했다. 그 이유는 이분이 병을 잘 낫게 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와서 자신의 병이 낫도록 기도해 줄 것을 기대하며 중간에 사람을 넣어 청(請)을 드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렵게 모셔온 그분은 A부인의 기대와는 달 리 병을 낫게 해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에 영원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내세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종교적 믿음을 가질 것을 권유하였다는데 이에 실망한 A부인은 몹시 낙심한 모습이었다.
초조하고 불안해 하던 그녀는『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허깨비 같은 게 보여요. 무서워요』하더니 악액질(惡液質:cachexia=오랫동 안 먹지 못해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註) 상태에서 허공에 손을 저으며 눈을 부릅뜬 채 숨을 거두었다.
▣ 죽음은 위엄(威嚴)을 가지고 만나야 할 삶의 종착지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글이 잘 풀리지를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마침 집 근처의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던「패치아담스 」라는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본 일이 있다. 사실 그날은 몹시 머리가 아파서 그냥 머리를 식히려고 갔던 것인데 전혀 기대 밖으로 너 무나 큰 감명을 받아 극장 안 어두운 곳에서 수첩에 메모해 놨다가 집에 가자마자 논문의 서론 부분을 줄줄 써내려갈 수 있었 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패치아담스는「죽음은 적(敵)이 아니라 위엄(威嚴)을 가지고 맞이해야 할 인간 삶의 종착지」라고 하였다. 의사가 질병을 치료하다가 더 이상 치료(완치)할 수 없을 때 실패했다고 느끼는데, 병을 치료하면 이길지 질지 모르지만 사람을 치료하면 언 제나 이긴다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을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소통능력을 키우고 인간애(人間愛)를 길러야 한다고 외치면서 「죽음은 인 간이 위엄(威嚴:dignity)을 가지고 맞이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루 일과를 끝낸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오듯이 「죽음은 자연스런 인간 삶의 종착지이기에 그것과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것은 사실 늘 호스피스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호스피스의 철학(哲學)은「죽음이란 인간 삶의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a normal process of life)」라고 본다. 그러므로 생의 마지막 시간 동안 비록 완치는 안되더라도 최선을 다해 증상을 조절하고 삶의 질을 높이 며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죽음을 맞아들일 수 있도록 개인적인 관심과 배려를 최대한 제공한다. 인간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 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에 도움이 되도록 의료인뿐 아니라 성직자도 한 팀을 이루어 활동한다. 그런 이유로 현대적 의학 기술로도 완치하지 못하는 질환의 말기에 있는 사람들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으면서 내면(內面)의 상처가 치 유되고 인간 실존(實存)의 의미를 찾게 되어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호스피스 철학(哲學) 중 하나는「生의 마지막 과정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희망하는 방식으로 살다가 원하는 장소에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기 질환이라고 모든 사람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서 환자와 가족의 동의하에 입원시키는 것이다. 또한 生의 마지막 시기에 지나간 생애(生涯)를 돌이켜 보면서 삶을 정리하고「안녕」이라고 말하고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해도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게 된 환우(患友)들 중에서 내세(來世)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마지막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퀴블러 로스가「수용(受容)」이라고 명명하였던 정서(情緖)가 우리가 돌보았던 한국인 호스피스 대상자 중 10% 정도에서도 나타났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하였던 K씨와 L군이 그런 경우였고 Y씨 역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Y씨는 굳었던 온몸 이 풀린 다음날 부인에게 자신의 통장과 도장, 비밀번호 등과 함께 자신의 재산 상태를 알려주었으며 조용히 있고 싶다고 하여 다른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개인 병원으로 병실을 옮겼다. 일주일 후 방문하였을 때는 처음보다 안정되어 보였으며 통증은 잘 조절되고 있 었으나 복수(腹水)가 약간 차 있었다. 정기적으로 성직자와 상담을 하고 있었으며 환자가 편안해 하자 부인도 안정이 된다고 하였다. 1시간 정도로 방문을 마치려 하자『다음에 한 번만 더 와 주세요』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회사의 중역들을 오라고 해서 회사 경 영에 대한 지침과 권한 이양 및 정리를 하였다고 한다. 1주일 후 세번째로 방문하였을 때 Y씨는『이제 그만, 됐어요. 감사합니다』라 고 했다.
사실 Y씨의 진행정도로 보아 아직 시간이 조금 더 있다고 생각했는데 Y씨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래서『이제 시간이 없다는 뜻인가요?』하고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혹시 알 수 없어서 부인에게『일 주일 뒤에 방문할 예정인데 그동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Y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오라고 해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부인을 잘 부탁한다고 당부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를 청하여서 자신이 떠난 후에도 부인을 위하여 가끔씩 방문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부인에게는 먼저 갈 테니 나중에 만나자고 하고 장례식에 대한 내용도 미리 원하는 방식을 이야기한 후『 빛이 보인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전화를 받고 장례식에 참석한 필자에게 Y씨의 부인은『지옥(地獄)에 안 가는 방법을 알려 주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 고 하였다』면서 고맙다고 하였다.
J부인 역시 우리에게 많은 감명과 가슴 아픔을 주었던 경우였다. J부인은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에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고 두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아왔다. 유방암(乳房癌) 말기로 암이 폐(肺)에 전이(轉移)된 상태였는데 의학적으로는 조금 더 치료해 보았으 면 하고 담당 의사가 아쉬워하였으나 본인이 더 이상 항암 치료는 하지 않고 호스피스 치료를 받겠다고 하였던 경우였다.
▣ 내세관(來世觀)이 있는 사람의 경우
그녀는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여 임종과정(臨終過程)을 시작할 무렵에 병원에 입원하 였다. 그녀는 자녀들에게「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리고「인간이 원하는 대로가 아닌 삶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의 어떤 뜻이 있을 것이다」,「아빠와 장차 오실 새어머니 말씀 잘 듣고 훌륭하게 자라서 이 다음 에 다시 만나자」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J부인은 종교인이었는데 돌아가시기 3주 전부터는 몸이 점차 쇠약해져 가면서「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였다.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며 잠시 종교적 신념이 흔들리는 듯한 시간도 있었으나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간병인(看病人)이 신앙의 원리와 내세 에 대해 말해주자 확신 속에서 평안하게 소천하였다. 남편에게는 자신의 무덤을 평토장(平土葬)해 줄 것과 결혼식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입혀서 관 속에 넣어 달라는 부탁의 말을 남기고 천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후에 편안한 모습으로 임종하였다고 한다. |
또한 폐전이(肺轉移)와 골전이(骨轉移)가 있었던 유방암 말기의 P부인의 경우도 특이한 감동을 준 사례였다. 그녀는 항암제 치료를 중 단한 대부분의 환자가 그러하듯이 그동안 빠졌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여 스포츠 머리 정도로 자라 있었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집에서 임종하기 위하여 퇴원하기로 결정하였으므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앰뷸런스 안에서 산소 마스크를 한 P부인은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므로 함께 동행하는 필자의 마음도 안타까웠다. 아직 청소년인 두 자녀를 두고 떠나야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무거운 마음이었는데 옆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떨 구던 남편이 기어이 아내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이 머리 자라면 파마해 주려고 했는데…』 하면서 울부짖고 말아서 함께 있던 필 자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집에 도착하여 방 한가운데 이불을 펴고 P부인을 눕혔다. 남편과 고등학생인 딸, 중학생인 아들이 울면서 P부인을 바라보고 있었고 급 하게 연락을 받고 달려 온 교우(敎友)들은 둘러앉아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찬송을 불러 주었다. 산소 마스크를 떼고 나니 체인 스톡 호흡을 하는 P부인의 얼굴은 흙빛에 가까웠다. 그때 나이 많은 여자 교우 한 분이『○○야, 이제 곧 주님을 만나게 된다. 이제 곧 그 분을 만나게 될 거야』라고 하였는데 그 순간 흙빛이던 P부인의 얼굴이 환하게 빛을 내면서 코로 긴 한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는 끝이 었다. 조금 전의 어둡던 흙빛과는 대조적으로 환하게 밝아진 채로 잠든 P부인의 얼굴은 아주 평화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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