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환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웰다잉법 국회 통과(종합)
환자 사전에 의사 표시하고 의사 2명 확인하는 등 요건 갖춰야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19년만..호스피스 관심 커질 듯 뉴스1 음상준 기자 입력 2016.01.08. 19:44(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회생 가능성이 없고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가 의료기기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여야는 8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임종을 앞둔 환자가 원치 않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도록 허용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웰다잉법)'을 통과시켰다.
지난 1997년 보호자 요구로 병원을 퇴원한 50대 남성이 사망에 이르자 보호자인 아내와 담당 의료진에게 '살인죄 및 살인방조죄'가 적용돼 유죄가 선고된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한 지 19년 만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스스로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긴 것으로 국내 의학계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환자 의사 표시 후 의사 2명 확인해야 요건 성립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환자는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임종을 앞둔 경우에만 해당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라면 어떤 질병이든 상관없고, 담당 의사와 전문가들이 임종 단계를 판단하게 된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중단해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에 해당 환자가 사전에 의사를 표시하고 이를 전문가들이 확인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연명의료 중단 요건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환자가 의사를 표시할 능력이 있으면 환자가 직접 의사가 확인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의사는 추가로 환자의 뜻을 담은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출하면 요건이 성립된다.
환자가 의사를 표시할 능력이 없다면 가족 2명 이상이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진술서를 제출하고 의사 2명이 이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가족이 이와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 연명의료 중단은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가족은 만 17세 이상 배우자와 자녀, 부모를 말한다. 셋 다 없으면 형제와 자매까지 인정하고 있다. 가족이 1명뿐이라면 그 사람의 진술을 인정해준다.
환자의 의사 능력이 없고 예전에 어떤 의사를 밝혔는지 알 수 없을 때는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하고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등 의사 2명이 이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미성년자는 법정 대리인이 결정하고 의사 2명이 확인한다.
또 말기 환자가 사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철회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는데도 다른 가족이 이를 반대해도 환자의 결정을 우선적으로 따르도록 했다.
연명의료가 중단되더라도 모든 의학적 처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이나 영양, 단순 산소는 계속 공급된다. 통증을 줄여주는 치료도 계속된다.
다만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적극적인 치료가 중단될 뿐이다.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한 웰다잉법은 공포 후 1년 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말기 환자를 치료하는 담당 의사는 연명의료 중단 요건이 확인될 경우 이를 즉시 이행해야 한다. 이를 거부하면 소속 병원 원장이 윤리위원회 열고 심의한 후 담당 의사를 교체한다.
◇의사 도움으로 삶 마감하는 안락사와 개념 달라
연명의료 중단은 적극적인 치료를 포기하는 과정이며 일각에서 생각하는 안락사와는 의미가 다르다.
안락사는 말기 환자가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 없을 경우에 한해 의사 도움을 받아 죽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유럽의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이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고, 미국은 워싱턴, 몬태나 등 5개 주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 연명의료 중단은 회복 불가능한 말기 환자가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존엄사, 소극적 안락사와 비슷한 개념이다.
웰다잉법이 역사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것은 노인인구 증가와 함께 존엄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연명치료에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2014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의 88.9%가 연명치료를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 10명 중 9명이 연명치료를 원치 않은 셈이다.
향후 웰다잉법 시행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등록하게 되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구가 생긴다. 또 법 시행에 앞서 전문가들 논의를 거쳐 통일된 서식 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기 암 환자 호스피스 이용률은 13.8%였다.
환자 100명 중 13.8명꼴로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이는 2012년 11.9명, 2013년 12.7명에 비해 증가했지만 영국과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호스피스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무의미한 치료보다는 통증을 덜어주는 치료를 받으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임종을 맞도록 돕는 서비스를 말한다.
해외 선진국들의 호스피스 이용률이 매우 높다. 영국은 95%에 이르고, 미국(메디케어)과 대만은 각각 43%, 30% 수준이다.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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