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탈을 쓴 이데올로기'
은혜만 된다면'… 우상을 넘어 정직으로
2015.12.23 06:50:20
양승훈 edit@newsm.com
언젠가 제가 섬기는 학교 채플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화로 사용하기 위해 벤허(Ben Her)의 작가 월레스(Lewis "Lew" Wallace, 1827–1905)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벤허’는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만든 영화입니다. 월레스가 1880년에 발표한 ‘벤허’(Ben-Hur: A Tale of the Christ)라는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월레스를 소개하는 문헌을 보면 그는 변호사·주지사·정치인·장군·역사소설가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저는 월레스 장군에 대해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요한복음 강해를 준비하다 보니 그 분의 얘기가 적절한 예화가 될 것 같아서 자세히 찾아본 것입니다. 월레스 장군의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목사님들이 설교 시간에 즐겨 사용하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 '벤허'의 원작자 루 월레스 (인터넷 블로그 갈무리) |
미국 남부에 월레스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언젠가 그는 유명한 무신론자 잉거솔(Robert G. Ingersoll)을 만났는데 그는 월레스에게 기독교의 가르침은 다 거짓말이고 쓸 데 없는 것이며, 기독교는 믿을 수 없는 거짓 종교임을 증명하는 책을 쓰면 대단한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웰레스는 성경의 허구성을 철저하게 파헤쳐서 성경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거짓임을 밝히고, 인류를 신에게서 해방시키기로 작정했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 성경을 자세히 읽어서 거짓된 내용을 찾아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읽어가는 가운데 성경 속에서 거짓을 발견하기는커녕 도리어 성경에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했다. 성경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그는 마음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으며, 마침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가 예수를 부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양심은 "아니야, 그렇지 않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성경은 진리야!"라고 부르짖는 것 같았다. 결국 월레스는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다. 기독교를 파괴할 목적으로 2년 동안 열심히 자료를 찾으며 연구하던 그는 끝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다. 기독교를 비판하려고 들었던 펜을 꺾고 그는 만인의 심금을 울리며 많은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한 불후의 명작 ‘벤허’를 썼다.
정말 설교에 사용하기는 너무나 좋은 예화지요. 특히 성경은 믿을만한가를 의심하는 사람들, 성경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감동적인 얘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월레스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 동안 설교 예화로 그렇게 많이 인용되던 위 얘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월레스는 ‘벤허’의 원저자일 뿐 아니라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장군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남아있습니다.
문헌들에 의하면 그는 처음부터 무신론자도, 반기독교적 성향의 인사도 아니었습니다. 열정적인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일평생 감리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성경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고, ‘벤허’를 쓰기 전에도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까지 가는 얘기를 소설로 쓰기도 했습니다. 자서전 ‘나는 어떻게 벤허를 썼는가’와 1899년에 발표한 ‘첫 성탄’ (The First Christmas) 서문에서 그는 ‘벤허’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당시 세계의 종교적, 정치적 상황들”(religious and political conditions of the world at the time of the coming)을 그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글을 쓰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a conviction amounting to absolute belief in God and the divinity of Christ)을 갖게 되었지만 원래 기독교를 파괴하기 위하여, 혹은 성경을 부정하기 위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결국에는 ‘벤허’를 썼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월레스 얘기를 이렇게 왜곡했을까요. 월레스는 미국인이고 영어 자료들 중에는 어디에도 그런 얘기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 한국에 있는 어떤 분이 왜곡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왜곡한 ‘범인’을 찾는다는 것은 ‘자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별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다만 사실이 아닌 그런 얘기가 어떻게 별 검증도 없이 그렇게 오랫동안 수많은 설교자들에 의해 한국 강단에서 인용되었는가 하는 점이 이상할 뿐입니다. 혹 많은 설교자들이 감동만 된다면 과장이면 어떻고, 거짓이면 어떠냐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런 예는 이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월레스 얘기는 왜곡된 줄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인용해서 생긴 헤프닝이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때 ‘냉동권사’라는 분이 전국을 다니면서 간증 집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죽어서 병원 냉동실에 사흘간 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그동안 천당과 지옥에 가서 많은 것을 보았다고 간증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 냉동권사란 분의 얘기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이 들통 난 후에 냉동권사라는 분이 한 말이 가관입니다. “거짓말이건 참말이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교인들이 은혜 받고 헌금 많이 바치면 되는 것이….”
내용은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문맥의 얘기를 지금도 가끔 듣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서울의 어느 보수 교단 목회자는 회교권에 선교의 문이 열릴 것이기 때문에 부시의 전쟁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얘길까요. 아무리 성경책을 읽고 싶어도 남의 성경책을 훔쳐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아무리 예배당 건축을 위해서라고 해도 건축법을 어기면서 건축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아무리 선교를 위해서라도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주장을 한다면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악하고 불의한 분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은혜만 된다면 사실을 왜곡, 과장, 거짓말 할 수도 있고, 선교를 위해서라면 남의 나라를 침략할 수도 있다. 이것은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주장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해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까지 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것은 “진리는 총구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이나 하는 얘기입니다. 목적만 선하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의 탈을 쓴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하우츠바르트의 말처럼 이데올로기는 우상숭배이고,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죄입니다.
양승훈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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