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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DBR]사람을 버린 순간, 전쟁도 경영도 결과는 뻔했다

김노섭-열린문 2015. 9. 7. 13:34
[동아일보]
‘손자병법’에서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제시된 계책들은 사실상 모두가 사람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뜻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재무적 어려움에 빠진 회사들 가운데 인건비를 절약하면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인력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명예퇴직 등을 통해 감원 목표를 세우고 인력을 줄이면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회사의 존립에 꼭 필요한 핵심 인재들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84호(9월 1호)에는 전쟁과 기업 경영에서 ‘사람 중시’ 여부가 승패를 가른 사례가 소개됐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가미카제 특공대와 제로센 전투기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4년 9, 10월경 전황은 일본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 함대가 남태평양의 섬을 하나하나 점령하고 있었다. 몇 번의 큰 해전에서 패한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이나 전함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변변한 반격조차 꾀하지 못했다. 궁지에 몰린 일본군 수뇌부는 폭탄을 실은 비행기를 직접 적함에 돌진시키는 자살 공격을 생각해냈다. 그 유명한 ‘가미카제(神風)’다.

첫 번째 공식적인 가미카제 부대는 1944년 10월 19일 조직됐고 세키 유키오(關行男) 대위가 지휘를 맡았다. 그가 이끄는 5대의 제로센 전투기는 10월 25일 오전 미 해병대의 필리핀 레이테 섬 상륙을 엄호하던 미 함대에 공격을 가해 호위 항공모함을 격침시키고 다른 함정 몇 척에도 손상을 입혔다.

하지만 가미카제 공격이 거둔 성과는 일본 군부의 당초 기대보다 훨씬 못 미쳤다. 가미카제 공격을 시도한 비행기 가운데 미군의 공격을 뚫고 실제로 미 해군 함정에 돌격할 수 있었던 건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중간에 미 해군기에 의해 요격되거나 대공포화로 대부분 격추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최고 고급 인력인 조종사가 4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 일본군 패전의 진짜 이유

일본군의 인명 경시 풍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세가 기울기 시작한 이후부터 일본군 수뇌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기술자, 숙련공들을 빼내 전투병으로 전장에 보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항공기 생산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숙련공이 없는 공장은 비숙련 부녀자가 채웠다. 품질을 감독해야 할 기술자가 없으니 전투기 품질은 갈수록 떨어졌다. 최전선에서도 일선 정비병들에게 총을 들려 전장에 투입시키다 보니 적탄에 떨어지는 비행기보다 기체 결함으로 떨어지는 비행기 수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종전 무렵 일본군은 미군의 공격보다 더 심각한 자멸의 길을 걸었다. 총 60대 이상의 적기를 격추하며 일본군 조종사 중 최고의 격추왕으로 꼽히던 사카이 사부로(坂井三郞)는 전후에 한 인터뷰에서 “일본 패전의 원인은 좋은 기술 인력과 숙련된 전사를 가볍게 여긴 탓”이라고 단언했다.

○ 인재를 중시한 1980년대 델타항공

항공운항 산업에서는 특히 사람이 중요하다. 가령 조종사의 숙련도에 따라 안정적인 비행 환경과 편안한 이착륙 여부가 결정된다. 고객 접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정시 이착륙 여부 및 전반적인 서비스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70년대 말 미국에서 항공운항 산업의 규제 완화가 시작될 때 델타항공은 메이저 항공운항 회사로서 단단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델타는 원래 ‘사람이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는 인식하에 우수한 인재를 붙들고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제공했다. 이렇게 좋은 대우는 노선 및 요금 규제로 인해 창출되는 수익으로 뒷받침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노선, 운임, 신규 진입에 관한 각종 규제가 없어지면서 항공사 간 경쟁이 격화돼 업계 대부분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을 단행할 때조차, 델타는 정리해고는커녕 오히려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종업원들은 우수한 고객 서비스로 회사에 보답했고 이는 다시 회사 성장의 큰 동력으로 자리잡았다.

○ 과감한 정리해고와 임금 삭감으로 악화일로

하지만 1990년 이후 불황과 고유가의 이중고로 4년간 적자가 지속되자 당시 델타 최고 경영진은 기존 인력관리 정책을 바꿔 약 1만5000명(당시 전체 직원의 약 17%)을 정리해고했고 임금까지 삭감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델타항공의 서비스 질은 크게 악화됐고 고객 불만도 산업 평균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 후 1990년대 중·후반 세계 경제의 호황에 따라 흑자로 전환한 이 회사는 예전의 인력관리 정책 기조로 회귀해 임금 인상과 복지 확충을 꾀했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 사태 후 항공산업이 다시 침체에 빠지자 델타항공 경영진은 2004년 또다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무려 30% 이상 임금을 삭감했고, 퇴직연금 및 복지 혜택 축소 등을 통해 총 10억 달러 상당의 인건비를 감축했다.

과감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영 실적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델타는 2005년 3월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이는 두 차례에 걸친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숙련된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회사를 떠나 그들에게 체화돼 있던 기술, 지식, 세부적인 업무 노하우 등 무형의 자원까지 회사를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 델타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것 역시 ‘사람’

2007년 파산보호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델타항공은 이듬해 대형 항공사인 노스웨스트항공과 합병한다. 당시 노스웨스트항공과의 합병을 주도했던 리처드 앤더슨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공룡 항공사를 출범시키면서 한 가지 중요한 공약을 내걸었다. 바로 감원을 최소화하고 조종사 급여를 30% 인상하며 모든 직원에게 이익의 15%를 공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은 주효했다. 델타와 노스웨스트항공은 합병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며 재도약에 성공했다. AQR(항공사품질평가) 보고서 결과를 보더라도 2012년과 2013년 연속 업계 4위(총 15개 항공사 중)에 기록되는 등 서비스의 질도 근 20년 만에 상위권으로 복귀했다.

파산의 길목에 서 있던 델타항공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계기 역시 ‘사람’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기업경영 요소 중 인적자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경영에서 성공하려면 우수한 직원들을 잘 유지하고 이들이 의욕을 가지고 일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김경원 대성합동지주 사장 alexkkim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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