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선교

조선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김노섭-열린문 2012. 3. 30. 15:46

* 조선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1858년 6월 15일 영국에서 출생해서 14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는 조선에 의사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듣고 "의약품과 의료기기 얼마를 준비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겠습니다. 조선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며 조선을 향한 마음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 민족에게 찾아오기까지 많은 장벽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의 모교인 테네시 종합 의과대학에서는,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22살의 젊은 그를 교수로 내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조선 선교사로 오는데 장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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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약혼녀인 그가 있던 의과대학의 학장의 딸이었던 해터 깁슨(Hattie Gibson)의 만류 또한 장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결심과 하나님의 부름심에 대한 굳은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결국 약혼녀인 해티도 그와 같이 조선땅으로 오게 됩니다.

그가 교수와 의사로 본국에서 지냈다면, 그의 앞길은 든든히 보장된 길이었을 것입니다.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명예와 부가 보장된 그 길을 뒤로 하고,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병이 득실거리는 낯선 이국땅에 찾아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열방을 품은 주님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조선의 선교사로 파송되어 제일 먼저 도착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우리나라에 갑신정변이 일어나면서 일본 땅에서 조금 더 조선말을 배우며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중에 파송을 받고 왔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년 4월 5일 입국하게 되면서, 그는 바로 뒷 배로 조선 땅에 입국하게 됩니다. 그 때가 1885년 6월 21일입니다.

알렌은 외교관으로 미국에 가게 되었고, 그는 병원장으로 광혜원을 돌보게 되었으며, 그 병원은 서울 을지로 2가로 이사를 하면서 제중원이 되었습니다. 광혜원이 왕족과 양반 계급을 위한 병원이었다면, 제중원은 모든 천민에게까지 혜택을 주기 위한 병원이었습니다.

그는 그 병원에서 5년간 사역을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해주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모두 피서를 떠난 후에도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돌보다가 이질로 드러눕게 되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일하던 조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 땅에서 그 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

고종 황제의 윤허에 의해 의사와 언어 교사가 한국에 들어 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조선을 향해 제일 먼저 선교사로 반응한 젊은이가 바로 의사였던 존 헤론(John W. Heron) 이였던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파송하는 박십자가 선교사님 가정이 4월 2일 월요일 선교지로 떠납니다. 오늘 저녁(3월 28일) 수요성경학교에서 말씀 전해 주셨는데 존 헤론(John W. Heron) 선교사님에 대해서 소개해 주셨습니다. 선교지 카국으로 떠나는 박십자가 김부활 MK 박소망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자신의 모든 안락한 삶과 누릴 수 있는 가치들을 내려놓고 부름심에 따라 이 땅에 자신을 드린 존 헤론(John W. Heron)의 삶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그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것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이로써 나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빌 3:8,9절)(쉬운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