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나이 27세에 죽었으나...
「1840년 9월 4일 영국 웨일즈 리야드란 곳 어느 목사님의 가정에 한 사내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런던대학 뉴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는 1863년 고향인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습니다. 중국의 선교에 관심이 있었던 젊은 목사는 24세 청년으로 신혼의 신부를 데리고 중국 선교사로 갔다가 본격적인 선교사업도 하기 전에 기후와 식사 생활 형편이 맞지 않아 부인이 그만 죽고 맙니다.
큰 슬픔과 괴로움이 있었지만 기도로 극복하고 있다가 마침 조선 땅 황해도 장연에서 건너온 천주교인 김자평 최선일이란 사람들을 만나 조선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스코틀랜드 성공회의 후원을 받아 많은 한문 성경을 공급받고는 조선 땅 백령도를 중심으로 한 서해 도서지방에 성경을 나눠줍니다.
...
1865년 9월의 일입니다. 다시 중국으로 갔다가 이듬해 1866년 미국 상선이었던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조선으로 오게 되었는데 강화를 돌아 한강으로 올라가야 할 배가 그만 뱃길을 잘못 알아 북상하며 대동강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배가 정박한 곳은 평양의 만경대 일대로 물이 빠지자 그 배는 그만 대동간 모래사장에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평양 감사 박규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와 제너럴 셔먼 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다 잡아 죽이게 되는데 이 젊은 목사도 체포되어 백사장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끌려 나오는 순간에도 사람들과 군인들에게 성경을 나눠주었다고 전해졌고 결국 그 곳에서 참수형으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의 나이 27세 1866년 9월 2일 저녁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젊은 목사의 이름은 토마스 선교사 (Robert J. Tomas 1840-1866)입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로 첫 순교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때 그에게서 성경을 받았던 사람 중 홍신길이란 사람은 후에 강서교회를 세우게 되고, 최치량이란 사람은 평양교회를 개척하고, 성경을 뜯어 벽지로 발랐던 영문주사 박영식은 후에 신실한 신자가 되어 그 집이 널다리교회가 되었고, 토마스의 목을 자른 장본인인 박춘권이란 사람은 평양교회 장로가 됩니다.」
설교 때마다 감동과 도전을 주시는 존경하는 한 분 목사님의 설교에서 가져왔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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