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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정교회란 무엇인가?

김노섭-열린문 2018. 2. 10. 15:01

 

I. 들어가는 말
가정교회에 대한 정의를 한 마디로 언급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가정교회의 용어는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House(집)이며, 다른 하나는 Home(가정)입니다. 로버트 뱅크스는 Home이라고 말했고 한국교회에 최초로 가정교회를 접목시킨 휴스톤 서울침례교회 최영기목사는 House라고 말했습니다. 용어상 두 단어가 모두 타당성을 갖고 있습니다. 두 단어를 갖고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저의 선택은 가정교회를 Home Church라고 사용하려고 합니다. 이는 가정교회의 사역의 특수성(特殊性)과 가정교회가 추구하는 정책성(政策性), 그리고 가정교회가 목적하는 지향성(指向性)에 맞는 것이 아닌가 사료(思料)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정교회의 정의에 대해 몇 가지로 나누어 말씀을 간략하게 드리겠습니다.
II. 두 날개
새는 두 날개로 비상합니다. 교회에도 두 날개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는 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교회)에서 모였고 집(가정)에서 모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초대교회는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는 교회의 축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주일 하루만 교회에서 모이는 [예배중심의 교회생활]을 나타내고 있는 현실입니다. 현대 교회는 신자들에게 주일 하루만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 신자노릇(?)을 다했다고 자부하게 가르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가정교회란 초대교회가 지향하였던 성전(교회)의 모임과 집(가정)의 모임을 회복하여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회본질회복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교회는 대형화가 되어 가는 추세 속에 교회의 두드러진 현상 중에 하나는 한 교회에 출석하고, 또한 같은 직분을 갖고 봉사하면서도 서로 누구인지를 모르는 [교인상호 부지현상]도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교회를 모이는 그리움의 터전이 아니라 점점 멀리하는 교회기피현상이 나타나며 동시에 비상해야 할 교회가 비상의 날개를 접고 안일(安逸)에 빠져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가정교회는 {두 날개로 비상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는 교회}를 찾게 하는 목회입니다

III. 가정 모임
이제까지 교회가 모든 모임의 주체를 교회의 회집에 두고 강조하여 왔습니다. 주일날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고 수요일에도 교회에 나와 예배를 해야 하고 금요기도회도 교회에 모여야 합니다. 교회가 모든 모임의 중심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는 교회 중심의 모임(대예배)과 동시에 가정의 모임(소그룹)을 통해 교회의 모임의 일방화(一方化다)를 다변화(多變化)로 전향하여 교회모임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교회입니다. 가정교회란 한 마디로 말해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입니다. 동시에 가정교회는 부부가 중심으로 구성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때에 인간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가정은 부부가 중심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랑과 교제입니다. 그런데 현대교회가 건물의 대형화현상(大型化現狀)과 모임의 인적 다중화현상(多衆化現狀)을 보이면서 교회의 본질인 사랑과 교제를 상실해 가는 안타까움을 보여 왔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도전체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성전(교회)에서 모였고 성도의 교제와 친교와 서로의 돌봄을 위해 각 가정에서 모였습니다(행2:45-46).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교회의 원형(교회와 가정)을 바로 세우는 [교회바로세우기사역]입니다. 가정교회는 이런 대집단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영적인 돌봄과 섬김을 채워줄 수 있는 교회입니다. 가정교회를 정의한다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 모여서 예배와 교제와 사도의 가르침과 구제와 나눔과 전도 등에 힘썼던 사역을 지역교회의 형태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IV. 소그룹
가정교회는 {소그룹 모임}입니다. 소그룹이란 작은 모임(small group)입니다. 교회는 그룹의 다양성을 통해 복음전파와 성도의 교제를 이루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여러 소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는 구역모임, 남녀전도회, 주일학교, 성경공부반, 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구역(區域)의 역사는 교회가 개척한 역사와 동일한 만큼 긴 역사(歷史)를 갖고 있는 소그룹 모임입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이제 구역의 존재에 대해 회의(懷疑)를 갖지 않았던 목회자가 없을 것입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구역예배 이대로 좋은가?" 혹은 "구역예배의 개선점은 없는가?"라는 회의를 갖고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가정교회라는 새로운 사역을 접하게 되어 이제 가정교회의 전도사를 자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마다 목회자들은 구역예배의 회집의 문제와 성도들이 구역예배를 외면하는 문제를 갖고 고민하지 않았던 목회자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개선점을 찾아 제자훈련, 전도폭발, 기타 여러 소그룹에 대해 세미나에 참석하고 교회에 접목시켜 보려고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그룹은 한 가지 목적만을 지향하여 모이는 소그룹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구역예배는 예배와 친교가 목적이었고 제자훈련은 성경공부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전도폭발은 전도의 방법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목적에 적합한 인물을 양성하는 데에는 목표를 달성하였는지 모르나 그 목적이 끝나면 더 이상 그 훈련의 다른 목적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제 가정교회는 성경공부가 있으나 성경공부가 전부 아니고 친교가 있으나 친교가 전부 아닙니다. 가정교회는 한 가지를 목적으로 모이는 소그룹이 아니라 다양한 목적을 갖고 모이는 소그룹입니다. 예를 들면 공부가 있고, 친교가 있고 나눔이 있고, 선교도 있고, 기도가 있는가 하면 봉사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모임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가정교회는 다양성을 띤 멀티미팅(multi-meeting)의 소그룹 교회입니다.

V. 동역(同役)
베드로는 세계에 흩어진 선도들에게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 백성이라"(벧전2:9)고 말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이란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만인제사장의 원리를 교회개혁의 하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목사와 평신도라는 두 직분으로 엄격히 구분하고 이 구분이 지금까지 전통으로 굳혀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인 목사가 앞장서 왔고 평신도는 목사의 뒤에서 보조역할을 하는 것으로 서로 만족하였다고 하겠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1절과 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하므로 하나님의 교회의 사역의 다양성을 밝혔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 등 다양하고 하나님의 교회는 다양한 은사의 활용을 요구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이 모든 은사의 사용의 목적은 어디에 두었습니까? 1) 성도를 온전케 하며, )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3)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는데 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회법(헌법)으로 직분과 직분자의 임명을 정하였습니다. 교회에 나온 지 몇 개월이 지나야 학습과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몇 년이 경과해야 집사가 되고 장로와 권사의 선거에 피선거권을 부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이렇게 시간이 경과해야 받는다는 말씀이 성경의 그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정교회는 사역의 다변화를 통해 동역(同役)의 원리를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나온 연수(年數)를 막론하고 교회에 새로 나온 사람이라도 모두가 자기의 재능과 은사에 맞게 일하게 하므로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해서 교회를 세우는 일군을 일으키는 역동적인 동역의 사역입니다. 가정교회는 성경이 가르친 {동역의 원리를 지향하는 교회}입니다.


VI. 선교(宣敎)
교회의 존재목적은 무엇이며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지상명령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세계전파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해 순종하며 헌신할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이제까지 이 사명에 철저하게 순종하여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도에 힘을 경주하여 길거리 전도(노방전도, 축호전도, 가가호호 방문전도)와 전도지배부 전도와 구제전도(구호물품을 전달하는 전도)에 온 심혈을 기울여 왔고, 그 결과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 앞에 놀라운 부흥과 성장으로 칭찬과 부러움을 받아 왔다고 자부합니다. 동시에 세계 선교 대열에도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더 이상의 전통적인 전도의 문은 닫혀 있고 막혀 있는 현상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이 말하고 있으며 교회마다 전도의 열성이 식어지는 현상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전도의 방법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이며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가정교회는 전도에도 새로운 개척의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길거리 전도가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집집마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호소합니다. 이유는 어디 있습니까? 우리 사회의 무관심의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웃에 대해 더 이상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관계를 멀리하는 현실입니다. 이제 교회는 전도의 방법을 달리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 무차별적으로 진행해 왔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였던 [돌격 앞으로의 전도를 관계중심의 전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가정교회는 [관계중심의 전도에 관심을 두고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친구관계, 친지관계, 동업자관계, 상하관계. 등을 통해 관계중심으로 전도를 하여 전도의 효과와 효율성을 높이는 삼차원의 새로운 전도방법을 찾아가는 교회입니다. 또한 교회가 주관하였던 세계선교도 가정교회에서는 매 가정교회가 한 선교지를 맞는 책임선교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선교지를 후원할 수 있다고 보겠습니다

 

* 참고 : 가정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좀 더 알고자 하는 분은 다음 두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 니다.
이것이 가정교회다. 최상태목사 저
구역예배를 가정교회로 바꾸라. 최영기목사 저

 

 

출처 : 사랑의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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