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교회
(2001년3월25일)
제일 먼저 이번 예배학 레포트에서 나의 가슴을 설레 이게 했던 곳이 동방 정교회이다.
가끔씩 교회사나 세계사가 서구위주로 지나치게 편중되고 동방은 거의 무시되고 소외된 느낌에 가슴 아팠는데 우리나라에도 동방 정교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어렵게 시간을 내서 주일 오전 예배를 참석하였다.
먼저 교회 위치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과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동방정교회는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과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 일을 보고 가느라 조금 늦었다.
정교회를 찾으면서 일단 눈에 띠는 것이 모스크건축양식의 큰 건물이 언덕 위에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교회는 일부러 언덕 위에 짓는 이유가 아마도 정교회는 외양과 위엄을 중시 여기므로 높은 지대에 위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과 웅장함을 더하기 위함이리라.....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예배당을 들어섰는데 자욱한 향내음과 촛불이 먼저 나를 반긴다. 일단 조용히 빈자리를 찾아 앞쪽의 옆자리에 자리를 정했다. 나는 본시 향내음을 싫어하고 촛불은 왠지 우리나라 유교나 미신에서의 인상을 깊게 심어주어 약간 인상을 찌푸렸지만 구약성경에도 보면 제단에는 향불도 있고 항상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화로도 있으며 스룹들이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봤다.
그렇지만 향냄새는 싫었다. 눈에 크게 띄지 않게 옆에 자리해서 조심스럽게 예배드리는 성도들의 태도나 마음가짐을 살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돔형 천장에 크게 그려진 성화들이 과거 내가 자라오던 개신교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들이다. 성가대의 위치는 단 좌측에 잘 보이지 않게 배치되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발한다. 러시아나 그리스 사람들로 보이는 성도들도 꽤많이 눈에 띄인다. 예배도 2시간이나 드린다. 나는 조금 늦어 2시간을 다 드리지는 않았지만 필리핀 생각이 난다.
나는 필리핀에서 1년 넘게 지내면서 선교사역에도 동참하고 천주교회도 가보고 Full Gaspel 계통의 개신교며 토착교회 한국 선교사들이 개척한 교회, 미국인들이 주로 목회 하는 모든 이민자 들과 필리핀인을 대상으로 하는 Union Church 등을 다녀봤는데 토착화된 필리핀의 개신교도 주일 예배는 보통 2시간은 기본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도 알아듣기 힘든 따갈로그어로 찬양과 설교와 집례를 하기에 아주 힘들었었는데 동방정교회도 예배시간이 길다. 하지만 나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정교회도 역시 성호를 끝없이 그린다. 나는 성호를 어떻게 그리는지 몰라 처음엔 몇 번 시도해 보다 포기했다.
제단 앞에 놓여진 3개의 문을 통해서 사제가 끝없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예배의 도움을 위해 십자가상 같은 것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꼬마들이 자주 등장한다. 성인예배에도 아이들이 참여되는구나 생각했다. 제단 쪽안에는 칸을 막아 지성소처럼 공간을 구분하고 집례자 들도 4-5명 정도로 많아 보였다. 정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나는 흡사 중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초대교회나 카타콤에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빴다 끊임없이 좌우 벽면과 천장의 성화를 보랴, 집례자의 복장을 보랴, 예배자들의 태도를 보랴, 의식문 순서를 따라서 알지 못한 내용들을 따라 하랴 바빴다. 특히 외우는 것은 성구나 기도문 신조들일텐데 그들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하는 것이 과거 30년 동안 개신교 생활을 해온 나로서는 가장 충격적인 것 이었다. 이런 것은 과거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혹시 이런 것도 이야기만 듣던 시편 찬송의 부류의 하나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본다.
마지막엔 그리스 신부인 듯한 사람이 나와서 말씀을 전하는데 약 5분 정도 인 것 같다. 아주 짧다.
언어는 "아델포스"란 단어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성찬을 하는데 안 나가보면 손해 볼 것 같아 떡을 받길 원하지는 않았지만 공부로 생각하고 나가서 가까이서 보기도 하고, 맛도 보기 위해 나가서 받았는데 떡이 개신교보다는 매우 컸다.
예배는 전체적으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긴시간 동안 시종을 일관하는데 정말 뭔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광고시간에는 성경공부에 대해 광고하는 것을 보고 말씀은 짧지만 그 외에 말씀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공부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광고시간엔 "교인들"이란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잘 들어 보았는데,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 들여 인간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고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5일은 수도원 대청소일이라는 광고에 이런 부분은 개신교와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친근감이 들었다.
예배가 끝난 후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워 무는 것을 보고 술 담배를 금기시하지 않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학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교회 사람들은 성화나 성찬 잔에 지저분하게 계속 돌아가면서 키스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아쉬웠다.
그리고 부활절 주일 밤 9시 뉴스를 보는데 부활절 교회의 모습을 전하면서 명동성당과 동방정교회가 짧게나왔다.
내가 봤던 사제들도 그 자리에 비슷한 모습으로 나오는 모습을 발견하고 정교회가 그동안 우리와 멀게 있지는 않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 성공회
(2001년5월6일)
시간관계상 9시 미사에 참석하였다. 먼저 성공회는 그 성당 건물이 미학적, 건축적 가치가 높아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사제의 설교 속에도 성당과 성공회에 대한 자부심이 짙게 배어 나온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는데 입구에 성수를 든 천사가 보인다. 성공회는 개신교 분위기가 많이 날것 같았는데 역시 예배형식에서나 성수를 든 천사를 보면서 일단은 로만 카톨릭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배는 정교회처럼 역시 엄숙하고 경건해 보이지만 왠지 정교회에서는 자리가 불편했었다. 하지만 성공회에서는 나의 마음도 착 가라앉고 예배에 몰입하게 된다. 조명도 은은하고 너무 밝지 않아 약간 신비적이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듯한 느낌이 솟아 오른다.
수녀복을 입은 수녀가 뒤에 서 있다. 여성도들도 천주교처럼 머리에 흰 천을 두른 이가 많고 예배 중에 성호를 자주 긋는걸 보면 영락없는 천주교인데 개신교스타일의 헌금 봉투가 있고 꼬마들이 자주 행사 진행자로 자주 나온다 어린아이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면 맑고 깨끗한 어린이를 자주 등장하고 예배의 참여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예식중 의자의 앞에는 무릎을 끓고 앉을 수 있는 발판이 있는데 기도할 때 무릎을 끓을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요즘의 개신교는 기도할 때 무릎을 끓을 장소가 없어 그냥 의자에 앉는데 옳지 않다란 생각을 했다. 96년 필리핀에 있을 때 개신교 대학인 P.C.U대학의 채플실에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갔었는데 거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예배당 장의자에 무릎을 끓을 수 있게 된걸 알았고 내가본 필리핀의 성당에도 모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신기했었다.
예배시작시 누가 나와서 예배 시작하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고 은은한 종을 몇 번 울리면서 시작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곳 역시 노래를 부르는 듯 말을 하는 듯한 형태의 말씀과 집전이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면 개신교만 이런 형태를 도입하지 않나 보다. 성경말씀을 봉독 할 때는 주로 여자들도 예배의 인도를 위해 성경봉독 을 자주 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개신교보다 여성들의 지위가 높다란 생각을 해봤는데 이는 영국 성공회이기에 선거 시 1919년 여권투표를 최초로 인정한 국가답게 여권이 신장되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성경을 봉독하는 것도 구약과 신약을 한번씩 순서에 넣었다. 그리고 베드로 전서를 일고 난 후 "이것은 베드로전서의 말씀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가대는 제단의 양옆으로 앉아 있었고 성가대의 찬양이 더욱 예배를 경건하게 이끌었다. 설교는 약간 길지만 역시 내용은 복음적이지 못하고 개신교에비해서 짧다.
니케아 신조를 외우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는 것 같아 좋았고 대표기도시간엔 "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라고 하며"~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찬의 전례는 매 번의 예배 때마다 있나 보다 남들이 모두 영성체 를 받아먹으러 가니 나도 시험삼아 따라가 본다. 작은 영성체를 포도주에 찍어 먹는데 영성체를 아주 귀히 여긴다는 생각이 든다.
파송 성가에서는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있고" 를 힘차게 부르는데 그전에 분위기는 고요하게 예배를 드렸던 것과는 상반되게 끝을 맺는다. 예배의 또 다른 특징은 목례를 자주 한다 그리고 미사를 마치고 어린이가 긴 막대로 촛불을 조심스럽게 끊다. 말씀은 개혁성경을 사용치 않고 현대어 성경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말씀은 짧지만 성경이 알기 어려운 개역 성경을 사용치 않는다는 것이 벌써 이들을 복음주의적으로 이끄는 것 같다. 우리개신교도 이젠 개역성경을 뒤로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성공회 신문을 보는데 부산에서는 여성사제가 1호로 탄생된걸 보고 역시 여권이 신장되었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전도사의 직책도 성공회에 있나 보다.
성찬식까지 했지만 말씀이 짧으니 1시간만에 미사를 마쳤다. 내 개인적으로는 예배가 참 편하고 은혜스럽고 좋았다.
로마 카톨릭(명동 대성당)
(2001년 5월6일 16:00)
명동성당은 평소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았기에 실제가 어떤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주변의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신앙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분위기로 되어 있었다.
그 중에 예수님의 가시면류관과 3개의 큰못이 10번의 설교만큼이나 나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주님의 고난과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해준다. 내부에는 기둥이 너무 많고 커서 앞 제단이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일단 최대한 잘 보이는데 까지 접근을 해봤다. 큰 건물을 조적식으로 지으려고 하니 자연 기둥이 많아지게 된 것 같은 데 평소 내가 생각했던 성당보다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역시 입구에는 성수가 있었고 명동성당 미사 역시 엄숙했지만 사람은 많지만 좁은 공간 탓일 것 같기도 하고 50분만에 미사를 마치는 상황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주보는 있지만 순서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미사 중에 성공회처럼 역시 예배인도자가 낭낭 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여자인 점이 크게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님 참회합니다."라고 "님"자를 붙이는 것, "성체를 모실 분 나오십시오" 할 때의 성체를 모신다는 표현이 영성체를 진짜 주님의 살과 피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나가서 나도 받아먹으려고 했으나 바로 앞에서 영성체를 받으므로 자세히 보기만 했는데 작은 떡에 포도주를 조금 찍는 것이 역시 성찬을 중요시한다는 느낌이다 . 헌금시간에는 예물을 들고 일어서서 앞에 나가 내는 모습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우리가 직접 제물을 들고 제단에 제물을 바쳤던 것 같은 느낌이 연상된다.
기도 시 "내탓이요 내탓이요" 하며 가슴을 치는 것에서 현실인식을 하는 성도가 가슴을 치며 슬퍼하는 것이 느껴지고 "평화를 빕니다" 하는 말을 몇 번 반복하는 것, 개역 성경을 사용하지 않고 현대어 성경을 사용 하는것이 좋아 보였고 말씀을 읽은 후엔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는 것이 좋게 느껴졌다. 성가대는 단의 좌측에 있고 설교 단은 우측에 있었다. 설교에는 약 10-15분 정도하고 농담도 하는 것이 분위기를 좋게 하기는 하지만 역시 말씀은 복음적이지 못 한 것 같다. 촛불을 켰으나 향은 피우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의자 앞엔 무릎 끓는 발판은 없었다. 성가대는 제단 우편에 위치하며 어린이들이 자주 등장했다.
미사는 왠지 성채를 받고는 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걸 보면 내용을 의식해서 인지는 모르나 확실히 천주교에서는 성채 받아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주변에 서점과 카톨릭 물품을 파는 코너가 있어 성도들도 쉽게 필요한 종교용품을 구입할 수 있어 좋을 것 같고 주변이 종교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좋아서 서점을 둘러보고 나도 "알기 쉬운 미사 해설"이란 책을 한 권 샀다.
루터교
(2001년5월20일 11:00)
과거에 나는 신앙서적을 읽다보면 나오는 "루터교"라는 용어가 개신교를 지칭하는 말 일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개신교중 한 종파로 루터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신기한 마음으로 후암동의 루터교회를 찾았다.
루터 교회의 예배는 총 1시간 30분간 예배를 드렸는데 처음 본당을 들어섰는데 자욱한 향내음과 촛불이 인상적이었고 루터교회의 본산 일 듯 한 교회의 11시 예배에 성도가 몇 사람 없다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앉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향내음은 나는데 향은 보이지 않는다. 단에는 촛불과 헌금함, 펼친 성경책, 성찬 떡과 포도주가 흰천에 덮여있고 단 우측에 성가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좌편에는 천주교의 수도복처럼 생긴 수도복을 입고 3명이 나와 앉아있다. 단 앞에 흰 꽃을 양옆으로 많이 헌화되어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이 전체적으로 장례장 같은 분위기가 나는 듯 했다. 성경은 개역 성경을 사용했다. 헌금 봉투는 편하게 사용하도록 의자에 자그마한 봉투함을 붙여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배를 드리면서 두리번거렸는데 루터교도 성도들이 상당히 고령화된 듯 하다. 설교말씀은 일반 개신교처럼 상당히 길게 한다. 앞쪽에는 태극기를 세워뒀고 한복 입은 사람이 많이 눈의 띄었다. 처음 예배시작 할 때는 인도자가 주문 외우듯이 외우더니 그 후로는 일반 사회 보듯이 순서를 진행한다. 예배 순서에는 구약 봉독과, 사도서간 봉독 그리고 복음서 봉독이 들어 있었는데 복음서를 봉독하기 바로 직전 성가대에서는 "주께 영광 돌리세" 라고 노래부르고 봉독 후엔 "이것은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라고 한다. 한가지 또 특이한 점은 성가대 찬양시 개신교에선 일반적으로 설교좌석에 그대로 설교자는 서있는데 루터교회에서는 찬양하는 동안 설교석에 있지 않고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루터교의 성찬식때는 성찬을 시작하기 전에 목사님이 성찬 떡과 포도주를 들고 성호를 그었다. 그 후 성도들은 앞으로 나가서 무릎을 끓고 테이블에서 떡과 포도주를 받는데 떡은 카톨릭의 영성체와 동일했다. 퇴장 찬송시 에는 예배인도자 셋이 단을 향하여 보고 찬양을 했고 끝나고 퇴장 때에도 집례자 3명이 단에 목례를 하고 퇴장하는 모습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예배 종료 후 꼬마가 긴 막대기를 들고 나와 촛불을 소등했다.
구세군(서대문 영문)
(2001년 5월20일 14:00)
구세군은 용어나 명칭이 모두 생소했다. 얼핏 보기에는 개신교 같은데 집례시에도 제복을 입고 명칭도 모두 군사용어이다. 이번 주는 가정단 주로 지키기 때문인지 여자 분들이 사회와 설교 모든 순서를 진행한다.
복음적인 메시지나 예배 형태는 보통 우리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 과 별로 다를 것은 없었지만 용어가 많이 생소하다 즉, "집사"에 해당되는 용어가 "정령"이고 "목사"에 해당되는 용어가 "사관"이다. 구세군은 군악대 이미지가 있어서 인지 단의 좌편에 드럼등의 악기들이 많이 구비되어 있고 우편에 성가대석이 배치 되어 있었다.
우리 서울 장신 신학생들이 있는걸 알고 축도도 특별히 더 해주고 예배후에는 다과 가 있었는데 특별히 초대해주고 담임사과 부인되시는 사관께서 직접 우리를 맞이하고 구세군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준다. 구세군의 사관학교 즉, 신학교가 지금은 과천으로 이전했는데 신학생은 약 30명되고 이들은 모두가 전액 장학생이고 후에 유학가지 보내주기에 아무나 신학교에 받아 주지 않으며 일반적 교회에는 남자 목사와 여성도간의 잡음이 끊이질 않으므로 결혼한 부부의 경우는 신학교를 부부가 꼭 같이 입학하고 후에도 같이 사역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남녀 차별이 하나도 없다고 설명하신다.
성찬예배에 대해 질문하자 구세군은 1년에 4번 성찬식을 하는데 떡과 포도주를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세군의 3색기 앞에서 신앙을 다짐한다고 한다. 이는 구세군이 100년 전에 영국에서 시작됐는데 이때당시 전쟁 중으로 어수선하고 혼란한 시기라 떡과 포도주를 준비할 수 없어 떡과 포도주를 사용치 않으며, 빈민 선교를 하다보니 대부분의 빈민층이 술을 좋아하는데 포도주로 성찬식 하는 것은 빈민들에게 술의 합리성을 옹호해 금주를 시킬 수 없는 애매한 점이 있어서 깃발 앞에서 맹세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는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간다.
또 구세군은 교회 하나에 사회 사업 하나를 반드시 한다는 사회참여의 열정이 부러웠고 가난하고 소외된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들이 도전이 되었다. 연말 연시에 나오는 자선남비도 구세군의 리더 급 몇 명만이 하는게 아니라 전 성도가 휴가를 내서 자선 남비에 뛰어 든다고 하니 나는 자꾸만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탐방 순서
1. 한국 정교회
2001년3월25일 09:30
2. 대한 성공회
2001년5월6일 09:00
3. 로마 카톨릭
2001년5월6일 16:00
4. 한국 루터회
2001년5월20일 11:00
5. 구세군
2001년5월20일 14:00
6. 기타
(2001년3월25일)
제일 먼저 이번 예배학 레포트에서 나의 가슴을 설레 이게 했던 곳이 동방 정교회이다.
가끔씩 교회사나 세계사가 서구위주로 지나치게 편중되고 동방은 거의 무시되고 소외된 느낌에 가슴 아팠는데 우리나라에도 동방 정교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어렵게 시간을 내서 주일 오전 예배를 참석하였다.
먼저 교회 위치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과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동방정교회는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과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 일을 보고 가느라 조금 늦었다.
정교회를 찾으면서 일단 눈에 띠는 것이 모스크건축양식의 큰 건물이 언덕 위에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교회는 일부러 언덕 위에 짓는 이유가 아마도 정교회는 외양과 위엄을 중시 여기므로 높은 지대에 위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과 웅장함을 더하기 위함이리라.....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예배당을 들어섰는데 자욱한 향내음과 촛불이 먼저 나를 반긴다. 일단 조용히 빈자리를 찾아 앞쪽의 옆자리에 자리를 정했다. 나는 본시 향내음을 싫어하고 촛불은 왠지 우리나라 유교나 미신에서의 인상을 깊게 심어주어 약간 인상을 찌푸렸지만 구약성경에도 보면 제단에는 향불도 있고 항상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화로도 있으며 스룹들이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봤다.
그렇지만 향냄새는 싫었다. 눈에 크게 띄지 않게 옆에 자리해서 조심스럽게 예배드리는 성도들의 태도나 마음가짐을 살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돔형 천장에 크게 그려진 성화들이 과거 내가 자라오던 개신교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들이다. 성가대의 위치는 단 좌측에 잘 보이지 않게 배치되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발한다. 러시아나 그리스 사람들로 보이는 성도들도 꽤많이 눈에 띄인다. 예배도 2시간이나 드린다. 나는 조금 늦어 2시간을 다 드리지는 않았지만 필리핀 생각이 난다.
나는 필리핀에서 1년 넘게 지내면서 선교사역에도 동참하고 천주교회도 가보고 Full Gaspel 계통의 개신교며 토착교회 한국 선교사들이 개척한 교회, 미국인들이 주로 목회 하는 모든 이민자 들과 필리핀인을 대상으로 하는 Union Church 등을 다녀봤는데 토착화된 필리핀의 개신교도 주일 예배는 보통 2시간은 기본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도 알아듣기 힘든 따갈로그어로 찬양과 설교와 집례를 하기에 아주 힘들었었는데 동방정교회도 예배시간이 길다. 하지만 나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정교회도 역시 성호를 끝없이 그린다. 나는 성호를 어떻게 그리는지 몰라 처음엔 몇 번 시도해 보다 포기했다.
제단 앞에 놓여진 3개의 문을 통해서 사제가 끝없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예배의 도움을 위해 십자가상 같은 것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꼬마들이 자주 등장한다. 성인예배에도 아이들이 참여되는구나 생각했다. 제단 쪽안에는 칸을 막아 지성소처럼 공간을 구분하고 집례자 들도 4-5명 정도로 많아 보였다. 정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나는 흡사 중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초대교회나 카타콤에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빴다 끊임없이 좌우 벽면과 천장의 성화를 보랴, 집례자의 복장을 보랴, 예배자들의 태도를 보랴, 의식문 순서를 따라서 알지 못한 내용들을 따라 하랴 바빴다. 특히 외우는 것은 성구나 기도문 신조들일텐데 그들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하는 것이 과거 30년 동안 개신교 생활을 해온 나로서는 가장 충격적인 것 이었다. 이런 것은 과거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혹시 이런 것도 이야기만 듣던 시편 찬송의 부류의 하나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본다.
마지막엔 그리스 신부인 듯한 사람이 나와서 말씀을 전하는데 약 5분 정도 인 것 같다. 아주 짧다.
언어는 "아델포스"란 단어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성찬을 하는데 안 나가보면 손해 볼 것 같아 떡을 받길 원하지는 않았지만 공부로 생각하고 나가서 가까이서 보기도 하고, 맛도 보기 위해 나가서 받았는데 떡이 개신교보다는 매우 컸다.
예배는 전체적으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긴시간 동안 시종을 일관하는데 정말 뭔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광고시간에는 성경공부에 대해 광고하는 것을 보고 말씀은 짧지만 그 외에 말씀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공부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광고시간엔 "교인들"이란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잘 들어 보았는데,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 들여 인간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고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5일은 수도원 대청소일이라는 광고에 이런 부분은 개신교와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친근감이 들었다.
예배가 끝난 후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워 무는 것을 보고 술 담배를 금기시하지 않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학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교회 사람들은 성화나 성찬 잔에 지저분하게 계속 돌아가면서 키스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아쉬웠다.
그리고 부활절 주일 밤 9시 뉴스를 보는데 부활절 교회의 모습을 전하면서 명동성당과 동방정교회가 짧게나왔다.
내가 봤던 사제들도 그 자리에 비슷한 모습으로 나오는 모습을 발견하고 정교회가 그동안 우리와 멀게 있지는 않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 성공회
(2001년5월6일)
시간관계상 9시 미사에 참석하였다. 먼저 성공회는 그 성당 건물이 미학적, 건축적 가치가 높아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사제의 설교 속에도 성당과 성공회에 대한 자부심이 짙게 배어 나온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는데 입구에 성수를 든 천사가 보인다. 성공회는 개신교 분위기가 많이 날것 같았는데 역시 예배형식에서나 성수를 든 천사를 보면서 일단은 로만 카톨릭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배는 정교회처럼 역시 엄숙하고 경건해 보이지만 왠지 정교회에서는 자리가 불편했었다. 하지만 성공회에서는 나의 마음도 착 가라앉고 예배에 몰입하게 된다. 조명도 은은하고 너무 밝지 않아 약간 신비적이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듯한 느낌이 솟아 오른다.
수녀복을 입은 수녀가 뒤에 서 있다. 여성도들도 천주교처럼 머리에 흰 천을 두른 이가 많고 예배 중에 성호를 자주 긋는걸 보면 영락없는 천주교인데 개신교스타일의 헌금 봉투가 있고 꼬마들이 자주 행사 진행자로 자주 나온다 어린아이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면 맑고 깨끗한 어린이를 자주 등장하고 예배의 참여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예식중 의자의 앞에는 무릎을 끓고 앉을 수 있는 발판이 있는데 기도할 때 무릎을 끓을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요즘의 개신교는 기도할 때 무릎을 끓을 장소가 없어 그냥 의자에 앉는데 옳지 않다란 생각을 했다. 96년 필리핀에 있을 때 개신교 대학인 P.C.U대학의 채플실에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갔었는데 거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예배당 장의자에 무릎을 끓을 수 있게 된걸 알았고 내가본 필리핀의 성당에도 모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신기했었다.
예배시작시 누가 나와서 예배 시작하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고 은은한 종을 몇 번 울리면서 시작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곳 역시 노래를 부르는 듯 말을 하는 듯한 형태의 말씀과 집전이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면 개신교만 이런 형태를 도입하지 않나 보다. 성경말씀을 봉독 할 때는 주로 여자들도 예배의 인도를 위해 성경봉독 을 자주 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개신교보다 여성들의 지위가 높다란 생각을 해봤는데 이는 영국 성공회이기에 선거 시 1919년 여권투표를 최초로 인정한 국가답게 여권이 신장되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성경을 봉독하는 것도 구약과 신약을 한번씩 순서에 넣었다. 그리고 베드로 전서를 일고 난 후 "이것은 베드로전서의 말씀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가대는 제단의 양옆으로 앉아 있었고 성가대의 찬양이 더욱 예배를 경건하게 이끌었다. 설교는 약간 길지만 역시 내용은 복음적이지 못하고 개신교에비해서 짧다.
니케아 신조를 외우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는 것 같아 좋았고 대표기도시간엔 "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라고 하며"~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찬의 전례는 매 번의 예배 때마다 있나 보다 남들이 모두 영성체 를 받아먹으러 가니 나도 시험삼아 따라가 본다. 작은 영성체를 포도주에 찍어 먹는데 영성체를 아주 귀히 여긴다는 생각이 든다.
파송 성가에서는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있고" 를 힘차게 부르는데 그전에 분위기는 고요하게 예배를 드렸던 것과는 상반되게 끝을 맺는다. 예배의 또 다른 특징은 목례를 자주 한다 그리고 미사를 마치고 어린이가 긴 막대로 촛불을 조심스럽게 끊다. 말씀은 개혁성경을 사용치 않고 현대어 성경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말씀은 짧지만 성경이 알기 어려운 개역 성경을 사용치 않는다는 것이 벌써 이들을 복음주의적으로 이끄는 것 같다. 우리개신교도 이젠 개역성경을 뒤로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성공회 신문을 보는데 부산에서는 여성사제가 1호로 탄생된걸 보고 역시 여권이 신장되었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전도사의 직책도 성공회에 있나 보다.
성찬식까지 했지만 말씀이 짧으니 1시간만에 미사를 마쳤다. 내 개인적으로는 예배가 참 편하고 은혜스럽고 좋았다.
로마 카톨릭(명동 대성당)
(2001년 5월6일 16:00)
명동성당은 평소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았기에 실제가 어떤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주변의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신앙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분위기로 되어 있었다.
그 중에 예수님의 가시면류관과 3개의 큰못이 10번의 설교만큼이나 나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주님의 고난과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해준다. 내부에는 기둥이 너무 많고 커서 앞 제단이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일단 최대한 잘 보이는데 까지 접근을 해봤다. 큰 건물을 조적식으로 지으려고 하니 자연 기둥이 많아지게 된 것 같은 데 평소 내가 생각했던 성당보다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역시 입구에는 성수가 있었고 명동성당 미사 역시 엄숙했지만 사람은 많지만 좁은 공간 탓일 것 같기도 하고 50분만에 미사를 마치는 상황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주보는 있지만 순서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미사 중에 성공회처럼 역시 예배인도자가 낭낭 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여자인 점이 크게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님 참회합니다."라고 "님"자를 붙이는 것, "성체를 모실 분 나오십시오" 할 때의 성체를 모신다는 표현이 영성체를 진짜 주님의 살과 피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나가서 나도 받아먹으려고 했으나 바로 앞에서 영성체를 받으므로 자세히 보기만 했는데 작은 떡에 포도주를 조금 찍는 것이 역시 성찬을 중요시한다는 느낌이다 . 헌금시간에는 예물을 들고 일어서서 앞에 나가 내는 모습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우리가 직접 제물을 들고 제단에 제물을 바쳤던 것 같은 느낌이 연상된다.
기도 시 "내탓이요 내탓이요" 하며 가슴을 치는 것에서 현실인식을 하는 성도가 가슴을 치며 슬퍼하는 것이 느껴지고 "평화를 빕니다" 하는 말을 몇 번 반복하는 것, 개역 성경을 사용하지 않고 현대어 성경을 사용 하는것이 좋아 보였고 말씀을 읽은 후엔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는 것이 좋게 느껴졌다. 성가대는 단의 좌측에 있고 설교 단은 우측에 있었다. 설교에는 약 10-15분 정도하고 농담도 하는 것이 분위기를 좋게 하기는 하지만 역시 말씀은 복음적이지 못 한 것 같다. 촛불을 켰으나 향은 피우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의자 앞엔 무릎 끓는 발판은 없었다. 성가대는 제단 우편에 위치하며 어린이들이 자주 등장했다.
미사는 왠지 성채를 받고는 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걸 보면 내용을 의식해서 인지는 모르나 확실히 천주교에서는 성채 받아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주변에 서점과 카톨릭 물품을 파는 코너가 있어 성도들도 쉽게 필요한 종교용품을 구입할 수 있어 좋을 것 같고 주변이 종교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좋아서 서점을 둘러보고 나도 "알기 쉬운 미사 해설"이란 책을 한 권 샀다.
루터교
(2001년5월20일 11:00)
과거에 나는 신앙서적을 읽다보면 나오는 "루터교"라는 용어가 개신교를 지칭하는 말 일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개신교중 한 종파로 루터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신기한 마음으로 후암동의 루터교회를 찾았다.
루터 교회의 예배는 총 1시간 30분간 예배를 드렸는데 처음 본당을 들어섰는데 자욱한 향내음과 촛불이 인상적이었고 루터교회의 본산 일 듯 한 교회의 11시 예배에 성도가 몇 사람 없다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앉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향내음은 나는데 향은 보이지 않는다. 단에는 촛불과 헌금함, 펼친 성경책, 성찬 떡과 포도주가 흰천에 덮여있고 단 우측에 성가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좌편에는 천주교의 수도복처럼 생긴 수도복을 입고 3명이 나와 앉아있다. 단 앞에 흰 꽃을 양옆으로 많이 헌화되어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이 전체적으로 장례장 같은 분위기가 나는 듯 했다. 성경은 개역 성경을 사용했다. 헌금 봉투는 편하게 사용하도록 의자에 자그마한 봉투함을 붙여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배를 드리면서 두리번거렸는데 루터교도 성도들이 상당히 고령화된 듯 하다. 설교말씀은 일반 개신교처럼 상당히 길게 한다. 앞쪽에는 태극기를 세워뒀고 한복 입은 사람이 많이 눈의 띄었다. 처음 예배시작 할 때는 인도자가 주문 외우듯이 외우더니 그 후로는 일반 사회 보듯이 순서를 진행한다. 예배 순서에는 구약 봉독과, 사도서간 봉독 그리고 복음서 봉독이 들어 있었는데 복음서를 봉독하기 바로 직전 성가대에서는 "주께 영광 돌리세" 라고 노래부르고 봉독 후엔 "이것은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라고 한다. 한가지 또 특이한 점은 성가대 찬양시 개신교에선 일반적으로 설교좌석에 그대로 설교자는 서있는데 루터교회에서는 찬양하는 동안 설교석에 있지 않고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루터교의 성찬식때는 성찬을 시작하기 전에 목사님이 성찬 떡과 포도주를 들고 성호를 그었다. 그 후 성도들은 앞으로 나가서 무릎을 끓고 테이블에서 떡과 포도주를 받는데 떡은 카톨릭의 영성체와 동일했다. 퇴장 찬송시 에는 예배인도자 셋이 단을 향하여 보고 찬양을 했고 끝나고 퇴장 때에도 집례자 3명이 단에 목례를 하고 퇴장하는 모습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예배 종료 후 꼬마가 긴 막대기를 들고 나와 촛불을 소등했다.
구세군(서대문 영문)
(2001년 5월20일 14:00)
구세군은 용어나 명칭이 모두 생소했다. 얼핏 보기에는 개신교 같은데 집례시에도 제복을 입고 명칭도 모두 군사용어이다. 이번 주는 가정단 주로 지키기 때문인지 여자 분들이 사회와 설교 모든 순서를 진행한다.
복음적인 메시지나 예배 형태는 보통 우리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 과 별로 다를 것은 없었지만 용어가 많이 생소하다 즉, "집사"에 해당되는 용어가 "정령"이고 "목사"에 해당되는 용어가 "사관"이다. 구세군은 군악대 이미지가 있어서 인지 단의 좌편에 드럼등의 악기들이 많이 구비되어 있고 우편에 성가대석이 배치 되어 있었다.
우리 서울 장신 신학생들이 있는걸 알고 축도도 특별히 더 해주고 예배후에는 다과 가 있었는데 특별히 초대해주고 담임사과 부인되시는 사관께서 직접 우리를 맞이하고 구세군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준다. 구세군의 사관학교 즉, 신학교가 지금은 과천으로 이전했는데 신학생은 약 30명되고 이들은 모두가 전액 장학생이고 후에 유학가지 보내주기에 아무나 신학교에 받아 주지 않으며 일반적 교회에는 남자 목사와 여성도간의 잡음이 끊이질 않으므로 결혼한 부부의 경우는 신학교를 부부가 꼭 같이 입학하고 후에도 같이 사역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남녀 차별이 하나도 없다고 설명하신다.
성찬예배에 대해 질문하자 구세군은 1년에 4번 성찬식을 하는데 떡과 포도주를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세군의 3색기 앞에서 신앙을 다짐한다고 한다. 이는 구세군이 100년 전에 영국에서 시작됐는데 이때당시 전쟁 중으로 어수선하고 혼란한 시기라 떡과 포도주를 준비할 수 없어 떡과 포도주를 사용치 않으며, 빈민 선교를 하다보니 대부분의 빈민층이 술을 좋아하는데 포도주로 성찬식 하는 것은 빈민들에게 술의 합리성을 옹호해 금주를 시킬 수 없는 애매한 점이 있어서 깃발 앞에서 맹세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는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간다.
또 구세군은 교회 하나에 사회 사업 하나를 반드시 한다는 사회참여의 열정이 부러웠고 가난하고 소외된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들이 도전이 되었다. 연말 연시에 나오는 자선남비도 구세군의 리더 급 몇 명만이 하는게 아니라 전 성도가 휴가를 내서 자선 남비에 뛰어 든다고 하니 나는 자꾸만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탐방 순서
1. 한국 정교회
2001년3월25일 09:30
2. 대한 성공회
2001년5월6일 09:00
3. 로마 카톨릭
2001년5월6일 16:00
4. 한국 루터회
2001년5월20일 11:00
5. 구세군
2001년5월20일 14:00
6. 기타
출처 : 이슬람과 선교 그리고 아프리카 우간다
글쓴이 : 김 바나바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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