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잘 하는 '강도'들
"양들이 울고 있다"
2016.01.03 11:20:56
신성남 webmaster@newsm.com
▲ 신성남 집사 ⓒ <뉴스 M> |
대부분의 교인들처럼 필자의 주변에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목회자가 적지 않다. 그들 중엔 친구도 있고, 선후배도 있고, 또한 친인척도 있다. 물론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였다는 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라는 명칭을 들을 때마다 마음 속에서는 두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상충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전혀 목사답지 못한 일부 목회자들 때문이다.
율법을 오용한 종교지도자들
복음서를 읽으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탄식하신 구절이 나온다. 성전에서 장사하던 무리들을 내쫓으며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왜 굳이 '강도'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셨을까.
사실 성전의 상인들은 직접적으로 강도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제물을 서로 사고 팔았을 뿐이다. 또한 당시 제사장들도 백성들의 재산을 노상강도처럼 물리적으로 강탈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들은 안식일을 잘 지키고, 제사에 열심이었고, 그리고 금식기도 또한 잘 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분명히 단언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신도들의 돈이나 재산을 마치 강도처럼 흉기를 들고 협박하며 빼앗는 교회는 없다. 막가는 이단이나 사이비들조차 그런 무식하고 유치한 방법을 쓰지는 않는다. 그런 원색적 도적질은 사회의 실정법에도 위반이 될 뿐만이 아니라, 결코 교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보다 교묘한 수법을 사용했다. 명분은 언제나 좋았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내세웠다. 그리하여 거룩한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구약의 율법을 이용하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분량을 넘어 추가로 욕심을 채울 수 있는 편법을 가미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전 마당에서 장사를 허용한 것이다. 그 결과 막대한 부수입을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기타 잡다한 수법을 동원하여 결국 그들은 '과부의 가산'까지도 삼켰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항상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것(눅20:47)'을 결코 빠트리지 않았다.
해 아래 새 것은 없고 역사는 반복한다고 했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렘7:11)"고 준엄한 경고를 하셨건만, 죄인들이 쓰는 교회사는 구약 시대나, 예수님 당시나, 중세 시대나, 그리고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성직으로 위장한 강도질
오늘날도 교회 내의 '진정한 강도'는 기도 잘 하는 목사들 중에 있다. 누가 보아도 생도적이 분명한 일부 대형 교회의 유명 목사들 중에 기도 못 하는 작자를 보았는가. 모두 다 청산유수로 기도엔 도사들이다.
마찬가지로 설교 잘 하는 목사들 중에 강도가 있고, 병을 잘 고치는 목사들 중에 강도가 있고, 선교에 열심인 목사들 중에 강도가 있고, 구제를 잘하는 목사들 중에 강도가 있고, 그리고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목사들 중에도 완전 날강도가 있다. "대형 교회 목사들 재벌 회장과 다를 바 없다!"며 그들의 사치한 생활을 폭로한 MBC <뉴스후>의 보도가 결코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것도 부족해서 교인들의 소중한 헌금을 수십 억, 또는 수백 억씩 횡령하는 자들이 강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큰 교회에서만 횡령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건 아니다. 일일이 언론에 보도가 다 안 되서 그렇지 실상은 중소형 교회들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노골적인 공금 횡령만이 강도짓은 아니다. 이들보다 더욱 사특한 자들은 성직과 합법을 가장한 제도의 틀 속에서 노련하게 교회 돈을 삼키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상식 이상으로 터무니 없는 연봉을 받아가고, 교회 장부 분산처리하여 교인들의 눈을 속이며 목회활동비나 기타 지원비가 연봉보다 더 많게 하고, 수시로 거룩한 성회를 빙자하여 고액 강사 사례비 흥청망청 나누어 먹고, 교육이나 복지나 선교 등 그럴듯한 명분으로 다양한 재단을 설립하여 교회 돈을 퍼부은 후 나중에 목사 가족들의 족벌 사업체로 사유화하고, 그리고 평생 철밥통 목회도 부족해서 철없는 애송이 아들 목사에게 교회를 세습하는 자들은 분명히 강도보다 더 사악한 자들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 늘 하나님 말씀을 들먹이나, 그 속은 회칠한 무덤이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를 삼키는 자들이다. 중학생도 알만한 명백한 상식을 거짓 신학으로 가리려는 파렴치한 자들이다.
교회 돈으로 주일 점심 한끼에 무려 25만 원을 쓰면서 "교인들은 교회 재정 장부를 볼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목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부패한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늘 '사랑과 관용'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결단코 '공의와 책임'을 실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도들보다 더 간교한 자들은 강도질을 방관하거나 방조하는 자들이다. 특히 소위 정통이라는 교단들 속에 이런 위인들이 아주 많다. 여러 교단의 총회나 노회나 연회에 가보라. 이런 '정치 목사'들이 아주 떼로 몰려 다닌다. 상습적인 성추행 목사를 감싸고 도는 어떤 노회가 그 좋은 예이다. 그들은 돈만 쥐어 주면 아무 때나 표를 몰아 준다. 그러니 이건 교회가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다.
가장 쉬운 신앙 생활
사실 어떤 목사가 강도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법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강도'와 '돈'은 애초부터 태생적으로 끊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목회자가 모두 거지 나사로처럼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목사로서 교인들의 평균보다 더 잘 먹고 잘살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거의 틀림없이 현대판 '성전의 강도'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어느 성도는 "'영혼 구원'을 강조하는 교파와 교회일수록 더 세속적이다!"고 말한다. 영혼 구원을 강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런 고상한 사역을 빙자하여 신도들에게 고도의 영적 사기를 치고 있으니 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변질된 교회일수록 교인수가 돈이고, 십일조가 십자가를 대신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성도에게 부가 큰 축복"이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을 크게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 중에 제대로 된 목사는 단 한 사람도 본 기억이 없다. 도리어 교회 공금 떼먹는 인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그런 기복 설교를 남발하던 자들이다.
만일 그들의 논리가 정말 옳다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모두 복이 없어 가난하게 사셨고 고난의 삶을 사신 것이란 말인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가난한 이들과 물질을 나누는 성도는 결단코 부자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찌 보면 주일날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 잘 하고, 하루 종일 봉사 잘 하는 것은 가장 쉬운 신앙 생활이다. 그것은 마치 안락한 온실 속에서 화초를 가꾸는 일과 같다. 헌데 많은 목회자들은 그런 교회당 중심의 종교사업적 열심에 자기 인생의 명운을 걸고 있다. 그 덕분에 필자도 한때는 그런 사역에 제법 뛰어난 선수였다.
그러나 정작 더욱 어려운 신앙 생활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과 내 것을 함께 나누며 소외된 이들을 돕는 일이다. 아울러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계명에 합당한 참된 기도이다. 즉 성도에게는 일상의 삶이 예배이고, 일상의 삶이 기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성직의 탈을 쓴 이리들에게 찢기고 있는 양들의 울음 소리를 들어야 한다. "왜 이 땅에 정의는 없고, 정치만 있나. 왜 이 땅에 교회는 적고, 교회당만 많나. 그리고 어찌하여 이 땅에 목자는 드물고, 목사만 득실거리나!"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눅19:46)"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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