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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출산 앞두고 분만 방법이 고민인 분들께

김노섭-열린문 2012. 5. 6. 15:28

[취재파일] 출산 앞두고 분만 방법이 고민인 분들께

SBS|최고운 기자|입력2012.05.06 11:42|수정2012.05.06 13:54

 

우리나라 여성의 출산율, 즉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는 지난 2010년 기준으로 1.23명을 기록했습니다. 4.53명이었던 1970년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출산 사회죠. 한 사회가 인구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구 대체율은 2.1명인데 그것조차도 안 되니 곳곳에서 걱정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여성들에게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며 몰아세울 수는 없습니다. 생리학적 구조 상 여성이 아이를 출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에 떠안게 되는 고민과 짐을 이 사회가 얼마나 함께 나눠질 준비가 돼 있는지가 맞물려 있는 문제니까요. 그런 면에서 활발해진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육아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한다, 아이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등의 말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아이를 적게 낳다보니 임신했을 때부터 엄마들은 바쁩니다. 뱃속에 아기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만 듣게 하고 싶은 마음이야 예나 지금이나 같겠지만, 이런 게 좋다 저런 게 좋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디까지 따라야하는지 참 고민입니다. 아이를 출산하는 방식, 즉 분만방법도 그런 고민 대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왕절개를 할까, 아니면 자연분만을 할까 이 둘 중에 하나만 고르는 거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겠죠. 하지만 자연분만 중에서도 수중 분만을 할 것이냐 가정 분만을 할 것이냐 그네분만을 할 것이냐 무통분만을 할 것이냐 여러 가지 고민의 요소가 많습니다.

제가 이번에 취재를 하게 된 건 자연분만 방식 가운데 하나인 '르봐이예 분만'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산부인과 의사인 르봐이예 박사가 제안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인권 분만. 산모와 아기의 인권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기존 분만 방식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데요, 기존의 분만방식과 어떤 점이 다른 걸까요?

먼저, 산모의 입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병원에서 출산을 경험해 본 여성들 중에서는 출산 과정이 고통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는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명 '제모, 회음부 절개, 내진 3종 세트'라고도 하는데요, 생식기 주변의 털을 없애고 아기가 쉽게 나올 수 있도록 질 옆 부분을 절개하고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자궁 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일이 여성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창피하다는 겁니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고귀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죠.

아기 입장에서는 또 어떨까요? 어둡고 안락한 엄마 뱃속에서 지내다 밖으로 나와 눈도 제대로 뜨기 어려운데 환한 조명이 비춰댑니다. 엄마와 연결돼 있던 탯줄도 빠르게 싹둑, 낯선 사람이 엉덩이를 때리는가 하면 등을 박박 닦고 발목에 띠 두르고 발 도장까지. 낯선 환경도 적응이 안 돼 어리둥절한데 주변 사람들은 모든 행동을 딱딱 짜 놓은 듯, 능숙하고 빠르게 진행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권 분만 방법은 바로 이렇게 산모와 아기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환경들을 최대한 줄인다는 데 가장 큰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산모가 진통을 느껴서 병원으로 오면 가족이 함께 분만실에 들어갑니다. 분만실은 아기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 즉 어둡고 아늑했던 자궁 속처럼 만들기 위해 조명을 최대한 낮추고 산모가 평소 들었던 음악이나 잔잔한 음악을 틀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 때 아기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큰 소리를 내는 것은 금물. 의료진도 가족도 최대한 소곤소곤 조용히 이야기를 합니다. 진통을 무사히 견뎌 아기가 나오면 탯줄을 바로 자르지 않고 아기를 엄마 가슴에 올려놓습니다. 엄마 체온을 느끼게 해주고 엄마 심장소리를 듣게 해주는 거죠. 엉덩이를 때리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울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제가 옆에서 보니 처음 보는 세상에 나와 낯선 듯 울음을 터트렸던 아기가 엄마 가슴에 얼굴을 대자마자 바로 울음을 그쳤습니다. 엄마와 아기의 가슴을 맞대도록 안아주는 캥거루 요법이 효과가 좋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중요성이 몸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인권 분만의 특징은 또 있습니다. 스스로 울고, 엄마를 느끼고, 탯줄을 자르고 나서 분만대 옆에 준비된 욕조에 아기를 넣는 건데요, 아기를 물 속에 넣으면 양수로 가득한 엄마의 뱃속과 비슷해 안정이 될 뿐더러 갑자기 태어나면서 몸에 느껴지는 중력을 완화시켜주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욕조에서 조금 놀다보면 아기는 자연스럽게 눈을 뜹니다. 그럼 다시 엄마 가슴에 올려서 바로 엄마 젖을 빨도록 해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도록 돕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엄마 젖을 먹는 모습을 보며 생명의 신비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질문이 생깁니다. 인권 분만만 좋고, 기존의 분만 방식은 나쁘냐 하는 거죠. 정답은 '절대 그렇지 않다'입니다. 산부인과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인권 분만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산모들도 많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산인 경우, 고위험 임신에 속하는 전치태반, 쌍둥이 분만 등이 해당되는데요, 대학병원은 이런 산모들이 60%를 차지할 정도여서 현실적으로 인권 분만이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즉, 인권 분만은 산모도 아기도 모두 건강할 때 취할 수 있는 분만 방법 가운데 하나인 거지 절대적으로 좋은 분만법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불가피하게 수술 등의 방법으로 출산을 했다고 해도 아기를 엄마 가슴에 올려주거나 바로 모유 수유를 하게 하는 등 엄마와 아기가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해요.

그럼 분만 방법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정답은 너무 모범생 같은 이야기지만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습기도 하고 언론인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2000년 초반 우리나라에는 수중분만 붐이 불었습니다. 수중분만이라는 것 자체가 신기한 상황에서 TV에 마구 나오니 각 산부인과에는 수중분만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수중분만 안 하면 환자 다 뺏긴다'며 산부인과 의사들이 푸념을 할 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지금도 그런가요? 요즘에는 오히려 병원에 안 가고 집에서 낳는 자연주의 출산이 인터넷이나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자연주의 출산도 산모와 아기가 위험한 상황이 됐을 때 대처하기 어려운 단점이 분명히 있는데도 말이죠. 결국, 분만 방법도 시대에 따라 유행할 뿐, 어떤 시기에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분만 방법이 꼭 진리는 아닌 셈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분만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되, '어떤 분만 방법으로 꼭 해 달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어떤 분만 방법이 좋겠는지 의료진과의 상의를 거쳐 결정해야 합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산부인과에서 보낸 의사도 얼마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 출산이니까요. 꼼꼼히 알아보고 충분히 상의함으로써 소중한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한 출산 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이 다음에 어떤 방법으로 출산을 해야 하는지 벌써부터 고민이네요.)

최고운 기자gowoon@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