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호 김회권 시론]
한국교회 안팎의 엄중한 현실
▲ 마르틴 루터 |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기독교한국루터회를 필두로 대다수 한국 개신교단들과 여러 단체들이 다양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전시용 연례행사의 일환이거나 16세기 종교개혁의 전체상을 파악하려는 연구 노력이라기보다는 개신교의 몇 가지 교리를 되뇌고 오래 전에 사라진 로마가톨릭교회의 여러 가지 모순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 주력하는 듯하다. 이런 회고적이거나 연례행사용 기념사업들은 정작 한국교회 자체의 개혁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거나 한국교회 안에 누적된 적폐(積弊)들을 정직하게 대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이 즈음 한국교회 안팎의 상황은, 확실히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역사에 대한 복고주의적 기억 재생이나 개신교 분리독립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몇 가지 교리를 재확증하는 수준으로 기리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엄중하다. 한국교회는 정치-경제권력의 총체적 부패와 타락을 방조하거나 그 배후에 있는 주류 지배 체제를 종교적으로 재가하는 고무도장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기총과 여러 주류 교단들은 대체로 체제순응적, 분단체제 고착적이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체제 옹호적인 입장을 피력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가로막는 수구세력의 대표자로 행세해왔다. 한국교회 강단은 권력층과 지배엘리트 연합세력의 죄를 무섭게 추궁하고 탄핵할 예언자적 기백을 상실한 채 사회 전체의 붕괴조짐을 미리 감지하고 경보음을 울리는 영적 지도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대언하고 성문과 광장에서 공평과 정의의 담론을 설파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하는 전도 사역에 오랫동안 불순종한 일과 관련이 깊다. 하늘로부터 오는 예언자적 묵시(비전)가 없는 경우 지배층부터 보통 사람들까지 다 방자하게 행하고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 요구를 묵살하기 마련이다.
현재 청와대와 여당을 정조준한 하나님 심판의 손이 언젠가는 교회와 영적 지도자들을 겨냥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를 향한 무섭고 충격적인 하나님의 정화적 심판이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초래한 한국의 누적된 타락과 공평과 정의 붕괴를 일소하기 위해 백만촛불 민심의 아우성을 들어쓰실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향해 영적 각성과 정화를 위한 회초리를 드신다고 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맘몬숭배가 극에 달한 제도권 기독교는 이제 한국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역기능할 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교회의 7가지 적폐
한국교회 안팎의 깨어있는 관측자들은 한국교회의 많은 적폐 중 대략 일곱 가지 정도를 지적한다. 한국교회의 무정부 상황적 교파분열(장로교단만 70여 개), 주류 교단들의 성장 하락세와 사회적 신인도 추락, 그리스도인들의 윤리도덕적 타락과 부패, 세상을 하나님께로 이끌 영적 지도력 결여, 교회의 정치경제권력 시녀화, 목회자와 당회원들의 교회 사유화, 그리고 더 이상 성령의 중생사역과 영적 쇄신사역이 일어나지 않는 원인이 되는 하나님의 임재 철수다. 이 마지막 현상은 앞의 여섯 가지 현상들의 원인이면서 결과다. 에스겔 8~11장은 우상숭배의 소굴로 전락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단계적으로 떠나는 야웨의 영광(쉐키나)의 동선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예루살렘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타락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성전을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의 오래된 불순종과 불충성이 하나님을 교회에서 떠나도록 압박하는 수준에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에는 이제 성령의 역사로 인한 중생과 새 신자의 입교, 그리고 교인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정결케 하시는 성령의 성화 역사가 점차 희소해져가고 있다. 어린 사무엘이 야웨의 법궤 앞에서 불침번을 서면서 예언자로 부화하던 시기에 야웨의 말씀과 이상이 희귀했듯이, 지금 한국교회에도 하나님 말씀을 진정성 있게 청취하여 세상에 기탄없이 대언하는 예언자적 중보와 소통 사역이 사라져가고 있다. 교회와 교인을 넘어 한국인들의 양심 가장 깊은 곳을 진동시키는 하나님의 대언자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한국교회 중심교단들이 마치 자신들이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은 개혁교회의 후예라고 자임할 수 있는지 자체가 의문스럽다. 지금 한국교회는 16세기 개혁교회를 거의 하나도 닮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도적 정통교회의 네 가지 표지 어느 하나도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사도들의 신앙전통을 계승하며 십자가의 도(道)로 세상을 이기는 사도적 정통성, 한 분 하나님·그리스도·성령으로 결속되어 누리는 단일성, 말씀과 치리와 권징으로 자기를 개혁하고 고결한 삶과 인격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드는 거룩성, 종과 자유자, 이방인과 유대인 등 온갖 차별을 초월해 모여드는 국제적 친교공동체의 토대인 인적 구성의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자신이 바로 이런 주류 교단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그 교단 중 하나에 속한 목회자로서 행세하는 자다. 필자가 속한 주류 교단의 모든 한계와 연약한 점을 나눠지며 이런 뼈아픈 자성(自省)을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국교회를 단순간에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전망과 통찰이 없다. 이런 좌절을 의식하면서 루터를 종교개혁자로 등장시킨 사태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그의 종교개혁 횃불의 발화점을 추적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한국교회가 이를 의미있게 기리려면 종교개혁의 근본동인이었던 이신칭의 구원과 그 열매인 디아코니아 신학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개혁 이전의 루터 : ‘그리스도인’의 탄생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룬 성취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탄생하는 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준 점이다. 루터를 일생동안 로마가톨릭에 맞서게 하고 그의 양심을 한없이 담대하게 만들어준 것은 ‘하나님의 의(義)’의 복음이었다. 그것은 로마서 1:16~17과 3:24~26에 기록되어 있다. 이 두 본문이 루터가 주창한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와 솔라 피데(sola fide) 복음 즉 이신칭의 복음의 핵심구절이다. 루터가 바울의 이신칭의 복음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가 걸어온 황량한 영적 여정을 생각하면 그가 왜 종교개혁자로 추앙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로마가톨릭교회에 맞싸운 투사였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로 추앙받는 것이 아니라 중세교회 천 년 동안 은폐되었던 하나님의 복음을 재발견했기에 종교개혁자로 각인되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의 쉴로스교회(Schlosskirche) 문에 95개 조항의 쟁점들을 붙였던 10월 31일이 해마다 종교개혁절로 지켜지지만, 그의 종교개혁은 그 한 날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후대 역사가들이 강력한 세계사적 순간이라고 명명한 루터의 95개 조항 벽보 게시는 로마교황청에 대한 직접적 개혁 요구가 아니라 당대에 중요했던 일련의 신앙 쟁점들에 대해 학문적인 토론을 해 보자는 초청장 게시였다.
루터로 하여금 95개 조항을 교회벽에 게시하도록 격동한 것은 순회 하급 성직자들(friars)이 주도하던 면죄부 판매행위였다. 루터는 면죄부가 이미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소환되기 전에 연옥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죄에 대한 징벌을 경감시켜 줄 수 있는지 없는지부터 토론하자고 동료들을 초청한 것이다. 그런데 결국 면죄부 판매행위에 대한 루터의 항의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중추신경계를 건드렸고 루터 자신을 교황청의 대적자로 등장시켰다. 루터는 어떻게 이렇게 대담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교황보다는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더욱 더 사실적으로 느끼고 의식했기 때문에 그토록 용감해질 수 있었다. 그는 로마가톨릭교회가 구축해놓은 보편적 객관세계의 틀을 뛰쳐나가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가 되었다.
1483년에 태어난 마틴 루터가 자신의 신앙문제로 고뇌를 거듭하던 16세기 초반은 중세적 고딕 신앙의 불안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중세적 고딕 신앙의 불안이란, 하나님과의 신비주의적 접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인을 쳐주신 구원확신을 갈망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어루만지심을 맛보지 못해 생긴 불안을 말한다. 죄책감과 죄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가는데도 용서의 확신이 사라질 때 오는 불안이 바로 고딕적 불안이었다. 이런 불안은 미사와 성인숭배 등에 대한 광적 몰입을 촉발했다.
예를 들면 1년에 64명의 신부가 비텐베르크에서 두 시간 반 걸리는 미사를 8,881번이나 드렸다. 쾰른에서는 심지어 11개 대학교와 22개의 수도원, 19개의 교구교회, 100여개의 예배당에서 매일 1천 번의 미사가 열렸다. 특히 죽은 자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미사가 가장 많았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구원의 터치를 목말라 하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려고 많은 수도원들이 성업을 이루었다. 이런 영적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 시대의 아들 루터의 양심에도 이 고딕적 불안은 쉴새없이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나는 은혜로운 하나님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최후 심판 때 하나님의 기꺼운 영접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들 앞에 선 루터에게 일곱 가지 성사는 도무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심지어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사실상 죄사함의 복음을 매개해주는 고해성사와 성만찬마저도 쓸데없었다. 하나님과의 직접적 만남을 갈구하던 중세신비주의, 일상생활에서 마귀가 마음대로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고 가위누를 수 있다고 믿었던 마귀활성론적 신앙, 종교교권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까지 살릴 수 있다고 믿는 무시무시한 돈 중심의 구원론 등이 착종(錯綜)된 시대에 태어난 루터는 그 시대의 아들답게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청년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동력, 복음의 재발견
이런 고딕적 불안에 시달리던 루터는 스물두 살 무렵에 쉬토테른하임이라는 곳에서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장면을 보고 동정녀 마리아의 어머니이자 광부들의 수호성인으로 존숭되던 성 안나를 부르며, “성 안나여 저를 살려주시면 제가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서원하고 말았다. 1505년에 스물두 살 청년 루터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하나님께 용납될 만한 자가 되어 구원을 향유하고 싶었던 루터는 수도사가 되어서도 구원을 확신하지 못했다. 에르푸르트 수도원 수도사 시절에 루터는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저녁 8시에 잠들면서 분투를 거듭했지만 그의 영혼은 끊임없이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독일어로 ‘안페히퉁’(Anfechtung)이라고 불리는 도덕적 양심가책증이 그를 포박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고해성사를 하는데 비해, 루터는 매일 한 번씩 고해성사를 했다. 루터의 고해성사를 받았던 존 스타우피츠 수도원장은 루터로 하여금 더 이상 중세적 고딕 불안에 빠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라고 권했다. 결국 30세를 전후한 루터의 내면은 중세적 고딕의 불안과 자기가 가졌던 독특한 종교적 감수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대표하는 의(義), 즉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불쾌감과 심지어 무관심을 몸서리치게 느꼈다.
무엇보다 루터가 ‘하나님의 의’를 인간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시편 31:1의 라틴어 성경 번역인 “당신의 심판에 나를 넘기소서” 때문이었다. 지금 성경에는 영어성경이나 한글성경 모두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쁘치드코터카 팔러테니)라고 되어 있는 이 구절이 당시 루터가 읽은 라틴어 역본에는 “당신의 심판에 나를 넘기소서”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당신의 의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당신의 의로 심판하는 하나님’으로 오해한 루터의 영혼은 평화를 잃고 동요했다. 미사나 고해성사는 물론이요 로마 순례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1510~1511년의 여덟 달 동안 로마에 체류하면서 죄용서 효능을 일으킨다는 로마의 빌라도 계단을 무릎 꿇고 올라갔지만 그의 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루터는 사흘에 한 번씩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했다. 20대에 갔던 수도원에서 여성을 보고도 한 번도 음욕을 느끼지 못했고, 사제가 되어서도 여신도의 고해성사는 딱 세 번만 받았다. 심지어 여신도의 고해성사를 받을 때 목소리를 기억하려 하지 않았고 주발 너머의 얼굴 윤곽도 보지 않았다. ‘수도원 규칙준수로 말하면 천국의 가장 꼭대기에 가야 할 내 영혼이 왜 이렇게 황량하고 쓸쓸하며 하나님은 내 인생을 향해서 진노를 드러내고 있는가?’라고 그는 늘 생각했다.
이런 루터의 고뇌가 7년간(1505년 수도원 입회부터 1512년 시편에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기까지) 계속되자 하나님께서 루터에게 시편 71편, 31편, 로마서 1:16 등을 통하여 은혜를 주셨다. 그는 먼저 시편에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한 후에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강해(1512~1520년까지 종교개혁의 영적 동력 축적기에 깊이 연구한 책들)로 나아간다. 시편은 도덕적 건조증과 죄책감에 휘둘리며 하나님 앞에서 진창과 수렁에 빠졌다고 느끼던 루터에게 영적 소생력을 제공했다. 시편에서 복음의 시적 표현을 발견한 루터는 로마서 1:16~17에서 복음의 명료한 진술을 보았다. 16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곧 ‘하나님의 신실성’임을 깨달은 루터는 이 하나님의 의가 죄인을 지옥으로 던지는 심판의 정의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구원의 의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루터가 발견한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원리다.
루터는 여기서 말한 ‘신’(信)은 신자의 믿음을 가리키기 이전에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신실성을 가리킨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요구를 100%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의롭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례전(영성체)을 통해 그리스도의 의가 유입된다고 가르친 반면, 루터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하나님의 의’ 성취를 믿으면 그때 하나님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시편, 히브리서, 로마서, 갈라디아서 이 네 책을 약 8년에 걸쳐 집중 연구하고 강의함으로써 루터는 나중에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가톨릭교회의 적폐해소 싸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내적 구원의 확신을 구비하기에 이르렀다. 이 네 책 연구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오해에서 이해로 가는 주석 과정이었다.
8년의 성경연구에서 터득한 진리
8년 여에 걸친 성경연구를 통해 루터가 깨달은 진리는 다음과 같다.
1. 죄인을 의롭다하심 곧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즉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우리는 죄에 대한 양심의 고통스런 자각을 가지고 어떤 선행으로도 우리가 의롭다 함을 덧입는데 이바지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오로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의뢰하고 의존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홀로 우리 믿음의 최고 기준이 되는 성경이 하나님의 약속의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는 바다. 이 단순한 깨달음이 후에 종교개혁의 배타적인 슬로건으로 정착된, “오직 은혜만으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만을 통하여(solo Christo),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로 결실된다.
2. 이 신조들은 오로지 성경이 최고 권위를 가지고(sola scriptura) 증거한 증언에 근거하고 있다. 이 신조들은 어떤 세상적 혹은 종교적 권위보다 더 높으며 황제나 교황의 권위보다 더 높다. 그래서 그것은 믿음의 확실성 안에서 한 개인으로 하여금 교권이나 황제에 대항할 능력과 용기를 고취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절대주권적 자유 가운데 은혜를 나눠주신다면, 스스로 은혜를 나눠줄 수 있다고 말하는 교황청 교회의 주장은 분쇄된다. 만일 모든 인간이 그들의 종교적 선행이나 그들에게 부여된 영적 위엄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는 똑같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특권을 가졌다는 교황청의 모든 주장들은 공허한 주장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종교적 위계질서의 종말, 즉 사제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
3. 하나님의 구원은 후기 스콜라신학의 매개 신학(사제들에 의한 일곱 성사 매개를 통한 구원의 유입)을 통해 경험되지 않고, 개인의 양심에 성령의 권능으로 동력화된 하나님의 복음이 직접 속죄의 확신과 죄사함의 효능을 방출함으로써 일어난다. 동물희생의 피제사가 이스라엘을 1년간 의롭게 해주었다면 하나님의 독생자가 흘린 피는 세계만민을 의롭게 할 수 있는 영단번에 드려진 제물의 피였다. 예수의 피는 하나님 자신이 계약관계를 유지하려는 결심을 천명한 사건이기도 할 뿐 아니라 죄인의 양심을 회복시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믿음으로 응답하도록 언약적 결속을 창조한다. 예수의 피는 하나님의 의에 응답하는 의로운 삶을 창조하도록 부단히 격려하는 사랑의 샘이 된다. 이신칭의 복음은 사랑의 샘에서 흘러나온 이웃 사랑 실천의 윤리로 바뀐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의 피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려고’ 당신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신칭의의 복음은 의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행동화될 복음인 것이다.
한국교회가 계승해야 할 유산 1 : 루터의 회심 체험
이처럼 예수의 피가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 안에 있다고 고뇌하던 루터의 양심가책증을 치유했다. 자기 인생이 지극한 영적 건조증에 빠져 있으며 하나님의 분노와 불쾌의 대상이라고 고뇌하던 루터의 영혼에 예수의 피가 뿌려지자마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불안이 사라졌다. 그리고 뒤이어 지·정·의를 소생시키는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의 가슴 속 깊은 사랑이 루터의 영혼에 유입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첫 출발은 그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사로잡히는 경험이었다.
보름스 국회(1521)에 소환된 38세의 젊은 사제 루터는 자신의 가르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황제 카알 5세와 로마 교황의 대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내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붙들려 있습니다, 내 양심과 반하여 하는 말은 정당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약 100년 전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화형했던 바로 그곳에서 루터가 이렇게 용감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양심이 하나님의 복음에 붙들렸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에 의해 그 양심이 송두리째 포획된 사람만이 무한히 대담하고 일관성 있게 종교개혁을 외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런 루터를 가졌는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계승하려면 루터의 양심을 강력하게 사로잡은 하나님 말씀에 결박당한 자가 나와야 한다.
아니 그보다 더 앞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영적 갈망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으려면 루터적 양심가책증을 먼저 앓아야 한다. 루터는 너무나 사소한 죄를 가지고 지옥에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는 데 비해 오늘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를 한 번도 진정하게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의 불꽃 같은 거룩한 시선도 도무지 경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얼마나 엄숙하고 진지한지를 상상조차 못하기에 너무 쉽게 하나님을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 단정하며 구원을 쉽게 확신한다.
한국교회 교인들 대부분이 ‘확신하는 구원’이 과연 루터적 양심가책증을 통과한 후 맛보는 구원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따라서 루터를 이해하고 계승하려면 가장 원형적인 이신칭의 복음에 붙들리고 추동되는 그의 구원 경험을 에누리없이 추체험(追體驗)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순전히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구원이 임하고 하나님 복음의 뜨거운 생명력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 착수될 수 있는 신적 가능성이다. 하나님에 의해 전적으로 갱신되고 쇄신된 개인에게서 발화하는 것이 종교개혁적 불씨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예수님이 드린 속죄의 피의 효력을 루터처럼 깨닫고 임상 경험하는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 예수의 피복음과 그의 보혈로 구원받고 십자가의 권능으로 자신의 옛자아 해체를 경험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쉽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고, 온갖 불의한 쾌락과 불법 가득 찬 축재와 타락상을 뉘우치고 루터적 회심을 경험한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국교회 안에 종교개혁의 기초 동력도 축적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예수의 보혈로 자기쇄신을 맛보지 않고는 자기 밖의 사람들과 제도를 향해 개혁을 외칠 수가 없다.
한국교회가 계승해야 할 유산 2 : 디아코니아 신학의 토대가 된 이신칭의 신앙
한국교회가 계승해야 할 종교개혁의 또 하나의 유산은 이신칭의 구원이 이웃 사랑의 봉사 신학으로 객관화된다는 사실이다. 루터의 구원은 그의 내면과 양심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루터가 받은 구원은 결코 개인 구원이 아니었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하나님께 신실케 된 신자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신실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다고 확신했다. 루터는 로마서 8:1~4 강해에서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는 이신칭의 경험의 진수가 하나님의 율법 요구를 행할 능력을 갖게 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루터는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영적 분투가 필요 없는 몽환적 무릉도원으로 피신해가는 그런 의미의 구원을 말하지 않았다. 루터에게 하나님의 의로 의인이 됐다는 말은 언약적 요구를 그리스도인이 다 수행하고 성취했다는 의무 성취 종결선언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의인이 됐다는 말은 언약적 결속감과 언약적 의무감을 회복하고 복원했다는 말이지 더 이상의 언약적 의무 수행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으뜸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죽기까지 성취함으로 율법의 요구를 100% 준행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계명을 일생 동안 준행하며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내포한다. 루터에게 칭의는, ‘당신은 이제 하나님과의 계약적 요구를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감화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샘솟는 사랑을 맛보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함으로써 당신이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십시오’라는 요구로 귀결된다. 그는 한때 야고보서를 아기 예수를 깜싸는 부드러운 강보(로마서, 갈라디아서)가 아니라 말구유의 가장 밑에 깔려 있는 지푸라기 정도라고 폄하했지만, 야고보서 1:25이 말하는 ‘자유케 하는 율법’의 의미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다.
그는 이신칭의를 덧입은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자라고 보았다. 루터가 한 말 중에 ‘크벨레 리베’(Quelle Liebe, Spring of Love)가 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복음에 의해 의인화된 죄인의 마음 속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충일한 사랑(롬 5:8~10)을 가리킨다. 이 ‘사랑의 샘’이라는 어구는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입된 하나님의 사랑 샘이 터져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율법의 요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샘솟는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루터는 전가된 하나님의 의가 반드시 삶을 통해 행동화하는 의가 된다고 보았다. 구원받은 신자가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사랑 샘에 추동되면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준행할 힘을 덧입게 됨으로써 전가된 의는 이웃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의로 치환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해주신 사랑의 샘에서 솟아나는 사랑으로 율법의 요구를 초월하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 디아코니아다. 디아코니아 신학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집사가 되어 봉사하는 것을 장려한다. 결국 루터의 이신칭의 신학의 열매가 디아코니아 신학으로 결실한 것이다. 디아코니아 신학의 테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에 돌입했는가? 답은 이웃 사랑에 투신한 사람만 하나님과 의롭게 된 자다”라는 것이다. 의롭게 됐다는 증거는 이웃과 화평한 상태에 들어가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투신된 삶이다. 루터는 하나님과 의롭게 됐다는 확신을 양심의 판단에만 맡기지 않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을 마련한 셈이다.
로마서 12:1~3과 13:8~10이 바로 이신칭의 신학이 디아코니아 신학으로 결실되는 원리를 설명한다. 로마서 12:1~3은 하나님의 큰 자비로 구원받고 의롭게 된 사람은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삶으로 자신의 의롭게 된 구원 경험을 입증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여기서 ‘영적 예배’의 헬라어는 ‘로기코스 라트레이’이다. ‘로기코스’는 ‘논리적인’(logical) 혹은 ‘합리적인’(reasonal)을 의미하며, ‘라트레이’라는 말은 ‘예배’ 혹은 ‘봉사’(service)를 의미한다. 의롭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예배드린 행위가 이웃을 섬기는 행위라는 것이다.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 몸 제물은 이웃에게 봉사하고 섬기는 행위로 나타난다. 즉 이웃의 필요에 던져진 내 몸은 하나님 제단에 드려진 산 제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루터가 말한 봉사 신학이며 그 봉사 신학의 뿌리는 이신칭의 신학이다. 이신칭의의 완전한 형태는 이웃 사랑을 위해서 제단에 바쳐진 몸 신학이다. 그래서 루터교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에서 국가복지제도가 빨리 정착되었다. 이웃에게 봉사하는 길만이 하나님께 의롭게 된 자임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모든 루터교 국가 시민들(특히 독일인)은 이웃을 위해 돈 내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그들은 높은 세율의 세금을 기꺼이 내기에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었다. 북구 복지선진국가들, 즉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등 전부 다 독일 루터파 교회의 영향력 아래 있는 나라들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소책자에서 이 봉사 신학의 역설을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에 의해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된 자는 이웃을 위해 종이 될 정도로 자유케 된 자다. 나는 하나님의 속량은혜로 만민에게 자유하지만 하나님의 속량은혜로 말미암아 만민의 종이 되었다.”
이신칭의를 누리고 성령충만을 받는 성도들은 종말론적 확신 속에서 돈을 숭배하고 형제자매들을 물신적 노예상태로 부려먹었던 모든 맘몬추구적 삶을 포기하고 돈을 가지고 형제를 살리고, 자기 힘을 가지고 하나님 백성들의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낭비를 일삼게 될 것이다. 이신칭의를 받고 로마서 8장처럼 성령의 충만함으로 율법의 의를 이루는 사람들은 동터오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확신 때문에 먼저 자신의 힘을 다하여 이웃 사랑에 힘쓴다. 루터나 본회퍼는 이렇게 급진적인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민간조직으로서의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전위라고 보았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은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공동체를 아주 순간적으로 간취(看取)한다. 예루살렘 원시교회 교인들은 하나님 예배를 이웃 사랑으로 표현함으로써 교회 안에는 아무도 핍절한 사람이 없도록 강력한 언약적 결속감으로 뭉쳐 있었다. 그들은 서로 돌보았을 뿐 아니라 모든 가난한 사람을 돌봄으로써 그들 가운데 아무도 가난한 사람이 없게 만들었다.
맺는 말
루터의 종교개혁이 결코 완벽한 종교개혁이 아니었으나 적어도 한국교회가 계승하고 터득해야 할 교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루터의 종교개혁은 한 개인의 양심이 하나님 말씀에 포획되어 촉발된 운동이었다. 루터가 청년기에 발견한 하나님 말씀은 로마가톨릭교회를 세차게 질책하고 그 죄상을 폭로하는 예언자적 말씀이며 고딕적 불안에 시달리던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이었다.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은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확신으로 승화된 신앙만이 부패한 제도권 종교권력 체제와 맞설 수 있게 만드는 영적 무용(武勇)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루터는 인간은 자기 마음을 정복한 확신들에 의해 창조되고 형성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경험했다. 마음 속에서 확신하게 된 진리만이 우리의 관계적인 존재를 변화시킨다. 인간은 믿는 동물이며, 인간의 삶은 그가 진리라고 믿는 것 속에서 그리하여 궁극적인 신뢰를 쏟아붓는 것 속에서 그의 존재를 끌어가는 방향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오직 말씀의 수레를 타고 오는 성령만이 거대한 구조악과 맞설 수 있는 개인의 확신을 창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루터는 인간의 확신은 조작될 수 없지만 사람들이 믿는 바 확신의 내용은 공적인 논쟁과 공적인 토론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확신 주관주의로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루터는 진실로 복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거로 창조된 확신은 복음 선포라는 외적인 형식을 통해 선포되고 공적인 광장에서 토론되고 검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교회와 세계를 다스리신다는 확신은 기독교회의 선포와 삶, 그리고 공적 토론을 통해 객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은 인류에게 행하는 봉사와 섬김이 바로 하나님께 몸을 제물로 드리는 예배임을 강조했다. 루터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말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삶을 하나님 눈 앞에서 공로를 세워야 할 벌판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해방되었다는 점에서 만유 위에 있는 자유케 된 주(主)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은 세상을 섬기는 활동을 통해 세상 안에서 실습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실천하는 사명은 모든 직업과 모든 활동을 통해 실습되고 실천될 수 있다고 믿은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은 각각의 직업영역에서 만인제사장적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의 유산 중 이신칭의와 디아코니아 신학은 현대 독일의 국가적 재활복구 과정을 설명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몰트만의 자서전 앞부분을 보면 루터가 독일신학과 독일정신을 창조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영감의 원천인지를 알 수 있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과 이신칭의 신학은 단지 인간구원의 신학 테제 이상이었으며 두 차례 전범국가로 낙인찍혔던 독일을 재활복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루터의 이신칭의 신학이 없었다면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무후무한 전쟁을 30년 안에 두 번이나 겪은 독일이 오늘날처럼 재건될 수 없었을 것이다(《몰트만 자서전》, 66쪽). 독일이 1,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존심을 회복하고, 언약재갱신과 재활복구를 경험한 것은 바로 만신창이가 된 죄인이 하나님의 압도적인 의로 의롭게 되는 루터적 경험의 공동체적 적용 사례다.
▲ ⓒ복음과상황 |
루터가 쓴 마지막 성경주석인 창세기 주석(1546)은, 이신칭의란 인간의 허무한 쓰레기 경험(죄)과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악행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눈부신 의와 은혜를 창조하시는 새 피조물 창조 사건이라고 말한다. 루터의 창세기 주석은 시궁창 아래 굴러떨어진 인간의 존엄 상실 경험들을 활용해서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견인적 은혜를 철저하게 부각시킨다. 루터가 보기에는 참혹한 죄악과 그것을 역전시키는 의인화(義認化) 복음의 역설의 병치가 창세기를 관통한다. 루터의 모든 저작들은 야만적인 문명 안에서 우주의 먼지처럼 작아지는 인간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만지게 한다. 이 뜨거운 구원 경험이 루터의 이신칭의 신학의 열매인 디아코니아 신학을 배태한다.
김회권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공부했으며, ESF(한국기독대학인회)에서 회심하고 신앙 훈련을 받은 뒤 11년간 ESF 간사로 섬겼다. 장신대 신대원을 나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모세오경 1, 2》 《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 1, 2, 3》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사도행전 1, 2》 등 다수가 있다.
김회권 haekwon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