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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0년 만의 빅뉴스’ 중력파 최초 탐지, 그 이면엔 IT가 있다?!

김노섭-열린문 2016. 3. 3. 16:04

‘100년 만의 빅뉴스’ 중력파 최초 탐지, 그 이면엔 IT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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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100년만의빅뉴스_도비라

A: 뭘 그리고 있어?

B: ‘평행우주로 가는 관문’ 웜홀(wormhole)을 만들어줄 가상 봉쇄장(containment field)이야.


위 대화의 출처가 어딜까? 정답이 금세 떠올랐다면 당신은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Big Bang Theory)'의 열혈 시청자일 가능성이 높다. 젊은 우주물리학자와 우주과학기술자 4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시트콤 대사의 상당수는 실제 학계에서 사용되는 첨단 우주물리학 용어로 구성된다.

언뜻 몇 분만 보고 있어도 골치가 아플 것 같은 이 작품은 지금껏 총 9개 시즌이 방영됐다. 에피소드 수로만 따지면 180편을 훌쩍 넘긴다. 미국 내 인기도 상당하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18세부터 49세까지) 시청자가 꼽은 '베스트 시트콤 3'에 들었을 정도다.

 

美 시트콤 '빅뱅이론'의 인기, IT 산업 덕분?

‘빅뱅이론’의 성공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차별화되는 건 20세기 후반부터 급격히 발달한 우주물리학을 대중문화 장르 속으로 영민하게 들여와 주요 소재로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스페셜리포트100년만의빅뉴스1

실제로 오늘날 우주의 출발점이 된 빅뱅은 물론, 평행우주나 웜홀 같은 개념도 상당히 대중화됐다. 트렌드에 밝은 사람이라면 대중문화를 접하며 이런 용어를 수 차례 접해왔을 것이다. 올 초 재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인터스텔라(2014)'의 주인공은 태양계 내 웜홀을 통해 아주 먼 우주로 떠난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국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SBS, 이하 '별그대')의 결말 부분에서도 외계인인 주인공은 웜홀을 이용해 수천만 광년 떨어진 지구로 올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삼성전자 뉴스룸이 연재했던 6부작 기획 'IT로 문화 읽기'에선 IT의 발달이 바꾸고 있는 문화지도의 현주소를 짚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비단 문화계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IT'로 통칭되는 컴퓨터와 인터넷은 정치·경제·사회 할 것 없이, 그리고 일상적 소통에서 학문적 탐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생활을 온통 바꿔놓았다.

우주물리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컴퓨터를 매개로 한 각종 연구와 데이터 저장·처리·공유 방식은 불과 한두 세대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빅뱅이론처럼 전문성이 강한 우주물리학 소재 시트콤이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건 이 같은 IT 산업 약진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세기 전 아인슈타인의 예언, 현실이 되다

지난달 11일(이하 현지 시각), 국제 물리학계에 큰 경사가 있었다. 미국∙한국∙독일∙영국 등 13개국 과학자 1000여 명이 참여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LIGO) 연구단’이 미국(워싱턴)∙영국(런던)∙이탈리아(피사) 등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중력파(重力波) 검출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

중력파란 별이 폭발하거나 블랙홀이 생성되는 등 우주에 초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 그 중력이 지닌 에너지가 마치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번에 탐지된 중력파는 지구에서 약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두 개의 거대한 블랙홀이 합쳐지며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크기변환_1▲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소재 ‘내셔널 프레스 클럽(National Press Club)’에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연구소(LIGO) 소속 과학자들이 중력파 검출 성공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사진 출처: 연합뉴스)

중력파의 최대 특징은 진행 과정에 있는 물질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퍼져나간다는 데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현재까지 정보 전달 매체에 주로 쓰이는) 전자기파(전자파)와 뚜렷이 구별된다. 같은 이유로 중력파는 아주 먼 옛날, 즉 초기 우주의 모습 등에 대한 정보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꼭 100년 전인 1916년, 독일 태생의 미국 이론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우주의 확산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중력파의 존재를 예언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중력파가 탐지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력파가 발견되며 그간 이론상으로만 밝혀졌던 블랙홀의 실재(實在) 사실이 분명해졌다. 초기 우주의 상태도 상당 부분 밝혀졌다.

 

'130년 만의 환골탈태' 전자파, 중력파도…?

이쯤 해서 궁금해지는 건 중력파 최초 발견 사실이 우리 일상에 끼치게 될 영향이다. 이번 발견에 기여한 과학자들은 이와 관련, 구체적 답변을 아끼고 있다. LIGO 프로젝트를 이끈 킵 손(Kip Thorne)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CalTech) 명예교수는 "중력파 관측 사실 자체가 우릴 당장 시간 여행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면서도 "그러길 바란다"며 여운을 남겼다.

학계나 업계의 관측에 따르면 이번 일은 향후 인간의 삶을 상당히 바꿔놓을 전망이다. 전자파가 처음 발견됐을 때의 경우를 떠올리면 특히 그렇다. '전기가 흐르는 곳에 에너지 파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인지된 건 1800년대 전반이었다. 실제로 기구를 사용, 이 파동을 확인한 건 1885년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였다. 당시 한 제자가 그에게 이 파동, 즉 전자파의 용도를 물었다. 헤르츠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하지만 1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린 전자파를 이용한 기기 없인 단 하루도 살아가기 힘들다. 그 중심엔 (말할 것도 없이!) 휴대전화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중력파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에선 웜홀 시간 여행이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행성 간 순간 이동'도 더 이상 공상과학 얘기가 아니다. 별그대 속 남녀 주인공처럼 우주 공간을 초월한 사랑까지 기대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계와의 교류는 훨씬 더 현실에 가까워지게 되지 않을까? 일단 그에 앞서 중력파에 담긴 정보를 읽어내려는 시도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를 둘러싼 우주 환경에 대한 이해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전 세계 과학계가 이번 성과에 대해 "우주 탄생과 진화 과정을 알려줄 금세기 최고의 발견"이라며 환호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이번에 탐지된 중력파는 태양 질량 기준 각각 36배와 29배 규모인 블랙홀 두 개가 한데 합쳐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만약 지구 가까이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면 인간을 포함, 모든 지구 생명체는 사실상 전멸할 것이다. 지구의 시∙공간도 그 영향으로 심하게 왜곡될 수 있다. 우리가 이 뉴스를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모닝 커피 한 잔을 곁들여 편안한 환경에서 인터넷 웹 서핑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건 이 사건이 까마득하게 먼 시·공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크기변환_스페셜 1▲LIGO 리빙스턴 관측소, 리빙스턴 루이지애나주, 미국(사진 출처: 한국 중력파 연구 협력단)

보도에 따르면 LIGO 관측소에서 탐지된 중력파는 폭 4㎞의 레이저 빔에 10의 21제곱분의 1 정도 규모로 아주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며 0.25초 만에 지구를 통과했다. 중력파의 존재 사실이 확인됐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걸 정확하게 탐지해낸 방법도 신기할 따름이다. 인간의 통상적 감각에 기댄 인지 능력은 물론, 상상력으로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규모의 변화를 읽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의문을 풀려면 이번 발견의 구체적 면면을 차근차근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획기적 사건의 한복판엔 최첨단 IT 기술이 어엿한 '구원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발단은 미국서 독일로 날아든 이메일 한 통

지난해 11월 14일 11시 53분(현지 시각), 독일 하노버시 소재 '막스플랑크 연구소 중력물리학부' 소속 물리학자 마르고 드라고(Margo Drago)의 컴퓨터에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드라고가 본문 속 링크를 누르는 순간, LIGO에서 관측된 결과를 보여주는 화면이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화면 속 형상은 아주 미세하긴 해도 시끄러운 배경에서 갑자기 나타난 새의 지저귐 소리 같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크기변환_라이고 핸포드 관측소▲LIGO 핸포드 관측소, 핸포드 워싱턴주, 미국(사진 출처: 한국 중력파 연구 협력단

LIGO는 지난 2002년 중력파를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대규모 물리학 실험실 겸 관측소다. 미국 루이지애나주(州) 리빙스턴과 워싱턴주(州) 핸포드 등 두 곳에 거점을 마련한 LIGO의 인력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천문학적 관점에서 중력파를 연구하는 과학자만 전 세계에 1000명가량 분포하며, 이와 별도로 인터넷에선 중력파 프로젝트 웹사이트 이용자 4만4000명이 연구를 돕고 있다. 이들 ‘추가 투입’ 인력은 이메일을 통해 LIGO 측이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관측 결과를 받아보고 분석한 후 그 결과를 놓고 온라인 상에서 활발한 토론을 벌인다.

LIGO는 지난해 약 25억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레이저 탐지 장치도 개선됐지만 가장 큰 변화는 빅데이터(big data) 기술 발달에 따른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의 혁신이다. 엄청난 양의 관측 정보와 세계 각지 연구자들이 보내오는 분석 자료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그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갖춰진 것. 실제로 독일 물리학자 드라고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에서 보내온 관측 결과를 자신의 책상에 앉아 실시간으로 포착한 건 이 업그레이드 작업이 완료된 지 불과 한두 달 만의 일이었다.

“뭔가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확 왔습니다.” 연구소 동료와의 상의 끝에 '분명 평소와 다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드라고는 이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과학자 1000여 명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그들에게서 반응이 도착하기까진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LIGO 프로젝트를 처음 주도했던 라이너 바이스(Rainer Weiss)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MIT) 교수는 “드라고의 이메일을 받고 파동의 유형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며 “나 역시 뭔지 모르게 웅장한 규모의 움직임을 감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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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드라고의 메일을 수신한 연구자들은 하루 종일 이메일을 통해 이 놀라운 사실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런 다음, 이 주제에 관심 가질 만한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그 결과를 통보했다. 이후 탐지된 파동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작업, 중력파에 담긴 정보를 최대한 빼내기 위한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보고서 작성 작업이 시작됐다. 1000명에 이르는 연구자가 5000통 이상의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합의 절차가 거듭됐다. 완성된 보고서가 세상의 빛을 본 건 올 1월 21일, 데뷔 무대는 미국물리학회(American Physical Society)가 발간하는 학술지 ‘피지컬 리뷰(Physical Review)’였다.

 

우주와의 '인터랙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인류는 오랜 세월 밤하늘을 쳐다보며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공간'인 외계 우주의 비밀을 무한히 상상해왔다. 천문학과 망원경이 발달하며 우주는 그 베일을 한 겹씩 벗어왔지만 20세기 말부터 IT 기술로 지원되는 집단지성이 날개를 달며 발견 진행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그 과정에서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발견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IT 기술 자체도 한층 실용적으로 다듬어졌다. 예를 들어 태양풍 등 우주 광선(cosmic ray)이 컴퓨터 메모리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방법에 대해선 이미 1980년대 초부터 활발한 연구가 진행돼왔다. 이번에 탐지된 중력파는 지금껏 연구된 우주 방사선과는 또 다른 성격의 에너지인 만큼 중력파가 인류의 삶, 특히 (외부 에너지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IT 소통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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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관련, 지금까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간주돼온 근본적 의문을 해소하는 데도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외계 우주의 더 큰 존재들이 조작하는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아닐까?' 같은 질문이 대표적. 실제로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 비롯된 이 질문은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 소설 '유리알 유희'나 짐 캐리 주연 영화 '트루먼 쇼'(1998) 같은 픽션에선 물론, 물리학에서도 꾸준히 호기심의 대상이 돼 왔다.

'중력파 최초 탐지' 성과는 1세기 전 아인슈타인이 시작한 이야기에 드라고와 바이스를 포함한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조금씩 살을 붙여 완성한, 아름다우면서도 놀라운 결말이다. 100년을 앞서간 아인슈타인의 천재적 통찰력이 IT 기술 발달과 전 세계 과학자의 집단지성 덕에 이제야 뿌리 내리게 된 셈이다. 이 같은 지식의 비약은 앞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현재로선 그 구체적 면면을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이로 인해 새로워진 생각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IT 기술은 항상 우릴 도와주리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