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글:김동주, 편집:손지은]
출근길, 우리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어렵고 긴 터널을 지나 겨우 얻은 직장으로 향하는 길인데도 말입니다. 이대로 다닐 수도, 사표를 낼 수도 없는 진공 상태 속에서 오늘도 억지로 출근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요? 직장인의 삶을 진단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이맘때, 종영한 드라마 <미생>에 나온 말이다. 원작을 보지 않았던 나는, 과연 직장인들이 집에 와서까지 꼭 자기 이야기 같은 직장 드라마를 보고 싶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미생>은 꽤 큰 파문을 일으키며 성공적으로 종영했다. 탄탄하고 공감 가는 스토리와 '너만 힘든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한 극 중 인물들의 열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보는 <미생>의 성공 이유는 실제로 우리가 사표를 품고 살기 때문이다.
▲ 대기업이 주는 금전적 보상은 달콤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 삶이 불안지기 시작했다. |
ⓒ pixabay |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 시절, 그러니까 무려 7년 전. 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느 기업의 IT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인정을 받기를 강하게 희망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나 역시 이름만 얘기하면 모두가 알아듣는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학생이었으니, 그 열매는 몇 년간 제법 달콤했다. 회사로부터 받는 금전적 보상의 대가로, 남이 몰아치는 대로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야 했지만,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야근을 반복하던 어느 날 깨달은 사실
▲ 밤 11시에 사무실에서 나서다, 지난 3년 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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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야근을 하지 않은 사람을 기억할 뿐, 그 이외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자기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을(실제로는 더 많이) 모조리 회사에 쏟아 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인생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계산을 해본 적이 있다. 하루가 24시간이니, 일주일이면 168시간이다. 5일 근무를 기준으로 보면, 그중에 출퇴근 시간을 포함한 근무시간이 대략 60시간이다. 하루 7시간의 수면을 취한다면 일주일이면 49시간이고, 나머지 59시간이 순수한 여가시간이다. 결국 내 인생의 3분의 1을 팔아서, 나머지 3분의 1을 유지하는 셈인데,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긴 했지만 그것으로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꿈은 막연하기만 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어느 날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세상으로 튀어나와 스마트폰 개발자가 되었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비치는 나는 멋진 건물에서 일하면서 좋은 혜택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내가 보는 나는 기울어져 가는 건물 같았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까워 무엇이든 해보려고 했지만, 창의적인 일은 거의 없었다. 몰아치는 대로 살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었다고나 할까.
결국 나는 평생의 꿈이었던 세계 일주를, 예기치 못한 순간에 결정했다. 입사한 지 3년하고 6개월이 지난 그 날, 가슴에 꿈 대신 품었던 사표를 꺼냈다. '바깥은 지옥이야'라든가, '그렇게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둬?'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꿈을 이룬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매번 새로운 곳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여행을 떠난 후에도 계속된 의문이었다. 길을 걸을 때도, 잠을 자기 전에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누군가 불쑥 내 안에 들어와 물었다.
"떠나보니 어때? 밖은 지옥이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아?"
사표 후 몇 개월 동안의 공허함... 먼 길 돌아 얻은 것
▲ 누구에게나 지울 수 없는 사진이 한 장쯤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여행의 마지막 날, 비행기가 인천 상공을 날면서 찍었던 이 사진이 바로 그 사진이다. |
ⓒ 김동주 |
'내가 그때 여행을 한 게 잘한 짓일까? 여행이 끝나고 뭐가 달라졌지? 이제 나는 뭘 해야 하는 거지?'
두서없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결국 불면증까지 찾아왔다. 무엇을 할 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버린 나 자신이 한심하고 비참했다. 나는 어느새 집 밖을 나서지 않게 되었다. 공허함이 몇 개월 동안 계속됐고, 또다시 불안한 마음으로 직장을 찾기 시작했을 때 작은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 나는 나에게 필요한 회사를 선택했다면, 그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를 찾았다. 사표를 쓰고 세계 일주를 다녀왔다는 이상한 이력서를 통과시킨 회사들이 생겨났고, 한 번도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적 없었던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이 생겼다. 호기심이 생기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마침내 나는 나를 조금 더 필요로 하는 회사에서, 조금 더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예전과 같은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즐겁게 일을 해 나갔고, 이전보다 더 큰 애착을 갖게 되었다. 그저 입사하는 것이 목표였던 철부지 사회 초년생은 처음부터 막다른 길에서 달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먼 길을 돌아온 후에야 나는 내 삶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면허'를 얻게 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지옥'이라는 바깥세상을 맛본 후에야 겪게 된 변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표'라는 이야기는 아무도 쉽게 할 수 없다. 미혼이고, 책임질 가족이 없는 나였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는지 모른다. 결국엔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어려운 결정이 반드시 더 나은 자본주의적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월급'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부자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거나 월급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관점을 조금 바꿔 보면 어떨까. 직장에서 인생의 3분의 1을 쓰고 있다면, 그 시간이 유익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시 한 번 욕망과 가치관을 가다듬고 '선택'을 하는 행위가 금기시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업무효율을 높이겠다며 오전에는 자리에서 못 일어나게 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개인의 집중력을 고려해 근무시간은 물론 공간까지 자율에 맡기는 회사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표를 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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