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분신 또 분신… 끝없는 저항 불길
- 시사저널 모종혁│충칭 자유기고가
- 입력 2011.12.14 10:57
지난 11월3일 중국 내륙 쓰촨(四川) 성 간쯔(甘孜) 티베트 자치주 다오푸(道孚) 현의 한 거리. 붉은 가사를 입은 한 여승이 도로 변에 나와 갑자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여승은 한동안 무어라고 외치며 꼿꼿이 버텼으나 몇 초 뒤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비명을 지르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검게 탄 여승의 숨결은 끊어지고 말았다. 3월16일 첫 분신 사건이 일어난 뒤 올 들어 벌써 11번째 라마승의 분신이었다. 이날 벌어진 팔덴 초엣소(35)의 분신 장면은 한 티베트 저항 단체가 촬영해 외부로 반출해 공개되었다. 적나라한 분신 과정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련의 라마승 분신은 중국의 근심거리인 티베트 문제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달라이 라마 14세가 나서서 극단적인 분신을 자제토록 호소했지만, 일부 라마승은 앞서간 동료를 따라 희생할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년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구소련의 해체라는 격변 아래에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동안 중국은 다민족 국가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소수 민족 정책을 시행한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55개의 소수 민족 중 티베트인과 위구르인의 저항은 지난 60년간 계속되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통치와 억압 속에서도 티베트인은 왜 투쟁의 고삐를 놓지 않는 것일까.
중국, 경제력 앞세워 국제 여론 누르기도
2008년 3월 시짱(西藏) 자치구 수도 라싸에서 대규모 군중 시위가 일어났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국기를 앞세운 티베트인은 중국 무장 경찰과 충돌해 2백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 소식은 곧바로 티베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쓰촨·간쑤(甘肅)·칭하이(靑海) 등지의 티베트인 거주지에서도 시위가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어느 곳보다 쓰촨 성 간쯔와 아바 두 자치주에서의 봉기가 격렬했다. 간쯔 자치주에서는 4월 초까지 시위가 계속되었고, 중국 무장 경찰의 발포로 여덟 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라싸를 제외하고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라마승의 분신이 이어지는 곳도 바로 간쯔와 아바 자치주이다. 지역적으로 티베트 동부, 역사적으로 캄(康巴)이라 불리는 곳이다. 보통 티베트하면 라싸를 중심으로 하는 시짱 자치구만 떠올린다. 하지만 티베트인이 사는 지역은 중국 전체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1/5, 칭하이 성의 전체, 간쑤 성의 1/4, 쓰촨 성의 1/3, 윈난 성의 1/5 등 여섯 개 성과 자치구에 걸쳐 있는 '대티베트(大藏區)'이다. 대티베트는 다시 언어와 역사에 따라 티베트 중부의 '위짱', 서부의 '아리(阿里)', 북부와 칭하이의 '암도(安多)', 간쑤·쓰촨·윈난의 '캄'으로 나뉜다.
간쯔와 아바 자치주는 캄의 핵심 지역이다. 2010년 현재 간쯔 전체 인구 1백9만명 중 78.3%, 아바 89만명 중 56.6%가 티베트인이다. 량산(凉山) 이족 자치주에 사는 주민까지 합치면 쓰촨 성에만 1백22만명의 티베트인이 거주한다. 이는 중국 내 티베트 인구의 5분의 1에 달한다. 옛날부터 캄은 티베트와 중국의 접경지대로 독특한 지역 문화와 풍습을 꽃피워 왔다. 캄에 사는 티베트인 '캄파'는 라싸와 중국을 잇는 교통로를 장악해 상업적인 부를 축적했다. 캄파가 활동하던 교통로 중 하나가 바로 차마고도이다. 캄파는 티베트에서 불교를 처음 받아들였고, 중국 문화를 수용해 티베트식으로 발전시켰다.
캄파의 독자성과 능력은 때때로 중앙 티베트인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캄파는 티베트인이라는 정체성과 라마 불교도로서의 신심(信心)을 잃은 적이 없다. 역대 중국 왕조와 정부는 이런 캄을 중앙 티베트와 떨어뜨려놓기 위해 온갖 획책을 기도했다. 청조가 지역 군장인 토사(土司)를 임명해 취한 간접 지배 정책이나 국민당과 공산당 정권이 캄을 분리해 시캉(西康) 성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캄파는 중국 정부나 한족에 더욱 거세게 저항했다. 1959년 중국의 점령에 반대하는 티베트인의 대규모 항쟁에서 가장 격렬하게 그리고 끝까지 투쟁한 이들이 바로 캄파였다.
캄이 라마승의 분신으로 티베트 문제를 환기시키는 데에는 복잡한 대내외 정세가 작용했다. 2002년 이래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와 중국 정부는 아홉 차례에 걸친 공식 회담을 가졌다. 망명정부는 오래전에 이미 독립 노선을 버렸다. 망명정부가 중국에 요구하는 핵심 사안은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 형식의 자치권 부여이다. 여기에 달라이 라마의 위상을 인정해주고 망명한 티베트인과 라마승의 안전한 귀향을 바라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 정부는 국제 여론에 떠밀려 형식적으로 회담에 임해왔다. 티베트에 고도의 자치를 허용할 경우 다른 소수민족도 똑같은 요구를 들고 나올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오히려 '분리 독립 노선을 버리고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분임을 인정하라'라며 역공하고 있다. 또한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달라이 라마를 지지해 온 서방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투자 제재와 무역 중단을 내세운 중국의 압력에 미국조차 티베트 문제를 거론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대내 상황도 불안 일색
불리해지는 대외 환경보다 티베트인을 조바심 나게 하는 것은 급변하는 대내 상황이다. 달라이 라마는 올해 76세의 고령이다. 티베트 불교의 전통에 따라 사후에 윤회전생의 15세를 찾아야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중국 정부가 "망명정부에 의해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가 선출된다면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하오펑 티베트 자치구 부서기는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청나라 때부터 내려오는 엄격한 관례와 의식에 따라야 한다. 중앙정부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진정한 달라이 라마이다"라고 말했다.
고령의 달라이 라마 14세가 갑자기 입적한다면 중국 정부는 '관제' 15세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이는 티베트 불교의 2인자 판첸 라마의 전례에서 엿볼 수 있다. 1989년 1월 판첸 라마 10세가 타계하자, 1995년 5월 달라이 라마는 당시 6살의 겐둔 치아키 니마를 판첸 라마 11세로 지명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기알첸 노르부를 추대했다. 10년간 격리 교육을 받았던 기알첸은 2005년 12월 판첸 라마 11세로 공식 즉위했다. 2006년 5월부터는 윈난 성 샹글리라 현을 시작으로 티베트 각지를 방문해 법회를 열고 있다.
수년간 기알첸은 대다수 티베트인에게 판첸 라마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지난 8월 간쑤 성 간난(甘南) 자치주 5곳 사찰에서 기알첸이 주관한 법회에 5만여 명의 티베트인이 몰리는 성황을 이루었다. 중국 정부도 기알첸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임명하고 일거수일투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등 기알첸 띄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10월 간쯔 자치주 캉딩(康定)에서 만난 한 티베트 청년은 "기알첸의 사진을 판첸 라마 10세의 영정과 함께 모셔놓는 주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5년 뒤에는 판첸 라마 11세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진전 없는 중국과의 회담, 점점 적어지는 국제 사회의 관심, 불교 지도자 후계자 선출에서 중국 정부의 개입 등에 대해 티베트 망명정부와 라마승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에 의해 감금된 겐둔 치아키 니마처럼 앞으로 지명될 달라이 라마 15세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이를 우려해 달라이 라마 14세는 "조만간 윤회전생 제도를 존속시킬지 결정하겠다"라며 생전에 후계자를 선출할 뜻을 밝혔다. 지난 3월에는 새로이 선출된 롭상 상가이(43)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에게 권한을 이행했다.
국면 전환을 위해 중국 정부는 당근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5년 내 티베트 전역에서 출판물과 방송에 중국어 표준말과 티베트어를 함께 사용토록 조치했다. 또한 내년부터 60세 이상 라마승에게 매달 은퇴 연금 1백20위안을 지급할 계획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분신으로 흉흉해진 캄의 민심을 잡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의 선출에 개입해 티베트인의 영혼마저 장악하려는 중국 정부의 행보가 중단되지 않는 한 라마승의 저항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모종혁│충칭 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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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 성 샹그릴라 현의 한 마을 광장에서 티베트인들이 군중무를 추고 있다. ⓒ 모종혁 제공 |
중국, 경제력 앞세워 국제 여론 누르기도
라마승의 분신이 이어지는 곳도 바로 간쯔와 아바 자치주이다. 지역적으로 티베트 동부, 역사적으로 캄(康巴)이라 불리는 곳이다. 보통 티베트하면 라싸를 중심으로 하는 시짱 자치구만 떠올린다. 하지만 티베트인이 사는 지역은 중국 전체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1/5, 칭하이 성의 전체, 간쑤 성의 1/4, 쓰촨 성의 1/3, 윈난 성의 1/5 등 여섯 개 성과 자치구에 걸쳐 있는 '대티베트(大藏區)'이다. 대티베트는 다시 언어와 역사에 따라 티베트 중부의 '위짱', 서부의 '아리(阿里)', 북부와 칭하이의 '암도(安多)', 간쑤·쓰촨·윈난의 '캄'으로 나뉜다.
간쯔와 아바 자치주는 캄의 핵심 지역이다. 2010년 현재 간쯔 전체 인구 1백9만명 중 78.3%, 아바 89만명 중 56.6%가 티베트인이다. 량산(凉山) 이족 자치주에 사는 주민까지 합치면 쓰촨 성에만 1백22만명의 티베트인이 거주한다. 이는 중국 내 티베트 인구의 5분의 1에 달한다. 옛날부터 캄은 티베트와 중국의 접경지대로 독특한 지역 문화와 풍습을 꽃피워 왔다. 캄에 사는 티베트인 '캄파'는 라싸와 중국을 잇는 교통로를 장악해 상업적인 부를 축적했다. 캄파가 활동하던 교통로 중 하나가 바로 차마고도이다. 캄파는 티베트에서 불교를 처음 받아들였고, 중국 문화를 수용해 티베트식으로 발전시켰다.
캄파의 독자성과 능력은 때때로 중앙 티베트인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캄파는 티베트인이라는 정체성과 라마 불교도로서의 신심(信心)을 잃은 적이 없다. 역대 중국 왕조와 정부는 이런 캄을 중앙 티베트와 떨어뜨려놓기 위해 온갖 획책을 기도했다. 청조가 지역 군장인 토사(土司)를 임명해 취한 간접 지배 정책이나 국민당과 공산당 정권이 캄을 분리해 시캉(西康) 성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캄파는 중국 정부나 한족에 더욱 거세게 저항했다. 1959년 중국의 점령에 반대하는 티베트인의 대규모 항쟁에서 가장 격렬하게 그리고 끝까지 투쟁한 이들이 바로 캄파였다.
캄이 라마승의 분신으로 티베트 문제를 환기시키는 데에는 복잡한 대내외 정세가 작용했다. 2002년 이래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와 중국 정부는 아홉 차례에 걸친 공식 회담을 가졌다. 망명정부는 오래전에 이미 독립 노선을 버렸다. 망명정부가 중국에 요구하는 핵심 사안은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 형식의 자치권 부여이다. 여기에 달라이 라마의 위상을 인정해주고 망명한 티베트인과 라마승의 안전한 귀향을 바라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 정부는 국제 여론에 떠밀려 형식적으로 회담에 임해왔다. 티베트에 고도의 자치를 허용할 경우 다른 소수민족도 똑같은 요구를 들고 나올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오히려 '분리 독립 노선을 버리고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분임을 인정하라'라며 역공하고 있다. 또한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달라이 라마를 지지해 온 서방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투자 제재와 무역 중단을 내세운 중국의 압력에 미국조차 티베트 문제를 거론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대내 상황도 불안 일색
중국 쓰촨 성 간쯔 티베트 자치주 캉딩 현의 시장에 경찰 감시대가 설치되어 있다. ⓒ 모종혁 제공 |
고령의 달라이 라마 14세가 갑자기 입적한다면 중국 정부는 '관제' 15세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이는 티베트 불교의 2인자 판첸 라마의 전례에서 엿볼 수 있다. 1989년 1월 판첸 라마 10세가 타계하자, 1995년 5월 달라이 라마는 당시 6살의 겐둔 치아키 니마를 판첸 라마 11세로 지명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기알첸 노르부를 추대했다. 10년간 격리 교육을 받았던 기알첸은 2005년 12월 판첸 라마 11세로 공식 즉위했다. 2006년 5월부터는 윈난 성 샹글리라 현을 시작으로 티베트 각지를 방문해 법회를 열고 있다.
수년간 기알첸은 대다수 티베트인에게 판첸 라마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지난 8월 간쑤 성 간난(甘南) 자치주 5곳 사찰에서 기알첸이 주관한 법회에 5만여 명의 티베트인이 몰리는 성황을 이루었다. 중국 정부도 기알첸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임명하고 일거수일투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등 기알첸 띄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10월 간쯔 자치주 캉딩(康定)에서 만난 한 티베트 청년은 "기알첸의 사진을 판첸 라마 10세의 영정과 함께 모셔놓는 주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5년 뒤에는 판첸 라마 11세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진전 없는 중국과의 회담, 점점 적어지는 국제 사회의 관심, 불교 지도자 후계자 선출에서 중국 정부의 개입 등에 대해 티베트 망명정부와 라마승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에 의해 감금된 겐둔 치아키 니마처럼 앞으로 지명될 달라이 라마 15세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이를 우려해 달라이 라마 14세는 "조만간 윤회전생 제도를 존속시킬지 결정하겠다"라며 생전에 후계자를 선출할 뜻을 밝혔다. 지난 3월에는 새로이 선출된 롭상 상가이(43)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에게 권한을 이행했다.
국면 전환을 위해 중국 정부는 당근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5년 내 티베트 전역에서 출판물과 방송에 중국어 표준말과 티베트어를 함께 사용토록 조치했다. 또한 내년부터 60세 이상 라마승에게 매달 은퇴 연금 1백20위안을 지급할 계획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분신으로 흉흉해진 캄의 민심을 잡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의 선출에 개입해 티베트인의 영혼마저 장악하려는 중국 정부의 행보가 중단되지 않는 한 라마승의 저항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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