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3:1-14
제목 : 중도 탈락자도 귀히 쓰시는 하나님
본문;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앞으로 『마가복음』 연구를 통해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서론적인 의미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은 초대교회의 각종 전승 및 교부들의 일치된 증언을 통해 본서의 저자가 ‘마가’임이 확증되어 있습니다.
‘마가’라는 이름이 성경에 처음 언급된 곳은 사도행전 12장 12절로 ‘마가’는 ‘마가 요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것과, ‘마가’의 어머니의 이름이 ‘마리아’임을 알 수 있고, ‘마가’의 집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언급되지 않고 어머니의 이름으로 언급된 것으로 보아 아버지는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할 만큼 큰 집을 소유하고 있었고, 또 그 집을 핍박의 시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기도회 장소로 제공할 만큼 신심이 깊은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로데’라는 여종(행 12:13)을 둔 것으로도 보아 부유한 가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골로새서 4장 10절에 보면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누이의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섬 출신의 레위인으로서‘ 본명은 ‘요셉’이고, 사도들에 의해 ‘바나바’(위로의 아들)로 알려졌고, 자기 소유의 밭을 판 돈을 공동기금으로 사도들의 발 앞에 둔 사람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마가’는 훌륭한 믿음을 가진 집안의 자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마가’가 드디어 세상 구경을 하고, 믿음의 훈련을 하는 기회가 오게 됩니다.
사도행전 12장 25절에 보면 ‘바나바’와 ‘사울’(나중에 ‘바울’로 이름을 개명함)이 부조(행 11:27-30에서 결정했던 내용)를 예루살렘에 전달하고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으로 가게 됩니다.
‘마가’ 자신의 요청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바나바’가 삼촌으로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마가’의 견문을 넓혀 주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3장 1절 이후에 보면 안디옥교회가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이 선교여행에 ‘(마가)요한’이 수행원(수종자)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마가’는 신앙의 대가들과 함께 위대한 선교여행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들은 안디옥을 떠나 실루기아를 거쳐 구브로로, 살라미로, 바보를 거쳐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선교여행을 함께 했던 ‘(마가)요한’이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왜 ‘마가’는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 것일까요?
왜 그랬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저의 경험 등을 토대로 유추해보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가’는 이 여행에 동참하면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그에게는 별다른 경험이 없었기에 아마도 그는 이 선교여행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실제적인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바나바’와 ‘사울’ 같은 위대한 신앙인들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낯선 나라들을 여행한다는 것에 대해 나름 자신도 뭔가 대단한 사명자가 된 것 같은 조금은 우쭐함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고,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 들어가 보니 장난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과 같은 위대한 신앙인들이 치러내는 영적전쟁의 수준은 초보적인 ‘마가’가 감당하기에는 아마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대하면 적당히 뒤로 물러나거나, 다음 기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의 말씀을 증언하기 위해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애초부터 급이 달랐기에 ‘마가’로서는 도저히 보조를 맞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가 견디기에는 너무나 두려웠을 것이고, 두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행동양상은 저러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막무가내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아마 좋게 떠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성격상 그런 ‘마가’를 그냥 호락호락 보내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마가’는 무엇을 느꼈을까?
선교여행에 동참하기 전까지 그는 유복한 집안의 믿음으로 잘 다져진 멋진 신앙인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선교지에 자원하여 동행하고, 신앙의 위인들과 선교여행에도 동행하는 멋진 신앙인!
그러나 그런 그의 이미지는 선교여행을 통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이만하면 괜찮은 신앙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고 믿었었는데 현장에 나가보니 자신은 ‘온실 속의 화초’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거친 들판에 나가보니 자신이 얼마나 부실하고 웃자라기만 하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에 ‘마가’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어쨌든 2차 선교여행을 준비하면서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크게 다툰 후 각자 결별하여 ‘바나바’는 ‘마가’와, ‘바울’은 ‘실라’와 각각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행 15:36-41).
이 일 후에 ‘마가’가 성경에 다시 언급되기까지는 12년(혹은 20년?)의 기간이 경과한 후 였고,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골로새서 4장 10절과 빌레몬서 1장 23-24절을 보면 ‘마가’는 바울과 함께 투옥되면서까지 바울을 섬기는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로마옥중에서 기록한 바울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자신에게로 마가를 보내주기를 요청하면서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적고 있습니다(딤후 4:9-11).
여기서 ‘마가’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전에 1차 전도여행에서 보여 주었던 그런 연약한 ‘마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복음 사역을 진행함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인물로 부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는 연약하고 미숙하고 겁 많던 ‘마가’를 사랑으로 격려하며, 기회를 제공하고 세워주었던 ‘바나바’의 후원이 있었을 것이고, 배후에서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와 사랑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마가’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그는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3절에 보면 ‘베드로’는 ‘마가’를 가리켜 “내 아들 마가”라고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마가’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베드로’가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가’는 ‘베드로’와 동행하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가르침과 공생애 기간 중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이야기들을 토대로 그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마가복음』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신앙적으로 어리고 유약하여 부끄러운 실수를 한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주님 안에서 다시 한 번 새로워지는 은혜를 경험하였기에 오히려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신앙인으로 설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그의 부끄러운 과거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었기에, 오히려 그는 신약성경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이라는 위대한 성경의 기록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삶과 사명에 대한 통찰을 가지지 못하였다면, 예수님의 생애와 사상을 이렇게 어떤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가’와 같은, 또는 그 보다 부끄러운 지난 모습이 너무도 많은 저희들입니다.
그러나 주여! 우리도 ‘마가’처럼 새롭게 변화되어 주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위대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런 은혜를 저희들에게도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