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설교 65개 모음<강추>
글쓴이: 밝은미소
주님을 사랑한다면
(요21:15-17)
만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주님의 양떼를 사랑해야 해요.
오늘 읽은 말씀에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번이나 물으셨어요. 베드로가,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지 않습니까?"하고 말했더니 주님은, "그렇다면 내 양을 먹이라?"하고 당부하셨어요. 교회 다니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양이랍니다. 그런데 어떤 어린이는, "흥! 난 재 때문에 교회 못다니겠어! 쟤 교회 안다녔으면 좋겠어!"하며 주님의 양을 미워하기도 해요. 또 어떤 어린이는 교회 잘 다니는 친구에게, "야! 너같은 애는 교회 다니지 마! 너 교회 나오면 죽을줄 알아!"하고 제 마음대로 주님의 양을 두들겨 쫓아버리기도 해요. 그런 어린이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예요. 또 어떤 어린이는 "에이! 교회에 애들이 많아지니까 시끄럽고 미운 애들도 많아!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어?"하고 생각하는 어린이도 있어요. 그런 어린이는 예수님이 가난뱅이 목자가 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어린이인데 어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2. 주님의 종들을 사랑해야 해요.
구약성경에 보면 사르밧에 살던 한 가난한 과부는 배가 고파하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위해 한 줌밖에 안 남았던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대접했다가 큰 축복을 받았어요.
또 신약성경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가 주님의 종 베드로를 잘 대접했더니 성령을 선물로 받고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어요.
3. 주님의 재산을 아껴야 해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어린이가 아버지가 보시는 책을 찢고 아버지의 안경을 깨뜨릴 까닭이 없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린이는 하나님의 재산을 아낀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어린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화) 김포 운양리에 낙원교회라는 교회가 있어요. 그 교회의 어린이들은 모두 교회를 짓기 위해 날마다 전도사님과 같이 뒷산에 올라가 돌을 날라다 모으기 시작했어요. 어린이들은 무려 한달동안이나 돌을 주워다 모았어요. 그리고 교회 건툭이 시작되자 부럭크를 나르기 시작했어요. 또 모래를 날랐어요. 이윽고 교회가 모두 완공되자 어린이들은 누구보다 교회를 사랑했어요. 어린이들은 교회 마당에 꽃씨를 심고 교회 주위에 코스모스를 심었어요. 그러나 실상 이 어린이들은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주님은 이 어린이들을 사랑하셔서 지금은 그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가 되게 하시고 많은 축복을 주셨어요.
또 교회 뿐 아니고 교회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재산이예요. 마이크, 의자, 캐비넷, 강대상, 꽃병,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해요.
(예화) 경기도 어느 시골에는 선영이라는 소녀가 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선영이는 교회의 꽃병이 항상 비어있는 것을 보고 늘 교회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꽃병에 주일마다 꽃을 꽂아야지!" 선영이에겐 돈이 없었어요. 그러나 토요일만 되면 늘 산에 올라가 각종 들꽃을 꺾어다 교회 꽃병에 꽃았어요. 그런데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비가 내렸어요. 선영이는 비가 그치길 기다렸지만 비는 계속 쏟아졌어요. "큰일났네! 내일이 주일인데.... 할 수 없다! 우산을 쓰고 올라가자!" 선영이는 우산을 쓰고 산에 올라가 꽃을 꺾었어요.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선영이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날 교회에 가서 꽃장식을 마치고 돌아온 선영이는 밤새 앓았어요.
그날 밤 그 교회 목사님은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그것은 주일학교 어린이 선영이가 자꾸만 예쁜 들꽃을 따다가 예수님의 품에 안겨드리는 꿈이었어요. 예수님은 너무 기뻐 선영이를 꼭 안아주셨어요. 그런데 잠이 깨었어요. 새벽에 새벽기도를 인도하러 교회당으로 나간 목사님은 깜짝 놀랐어요 꿈속에 보았던 그 들꽃들이 교회 강대상 위에 있는 꽃병에 꽂혀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누가 주일마다 예쁜 꽃을 꽂아놓나 했더니 선영이였구나!" 목사님은 그날 예배때 날마다 꽃을 장식해놓는 선영이를 위해 특별기도를 해주셨어요. 선영이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에 왔다가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너무 고마와 눈물을 흘렸어요.
(결 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양떼와 주님의 종들과 주님의 재산을 아끼고 사랑하셔야 해요. 그러면 주님도 여러분을 더 아끼고 사랑하실 거예요.
아름다운 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 참고성경: 창3:1-22, 롬3:23, 요일1:7, 막16:15, 마28:18-20, 롬10:13-15, 단12:3.
*설교개요*
1, 발에 대한 이야기
발 없는 사람 발들어 보세요. (그림을 보이며) 자, 이게 뭐지요. 예 발입니다. 사람들은 발을 아주 천하게 생각합니다. 생긴 것도 이 모양으로 못 생겼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걸어도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발은 아주 중요한 지체입니다. 발이 없으면 똑바로 일어 설 수도, 걸어다닐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발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과 함께 다니며 하나님이 지어주신 온 세상을 정복하고, 그것들을 다스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검은 발-죄인의 발, 아담과 하와의 발, 불순종의 발,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깨고, 하나님을 거스리는데 이 발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처럼 엄히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으러 가던 하와와 아담의 발이 바로 이런 발입니다. 이 발은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발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거역하는 사람들의 발입니다.
사람들은 망할 줄을 다 알면서도, 지옥으로 갈 것이 뻔한 데도 사람들은 계속 이 죄의 걸음을 걷습니다. 좁고도 험한 십자가의 길,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을 버리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넓은 세상 길로만 걷습니다.
성경을 보니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이것은 바로 불평하는 발, 원망하는 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다투는 발, 하나님을 안섬기고 잘못된 길로 가는 발, 죄악에 물든 발입니다.
3. 빨간 발-예수님의 발
그런 여러분과 나를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더러운 것들을 밟으실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구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번도 그릇 행한 일이 없는 그 발에 못을 박히시고 피를 흘리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셨습니다. 우리를 천국에 보내시기 위해 자신은 지옥의 무서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용서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가 받아야할 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4. 흰색 발-하나님의 자녀들의 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죄를 용서받고 깨끗함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5, 아름다운 발-전도하는 자의 발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주님께서 깨끗하게 씻어주신 이 발을 여전히 악한데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발을 그 피로 씻어 주신 것은 단지 하늘나라 황금길을 걷게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승천 하시기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 "잘 살아라." "부디 부디 행복하여라."(X)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온 천하에 다니려면 신체의 어느 부분이 움직여야 합니까? 예, 발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복음을 전하는 발은 아름다운 발입니다. 그가 전하는 아름다운 복음이 뿌려지는 곳마다 정말로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의 발걸음이 가 닿는 곳마다 새롭게 변하고 새롭게 뒤집어 집니다. 전도자의 발걸음이 옮겨지는 곳 마다 무시 무시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지옥의 백성이 하늘나라 시민이 됩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영적 송장들이 영원한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 전도자의 발처럼 아름다운 발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예화1)
에쿠아돌에 있는 어느 지역에는 너무너무 사납고 거칠은 한 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부에서 온 사람은 누구라도 달려들어 잡아 먹어 버리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그런 무서운 식인종의 소굴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무서워하기 보다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는 일곱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부를 아주 많이 하고 사회적으로도 존경과 명예를 받는 박사님들이었습니다. 이 박사님들이 주 예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그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면서 열심히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어려운 모든 훈련을 마치고 그들은 가족들을 남겨둔 채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먼저 어느 정도 기틀을 잡은 후 데려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생활습성도 다른 그 미개인 식인종 사회에 들어가 복음을 전해주기 위하여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경비행기를 타고 그 부족이 사는 지역 위에까지 날아가 거기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일곱명 박사님들의 발걸음이 땅에 닿자마자 그 사나운 식인종들은 와락 달려들어 그들을 모두 먹어버렸습니다.
본국 선교부에서 그들의 비참한 소식을 들은 선교본부의 직원들은 큰 실망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사회적인 존경과 지위와 명예를 다 버리고 주님의 사랑 때문에 그 짐승같은 사람들에게 찾아간 박사님들이 예수님의 '예'자도 전하기 전에 다 식인종의 뱃속에 들어가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그들의 부인들의 슬픔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어느날 남편을 잃은 그 선교사님들의 아내 일곱명이 선교부에 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를 우리 남편을 먹어버린 그 부족에게로 보내주세요. 우리 남편들이 이루지 못한 일을 우리라도 가서 이루겠어요. 우리 남편들의 뼈가 묻힌 곳에 우리 뼈도 묻겠습니다." 선교부에서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나중엔 할 수 없이 그들을 받아 또 훈련을 시켜 그 사나운 식인 부족에게 보내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 일곱명의 사모님들은 3년간의 피눈물나는 훈련을 마치고 또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남편들이 어처구니 없이 죽어간 그 지역에 낙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발이 땅에 닿았을 때에 소리를 지르며 몰려온 이 식인종들이 달려붙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먄 아무리 외부 침입자라도 여자는 안먹는 그들의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이 일곱명의 사모님들은 그 야만적이고 사납고 더러운 부족들 속에 같이 묻혀 살면서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때로는 의사노릇, 때로는 간호원 노릇, 때로는 시녀노릇까지 하면서 그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4년이 지난 어느 부족 잔치날이었습니다. 추장은 그들이 너무 고마워 감사한 뜻으로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우리와 색깔도 틀리고, 말도 틀리고, 우리 보다는 지식이 많은 사람들인데 무엇하러 이런 곳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지요?" 그러자 사모님 한분이 일어나 대답 대신 질문을 했습니다. "추장님, 지금 부터 7년전에 혹시 백인 남자 일곱명을 잡숫지 않으셨습니까?" 추장은 의아해서 대답했습니다. "그랬소만, 당신들이 그걸 어떻게 알고있소?" "예, 그 남자들은 바로 우리의 남편들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셨지만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이 낮은 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 남편들도 명예와 지위를 다 버리고 당신들에게 그 복음을 전해 주려고 이곳에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들을 다 먹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예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전해 주려고 또 이곳에 온 것입니다."
사모님의 그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추장은 너무 너무 놀라 당황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원수인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다니...." 하면서 추장은 벌떡 일어나 선포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전 부족은 우리의 신을 버리고 이 여자들이 전하는 예수신을 믿겠다. 누구라도 반대하는 자는 이 도끼 앞으로 나오라!"
그 선교사님들의 피와 눈물과 고생과 죽음으로 얼룩진 발걸음이 이 부족에 닿자 그들은 그 흉한 식인종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 노릇을 한 사람은 하늘에서 이런 놀라운 상을 받게됩니다. 같이 따라서 해보세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주님께서 오시는 날 저 밝은 태양도, 달도 그 빛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복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발노릇을 한 사람들은 영원토록 비취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게으르지 마세요.
(잠언26:13-15)
1. 늦잠자는 게으름뱅이
방학을 맞이해서 우리 어린이 친구들이 많이 나태해지고 게을러 졌어요. 따끈 따끈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추운 바깥에 나갈 생각이 꿈만 같아 집니다. 그래서 일어나라는 소리만 들어도 손을 비비며 몸을 꼬고 나도 모르게 자꾸 이불속으로 기어들어 가게 됩니다. 혹시 오늘 아침도 그런 사람 자수하세요.
잠언 6장10절에 보면 잠꾸러기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요. 다같이 한마디씩 따라해 보세요.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가난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이 말씀을 들을 때 찔리는 어린이는 내일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세요.
2. 게으름뱅이 이스라엘
성경에 보면, 또 한 종류의 지독하게 게으른 한 민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얼마나 게으른지 담아다준 밥도 입으로 퍼올리기를 괴로워 할 정도였습니다. 이 백성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들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미 저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숱한 재앙으로 무쇠 같은 바로의 마음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권능으로 갈라 맨발로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뜨거운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셨고, 추운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백성들은 그저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목이 마르면 반석을 깨서 생수를 주셨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할 땐 메추라기를 내려서 먹여 주셨습니다. 만나 양식을 날마다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고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 땅을 다 이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이 밟는 땅이 다 그들의 것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해낼 사람이 없도록 그들의 승리가 되셨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고 명령대로 순종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손수 가나안 땅의 모든 민족들을 다 쫓아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여려가지 권능과 사랑으로 이 약속들을 증명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게을렀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주신 승리도 제 것으로 누리기를 괴로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모세는 각 지파에서 1명씩 가나안 땅을 구석 구석 다니며 샅샅이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40일 후 이들이 본대로 느낀대로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 10명의 보고는 백성들을 심히 낙심시켰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임엔 틀림이 없지만, 그 땅의 사람들은 아주 키가 크고 힘이 센 장사들이며, 그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은 성은 얼마나 견고하고 큰지 그들을 쫓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이 새도록 울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갈렙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거역하지 마세요. 또 그 땅 배성들을 두려워하지도 마세요.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두려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는 커녕 갈렙을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백성들은 정말 얼마나 게으릅니까? 그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것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두 정복된 땅이었습니다. 이들을 당할 자가 없도록 하나님이 앞서서 다 이겨 주시겠다고 단단히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갈렙의 말대로 밥상 위에 차려진 밥 처럼 이미 다 주어진 것입니다. 숫가락으로 퍼서 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다 차려다 앞에 놓아 준 밥도 입으로 퍼 올리기를 괴로워 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게으름배이 자식들
오늘 읽은 성경을 생각해 봅시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사자는 숲속에 숨어 사는 동물입니다. 거리에 사자가 있을 리가 있겠어요? 게으른 사람은밖에 나가 보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사자를 미리 생각하고는 두려워 떨며 나가지도 못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워 보지도 않고, 부딪쳐 보지도 않고, 미리 무서워 떨며 믿음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언제나 늘 핑계를 댑니다. 늘 어려움과 불가능한 것만 생각하고, 염려를 앞세우고 용기 있게 나아 가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서 싸우시는데 아낙 자손이 무엇이며, 견고한 성벽이 무엇이 두렵습니까? 마귀는 언제나 우리에게 거리에 사자가 있을 것이니 나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속지 마세요. 하나님께 순종하여 살아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앞서서 어려운 일들을 이겨 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 길 앞에 어려움이 많아도 그것들은 우리 밥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 승리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지레 겁에 질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게으름뱅이가 되지 마세요.
또한 게으른 자는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 한다고 하였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새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조그만 나라 대통령의 아들만 되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며 활개치고 살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대통령의 높은 권세로도 부를 수 없는 하나님의 이름을, 박사님들이 그들의 지식과 머리로 연구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어느 누구도 누릴 수 없는 멋진 삶을 살고 있나요?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님처럼 힘있게 살아가고 있나요?
왜 그렇지 못할까요?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어 놓으신 승리가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데도, 하나님의 그 능력있고 풍성한 말씀이 언제라도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이미 손앞에 차려져 있는데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고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는데도 우리는 게을러서 자기의 것으로 누리기를 괴로워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게으른 자는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딩군다고했습니다. 이 문은 10년이 가도 20년이 가도 그 자리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게으른 자는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기만 합니다. 우리는 자라나야 합니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지난 달과 이번 달이 다르며 어제와 오늘이 다르도록 자라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 말씀 보는 것, 주님을 순종하는 것, 남을 사랑하는 것, 감사하는 것, 기뻐하는 것... 우리의 모든 것에서 어제와 오늘이 달라지게 부지런히 전진합시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성탄절)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성경: 마 1: 20, 21)
아주 오래 전 갈릴리 나사렛이란 마을에 요셉이라는 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어요. 그는 선지자, 예언자, 왕 등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어요. 목수인 그는 동네 사람들의 부숴진 가구들도 고쳐 주고, 집들도 지어 주는 등 열심히 일을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성실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주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무슨 소식일까요? 요셉은 얼마 전에 마리아라는 예쁜 여인과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했었어요. 그런데 글쎄, 이 여인이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아이는 요셉의 아이가 아니었어요.
이 소식을 들은 요셉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요셉은 마리아가 괴씸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다 용서해 주고 약혼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조용히 헤어지려고 했어요. 만일 이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면 당시의 율법대로 마리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서 죽게될 것이 뻔했어요. 하지만 요셉은 정말로 마리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어요. 또 요셉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조용히 헤어지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가 잉태한 아이의 비밀을 일러 주었어요. 마리아의 잉태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마음을 고쳐 먹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마리아를 집으로 데려다가 아내로 삼고 아기를 낳으니 그 아기가 곧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이에요.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가장 값진 선물이었어요. 왜냐하면 그 분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예요.
예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있는 높은 벽을 허물 수가 없었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어리석게도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몰랐어요. 그런데 어리석게도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몰랐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무시하고, 영접하지 않았어요.
헤롯왕 같은 사람은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어요. 단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환영과 축하 가운데 화려하게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마굿간에서 초라하게 태어나신 것이었어요.
그러나 요셉은 이 하나님의 값진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어요. 비록 처음에 천사가 나타나서 그 비밀을 전해 주었을 때는 깜짝 놀라고 당황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마리아와 그 아이를 영접했던 거예요.
여러분, 이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걸까요?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예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시하고, 멀리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욕을 하기도 한답니다. 마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처음 오셨을 때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예요.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았지요? 그래요,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지요? 그날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예수님이세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신 크리스마스의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예수님을 무시해 버리고 노는 날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속상해 하실까요?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여러분들의 마음은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나요? 혹시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은가요?
예수님이 들어오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하겠어요. 우리는 요셉에게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참다운 태도를 배워야 하겠어요. 예수님을 정말 주인공으로 삼은 첫번 크리스마스 때의 요셉처럼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준비합시다.
돈보다 귀한 것
(딤전6:8-10)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돈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해요.
어떤 부자가 돈을 잔뜩 모아 장농속에 숨겨 놓았어요. 그리고는 가끔 그 돈을 꺼내보며, "오! 나의 사랑하는 돈! 나의 생명 돈! 사랑해요"하며 애지중지하곤 했어요.
그러나 어느날 밤 그 소문을 들은 강도가 칼을 들고 그 집에 뛰어들어 갔어요.
"꼼짝마라!" "누 누구야? 으 ..... 으헉! 칼...!"
"그렇다! 나는 강도다. 그러나 신사적인 강도다! 만일 네가 장농속에 숨겨둔 돈을 나에게 준다면 너를 살려주겠다! 그러나 만일 네가 돈을 나에게 주지 않겠다면 나는 너를 죽이겠다!"
"그 ..... 그 돈은 안돼!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러면 널 죽이겠다는데도?"
"난 죽으면 죽었지 그 돈은 네게 못준다!"
그러나 강도는 장농문을 열고 돈을 꺼냈어요. 집주인은 강도의 발을 붙들고, "너 죽고 나 죽자!"하고 소리쳤어요.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 그 사람은 강도의 칼에 찔려 숨지고 말았어요. 강도는 겁이나서 돈을 놔두고 도망쳤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돈과 무엇을 바꾸었나요? 네, 목숨을 바꾸었어요. 그러나 목숨을 잃고 나니 돈은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죽은 사람에겐 돈이 필요없으니까요.
1. 돈이냐, 생명이냐?
자, 제가 하나 물어보겠어요. 돈이 귀중해요. 생명이 귀중해요? 네, 생명이 귀중하지요. 그러나 성경에는 돈을 사랑하다가 생명을 잃은 사람이 아주 많아요. 그 중에 제일 대표적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예요. 유다는, "칫!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뭐 큰 자리나 하나 할줄 알았더니 다 글렀네! 이왕 이렇게 된 것 예수님이나 팔아 돈을 벌자!"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나쁜 사람들을 찾아갔어요.
그리고, "여보시오. 당신들에게 예수님을 넘겨드릴게 나에게 돈을 주시오!"
"무시기? 예수를 우리에게?"
"그렇소! 나는 예수님이 혼자 기도하는 곳을 잘 알고 있오! 나를 따라가면 예수님을 잡을 수 있오! 그대신 돈을 미리 주시오!"
이렇게하여 유다는 돈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팔았어요. 그러나 그 후에 유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죽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이 되었어요.
"흑흑! 내가 못할 짓을 저질렀어! 아! 나는 죽어야 해!"하더니 그만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고 말았어요.
결국 유다는 돈을 사랑하다가 생명까지 잃은 것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일이었어요.
2. 영원한 생명
사람의 생명은 두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육신의 생명 즉 목숨이고 또 하나는 영혼의 생명 즉 영생이랍니다. 영생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데 영생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어요. 사람이 돈을 사랑하면 영생을 잃고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돈 때문에 육신의 생명도 잃고 영혼의 생명도 잃었어요. 죽어 지옥에 갔으니까요.
저는 많은 어린이들이 돈을 너무 사랑하다가 영생을 잃어버리는 것을 많이 봅니다.
수영이라는 어린이는 교회에 곧잘 나왔어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집에서는 엄마가 헌금하라고 돈을 주는데 교회에 가면 헌금시간에 헌금을 안하고 앉아있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보니 수영이는 교회에 헌금할 돈으로 군것질을 하는 것이었어요 어떤 때는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어떤 때는 호떡, 도너스, 떡볶기, 오뎅 등을 사먹었어요. 하루는 수영이 엄마가 교회 선생님께 물었어요.
"우리 수영이 헌금 잘 하지요?"
교회 선생님은, "전혀 안하는 것 같아요. 저는 수영이가 헌금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그날 수영이 엄마는 회초리가 부러질 정도로 수영이를 때렸어요. 그 후부터 수영이는 헌금을 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이 아니고 엄마에게 매맞기 싫어 억지로 바치는 헌금이었어요. 몇 달이 지나자 수영이는 돈이 아까와 견딜 수가 없었어요.
"아유" 저 돈이면 떡볶기가 한 그릇인데! 아이구 아까와!"
그 후부터 수영이는 이상한 생각을 했어요.
"칫! 교회는 돈만 걷는 덴가봐! 정말 돈 아까와서 교회 못다니겠어!"
그 후 수영이는 교회를 안다닐뿐더러 친구들에게도, "야! 뭐하러 교회 다니면서 돈 바치니? 돈이 썩었냐? 그럴 돈이 있으면 저금해! 교회는 돈만 걷는 데야!"하고 떠들면서 돌아다녔어요. 어린이 여러분, 수영이의 말이 맞나요?
아니지요. 수영이는 예수님 보다, 자기 영혼의 생명보다 돈을 더 사랑하여 영생을 잃고 만 거예요. 불쌍하게도 수영이는 끝내 예수를 안 믿다가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되었답니다.
(결 론)
사람이 돈을 지나치게 사랑한다면 영생을 잃어요. 그리고 지옥에 가요. 그 가닭은 돈을 사랑하다가 믿음을 다 잃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도둑질 하고 죽이고 예수님도 버려요. 우리 다같이 디모데전서 6장 10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전하지 않으면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왕하 7:9)
* 참고성경: 왕하6:24-7:10, 막16:15, 고전9:16.
옛날 아람나라 군대가 사마리아성을 포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식량이나 음식이 될만한 모든 것이 공급되지 못하도록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이 굶어 죽을 때 까지 에워싸고 앉아 기다릴 참이었습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모든 양식과 원조가 모두 끊기자 성은 야단이 났습니다. 며칠이 못가서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곳곳에서 신음소리와 비명소리, 아우성소리가 끊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먹지 못한 사람들은 힘을 다 잃고 누렇게 떠서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젠 이대로 앉아 굶어 죽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스라엘 왕이 너무 안타까와 속에 굵은 베옷을 입고 성중을 시찰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인이 달려와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애걸을 하였습니다. 왕은 이 여자가 먹을 것을 달라는 줄 알고 "하나님께서 너를 돕지 아니 하시면 나인들 어떻게 너를 도와주겠느냐? 도대체 무슨 일인지 들어나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임금님, 글쎄 이 여자가 저랑 약속을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지 뭡니까. 우리가 배가 고파 죽겠으니 차라리 오늘은 제아기를 삶아 먹고 내일은 저 여자의 아기를 삶아 먹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날 제 아들을 삶아서 먹었는데 글쎄 이 약은 여자가 이튿날 자기 아들을 먹을 차례가 되자 숨겨놓고 내놓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나이까?" 이 말을 들은 왕은 너무너무 비참하고 괴로와 겉에 입었던 왕복을 벅벅 찢고 탄식하였습니다.
얼마나 주렸으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제몸으로 난 자기 아들을 삶아 먹게 되었겠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돈? 다이아몬드? 좋은 옷? 권세와 영광? 좋은 집? 아니면 박사학위를 얻는 것? 그러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 맞습니다. 그것은 오직 한가지 먹는 것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성중에 살던 사람이었다면 5,000만원과 이 빵한개를 바꾸시겠어요? 좋은 집을 한 채 준다고 이 빵과 바꾸겠어요? 아니 왕관을 벗어 준다고 이 빵과 바꾸겠어요?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 성문 밖에는 4명의 문둥이가 살고 있었읍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성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됩니다. 이들도 이젠 별수없이 굶어 죽기를 기다릴 밖에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성에 들어가도 굶어 죽을 것이고 거기 앉아 있어도 굶어 죽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견을 모았습니다. "차라리 아람군대에 항복이나 하자. 우리를 살려주면 살려니와 죽이면 죽을 뿐이지 않는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밥 구경이라도 한번 해보고 죽자." 그래서 새벽 어두침침할 때 일어나 아람군의 진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입니까? 그 곳엔 아람군인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밤에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큰 군대의 소리와 병기, 말소리를 듣게 하셔서 그들이 목숨만이라도 구하자 하고 모든 것을 다 남겨 두고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네 문둥이는 닥치는 대로 먹고 먹고 먹고 또 먹었습니다. 이젠 배가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장막 저 장막 다니며 금, 은, 옷 등을 모아다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그렇게 하다보니 사마리아 성내에서 지금도 굶어 죽어가는 동족들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서로 말하였습니다. "야, 우리 하는 짓이 옳지 못하다. 오늘은 이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인데 우리가 잠잠하고 있어서야 되겠니? 만일 날이 밝기 까지 이 기쁜 소식을 성에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큰 벌이 내릴 것이니 어서 가서 왕궁에 가서 전하자."
그들이 전한 소식은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 소식이었겠어요. 그 소식 때문에 사마리아는 모두 굶어 죽을 위기를 기적적으로 면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복음은 바로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양식이 쌓여 있다는 소식처럼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복 복(福), 소리 음(音)"자를 써서 복음이라고 해요. 복된 소식이라는 뜻이죠.
부자에게도, 박사에게도, 대통령에게도,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도, 남자나 여자에게도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이 생명의 떡을 얻지 못하면 그 누구라도 사마리아 백성 처럼 굶어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빵이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겐 기쁨이요, 소망이며, 행복이고 힘이며, 구원인 것 처럼,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기쁨이요, 소망이며 행복이고, 힘이며 구원이 되시는 생명의 떡입니다.
세상의 구석구석에, 아니 바로 우리 교회 옆에, 우리 마을에, 우리 학교에, 생명의 떡을 얻지 못하여 굶어 죽어 가는 영혼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비웃고 조롱하다가 지옥에 갔습니다. 나에게 빵이 있으면 빵으로, 지식이 있으면 지식으로 남을 도울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꼭 전해주어야 합니다. 영혼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르완다 같은 곳에서 하루에도 수 천명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구제 물품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래도 부족합니다. 북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기아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건너 불보듯이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북한은 생명의 빵으로 굶주려 있습니다. 영혼이 영양실조에 걸려있습니다. 김정일로부터 모든 공산당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명의 빵을 먹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이나라의 통일은 올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에도 어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야 합니다.
사마리아 문둥이의 양심적인 말을 명심하세요. "우리의 행위가 좋지 못하도다. 오늘날은 기쁜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어서 가서 왕궁에 고하자."
복음은 바로 굶어 죽어 가는 사람에게 양식이 쌓여 있다는 소식 처럼 기쁜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반드시 속히 전해야 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벌이 미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들을 향하여 부탁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우리가 가야할 땅은 온 천하입니다. 우리가 소식을 들려 주어야할 사람은 온 세상 만민입니다. 복음을 세계에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교는 하면 좋고 안해도 괜찮은 그런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아니, 하면 살고, 안하면 죽는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전하지 않으면,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우리는 다 망합니다. 사마리아 문둥이가 날이 밝기까지 전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우리 교회도, 우리 나라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바울 선생님은 말씀했습니다. " ...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
(행20:22-24)
사명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심부름'이예요.
어느날 아빠가 순이에게 편지를 주며, "순이야! 이 편지를 꼭 외삼촌에게 전해주어라!"하고 심부름을 시켰어요. 그런데 순이는 외삼촌 집에 가다가 산에 올라가 신나게 놀다가 돌아왔어요. 아빠는, "순아! 외삼촌에게 편지를 갖다 드렸지?"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뇨? 여기 그대로 있어요!"하며 도로 내밀었어요. 그런데 그 편지는 오늘 두시까지 외할머니가 시골서 서울역으로 올라오신다는 편지였어요. 분명히 외할머니는 서울역에 올라오셔서 기다리시다가 길을 찾아 헤메실테니 이걸 어쩜 좋아요? 아빠가 순이를 그냥 놔둘까요? 야단칠까요? 아빠는 순이의 종아리를 몹시 때렸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무척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게을러서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절대로 안되요. 요나 선지자도 니느웨에 심판의 소식을 전하라는 사명을 피하여 다시스까지 도망갔다가 결국에는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어요. 죽음 직전까지 가고 나서야 깨닫고 니느웨에 가서 심판의 소식을 전파하였지요.
1. 목숨까지 내놓고 전도한 바울
바울은 세계에서 제일 전도를 많이 했던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었어요. 바울은 전도를 하기 위해 세계를 세 번이나 여행했어요.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 큰 문제가 생겨서 큰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바울이 예루살렘을 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어요. 바울은 봇짐을 꾸리고 예루살렘으로 떠났어요.
"내가 예루살렘을 가야 한다! 이것이 나의 사명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위험하다고 막았어요. "바울 선생님! 예루살렘에 가시면 위험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내 목숨이 아깝다고 안할 수는 없습니다!"하고 기어이 예루살렘으로 갔어요. 그리고 바울은 죽을 것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자기가 할 일을 다 했어요. 그리고 난 후 유대인에게 붙들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어요.
그러나 바울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자기는 하나님이 시킨 심부름을 잘 했기 때문이었어요.
2. 왜 사명이 귀한가?
그러면 왜 바울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놓다시피 했을까요? 그 까닭은,
ㄱ. 자기가 주님의 은혜로 죽을 죄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원래 죄 때문에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그 은헤를 갚으려고 하나님의 심부름을 잘 하는 거예요.
ㄴ. 다른 사람에게도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쁜 소식을 자기 혼자만 알고 있는 사람은 욕심장이예요.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은 그것을 듣지 못한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 주어야 훌륭한 사람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은 천국에 가는 비결을 남에게도 알려 주어야겠 다는 마음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곧 남에게 전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ㄷ.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많이 전하면 천국에 가서 찬란한 면류관을 얻기 때문이예요.
여러분이 심부름을 잘 하고나면 칭찬도 받고 심부름값도 받는 것 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시키신 사명을 잘 순종하면 먼훗날 천국에 가서 큰 면류관을 받게 된답니다.
예화1)
1907년 러시아(지금의 소련)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고 난 후 하나님을 믿는 모든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은 붙잡혀 죽거나 외국으로 도망쳐야 했어요. 그중 많은 성도들은 소련의 옆에 있는 폴란드에 가서 신학교를 세우고 소련에서 탈출한 청년들을 입학시켜 꾸준히 하나님의 종들을 키웠어요. 그리고 모든 졸업생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임명 받자마자 철조망을 넘어 소련으로 숨어 들어갔어요.
열명이 철조망을 넘으면 아홉명은 국경에서 죽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고 혹은 지뢰를 밟아 죽고 혹은 붙들려 맞아죽고 혹은 전기 철망에 감전되어 죽었어요. 그래도 하나님의 종들은 졸업만 하면 그 철조망은 넘어 소련땅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어요.
지금도 소련 국경에서 죽은 그분들의 무덤이 폴란드에 있답니다.
그런데 그중 간신히 국경을 넘어 들어간 사람들은 혹은 한 두 사람 전도하고 붙들려 죽고 어떤 사람은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붙잡혀 죽었어요.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계속 국경을 넘어들어가 복음을 전했어요. 그들에게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의 소원은 나의 조국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죽거나 내 조국의 국경에서 죽는 일이다!"하고 대답했어요.
이렇게 수백 수천의 러시아인들이 자기의 조국땅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어요. 그러나 그들이 전한 복음의 씨는 헛되지 않아 지금은 소련에 많은 교회가 생겨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명은 목숨보다 귀중하답니다. 우리 어린이들도 먼저 여러분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부터라도 복음을 전해야 되겠어요.
예화2)
서울 아현동에 정희라는 어린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정희는 예수님을 믿는 후 온 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엄마! 엄마도 예수믿고 천국 가, 응?"하고 말했는데 야단만 맞았어요. 왜냐구요? 엄마는 부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어요. 아빠도 마찬가지로 정희에게 핀잔만 주었어요. "야! 교회를 다니려면 너나 다녀! 아빠는 술담배 때문에 교회 못나간다!" 정희는 동생 정민이에게 교회를 나가자고 했어요. 그러나 동생 정민이도, "난 테레비 볼 거야! 교회는 재미도 없어!"하고 대답했어요. 교회는 절대로 재미로 다니는 곳이 아니예요.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교회에 가면 뭐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하고 오지만 그런 어린이 일수록 실망하기가 쉬워요.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지 놀기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동생 정민이는 놀거리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희는 가슴이 아파 날마다 울면서 기도했어요. "예수님! 우리집 식구들이 다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러던 어느날 동생 정민이가 다리가 아파 자리에 눕게 되었어요. 병원에 가 보았더니 의사 선생님은 관절염이라고 집에서 몇달을 쉬어야 나을가 말까 하다는 것이었어요. 한달이 지나도 더 심해지기만 할 뿐 정민이의 다리는 점점 더 아파만 갔어요. 엄마와 아빠는 정민이가 불쌍해 눈물만 흘릴 뿐이었어요. 그때 정희는 엄마 아빠에게 말했어요. "엄마! 나 정민이 위해 기도하고 싶어!" "뭐? 기도?" "어디 해봐라!" "응! 그럼 엄마 아빠도 눈감고 기도해!" "그래 눈 감을께!" 정희는 정민이의 아픈다리를 봍들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정민이가 불쌍해 눈물이 쏟아지며 울음이 나왔어요. 정희는 울면서 정민이의 다리가 낫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어요. 정민이도 눈물이 글썽했고 엄마 아빠도 울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기적이 벌어졌어요. 다음날은 주일날이었는데 정민이는 다음날 아침에 벌떡 일어나더니, "누나! 예수님이 내 다리 고쳐주셨나봐! 나 하나도 안 아파! 빨리 교회 가!"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정말 정민이의 다리는 모두 다 나았답니다. 그날 정민이 뿐 아니고 엄마 아빠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고 교회를 나가게 되었어요. 지금은 엄마 아빠가 정희보다 더 믿음이 좋아졌답니다.
이렇게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신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부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심부름을 잘 할 수 있도록 방법도 길도 잘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수1:5-6)
순애네 아빠는 술주정뱅이였어요. 술만 먹으면 집에 들어와 이것 저것 때려 부수고 순애와 엄마를 마구 때렸어요. 그래서 순애는 아빠가 제일 무서웠어요. 그런데 어느날 아빠는 집을 나갔는데 그후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았어요.
아빠는 순애와 순애 엄마를 버린 거예요. 순애는, "엄마, 아빠가 왜 안와?"하고 엄마에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엄마는 "아빠 얘긴 꺼내지도 마! 진절머리가 난다!"하는 것이었어요.
어느날 엄마는 순애를 데리고 고속버스를 탔어요. 순애는 버스에서 깜박 잠이 들었어요. 순애가 잠이 깨었을 때 엄마는 순애를 생전 처음보는 도시로 데려왔어요.
"엄마, 여기가 어디야?" "몰라도 돼! 순애야, 나 어디가서 전화좀 걸고 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응?" "네!"
엄마는 전화를 걸러 갔어요. 그러나 두시간을 떨며 기다려도 엄마는 순애에게 돌아오지 않았어요. 엄마는 순애를 버린 것이었어요. 순애는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마음 착한 아저씨를 만났어요.
"얘! 너 왜 여기서 울고있니?" "엄마가 전화걸러 갔는데 두시간이 지났어도 안와요!"
"안됐구나! 나를 따라오너라."
결국 순애는 고아원에 가서 다른 고아들과 같이 살게 되었어요.
1.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셔요.
순애엄마가 순애를 버린 것은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을 받아 애굽땅에 노예로 끌려갔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버리지 않으시고 요셉을 애굽땅의 총리대신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 여호수아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도와주셨어요.
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셨답니다.
2. 호세아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사랑.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이면서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웠어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날마다 귀신, 우상들만 섬긴 까닭이었어요.
"하나님! 저렇게 죄많은 사람들을 왜 멸망시키지 않으십니까?"
젊은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들을 섬길 때마다 화가 끓어올랐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날 호세아에게 말씀하셨어요.
"호세아야! 너는 아내를 얻어 장가를 들어라!"
"어떤 여자를 얻을까요?"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아내로 얻어라!"
"네? 고멜이요? 아휴, 그 여자는 품행이 안좋다고 온 동네에 소문난 여자입니다!"
"그래도 그 여자를 아내로 얻어라!"
할 수 없이 호세아는 디블라임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었어요. 한편 디블라임은 그의 딸 고멜이 하도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이 나서 시집을 어떻게 보내나 하고 걱정하던 차에 호세아가 찾아 오자, "뭐? 내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거 잘됐군!"하고 반가와했어요.
얼마후 호세아와 고멜은 결혼을 했어요. 그러나 결혼을 한 후에도 고멜은 남편 호세아 몰래 날마다 다른 남자들을 만나 쏘다녔어요.
"여보! 오늘은 누굴 만났어?" "흥! 웬 간섭이예요! 처녀때 연애하던 미스터 아무개씨를 만나고 왔어요."
"제발 집에 붙어 있어!" "내가 강아지인줄 아셔요? 못해요!"
이윽고 고멜은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어요. 그러나 호세아는, "흥! 저 애들은 나의 아들 딸이 아니야!"하고 말했어요. 그 까닭은 고멜이 너무 행실이 지저분했기 때문이예요.
아이들을 낳고도 고멜은 계속 다른 남자들과 데이트를 했어요. 화가 난 호세아는 담을 놓이 쌓고 가시로 울타리를 해놓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러나 고멜은 가시에 찔려가며 울타리를 넘고 담을 뛰어넘다가 발을 삐면서도 도망을 가서 다른 남자들을 만났어요.
밖에 나가 전도를 하고 돌아온 호세아는 고멜이 도망친 것을 알고
"흥! 이제는 끝장이야! 그런 여자와는 더 이상 살지 않을거야!"하고 말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야! 고멜은 다른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 너는 은돈 열다섯냥과 보리쌀을 한말 반 가지고 가서 고멜을 사와라!"하는 것이었어요.
호세아는 할 수 없이 가진 돈과 곡식을 툭툭 털어 고멜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갔어요.
"여보세요! 여기 고멜이라는 여자있어요?" "누구야?"
우락부락한 남자가 나타났어요.
"우리 아내 고멜을 찾으러 왔습니다." "못줘! 고멜은 내 마누라야!"
"여기 돈과 곡식이 있습니다. 이걸 드릴게 제 아내를 돌려주시오!"
"뭐? 이야! 은돈 열다섯냥 아냐? 좋아! 그렇게 하지!"
호세아는 분하지만 바보처럼 돈과 곡식을 주고 자기 아내를 사왔어요.
그리고 고멜에게, "여보, 이제 마음잡고 잘 살아봅시다. 그리고 절대 다른 남자 만나지 말아요. 응?" 하고 부탁하는 것이었어요. 그제서야 고멜은 눈물을 흘리며, "여보 그동안 제가 잘못했어요. 저를 용서해 주세요!"하고 빌었어요. 그날밤 호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호세아야! 네가 이제야 깨달았느냐? 고멜은 너를 버렸을지라도 너는 끝까지 그를 사랑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지만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고로 끝까지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어요.
어린이 여러분! 이와같이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어리석고 허물이 많아도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신답니다. 이렇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매맞을 짓을 하지 말고 복받을 일만 하며 삽시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얻을 때까지 인내하시면서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예요. 그러나 방주의 문이 닫혀진 것처럼 더 이상 참지 못하실 심판의 날이 닥쳐올 거예요. 그 날이 오기전에 절대로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말고 또 많은 다른 어린이들도 구원하는 여러분이 되세요.
주님을 떠났더니
(욘1:1-4)
철주는 서울 목동에 살고 있는 어린이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 아빠와 같이 서울 대공원에 놀러 갔어요. 마침 공휴일이라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속에 있는 콩나물처럼 많았어요. 그래서 아빠는, "철주야! 아빠 엄마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말고 꼭 붙어다녀! 혼자 멀리 가면 안돼!"하고 당부까지 했어요. 그러나 철주는 아빠의 말씀을 무시하고 혼자 원숭이를 구경하러 갔다가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어요.
잠시 후 엄마 아빠가 없어진 것을 안 철주는 징징 울면서 한시간이 넘게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데 마침 대공원에서 일하시는 분이 철주를 미아보호소로 데리고 갔어요. 철주는 세시간이나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는데 그제서야 엄마 아빠가 찾아와 철주를 붙들고 엉엉 우는 것이었어요.
그 후 철주는 다시는 엄마 아빠를 떠나 혼자 멀리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1. 다시스로 떠난 요나.
성경에도 철주처럼 어리석은 아저씨가 있어요. 그 분의 이름은 요나라는 선지자예요. 요나는 어느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요나야! 너는 니느웨성에 가서 그 성의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외치라! 만일 그 성 사람들이 끝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나는 그 성을 유황불로 멸망시킬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어요.
"칫! 니느웨는 우리나라의 원수인 앗수르나라의 수도이니 유황불로 망하면 쎔통인데 하나님은 왜 그 도시를 구원해 주려고 하시지?"
요나는 부둣가에서 니느웨로 가는 배를 탈까 말까 하다가 "엣다! 모르겠다! 아무 배나 타자! 난 니느웨 안 가! 니느웨야 망하든 말든 난 거기 안 가!"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올라탔어요. 그리고 배 밑창으로 내려가 드러누어 쿨쿨 잠을 잤어요.
2. 풍랑을 만난 요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친 요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어요.
"엣다! 혼좀 나봐라!"
하나님은 바다위에 무서운 태풍을 불게 했어요. 요나가 탄 배는 금방 뒤집혀질 것처럼 흔들렸어요. 배에 탄 사람들은 살기 위해 모든 짐을 다 바다에 내던지고 별 수를 다 써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자 각자 그들이 믿는 신들에게 기도를 하고 염불을 외우는 것이었어요.
그래도 소용이 없자 선장은, "아무래도 우리들 중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있는 모양이예요! 우리 모두 모여 제비를 뽑아봅시다!"하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선장은 잠자는 요나까지 깨워서 제비뽑기를 하도록 했어요. 제비는 요나에게로 돌아갔어요. 사람들은, "아니 당신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배를 탄 거요?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우리까지 고생하게 하는 거요?"하고 요나에게 물었어요.
요나는,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요! 내가 하나님을 떠나 다시스로 가다가 이 꼴이 됐오. 자! 염려말고 나를 바다에 던지시요!"하고 말했어요.
"첨벙!" 요나는 바다에 떨어졌어요. 그 순간 바다는 고요해지고 바람이 그치는 것이었어요.
3. 다시 돌아온 요나
요나는 죽을 결심을 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의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았어요. 요나가 정신을 차려보니 차갑고 숨막히는 깜깜한 곳에 들어가 있었는데 어디인가 알고보니 큰 물고기 뱃속이었어요.
요나는 죽기만을 기다리며 삼일을 견뎠어요. 그러나 죽지는 않고 숨만 답답하고 배만 고프고 목이 말랐어요. 그제서야 요나는 울면서 하나님께 회개를 했어요. 용서를 빌었어요.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살려주신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요나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큰 물고기는 요나를 뱉아버렸는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바닷가였어요. 요나는 물어물어 니느웨 성을 찾아갔어요.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니으웨성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고 니느웨성은 멸망 직전에 구원을 받았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원치않는 곳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고통과 슬픔만 닥치는 것이랍니다.
강원도 산골 작은 마을에 두용이라는 주일학교 어린이가 살고 있었어요. 두용이의 엄마는 교회 권사님이었는데 두용이는 나이가 점점 많아지자 교만한 마음이 들어와 교회를 안나가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엄마가 야단치고 사정해도 두용이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쁜 친구들과 같이 쏘다니며 쌈질만 하고 말썽만 부렸어요.
그러다가 두용이는 기어이 집을 나가 서울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이리 저리 다니다가 결국 깡패가 됐어요.
두용이는 중고등학교 때 유도와 태권도를 했기 때문에 곧 깡패두목이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다른 동네 깡패가 침범해 왔다는 말을 들었어요.
"무엇이? 놈들이 우리 구역에 발을 들여놔? 당장 가서 혼을 내주어야지!"
두용이는 조무래기들을 데리고 쳐들어갔어요.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싸움이 벌어졌어요. 칼이 번득이고 쇠몽둥이가 날랐고 깨진 맥주병이 휙휙 날렸어요.
"으윽!"
두용이는 그만 무시무시한 쇠몽둥이를 맞아 쓰러졌어요. 그리고 정신을 잃었어요.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어요. 의사가 말했어요.
"이제 정신이 들었군! 빨리 수술해서 팔을 잘라야 해!"
"네? 두용이가 힐끗 보니 두용이의 팔은 피투성이가 되었는데 얼마나 많이 부러졌는지 뼈가 없는 것 같이 흐느적거렸어요. 그리고 얼마나 아픈지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어요.
의사는, "흥! 고집도 세군! 난 그럼 책임질 수 없소!"
의사는 응급치료만 한 후에 나갔어요.
두용이는 그제서야 자기를 위해 날마다 울며 기도하시던 어머님의 생각이 났어요.
"내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천벌을 받았어! 오! 주님 용서해주십시오! 만일 제 팔을 자르지만 않게 해주시면 주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두용이는 밤새 울며 주님께 죄를 회개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자기의 아픈 팔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어요. 두용이가 얼핏 보니 그 손은 바로 못박힌 예수님의 손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두용이는 팔을 자르지 않고도 팔이 감쪽같이 나았어요. 의사도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혀를 내두르며 칭찬했어요. 그후 두용이는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 예수를 믿어 훌륭한 목사님이 되었어요.
(결론) 이와 같이 요나처럼 주님을 떠나 죄악을 향해 가면 무서운 풍랑이 닥쳐 고생만 겪는답니다. 그러나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뉘우치면 하나님은 다시 불러 사용하시는 거예요. 우리 모두 요나처럼 주님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드려요.
(기도) 사랑이 많으신 주님, 참으로 저희들은 어리석고 미련하여 주님을 떠나 이리 저리 헤매기 쉽습니다. 부디 저희들의 손을 주님이 꼭 붙들고 주님만 따라가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믿음을 지킨 세 청년
(단3:13-18)
1. 포로가 된 세 청년
옛날 바벨론이란 나라의 궁중에는 지혜로운 유대 소년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들은 바벨론 나라가 유대땅을 쳐들어 갔을 때 붙잡아온 포로들이었는데 너무 똑똑한 소년들이었기 때문에 왕이 궁중에 있는 학교에 입학시켜 공부를 시키고 있었어요.
당시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왕이었어요. 그러나 유대 소년들은 궁중학교에서도 결코 그들의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어요.
얼마후 그중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똑똑하다고 소문이 나서 바벨론의 여러 곳에 도지사가 되어 벼슬을 하게 되었어요.
그 후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가 믿는 신의 모습을 새긴 큰 금 우상을 만들어 낙성식을 하게 되었어요.
"여봐라! 내가 만든 큰 금 우상에 전국의 각 도지사와 군수와 면장, 포도대장들을 참예시켜야겠으니 모두들 오라고 해라!"
얼마후 전국에서 몰려온 모든 관리들은 금신상 앞에 가득히 모였어요. 그중엔 유대의 청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있었어요.
사회자는, "자! 지름 군악대가 팡파르를 연주할테니까 모두들 땅에 넙죽 엎드리어 금신상에 절을 하시오!"
곧이어 군악대가 빵빠라 빵빠 하면서 나팔을 불었어요. 모든 사람들은 땅에 엎드려 큰 절을 했어요. 그러나 그 때에 하나님을 믿는 세 청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고 뻣뻣히 일어선 채로 있었어요.
2. 풀무불에 던져진 세 청년
세 소년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을 본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갈대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세 청년들을 고자질해서 죽게 한 후 그 청년들의 벼슬을 차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임금님께 나아가서, "폐하! 만수무강 하옵소서! 그런데 폐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폐하가 만드신 금신상에 절을 하지 않은 자들이 있사옵니다! 그들을 큰 벌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그들은 법대로 뜨거운 풀무불속에 던져 넣어 죽게 해야 마땅합니다!"하는 것이었어요.
느부갓네살은 무척 화가 나서, "도대체 그놈들이 누구냐? 엉?"하고 흥분했어요. 갈대아인들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하고 일러 바쳤어요.
"무엇이? 그 청년들이?"
느부갓네살은 세 청년을 사랑했기 때문에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세 청년을 불렀어요. 그리고 자상한 말로, "너희들 왜 그랬느냐? 아마 깜빡 실수한 거겠지? 지금이라도 다시 나팔을 불게 할테니까 어서 가서 금신상에게 절을 해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풀무불 속에 들어가 죽게 된다. 내 말의 뜻을 알겠지?"하고 잘 설득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세 소년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어요.
"폐하! 저희는 한마디로 대답하겠는데 저희는 저 금신상에 절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 사람들아! 자네가 믿는 신이 자네들을 풀무불에서도 살려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게들!"
그러나 세 청년은, "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저 풀무불 속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저희는 금신상에 절할 수 없습니다!"하고 말했어요.
"무엇이? 건방진 녀석들! 내 호의를 무시하다니! 좋다! 여봐라! 풀무불을 무지무지하게 뜨겁게 살라라!"
무서운 풀무불이 활활 타올랐어요. 그리고 잠시 후 세 청년은 이 뜨거운 불덩어리 속에 던져졌어요.
3. 구원받은 세 청년
그러나 불속에 던져진 청년들은 죽지않고 불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어요. 가만히 보니 누군가 거룩하신 분이 이 세 청년 가운데서 세 청년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었어요. 느부갓네살은 깜짝 놀라, "으잉? 저 저럴수가! 불에 타기는커녕 오히려 더 힘이 나서 노래 부르지 않느냐? 여봐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어서 그 불속에서 나오너라! 내가 잘못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불에서 나왔는데 참 신기하게도 세 청년의 옷이나 머리카락이나 아무 곳도 불에 덴 자욱이나 그슬린 자국이 없었어요. 왕은 그제서야, "여봐라! 모두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라. 그리고 내가 전국에 영을 내리는데 이 세 청년이 섬기는 하나님을 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좋으니 그 자리에서 그 자를 즉결로 사형에 처하라! 그리고 이 세 청년은 오늘부터 벼슬을 올려 더 높은 귀족이 되게 하겠노라!"하고 큰 소리로 어명을 내렸어요.
그 후 세 청년은 하나님을 잘 섬기며 큰 축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았어요.
이 세 청년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킨 거에요. 믿음이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너는 나를 믿으라, 그러면 나는 너를 구원하리라!"
만일 우리가 그를 믿는 믿음을 버리면 하나님은, "너는 나를 버렸으니 나도 너를 구원하지 않겠노라!"하고 말씀하실 것이 틀림없어요.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이예요. 어린이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에 계신 부모님이 여러분을 낳았다고 믿으시죠? 그러나 여러분이 그걸 어떻게 믿어요? 직접 눈으로 보았나요? 보지는 못했죠? 그러나 확실히 '저분들은 나를 낳으신 분들이다!'하고 믿고 또 의심하지도 않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들의 눈에는 안 보여도 분명히 살아계시며 또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을 꼭 구원하시고 복주실 거예요.
(결 론) 우리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하나님을 굳게 믿고 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 믿음을 버리고 우상에게 절을 하거나 죄를 짓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겠어요.
버림받은 왕
(삼상15:22-23)
처음에 이스라엘엔 왕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쟁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그때마다 사사가 일어나 나라를 지키곤 했어요. 그러나 그 때마다 사사가 군사를 소집하고 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거렸고 그래서 전쟁에 빨리 대처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백성들은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들과 같이 왕을 주십시오."하고 하나님께 간청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왕을 세우셨는데, 바로 사울왕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맨 처음에 사울은 겸손하고 믿음좋고 효성스러운 청년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임금님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그러나 나이가 점점 많아지자 사울의 마음은 차차 거만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말았어요. 그러면 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었나를 생각하며 같이 교훈을 얻어봅시다.
1. 불순종하기 시작했어요.
사울은 군대가 많아지고 돈이 많아지자 사무엘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차차 무시하고 불순종하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했어요.
"옛날 우리 민족을 못살게 굴었던 아말렉 족속들을 쳐부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붙잡은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셔야 한답니다."
이윽고 전쟁이 벌어지고 사울은 큰 승리를 했어요.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의 왕을 붙잡았으나 죽일 생각도 안하고 짐승들도 살찐 짐승들만 골라 감추고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아까운 짐승들을 죽이긴 왜 죽여? 집에 끌고 가서 두고 두고 잡아 막자!"하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은 자기 명령을 거역하는 사울이 무척 괘심했어요. 그래서 사무엘을 보내 사울을 책망했어요.
"왕이시여! 당신은 왜 하나님의 명령을 그스르고 저 짐승들을 살려놓으셨습니까?"
사울은 우물쭈물 거짓말로 변명했어요. 그러나 사무엘은, "듣기 싫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불순종은 우상숭배와 같소!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당신을 버렸소이다!"하고 딱 잘라 말했어요.
그때부터 사울에게서는 성령이 떠나시고 악신이 붙어 괴롭히기 시작한 거에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종들의 말을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며 마귀를 불러들이게 된답니다.
2. 미워하고 질투했어요.
사울이 더욱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일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소년 다윗을 미워하고 질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어요.
다윗은 원래 양치는 목동이었는데 어느날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블레셋의 무서운 장수 골리앗을 단번에 물맷돌로 쳐 죽였고 전쟁을 이스라엘의 승리로 이끌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후 이스라엘 여인들이 노래를 지어 부르는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일세!"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후로부터 사울은 아무 이유없이 죄없는 다윗을 미워하고 질토하여 죽이려고 애를 썼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괴롭히면 하나님으로부터 천벌을 받는답니다. 그래서 사울은 날마다 미친 병에 걸려 시간만 되면 발작을 하며 괴로워 했고 악신의 포로가 되었어요. 그래도 사울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다윗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없다! 으드득!"하고 이를 갈았어요.
이렇게 죄없는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한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서로 미워하며 헐뜯으면 하나님은 사울을 버린 것처럼 우리도 버려 그 축복을 거두어가실 수가 있어요. 믿는 형제끼리 절대 다투지 말고 사랑해야 되겠어요.
3. 무당을 찾아갔어요.
사울이 정말 저주를 받아 죽게된 사건은 사울이 하나님을 떠나 무당을 찾아간 일이 있을 직후에 일어났어요.
무당은 귀신을 섬기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제일로 싫어하는 사람이예요. 그러나 사울은 하도 답답하니까 뭘좀 물어보고 싶어 무당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어요.
그 날 하나님은 비로소 사울의 생명을 거두어가실 결심을 하셨어요.
다음 날 사울은 날이 밝자 전쟁터에 나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화살에 맞아 길보아산으로 간신히 기어올라갔어요. 그리고 자기 칼을 땅에 거꾸로 세워놓고 그 위에 엎드러져 자결했어요.
이렇게 사울은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믿는 형제를 미워하고 귀신의 종을 찾아갔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답니다.
(예 화) 서울 미아동에 경선이라는 개구장이가 살고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교회를 잘 나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이 떡을 들고 와서 경선이에게 말했어요.
"얘! 너 저기 절에 가봐! 지금 큰 잔치가 벌어졌는데 사탕도 주고 떡도 줘!"
"뭐? 어디!"
경선이는 자기도 모르게 절에까지 달려갔어요. 배가 고픈김에 떡이나 얻어 먹자는 생각에서였어요.
과연 큰 잔치였어요. 큰 상에 가득히 떡과 사탕과 각종 과일이 쌓여있었어요.
경선이는, '내가 예수를 믿는데 이걸 먹어도 될까?'하고 주저했지만 용기를 내어 "중아저씨! 떡좀 주세요."하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러자 "뭐? 중아저씨? 스님이라고 불러!"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스님아저씨! 떡좀 주세요!"했더니 이번엔, "떡을 줄테니 그대신 우리 부처님께 세 번 절해라!"하는 것이었어요.
경선이는, '교회에서 선생님이 우상에게 절하지 말랬는데 .....' 하면서 떡이 먹고 싶은 욕심에, '에이 눈 딱감고 세 번 절하자. 배 고픈데 이것 저것 가리게 됐어?'하고 부처에게 절을 세 번이나 하고 떡과 사탕을 얻어먹었어요.
그런데 그날 경선이는 밤새 앓았어요. 끙끙 앓는데 부처 우상이 자꾸만 보였어요. 경선이는 그제서야 자기가 큰 죄를 지은 것을 깨달았어요.
경선이는 비틀거리는 몸을 끌고 새벽에 교회로 갔어요. 그리고 강대상 앞에 무릎꿇고 울며 회개했어요.
"예수님! 잘못했어요. 그깟 떡 몇 개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우상에게 절했어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참 신기한 일이었어요. 경선이가 울며 기도를 드린지 십분쯤 지나니까 정신이 맑아지며 아프던 몸이 말장해진 것이었어요. 그제서야 경선이는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신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귀신에게 절하거나 제사떡을 먹은 일이 없답니다.
(결 론) 이와 같이 예수님이 싫어하는 것 즉 불순종하고 고집부리는 일과 믿는 형제를 미워하는 일과 귀신을 찾거나 우상에게 절하는 일 이 세가지는 하나님의 무서운 벌을 받게 되며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답니다. 여러분은 사울처럼 버림받지 말고 다윗처럼 축복받으시기 바랍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마7:1-11)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만 주신 제일 큰 특권이 있어요. 그것은 기도예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하셨어요.
1. 아버지는 우리가 달라는 것을 주셔요.
여러분도 집에 아버지가 계시지요? 여러분이 입이 심심해서 무언가 사먹고 싶으면, "아빠! 돈좀 줘요!"하며 손을 내밀지요. 그럼 아빠가, "내가 번 돈인데 왜 너에게 주냐? 못준다. 네가 누구냐?" 하시겠어요?
또, "그러면 너 어려서부터 이제까지 아빠가 네게 꾸어주는 돈이 도합 이백 칠십 오만 육천 오백원째다. 너 큰 다음에 삼부로 이자쳐서 꼭 갚아야 한다!"하고 주시나요? 아마 그런 아빠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엄마 아빠는 우리가 달라면 돌려 받을 생각도 안하시고 그냥 주셔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우리가 이웃집 아저씨에게, "아저씨 나 장난감사게 돈좀 천원만 줘요!"하고 말했다간, "내가 네 아버지냐? 네 아버지에게 달래!"하고 야단만 맞을 거예요.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요한복음 1장 12절에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그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들어주실 거예요.
2.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달라는 대로 무조건 다 주시는 것은 아니예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신답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버지께, "아버지! 나 산돼지 잡게 사냥총 하나만 사줘요!"하거나, "아버지! 나 술담배 좀 배우게 술한병하고 담배 한갑만 줘요!"하면 아버지가 주시겠어요? 아버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배고플 땐 먹을 것! 추울 땐 입을 옷! 공부할 땐 연필과 공책! 아플 땐 약! 신발이 다 떨어졌을 땐 운동화 등을 주실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보시고 계셔요.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이라면 두말 않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예요.
3. 하나님은 믿음있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셔요.
아무리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 해도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소원만 들어주셔요.
"흥! 하나님이 정말 들어주실까? 거짓말 일거야!"하고 의심하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으실 거예요.
엘리야 선지자는 삼년 육개월 동안이나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데도, "비가 올 줄로 믿습니다! 비를 내려주십시오!"하고 하나님께 일곱 번이나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처음엔 손바닥만하던 구름이 일어나더니 나중엔 그 구름이 먹장구름이 되어 하늘을 덮고 곧 소나기가 쏟아져 마른 땅을 적시고 개울물이 좔좔 흐르게까지 되었답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에요.
(예 화) 강원도 원주에 철호라는 주일학교 학생이 살고 있었어요. 철호는 소원이 하나 있었어요. 그것은 엄마나 아빠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철호는 어느날 큰 결심을 했어요.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댔어! 오늘부터 엄마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드려야지!"
철호는 이왕이면 엄마 아빠가 예수님을 빨리 믿게 해달라고 금식기도를 하기로 했어요. 금식기도는 음식을 먹지 않고 드리는 기도인데 하나님이 금식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은 특별히 빨리 들어 주신답니다.
첫째날 철호는 아침을 먹지 않았어요. 엄마 아빠는, "아니, 철호야. 너 왜 밥을 먹지 않니?"하고 물었어요. 철호는, "엄마 아빠 예수님 믿게 해달라고 금식기도를 하는 거예요"하고 대답했어요. 엄마와 아빠는, "참 네가 사람 웃길줄도 다 아는구나, 어디 네가 몇끼나 굶나 보자!"하고 코웃음을 쳤어요.
그러나 철호가 꼬박 하루를 굶으며 기도를 하자 엄마와 아빠는 화가 났어요. 그러더니, "너 정말 엄마 아빠 속 썩일테냐? 빨리 밥 안먹어? 너 맞는다!"하고 겁을 주기도 했고, "제발 부탁이다. 밥 안먹으면 죽어! 빨리 먹어, 응?"하고 애걸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철호는 둘째날도 밥 한 숟가락도 안먹고 꼬박 굶었어요. 철호는 살이 쏙 빠져 뼈만 남았고 비틀비틀 걸어 다니는 것이었어요.
엄마는, "쟤가 저러다 죽으면 어떻게 해요? 큰일 났어요!"하고 걱정하시고, 아빠는, "저 녀석이 교회를 나가더니 미쳤어! 교회를 때려 부수든지 해야지!"하고 펄펄 뛰었어요.
철호는 삼일째도 꼬박 굶었어요. 이제 철호는 갈비만 남아 곧 쓰러져 죽을 것만 같았어요. 참다못한 철호 엄마와 아빠는 교회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목사님을 불러냈어요. 철호 아빠는 다짜고짜 목사님의 멱살을 붙들고, "내 아들 살려내! 네가 내 아들 굶어 죽으라고 시켰지?"하고 막 때릴 듯이 방방 뛰었어요. 목사님은, "아아! 도대체 무슨 얘깁니까? 차근차근 말해 보세요!"하고 두 분을 진정시켰어요. 두 분은 멱살을 놓고 자초지종을 다 얘기했어요. 목사님은, "허허! 그거야 간단한 거 아닙니까? 철호를 살리는 건 간단합니다. 두 분이 교회에 나오시면 되는 겁니다!"하고 말했어요. 철호 아빠는, "흥! 그렇다고 내가 교회를 나갈줄 알고? 못나가요!"하고 대답했지만 그날밤 곰곰히 생각해보니, "철호 저 어린 것이 저렇게 굶어가며 기도하는데 교회에 뭔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를 안나간다면 정말 철호는 죽을지도 모른다. 일단 교회를 다니고 보자!"하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요. 그 다음날은 주일날이었어요.
교회에서는 양복을 입고 교회를 나와 예배 드리는 철호 엄마 아빠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어요. 그 날 설교말씀에 감동을 받은 두 분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지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답니다.
(결 론) 철호의 간절한 믿음의 기도는 삼일만에 응답받았어요. 이렇게 큰 소원은 믿음으로 기도하면 꼭 응답받는답니다.
그렇다고 오늘 집에 가서 밥 굶지는 마세요. 그것도 믿음이 있어야 되는 거지 믿음도 없이 시작하면 배만 고파요. 다만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꾸준히 기도하는 것은 언제고 반드시 들어 주신다는 거에요.
자,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 같이 기도드립시다.
선한 목자를 따라가요
(요10:10-15)
성경에 보면 우리들을 양으로 비유하는 구절이 많아요. 우리가 양이면 예수님은 무엇이 되지요? 목자가 되는 거예요. 양은 눈도 좋지 못한 근시이기 때문에 목자가 없으면 길을 잃기 쉬워요. 또 양은 이빨도 발톱도 약하기 때문에 목자가 지켜주지 않으면 늑대의 밥이 되기 쉬워요. 또 양은 목자가 없으면 물이 어디 있는지 맛있는 풀이 어디 있는지 찾아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양에게는 꼭 목자가 필요하답니다.
1. 예수님은 선한 목자
맞아요. 예수님은 어린 양같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예요. 예수님만 따라가면 아무 걱정이 없어요. 길을 잃고 지옥에 떨어질 걱정도 없고 죄 가운데서 헤맬 까닭도 없어요.
또 예수님만 따라가면 마귀의 꾀임에 빠지지도 않을 거에요. 또 예수님은 날마다 좋은 양식을 주셔서 우리 영혼을 믿음으로 잘 자라게 해 주실 거예요.
목자는 양을 잘 돌보기 위해서 몇가지를 가지고 다녀요.
첫째는 지팡이인데 그 지팡이로 위험에 빠진 양을 구해 주기도 하고 멀리 가는 양을 몰아오기도 한답니다.
둘째는 피리인데 이 피리는 흩어진 양떼를 모으고 인도하는데 사용됩니다.
셋째는 물매인데 이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 사용했던 것으로 사나운 짐승들을 쫓아내어 양을 지키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라는 사랑의 지팡이로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말씀이라는 피리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권능의 물맷돌로 마귀들을 쫓아주셔서 우리를 잘 보살펴 주신 답니다.
2. 도적과 강도
예수님은 선한 목자되시자만, 이 세상에는 삯군 목자가 있어요. 양의 탈을 쓴 늑대예요.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삼킬 자를 찾지만 때로는 천사로 가장해서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해서 쓰러뜨리고 넘어뜨리려고 해요.
삯군 목자는 양을 사랑하는 체 했지만 실상 사랑하는 것이 아니예요.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해서 멸망시키는 도둑과 같은 거짓 목자가 많아요. 그 거짓 목자들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악인들, 이단종파들 등과 같이 우리를 거짓 진리로 끌어가는 사람들을 말해요.
(예 화) 창호와 민수는 아주 가난한 빈민촌에 사는 어린이들 이었어요. 두 어린이는 어려서부터 한 교회를 다니는 친구였어요. 그러나 두 어린이의 부모님은 날마다 밖에나가 장사하느라고 두 어린이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두 어린이는 잡초처럼 마구 자랐어요. 어느날 한 동네에 사는 불량배가 두 소년을 불렀어요.
"꼬마들아! 너희들 돈 없지? 내가 돈 벌게 해줄까?"
"우리가 어떻게 돈을 벌어요?"
"짜식들! 내가 가르쳐줄게!"
두 소년은 그날부터 소매치기 하는 법을 배웠어요. 처음에는 두렵고 무서웠지만 자꾸 배우다 보니 재미있었어요. 그러부터 얼마후 드디어 불량배 형은 두 소년에게 말했어요.
"자! 이제, 이제까지 가르쳐준 것을 실습해봐야겠다! 저기 뻔지르르한 신사가 전화를 걸고있지 않니? 어서 가서 오른쪽 호주머니를 털어와봐라!"
창호와 민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중전화통으로 갔어요.
바로 그때 교회 종소리가 들렸어요. 민수는 깜짝 놀랐어요. 바로 어린이 예배 시간이었어요.
"아! 교회 선생님이 도둑질하고 죄지으면 지옥간댔어! 안돼!"
민수는 정신없이 교회를 향해 뛰어갔어요.
"야 민수야! 너 어디가니?" 창호의 말을 들은체 만체 민수는 교회당에 뛰어들어가 무릎을 꿇었어요.
"예수님!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다신 안그러겠어요!"
민수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어요. 그 후로 민수는 다시는 불량배를 만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얼마후 민수는 골목길에서 창호와 그 불량배를 만났어요.
"너 임마 이리와봐!"
"싫어요! 난 나쁜 일 안해요!"
"날 배신했어! 배신자의 말로를 보여주지!"
"제발 날 그냥 내버려둬요 형!"
"비겁한 자식! 붉은 피의 맛을 보여주마!"
어느새 그 불량배의 손엔 몽둥이가 들려있었어요.
그날 민수는 매를 죽도록 맞았어요. 그러나 마침 지나가던 방범대원 아저씨의 눈에 띄었기에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어딘가 부러졌을 거예요.
민수는 그 후 아무 탈 없이 교회를 잘 다녔어요. 그 후 민수는 공부를 잘해서 사법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유명한 검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금은방에서 무서운 강도 살인 사건이 터졌어요. 민수는 범인을 잡아 심문을 하려구 불러들였어요. 그리고 심문을 시작했어요.
"네가 금은방을 털고 사람을 죽인 범인이지?"
"네!"
"네 이름이 뭐야?"
"박창호 입니다!"
"박창호?" 민수는 범인의 얼굴을 바로 바라보았어요.
"창호! 네가 이게 무슨 꼴이냐? 나를 몰라 보겠느냐? 나 민수야."
"민수 ...... 네가 검사가 되다니! 아! 너를 볼 면목이 없다!"
"어쩌다가 이 꼴이 됐니? 임마."
"민수야, 너는 정말 그날 교회로 뛰어가길 잘 한거야! 예수님은 너를 이렇게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구나, 나는 그 왕초 때문에 인생을 망쳤어!"
정말이었어요. 창호는 그 불량배를 왕초로 섬기고 나쁜 짓만 하다가 기어이 사람을 죽이고 강도짓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고 말았어요. 그 후 곧 창호는 재판을 받아 사형을 언도받았고 그리고 얼마후 사형을 당해 죽고 말았어요.
(결 론) 좋은 목자를 따라간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꾸준히 따라가세요.
소돔이냐? 벧엘이냐?
(창13:8-13)
사람은 언젠가 한 번 큰 결정을 해야할 때가 옵니다.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영원히 기뻐하느냐 영원히 후회하느냐가 판가름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올바른 것을 선택하지만 미련한 사람은 그 순간의 욕심에 끌려 잘못된 것을 선택하여 영원히 울며 후회하는 것입니다.
1. 롯의 선택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은 아주 곤란한 문제가 생겼어요. 왜냐하면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들판에서 서로 자기 양떼에게 풀을 먹이겠다고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보라구! 여긴 우리가 먼저 왔으니까 우리 양떼들이 풀을 뜯어먹게 해야 한다고!"
"하참! 이 사람들아! 우리가 어제 맡아논 풀들인데 어찌 자네 양떼를 먹이나?"
목자들이 싸우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자 아브람은 롯을 불러놓고 말했어요.
"이보게, 롯! 아무래도 우리가 따로 떨어져서 사는 것이 좋겠네 그려. 자꾸 종들끼리 싸우니 이러다가 서로 의가 상하지 않겠나?"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헤어지는 것이 좋을까요?"
"응! 저기 요단강이 보이질 않나? 자네가 요단강 오른쪽 들을 차지한다면 난 왼쪽 들을 차지할 것이고 자네가 요단강의 왼쪽들을 택할 것이면 오른쪽들을 택할 것이네!"
"아니, 제가 먼저 택하라고요?"
"응! 부담가질 것 없어! 어서 결정해!"
롯은 곰곰히 생각했어요. 이 한 순간의 선택이 죽을 때까지 잘 살고 못살고를 좌우하는 판인데 잘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롯은 요단강 서쪽을 바라보았어요. 서쪽은 산이 많고 땅도 푸석푸석해서 농사도 안될 것 같고 양떼가 먹을 물이나 풀도 많지 않았어요. 그러나 요단강 동쪽을 바라보니 물도 많고 풀도 많아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어요. 게다가 시장이 있는 소돔성이 가까이 있어 물건사러 가기도 좋을 것 같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눈 딱감고 더 좋은 곳을 택하기로 했어요.
"저는 요단 동쪽을 택하겠습니다. 아저씨!"
2. 아브람의 선택
아브람은 롯이 요단 동쪽을 택하자 두말 없이 롯을 작별하고 종들과 양떼를 몰고 요단강 서쪽 벧엘땅으로 갔어요. 요단강 서쪽 벧엘땅은 비록 풀이나 물도 없고 돌만 많은 허연 돌산이었지만 아브람은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어요.
"주님! 감사합니다. 이 곳은 산이 많아 기도하기가 좋고 또 돌이 많아 하나님께 예배드릴 제단을 쌓을 돌걱정 안해도 되겠습니다. 비록 먹고 살기 어려워도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하고 예배 잘 드리면 저는 만족합니다."
아브람은 요단강 서편 벧엘땅에 들어가자마자 돌을 주워 제단을 쌓고 먼저 예배부터 드리기 시작했어요.
3.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은 아브람과 롯 두 사람이 선택한 것을 지켜 보셨어요. 롯이 선택한 것은 순전히 자기 욕심만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아브람이 선택한 것은 하나님을 매우 기쁘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만 큰 복을 내려주셨답니다.
롯은 소돔성 가까이로 자꾸 이사를 가더니 나중에는 죄 많고 흉악스런 소돔성에 쑥 들어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하나님도 잊고 기도도 안하고 예배도 안드리며 죄악에 물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노예들이 서로 칼로 싸워죽이는 것도 재미있게 구경하곤 했어요.
그러다가 소돔성에 큰 난리가 났어요. 무서운 전쟁이 벌어진 거예요. 롯은 전쟁에 패해서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가 아브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돌아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나이가 많아 늙은 후에는 소돔성이 불바다가 될 때 기껏 새로지은 양옥집도 다 태워버리고 아내도 잃고 두 딸과 같이 산골짝이에 들어가 오두막집에서 쓸쓸히 사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어요.
여러분 누가 복을 받았어요? 아브람이죠? 그 까닭은 욕심대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화) 오래전 어느날 경상도 어느 시골에서 두 소년이 남의 고구마밭에 고구마를 몰래 캐먹으려고 논밭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시커먼 전봇대에 여름성경학교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어요. 한 소년은 "야! 산너머 말뚝교회에서 어린이 부흥회를 한 대! 우리 저기갈래? 지금 가자! 응!"하고 말했어요. 그러나 다른 소년은, "칫! 바보! 산을 넘어 가려면 십리나 걸어가야 하는데 바보같이 그 고생을 해? 난 고구마나 서리하러 갈 거야!"며 반대했어요. 그러자 그 소년은, "난 저기 교회에 가고 싶어!"하더니 교회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어요.
그 후 이십년이 지났어요. 이십년후 교회를 향해 달려갔던 소년은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 신학대학의 교수까지 되셨는데 그 때 교회를 가지않고 그 고구마를 캐먹으로 갔던 소년은 이십년 후 술주정뱅이가 되어 술을 먹고 싸우다가 사람을 죽여 감옥에 들어가 고생하다가 감옥속에서 죽었답니다.
(결론) 우리의 앞에는 항상 두갈래 길이 있어요. 한 길은 하나님의 길이요. 또 다른 길은 세상 길입니다. 우리는 세상 길을 버리고 용기있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달려가야 되겠어요. 우리 모두 다같이 기도 드립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때때로 두 갈래 길에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여 두고 두고 후회하고 슬퍼하는 일이 많아요.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 지혜를 주셔서 올바로 결정하고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 멘.
목숨보다 귀한 것
(행 7:54-60)
사람의 목숨은 누구나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누구나 목숨을 가장 소중히 여기지요. 그러나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스데반은 목숨을 잃으면서도 조금도 무서워하거나 아까와 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1. 스데반의 죽음
스데반은 이 세상에 맨 처음 생긴 교회의 집사님이었어요. 스데반 집사님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보니 이 기쁜 소식을 자기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길거리며 집집마다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 분을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흥!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믿소? 증거가 없지 않소?"
사람들은 처음에 스데반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지만 스데반은, "그렇다면 예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보여드릴 테니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을 이리 데려오시요!"하고 말했어요. 사람들은 혹시나 하고 귀신들린 사람과 병든 사람을 끌고 왔어요. 스데반은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하나 하나 붙들고, "예수님!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지금 이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셔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모두에게 보여 주십시요!"하고 기도했어요. 그러자 신기하게도 병든 사람이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가 미친 사람이 멀쩡해지니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요.
그 후 스데반이 전도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를 나오게 되었어요. 그러자 유대교 사람들이 화가 났어요. 그래서 이렇게 투덜거렸어요.
"무엇이? 스데반 때문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자꾸 예수교회로 나간다고? 이거 가만 놔두었다가는 큰일나겠군! 여봐라! 스데반을 붙잡아 오너라!"
그래서 스데반은 유대교의 재판정에 서게 되었어요. 재판장인 대제사장은, "이봐! 스데반! 앞으로 예수의 부활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주겠다!"하고 말했어요. 그러나 스데반은, "당신들은 지금 하나님을 불순종 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저기 하나님 오른쪽에 앉아계십니다!"하고 하늘을 보며 부르짖었어요. 사람들은 화가 나서,
"너 이리 좀 나와 봐!"하며 성 밖으로 끌고 나가더니,
"죽여! 죽여!"하고 소리지르며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스데반은,
"제발 돌을 던지지 마십시오! 나 죽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세요!"하기는커녕,
"오!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세요! 그리고 저 사람들의 죄도 용서해 주세요!"하고 기도하면서 돌에 맞아 조용히 죽었어요.
참 이상하지요? 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잃어버리는 데도 살 궁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죽는 길을 택했을까요? 그것은 목숨 보다 더 귀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2. 바울의 삶
스데반이 죽는 모습을 보고 몹시 속이 상한 사람이 있어요. 그는 바로 사울이라는 청년이었어요.
사울은, "흥! 죽어가면서도 기도하다니! 예수쟁이들은 모두 미친 놈들이로군!"하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도고 괴롭히는데 앞장섰어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전 유대의 도시에 흩어져 버리자 사울은 군사들을 이끌고 예수 믿는 성도를 잡으로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빛 가운데서 예수님이 나타나셨어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가장 미워하는 예수다!"
사울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 거꾸러졌어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이제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어요.
그 후 사울은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요. 바울은 모든 부귀 영화를 다 버리고 일평생 선교사가 되어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어요.
때로는 전도하다가 여러번 매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고 예루살렘에 돌아 왔을 땐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을 뻔 했고 굶어죽을 뻔 하기도 했고 얼어죽을 뻔 하기도 했고 감옥에 갇혀 죽을 뻔 했고 병들어 죽을 뻔 하기도 했는데 어느 덧 나이가 육십살이 되도록 전도만 하느라 장가도 못하고 집도 한 채 없이 떠돌아만 다니다가 로마에서 결국 목이 잘려 죽었어요.
목이 잘려 죽는 순간 바울은,
"아이고! 억울하다! 예수 믿으면 큰 횡제나 하는 줄 알았더니 이제까지 죽어라 고생만 하고 매만 맞고 장가도 못가고 집도 한채 못장만하고 지겨운 감옥살이도 하고 이제 좀 살만하다 했더니 목이 잘려 죽으니 괜히 예수 믿었네!"했을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분명,
"내가 선한 싸움 다싸우고 달려갈 길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엔 나를 위해 천국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을 것이다! 자! 어서 천국에 가게 빨리 목을 치시오!"하고 말했던 거예요.
(결 론) 왜 죽으면서도 스데반과 바울은 기뻐했을까요? 그 까닭은 목숨보다 더 귀한 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목숨 보다 더 귀한 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죽어도 우리를 다시 살리실 수가 있고 영원히 살수 있게 하실 수 있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예수님을 모시고만 있으면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던 말던 이미 목숨 보다 더 귀한 것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자! 우리 목숨보다 더 귀하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기도드립시다.
최선을 다해요
(고전9:24-27)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달리기 선수가 경주를 하는 것과 같아요.
1. 목표를 보며 달려야 해요.
경주를 하는 사람이 목적지가 어딘지를 보지 않고 엉뚱한 데로 달려가면 아무리 빨리 뛰었어요 메달을 딸 수가 없어요.
우리의 목적지는 천국이예요.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칭찬을 들어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면 실패한 사람이 될 거예요.
어떤 사람은, "왜 당신은 예수를 믿소?"하고 물으면,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것 같아서 믿소"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것은 목적지가 무엇인지 모르고 달리는 선수와 같아요.
2. 길을 따라가야 해요.
아무리 목적지에 바로 골인 했어도 딴 길을 가면 실격이 된답니다. 지난번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 경기대회 때 인도의 한 육상 선수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 더욱 빨리 달렸지만 자기가 달려야 할 길이 아닌 옆사람의 길로 들어갔던 까닭에 아깝게 금메달을 놓쳐버렸어요.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여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천국에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꾸준히 뛰어야 해요.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하 순간도 쉬어서는 안돼요.
"에이! 다리가 아픈데 잠깐 자고 가자!" 했다가는 거북이와 경주했던 토끼처럼 망신만 당할 거예요. 또 아무리 힘들고 배고파도 참고 이를 악물고 달려야 해요.
예수를 믿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에이! 겨울은 추운데 교회 빠지고 봄부터 나가자!" 한다든지,
"에이! 교회는 재미가 없어! 난 이제 안다닐 거야!"하고 꾀를 부리면 천국의 복을 받을 수가 없어요.
4. 무엇보다 연습을 많이 해야 해요.
운동선수는 평소때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해요.
"난 원래 잘 뛰니까 연습 안해도 돼!"하고 교만했다가는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상을 빼앗긴답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겸손한 마음으로 날마다 꾸준히 연습해야 해요.
신앙생활도 평소 때 잘 해야 해요. 보통때는 빈둥빈둥 쉬다가 여름성경학교 때만 교회 나오고 성탄절때만 교회나오는 어린이는 주님이 오시는 날 큰 후회를 하게 될 거예요.
5.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참아야 해요.
운동선수가 먹고 싶다고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마구 먹으면 몸무게가 늘어 뚱보가 되고 뜀뛰기를 못해요. 또 날마다 데이트나 하고 친구와 같이 놀러 다니면 언제 연습을 하고 뜀을 뛰겠어요? 또 뜀뛰기 전에 배가 고프다고 짜장면 곱배기를 두 그릇이나 먹고 뛰면 배가 아파 일 등을 할 수가 없어요.
신앙생활도 그와 같아서 나 하고 싶은대로 아무일이나 다 할 수는 없어요.
교회 다닌다면서 친구따라 남의 배 훔쳐먹으러 남의 배밭에 들어가고 문방구점에서 슈퍼에서 사탕 훔쳐먹고 여자 애들 고무줄 끊고 쌈질하고 엄마 아빠 속썩이고 거짓말하고 욕하고 술먹고 담배피우면 훗날 주님 앞에 어떻게 가서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6. 꼭 이기겠다는 마음을 갖고 뛰어야 해요.
"흥!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데 일등하든 꼴등하든 무슨 상관이야?"하며 장난처럼 달린다면 보나마나 일 등을 차지하긴 다 틀린 거예요.
(예 화) 지난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 달리기 경주에서 세 개의 금메달을 따 삼관왕이 됐던 임춘애 선수는 뜀을 뛸 때마다 아빠의 하시던 말씀을 늘 생각했대요.
"춘애야! 넌 절대 뜀뛰기에서 남에게 지지 말아라! 반드시 이겨라!"
그래서 임춘애 선수는 잘 먹지 못하고 입지 못했어도 꼭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뛰었대요. 친구들은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뜀을 뛰는데 자기는 돈이 없어서 맹물을 먹고 뛸 때는, "나도 우유좀 먹고 뛰어봤으면 ......"하고 부러워했대요. 그러나 결국 금메달을 세 개나 따서 삼관왕이라는 영광을 차지했어요. 그것은 꼭 이기고 말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예수를 믿는 어린이는 그와 같이 "내가 꼭 예수를 잘 믿어 천국에 갈거야!"라는 결심이 필요해요.
7. 천국의 복은 풍성해요.
아까 말한 임춘애 선수는 금메달을 세 개 딴 덕에 금메달 뿐 아니고 상금도 일억 육천만원을 탔어요. 그 뿐인줄 아셔요? 나라에서 일평생 죽을 때까지 매월 삼십만원씩을 타가며 살게 되었어요.
그러나 예수 믿고 천국에 골인한 성도들의 복은 그것보다 몇천만배 더 큰 상을 받는답니다.
첫째는 영광의 면류관이요, 둘재는 영원히 죽지 않는 복, 셋째는 영원히 목욕하고 마실 수 있는 생명수 강물, 그리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보석집과 영원한 평화와 기쁨이랍니다.
돈은 다 쓰면 없어지지만 천국의 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무궁무진한 축복이예요.
(결 론) 우리는 천국가는 길에 딴 길로 가는 일 없이 잠자는 일 없이 반드시 법대로 경주하여 큰 상을 받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어요.
우리 모두 다같이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립시다.
좋은 분을 만나요
(눅10:30-37)
이 세상은 참 이상해요. 사람이 잘 되느냐 못 되느냐는 좋은 사람을 만나느냐 나쁜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좋은 부모를 만나 잘 먹고 잘 사는데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데 어떤 사람은 사기꾼 술주정뱅이 남편을 만나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는 경우도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친구를 잘 만나 출세했는데 어떤 사람은 깡패친구를 만나 나쁜 짓만 배워 결국 감옥에까지 들어간 사람이 있어요.
즉 세상을 살 때 좋은 사람을 잘 만나야 나도 잘 되는 거예요.
1. 강도를 만난 나그네
첫 번째로, 만나서는 안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있어요.
한 나그네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아주 무섭고 악질적인 강도를 만났어요. 이 강도는 인정사정 없는 강도였어요.
"이놈! 꼼짝마라! 돈 내놔! 보따리도 내놔! 옷도 벗어!"
그것 뿐이 아니었어요. 나그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은 강도는,
"내 얼굴을 안 이상 살려둘 수 없다! 넌 죽어야 해!"
강도는 칼로 나그네를 찔러 쓰러뜨리고 달아났어요.
"으윽! 사람살려 ..... 사람살려 ...... !" 강도의 칼에 찔린 나그네는 땅에 쓰러져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보려고 신음을 하는 것이었어요.
2. 제사장과 레위인을 만난 나그네
두 번째는 만나나 마나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은 제사장과 레위인 같은 사람들입니다.
나그네가 칼에 찔려 죽을 힘을 다하여 소리지를 때 멀리서 한 거룩한 제사장이 걸어오고 있었어요.
"오! 제사장님이시다! 오! 나는 살았다! 제사장님! 저좀 살려 주시오!"
나그네는 제사장에게 소리를 쳤어요.
"응? 아니 웬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있네? 아이구 무서워! 강도가 있나보구나! 빨리 가야지!"
제사장이 지나가버리자 얼마후 한 레위인이 나타났어요. 레위인도 성전에서 일을 보는 거룩한 사람이었어요.
"거기 가는 레위양반 저좀 살려주고 가시오! 나 죽겠오!"
"으잉? 저런 저런! 쯧쯧! 안됐소이다. 난 그러나 갈길이 바빠 그냥 가야겠오!"
레위인도 불쌍한 나그네를 버려두고 달아나듯이 걸어갔어요.
"너무들 하시오! 아! 나는 이제 여기서 꼼짝없이 죽겠구나! 으흐흑!"
나그네는 절망에 빠져 이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와같이 제사장과 레위인 같은 사람은 우리에게 별 도움이 못되는 만나나 마나한 사람이예요.
3. 꼭 만나야 할 사람
그러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예요.
나그네가 쓰러져 신음하며 죽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사마리아인이 짐승을 끌고 걸어오고 있었어요.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제일로 싫어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불쌍한 나그네는 사마리아인을 보자, "휴! 개만도 못한 사마리아인이 걸어오는구나! 제사장과 레위인도 날 버리고 그냥 갔는데 하물며 저런 상것들이야 ....."하고 아무 기대도 갖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착한 사마리아인은 "어? 웬 사람이 칼에 찔려 다 죽어가고 있네? 쯧쯧! 얼마나 아프실까? 강도를 만났나보군! 가만있자! 우선 상처를 치료해야지!"
사마리아인은 아무리 바쁘지만 보따리를 꺼내 감람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소독한 후에 자기 옷을 찢어 상처를 싸매어 주었어요. 그리고 나그네를 자기가 끌고 온 짐승에 태워 마을로 내려가는 것이었어요.
"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당신도 매정스럽게 저를 버리고 갈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저의 은인이십니다."
나그네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어요. 이윽고 조그만 주막집이 나오자 사마리아인은 나그네를 주막집 주인에게 맡기며,
"이 사람을 잘 치료해 주시오. 그대신 치료비는 여기 두 데나리온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모자란다면 제가 집에 갔다 돌아올 때 더 갖다드리지요?"하는 것이었어요.
참으로 이 나그네가 만난 이 사마리아 사람은 이 나그네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었어요.
이와 같이 우리들이 세상을 살 때 만나서는 안될 강도같은 악독한 사람과 만나나 마나한 제사장, 레위인 같은 사랑없는 사람과 꼭 만나야 할 착한 사마리아 사람같은 사랑이 많은 분이 있어요.
우리가 꼭 만나야 할 사마리아 사람 같은 분은 누구일까요?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셔요.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고 말거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보혈(포도주)과 성령(기름)을 부어 주셔서 우리의 영혼을 살려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도와 주신답니다.
(예 화) 옛날 숙희와 경애는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러나 숙희는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도 들어가지 못했어요. 반면에 경애는 부자였기 때문에 일류 대학을 졸업하여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그러나 이 남편은 사업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집에 들어와서 사는 일이 거의 없고 날마다 밖에 나가 돌아만 다녔어요. 경애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쓸쓸하고 외로왔어요. 그래서 남편이 혹시 집에 들어오면 늘 싸웠어요. 그러다가 경애는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리고 깊은 강물에 빠져 자살하고 말았어요. 사람들이 경애를 물에서 건졌을 때는 경애는 이미 죽은 후였어요.
그러나 가난해서 중학교도 들어가지 못했던 숙희는 우연히 동네에 새로 생긴 교회를 다녔어요. 그리고 숙희는 예수님을 믿었어요. 숙희는 예수님을 알고나서 너무 기뻐 견딜 수가 없었어요. 숙희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예배에 잘 참석했어요. 뿐만 아니라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도 드렸어요. 숙희의 믿음이 좋다는 소문은 자자하게 퍼졌어요. 그 후 숙희는 어느 믿음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어요. 나중에 그분은 목사님이 되었는데 지금은 큰 교회를 이루고 숙희는 사모님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결 론) 경애는 예쁘고 돈 많고 많이 공부했지만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안 믿는 남편에게 시집가게 되어서 불행하게 살았어요. 그러나 숙희는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나 축복받은 거예요.
어린이 여러분, 우리들도 숙희 처럼 예수님을 만났으니 큰 축복을 받을 거예요. 다같이 구주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기도드려요.
불가능을 가능케하시는 하나님
(출3:11-12)
사람은 돈이 많다든지 배운게 많다든지 계급이 높아지면 자기를 지나치게 믿는 일이 많아요. "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물론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해요. 그러나 지나치게 자기 자신의 힘을 믿고 자신의 능력만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자칫 넘어지기 쉬워요. 실패하기 쉬워요.
"교만을 패망의 선봉(지름길)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한 마음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1. 자기를 믿었던 모세
애굽땅엔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어요. 불쌍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짐승처럼 일만 하고 잘 얻어먹지도 못했어요. 게다가 남자 아이는 낳는 족족 나일강물에 던져 죽여야지 몰래 키우다가는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불행을 겪었어요.
하루는 한 이스라엘인 부부가 귀여운 남자아이를 낳았어요. 이 부부는 용감하게도 세달씩이나 아기를 남몰래 키웠어요. 그러나 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아기 아빠는 아기 엄마에게 말했어요.
"여보!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어! 작은 갈대소쿠리에 아기를 담아 강물에 띄웁시다!"
얼마후 강물에는 작은 갈대 소쿠리가 둥실둥실 떠내려가고 있었어요.
"어머? 저 갈대상자 좀 봐?"
강가에서 목욕을 하던 애굽나라 공주는 갈대상자를 물에서 건져 뚜껑을 열어보았어요.
"웅애! 응애!"
"어머! 불쌍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버린 아기로구나! 마침 내가 아기가 없는데 데려다 키워야지!"
모세는 이렇게하여 애굽의 공주의 집에서 고이고이 자랐어요. 모세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모세는 자기 동포인 이스라엘 백성이 일하는 곳에 구경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자기 백성이 애굽사람들에 의해 소나 말처럼 매를 맞으며 일하는 것을 보았어요.
"으으- 저런 나쁜 녀석들!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렇게 못살게 굴다니... 내 저녀석을 죽이고 내 백성을 구해야지!"
모세는 성질을 못참고 달려들어 애굽인 감독을 때려 죽였어요. 그러나 이 일은 곧 애굽의 왕에게 전해지게 되었어요.
"무엇이! 모세가 공사장 감독을 죽였다고? 그 놈을 잡아와라!"
모세는 애굽왕이 무서워 애굽땅을 떠나 미디안으로 도망쳤어요.
아무리 힘이 세고 칼싸움도 잘하고 공부를 많이 했어도 자기 민족을 구하기는 어려웠어요. 모세는 눈물을 삼키며 미디안에서 40년동안이나 양떼를 치며 살았어요. 어느덧 모세는 힘없는 노인이 되었어요.
"이제 틀렸어! 아! 나는 힘도 없고 용기도 없어! 불쌍한 내 백성을 나는 구할 수가 없어!"
이렇게 중얼거리는 모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2. 하나님의 능력
그러나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셨어요.
"모세야! 모세야!"
"이.. 이게 무슨 소리지? 응? 저기 떨기나무에서 불이 환하게 비춰오쟎아! 그런데 떨기나무는 조금도 타지 않는구나! 참 이상하다!"
"모세야! 네 신발을 벗어라! 여기는 거룩한 곳이니라!"
모세는 깜짝놀라 신발을 벗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말씀해 주십시요!"하고 여쭈었어요.
나는 네 조상 아브람과 이삭과 야곱이 섬기던 하나님이다! 나는 이제 너를 애굽에 보내 애굽에서 고생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려 하노라!"
"제가요? 저는 이렇게 늙은이가 되어서 이제 칼싸움도 못하고 힘도 없습니다요!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다!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너와 함께하며 너를 지켜주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능력 등 여러 가지 신기한 능력을 눈으로 보여 주셨어요. 모세는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웠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보고서야 용기를 내어 애굽땅으로 갔어요.
그리고 얼마후, 과연 모세는 육십만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도 남김없이 인도하여 구출해 냈어요.
누구의 능력으로? 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도해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미련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엄청난 일을 해낼 수가 있답니다.
(예 화) 옛날 프랑스는 영국과 수십년 동안 전쟁을 했는데 날마다 전쟁에 지기만 해 나라가 곧 망할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 때 프랑스의 시골 어느 조그만 마을에 쟌 다르크라는 어린 소녀가 살고 있었어요. 어느날 하나님은 쟌 다르크에게 말씀하셨어요.
"쟌 다르크야! 너는 프랑스를 구해야 한다!"
"네? 아니 저같이 어린 계집아이가 어떻게 나라를 구합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면 된다! 어서 임금님을 찾아가라!"
쟌 다르크는 임금님을 찾아가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했어요.
임금님은, "흠 ..... 그렇다면 한 번 믿어볼 수밖에 자 그럼 군대를 많이 줄테니 군대를 이끌고 한 번 전쟁에 나가봐라!"
쟌 다르크는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영국 군대를 향해 쳐들어갔어요.
참 이상한 일이지요? 프랑스 군대는 갑자기 힘이 펄펄 솟고 영국 군대는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전쟁은 프랑스 군대의 대 승리였어요.
영국 군대는 멀리 도망치고 말았어요.
하나님께서 쟌 다르크와 함께 하신다는 소문은 영국 군대에도 펴졌어요.
"하나님의 종과 싸워봤자 이길 수가 없어!"
"도망가는 길이 살 길이야!"
그 다음부터 영국 군대는 쟌 다르크의 군대가 온다는 소문만 들으면 힘이 빠져 도망치느라고 바빴어요.
결국 프랑스는 쟌 다르크의 도움으로 멸망 직전에서 구원을 얻었답니다.
(결 론)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안되는 일도 되게 하시고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해주신답니다. 우리도 비록 약한 어린이지만 하나님을 잘 믿으면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답니다. 자, 우리 모두 다같이 기도합시다.
약할 때 강한 성도
(고후12:2-10)
사람들은 돈이 많을 때나 몸이 건강할 때나 높아졌을 때 으시대고 힘있는 체합니다. 그러나 돈이 다 떨어지거나 병들거나 낮아졌을 때는 낙심해서 힘이 쭉 빠져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바울선생님은 이상한 말을 했어요. 그 말씀인즉 성도는 약할 때 강해진다는 거예요. 참 이상한 말이지요?
1. 몸에서 병이 떠나지 않았던 바울
바울은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받은 사람이예요.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에베소에서는 귀신들린 사람도 낫게 하고 가는 곳곳마다 병든 사람을 고쳐주었어요.
그런데 바울은 참 이상했어요. 왜냐하면 남의 병은 잘 고쳐주면서 자기 병은 못고치는 거예요. 즉 바울의 눈은 늘 쓰라리고 아프고 눈물이 났어요.
"휴! 아무래도 내 눈병부터 고쳐야겠다!"
이렇게 결심한 바울은 하루는 교회에 들어가 밤새 기도했어요.
"주님! 제 눈좀 고쳐주세요!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렇게 밤새 기도했지만 예수님은 아무 응답이 없었어요. 다음날도 다시 눈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어요.
2. 하나님의 깊은 뜻
그래도 아무 응답이 없었어요. 바울은 셋째날 또 주님께 기도했어요. 이렇게 세 번을 간절히 기도했더니 그제서야 주님의 응답이 들려왔어요.
바울아! 내가 너에게 준 은혜와 능력이 많지 않느냐? 그것이면 됐지 뭘 또 눈까지 낫게 해달라느냐?"
"주님! 그래도 제 눈병이 나아야..."
"아니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강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뜻이옵니까 주님?"
"생각해 봐라! 네가 유명하겠다, 병도 잘 고치고 귀신도 잘 쫓고 설교도 잘하겠다, 게다가 몸까지 건강하다면 너는 금새 교만해져서 기도도 한하고 늘 자기 자랑만 하게 될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네 눈이 아프기 때문에 너는 네 자랑을 못하고 늘 열심히 기도하고 주님만 자랑하지 않느냐? 네가 큰 능력을 행하는 비결은 바로 거기에 있나니라"
"아! 그렇구나!"
바울은 거기서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내가 몸이 약한 것과 가난한 것과 어려운일 당하는 것을 기뻐한다. 그 이유는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하기 때문이다!"하고 말했어요.
성도는 이상하게 돈이 많아지고 출세하고 유명해질 때는 기도도 안하고 교회도 안나가고 마귀의 종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예 화) 솔이라는 어린이가 인천 석남동에 살고 있었어요. 솔이는 집이 부자였고 생기기도 예뻤어요. 또 솔이는 공부도 잘 하고 피아노도 잘 쳤어요. 그래서 그런지 솔이는 거만하기 짝이 없었어요. 교회에도 빠지는 날이 많았고 교회에 가서도 다른 어린이와 상대도 안했어요.
"흥! 나는 가난한 어린이와는 상대 안해!"하고 생각했나봐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 선생님의 말씀도 우습게 알았어요. 교회 선생님이, "오늘 저녁에는 꼭 나와야 해! 알았지?"하면 "네!"하고 대답을 하고도 교회를 안나갔어요. 그만큼 교회 선생님을 우습게 알았어요. 솔이의 믿음은 너무 형편없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솔이는 이름도 모를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어요. 솔이는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눈이 어질 어질 하고 골치가 아프고 손과 발이 저리고 밥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어요.
보름 동안이나 이렇게 누워있자 솔이는 자기의 거만함과 어리석음을 뉘우치기 시작했어요. 과거에는 자기가 제일 잘난 어린이인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제일 비참하고 불쌍한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어요. 솔이는 어서 일어나 교회에 나가고 싶었어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선생님의 품에 안겨 울고도 싶었어요. 솔이는 그제서야 눈물을 흘리며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했어요.
"하나님! 제 병을 고쳐주세요! 제 병만 고쳐주시면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전도도 하겠어요! 그리고 겸손한 어린이가 되겠어요!"
그런데 어느날 교회 선생님이 교회 친구들을 데리고 찾아왔어요. 솔이는 반가와서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의 품에 안겼어요. 선생님은 모든 어린이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고 솔이를 위해 합심기도까지 해주셨어요. 솔이의 친구들도 모두 솔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가난하고 못났다고 멸시했던 친구들이 너무나 존경스럽게 보였어요. 솔이는 절대로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이는 그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병이 나아 다시 학교도 다니고 교회도 다니게 되었는데 이제는 겸손하고 사랑많고 믿음좋은 교회 어린이가 되었답니다. 지금도 솔이는 늘, "내가 병들었을 그 때가 내가 제일 믿음이 좋고 기도도 많이 하고 하나님과 가까웠던 때 같아요!"하고 말한다고 해요.
(결 론)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슬픈 일이 있을 때 여러분은 기도하셔요! 그러면 강해집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니까요! 또 가난하고 배고플 때 기도하셔요. 시험 성적이 나빠 걱정될 때 기도하셔요. 친구들에게서 따돌림 받았을 때 기도하셔요.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더욱 강하게 힘주실거예요.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스더4:14)".
* 참고성경 : 에스더2:19-23, 3:1-7:10, 롬9:3, 출32:32
* 설교개요
1. 서론: 부림절 이야기
2. 에스더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3. 결론: 우리나라를 기도로 구하자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던 명절중에 부림절이란 명절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절기는 우리나라가 해방된 8.15 광복절처럼 감격스럽고 기쁜 날이었어요. 이스라엘 전 민족이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부림절이 되면 사람들은 잔치를 베풀고 이웃끼리 선물을 나누며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 절기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백성들이 회당에 모여 에스더서를 읽어 내려가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 감격스런 구원을 기뻐하며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스더서를 읽는데는 이상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곧,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도중에 하만이란 이름만 나오면 그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그 이름을 저주 하였던 것입니다.
2. 페르시아 왕국이 세계 제일의 강국이었던 때에 유대나라도 그 나라에 종노릇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의 그림) 그 중에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왕궁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에겐 엄마 아빠를 일찍 잃은 사촌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에스더의 그림) 그가 누구인지 아는 어린이 있어요? 예- 그가 바로 에스더였습니다. 그는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게 이스라엘의 섬기는 하나님을 배우며 잘 자라 예쁜 처녀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페르시아 왕국의 영광인 아하스에로 왕의 왕비까지 되었습니다. 노예 소녀가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의 왕비가 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뤄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아하수에로 왕 다음의 권력을 잡은 아주 건방지고 교만한 신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만의 그림) 그 사람이 바로 하만입니다. 그가 왕궁을 출입할 때에는 모든 신하들이 다 꿇어 엎드리어 그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르드개 만은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절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을 안 하만은 매우 화가나서 눈엣 가시같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만하기 짝이 없는 하만의 마음은 모르드개 하나 죽이는 것으로 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 왕을 꼬였습니다. (간신같은 목소리로)"폐하 무익한 유대인들을 다 죽여야 나라의 질서가 서겠나이다. 그러하오니 조서를 내려 저희를 다 죽이시옵소서." 이 악한 하만이의 속셈도 모르고 왕은 누구라도 다시는 고칠 수 없는 법이 되도록 인장반지를 빼어서 주었습니다.
(모르드개의 그림) 모르드개는 재를 뒤집어 쓰고 성밖에 나아가 대성 통곡하였습니다.
(에스더의 그림) 그 소식을 들은 에스더가 옷을 보내었지만 모르드개는 그것을 거절한 채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에스더의 심부름으로 그 이유를 물으러온 신하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12월 13일이면 모든 유대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다 죽임을 당하도록 하만이가 법을 만들어 그 조서를 전국에 다 뿌렸소이다. 가서 이 조서를 왕비께 보이고 속히 왕께 나가 우리 민족을 구해 달라고 전해주시오."
(에스더의 그림) 그 소식과 조서를 듣고, 직접 보았지만 에스더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신하편에 일렀습니다. "오라버니도 아시다시피 이 나라 법에 왕의 부름이 없이 왕께 나갔다간 죽음을 당하지 않습니까? 오직 왕이 그에게 금홀을 내밀어야 사는데, 제가 왕의 부름을 받고 왕께 나간지가 벌써 30일이 지났지만 저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인들 어떻게 해볼 수가 있겠사옵니까?" 모르드개는 똑똑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모든 유대인이 다 죽는데, 너만은 왕궁에 있다해서 혼자 살아 남으리라고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우리 민족을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살아남겠지만 너와 네 친척은 다 죽을 줄 알라. 네가 왕비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그 말을 전해들은 에스더는 죽을 결심을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오라버니, 그러면 온 수산성에 사는 유대인들을 다 모아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말고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저도 그렇게 한 후 규칙을 어기고 왕께 나가겠어요. 그러다가 죽으면 죽겠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온 민족이 몰살을 당할 위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그들의 기도가 얼마나 절실할까 생각해 보세요.
3일후 에스더는 왕 앞에 담대하게 나갔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왕이 보좌에 앉았다가 뜰에선 에스더 왕비를 발견하고는 너무너무 사랑스럽게 보여 손에 잡았던 금홀을 내어 밀었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백성들과 에스더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거예요.
왕이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어요. "왕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고?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만일 여러분 같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하만이를 죽여달라고, 자기 민족을 구해 달라고..) 그러나, 지혜로운 에스더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오늘밤 왕을 위하여 베푼 잔치에 하만과 함께 임하여 주십사고 대답했습니다. 그날밤 잔치 후에 왕이 또 물었어요. 에스더는 내일 또 한 번 베푸는 잔치에 하만과 함께 와 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만의 그림) 영문도 모르는 하만이는 왕비에게까지 사랑을 받는다고 마음이 즐거워 우쭐대며 왕궁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거기 꼴도 보기 싫은 모르드개가 여전히 뻣뻣한 모습을 하고, 일어서지도, 절하지도 않는 것이 아닙니까? 심히 기분이 나빠진 하만은 집에 돌아와 아내의 말대로 그 기분 나쁜 모르드개를 장대 꼭대기에 달아 죽이겠다고 작정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밤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신하에게 궁중 일기를 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 왕을 죽이려고 모의를 꾸민 신하들을 모르드개가 미리 알아 고발함으로 왕이 무사했다는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것이 고마워 모르드개에게 후한 벼슬을 주고자하여 밖에 누가없느냐고 했습니다. (하만의 그림) 그 때 마침 악한 하만이가 모르드개를 장대에 달게 허락해 달라고 왕께 오고 있었습니다. 왕은 하만에게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만이는 속셈으로, 그런 사람이라면 바로 자기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그처럼 원했던 것을 다 말하였습니다. "그 사람에겐, 왕복과 왕관을 씌우고 왕이 타는 말을 태워 성중에 다니며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옵니다."
그러자 왕은 "네 말대로 유대사람 모르드개에게 조금도 빠짐 없이하라." 여러분! 하만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하만은 자기가 한 말 그대로 자기 원수 모르드개를 태우고 성을 돌아다녔습니다.
얼마나 약오르고, 고민이 되었겠어요?
집에 돌아와 걱정하는데 에스더 왕비의 잔치에 가자고 왕의 내시들이 들어닥쳤습니다.
이 두 번째 잔치에서 왕이 또 물었습니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뇨. 나라의 반쪽이라도 주겠노라."
(에스더의 그림) 왕비 에스더는 대답했습니다. "전하, 제발 저의 생명을 제게 주시고 제 민족들을 살려 주십시오."
왕은 깜짝 놀라 그런 악한 계획을 짠 자가 누구며 어디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에스더는 손가락을 들어 "그 원수는 바로 이 악한 하만이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너무너무 화가 나서 왕궁 후원으로 나가버렸습니다. 하만은 무서워서 왕비에게 가서 한 번만 살려달라고 필사적으로 대들며 구하였습니다. 그런 때에 왕이 돌아와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하만이 자기의 부인인 왕비에게 엎드려 있지 않습니까? 자기 왕비에게까지 나쁜 짓을 하려는 줄 안 왕은 크게 노하여 모르드개를 달려던 장대에 하만을 매어달았습니다. 또한 유대인이 원수들을 죽이고 자기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또 다른 조서에 인장반지를 찍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죽임을 당할 날에 원수들을 죽이고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격스러운 구원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부림절을 지키게된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말대로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하늘나라의 왕자, 공주님이 되신 것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를 위해서 일거에요. 나라가 망하면 어리다고해서 여러분만은 안전하리라 생각지 마세요.
에스더는 동포 노예들을 구원키 위해 왕비의 위치를 포기하고, 생명까지 버리기로 결심하고 기도하였스니다. 진짜 하나님의 백성은 나라와 민족을 깊이 사랑합니다. 바울 선생님이자기 백성이 구원 받을 수만 있다면 예수님에게서 끊어짐을 당해도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죄지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기 동포들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시려거든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에스더 처럼, 민족을 위해 죽으면 죽을 각오로 기도합시다. 우리 온 민족이 죄의 사슬에서 풀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참된 해방을 받기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자라가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의 기도로 우리 민족을 구합시다. 우리의 기도로 우리 나라를 지킵시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 참고성경: 마11:28-30, 사53:6, 요1:29
* 설교개요
1. 서론: 소가 메는 멍에
2. 사람들의 멍에
3. 예수님의 멍에
4. 결론: 죄짐 맡은 우리 구주
1.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이것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멍에입니다. 이것을 소 먹덜미 위에 얹고 여기에 쟁기를 걸거나 무거운 마차를 걸게 됩니다. 이 멍에가 메어져 있는 한 이 소에겐 쉼이 없습니다. 이 멍에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 멍에에 달리는 쟁기나 짐이 한없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 멍에는 벗기만 하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종류의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무거운 멍에가 있습니다.
2. 그것은 죄라는 멍에입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겐 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했을 때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에 이르는 모든 인류에게 죄의 무거운 멍에가 메워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 죄의 무거운 멍에를 메고 쉬임없이 허덕이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병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죽음 역시 모든 사람이 벗을 수 없는 무거운 짐이되었습니다. 죄가 들어오자 슬픔이 시작되고 고통이 사람들을 짖누르게 되었습니다.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죄의 멍에를 사람마다 허덕이며 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너무 괴로워서 술을 마시고 오락을 즐깁니다. 그러나 짖누르는 죄의 고통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맨발로 동해바다를 건널 수 없고 나무 사다리로 하늘에 오를 수 없듯이 스스로 죄의 멍에를 벗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죄짐을 지고 피곤한 인간들을 위해 그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의 무거운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지고 죽어야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돈으로도, 힘으로도, 권세로도, 착한 마음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 아침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누가 감히 이런 말씀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약함을 아시며,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수 있으시며,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기뻐하시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주님께로 오기만 하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 가운데 아직도 자기 죄를 자기가 지고 허덕이는 어린이는 없나요? 마음속에 고민이 있는 어린이는 없습니까? 슬픔이나 근심거리가 있습니까?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 주님께 나아 오세요. 여러분이 쉼을 얻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던 것이예요. 머뭇거리지 말고 오늘 주님께 다 나오세요.
예수님께서 사시던 땅엔 이렇게 생긴 멍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두 마리의 소가 메는 멍에입니다.
이 두 마리의 소가 한 개의 멍에를 나눠 지는 것입니다. 만약 이 오른쪽의 소에게 600만불의 사나이 같은 무지 막지한 힘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왼쪽의 소는 같은 멍에 아래 메어 있기만 하면 쉼을 얻을 것입니다.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상관이 없습니다. 밭이 아무리 거칠고 넓다해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오른 쪽에 있는 소가 다 져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이 멍에의 한 쪽을 져주십니다. 다만 우리는 그 주님의 멍에 한쪽에 그냥 붙어서 있기만 하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기시는 능력의 주님께서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주님 옆에 붙들려 주님과 함께 가면 됩니다. 주님이 가시고자 하면 가고, 서시고자 하면 서고, 순종하면 우리는 풍성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풍성한 쉼을 주시는 주님께 나아와 주님이 한쪽을 메어 주시는 쉬운 멍에를 메세요.
4.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그 무겁고 슬픈 고통의 짐을 지면서도 항상 쉼을 얻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일랜드에 죠셉 스크리븐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예쁜 처녀와 약혼을 했는데, 결혼날자를 하루 앞두고 그만 그 약혼녀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 슬픔을 잊으려고 이 청년은 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만 신체가 허약하여 퇴학을 맞고 말았습니다. 25세 때 이 청년은 용기를 얻어 캐나다로 이사하여 불쌍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고아, 과부들을 도와주며 살았습니다.
다시 두 번째 약혼을 했지만 그 여자 역시 결혼하기 전에 죽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슬픔을 딛고 평생 혼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려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 밖에 없는 어머니 마저도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죠셉 스크리븐은 그 어머니를 위해 조용히 기도로 슬픈 마음을 달래어가며 한편의 시(詩)를 썼습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모든 것을 고한 사람 복받네
주께 고함 없으므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모든 것을 고챦나.
시험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고하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악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고할까.
근심되는 중한 짐을 아니 진자 누군가
피란 곳은 예수오니 기도드려 고하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안위하심 받겠네.
감옥 속의 찬송
(행16:19-31)
여러분은 감옥속에 들어간 적이 없으니 감옥이 어떤 곳인지 모를 거예요. 그러나 텔레비젼이나 영화에서 보면 알 듯이 사람을 차가운 방에 가두어 놓고 철창으로 막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후 큰 자물쇠로 콱 잠가두어요. 그리고 간수가 총을 차고 왔다 갔다 하며 감시를 하는, 자유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이죠!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세상은 감옥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36년 동안이나 자유가 없는 감옥에서 살았어요. 바로 일제가 우리나라의 자유를 모두 빼앗아 버리고 자기네 종으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이예요.
찬송가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가 없었어요. 유행가조차도 함부로 부를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우리나라 말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어요. 정말 감옥과 다를 게 없었어요.
어제는 바로 3 . 1절이었어요. 많은 애국지사들과 수 많은 백성들이 나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일제의 무자비한 총과 칼 앞에서 맨주먹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한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갔어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자유를 위해서 죽어갈 수 있었을까? 아마 후손들에게 만큼은 자유를 누리게 하고 싶어서, 후손들만큼은 더 이상 이런 수치와 억압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우선 우리 어린이들 모두 그 분들의 은혜와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어요. 그리고 우리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어린이들이 모두 되어야 겠어요.
감옥에서는 찬송가는커녕 유행가도 부를 기분이 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감옥에서 신나게 찬송을 부른 분들이 계셔요. 그분은 바로 누군고 하니 바울과 실라라는 전도자들이었어요.
바울과 실라는 아무 죄도 없이 매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어요. 그 이유는 점치는 귀신들린 점장이 소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준 것 때문이었어요. 점장이소녀야 귀신에게서 해방되어 기뻐했겠지만 이 소녀의 주인은 이 소녀가 점을 못치니 자기에게 돈을 벌어주지 못하므로 화가 나서 포도청에 가서 바울과 실라를 고소한 것이었어요.
포도청의 포졸들은 다짜고짜 바울과 실라를 끌고가 옷을 벗기고 등어리에 채찍질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쇠고랑에 채워 감옥에 가둔 것이었어요.
배도 고프고 등어리는 피범벅이 되어 견딜 수가 없이 쓰라렸지만 바울과 실라는 웬일인지 신이 나서 찬송을 불렀어요. 그때 마침 감옥을 지키는 간수는 잠을 자고 있었어요. 감옥에 있었던 다른 죄수들은 눈을 크게 뜨고 바울과 실라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모두가, "쯧쯧! 얼마나 맞았으면 저렇게 미쳤을까..."하는 눈초리들이었어요.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지진이 나며 옥문이 덜커덩 열리더니 바울과 실라의 온 몸에 묶여있던 쇠고랑이 뚝뚝 끊어졌어요. 죄수들은 그제서야 바울과 실라가 보통 사람들이 아닌 것을 알고 존경하는 얼굴로 바라보았어요.
때아닌 지진으로 눈을 번쩍 뜬 간수는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기절초풍했어요.
"아이고! 죄수들이 도망쳤구나! 난 이제 죽었다! 차라리 자살하자!"
간수는 칼을 빼어 목에 대고 막 찌르려고 했어요. 이 때 바울은 이 모양을 보고 소리쳤어요.
"여보슈! 죽지 마시오! 우린 안 도망쳤오!"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가서 넙죽 엎드렸어요.
"선생님들!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식구들이 구원을 받을 거요!"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자기집에 모셔 상처에 약을 발라드리고 식사를 잘 대접하고 그날로 예수를 믿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어떻게 배도 고프고 등어리가 피투성이가 되고 쇠고랑에 묶여 감옥에 갇힌 사람이 찬송을 부를 수가 있었느냐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나 저 같으면 절망에 빠져 울거나 끙끙 앓고 있었을 거예요.
그 까닭은 바로 바울과 실라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용기와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기뻐지고 감사와 평강이 넘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낙심하게 하며 슬퍼하게 하며 불안하게 하고 겁을 주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게 유혹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절망한 자에게도 기쁨과 평안을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화) 오래전 폴란드에 독일군이 쳐들어 갔을 때 독일군은 폴란드인들을 수용소에 가두어 놓고 마음에 안 맞으면 사람을 파리 죽이듯 죽였어요. 또 사람 하나가 도망치면 그 방에서 열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었어요.
그 중에서 제일 잔인한 방법은 차가운 지하 감옥에 사람을 벌거벗겨 집어넣고 굶겨 죽이는 것이었어요.
어느날 수용소의 한 방에서 한 사람이 도망치자 수용소장은 그 방에 있는 사람 열명을 아무나 끌어내어 발가벗겨 지하 감옥에 쳐넣었어요.
열명의 사람들은 독일인을 저주하며 마구 욕설을 퍼부었어요. 그리고, "차라리 빨리 죽여라! 이놈들아!"하고 아우성을 쳤어요.
온 몸을 얼게 하는 차가운 지하감옥엔 여기 저기 죽은 사람의 시체 썩는 냄새와 똥 오줌냄새가 숨도 못쉴 정도로 지독했어요.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은 배가 고파 절망에 빠져 흐느껴 울면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이때까지 아무말도 없이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하나 둘 찬송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어요.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펼쳐졌어요. 그것은 천국에 있는 영원한 소망이 었어요. 찬송가는 감옥을 떠날 듯이 울려퍼지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차기 시작했어요. 열흘이 지나도 찬송이 끊이지 않자 화가 난 독일군들은 독약을 넣은 주사를 가지고 들어와 하나 하나 주사를 놓아 죽였어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없이 오히려 평화로운 가운데 죽어갔어요.
- 아 멘 -
1. 주 예수를 믿으라!
2. 성령을 받으라!
3. 어려울 땐 찬송하라!
4. 우리 나라를 사랑하라!
감옥에서 읽은 성경이야기
이필주 목사님은 정동제일교회에서 목회하시던 중,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난생 처음 독방에 갇힌 목사님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다가 불안을 떨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기도하는 중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라!" 목사님은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잘못 들었거니' 생각하고 다시 기도를 시작했는데 같은 음성이 다시 들렸습니다. 눈을 떠 보니 역시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려고만 하면 그 음성이 들렸습니다. 목사님은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인 것으로 깨닫고 성경을 펴서 마태복음 7장 28절,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라는 말씀에 이르러 갑자기 전류에 감전된 것 같은 떨림과 어두운 방 안에 전깃불이 환하게 비취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감옥에 들어 온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았고, 기도하는 중 과거 교만했던 것과 목회하면서 교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얼마를 살더라도 하나님께서 보내는 곳에서 조선 백성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필주 목사님에게 서대문 감옥은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말씀이 주는 힘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고난주간)
우리위해 죽으셨어요.
(사53:5-6)
세상에는 나라를 위해 죽는 안중근의사 같은 애국자도 있고 부모를 위해 죽는 자식도 있고 자식을 위해 죽는 부모도 있어요. 또 남편을 위해 죽는 아내도 있어요.
그러나 죄 많은 우리들을 위해 돌아가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이십니다.
1.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
구약성경에 보면 속죄제사가 있어요. 그것은 우리가 큰 죄를 지었을 때 양이나 소를 한 마리 끌고가 내 죄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게 함으로 하나님께 바쳐 태우는 제사였어요.
제사장은 죄인이 바친 양이나 소를 칼로 찔러 죽이고, "그대의 죄의 대가로 이 양이 벌을 받아 죽었으니 이제 그대는 죄가 용서받았다!"하고 말했어요.
그런데 고맙게도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속죄제물이 되셨고 그것도 단 한 번에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심으로 우리 모두의 죄를 씻어주셨어요.
2. 예수님의 피
예수님은 십자기에 피를 많이 흘리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흘린 피는 바로 우리들의 죄를 모두 씻어주시는 피랍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또 아무리 죄가 많다 해도 예수님 앞에 가서 죄를 빌면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가 씻음받아 모두 용서받고 깨끗한 사람이 된답니다.
(예화) 저 남태평양에 식인종들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 있었어요. 그런데 미국 교회의 어느 선교회에서, "누구 남태평양의 미개한 섬에 가서 복음을 전할 사람 없습니까?"하고 물었어요. 그때 어느 목사님이, "제가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하고 손을 들었어요.
그러나 그 섬의 식인종들은 아주 무식하고 죄많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매일 싸움만 하고 포로로 붙들어온 사람은 가마솥에 끓여 삶아 먹었어요.
그때 이 목사님이 배에서 내려 식인종들의 마을로 걸어가는 것이었어요.
식인종들은, "하얀 사람이다! 맛있겠다! 잡아먹자!"하고 달려 들어 큰 돌로 목사님을 쳐 죽였어요. 그 돌에는 피가 새빨갛게 물들었어요. 사람들은 목사님을 끌고가 잡아먹었어요.
그러나 미국의 교회에서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여러분! 우리는 그 섬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누가 다시 그 섬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한 청년이 손을 들었어요. 그분은 그 섬에서 돌아가신 목사님의 아들이었어요.
"아니! 당신은 먼저 그 섬에 가셨던 목사님의 아들이 아니요?"
"네! 저는 아버님이 못다하신 일을 마저 하겠습니다!"
그래서 얼마후 이 청년은 성경책을 들고 그 섬에 상륙했어요.
식인종들은 이 청년을 보자 창을 들고 나와 죽이려고 달려들었어요.
이때 청년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제가 죽는 것은 억울하지 않사온데 제가 죽으면 이 섬에 복음을 전할 사람이 없습니다! 제발 저를 구해주십시오!"
바로 이때 하늘에서 구름이 열리면서 파란 빛이 이 청년을 감싸 비춰주기 시작했어요.
"으잉? 하늘에서 저 사람에게 빛을 내려준다! 아! 저 분은 신이다! 신이 틀림없다!"
모든 식인종들은 창을 내던지고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했어요.
청년은 가만히 일어나 그 식인종들의 마을로 들어갔어요. 그 후 몇 년 뒤 교회가 세워지고 모든 식인종들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어요.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식인종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청년 선교사는 아버지의 피가 묻어있는 큰 돌을 보여주며 말했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죄 때문에 우리 아버님께서 피를 흘린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죄를 용서받아 천국에 가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십자기에서 피흘려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예수님께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제서야 모든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답니다.
(결론) 이렇게 우리가 너무 죄가 많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것이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용서받고 싶으면 예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하셔야 한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다 용서해 주세요. 우리 모두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께 다 같이 기도드립시다.
- 아 멘 -
십자가의 비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6)
(마27:45-54)
* 참고 성경:사53:1-6, 요1:29, 롬6:23, 겔18:4, 요19:17-30, 롬5:8)
* 설교 개요
1. 서론: 하나님의 어린 양
2. 끝내주는 죄의 형벌
3. 끝내주는 하나님의 사랑
4. 끝내주는 풍성한 은혜
5. 결론: 십자가 앞에 나오라
노르웨이에 있는 한 조그만 마을에는 예쁜 교회 건물 한 채가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교회의 이름을 "양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교회라고 하면 그 첨탑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우는데, 이 "양의 교회"만은 십자가 대신 양의 모양을 조각하여 세웠습니다. 그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이 양이 교회 첨탑 꼭대기에 세워지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그 교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이 교회가 지어질 때 한 일꾼이 가장 높은 첨탑위에 올라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너무 높고 가파르며 미끄러워 까딱 잘못하면 떨어져 죽을 아주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꾼은 정신없이 일을 하다 그만 발을 헛디디어 밑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비명을 질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바로 그 순간 양 장수가 양을 팔기 위해 여러마리의 양을 끌고 그 교회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꾼이 떨어진 것입니다. 이 일꾼이 떨어졌을 때 죽은 것은 일꾼이 아니라 한 마리의 예쁘고 살진 양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양의 등 위에로 떨어졌기 때문에 양은 죽었지만 일꾼은 살았습니다. 그 양은 비록 자기가 원하여 죽은 것은 아니지만 일꾼의 생명을 구해주기 위하여 대신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 감격스런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양의 모습을 조각하여 교회의 참탑 꼭대기에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르웨이에 있는 양의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53장을 보면 우리는 또 한 마리의 더욱 더 놀라운 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양은 우연히 교회 밑을 지나가다 한 사람의 일꾼을 살린 양의 교회의 양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습니다.
이 양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죽음에서 살려내기 위해 대신 죽으려고 일부러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 양이 자기를 죽임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양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세요? 예, 그 양은 세례 요한이가 말한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는 벌을 받을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와 여러분이 수없이 지은 더러운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이사야53장 6절을 조용히 따라서 읽어보세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목자의 보호와 사랑이 싫어서 맘대로, 제 맘대로 다니다 길을 잃은 양처럼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버리고 제맘대로 살아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고 불순종하여 맘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암과 같이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형벌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또 성경에 보면 죄지은 영혼은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죄가운데 태어나 죄를 먹고 마시다 비참하게 죽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다 죽어야할 우리, 하나님의 법대로 다 죽여도 할 말없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이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예수님의 승리로 이 십자가가 영광을 받아 예쁜 아줌마들의 목걸이도 되고 벽걸이도 되며 예배당 꼭대기에도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본래 이 십자가는 그런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가장 무서운 사형틀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죄지은 사람의 목을 베어 죽이던 망나니의 칼을 목에 걸고 다닐 사람이 있습니까? 그 칼을 안방에 걸어 놓고 즐거워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 칼을 지붕 꼭대기에 세워두고 자랑할 사람이 있나요? 예, 없어요. 그러나 십자가는 그 피비린내나는 흉칙한 칼보다 훨씬 더 잔인한 사형틀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하면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까 연구한 끝에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악날한 사형기구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겐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이 십자가에 박지 않을 만큼 저주스럽고 흉악한 사형틀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잘못도 없으신 그분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드님이 이 가장 흉칙한 사형틀에 박히셨습니다. 머리에는 사정없이 찌르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부끄러운 곳을 가릴 속옷까지 모두 빼앗기신채 벌거벗은 몸으로 그 말로 할 수 없는 창피와 모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잔인한 로마 군사의 망치와 못은 예수님의 손과 발의 살 가죽을 찢고 뼈를 다 으스려 뜨렸습니다. 그 고통스런 십자가 ---, 입천장이 말라 붙고 혓바닥이 오그라 붙는 그 고통의 여섯시간 동안도 수없는 조롱과 눌림과 침뱉음이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왜? 왜? 왜 예수님이 이 고통을 당하셔야만 합니까? 여러분과 나의 죄 때문입니다. 죄는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당할 죄의 형벌이 그처럼 가혹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가룟유다가 아닙니다. 빌라도나 로마군사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범인은 바로 나와 여러분입니다.
(십자가 그림을 들고) 또 이 그림을 좀 보세요. 이 십자가를 볼 때 우리 하나님의 그야말로 끝내주는 사랑을 볼 수 있지 않아요? 오늘 말씀에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우리를 얻기 위해 그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을 죄의 값으로 팔으셨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없애시려고 아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그를 그 저주에 묶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그처럼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 갈기 갈기 찢기실 때 아마 하나님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기셨을 것입니다. 그 아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실 때 아마 하나님은 고개를 돌리실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베풀어주신 그 사랑은 보통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들이 당하는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진 그런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십자가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끔찍한 사랑의 증거물입니다.
또한 십자가에는 그야말로 끝내주는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에 매여 살아갑니다. 그래서 "죽겠네"로 하루를 시작하여 하루종일 "죽겠네"를 노래하다 다시 "죽겠네"로 잠이듭니다. 그러나 다 영원히 죽고 맙니다.
(십자가의 죄의 뚜껑을 열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비참한 일, 슬픈 일들이 다 죄에서 왔습니다. (그 속에서 카드를 꺼내며) 죽음도, 슬픔도, 병도, 범죄도, 전쟁도, 실망도, 불행도, 연약함도, 다 죄의 열매입니다. 죄가 해결되지 않는한 이 열매들도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 해도 이 세상에서 죽음을 끝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 개발되어도 이 세상에서 병을 다 끝낼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웃기는 코미디언들을 많이 두고 재미있는 오락을 즐긴다해도 이 세상에서 슬픔을 끝내줄 수는 없습니다. 한 가정에 한 개의 파출소를 세운다 해도 범죄를 이 세상에서 끝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유엔이 아무리 모여 의논을 한다해도 이 세상에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는 못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사람들 속에 있는 죄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죄의 무서운 힘을 완전히 깨뜨려버렸습니다.
주님은 승리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매었던 죄의 무서운 사슬을 끊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슬프게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공장이 완전히 박살이난 것입니다. ( 꺼냈던 그림들을 다시 넣으며) 그 때에 죽음과, 죄의 권세와, 질병과, 불행과 슬픔의 모든 것들은 십자가에 죄와 함께 장사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죄와 그 열매들의 무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십자가만이 참된 생명과 참된 기쁨, 참된 소망, 참된 능력, 참된 자유, 참된 승리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5절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며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모든 문제가 다 끝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큰 희생을 치루시어서 다 끝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맛있는 떡을 놓고도 입을 벌려 먹지 않으면 떡이 아무 소용도 되지 못하는 것처럼,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에 대해 아무리 잘 듣고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십자가에서 다 이뤄놓으신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 들이세요. 십자가 앞에 나와서 끝내 주신 그 놀라운 일들을 다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 누리세요.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박히셔서 모든 문제를 끝내 주신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그 모든 특권을 자기의 것으로 누리게 됩니다. 바로 오늘,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신 모든 축복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시겠어요?
-- 아 멘 --
(부활주일)
부활의 종교
(요20:11-18)
1. 그날 새벽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사흘째나 되는 날 새벽에 세 여자들이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으려고 예수님의 시체가 보관되 있는 무덤으로 왔어요. 그런데, "어머! 저것좀 봐! 무덤 문이 열려있쟎아?" "누가 무덤문을 열었을까? 어서 가보자!"
무덤까지 갔던 여자들은 더 놀랐어요. "아! 이른 어쩐담! 무덤속에 예수님이 안계셔!"
"누군가가 시체를 도둑질해갔나봐!"
여자들은 얼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했어요.
"뭐?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맞아? 어디! 어디!"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덤에 가서 보았더니 과연 무덤속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거 참 이상한 일이다!"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지다니! 아! 시체라도 한 번만 뵈었으면 ..."
마리아는 무덤밖에서 울다가 무덤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들여다 보았어요.
그 때 예수님이 뉘었던 곳에 이상한 두 사람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 사람들은 바로 천사였어요.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인줄 깨닫지 못했나봐요. 천사가 물었어요.
"여자여!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사람들이 우리 주님의 시체를 갖다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 울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뒤로 돌이켜 무덤 밖으로 나가려고 했어요. 그 때 마리아의 앞에 웬 사람이 가로막고 있었어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는데 마리아는 어두워서 그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예수님이 물으셨어요.
"왜 우느냐? 누굴 찾고 있느냐?"
마리아는 그 분이 동산지기인줄 알았어요. "아저씨! 아저씨가 우리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 가셨어요? 어디다 두었는지 제게만 가르쳐 주세요. 네?"
그때서야 예수님은 마리아를 부르셨어요. "마리아야! 나다! 나를 모르겠느냐?"
"앗! 선생님!"
마리아는 그 자리에 엎드렸어요. 이렇게 마리아는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맨 처음 눈으로 보았던 사람이었어요.
2. 예수님만이 부활했어요.
사람은 한 번 죽으면 절대 다시 살 수가 없답니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도, 아무리 힘센 사람도 훌륭한 임금도 한 번 죽으면 다시 살 수가 없어요.
공자도 부처도 죽었고 마호메트도 죽었는데 아직 부활했다는 얘기를 못들어 봤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사셔서 40일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하늘 나라로 승천하셨던 거예요.
왜 예수님은 부활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 까닭은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이예요.
그 뿐만이 아니예요.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부활케 하실 수가 있답니다. 언젠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을 믿었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부활할 거예요.
(예화) 순일이는 시골 사는 어린이랍니다. 그러나 순일이 아빠는 대학을 나왔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순일이는 똑똑한 편이었어요.
하루는 친구 병선이가 찾아와 "순일아! 교회 가자!"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순일이는, "뭐? 교회? 그렇게 멀리 뭐하러 가냐?"하고 대꾸했어요.
아닌게 아니라 교회는 논밭길을 오래 걷고 밤나무산을 지나 한참 걸어가야 있었어요. 그러나 병선이는, "따라만 와봐! 나도 어제 참석했는데 너무 너무 재미있어! 어린이 부흥회를 한 대!"하는 것이었어요.
"어린이 부흥회? 그게 뭔데?"
"몰라. 그냥 재미있어! 성경얘기도 해주고 상도 주고 노래도 가르쳐 줘! 오늘 저녁엔 인형극도 해준대!"
"야! 그거 재미있겠다! 나도 가자!"
순일이는 병선이를 따라 교회에 갔어요. 교회는 자그만했어요. 그러나 그 근처 일곱 개 마을에서 모인 어린이들이 꽉 차 있었어요. 어린이들은 선생님의 인도를 따라 찬송을 신나게 부르고 있었어요.
예배가 시작되더니 강사로 오셨다는 전도사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도사님의 얘기인즉 옛날에 예수라는 분이 살았는데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며칠 후 부활하셨다는 것이었어요. 부활이 뭔가 했더니 예수님이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었어요.
순일이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리고, "저건 거짓말같다. 도저히 못믿겠는걸?"하고 중얼거렸어요.
집에 돌아오면서도 순일이는 병선이에게 따졌어요.
"그건 순 거짓말이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사냐?"
그러나 병선이는 말했어요.
"예수님께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에 죽지 않으신단 말이야!"
"뭐? 영원한 생명?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순일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이 때 병선이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마침 논밭둑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오르고 있었고 진달래도 피고 있었어요.
"저 풀과 나무들이 추운 겨울엔 잎도 떨어지고 바싹 말라 죽었던 것처럼 보였쟎아? 그런데 왜 다시 싹이 나오고 꽃이 피는지 알아?"
"그럴 내가 어떻게 아니? 봄이 되니까 그렇지!"
"그러나 죽은 나무는 아무리 봄이 되어도 다시 싹을 내거나 꽃을 피울 수가 없어! 그 나무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순일이는 고개를 끄덕 끄덕했어요. 병선이는 계속 말했어요.
"계란이나 씨앗이나 다 마찬가지야. 비록 죽은 것 같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병아리가 되고 싹이 나오는 거야"
"알았어!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어서 다시 부활하셨구나!"
순일이는 그제부터야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후 열심히 교회를 다녔답니다.
네!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죽음 가운데 계실 수가 없었답니다.
( 결 론 ) 예수님이 부활한 것은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축복이예요.
우리들도 예수님만 믿으면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을 받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가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예수님께 기도드려요.
- 아 멘 -
성령을 받으라
(행2:1-4)
성령은 바로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힘있게 해주시고 마귀를 이기게 해주시고 올바른 길을 걸어가게 해주십니다.
악령은 마귀의 영입니다. 마귀의 영은 귀신이요 악마입니다. 이 마귀의 영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병들고 미치고 죄짓고 무당이 되고 악한 일들을 일삼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을 받을 수가 있답니다.
1.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직접 보긴 했지만 다니면서 자신있게 전하지는 못했어요. 그것은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 120명은 마가의 다락방에 날마다 모여서 힘을 합해, "주여! 성령을 어서 보내 주시옵소서!"하고 큰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어요.
이렇게 열흘쯤 기도했을 때였어요.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났는데 120명이 기도하는 방안에 가득했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들에게 임하였어요. 그러자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갑자기 성도들의 입에서 이상한 외국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어요. 하도 시끄럽게 떠들썩하니까 마침 성전을 순례하러 왔던 외국사람들이 깜짝 놀라 우르르 몰려와 들여다보는 것이었어요.
"어? 이상하다.. 저사람들이 떠드는 소릴 자세히 들어봐! 우리나라 말로 기도하쟎아?"
"정말! 저사람들은 갈릴리 외국사람들인데 우리나라말로 기도하고 있어!"
사람들은 너무 놀라 어리둥절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 대낮부터 새술에 취했다"고 하면서 그들을 조롱했어요.
그때 성령 충만함을 입은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 전도를 시작했어요. 새까맣게 모여든 사람들은 베드로의 유창한 설교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무려 삼천명이나 되었답니다.
이렇게 성령님을 받으면 연약하고 용기없는 사람도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랍니다.
2. 지혜를 주시는 성령님
성령님은 미련한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신답니다. 세상에서 제일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영혼의 눈이 밝아져 모든 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마귀는 사람을 미련하게 만들고 하나님에 대해 무식하게 만들고 교만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겠어요.
(예화) 어느 마을에 큰 부잣잡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집에는 아주 미련한 어린 가정부가 있었답니다.
어느날 목사님 한분이 그 부잣집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는데 그 목사님은 그 소녀 가정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소녀는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줄도 모르고 또 심술궂고 어리석기 짝이 없었어요.
목사님은 그 집을 떠나기 전에 그 가정부에게 말했어요.
"얘야, 너는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나하고 약속을 하나 하자"
"뭔데요?"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여자가 되려면 날마다 '성령님!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제 마음을 보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하여라 알겠니?"
"네! 그건 어렵지 않네요!"
어리석은 가정부는 쉽게 대답을 했어요.
그로부터 일년후 그 목사님은 다시 이 집에 찾아오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깜짝 놀랐어요. 왜냐구요! 그 어린 가정부가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었어요.
그 가정부는 항상 기뻐하며 명랑했으며 예배도 같이 드리고 예절바르고 공손하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얘야! 일년동안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하고 물었어요. 그 소녀 가정부는 대답했어요.
"저는 목사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성령님!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제 마음을 보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성령님은 제가 얼마나 미련하고 죄많고 어리석은 계집 아이였던가를 깨닫게 해주셨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깨닫게 해주셨어요. 목사님, 감사합니다."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와 같이 성령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세요.
3.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셔요.
빌립은 어느날 어디로 전도하러 가야할지 몰라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요.
바로 그때 성령님이 빌립에게 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셨어요. 빌립은 벌떡 일어나 성령님이 시키는 대로 광야 사막으로 걸어갔어요.
"이상하다. 이런 사막에 누가 있길래?"
그 때 저쪽에서 한 귀한 사람이 마차를 타고 성경책을 읽으며 걸어오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에디오피아의 왕궁에서 큰 권세를 가지고 있는 내시였는데 마침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도대체 그리스도가 누구일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어요.
빌립은 재빨리 다가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가르치며 전도했어요.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큰 은혜를 받았나봐요. 가다가 물 웅덩이를 보자, "저도 저 웅덩이에서 세례를 받겠어요. 오늘부터 예수 믿을랍니다!"하는 것이었어요.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가 가야할 길과 해야 할 일을 가르치시고 인도해주신답니다.
(결론) 이와 같이 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나면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을 하는 것이랍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성경에 말씀하셨어요. 꼭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시는 어린이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뜻을 정한 사람
(단6:19-23)
옛말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무엇이든 목적을 세우고 전진할 때 좋은 방법이 생긴다는 말이예요.
뜻 가운데도 나쁜 뜻과, 좋은 뜻이 있어요.
"나는 이다음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깡패대장이 될거야!"하면 이건 좋은 뜻인가요 나쁜 뜻인가요?
"나는 이다음에 훌륭한 대통령이 되어서 이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거야."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전도왕이 될거야!"라는 훌륭한 뜻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늘 좋은 뜻,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그 뜻에 맞게 살아가야만 해요.
1. 하나님의 뜻대로 사신 예수님
예수님은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어요. 그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기 전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아바,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어요. 예수님은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피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인간적인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사형선고를 받아서 자기가 언제쯤 죽을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두려움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서도 십자가의 고통과 처절함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러나 끝내 예수님은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며 아버지의 뜻에 맡기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결국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셨어요.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포기하셨거나 피하셨다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수포로 돌아갔을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구원을 완성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룰 수가 있었던 거예요.
2. 좋은 뜻을 가지고 있던 다니엘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다니엘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갔어요. 비록 그는 남의 나라 땅에서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지만 그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며 하루에 세 번씩 조국땅을 향해 기도를 하기로 뜻을 정하였어요.
다니엘은 그 뜻을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랑하셔서 많은 복을 주셨어요. 다니엘은 임금님의 사랑을 받아 세명의 총리대신중에 가장 칭찬받는 총리가 되어 나라를 잘 다스렸어요.
그러나 다른 두 명의 총리는 은근히 다니엘을 미워하고 싫어했어요.
"흥! 임금님께서 다니엘의 말만 듣고 우리들 말은 들은 체 만체 한단 말이야!"
"아무래도 다니엘을 없애버려야겠어!"
"어떻게?"
"다니엘이 하나님을 믿쟎아?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고 이스라엘땅을 향해 기도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것을 꼬투리잡아 죽이자 이거야!"
두 나쁜 총리들은 무서운 음모를 꾸며 임금님께 갔어요.
"폐하! 이 모든 신하들이 의논할 일이온데 앞으로 새로운 법령을 만들어 삼십일 동안에 임금님 이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기도하는 사람을 사자굴속에 던지기로 하였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임금님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오냐! 거 어렵지 않지!" 하고는 법령에 도장을 찍어 주었어요.
"흐흐흐 이제 됐다! 어디 이따가 다니엘의 집으로 가보자!"
잠시후 나쁜 두 총리는 군사들을 데리고 다니엘의 집 근처에서 숨어 지켜 보았어요. 이욱고 저녁이 되자 다니엘은 창문을 활짝 열고 큰 목소리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다니엘은 왕이 내린 법령을 알고 있지만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어요.
"자! 왕의 법을 어긴 자다! 어서 체포하라!"
군사들은 다니엘을 붙잡아 임금님 앞에 끌고갔어요.
"폐하! 왕의 법을 어긴 자를 붙잡아 대령하였나이다!"
"그래! 어디보자! 엉? 아니 이 사람은 다니엘 총리가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다니엘이 법을 어겼사오니 법대로 그를 사자굴 속에 넣어야 할 줄로 아뢰오!"
"아!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냐! 다니엘아!"
임금님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니엘을 사자굴속에 넣으라고 명령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당시의 법은 임금님도 어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예요.
3. 뜻을 굽히지 않은 다니엘
다니엘은 비록 사자굴속에 들어가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어도 자기의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어요. 임금님은 안타까와서 하루 종일 물도 밥도 안먹고 다니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이윽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임금님은 사자굴문에 가서 외쳤어요.
"다니엘아! 네 하나님이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원해주셨느냐?"
이 때 굴속에서 다니엘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네! 임금님!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모두 막아버리셨습니다!"
"오오! 위대하도다! 너의 믿는 하나님은!"
임금님은 다니엘을 나오게 한 후에 다니엘을 모함했던 두 총리를 끌어오게 했습니다.
"네 이놈들! 죄없는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했겠다! 저 사자굴 속에는 너희가 들어가라!"
"아이고 폐하! 제발 목숨만은..."
"시끄럽다! 배고픈 사자들이 기다린다. 어서 들어가라!"
나쁜 두 총리는 다니엘 대신에 사자굴 속에 들어가 잡혀먹혔어요.
그 후 다니엘은 더욱 훌륭한 총리 대신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어요.
(결론) 이와 같이 좋은 뜻을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신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도 지금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실 좋은 뜻을 세우고 예수님처럼, 다니엘처럼 날마다 그 뜻을 위해 기도해 보세요.
(어린이 주일)
어린이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마19:13-15)
오늘 말씀을 보니까 사람들이 안수기도(머리에 손을 언고 축복을 비는 기도)를 받게하려고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꾸짖었어요. 당시 유대나라에서는 어린이와 여자들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했었어요. 그래서 심지어는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을 정도였대요.
하지만 예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어린아이를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니라"면서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시고 친히 어린아이들에게 안수를 베풀어 주셨어요.
예수님은 "천국(하나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1. 예수님은 왜 어린이를 사랑하실까?
바로 어린이는 죄악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갖가지 죄악에 물들어 악해져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요. 그러나 어린이는 악한 마음이 없고 욕심이나 더러운 마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거예요.
(예화) 영희라는 어린이가 있었어요. 영희네는 아빠, 엄마, 오빠와 영희 4식구예요. 늘 행복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이었어요. 그러나 어느날 그만 영희네 집에 큰 풍파가 찾아왔어요. 오빠인 철수가 학교에서 오던 길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거예요.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피가 모자랐어요. 하지만 철수의 피는 희귀한 피였기 때문에 피를 구할 수 없어서 수술도 못하고 있었어요. 피가 같은 사람은 오직 영희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나이가 어린 영희에겐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엄마도, 아빠도 어찌할 바를 몰라서 큰 슬픔에 잠겨있었어요.
이 때 영희는 엄마와 아빠에게 다가가서 말했어요. "엄마, 아빠 울지 마세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피를 주겠어요." "대신 예수님께 기도해 주셔야해요."
그래서 영희가 오빠를 위해서 수혈을 해주었고 다행스럽게도 수술도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엄마와 아빠도 너무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어요. 잠시후 아빠가 영희에게 와서 "영희야, 네가 오빠를 살렸구나.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다는구나."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영희는 기뻐하면서 "아빠, 그럼 오빠는 살 수 있는 거죠?" "그럼-." 아빠는 즐거운 듯 대답했어요.
잠시후 영희는 말했어요. "아빠, 이다음에 하늘나라에서 엄마, 아빠, 오빠를 다시 만날 수 있는거죠?" 아빠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영희는 피를 빼면 죽는 줄로 알았던 거예요. 죽는 줄 알면서도 오빠를 위해서 피를 주겠다고 선뜻 나섰던 거예요.
이처럼 어린이에게는 순수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겸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기 때문에, 거짓이 없이 진실하기 때문에 더 사랑하시는 거예요.
2. 어린이 답지 않은 어린이
하지만 어린이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예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어린이 답지 않은 어린이가 있어요.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 겸손한 마음, 순종하는 마음, 거짓없는 진실한 마음은 전혀없고 오히려 싸움질 잘하고, 거짓말도 잘하고 불순종하고 교만한, 어린이 답지 않은 어린이가 있어요.
(예화) 용수는 참 순진하고 착한 주일학교 어린이였어요. 용수는 매주일 날마다 교회도 나가고 선생님 말씀도 잘들었어요. 그런데 4학년이 되자 민호라는 나쁜 친구를 사귀었어요.
민호는 욕도 잘하고 싸움도 잘 했어요. 그리고 용수를 데리고 빵도 사주고 구경도 시켜줬어요. 그러다보니 용수는 민호의 부하가 되고 말았어요.
민호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마구 때렸고 시키는 대로 잘 하면 먹을 것도 사주고 극장구경도 시켜줬어요. 용수도 그러다 보니 욕도 배우고 약한 어린이를 때려주기도 하고 남의 물건을 뺏기도 했어요.
하루는 민호가 용수에게, "야! 나 따라와! 우리 배밭에 가서 배 따먹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용수는 그날 안간다고 했다가 매맞을 것 같았기 때문에 따라 갔다가 처음으로 도둑질을 했어요, 그날 밤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그 다음부터 민호는, "야! 우리 슈퍼마켓에 가서 과자 훔쳐먹자!"하는 것이었어요. "싫어" 그랬다간 "짜식, 남자자식이 배짱이 없어!" 하고 핀잔을 줄까봐 또 따라갔어요. 그래서 또 도둑질을 했어요. 서너번 하다보니 재미가 있었고 엄마 아빠 주머니에서 돈도 훔쳐 극장구경도 갔어요. 그러다 보니 주일날 교회도 빠지고 놀러다니게 되었어요. 또 교회 와봤자 장난만 치고 설교말씀도 하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후 용수는 불량소년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무서운 일이예요. 결국 착하고 순진했던 용수도 죄를 지으면서 어린아이 다운 순수함을 잃고 악한 아이로 변하고 말았어요.
(결론) 우리 어린이들은 장차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갈 일꾼들이예요.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보면 안다.'는 우리 속담이 있어요.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될 사람은 어릴 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아무쪼록 지금 우리 어린이들이 갖고 있는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이 볂지 않아서 이 나라를,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와 같이 행복하고 밝고 명랑한 나라로 일구어 가는 어린이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어버이주일)
부모에게 효도하라
(엡6:1-4)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 다음으로 귀한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에도 다섯 번째 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고 명령하신 거예요.
자기 부모를 업신여기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잘 다니고 기도를 잘 해도 그 신앙을 믿을 수가 없어요. 가짜 믿음이니까요.
왜냐고요? 눈에 보이는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나님을 잘 섬길 수가 있겠어요?
1. 이삭의 순종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중에 이삭은 부모에게 가장 효성스러운 아들이었어요. 하루는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는데 그 명령은, "아브라함아! 너의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서 나에게 제물로 바쳐라!"하는 것이었어요.
제물이란 칼로 죽이고 내장을 꺼낸후 불에 살라 바치는 것인데 바로 자기 자식을 그렇게 죽여야 한다니 아브라함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에게도 사실을 숨기고 아들 이삭에게도 모든 것들을 말하지 않았어요.
"여보, 내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와야겠오! 자! 이삭아! 어서 가자."
한참을 가던 이삭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아빠에게 여쭈었어요. "아빠! 참 이상하다?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왜 안가지고 가나요?"
아브라함은 뜨끔했어요. 그렇다고 "너를 제물로 잡아바칠 거다!"하고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준비해주실거야!"하고 대답했어요.
이윽고 모리아산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자! 네가 장작개비를 지고 산을 올라가라!"하고 말했어요. 다른 아이 같았으면, "에이! 저 무거운 걸 저혼자 지고 어떻게 올라가요? 반반씩 나눠져요!"했겠지만 이삭은 아무말 없이 그 장작을 지고 높은 모리아산을 오르는 거예요.
꼭대기에 다다르자 아버지 아브라함은 갑자기 이삭을 밧줄로 묶기 시작했어요.
이삭은 깜짝 놀라, "어? 아빠, 왜 그러셔요?"하고 말했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를 제물로 바치라시는구나!"하고 말씀하셨어요. 이삭은 고개를 숙이고 아빠가 하시는대로 순종했어요.
다른 어린이 같으면, "싫어요! 난 죽기 싫어요! 아버지 미워요! 왜 날 죽여요?"하고 앙탈을 부린다든지, "아빠! 제발 살려줘요. 잘못했어요. 나 살려주시면 말 잘들을께요!"한다든지, "죽여요! 죽여! 날 죽이면 아버진 맘편하게 무사하게 살 줄 아세요? 두고봐요!"하고 투덜거릴 거예요. 그러나 이삭은 힘이 세었지만 아무 반항도 않고 아빠가 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에도 감동하셨지만 이삭의 순종에도 감동을 하셨어요.
이윽고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치려하였어요. 칼이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였어요. 그런데 내려치려는 바로 그 순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을 죽이지 말라!"하며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막았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네 믿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이제 마음착한 네 아들 이삭에게 큰 복을 내려주겠노라!"하고 말씀하셨어요.
그 때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저쪽 가시덤불에서 무슨 짐승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어요.
"응? 저게 뭐지?"
아브라함이 달려가 보니 거기엔 양 한 마리가 뿔이 나무가지에 걸려 도망도 못가고 쩔쩔매고 있었어요.
그날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 양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답니다.
2.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부모에게 순종한 이삭은 큰 복을 받아서 큰 부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늘 지켜주셨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았어요.
성경에 보면 "부모에게 순종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하고 말했는데 과연 그대로 되었어요.
예화) 양희네 엄마는 오래전부터 병에 걸려 장사도 못하고 누워있었어요. 양희는 돈도 없고 약도 없어 엄마가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한약방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들러 양희엄마의 맥을 짚어보더니, "흠! 간이 안좋구만! 민들게 뿌리를 캐어다 즙을 짜서 드리면 효험이 있을텐데...."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양희는 다음날 학교가 끝나자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로 가서 논밭 길을 뒤지며 민들레를 캤어요. 마침 민들레가 꽃이 필 때라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어요. 양희는 민들레 뿌리를 가방에 가득 채워 집에 가지고 가서 절구에 찧고 즙을 짜서 어머니께 드렸어요. 무척 쓰던지 어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며 잡수셨어요.
다음날도 양희는 칼을 가지고 시골로 갔어요. 그날 양희는 민들레를 캐다가 칼에 손가락이 베어 피가 흘렀어요. 게다가 책가방도 모두 비에 젖었어요. 게다가 양희는 감시까지 걸렸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양희의 정성을 보시고 양희 엄마의 병이 낫게 해주셨어요. 양희의 효성은 하나님을 감동시킨 거예요. 양희의 엄마는 양희가 캐다준 민들레 뿌리의 즙을 잡수시자 병이 나아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양희의 손에는 민들레를 캐다가 칼에 베인 칼자욱이 흉터가 되어 남아 있어요. 그러나 양희는 큰 복을 받아 예수님을 잘 믿는 훌륭한 남편과 같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 아 멘 -
하나님의 약속
창세기 6:9-9: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창세기9:12-13)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전도사님이 질문 한 가지 하겠어요. 사람의 몸 속에서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물'이예요. 물은 참으로 귀하고 고마운 물질이예요. 만약에 물이 없다면 사람들은 목이 말라서 죽게 될 것이고, 세수나 목욕 등 몸을 씻을 수도 없으며 농사도 지을 수 없을 거예요.
특히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물이 더욱 중요해요. 그들이 여행 중에 운송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있는데 그 동물은 무엇이죠? 네, 맞았어요. 바로 '낙타'예요. 여행자들은 여행을 하다가 오아시스라는 곳에서 목도 축이고 음식도 먹으면서 쉬기도 하는데 며칠씩 여행을 하면서도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해 물을 얻을 수 없으면 낙타를 죽여서 혹 속에 있는 물을 꺼내서 마시기도 해요.
이처럼 물은 중요하고 귀한 것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많아지면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답니다. 지난 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어떤 지방에서는 집과 논과 밭이 물에 잠기기도 했고 세계 곳곳에서는 홍수 피해로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성경 말씀을 보면 홍수로 인해 온 세상이 심판을 받았던 사건이 있어요. 바로 노아의 홍수 사건이예요.
노아가 살고 있던 당시의 세상은 말할 수 없이 악하고 부패한 세상이었어요. 얼마나 악한 세상이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시고 근심하실 정도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쓸어 없애버리기로 생각하셨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악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서 지옥에 갈 사람만 더욱 많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악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잘 공경하면서 의롭게 살아가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네, 바로 노아였어요. 노아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공경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도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하시던 그런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어요.
"노아야! 세상 사람들의 죄가 너무나 악하니 내가 홍수로 땅에 있는 모든 자를 다 멸망시켜야겠구나! 너는 산에 올라가서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너의 식구들과 각종 동물들을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거라!"
노아는 세상 사람들의 죄가 너무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즉시 그대로 순종하여 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뚝딱! 뚝딱!"
노아의 여덟 식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매일같이 방주를 만들었어요. 이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노아와 가족들을 놀려대며 조롱하기 시작했어요.
"여보게! 노아 영감이 산에다 배를 만들고 있다고 하던데 자네는 들었나?"
"뭐라고? 산에다 배를 만든다고? 와하하하... 아니 배를 만들려면 강이나 바다에서 만들어야지 산에서 만들고 있다고? 노아 영감 미친 것 아니야?"
또 어떤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 짓고 있는 곳까지 와서 놀려대며 조롱했어요.
"노아 영감! 당신 미쳤소! 그렇게 큰 배를 뭣하려고 산에다 짓는 거요? 당신 혹시 이렇게 돈 것 아니요?"
그러나 노아는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사십 일 동안이나 밤낮으로 비가 내려서 물바다가 됩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죄를 뉘우치고 어서 와서 배를 만드시오."
"으하하하하.. 뭐라고요? 비가 온다고요? 아니 저 하늘 좀 보쇼? 비가 오게 생겼나! 당신 정말 미쳤구만!"
이처럼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방주를 정성껏 만들었어요.
어느덧 120년의 긴 세월이 흘러서 방주가 완성되었어요. 방주가 완성되자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노아의 가족 여덟 식구와 공중의 새와 깨끗한 짐승은 일곱 쌍씩, 그리고 부정한 짐승은 두 쌍씩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했어요.
돼지, 토끼, 말, 소, 염소, 호랑이, 사자, 독수리, 참새 등 모든 짐승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여러 달 동안 먹을 양식도 차곡차곡 준비하여 들이게 했어요.
새와 짐승의 종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드디어 노아의 가족과 모든 짐승들이 방주로 들어가자 방주의 문이 굳게 잠겼어요. 바로 그 때, 시꺼먼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바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땅도 갈라져서 물이 분수처럼 솟아 올랐어요.
물이 차츰 차오르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설마 하던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노아가 있는 방주 곁으로 달려와서 "노아! 우리가 잘못했네! 제발 좀 살려주게!"하면서 아우성을 쳤지만 한 번 굳게 닫힌 방주의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아요.
40일 동안 밤낮으로 내린 비로 인해 세상은 물바다가 되었고 결국 배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과 짐승들은 남김없이 다 죽게 되었어요.
홍수가 퍼붓기 시작한지 150일이 지나서야 물이 걷히기 시작했고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되었어요.
노아는 바깥 세상에 물이 줄었나 안 줄었나를 알아보기 위해서 까마귀를 내어 보냈지만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노아는 7일 후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냈어요. 그러나 아직도 땅에 물이 찼기 때문에 비둘기가 살 수 없어 그냥 돌아오자 7일 후 두 번째 비둘기를 다시 날려 보냈는데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땅에 물이 빠졌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직도 땅에 물이 차 있다는 것일까요? 네, 맞았어요. 땅에 물이 빠졌음을 뜻해요.
노아는 며칠을 더 기다린 후에 370일 만에 방주에서 나왔어요.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가장 먼저 식그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절대로 다시는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면서 그 증거로 무지개를 주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에서 전도사님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노아의 신앙
노아는 홍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던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스스로 '착하다'하고, '의롭다'라고 하면서 잘난 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노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던 의인이었어요.
당시의 사람들의 죄는 너무 부패한 것이어서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근심하실 정도였지만, 노아는 하나님을 잘 공경하면서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어요.
또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했던 사람이었어요. 120년 후에 임할 홍수를 대비해서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배를 만들었어요.
더욱이 방주에서 나온 후에 가장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고 감사의 제사를 드린 사실에서 우리는 노아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홍수 때문에 집도 다 잠기고 논도 밭도 다 잠겨서 못 쓰게 되었기에 집을 짓고 밭을 갈며 식구들을 먹여 살릴 걱정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가장 먼저 홍수에서 구해 주신 하니님께 감사하며 제사를 드렸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노아의 귀한 신앙을 본받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어요.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많아져서 세상을 다 멸망시키고자 하셨지만 의인 노아는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가족과 함께 구원해 주셨으며 의인 노아를 통해서 인류를 보존하고자 하셨어요. 하나님은 죄인들을 심판하시고자 하셨지만 노아가 방주를 짓던 120년 동안을 사람들이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어요. 또한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갔던 일주일 동안에도 사람들이 회개하며 돌아올 수 있는 기간으로 주셨어요. 이 사실은 마지막까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은 멸망시키지 않고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요.
3. 약속의 무지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에 가장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 언약을 세우셨는데 그것은, '이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으며 그 약속의 증거로 무지개를 주셨어요.
홍수를 경험한 노아와 그의 자녀들은 홍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남아 있었어요. 아마 하나님이 무지개의 약속을 하지 않으셨다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하늘에 몰려오는 먹구름만 보아도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시고 언약을 세우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을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바로 그 약속의 증거가 무지개랍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어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며 절대로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죄의 결과는 곧 죽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또한 하나님을 공경하며 믿음생활을 잘했던 노아와 그의 가족이 구원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함이 없어요. 하나님의 약속대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셨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무지개 언약에 따라 홍수의 멸망에서 인류를 지켜주고 계시답니다.
마치 하나님의 약 속의 증표인 무지개가 홍수를 막아 주듯이, 우리가 멸망받지 않는 확실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문둥병을 고침받은 나아만 장군
열왕기하 5:1-19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열왕기하 5:14-15)
아람 나라에 나아만이라는 군대 장관이 있었어요. 아람 나라와 이스라엘은 서로 적대 관계에 있었지만, 때로는 우호 관계를 맺을 때도 있었어요.(왕상 15:18-20)
나아만 장군은 한 때 아람 나라를 침범하여 속국으로 만들었던 앗수르라는 나라를 물리치고 아람 나라가 독립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었기에 아람 나라 왕으로부터 '크고 존귀한 자'(왕하5:1)라는 높임을 받았던 인물이었어요.
이처럼 나아만은 왕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군대장관으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장군이었지만 그에게는 큰 걱정이 한가지 있었어요.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문둥병에 걸려서 몸이 차츰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나아만 장군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붙잡혀온 어린 여자 아이가 있었어요. 이 여자 아이는 아람 나라 군대들이 이스라엘에 쳐들어가서 아람 나라에서 종으로 사용하고자 붙잡아온 아이였는데, 비록 남의 나라에서 종으로 사용하고자 붙잡아온 아이였는데, 비록 남의 나라에 잡혀와서 남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지혜롭고 용기있는 어린이였어요.
여자 아이는 자신이 섬기는 집의 주인인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 있다는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의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저 주인 마님! 저의 조국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에는 엘리사라는 훌륭한 선지자님이 계신데 나아만 장군님이 엘리사 선지자님 앞에 가시면 병을 고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남편 나아만 장군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이 사실을 아람 나라 왕에게 알렸어요.
"폐하!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성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자가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를 사마리아에 보내주소서!"
"아니! 정말로 문둥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장군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하는 특별한 부탁의 글을 써줄테니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전해주시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아만 장군은 왕이 써준 편지와 엄청난 보물들을 싣고 군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떠났어요.
이스라엘에 도착한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 왕에게 가서 아람 왕이 써준 편지를 전해주었어요. 그런데 아람 왕의 편지를 읽던 이스라엘 왕은 깜짝 놀라며 벌벌 떨며 근심에 빠지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그 편지에는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달라는 부탁이 써 있었는데 이스라엘 왕은, 그런 큰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아람 왕이 괜히 시비를 걸어서 이스라엘을 쳐들어 오고자하는 어떤 흉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왕은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 잡히게 된 거예요.
당시에 아람 나라는 이스라엘을 자주 쳐들어와서 괴롭게 하던 나라였기에 이스라엘 왕이 두려움과 걱정에 떨게 된 거예요.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이 소식을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나아만 장군 일행을 자신에게 보내 주시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 것을 저들에게 알게 하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보내줄 것을 요청했어요.
왕은 나아만 장군 일행을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보냈고 나아만 장군 일행은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 집을 향해 떠났어요.
이윽고 엘리사 선지자의 집 앞에 도착한 나아만 장군 일행은 엘리사 선지자의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엘리사 선지자가 아닌 엘리사 선지자의 종이었어요.
그는 엘리사 선지자님의 말씀을 나아만 장군에게 전했어요.
"나아만 장군님! 저의 엘리사 선지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해드리겠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님께서는 장군님께서 지금 곧 요단강으로 가서 요단강 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병이 다 낫고 살이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나아만 장군은 몹시 화를 내며 불쾌하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자신은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인데 자기처럼 높은 사람이 찾아왔는데 얼굴도 내밀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지도 않았기 때문이예요. 더구나 엘리사 선지자는 굉장한 치료 방법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왔는데 겨우 요단강 가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이나 하고 가라고 했기 때문이예요.
"얘들아, 돌아가자! 우리 아람 나라에는 요단강보다 더 깨끗한 강물이 있는데 차라리 그곳에 가서 몸을 씻으면 되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군사들을 데리고 아람 나라로 되돌아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나아만 장군의 종 중에 한 사람이 나아만 장군에게 말했어요.
"장군님!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선지자가 장군님의 병을 낫게 해드리기 위해서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을 시킨다면 안하시겠습니까?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믿고 요단강가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고 가는 것이 옳은 줄 아옵니다."
나아만 장군은 종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을 하고 요단강가로 향했어요.
요단강 가에 도착한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님의 말씀대로 요단강 물에 들어가서 일곱 번이나 목욕을 했어요.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문둥병에 걸려서 살이 썩어가고 몸에 고름이 흐르던 살이 어린 아이의 살결같이 곱고 부드러운 살결로 변하게 된 거예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정말 나의 문둥병이 다 나았다. 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이 깨끗하게 낫자 단숨에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달려 갔어요.
"엘리사 선지자님! 선지자님의 말씀대로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목욕을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이제야 이스라엘의 하나님 외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병을 고쳐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작은 정성으로 이 예물을 드리오니 받아주소서."
나아만 장군은 자신이 준비해온 금은 보화를 정성껏 엘리사 선지자에게 드렸어요. 그렇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금은 보화를 거절했어요. 왜냐하면 나아만 장군을 고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어요. 엘리사 선지자는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만을 나타내며 하나님을 높여드렸어요.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도 고침받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도 깨닫게 되었어요. 나아만 장군은 비록 이방 나라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한 후로는 하나님만 섬기기로 약속하고 아람 나라로 돌아갔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는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을 전도사님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 장군을 돌려 보낸 이유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의 집을 방문 했을 때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 장군을 집 안으로 맞아들이며 대접을 한 것이 아니라 '요단강 물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면서 돌려 보냈어요. 왜, 엘리사 선지자는 냉정하게 나아만 장군을 되돌려 보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나아만 장군의 교만을 꺾기 위해서 였어요.
나아만 장군은 자신이 아람 나라 왕의 사랑과 신임을 받고 있었고 나라의 영웅으로 높임을 받고 있었어요.
그는 병이 들어 이스라엘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올 때에도 많은 군사와 병거를 이끌고 올 정도로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기 좋아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 장군의 못된 교만을 먼저 꺾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두 번째 이유로는, 문둥병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고쳐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어요. 당시에 고대 근동지방에는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주술이나 마술같은 미신들이 행해졌었는데 엘리사 선지자는 그러한 방법이 아닌 요단 강물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함으로써,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엘리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거예요.
2. 나아만 장군이 병을 고침받게 된 비결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 물에서 몸을 일곱 번 씻고 문둥병을 고침받은 것은 요단강 물에 어떤 효험이나 능력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에요.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침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지위나 체면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엘리사 선지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화를 냈지만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했어요.
나아만 장군은 자기 집에 있던 어린 여자 종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고, 자기 밑에 있는 종의 충고도 받아들였어요. 만일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듣고 아람 나라로 되돌아 갔다면 평생토록 문둥병을 고치지 못한 채 고통속에서 살아가야 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믿고 순종함으로 그의 소원인 문둥병도 낫게 되었고 하나님도 믿게 되는 큰 축복을 입게 되었어요.
복음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너무 쉬운 방법이기에 아직도 세상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지 않고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어요.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믿고 순종함으로 문둥병도 낫고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것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주신다는 단순하고 쉬운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어요. 이방인이었던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지위와 체면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문둥병도 고침받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해 주신다는 복음의 귀한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구원의 선물을 받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 아 멘 --
어린 다윗과 거인 골리앗
사무엘상 17:1-54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사무엘상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지금 전도사님이 외쳤던 이 말은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아는 친구 있나요? 네, 맞았어요. 어린 목동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에게 한 말이예요.
오늘은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전해 드리려고 해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을 때에 이웃 나라에 살던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어요.
블레셋은 사울이 왕이 된 후에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여러번 진 적이 있기 때문에 복수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내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수를 앞세우고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어요.
블레셋이 쳐들어 온다는 소문을 들은 이스라엘 왕 사울은 군대를 동원하여 '엘라'라고 부르는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어요.
사울 왕은 예전에도 블레셋을 이긴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전쟁에 임했지만 적군의 장수인 골리앗의 위세당당한 모습을 보자 어쩔 줄 몰라했어요.
골리앗은 2m 70cm가 넘는 키에 놋쇠로 만든 투구를 썻고, 57kg이나 되는 무거운 갑옷을 입었으며, 다리에도 놋쇠로 만든 보호 장비를 댄 채 칼과 단창으로 완전 무장한 채 날마다 골짜기 건너편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위협하며 싸움을 걸어왔어요.
"으하하하하... 겁 많은 이스라엘 녀석들아! 나와 싸울 자가 있으면 어서 한 사람을 선택해서 나와 싸우도록 해봐라! 너희가 나를 이기면 우리 블레셋 사람들은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나 골리앗이 이긴다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이 겁쟁이 이스라엘 녀석들아! 으하하하....!"
골리앗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를 지켜보던 이스라엘 군대 중의 일부가 도망칠 정도였고, 지켜보다 못한 사울 왕이 많은 재물과 함께 자신의 딸을 현상으로 내걸 정도였어요.
이때 시골 소년이었던 어린 목동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보기 위해서 전쟁터에 오게 되었어요. 아버지 이새가 전쟁터에 나간 세 아들의 염려 때문에 다윗에게 형들의 안부를 알아올 것을 부탁하면서 먹을 것을 다윗 편에 보냈기 때문이예요.
전쟁터에 도착한 다윗은 적장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교만한 말을 듣자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아저씨들!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저 적군의 장수가 누구기에 이스라엘 군대는 꼼짝도 못하는 거죠?"
"애야! 말도 말아라! 저놈은 골리앗이라는 장수인데 너무 힘이 세고 무서워서 우리 이스라엘 군대 중에는 이길 자가 없단다. 그래서 왕께서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과 자기의 딸을 주기로 약속까지 하셨단다."
"뭐라고요! 저 고릴라같이 생긴 골리앗이라는 자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는데 참고 보고만 있단 말인가요? 내가 저 자를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씻고야 말겠습니다."
다윗의 이 말은 사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사울은 다윗을 불렀어요. 사울 앞에선 다윗이 말했어요.
"폐하! 제가 저 거인 골리앗과 싸우겠습니다."
"무엇이! 너같은 어린 소년이 무슨 수로 골리앗과 싸운단 말이냐? 너는 어린 소년이지만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힘이 센 용사가 아니냐?"
"폐하! 걱정 없습니다. 제가 들에서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양때 가운데서 새끼를 잡아 먹으려고 하면 내가 따라가서 싸워서 이기고 양떼를 구해냈고, 사자나 곰이 나를 죽이려고 할 때는 내가 그것으 수염을 잡고 싸워서 쳐 죽였습니다. 내가 사자와 곰도 이겼던 것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블레셋 사람들도 그 짐승들처럼 만들어버릴 자신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자나 곰의 발톱에서 지켜주신 것처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와같이 굳건한 믿음을 가진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 왕은 어쩔 수 없이 다윗이 요청을 허락한 후 자기가 쓰던 투구와 갑옷 그리고 칼을 내 주었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입어 본 다윗은 불편해서 도저히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사울왕이 내려 준 장비들을 다 거절했어요.
다윗은 전쟁터로 나가기 전에 손에 막대기를 든 채 시냇가로 가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 앞으로 나아갔어요.
물매는 돌을 담을 수 있는 긴 가죽조각으로 가죽의 양쪽 끝은 끈으로 묶여 있었는데 양쪽 끝을 잡고 빙빙 돌리다가 한쪽 끝을 놓으면 돌이 날아가게 되어있는 목동들이 사용하던 일종의 무기였어요. 이 물매로 다윗은 사자나 곰을 쫓는데 사용하기도 했어요.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자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비웃었어요.
"잘생긴 어린 꼬마 녀석이 겁도 없이 내게 다가오다니!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내가 믿는 다곤 신의 이름으로 저주를 받아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의 밥이 되게 하리라!"
골리앗의 말을 들은 다윗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골리앗을 향해 외쳤어요.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덤비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와 싸우노라! 내가 너의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이 먹게 하리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내가 너로 알게 하리라!"
다윗의 말을 들은 골리앗은 "뭐라고! 어린 꼬마 녀석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떠들어 대다니!"라고 하면서 다윗에게 달려들었고 다윗도 골리앗을 향해 달리면서 주머니에 들어있던 돌을 꺼내 물매에 넣고 빙빙 돌리다가 골리앗에게 던졌어요.
다윗의 품을 떠난 물맷돌은 '쌩!'하면서 날아가더니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하게 명중되었고 골리앗은 '쿵!'하며 땅에 쓰러지고 말았어요. 그러자 다윗은 골리앗에게 달려가서 골리앗이 차고 있던 칼을 꺼내서 그 칼로 골리앗을 죽이고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어요.
이 모습을 본 블레셋 군사들은 "아이고 큰일났다! 우리 대장 골리앗이 쓰러졌다! 우리도 죽기 전에 빨리 도앙가자!"라고 하면서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어요.
반대로 이 모습을 본 이스라엘 군사들은 큰 힘을 얻고 달려나와서 도망가는 블레셋 군대를 쫓아가며 쳐부수었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하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다윗의 용기가 너무나도 멋있고 자랑스러워보이죠? 그럼 이제부터는 다윗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담대하게 하나님만을 섬기는 어린이들이 되셔요. 또 하나님은 약한 다윗을 들어서 그보다 몇배 덩치도 크고 힘센 골리앗을 물리치신 것처럼 힘없고 연약한 우리 어린이들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때 못할 것이 없음을 믿으세요. - 아멘 -
무너진 성벽을 다시 고친 느헤미야
느헤미야 1:1-6:19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헤미야 6:15-16)
유대 나라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한 후 바사라는 나라가 바벨론을 물리치고 유대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을 때였어요. 바사 나라는 세계 역사에서는 '페르시아'라고 불리었고 지금은 '이란'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당시 유대 나라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라는 왕이 쳐들어 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포함한 모든 성을 불태우고 성벽을 허물어 버렸으며(당시로부터 142년전, B.C 587년 역대하 36:19), 많은 유대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야 했어요. 그러나 스룹바벨이라는 지도자에 의해 일부 유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1차 귀환, B.C 537년) 두 번째로 성전을 완성했었지만 무너졌던 성벽을 다시 고치지는 못했던 상태였어요. 그리고 후에 에스라라는 지도자와 함께 일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2차 귀환, B.C 458년) 에스라의 지도 아래 무너졌던 성벽을 다시 고치고자 했지만 대적자들의 방해와 아닥사스다 1세의 명령에 의해서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태워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어요(에스라 4:12-13, 21-23).
포로로 잡혀 갔다가 다시 조국 유대 나라로 돌아온 백성들은 예루살렘성이 파괴되고, 성문들은 불타버린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바사라는 나라에 있던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게 되었어요. 느헤미야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던 사람이었지만 능력있는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사 나라의 왕인 아닥사스다 1세의 술 시중을 드는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어요.
당시에 술관원이었던 사람은 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셨을 뿐만 아니라, 왕은 자기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신하 중에서 술관원을 선택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왕이 있는 수산궁에서 왕의 신임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어요. 느헤미야는 자신이 비록 남의 나라에 와 있었지만 죄로 인해 망해가는 자기의 조국을 생각하며 늘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던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느헤미야는 자기의 친 형제인 하나니로부터 자기 조국의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그 내용인즉, 예루살렘성이 파괴되고 성문은 불타버렸으며 백성들은 실망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몹시 슬퍼하면서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어요. 느헤미야는 자기의 기도가 이루어질 때가지 계속해서 밤낮으로 기도했어요(4개월 동안, 기슬르월(11-12월)-니산월까지(3-4월).
자기의 조국을 위해 기도하던 느헤미야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찼고 몸은 자꾸만 야위어 갔어요.
어느 날 느헤미야가 왕의 앞에서 술을 따라 드리고 있었는데 느헤미야의 슬픈 얼굴을 본 왕이 느헤미야에게 물었어요.
"느헤미야! 그대에게 무슨 근심이라도 있소! 얼굴이 몹시 안 돼 보이는구려!"
"페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의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성문은 불타버린 채로 있사온데 제 마음에 어찌 근심이 없겠사옵니까?"
"그러면 그대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시오!"
"폐하! 폐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면 제가 나의 조상들이 있는 예루살렘성으로 돌아가서 무너진 성을 다시 고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느헤미야는 왕에게 자기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 왕께 자기의 소원을 말했어요.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를 자기의 곁에서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웠지만 느헤미야를 믿고 사랑했으므로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어요.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의 요청대로 예루살렘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통과해야 하는 성들의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서 느헤미야가 무사히 그곳을 통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으며, 성문과 성곽과 느헤미야가 살 집을 지을 수 있게 목재를 충분히 주었고, 느헤미야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군사들로 하여금 느헤미야를 호위하며 갈 수 있도록 허락했어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기 때문이었어요.
유대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조사를 시작했어요. 듣던 대로 성벽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고 성문은 불타 있었으며 그야말로 페허가 되어 있었어요. 조사를 다 마친 느헤미야는 모든 백성들과 함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호소했어요.
"백성 여러분! 여러분이 보는 바와같이 지금 예루살렘성이 무너졌고 성문은 불타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도 부끄럽고 큰 슬픔에 빠져있습니다. 이제 우리 다시 힘을 합해서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고쳐서 다시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백성 여러분! 예루살렘성을 다시 고칩시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이 느헤미야의 의견에 찬성을 하며 힘을 합해 예루살렘성을 다시 고치기로 결의했어요. 그러나 그 중에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라는 세 사람은 느헤미야가 성을 다시 건축한 후에 왕에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며 반대했어요. 이처럼 적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성을 다시 고쳐나가기 시작했어요.
백성들은 힘을 모아 성문을 다시 고치며 망대를 다시 세웠으며 성벽도 하나씩 세워 나갔어요.
한편, 성을 고치는 것을 반대하던 자들 중에서 호른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느헤미야를 조롱하며 군사들을 동원해 쳐들어가서 훼방을 놓기도 했어요.
그중에 도비야는 "당신들이 건축하는 성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질 것이오!"라고 하면서 비웃기도 했어요.
훼방꾼들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겁이 나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외치기를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떤 방해와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예루살렘성을 다시 고쳐야 합니다. 이제부터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성을 지키면서 일합시다. 한 손으로 일해도 되는 사람들은 한 손에는 무기를 잡고 한 손으로 일을 하고, 두 손으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칼을 허리에 차고 일합시다. 우리가 일하다가 적이 쳐들어 온다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모든 사람이 달려나가 적들과 싸웁시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와같이 느헤미야는 밤낮으로 성을 지키면서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세워 나갔어요. 하지만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어요.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었고, 많은 세금 때문에 허덕였으며, 자녀들과 밭과 포도원 등을 담보로 돈이나 곡식을 꾸어오는 등 백성들은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 이유는 돈 많은 부자들이 고리대금 행위를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설득해서 부자들이 저당 잡았던 것들의 백분의 일을 동족에게 돌려주도록 하였고 이에 백성들이 느헤미야의 말을 따름으로써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었어요.
이제 무너졌던 성벽은 거의 완성이 되어가고 있었고 성문을 달기만 하면 성벽 공사가 완공될 때였어요.
산발랏과 게셈이 사람을 시켜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 내어 살해하기 위해서 네 번이나 편지를 보냈어요. 그러나 이 사실을 미리 알아차린 느헤미야가 거절함으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들은 계속해서 느헤미야가 왕이 되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면 중상 모략을 일삼았고, 스마야라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고 느헤미야에게 보내서 적들이 당신을 죽이기 위해 올 것이니 성소로 도망치라며 느헤미야가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전으로 들어가게 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죄를 짓도록 유혹했어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러한 대적들의 방해와 유혹, 그리고 백성들의 원망을 극복하고 드디어 52일만에 무너진 성벽을 완성시켰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는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느헤미야의 기도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던 유대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해있고 예루살렘성이 파괴되고 성문은 불타 버렸다는 소문을 들었던 느헤미야는 슬피 울면서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했고, 자신의 소원을 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어요. 느헤미야는 자신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었기에 밤낮으로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왕의 허락으로 유대 총독으로 임명되어 온 후에 예루살렘성을 다시 세우기까지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어요(느헤미야 4:4-5,9).
이와 같이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예루살렘성을 다시 세우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어요.
2. 온갖 장애를 물리치고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
유대 총독이 되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먼저 비밀리에 성벽이 무너진 상활을 조사한 후 백성돌과 지도자들을 설득해서 성벽을 다시 고쳐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사마리아의 총독이었던 산발랏, 도비야, 게셈 등 많은 대적자들이 나타나서 느헤미야를 모함하고 훼방하며 협박했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어요. 이러한 외부적인 방해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이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다 물리치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울 수가 있었어요.
느헤미야가 이와같은 내,외적인 어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느헤미야같이 하나님만 믿고 의지한다면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도 다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을 거예요.
3. 느헤미야를 도와 주신 하나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에는 느헤미야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지만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도와 주셨다는 사실이예요.
느헤미야가 바사 나라의 아닥사스다 왕 밑에서 술관원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때문이었어요.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통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시기 위해서 느헤미야를 술관원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어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으로 느헤미야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느헤미야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셨고(느헤미야2:8), 무너진 성벽이 이루어질 때까지 늘 함께 해주셔서 무사히 성벽 공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느헤미야 6:16).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곧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다시 고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도와 헌신적 노력과 정성이 있었지만, 그 일을 뒤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무슨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만나거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도와주심을 믿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 아 멘 --
독수리 같이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명기 32:11-12)
만약에 여러분이 새가 된다면 어떤 새가 되고 싶으세요? 할미새요? 뜸부기요? 독수리라구요? 그래요. 나라도 새 중의 왕인 독수리가 되겠어요.
(시각자료 25-1) 독수리가 새 중의 왕으로 불리는 것은 두 가지의 중요한 이유 때문이에요. 그 첫 번째 이유는 독수리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할미새나 참새는 아무리 독수리 흉내를 내어도 독수리가 될 수는 없다구요. 그 두 번째 이유는 독수리가 받는 끔찍스러울 정도로 강한 훈련 때문이에요. 아무리 매서운 독수리라도 편한 세상에서 잉꼬새처럼 자란다면 결코 독수리의 명성은 지닐 수가 없어요.
그럼, 독수리가 어떻게 그 새끼를 훈련시키는지 볼까요?( 시각자료 25-2)어미 독수리는 둥지를 주로 바닷가 높은 벼랑에 짓는다고 해요. 물론 맹수나 독사의 손에서 새끼를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자기 새끼를 새 중의 왕으로 훈련시키기 위해서랍니다. 일단 새끼가 부화되면 깃털이 나기도 전, 즉 날개나 다리 근육에 힘이 생기기 전부터 훈련을 시작한답니다.
그 훈련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선 새끼가 누운 포근한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에서부터 새 중의 왕이 되는 훈련이 시작됩니다. 그 동안에 의지가 되던 벼랑 바위 틈의 둥지마저 어미 독수리가 다 헐어내 버리면 새끼 독수리는 온 몸을 불편하게 만드는 바위 틈에 의지하여 비바람과 추위와 싸우며 고통을 견디어내야 합니다. 처음에는 죽을 것만 같겠지만 몇 일 몇 주가 지나면서 새끼는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추위에 겁먹지 않는 담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독수리 새끼 훈련의 전부는 아닙니다. 어미 독수리는 아직 깃털도 안난 새끼 독수리를 그 높은 벼랑 둥지에서 밀쳐 떨어뜨립니다. 날개 근육에 힘이 없는 새끼 독수리는 속수무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결코 어미 독수리가 매정하게 새끼를 죽이려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적응 못하는 겁 많은 자기 새끼를 아예 죽여버리려고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미 독수리는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새끼 독수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그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새끼 밑으로 급히 내려와 새끼를 업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끔찍한 훈련이 새끼 독수리 입장에선 처음부터 이해가 될 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어미 독수리는 새끼가 이해할 수 있을때까지 훈련을 지체하지 않습니다. 한 번, 두 번, 스무 번, 백 번, 이 백번.. 계속되는 훈련을 통해 독수리는 무서울 것이 없고, 거칠 것이 없는 새 중의 왕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새 중의 왕인 독수리도 자기 새끼를 그렇게 키울 줄 알거든 하물며 왕 중의 왕인 하나님께서야 그 백성이 왕의 자식다운 품위와 우아함을 가진 자녀로 자라나도록 훈련시키시는 일을 잊으시겠습니까?
사실, 오늘의 독수리 이야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말씀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을 받습니다. 그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 오는 것도, 그분의 능력이 달려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더더구나 우리를 괴롭히거나 위협하려고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숱한 고난은 우리를 강하고 멋진 그분의 백성으로 키우시려는 훈련의 일환인 것입니다. 그러나 보금자리를 어지럽히고 새끼를 떨어뜨린 어미 독수리가 새끼 위에 나풀거리듯 하나님은 온 신경을 고통스런 훈련 중에 있는 우리에게 집중하시며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함께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계십니다. 새끼가 감당 못할 처지가 되면 조금의 착오도 없이 새끼를 날개로 받는 어미 독수리처럼 주님도 우리가 감당 못할 때 우리를 그 넓은 등으로 업으셔서 구해내십니다. 새끼 독수리가 여러 번 떨어지다보면 겁먹고 소리지르는 대신 엄마 독수리가 자신의 안전과 모든 것을 책임져 줄 것을 믿고 안심하고 몸을 내던지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고난을 통해 우리 주님을 신뢰하고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고난을 당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품위 있고 우아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기 위해 우리를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훈련 현장에 함께 계셔서 아픔과 안타까움을 같이 나누며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맡길 때 훈련은 더 이상 괴로움과 두려움이 아니라 즐겁고 신나는 모험이 될 것입니다.
기도 : 주님, 독수리가 그 새기를 훈련하듯 저를 하나님의 품위있고 우아한 친 백성으로 훈련시키심을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악 쓰지 않는 삶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세기 26:12-13)
(미리 T.V나 어린이들의 놀이터, 시장 등에서 고함 지르는 소리, 싸우는 소리 악 쓰는 소리 등을 녹음해서 들려줌으로 시작하라. 준비가 안되면 곧바로 시각자료 20-1을 보여 주며 말하라) 이 그림은 음성 그래프입니다. 밤낮없이 소리를 질러대던 거라사인 땅 귀신들과 사람의 음성 그래프를 상상해서 그려 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음성 그래프를 그린다면 이와 똑같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제 뜻대로 안되면 신경질내며 소리를 지르거나 악을 씁니다. 차근차근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쉽게 성내며 악을 쓰고 싸웁니다. 노래도 악을 쓰고 코미디도 악을 씁니다. 이 시대는 한마디로 악 쓰는 시대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시각자료 20-2를 보이며) 한 평생을 조용히, 정말 조용히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삭입니다. 그의 음성 그래프를 그린다면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생애 동안 한 번도 혈기를 부리거나 핏대를 내거나 멱살을 쥐거나 악 쓰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뜻대로 잘 돌아갔으나까 그랬을 거라구요? 천만에요. 사실 그는 (시각자료 20-1로 바꾸어 들고) 이렇게 소리를 질러야 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복 형인 이스마엘과 작은 엄마 하갈은 어린 이삭을 시샘하고 헐뜯으며 미워했습니다(창 21:9). 그가 청년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의 칼에 찔려 죽을 뻔했습니다(창 22:9-10). 또 그가 사는 땅에 흉년이 들어 굶주림을 면하려고 블레셋으로 잠시 이주를 해야 했습니다(창 26:1). 블레셋에서 그는 하마터면 그 나라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했지요.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이 심술 사납게 다 메워버렸기 때문에 그가 우물을 다시 파내자 그들이 와서 빼앗았습니다. 그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는데 거기까지 그들이 쫓아와 그 우물도 빼앗아 버렸어요. 두 번씩이나 어처구니 없는 행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니 이삭이야말로 악을 써도 시원치 않을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시각자료 20-2를 보이며)이삭은 조용히, 정말 소리 없이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화를 낼 줄 모르는 바보 천치였나요? 시비 거는 사람들이 두려워 아무 소리 못한 걸까요? 아닙니다. 그에겐 실력이 있었습니다. 악 써야 할 상황에서도 악 쓰지 않을 수 있는 실력 말입니다. 실력이란 바로 그의 믿음이었어요. 그는 하나님을 믿었어요. 자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이심을 믿었던 것이지요. 500억 재산을 가진 사람이 버스 기사 아저씨와 버스요금 부족액 10원 때문에 악 쓰며 싸우겠어요? 다이아몬드를 여러 개 가진 사람이 유리 구슬 한 개를 남이 가져 갔다고해서 멱살 쥐고 핏대 세우며 싸우겠어요? 이삭이 조용히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이 악을 쓰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 있었습니까? 바보 취급을 당했었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는 블레셋과 아비멜렉이 두려워할 정도의 거부가 되었어요.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음'이에요. 이삭은 그의 믿음으로 또 순종으로 하나님 마음에 웃음을 드렸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특별한 방법으로 축복해 주셨던 거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야'라고 독점하시는 친 백성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악을 쓰면서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 이삭처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시각자료 20-1을 왼손에 들고) 이런 삶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껌 하나 과자 한 봉지 때문에, 돈 몇 백원 때문에, 예쁜 옷 한벌 때문에 소리지르고 악 쓰는 것은 친 백성 신분에 어울리지 않아요. 양보해야 해요. 넘겨줘야 해요. 다 주어도 여러분은 손해볼 것이 없는 사람이쟎아요?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으니까요. (시각자료 20-2를 오른손에 들고) 이렇게 품위 있고 우아한 믿음의 삶을 사셔야 어울리지 않겠어요?
기도 : 주님! 저에게도 이삭처럼 크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신 사람답게 악 쓰지 않고 조용히 살 수 있는 믿음의 실력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먼저 구할 것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대개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성난 파도와 같이 일렁이는 바다와 같습니다. 쉽게 평안을 잃고 화를 냅니다. 또 쉽게 기쁨을 잃고 슬퍼합니다. 쉽게 두려워하고 쉽게 낙심합니다. 사람이 사는 건지 염려가 사는 건지 모를 정도로 걱정 근심에 싸여 당황해 합니다.
만약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안정되지 않고 술렁대는 원인을 그대로 찍어 보여줄 수 있는 X-레이가 있다면 (시각자료 21-1을 보이며) 그 X-레이 필름에는 이런 그림이 찍혀질 것 같아요. 사람들의 삶을 출렁거리게 만드는 가장 깊은 원인은 바로 이 의식주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언제나 이것에 골똘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뭘 해먹고 사나? 뭘 걸치고 사나? 어떤 집에서 사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어떻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은 파도처럼 치솟아 오르기도 하고 내리꽂히기도 합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죽기도 하고 남을 죽이기까지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세 분의 선생님을 들판에 두셨습니다. (시각자료 21-2를 보이거나 아름다운 생화 한 송이를 보이며) 첫 번째 선생님은 꽃입니다.(꽃을 귀에 대고 무슨 소리를 듣는 시늉을 해보리라) 이 꽃이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지요? 제가 이 꽃이 하려는 말을 통역해 드리겠어요.
"당신네 인간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당신네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중에서 가장 귀하게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은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분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툭하면 입을 옷이 없다느니, 마땅치 않다느니, 구식이라느니, 무엇이 어떻다느니, 불평들을 하는군요. 난, 정말 여러분을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살다가 내일이면 쓰레기통에 던져질 나 같은 꽃 한 송이에게도 이런 멋진 옷, 솔로몬 대왕도 걸쳐보지 못한 이런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시는 하나님이신데요...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당신들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너무너무 안 어울려요."
(시각자료 21-3을 보이거나 실제 새 한 마리를 새장에 넣어 가지고 와서 보이며) 예수님이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보내신 두 번째 선생님은 바로 이 새입니다. 이 새도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하네요. 제가 통역을 해드리겠어요.
"우리 새들의 사회에서 가장 웃기는 코미디 소재는 바로 당신들- 인간들입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툭하면 '뭘 해먹고 사나? 굶어 죽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조금 더 잘 먹고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당신네 인간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새들의 코미디 소재라구요. 우리는 당신들처럼 심지도 않고, 움켜쥐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 두지도 않지만 결코 염려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니까요. 당신네 인간들- 어려서부터 움켜쥐고 빼앗고 쌓아오면서도 어찌 그리도 마음이 늘 궁색합니까? 여러분을 보고 있노라면 당신들에게는 우리를 돌보시는 그 좋은 하나님이 안계신 것 같은 확신이 든다구요."
(시각자료 21-4를 보이며) 마지막으로 소개할 선생님은 달팽이입니다. 이 달팽이도 할 얘기가 많아요. 여러분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통역해 드리죠.
"여러분이 집 문제를 가지고 마음을 쓰는 것을 보면 저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간들이 잘못 번역한 듯이 느껴져요. '하나님이 달팽이를 이처럼 사랑하사' 이렇게 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에요. 나 같이 가치 없고 연약한 달팽이 한 마리도 이처럼 사랑해서 이 멋진 집을 설계하시고 완공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여러분을 그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꼭 맞는 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당신네들을 위해 천국을 준비해 주신 분이 그분이시라면 그 하나님 앞에서 집 문제로 안달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만난 이 세 선생님들은 우리를 너무너무 부끄럽게 하고 있지요? 이들의 마음을 특수 X-레이 기계에 넣으면 (시각자료 21-5를 보이라) 이런 그림이 나올 것 같아요. 이들의 관심은 의식주가 아니라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인 것 같아요.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쪽에 집중되어 있나요? 의식주 문제? 하나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함께 읽어 볼까요? (마태복음 6:31-33을 한 목소리로 읽으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 멘
기도 : 주님! 꽃도, 새도, 달팽이도 걱정하지 않는 의식주를 염려하는 그런 품위 없는 삶을 살지 않게 도와 주세요.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만 신뢰하고 살게 도와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생과 사의 경고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창 12:14)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요즘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유행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네, 그래요. 요즈음 유행하는 유머들을 들어보면, '썰렁하다', 'Short 다리' .... 등등 TV에서 개그맨들이 사용하는 내용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도 유머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활력소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만일 세상에 유머가 없다면 세상은 정말로 재미없고 짜증날 거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필요한 유머가 예배시간이나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분반 공부시간, 그리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 분별없이 끼어들어서 분위기를 깨뜨릴 때는 참으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그러한 것들은 유머가 아닌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 어린이들은 건전한 유머와 말장난은 분명히 구별해야 겠어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겨서 유황과 불로 심판을 받았던 성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 성은 지금은 사해바다 남쪽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데 싯딤 평원이란 곳에 있었던 성이었어요.
어느 성인지 아는 어린이 있나요? 네, 맞았어요! 소돔과 고모라성이 바로 오늘 성경말씀의 무대예요.
당시에 소돔성은 풀이 넉넉해서 '하나님의 동산'이라고 불릴만큼 기름진 땅이었어요(창 13:10). 그런데 그 성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었어요.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악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아지자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멸하기로 하셨어요. 하나님은 그 성에 의인 열사람만이라도 있으면 멸망하지 않으시기로 하셨어요. 그렇지만 그 성에는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유황과 불로 멸망당하게 되었어요.
오늘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세 종류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긴 사람들
하나님께서 성을 불로 멸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롯은 자신의 두 딸과 사위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 주었어요.
"얘들아! 하나님께서 이 성의 죄악을 보시고 이 성을 불로 심판하신다는구나. 빨리 일어나 이 죄악의 성을 빠져 나가야겠다. 자! 어서 빨리 따라나서렴!"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롯의 두 사위들은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말았어요.
"장인 어른은 참으로 농담도 잘 하시네요. 아니 아버님 저 하늘을 좀 보세요! 하늘이 저렇게 아름답고 멀쩡한 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가시려거든 장인 어른이나 가세요."
롯의 두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기에 그 성을 빠져나오지 못했어요. 결국 그들은 불의 심판을 받아서 죽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 주는 삶과 죽음의 전환점과도 같아요. 이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얻지만 믿지 않는다면 멸망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롯의 두 사위는 "빨리 일어나서 이 죄악의 성을 빠져나가라."는 말을 진심으로 받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어요.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죄악의 도성에서 당장 떠나는 길 뿐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답니다.
전도사님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질문 한 가지를 해볼까요?
"노아 할아버지가 방주를 짓는 데 몇 년이 걸렸을까요?"
"네, 맞았어요. 120년 걸렸어요."
그럼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께서 이 성을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외쳤을 때 며칠 후에 심판하신다고 하셨을까요? 맞아요. 40일이예요.
노아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120년간이나 주셨어요. 또한 니느웨성에도 40일이란 시간이 회개의 기간으로 주어졌어요.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성은 지금 즉시 그 성을 떠나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지요. 그렇게 긴박한 상황인 데도 롯의 두 사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듣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기에 멸망당할 수 밖에 없었지요. 혹시 우리 어린이들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친구들이 있다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해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2. 하나님의 경고를 반신반의한 사람들
'반신반의'란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한다는 뜻이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의심하는 것을 말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반신반의한 사람은 다름아닌 롯의 아내였어요.
하나님은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두 딸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어요. 그들이 성에서 빠져나오기를 지체하자 천사로 하여금 그들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인도하여 주셨어요. 그리고 결코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면 멸망함을 면하리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롯은 그 산이 멀어서 갈 수 가 없으니 가까운 '소알성'에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어요. 하나님은 롯의 청을 들어주셔서 소알성으로 피신하도록 허락하셨어요.
롯과 그의 가족들이 소알성으로 피하자 하나님께서는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심으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셨어요. 그 순간 롯의 아내는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의심하였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어요.
왜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을까요?
소돔땅은 물이 넉넉하고 비옥한 땅이었어요. 그래서 농사도 잘되고 먹고 살 것이 풍부한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그들이 쌓아논 재물과 부귀영화가 모두 불에 탈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던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또한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버리고 사람의 말로 들었어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회하지 못하고 의심하였기 때문이예요. 그 성이 멸망 당할만한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았는 데 그 성이 멸망한다고 하니까 그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고 반신반의 했기 때문이예요. 결국 롯의 아내는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의심하며 우습게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 어린이들은 꼭 기억하셔야 해요.
3. 하나님의 경고를 순종하여 구원받은 사람들
롯과 그의 두 딸은 생과 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생명의 길을 선택한 현명한 사람들이었어요. 롯과 그의 두 딸이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 때문이예요.
성경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롯은 처음부터 순종하지는 못했어요. 롯은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고자 대피할 것을 명령하셨지만 즉시 대피하지 못하고 지체하였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지체하는 롯과 가족들을 천사로 하여금 이끌어 내게 하셨고 롯이 피할 때까지는 그 성을 심판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긍휼은 롯을 끝까지 구원하시고자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롯을 구원해 주셨어요. 롯과 그의 두 딸은 소돔성에서 나온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소알성까지 가기는 했지만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임을 꼭 기억하셔야 해요.
우리가 죄악으로 인해서 죽게 되었을 때 먼저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 이셨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예요.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하셨을 때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여 방주를 만듦으로 40주야 동안 내렸던 빗속에서 구원을 받았던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다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꼭 믿어야겠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목사님, 전도사님, 선생님들을 통해서 경고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을 요구하고 계세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 소중한 말씀을 들을 때에 옆사람과 장난치고, 떠들면서 농담처럼 듣고 흘려버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행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예배를 드릴 때에는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단비처럼 내려주실 수 있도록 진실하게 드릴 수 있어야 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두 사위들은 구원의 문턱에서 유황불 속의 재가 되고 말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반신반의 하였던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죄악의 성을 떠났던 롯은 천사의 손에 이끌려 구원을 받았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교훈이 무엇일까요? 전도사님과 함께 따라하면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말자."
자, 기도해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출 17:11-12)
혹시 우리 어린이들 중에 탱크나 장갑차를 직접 본 어린이 있나요? 아마 전쟁 기념관같은 곳에 가면 볼 수 있을 거예요. 전도사님은 군대에 있을 때 장갑차 부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탱크와 장갑차는 수도 없이 많이 봤어요. 그런데 6.25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그런 무기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어요.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이것을 노리고 1950년 6월 25일 주일날 새벽에 북한 김일성이 소련의 원조를 받아 수많은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했어요.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남쪽에서는 수도 서울을 순식간에 인민군에게 빼앗기고 수원, 대전을 차례로 빼앗기고 후퇴를 거듭하다가 대구 근처 낙동강 아래까지 내려 갔어요.
나라는 정말 위기일발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어요. 이때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구의 달성공원에 교인들을 모아 놓고 "우리 모두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합시다."하고 호소했어요. 그리고 학생, 청년, 장년들까지 나라를 위해서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웠어요.
하나님께서는 이승만 대통령과 많은 교인들의 기도와 눈물을 보시고 유엔군(세계 16개국)을 보내어서 위기를 모면하게 하셨고, 또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을 해서 서울을 다시 찾고 북진을 했어요.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된 거예요. 이것은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게 숙제로 주신 것 같아요.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구원해 주셨어요. 그것은 대통령과 국민들의 눈물의 기도때문이었어요.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는 망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니까 이스라엘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쳐했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어요.
아말렉이라는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어요. 아말렉 족속들은 유목민들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서 르비딤에 이르게 되자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게 될까봐 두려워서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격하게 되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해 본 경험이 없는 민족이었는데 처음으로 아말렉과 전쟁을 치르게 됐어요. 아말렉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서, "여호수아야! 너는 백성들 중에서 믿음이 강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나가서 아말렉 사람들과 싸우도록 하여라. 내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여호수아는 믿음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뽑았어요. 오랫동안 애굽에서 종노릇만 하였기에 대부분 용기가 없고 원망과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강한 아말렉 군대와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백성 중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믿음이 좋고 용기가 있는 사람들만을 선택하도록 한거예요.
당시 이스라엘 중에서 뽑힌 사람들은 특별한 무기도 없었고 갑옷도 준비하지 못한 군대였지만 모세의 명령에 따라서 아말렉과 싸우기 위해서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전쟁터에 나가서 용감히 싸웠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우고 있을 때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 꼭대기에 올라갔어요. 모세는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를 이기고 모세가 힘이 들어서 두 손이 쳐지니까 아말렉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기는 것이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는 것을 본 모세는 다시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이스라엘이 또 승리했어요. 그렇지만 손을 들고 있는 것이 힘이 들어서 두 손을 내리면 또다시 이스라엘이 지고 아말렉이 승리를 했어요.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론과 훌이 생각했어요. "아니!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지고 있쟎아. 안 되겠다. 우리가 가서 모세를 도와야지!"
아론과 훌은 큰 바위를 들어다 모세를 바위 위에 앉게 한 후에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잡고 들어 올렸어요.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를 완전히 물리칠 수가 있었어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를 완전히 이기기까지 모세의 손은 내려오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론과 훌이 곁에서 모세의 손을 붙잡고 도와주었기 때문이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아말렉을 물리친 원동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거라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면 모세는 힘이 들어서 자기 팔을 혼자 들 수 없을만큼 연약한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거예요.
아말렉과의 전쟁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게 된 것을 책에 기록해서 후손들에게 길이 길이 기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여호수아가 외울 수 있도록 항상 들려주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여호수아를 모세 뒤를 이을 지도자로 생각하고 계셨기에 여호수아가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을 잊지 않게 하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처음으로 전쟁을 치뤘던 아말렉 사람들은 세상에서 다 진멸해 버리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어요.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기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감사의 제사를 드렸어요. 그 이전까지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찬양으로만 영광을 돌렸는데 아말렉과 전쟁을 치룬 후에는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어요. 여호와 닛시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항상 승리케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말이예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자는 언제든지 승리케 하여 주신다는 귀한 믿음을 담고 있는 말이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그럼 이제부터는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어요.
1. 기도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왔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이었어요. 모세는 바로 앞에서 열가지 재앙을 내리게 했던 지도자에요. 지팡이를 든 모세의 손을 바다위에 내밀자 홍해 바다가 갈라졌고 지팡이로 반석을 치자 물이 평펑 솟아나올 정도로 능력이 많은 사람이 모세였어요. 그렇지만 모세가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예요.
모세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전쟁터에 내보낸 후에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모세가 기도의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기도의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한 것은 기도가 얼마만큼 중요한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어요.
우리 어린이들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어린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소원을 이루어 주실 거예요.
2. 서로 돕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모세의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이스라엘이 지게되자 아론과 훌이 바위를 들어다가 모세를 앉게 한 후에 양쪽 팔을 받쳐서 높이들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또한 여호수아는 전쟁터에 나가서 열심히 싸우므로 모세를 도왔어요.
모세가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모세를 도왔던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와 같은 용기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교회에는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해요. 어려운 일을 당한 친구들이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주는 착한 어린이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신답니다. 남이 잘못하였을 때 손가락질이나 하고 비판만 하는 친구들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서로 기도해주고 도와주고 어려움을 함게 나누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겠어요.
교회가 처음 세워지던 초대교회 시대에는 남에게 자랑하지 않고 사도들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며 이웃을 도와주었던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훌륭한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어서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우리 어린이들도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처럼 서로 돕고 맡은 책임을 잘 감당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3.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모세가 아무리 훌륭하고 아론과 훌이 아무리 잘 돕고 여호수아가 열심히 많은 책임을 잘 감당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오자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모세는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닛시'라고 불렀어요. 모세는 하나님께서 항상 승리케 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기도 때문이었고 그를 도운 아론과 훌, 그리고 전쟁터에서 열심히 싸운 여호수아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기도록 해 주셨다는 사실과 모세가 그 은혜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았다는 사실이예요.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우리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많은 영적인 싸움을 해야해요. 욕심과도 싸워야 하고, TV와도 싸워야하고, 이기심과도 싸워야하며 거짓 우상과도 싸워야해요. 그때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기도밖에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어려운 친구들을 도우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바로 맥추감사주일이예요. 어떤 친구는 장난으로 '맥주감사주일'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예요.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께서 보리를 추수하기까지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절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절기때만 감사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또 어떨 때 감사를 드렸을까요?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서 하박국 선지자가 드렸던 감사를 배워보도록 하겠어요.
1. 환난날의 감사
하박국 선지자는 유대 나라가 멀지 않아 바벨론이라는 강한 나라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이제 유대 나라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라는 폐허가 되고 농작물을 빼앗기고 짓밟히며 가축들까지도 우리를 떠나서 흩어져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전쟁의 공포로 인해서 창자가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며 뼈가 썩고 온 몸이 떨리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어요. 얼마나 귀한 감사인가요.
어제(97.7.5) 패스 파인더라는 우주 비행선이 화성에 무사히 착륙했다는 소식이 뉴스 속보로 TV에 보도가 되었어요. 벌써 오래전에 소련의 유리 가가린과 미국의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었는데 이젠 화성에까지 우주선이 도착할 만큼 과학이 발달되었어요.
달에 도착했던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말을 했다고 해요. 먼저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달에 도착해서 "봐라! 그 어느 곳에 가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는데 암스트롱은 "봐라! 하나님의 솜씨가 얼마나 위대한가! 그 어느곳도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도다."라고 했다고 해요. 어쨓든 화성에까지 인간의 손길이 이르렀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건이예요. 이것은 과학자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도사님이 발명왕 에디슨에 대한 한 가지 예화를 들려주겠어요. 에디슨이 어렸을 때였어요. 그의 집은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그가 발명품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신문을 팔아 돈을 벌어서 필요한 약품을 구입해야만 했어요. 어느날이었어요. 에디슨이 열차를 타고 집에 오다가 약품이 쏟아져서 열차에 불이 붙고 말았어요. 불이나자 사람들은 달려들어서 불은 끄고 말았지만 화가 난 차장 아저씨가 에디슨을 기차 밖으로 던져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그때 기차에서 떨어진 에디슨은 귀가 멀어서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에디슨은 결코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연구해서 세계적인 훌륭한 발명왕이 되었답니다.
훗날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귀머거리가 되지 않았다면 이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연구하는데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귀머거리가 된 것 때문에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발명왕 에디슨이 세계적인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귀가 들리지 않아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사니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지헤를 주셔서 발명왕이 되었나봐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어린이 여러분들도 전쟁을 눈 앞에 둔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하박국 선지자처럼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릴 수 있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어요.
2. 없는 중에서 드리는 감사
하박국 선지자는 17절 말씀 속에서 여섯 가지가 없다고 고백했어요.
무엇 무엇인지 말해 볼까요?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그러나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만 계시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해도 감사한다고 했어요.
모든 것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감사하는 신앙은 어리석은 신앙이예요. 비록 가진 것이 적거나 없다하더라도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이 정말 성숙한 신앙이랍니다.
(두 렙돈을 드린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예수님)
3.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드리는 감사
18절 말씀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이예요. 나라가 처한 현실을 보면 너무나도 어둡고 답답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이 계셨어요. 하나님을 바라보면 언제나 힘이 솟고 희망이 생기며 언젠가는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었어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떠나간다 해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하박국의 신앙은 정말로 우리가 본받아야할 성숙한 신앙이랍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어떤 인정이 많은 부자가 동네의 20여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느날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광주리 안에 있는 빵을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개씩 가져가서 먹으렴, 흉년이 끝날 때까지 공짜로 주마." 그 빵 광주리를 본 아이들은 모두 덤벼 들어 서로 큰 것을 가져 가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레첸이란 소녀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맨 끝으로 광주리에 남아 있는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 감사하는 표정으로 빵을 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돌아와 가족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튿날도 할아버지는 빵을 나누어 주었고 그레첸은 역시 가장 작은 빵을 집어들고 할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가져 갔습니다. 하루는 가져온 빵을 먹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빵을 쪼개보니 그 빵속에 50센트짜리 은전이 여섯 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딸에게 은전을 할아버지께 다시 갖다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가져온 그레첸에게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아이이기에 상을 주기 위함으로 빵 속에 돈을 넣었다고 하시면서 그레첸에게 그 돈을 다시 주었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하나님께 꼭 복을 받습니다. 감사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과부의 헌금 정신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 12:44)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헌금'이나 '연보'라는 말을 들어 본 친구들 있나요? 들어 보았다면 그 말의 뜻을 알고 있는 친구 있나요? '헌금'이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을 말하고 '연보'란 남을 도와주고 구제하기 위해서 내는 돈을 말해요.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먹을 것도 살 수 있고 집도 마련할 수 있고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학용품도 살 수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에도 돈이 필요해요. 교회를 운영해 나가고 선교사업도 하고 전도지도 만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여러분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면 교회에도 돈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 돈은 어떻게 마련할까요? 하늘에서 떨어질까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던져주고 갈까요? 아니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성껏 바친 돈으로 마련하고 있어요. 바로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헌금이라고 해요.
어느날 예수님께서 연보궤 앞에 앉으셔서 헌금을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셨어요. 당시에 헌금궤는 놋쇠로 만들어져 있었고 헌금을 넣는 구멍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구멍을 통해서 헌금을 넣었어요.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짤그랑! 짤그랑!' 소리가 났어요.
그런데 어느 부자가 많은 돈을 헌금하면서 '쫘르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으와! 저 사람은 굉장한 부자인가 보다! 저 부자는 굉장히 훌륭한 분인가봐! 저렇게 많은 돈을 남을 위해 헌금하다니 믿음도 좋은 분일꺼야!..."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 부자는 어깨를 으시대면서 자랑스러워 했어요.
조금 후에 한 과부가 오더니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었어요. '렙돈'은 구리로 만든 동전을 말하는 데 가장 가치가 작은 돈을 일컫는 말이예요.
그 모습을 보신 에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셔서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가난한 과부가 한 헌금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넣었단다."라고 하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참으로 이상하지요? 분명히 부자가 한 헌금이 훨씬 많은 데 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을 더욱 높이 평가해 주셨을까요? 제자들이 물어 보았어요.
"아니, 선생님! 분명히 부자가 더 많은 헌금을 했는 데 어떻게 과부가 더 많이 바쳤다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부자는 풍족한 가운데서 조금 바쳤지만 가난한 과부는 자기의 전부를 헌금궤에 넣었기 때문이란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과부가 어떠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는지에 대해서 선생님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1.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렸어요.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이유는 그가 자기 생활비 전체를 드렸기 때문이에요.
당시 성전의 뜰은 네 군대로 나뉘어져 있었어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의 뜰', 이스라엘 남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 여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여인들의 뜰', 그리고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이방인의 뜰' 등이 있었어요.
연보궤는 여인들의 뜰에 있었는데 이곳에는 나팔같이 생긴 13개의 연보궤가 놓여져 있었어요. 13개 중에서 9개는 성전 세와 각종 제물을 위한 연보궤였고 4개는 각종 구제를 위한 연보궤였어요.
가난한 과부는 이 연보궤에 두 렙돈의 헌금을 정성껏 드렸어요. 이 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액수의 돈이었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정신을 칭찬하셨어요. 가난한 과부가 바친 헌금은 작은 것이었지만 자기의 전 재산을 다 바친 것과 같았기 때문이예요.
헌금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정신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거예요. 헌금은 결코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일부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다 바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땅에 몇 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기근이 심할 때였어요.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에게로 가서 물과 떡 한 조각을 달라고 요구했어요. 그 집의 과부가 가진 것이라고는 가루 한 웅큼과 기름이 조금 있는 정도였어요. 그것은 자신과 아들이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었지만 그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요구대로 그것을 엘리야 선지자에게 바쳤어요.
그 결과 과부는 쌀 창고가 차고 넘치는 축복을 얻게 되었어요. 이 축복은 사르밧 성의 과부가 온전한 희생을 드렸기 때문에 얻은 것이예요.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에도 이와같은 정신으로 드려야 해요.
부자는 많은 것을 갖고 있었지만 적게 바쳤고, 가난한 과부는 작은 것을 가졌었지만 전체를 바쳤어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보시고 그 마음을 칭친하셨어요. 우리 어린이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물을 기뻐받으시고 칭친해 주실 거에요.
2.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렸어요.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게 헌금을 드릴 때 스스로 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렸어요. 예수님은 부자가 헌금 하는 것을 보았지만 저들은 풍족한 중에서 얼마를 넣은 것 뿐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도리어 두 렙돈의 적은 돈을 드린 과부의 믿음을 칭친하셨어요. 예수님은 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칭친하셨을까요? 그것은 과부가 드린 헌금은 스스로 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렸기 때문이예요. 바로 이것이 헌금 정신에요.
올바른 헌금 정신은 금액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리느냐에 달려 있어요. 과부가 드린 헌금이 자기의 생활비 전체를 드린 것이라고 해도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리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칭찬을 받지 못했을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되었을 때 모세는 성막을 짓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바칠 것을 권유했어요.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헌금하였고 하나님은 그 헌금에 들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셨어요.
또한 우리 어린이들은 삭개오를 기억하실 거에요. 예수님을 만나보기 위해서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사람말이예요. 삭개오가 예수님을 모신 후에 제일 먼저 어떤 행동을 하였지요? 삭개오는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어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삭개오는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겠어요. 우리 어린이들도 자신이 가진 재물들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을 기쁘게 받아주실거예요.
3.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렸어요.
우리 어린이들 중에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은행에 세금을 내 본 어린이들 있나요? '전기세, 수도세, 전화세, 자동차세... 등' 수없이 많은 세금을 내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나라에서 거두어 들이는 세금이 아니예요. 헌금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헤에 감사해서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예요. 만일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이 없고 은혜받지 않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을거예요.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심에 대한 감사이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에요.
초대교회에 헌금을 잘못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요. 혹시 누군지 아시겠어요? 네, 아나니아와 삽비라예요. 그들은 소유를 팔아서 그 돈 중에서 얼마를 숨기고 일부를 전부인양 사도들 앞에 내어놓고 성령을 속였어요.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어요. 이유는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이예요. 그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없었어요. 그들이 갖고 있던 소유도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거예요.
우리 어린이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면, 헌금하는 시간이 되어서 헌금함이 앞에 오면 그제서야 호주머니를 뒤적이며 헌금을 찾는 어린이도 있고 돈을 꺼내어 보고 오백원 짜리인지, 백원 짜리인지, 십원 짜리인지를 살펴본 후에 십원 짜리를 골라서 그것도 성의 없이 헌금함속에 집어 던지는 어린이가 있어요. 또 어떤 어린이들 중에는 부모님께서 헌금하라고 주신 돈을 가지고 교회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먹고 남은 돈을 가지고 와서 남은 돈만 헌금하는 어린이들도 있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어요. 비록 적은 액수라해도 정성껏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꼭 그 헌금을 기쁘게 받아주실 것예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결론을 말씀드리겠어요. 외국의 어느 교회에서 모든 사람이 선교를 위해 헌금을 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정성껏 헌금을 했는데 한 소년은 주님께 헌금을 드리고 싶었지만 한 푼의 동전도 갖고 있지 않았어요.
헌금 주머니가 자기 앞에 왔을 때 그 소년은 헌금 주머니에 자기 몸을 바쳤어요. 그리고 그 소년은 후에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하였고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어요. 혹시 그 선교사가 누군줄 아시겠어요? 바로 리빙스턴 선교사님이예요.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헌금을 원하고 계세요.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자원해서 드리는 자의 예물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아주신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받으시고 그 믿음을 칭찬해 주셨어요. 또한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게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서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이제부터는 올바른 헌금과 올바른 신앙생활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풍성히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까?
(미가 6:6-8)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좋아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헌금을 많이 하면 제일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우리가 찬송을 많이 부르면 제일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기도를 많이 하면 좋아하실까요? 도대체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 좋아하실까요?
옛날 이스라엘 땅의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는 자기의 아들을 신들에게 바치면 신들이 가장 기뻐하며 복을 내려 준다고 생각하여 귀여운 어린 아들을 장작불에 태워 자기가 믿는 신에게 바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무식한 일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알아봅시다.
1. 공의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공의란 의롭고 정직하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을 보면 불공평한 일이 너무 많아요. 사기를 치고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여 이용해 먹는 악질적인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려는 사람은 늘 이용만 당하고 가난하게 사는 일이 많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말하고 나쁜짓을 하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의롭고 정직하게 살면 기뻐하십니다.
맨 마지막에 승리하는 사람은 늘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도 늘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랍니다. 하나님은 속임수가 없기 때문에 맨 나중에 정확히 판단해서 상벌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도 억울해 할 것이 없어요.
세상에는 돈을 벌기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도둑질이나 강도질이나 혹은 사기를 쳐서, 또 어떤 사람은 술을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팔고 시골에서 막 올라온 소녀들을 꾀어 술집이나 미군부대 홀에 팔아넘겨서 돈을 모읍니다. 그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서 생명도 귀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숨과 돈을 바꾸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결국 남의 인생을 망치고 남을 원통하게 하는 일이랍니다. 뿐만아니라 그 결과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으로 벌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 동생 하나 사랑하지 못하고 돌로 동생을 쳐 죽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벌을 내리셨어요.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사랑이 많은 사람을 특히 좋아하십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교회도 잘 다니고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고 또 방언도 잘하고 설교도 잘 하지만 사랑이 부족해서 날마다 서로 시기하고 싸움만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에배를 받을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랍니다.
(예화) 순덕이는 전라북도의 어느 시골에 사는 어린이입니다. 순덕이는 친구 영실이를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했습니다. 그러나 영실이는 어느날 학교에 갔다 오다가 마을 앞 찻길에서 버스에 치어 다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주일날이 되어도 교회를 나갈 수가 없었어요. 어느날 순덕이는 하나님께 약속을 했어요.
"하나님! 영실이가 다 나아서 교회를 혼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제가 도와주겠어요!"
그리고 순덕이는 주일 아침만 되면 영실이를 교회까지 업고 갔어요.
비가 올 때는 무척 힘들었어요. 게다가 교회가 멀기 때문에 순덕이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도 순덕이는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고 영실이를 교회까지 갈 수 있게 힘을 다해 도와주었어요. 두달이 지나자 영실이는 많이 나아서 순덕이가 부축만 해 주어도 교회까지 걸어갈 수가 있었고 세달이 되자 영실이는 절뚝거리며 혼자서도 교회를 걸어 다녔어요. 그러나 순덕이는 늘 영실이와 같이 다니며 성경책을 들어 주었어요. 그러나 석달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영실이의 손발이 되어 희생하는 것을 본 영실이의 부모님은 큰 감동을 받아 교회에 나오게 되었답니다. 영실이의 부모님은 동네의 유지였기 때문에 그 뒤 동네 사람이 교회를 보는 눈이 달라져 많은 사람이 에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순덕이의 사랑은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고 덕분에 교회도 부흥하게 되었어요. 이와 같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랍니다.
3.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제일 싫어하신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하신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여 죽인 원인도 교만한데 있었고 사울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도 교만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너무 자랑하는데서 시작합니다. 돈이 많다고, 착한일 좀 몇번 했다고, 힘좀 세다고, 공부좀 많이 했다고, 성적이 좋다고, 똑똑하다고, 재주가 좋다고.. 등등 너무 자기를 자랑하고 뻐기고 으시대면 하나님은 싫어하신답니다.
예수님도, "너희중 누구든지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면 높아지리라"하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면 코끼리 앞에 개구리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예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 하고 찬송도 잘 드려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과 사랑과 겸손임을 깨닫고 실천해야 되겠어요.
-- 아 멘 --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시 118:1)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분은 선하시며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 감사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땅위에, 혹은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새순들은 맑고 순수합니다. 어린이들도 새순과 같이 맑고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사랑스럽습니다. 새로 돋아나는 새순은 귀엽지만 매우 여리기 때문에 잘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돌봐주시고 언니나 형이 지켜줍니다. 선생님도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 보다도 어린이 여러분들을 더 큰 사랑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캄캄한 어두운 밤이나 뜨거운 햇빛이 쨍쨍 내려쪼이는 여름철, 그리고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든든한 파수꾼이십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 붙는 한겨울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지켜주십니다. 병들어 고생할 때에도, 악한 사람이 나를 해치려 할 때에도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또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던지 두손 모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어린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어린이를 더욱 더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넘치는 축복의 손을 펴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나 찬송할 때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린이가 되어야겠습니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어떤 인정이 많은 부자가 동네의 20여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느날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광주리 안에 있는 빵을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개씩 가져가서 먹으렴, 흉년이 끝날 때까지 공짜로 주마." 그 빵 광주리를 본 아이들은 모두 덤벼 들어 서로 큰 것을 가져 가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레첸이란 소녀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맨 끝으로 광주리에 남아 있는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 감사하는 표정으로 빵을 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돌아와 가족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튿날도 할아버지는 빵을 나누어 주었고 그레첸은 역시 가장 작은 빵을 집어들고 할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가져 갔습니다. 하루는 가져온 빵을 먹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빵을 쪼개보니 그 빵속에 50센트짜리 은전이 여섯 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딸에게 은전을 할아버지께 다시 갖다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가져온 그레첸에게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아이이기에 상을 주기 위함으로 빵 속에 돈을 넣었다고 하시면서 그레첸에게 그 돈을 다시 주었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하나님께 꼭 복을 받습니다. 감사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감사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마음입니다. 우리 어린이도 이렇게 건강하고 튼튼하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어린이, 지혜로운 교육을 통해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는 어린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가도 모자를 지경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합시다
(시 116: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드리면 드릴수록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면서 한 가지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 크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서 나은 것을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에는 가난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너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죄지은 사람은 무서운 벌을 받게 됩니다. 어떤 벌을 받을까요? 죽음에 이르는 벌을 받게 됩니다. 이 무서운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버리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그뿐이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낮의 따스한 해와 밤의 아름다운 달을 쳐다 보세요. 이 아름다운 세상을 주신 하나님께 누가 감사함을 게을리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또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이 크신 은혜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미국에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모두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둘은 서로 다른 교회에서 일을 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아버지 목사님은 차를 몰고 자기 교회로 가고 아들도 자기 차를 몰고 자기 교회로 갔습니다. 주일날 모든 예배를 마치고 저녁이 되어 아버지 목사님이 먼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조금 후에 아들이 돌아 오더니 아버지 목사님의 손을 잡고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려야 겠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 오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앞으로 달려 들어 그것을 피하다가 차가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심하게 다치지 않고 차도 많이 부서지지 않아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네가 체험을 하였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녀들은 어디서든지 이렇게 지켜 준단다. 정말 감사하다. 너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런 사고없이 에배를 보고 돌아 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어떤 사람은 병에서 나은 것을 감사하고, 어떤 사람은 위험한 일을 당해서도 무사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생활 속의 이런 일들을 한가지 한가지씩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에 늘 감사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살전 5:18)
좋은 일에 감사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나쁜 일에 감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는 유익을 늘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일이 척척 아주 잘되는 줄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도 병이 들고 가난해지기도 하고 또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고생 시키는가? 낙심도 될 때가 있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 일없이 잘 되어 가는데 나만 왜 이 꼴인가?' 스스로 낙심되어서 눈물만 나올뿐 도무지 감사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헤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언제나 믿는 어린이를 유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너무나 감사해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 열심스러운 전도로 어느 때에는 수없이 맞았고, 어느 때에는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어떤 때는 추위에 벌벌 떨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더위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또 강도의 위협과, 배가 파선해서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위험도 있었고 뱀에 물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은헤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주시려는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집안이 너무나 가난해서 기차 안에서 신문팔이를 하며 틈틈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기차 한모퉁이에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실험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기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실험실의 약품이 쏟아져 기차에 불이 붙고 말았습니다. 차장이 급히 달려와 불을 껐습니다. 잔뜩 화가난 차장은 에디슨을 열차 밖으로 내동댕이쳐 버렸습니다. 열차 밖으로 떨어진 에디슨은 불행하게도 귀를 다쳐서 영영 귀가 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실망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해 위대한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옛날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때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귀에 딴소리가 들리지 않음으로 연구하는 일에만 몰두하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에디슨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발명왕이 된 것처럼 감사함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은 큰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어린이 여러분!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어린이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또 평온하게 지내는 어린이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에도 믿음을 갖는 어린이에게 유익함을 주십니다.
-- 아 멘 --
정직하게 행하자!
(시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제임스 아브라함 가필드는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이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날, 선생님께서 반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장차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훌륭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나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나는..."
그런데 가필드는 머리를 숙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가필드에게 다시 물었다.
"가필드는 무엇이 되고 싶니?"
그는 분명한 목소리로, "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학생들은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게 무슨 뜻이니?"하고 진지하게 물으셨다.
"예,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웃던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숙였다.
1983년 5월 29일 오후 인이와 영이는 우주 과학 박람회를 재미있게 견학하고 저녁에야 피로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길바닥에 낯선 여자용 손지갑이 눈에 띄었다.
얼른 집어 들고 지퍼를 쭉 펴서 열어 보았다. 속을 들여다 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많은 돈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놀란 것이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동생인 영이의 손을 쥐어잡고 마구 집으로 뛰어갔다.
대문에서부터, "어머니!"하고 소리쳤으나 아무 소리도 없었다.
안방으로, 부엌으로, 목욕탕으로, 모두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도 가슴은 쉬지 않고 뛰었다.
수돗가에서 냉수를 한 바가지 먹었다.
그러니까 약간 안정이 되는 듯하였다.
그리고 아침 집을 나설 때 아버지는 사업일로밖에 나가시고 어머니는 볼일로 외출하신다는 말씀이 겨우 생각이 났다.
인이와 영이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바라보다가 둘이 똑같이 일어섰다.
"영아, 파출소 가자."
"응, 그래."
둘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에서 약 1km 떨어진 독산3동 파출소로 급하게 달려갔다.
습득물을 접수한 경찰관 아저씨는 지갑 속의 돈을 세어 보았다. 무려 1백 1만 5천원과 저금통장, 도장 등이 들어 있음을 비로소 알았다.
"얘들아, 참 좋은 일을 했구나."
경찰관 아저씨한테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겨우 진정이 되는 듯하였다.
경찰관 아저씨가 지갑 속에서 주인의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전화 연락을 하였더니 조금 후에 아주머니 한 분이 헐레벌떡 뛰어왔고 돈지갑을 가슴에 움켜잡고 마구 뛰기도 했다.
"학생들 고마워..."
몇 번이고 되풀이하시는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아주 좋아하시는 것을 본 인이와 영이는 참으로 좋은 일을 했구나하고 느꼈다.
'신약과 구약'이라는 약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딤후 3:16)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암8:11-14)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119:57-72)
김익두 목사는 원래 황해도 깡패요, 그 당시 소도둑놈으로 소문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김익두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를 받아들이고 착실한 교인이 되어 금주와 금연을 하니 그 전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참으로 의아해 하며 "도대체 자네는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어떻게 끊었나? 정말로 요즘은 술과 담배를 안 하나?"라고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때 김익두 목사는 "나는 요즘 약 두 첩씩을 먹고 있다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뭐야! 술, 담배 대신 약을 두 첩씩 먹는다고? ...."
"그렇다네! 이 약 두 첩씩을 먹으니 술, 담배는 물론이고 엄청난 복이 쏟아지네 그려!" 하고 대답을 하니, 친구들이 몹시 궁금해 하며 "우리도 좀 가르쳐 주게나"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김익두 목사는 "그러면 그르쳐 줌세 두 첩의 약이란 '신약과 구약'이라는 약일세" 라고 하였고 그 후 친구들에게 신약과 구약에 대한 교리와 도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후손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는 성경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김명배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교회의 젊은 집사였다.
그는 서울에서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받고 즉시 서울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장례식을 끝냈다. 큰형은 의사로서 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돈도 잘 벌었고, 둘째 형은 사업가로서 윤택한 생활을 했다. 또한 막내는 외무부 공무원으로 해외 근무를 많이 했다.
장례식이 끝난 며칠 후 어머님이 남기고 가신 재산을 처리하자고 해서 삼형제가 식구들과 함께 한 방에 모였다.
큰 형님이 입을 열었다. 어머님이 남기신 재산은 공무원으로 제일 어려운 막내가 책임지는 것이 어떠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둘째 형이 "그거 좋은 말씀입니다"하면서 찬성을 표시했다. 그러자 셋째인 막내가 나섰다.
"형님 그것은 안될 말씀입니다. 재산은 당연히 장자이신 큰 형님이 맡으시든지 아니면 사업가이신 둘째 형님이 맡으셔야지 어찌 막내가 그것을 맡습니까? 그것은 안될 말씀이고 사실 제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라고 자기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큰 형님께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머님이 평생에 보시던 성경책입니다."
"야, 그것은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당연히 장자에게 가야지 ...."
그러자 둘째 형도 "반드시 장자에게만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 ...."하며 자기도 성경책을 마음에 두었노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형님이 재산을 맡으시고 성경책은 둘째인 저에게 주십시오 했다. 그때 막내인 셋째 아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형님들은 언제나 어머님이 묻혀 계신 고국 땅에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언제나 해외로 떠도는 몸이니 어머님을 모시고 다니듯 어머님의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읽겠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두 형님들은 동생을 끌어안고 울었다. 식구들도 모두 따라서 울었다. 이처럼 그 성경은 후손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한 책인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성경을 믿는 이유
천문대 소장이 성경책을 읽고 있는 부하 직원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여보게 자넨 과학시대에 맞지도 않는 그런 책을 아직도 읽고 있나? 더구나 누가 기록했늕ㅣ 조차 모르는 그 따위 책을!"
"소장님, 소장님은 천문학을 계산할 때 구구단을 사용하시죠?"
"그렇지."
"그럼 그 구구단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그건 모르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믿고 이용하십니까?"
"그야 정확하고, 또 편리하게 계산하는 데 꼭 필요하니까"
"제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이유와 꼭 같군요."
시편 19편 49절과 5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나이다" 이 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힘과 생명이 되는 능력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이 의욕을 상실했을 때 새로운 삶의 힘을 얻게 합니다.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에 위로를 얻게 합니다. 실망과 좌절에 싸일 때 새로운 소망을 얻게 합니다.
1977년,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을 세계에서 8번째로 우리나라 등반대원들이 등정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목사님이 펴서 읽은 성경이 시편 121편이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독실한 크리스쳔인 등반대장의 사모님은 등반대원들의 가슴에 성경을 한 권씩 넣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떠났습니다. 제1캠프를 올라갈 때 산소통이 모자랐습니다. 아이스폴을 지날 때에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도우심을 믿고 시편 121편을 읽고 또 읽으며 계속해서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1977년 9월 15일 낮 12시 50분에 고상돈 대원이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그는 태극기와 네팔기를 올리고 그 눈속에 무릎을 꿇고 성경을 꺼내서 시편 121편을 다시 읽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리고 그 성경과 태극기를 눈 속에 파묻고 내려왔습니다.
그후 등반대의 대장이었던 김영도 집사가 간증을 하기를,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힘이요, 신앙의 힘이요, 하나님의 도움의 힘이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내 힘이 부족할 때에 하나님의 호흡을 마셔야 합니다. 말씀을 먹을 때에 초인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능력의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이시히 토키치라는 일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고 살인을 하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서 사형당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있던 감옥에 어느날 캐나다 선교사들이 와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시히는 짐승 같은 표정으로 그들과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선교사들이 방에 넣어 주고 간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마침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이시히는 잠시 성서에서 손을 놓고서 '주여, 이것이 정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까? 주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신 것을 믿습니다. 내 강퍅한 마음이 깨졌습니다'하고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결국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쁨으로 죽음에 임하면서 이제 주님께로 가까이 간다고 말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서의 힘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시자 에스겔은 "하나님이 아시나이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대언하여 뼈들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전할 때 마른 뼈들에 살이 입혀지고, 생기가 들어가고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국회의사당에는 의원들의 발언대 위에 이상한 상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속에는 성서가 있어서 의원들이 의안을 성서 위에 놓고서 토론을 벌이며 정치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민주주의를 행하는 나라는 성서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링컨대통령은 말하기를 "나는 성서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는다. 구세주의 모든 선한 것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된다"고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미국 성서협회원의 방문을 받고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피곤하여도 잠자리에 들기전에 성경을 읽지 않는 날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미국의 28대 윌슨 대통령은 1911년 5월 7일 덴버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운명은 여러분이 위대한 계시의 책인 성서를 열심히 읽느냐, 안 읽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제 1대 워싱톤 대통령은 말하기를 "하나님과 성서가 없이 이 세상을 올바르게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에 방탕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밀란의 정원에서 로마서 13장 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읽을때에 변화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로마서 1장 17절에 있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참된 진리를 깨닫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조오지 뮬러는 시편 63편 5절에서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일생을 바쳐 고아를 돌보는 사랑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리빙스톤은 사도행전 16장 31절을 통해 거듭났고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암은 고린도전서 15:1-4절을 통해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밀림의 성자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누가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읽으면서 거지 나사로와 같은 불행한 삶을 사는 아프리카의 흑인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흑인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섬기는 어린이가 되자
(마20:27-28)
윤식이가 유치원에서 생일이 들어있는 1월이 되어 큰 케잌과 푸짐한 떡과 과일과 과자를 차려놓고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생일을 맞은 열 명의 어린이가 각자 인사하고 자기의 희망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윤식이의 차례가 되자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씩씩하게 말하였습니다.
생일 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윤식에게 왜 의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의사는 돈을 많이 벌쟎아요. 삼촌도 의사니까 돈 많이 벌쟎아요"하고 대답했습니다.
2년이 지나서 윤식이의 동생인 윤정이가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윤정이도 오빠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 오면서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윤정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엄마가 매일 아프니까 엄마를 치료해 주고 싶어서요. 그리고 다른 아픈 사람도 고쳐줄꺼예요."
엄마는 기뻤습니다.
"우리 딸이 최고야!"
윤식이와 윤정이가 똑같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나 그 뜻은 아주 달랐습니다. 윤식이는 돈을 벌기 위해, 윤정이는 엄마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몇일 전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황태자비는 여왕을 말합니다. 어제 다이애나의 장례식이 호화스럽게 거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행렬들이 나와서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반 평생을 온갖 호화로움 속에서 지내고 죽을 때도 호화스럽게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또 한 분의 위대한 여인이 죽었습니다. 어제 테레사 수녀님이 별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언론이 테레사 수녀님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영국의 황태자 비의 죽음과는 뭔가 다른 죽음이었습니다.
다이애나는 한평생 호화속에서 다른 남자와 사귀다가 온갖 추문(나쁜 소문)에 쫓겨 교통사고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고통과 가난 속에서 살다가 아름답게 죽어갔습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고태생의 테레사 수녀는 '자비의 선교단'을 이끌고 지난 수십년 동안 인도, 스리랑카, 탄자니아, 요르단 등지에서 빈민가에 '죽어가는 자를 위한 집'을 세우고 버림받은 병자, 나병환자 등을 위해 몸바쳐 왔습니다. 병자들과 악수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위로해주는 이들의 손은 훌륭한 사랑과 자비의 손입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그 영광의 소식을 접하고 "나는 그런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의 고통을 함께 지고 있는 것 뿐입니다."하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이 말은 결코 입술에만 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도 함께 일하는 수녀들에게 계속 가르쳐 온 그녀의 신조였습니다. "여러분, 자랑삼아 일하지 맙시다. 저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은 주님의 굶주림이며, 저들의 질병은 주님의 아픔입니다."
1950년 인도 칼카타 빈민굴에 테레사 수녀가 들어갔을 때 그곳은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암한 지옥이었습니다. 굶어 쓰러지고, 병들어 죽어가고, 도둑과 살인이 백주에 난무하며, 창녀가 거리를 누비는 혼돈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여성은 문맹자를 위하여 여러학교를 세워 7천 5백명의 어린이를 졸업시켰고, 진료소들을 지어 96만명의 환자를 돌보아 주었으며, 54개의 나병치료소를 만들어 4만 7천명의 문둥병자들을 도왔으며, 20개의 고아원을 지어 1천 6백명의 고아를 길렀고, 의지할 곳 없이 죽기를 기다리는 3천 4백명을 위해 23개의 숙소를 지어 돌보아 왔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인간들 속에서 예수의 아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30년간 그 골고다에 굳건히 서서 주님과 더불어 십자가를 져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니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2달 밖에는 더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간암이라고 병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세상에 더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낸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화목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빚진 돈도 모두 갚았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솔선수범하고, 친구에게 찾아가서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유언을 써놓고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니 2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도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았더니 암이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잘못 진단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뜻밖의 오진에 감사하면서 지난 2달간 살았던 경험을 귀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겠다고 했습니다. 섬기면서 사는 것이 참 기쁨의 삶인 것을 깨우진 것입니다.
어느날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가 미국 시카고 시를 방문 하였는데 기차역 앞에는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사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가 도착하자 슈바이처 박사가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출구로 나오시다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시더니 어떤 나이 많은 할머니의 트렁크를 받아서 기차 안까지 다시 들어가 그 할머니를 자리에 앉혀 드린 후 내려와, 시장님께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만 내가 늘 하던 습관 때문에 실례를 했습니다."
이것을 본 신문기자가 슈바이처 박사님의 선행을 신문에 크게 보도해서 박사님의 인격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슈바이처 박사님이 위대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긴데에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님의 이런 아름다운 마음과 인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섬김을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정신박약아를 위한 특수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수고하시는 한 선생님께 가장 힘드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매일 몇 명씩 목욕을 시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발가벗은 아이를 대할 때 '이 아이가 예수님이다'하고 생각하며 목욕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 사표를 낼까도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예수님으로 생각할 때 목욕 시간은 나의 기도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이야말로 참다운 기도와 봉사를 아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이런 고된 일을 기쁜 마음으로 날마다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학교는 모범적인 특수 학교가 되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잡수신 후에 겉옷을 벗고 일어나시더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다 물을 담아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씻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대나라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나 하는 일입니다.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입니다. 드디어 시몬 베드로가 씻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 발을 씻기시나이까?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 것이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이 말을 듣고나니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자기의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주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미 목욕을 한 사람들이다. 이제는 발밖에 더 씻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자기만 위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불쌍한 사람, 죄인, 병든 자, 약한 자, 가난한 자를 섬기면서 살으셨던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믿고나니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자기도 예수님처럼 섬기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섬기는 생활은 자기가 낮아지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낮추고자 하는 자를 높혀 주십니다. 이와같은 삶은 예수님이 살으셨고, 바울이 본받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의 생활이 은혜가 되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말씀하소서!
(눅8:22-25)"...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 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
(설교하기 전에 복음성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니"를 부르고 시작한다.)
지금 부른 찬송은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아는 찬송이지요. 이 찬송가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사건들이 나와요. 해마다 명절만 되면 TV에서 마술 쇼를 보여주곤 해요. 여러 마술사들이 출현해서 갖가지 마술들을 과시하는 것을 보았어요. 어떤 사람은 흰 천으로 비둘기가 되게해서 날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주 위험한 톱니바퀴 속에서 탈출하기도 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술을 보고 진짜인줄로 착각하곤 해요. 그만큼 속임수에 능한 기술들을 갖고 있어요. 전도사님도 수원에서 어떤 사람이 마술 시범을 보이는 것을 보았는데 사과에 여러개의 바늘을 꽂고 그것을 하나씩 빼서 먹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모를정도예요. 그런데 그 아저씨는 분명히 그것은 속임수라고 자신도 인정을 했어요.
모세가 바로왕 앞에 섰을 때 모세는 지팡이로 뱀이 되게 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기적이었어요. 그러나 잠시후 박수와 술객, 마법사들이 똑같이 흉내를 내었어요. 지팡이로 뱀이 되게 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마술이었어요. 모세의 뱀이 마법사들의 뱀을 잡아먹어 버린 것으로 알 수 있어요.
우리 어린이들은 마술과 기적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마술은 속임수이지만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예요. 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고 즐겁게 하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해요. 그러나 기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줘요. 그래서 마술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볼 때는 즐거워 하지만 "나 이다음에 마술사가 될테야"라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기적들을 행하셨는지 이 찬송가를 통해서 생각해 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1절의 이 가사는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을 말하는 가사예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가나"라는 지방에 혼인잔치가 있어 제자들과 함께 가시게 되었어요. 이스라엘에서는 잔치를 할 때 포도주는 꼭 있어야 하는 음식이었어요. 그런데 큰일이 났어요. 왜냐하면 이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이예요. 이 일을 안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어요. 그것은 마술이 아니었어요. 기적이었어요. 예수님께서 맨 처음 행하신 기적이었어요.
다음 2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소경 바디매오를 말씀으로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여리고에서 나오실 때에 바디메오라는 소경이 길거리에 앉아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어요. 그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바디매오를 불러 눈을 뜨게 해주신 거예요. 예수님은 사랑을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셨어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셨어요. 순전히 자신을 과시하고 뽐내기 위해서 눈을 뜨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바디매오가 불쌍하고 측은하게 생각되어서 사랑으로 기적을 행하신 거예요.
3절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말씀으로 살리신 사건이예요.
예수님이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고쳐 주시려고 가보니 이미 나사로는 죽은지 나흘이나 지나버렸어요.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은지 나흘된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니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어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님이예요.
끝으로,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폭풍을 잔잔케 하신 사건이 나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저편으로 가는데 큰 폭풍이 불어 배가 뒤집히게 되자 어부출신인 제자들도 겁을 먹고 안절부절 하는데 예수님은 글쎄 잠을 주무시는 거예요.
제자들이 폭풍이 심해지자 예수님을 깨웠어요. "예수님 예수님 큰일났습니다. 배가 뒤집혀서 다 죽게 됐어요." 제자들이 이렇게 말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물결을 꾸짖으시니 곧 잔잔해졌습니다. 자연도 예수님께 복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런 기적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이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런 일들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예요. 오직 하나님 아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지요.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적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고 둘째, 예수님의 말씀으로 일어난다는 거예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잠잠하라!"는 말씀 앞에서 기적이 일어났어요.
후렴에도 나오지요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 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예수님께 "저에게도 말씀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어린이에게 말씀해 주셔요. 예수님께 기도해 보세요! "예수님 저는 지혜가 부족해요.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예수님 저는 건강하게 해주세요"라고 자신의 문제들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예수님은 꼭 말씀해 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복있는 사람
(시1:1-2)
복이 있는 사람과 복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죄인과 같이 어울리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오직 성경의 진리를 믿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복을 받아 잘 살기 위해서는 복을 받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복 받는 길을 가장 잘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의 꾀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을 꾀어서 자기처럼 나쁜 짓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이 아무리 꾀어도 어린이 여러분은 그 꾀임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속은 후 겪은 손해에 후회가 되어도 이미 그때는 마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면 죄인과 함께 죄를 짓게 되고 결국은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업신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젖어 믿음에서 떠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에겐 늘 기쁨이 있고 그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그의 말씨는 공손하며 그 행동이 선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땅에서 하는 일마다 기쁨을 갖고 하기에 복을 받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 너무나 가난하여 통나무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말씀을 아주 사랑했습니다. 어릴 때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의 아주머니로부터 성경책을 빌려와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는 성경말씀을 어찌나 사랑하였던지 날마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릴 때는 성경을 사랑하고 예배당에 열심히 다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술친구와 어울리고 세상적인 즐거움에 빠져 교회에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나 어른이 되었을 때나 변함없이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했기 때문에 드디어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노예를 해방하는 큰 일을 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성경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약속이므로 이 말씀대로 살 때 복있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사랑하여 복받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원자탄 (기도)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을 지으시고 일생동안 사랑을 나누어 주시면서 사신 손양원 목사님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목사님은 경상남도 함안군 철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다. 목사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잘 믿는 아버지 어머니께로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며 신앙으로 자라났다.
국민학교 다닐 때 새벽 기도회에 늘 나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고 싶어했으나 일어나지를 못했다. 물론 어머니에게 새벽기도회에 나갈 수 있도록 깨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지만 깨어 주시지를 않았다.
잠을 깨고 나면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날은 밝아오곤 했다. 하루는 어머니께 특별히 부탁을 드렸다.
"어머니, 나도 새벽 기도회에 같이 데려가 주세요. 나도 어머니처럼 가고 싶거든요. 또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싶어요."
어머니는 귀여운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셨다.
"어머니! 내일은 새벽 기도회에 데리고 가 주세요. 꼭 깨워주셔야 해요."
어머니께 부탁을 드리고 잤지만, 그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았다.
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마치시고 돌아오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왜 아참에 깨워주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듣고 조용히 입을 여셨다.
"양원아, 곤히 잠을 자는데 차마 깨울 수가 없었어. 너무 피곤해 할 것 같아서..."
"어머니, 그럼 내일 아침에는 깨워 주세요.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힘도 생기고 용기도 갖게 되거든요." 그러나 다음날도 어머니는 깨워 주지 않았다.
손양원 목사님은 한참 생각한 끝에 좋은 궁리를 해냈다.
어머니가 잠이 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잠이 드시면 어머니의 치마끈에 자기 허리띠를 묶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기도회에 나갈 시간이 되어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무거웠다.
무엇이 자기를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알고 보니 치마끈에 아들의 허리띠가 묶여 있지 않았는가!
그 때 벌써 손양원 목사님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양원아! 그렇게 새벽 기도회에 가고 싶었니?"
어머니가 묻자, "그래야 새벽 기도회에 따라 갈 수 있지 않아요?"
손양원 목사님은 픽 웃고는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었다.
그 후부터 어머니 치마끈에 허리띠를 매고야 잠을 잤다.
이 일이 동기가 되어 매일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뜻을 세우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애쓰며 산 손양원 목사님은 신앙으로 자라나서 평생 사랑을 나누어 주신 훌륭한 목사님이 되신 것이다.
특히 일본 나라가 우리 나라를 침입하였을 때는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시다가 죄없이 일본 경찰에 붙들리어 교도소에서 생활하기도 하셨지만 얼굴은 천사처럼 빛나기도 하였다.
육 년 동안 옥살이를 하시고 해방이 되어 나오시자마자 다시 교회 일을 보시다가 6. 25동란 때엔 사랑하는 두 아들이 공산당에 의해 순교당했고 그 후 목사님께서도 사랑의 말씀을 전하시다가 끝내 순교당하셨다.
목사님은 살아계시는 동안 사랑의 운동만 펼치시면서, 특히 불쌍한 나병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다.
이런 위대한 일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는 생활을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 치마끈에 허리끈을 매고 자는 아들의 모습 뒤에는 어머니의 뜨거운 기도가 숨어 있었다.
어느 소녀의 헌신적인 기도
어느 소녀가 난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그 소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됨을 괴로와 했고 뭔가 하나님을 위해 이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고민했다. 이 사실을 목사님께 아뢰자 그것은 "기도"라고 했다. 기도하는 것 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라 했다. 이번엔 어떤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 믿지 않는 자들의 인가기도를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기도했다. 손님이 문안 올 때마다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했고 전도했다. 어머니께 늘 물었다. ○○○ 교회에 다니느냐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느냐고.. 그때마다 대답은 "Yes"였다. 그때마다 너무 기뻤고 확신에 찼다. 그녀의 기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아름다운 기도였다. 결국 그녀는 하늘나라로 갔다. 그 후 그녀가 기거하던 병실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베개 밑에서 한 수첩을 발견했다. 그 수첩엔 동네 사람들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중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 이름 옆에는 †표를 그려 놓았는데 모두 56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대부분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텐데 자신의 생명보다 남의 생명을 위한 헌신적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죠지 뮐러'의 성공담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강단에서 내려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더니 다시 강단에 섰습니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내가 성공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이것은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자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어떤 목사가 차를 타자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기도를 했는지 금방 고개를 듭니다. 옆에 있던 신자가 묻습니다. 그러자 "내 영혼을 ..."라고 대답합니다. 이유를 묻자,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데 차타고 가다가 죽게되면 기도할 틈도 없쟎은가? 그래서 미리 기도합니다"라고 했답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꼭 주십니다
(마 7:11)
* 이끄는 말 *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꼭 주십니다. 이것은 성경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는 어린이도 부모님이 제일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늘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유익한 모든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주고 싶어 하십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어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것이 우리의 부모님 마음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믿는 어린이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도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에 찰리라는 어린이는 일찍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마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찰리는 치료비도 없고 먹을 것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워 하는 중에 교회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예수님께 기도하면 주실 것이다."
찰리는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지금 우리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계십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약이나 음식을 살 돈이 없어요. 예수님 도와주세요. 제가 커서 꼭 보답하겠어요."
그리고 편지 겉봉에 보내는 이는 자기의 주소를, 받는 이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라고 써서 우체통에 넣고 와서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2-3일이 지난 어느날 신사 한 분이 찰니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 신사는 우체국의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이상한 주소의 편지가 있어 뜯어보고는 너무나 감동을 받아 찾아온 것입니다. 딱하고 기특한 소년에게 치료비와 음식을 살 돈과 찰리의 학비까지 모두 준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체국 직원인 신사분을 통해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약속대로 주셨던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또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면 누구든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넘치게 주고자 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고 하는 기도는 응답됩니다
(마21:22)
믿음으로 의심치 아니하면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모두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의 특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는 어린이가 됩시다.
자기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농부가 봄이면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이 때에 자기의 힘으로 얼마든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씨앗을 뿌릴 수는 있지만 곡식이 잘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인 것을 아는 사람은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햇볕을 뜨겁게 비추어 주어야 곡식의 열매가 잘 익을 수 있으며, 또 병이나 벌레가 곡식을 해롭게 하지 못하게 막아 주어야 하며, 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지 않아야 가을에 많은 곡식을 추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농부는 자기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처럼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강원도 산골에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여 전도사님이 섬기는 교회입니다.
대전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분이 여름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급한대로 비를 피하기 위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그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 교회를 섬기는 여전도사님은 혼자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기도를 하는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본의 아니게 전도사님의 기도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예배당이 너무나 낡았으니 좋은 예배당을 하나 주세요."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시골 교인들의 형편이 넉넉하질 않아 새로 예배당을 지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하나님께서 예배당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비가 그치자, 그 사업가는 나가면서 전도사님께 명함을 주면서 꼭 자기에게 찾아 오라고 했습니다. 그후에 전도사님이 대전에 가서 그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반갑게 맞이해 주며 예배당을 새로 지을 설게도를 가져 오라고 해서 곧 그대로 했더니 예배당 지을 돈을 헌금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강원도 산골 마을에는 아주 크고 좋은 예배당이 들어서게 되어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제목을 놓고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홍해도 갈라집니다
(출15:21)
애굽에서 해방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다달았습니다. 뒤에는 애굽병정이 따라 왔습니다. 이때에 모세가 손들고 기도하니 홍해가 육지같이 갈라졌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기뻣을 때가 애굽의 노에 생활에서 해방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처럼 일만하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애굽에 살면서 고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이끌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 가나안 땅을 향해서 기쁘게 찬송하며 신나게 애굽 땅을 더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애굽의 많은 군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왔습니다. 왜 따라 왔을까요? 그들을 잡아다가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한시 바삐 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큰 홍해가 놓여 있었습니다. 앞에는 홍해, 뒤로는 애굽군대에 쫓기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는 죽게 되었구나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곳까지 인도해 낸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때에 모세가 나서서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홍해 바다가 육지 같이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히 홍해를 건너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빨리 뒤따라 오던 애굽 병정들은 모세가 다시 손을 드니 갈라졌던 물이 다시 합해져서 모두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돌보아 주던 서울 청계천 빈민들의 거주지인 청계천을 정부시책에 따라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그들을 이끌고 경기도 화성군 이화리에 정착하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바다를 흙으로 메운 간척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새로운 땅에 논을 만들고 모를 심은 것이 다 말라 죽어 버렸습니다. 다시 충청도에서 모를 사와서 심었으나 또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바다를 메꾸어 일군 땅이라 많은 소금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농민들은 큰 걱정을 했습니다. 농사가 안 되면 그곳에 희망을 걸고 살아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서울 빈민촌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인솔자인 김목사님은 이번에는 강원도에 가서 모를 사와서 다시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김목사님은 모를 세 번째 심고 난후 논뚝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불쌍한 농민들을 기억하시고 이번에는 꼭 심은 모가 죽지 않고 살아서 결실을 맺게 해주세요."
그날밤 많은 비가 내려서 논의 소금기를 모두 씻겨 내렸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를 보고 농촌 진흥청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았습니다. 새 땅은 3년이 지나야 농사가 되는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참으로 홍해의 기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믿음으로 기도해서 홍해의 기적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체험하는 은혜를 받읍시다.
구하여 얻는 자가 됩시다
(마7:7-8)
예수님은 기도하기를 쉬지 말라 하시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그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여 얻어 누리는 사람이 됩시다.
어린이 여러분, 과자를 사서 먹고 싶을 때에 어떻게 하지요?
엄마나 아빠에게 과자 사달라고 조르지요? 그러면 엄마나 아빠가 여러분을 사랑ㄴ해서 맛있는 과자를 사먹게 돈을 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게로 가서 과자를 사서 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어린이들의 아버지시니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공자나 석가, 혹은 마호메트는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우리가 필요해서 구하는 것을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모두 다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있는데 그것이 내게 없다고 불평을 하거나 또는 스스로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풍성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필요한 것을 모두 얻은 어린이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도에 어떤 청년이 눈병이 나서 안과에 찾아가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는 에수님을 믿는 청년이었는데 큰 믿음은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자세히 진찰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눈에는 무서운 독이 퍼져 있습니다. 만약에 두 눈을 즉시 빼지 않으면 독이 몸안으로 들어가서 생명을 잃게 됩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두 눈을 빼는 수술을 해서 생명을 건져야 합니다."
이 청년은 의사 선생님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듣고 크게 낙심을 했습니다.
"내가 소경이 되다니 아이구 원통해라!"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를 잘 믿는 친구가 찾아와서 함께 예배당으로 가서 예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친구와 함께 예배당에 가서 하나님께 엎드려 밤새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눈을 고쳐주세요."
기도하면서 어찌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수술하기 위해서 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진찰을 한 의사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균이 다 없어졌습니다. 이제 수술할 필요가 없습니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청년의 절실한 기도를 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후로 그 청년은 매우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답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낙심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구하라 주시겠다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본 받읍시다
(약5:17-18)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하니 3년 6개월간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아니 했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믿고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우상을 섬기는 것은 큰 죄악이라고 꾸짖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것을 나타낸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참으로 용감한 사람입니다. 아합왕이 이세벨이라는 이방 여자를 왕후로 맞이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이스라엘 나라에는 바알이라는 우상 종교가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바알이란 왕후 이세벨이 시집 올 때 자기의 나라에서 데리고 와서 백성에게 섬기라고 강제적으로 명령을 내린 우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반대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죽이는 무서운 죄까지 저질렀습니다.
이때에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나서, 왕의 우상을 섬기는 죄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과연 엘리야의 경고대로 이스라엘 나라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백성들은 큰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한지 3년 6개월만에 엘리야가 나타나서 바알이 참 하나님인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지,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갈멜산 위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각자 기도해서 불이 내리는 신이 참 신임을 인정하기로 하여습니다.
결과는 바알 선지자 450명 모두 실패했으나 엘리야의 기도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여호와가 참 신인 것이 증명이 되었고 내기한 대로 바알 선지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시 엘리야가 기도하니 이번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이것으로써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 것을 백성들은 더욱 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 우리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황해도 봉산군 당포에 100년전에 세워진 교회가 있는데 이곳에는 믿음이 독실한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노부부는 자식이 없으므로 교회 청년들이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어느 여름, 교회 청년들과 노부부는 함께 산너머에 있는 밭에 김을 메고 있었는데 한 소년이 황급히 달려 오더니 할머니 집에 불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청년들은 큰일 났다 싶어 호미를 내던지고 달려 갔지만 할머니는 그저 그 자리에서 고요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껏 하나님이 잘 먹여 주시고 입혀 주셨는데, 이제 그 집이 불에 탄다해도 하나님께서 돌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청년들이 언덕까지 다다랐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회오리 바람이 불어오더니 그 초가에 불붙은 이엉이 돌돌 말려서 집 앞의 개울물 속으로 풍덩 내던져지는 것이었습니다.
청년들은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할머니의 기도에서 온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난 후 그 할머니는 기도의 할머니라고 불렸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기도합시다. 믿고 기도하는 어린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꼭 들어 주십니다.
'설마 이런 것도 들어 주실려고?' 하는 의심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모조건 믿고 기도하세요.
여러분 기도에 합당한 응답을 반드시 해 주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맙시다
(눅18:7)
하나님께서는 밤낮으로 울부짖고 기도하는 성도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기도할 때 응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기도하는 사람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서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좋아서 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도시에 불쌍한 한 과부가 하루는 그에게 찾아가 자기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판사는 과부의 부탁을 듣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자기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법관의 힘으로 원한을 풀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이 법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분 끝에 법관은 만약 자기가 이 과부의 원수를 갚아주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찾아와 자기를 괴롭힐 것이라 여기고 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게 되었습니다.
이런 불의한 법관도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는데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꼭 들어 주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응답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고 마는 것입니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지촌동이라는 곳에 최충만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군에서 폐병3기라는 무서운 진단을 받고 제대를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늙으신 어머니 한 분만 계셨고 사는 것 또한 넉넉하질 않아 셋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반가웠으나 먹을 것이 없어 집집마다 다니면서, 밥을 얻어다 아들을 먹였습니다.
이때에 그 동네 최성래 집사님 댁에서 교회 개척예배가 시작되었고, 박기용 전도사가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우연하게 이 예배에 참석하게 된 최충만은 예수를 믿기로 하고 매일 새벽마다 추운 겨울이지만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새벽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한 결과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폐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직이 목수였기 때문에 그의 재주를 살려 그의 손으로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또한 동네의 목수일을 도맡아 하여 생활문제가 해결리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그가 살 집을 짓게 했고, 또 결혼을 위해 기도하니 믿음이 좋은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또 기도하니 건강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후 최충만은 집사가 되었고, 몇 년 후에 장로가 되어서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아니 하십니다. 믿고 기도합시다.
불의한 재판관의 이야기와 최충만 집사님의 기도생활을 기억하고 응답이 될 때까지 기도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출처 : 인터넷로고스선교회
글쓴이 : lemalogo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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