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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소년이 남기고간 1년9개월 삶과 죽음의 기록 - 동아일보 이재명 기자

김노섭-열린문 2007. 3. 5. 11:53
백혈병 소년이 남기고간 1년9개월 삶과 죽음의 기록 - 동아일보 이재명 기자


1. 취재착수 및 보도제작경위
단독기획


2.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1월 16일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 재단’에게서 연락이 왔다. 메이크어위시 재단은 지난해 동아일보와 ‘꿈은 이루어진다’는 캠페인을 함께 진행했고, 기자는 당시 캠페인 내용을 보도하는 주무 기자여서 친분이 두터웠다.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홍보팀장은 “지난번에 말했던 것과 유사한 사례가 있어 연락을 했다”며 “자료를 e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해 달라”고 했다.
‘지난번에 말했던 것?’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기자는 오래 전부터 난치병 어린이가 숨을 거둘 때까지의 투병기를 기사화하고 싶었다. 한 아이의 삶과 죽음의 드라마는 특정개인의 얘기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난치병으로 투병하는 5000여 소아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얘기인 동시에 죽음을 잊고 살지만 죽음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는 세상 모든 사람의 얘기라 생각했다.
그래서 메이크어위시 재단과 캠페인을 벌이는 동안 투병기를 기사화 할 수 있는 난치병 아동이 있으면 꼭 소개시켜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해놓았다. 그 뒤 몇 차례 아동을 소개받았지만 기사화 하는 데는 여러 장벽이 있었다. 부모를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사회부 사건팀 근무 특성상 한 사안에 오랜 시간 매달리기도 힘들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e메일을 확인했는데 뜻밖의 사연과 마주했다. 그 아이는 이미 가족 곁을 떠난 상태였다. 1월 14일 오전 열세 살 소년, 이정표 군은 1년9개월 간 병마와 싸우다 숨을 거뒀다.
정표는 병에 걸리면서부터 죽기 사흘 전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수백여 장에 이르는 정표의 투병일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다. 누구보다 살기 위해 노력한 아이였다. 누구보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한 아이였다. 누구보다 주위 사람을 소중히 여긴 아이였다. 그의 일기엔 감사와 소망이 가득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삶에 대한 경건함이 일기 곳곳에 베여 있었다.
기사화하기로 마음먹고 21일 정표의 집을 찾았다. 정표의 부모는 “우리 아이는 의인도 아니고 특별한 사연도 없다”며 처음에는 기사화하는데 반대했다. 하지만 “정표가 특별하지 않은 우리 주변의 아이이기 때문에 기사화하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결국 정표의 부모는 승낙했다. 그리고 6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통해 정표의 삶과 죽음의 기록을 2면에 걸쳐 보도할 수 있었다.


3.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선행보도 없음.


4. 사회에 끼친 영향
정표의 투병일기가 보도된 다음날 기자에게 수십여 통의 e메일이 배달됐다. 주말판에 보도돼 독자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호응이었다.
한 주부는 기사를 읽고 아침 내내 펑펑 울었다며 초등학생 두 아들에게 기사를 소리 내 읽으라고 시켰다고 전했다. 자신도 병을 앓고 있다고 밝힌 한 40대 남성은 투병생활로 많이 지쳐있었는데 다시 힘을 내 정표가 살지 못한 삶을 대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호주 영국 등 외국에 살고 있는 독자에게도 메일이 왔고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에서도 정표의 투병일기가 소개됐다.
특히 정표가 무균실에 있을 때 엄마에게 했던 얘기(기사 중 ‘에필로그’ 참조)는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설명해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단 몇 사람이라도 정표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주위 사람을 돌아봤다면 그보다 가치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표 어머니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더 아프고 덜 아플 뿐이다. 정표 얘기를 통해 현재 투병하고 있는, 또 앞으로 병마와 싸우게 될 아이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사회가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보도 이후 정말 많은 사람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또 본보 보도 이후 파랑새어린이 출판사에서 정표 어머니로부터 판권을 얻어 정표의 투병일기를 정식 책으로 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소설가와 영화제작자도 정표 얘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영국의 한 도서관에선 정표의 투병일기 영문판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5. 자체평가 및 소속사 확인여부
사내에선 기사쓰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호평했다. 지금까지 많은 언론에서 ‘스토리 텔링’ 방식의 기사쓰기를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시도와는 달리 30장이 넘는 기사를 2면에 걸쳐 펼쳤다. 또 많은 선후배 기자들이 기사를 보며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다며 감동적 사연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이번 기사는 기자가 쓴 것이기 보다는 정표의 일기와 말, 그 가족의 얘기를 지면에 옮긴 것에 불과해 정표와 정표 가족께 큰 감사를 전하고 싶다.
2007-02-10 10:50:15